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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조금 길지만 찬찬히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글 내용은 모 종교의 책에 있는 내용입니다. 파란색 글은 제 글이구요.
이 글은 종교나 강증산을 논함이 아니요, 조선의 한 인물이 말해주는 역사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니 종교적인 댓글은 삼가해주시기 바라며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저는 대순전경을 읽었고, 모 종교의 도전이란 책도 읽어봤습니다.
역사적인 것과 관련해서 듬성듬성 봤지만 몇몇 눈여겨볼만한 내용이 있었고 강증산을 신앙하는 여러 종단에 있는 사람들에게 대륙 조선과 관련한 내용을 살짝살짝 물어봤지만 명확한 답은 없었습니다.
제가 갠적으로 항상 궁금한 것은 아래에 나와 있듯이 강증산이 살아 있는 명치(메이지)의 생령(산 사람의 영혼)을 불러서 조선을 잠시 일본에 맡기는 일을 처결하였다고 하는데 그 때가 1903년입니다. 명치는 희대의 명석한 두뇌를 가진 인물로 강증산 선생이 명치에게 잠시 조선을 좀 맡아라 했을 때 머리를 굴려보니까 남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판단하고 손절합니다.
강증산 선생은 3일 동안 3번을 명치의 영혼을 불러서 혼꾸녕을 내고 어거지로 명치가 조선을 맡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선은 일본에 어질 인(仁) 자는 줄 수 없으니 조선은 어질 인(仁) 자를 잘 간직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대륙 지명의 한반도 재배치는 언제?
제가 아는 바로는 대륙조선이 한반도로 본격적으로 이주하게 되는 것은 1920년대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강증산 선생의 출생년도가 1871년인데 강증산 선생이 10대, 20대 때인 1870년대, 1890년대에도 한반도 전라도에서 오늘날 전라도의 각 지역의 지명이 이미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대륙의 지명을 한반도에 재배치한 시기에 대해 혼란이 오게 되는데 이 의문이 남게 됩니다.
아래 내용들은 그간 제가 알게 된 참조 내용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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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증산 (1871~1909)]
https://namu.wiki/w/%EA%B0%95%EC%9D%BC%EC%88%9C
강증산 선생의 이름은 '일순'이며, 증산은 호입니다.
스스로 북두칠성에서 왔고 자신은 동양에서 옥황상제라고 부르는 상제(上帝)라고 자신의 위치를 말했다고 합니다.
북두칠성은 구천(九天)에 속하는 별이라고 하는데 모든 행성은 9 단계의 진화의 등급이 있다고 합니다.
지구는 1天(유치원)에 속한 행성이며 북두칠성은 진화의 마지막 단계의 행성이라고 합니다.
우리 말에 "죽은 자가 한이 많으면 구천을 떠돈다"고 할 때 그 九天이 바로 이 것입니다.
강증산이 구천의 별자리인 북두칠성에서 지구로 오게 된 이유에 대해 아래쪽에 이마두와 관련된 내용을 읽어보세요.
우리 민족은 예전에 시신을 관 속에 입관하기 전에 관 밑바닥에 '칠성판'을 깔고 시신을 입관했다고 합니다.
강증산은 39세에 이 세상에서 할 일을 모두 마치고 스스로 육체의 모든 정기(精氣) 흩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북두칠성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강증산이 이 세상에 온 목적은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행한 '천지공사'라고 하는 1901~1909년까지 9년 동안 세상의 모든 운로(運路)를 결정해놓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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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곡과 이태백 조선말에 다시 태어나다.
// 증산 종단의 모 종교의 신앙인으로부터 들은 얘기 중에서 재미난 얘기가 있어 일단 소개합니다.
율곡 이이와 이태백이 조선 말기에 태어났다는 얘깁니다. 이 분들이 무슨 종교 단체를 만들거나 그런 건 아니고 강증산 사상을 믿었다는 얘기입니다.
◆ 율곡 이이 : 고민환(高旻煥;1887~1966)
강증산 종단에서 율곡 이이 선생의 후신으로 알려져 있다. 즉 고민환의 전생은 율곡이다.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 군산 옥구에 살았으며 강증산 사상을 믿기 전까지 부암 은적사에서 승려 생활을 하였고 불교, 유교, 신문화를 두루 공부하였다.
◆ 이태백: 전선필(田先必;1892-1973)
강증산 종단에서 이태백의 후신으로 알려져 있다. 즉 전선필의 전생은 이태백이다.
전북 옥구군 구읍면 수산리(沃溝郡 舊邑面 壽山里)
전선필은 한 번 듣거나 본 것은 모든 걸 기억했다고 하며 언변력도 좋고 노래도 아주 찰지게 잘 불렀다고 한다.
선천적으로 감수성이 매우 풍부했다고 하며, 침술로 많은 병자들을 치료했다고 한다.
// 동학의 최수운은 전생이 최치원이라고 하더군요.
▣ 조선을 일본에 잠시 맡기고, 일본을 서양 세력을 몰아내는 일꾼으로 내세움 ▣
// 여기서 "나는", "내가", "상제"는 강증산을 말함.
// 조선을 근대화시키기 위해 조선을 일본에 잠시 맡김.
// 일본을 서양 세력을 몰아내는 일꾼으로 내세움.
1903년(계묘년)
<명치는 나의 양장이니라>
상제님께서 하루는 “조선 국운을 일본에게 맡기려면 명치(明治)를 불러와야 하리니 이제 명치의 혼을 부르리라.” 하시고
명치를 불러 물으시기를 “네가 조선 일을 보겠느냐?” 하시니
명치가 아뢰기를 “아무 보답도 없이 인명만 상할 터인데 어찌 남의 일에 쉬이 나서겠나이까?” 하며 완곡하게 사양하고 물러가니라.
이튿날 상제님께서 명치를 다시 불러서 혼을 내신 뒤에 물으시매 역시 사양하므로 돌려보내시더니
사흘째 밤에는 크게 화를 내시며 “이놈! 이놈!” 하고 밤새도록 불호령을 내리시니라.
이에 명치가 마지못해 굴복하여 “조선 일을 보겠습니다.” 하고 대답하거늘
상제님께서 명치와 더불어 여러 공사를 보시고 돌려보내시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명치 그놈, 참 잘난 놈이다. 명치만큼 똑똑한 놈이 없다. 똑똑하고 무서운 놈이니 장차 서양 세력을 물리치리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항우(項羽)는 한 고조(漢高祖)의 양장(良將)이요, 명치는 나의 양장이니라.” 하시니라.
<조선을 잠시 일본에 넘겨주어야>
상제님께서 인경 위를 향하여 여러 말씀을 하시는데 성도들이 들으니 그 말씀의 뜻을 알 수 없고 조선말이 아닌 것 같더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조선을 잠시 다른 나라에 넘겨주고 천운(天運)을 기다리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조선을 서양으로 넘기면 인종이 다르므로 차별과 학대가 심하여 살아날 수 없을 것이요, 청국으로 넘기면 그 민중이 우둔하여 뒷감당을 못할 것이요, 일본은 임진란 후로 도술신명(道術神明)들 사이에 척이 맺혀 있으니 그들에게 넘겨주어야 척이 풀릴지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일본을 도와 잠시 천하통일(天下統一)의 기운과 일월대명(日月大明)의 기운을 붙여 주어 천하에 역사를 하게 하리라. 그러나 그들에게 한 가지 못 줄 것이 있으니 곧 어질 인(仁) 자라. 만일 어질 인 자까지 붙여 주면 천하는 다 저희들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어질 인 자는 너희들에게 붙여 주리니 다른 것은 다 빼앗겨도 어질 인 자는 뺏기지 말라.
너희들은 편한 사람이요 저희들은 곧 너희들의 일꾼이니라.
모든 일을 분명하게 잘하여 주고 갈 때는 품삯도 못 받고 빈손으로 돌아가리니 말대접이나 후하게 하라.” 하시니라.
이어서 양지에
天下是非神淳昌運回
천하시비신순창운회
라 쓰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공사의 결정으로 인하여 천하의 모든 약소민족도 조선과 같이 제 나라 일은 제가 주장하게 되리라.” 하시니라.
// 임진란은 3일이면 끌럴 수 있었다?
// 야사에 의하면, 임진란 때 최풍헌이란 인물이 평양으로 피란 간 선조에게 나아가 '병권을 3일만 허락해 주면 왜병을 물리치겠다'고 요청했지만, 선조는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 참고: 풍헌은 이름이 아닌, 조선시대 말단 관리로 오늘날 마을 이장 정도가 된다고 한다.
관련 기사: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6/30/2008063001673.html
<모든 법을 합하여 쓰심>
지난 임진왜란에 정란(靖亂)의 책임을 ‘최 풍헌(崔風憲)이 맡았으면 사흘 일에 지나지 못하고, 진묵(震黙)이 맡았으면 석 달을 넘기지 않고, 송구봉(宋龜峯)이 맡았으면 여덟 달 만에 끌렀으리라.’ 하니
이는 선도와 불도와 유도의 법술(法術)이 서로 다름을 이름이라.
옛적에는 판이 작고 일이 간단하여 한 가지만 따로 쓸지라도 능히 난국을 바로잡을 수 있었으나
이제는 판이 넓고 일이 복잡하므로 모든 법을 합하여 쓰지 않고는 능히 혼란을 바로잡지 못하느니라.
// 조선은 새로운 세계사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새로운 문물을 배우지 못했다고 꾸짖는 내용이 나오네요.
<서양으로 넘어가는 동양을 붙들어 주심>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동학(東學) 신도들이 안심가(安心歌)를 잘못 해석하여 난을 지었느니라.
일본 사람이 3백 년 동안 돈 모으는 공부와 총 쏘는 공부와 모든 부강지술(富强之術)을 배워 왔나니 너희들은 무엇을 배웠느냐.
일심(一心)으로 석 달을 못 배웠고 삼 년을 못 배웠나니 무엇으로 그들을 대항하리오.
그들 하나를 죽이면 너희들은 백이나 죽으리니 그런 생각은 하지 말라.
이제 최수운(崔水雲)을 일본 명부, 전명숙(全明淑)을 조선 명부, 김일부(金一夫)를 청국 명부, 이마두(利瑪竇)를 서양 명부로 정하여 각기 일을 맡겨 일령지하(一令之下)에 하룻저녁으로 대세를 돌려 잡으리라.
이제 동양의 형세가 누란(累卵)과 같이 위급하므로 내가 붙들지 않으면 영원히 서양으로 넘어가게 되리라.” 하시니라.
// 1차, 2차 세계 대전은 관운장과 조선 신명들이 서양으로 건너가서 일으킨 대전쟁
// 세계 대전을 일으켜 서양 열강들이 자기 집안일로 인해서 스스로 물러가도록 만들어 누란지위의 조선과 동양을 구하기 위함, 세계 대전 이후 전 세계적으로 식민지들의 독립이 이뤄짐.
<관운장에게 세계 대전쟁의 천명을 내리심>
4월에 신원일을 데리고 태인 관왕묘 제원(關王廟 祭員) 신경원(辛京元)의 집에 머무르실 때
하루는 원일, 경원과 함께 관왕묘에 가시어 관운장(關雲長)에게 천명을 내리시며 공사를 행하시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동양에서 서양 세력을 몰아내고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한 약소국을 건지려면 서양 열강 사이에 싸움을 일으켜야 하리라. 관운장이 조선에 와서 극진한 공대를 받았으니 그 보답으로 당연히 공사에 진력 협조함이 옳으리라.” 하시고 양지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며 관운장을 초혼하시니 경원은 처음 보는 일이므로 이상히 생각하니라.
이 때 자못 엄숙한 가운데 상제님께서 세계대세의 위급함을 설하시고 서양에 가서 대전쟁을 일으키라는 천명을 내리시거늘
관운장이 감히 거역할 수는 없으나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아 머뭇거리는지라
상제님께서 노기를 띠시며 “때가 때이니만큼 네가 나서야 하나니 속히 나의 명을 받들라. 네가 언제까지 옥경삼문(玉京三門)의 수문장 노릇이나 하려느냐!” 하고 엄중히 꾸짖으시니라.
관운장이 그래도 대답을 아니하매 상제님께서 관운장의 수염을 휙 잡아당기시고 옷을 찢어 버리시니 이 때 조상(彫像)에서 삼각수(三角鬚) 한 갈래가 바닥에 떨어지니라.
이렇게 하룻밤을 지새시며 ‘이놈, 저놈’ 하고 불호령을 내리시거늘 관운장이 마침내 굴복하고 상제님의 명을 받들어 서양으로 가니라. 이후에 김경학(金京學), 최창조(崔昌祚), 최내경(崔乃敬), 최덕겸(崔德兼) 등 태인 사람들이 상제님의 면모를 숭배하여 상제님을 따르니라.
<여기서 무슨 제사를 지내느냐>
그 뒤에 하루는 상제님께서 김성연(金成淵)과 함께 말을 타고 관왕묘에 이르시어 말씀하시기를
“내가 관운장을 서양으로 보냈는데 여기서 무슨 제사를 지내느냐.” 하시고
성냥을 그어 관왕묘에 불을 지르려 하시다가 성연의 간곡한 만류로 그만두시니라.
// 관운장이 선뜻 천명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
<척을 짓지 말라>
대군(大軍)을 거느리고 적진을 쳐부수는 일이 영화롭고 장쾌하다 할지라도 인명을 잔멸케 하는 일이므로 악척(惡隻)이 되어 앞을 가로막느니라.
다른 사람이 만일 나를 칠지라도 그의 손을 어루만져 위로할지어다.
남이 힘들여 말할 때에는 설혹 그릇된 점이 있을지라도 일에 낭패만 없으면 반박하지 말라. 그도 또한 척이 되느니라.
이웃 사람이 정 붙여 주는 음식이 비록 맛이 없거나 먹고 병들지라도 사색(辭色)을 내지 말라. 오는 정이 꺾이어 이 또한 척이 되느니라.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마음으로 반기어 잘 대우하면 그 사람은 모를지라도 신명은 알아서, 어디를 가든지 대우를 잘 받게 되느니라.
<조선 신명을 서양으로 보내 대역사를 시키심>
계묘년 3월에 상제님께서 형렬과 여러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옛적에는 동서양 교통이 없었으므로 신명들이 서로 넘나들지 못하였으나, 이제 기차와 윤선으로 수출입하는 화물의 물표를 따라 서로 통하게 되었나니
조선 신명을 서양으로 보내어 역사(役事)케 하리라.” 하시니라.
이에 한 성도가 “조선 신명에게 서양을 맡기심은 무슨 까닭입니까?”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조선 신명을 서양으로 보내어 천지에 전쟁을 붙이는 일꾼으로 쓰려 하노라.” 하시고
이어서 “이제 재주(財主)를 얻어 길을 틔워야 할지니 재주를 천거하라.” 하시거늘
이 때 마침 김병욱(金秉旭)이 전주 부호 백남신(白南信)을 천거하니라.
// 서양의 산업혁명과 현대과학문명을 일으킨 두 인물 - 이마두와 진묵대사라고 하네요.
// '진묵소전'에 보면 진묵은 스스로 부처라고 했다고 하며, 진묵대사가 말년을 보낸 부여 무량사는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는 절이라고 합니다.
// 진묵대사는 서방극락정토의 아미타불이라고 전해집니다. 강증산이 여는 지구의 새 세상을 여는데 이 아미타불이 큰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 진묵대사와 관련해서 무자손천년향화지지(無子孫千年香火之地)과 '진묵대사의 모친 축문'은 검색해보세요.
<진묵대사(1562~1633)의 참혹한 죽음과 서양문명 개척>
전주 서방산(西方山) 봉서사(鳳棲寺) 아래에 계실 때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김봉곡(金鳳谷)이 시기심이 많더니 하루는 진묵(震黙)이 봉곡에게서 성리대전(性理大全)을 빌려 가면서
봉곡이 곧 후회하여 찾아올 줄 알고 걸어가면서 한 권씩 보고는 길가에 버려 봉서사 산문(山門) 어귀에 이르기까지 다 보고 버렸느니라. 봉곡이 책을 빌려 준 뒤에 곧 뉘우쳐 생각하기를 ‘진묵은 불법을 통한 자인데 만일 유도(儒道)까지 정통하면 대적하지 못하게 될 것이요, 또 불법이 크게 흥왕하여지고 유교는 쇠퇴하여지리라.’ 하고 급히 사람을 보내어 그 책을 도로 찾아오게 하니, 그 사람이 뒤쫓아가면서 길가에 이따금 한 권씩 버려진 책을 거두어 왔느니라.
그 뒤에 진묵이 봉곡에게 가니 봉곡이 빌려 간 책을 돌려달라고 하거늘 진묵이 ‘그 책은 쓸데없는 것이므로 다 버렸노라.’ 하니 봉곡이 크게 노하는지라 진묵이 말하기를 ‘내가 외우리니 기록하라.’ 하고 외우는데 한 글자도 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천하를 크게 문명케 하고자 하였더니 봉곡이 이로부터 더욱 시기하더니,
그 뒤에 진묵이 상좌(上佐)에게 단단히 이르기를 ‘내가 8일을 기한으로 하여 시해(尸解)로 천상에 다녀올 것이니 절대로 방문을 열지 말라.’ 하고 떠나거늘 하루는 봉곡이 봉서사로부터 서기가 하늘로 뻗친 것을 보고 ‘내가 저 기운을 받으면 진묵을 능가할 수 있으리라.’ 하며 즉시 봉서사로 올라갔느니라.
봉곡이 서기가 뻗치는 법당 앞에 당도하여 진묵을 찾으매 상좌가 나와서 ‘대사님이 출타하신 지 얼마 안 됩니다.’ 하니
봉곡이 ‘옳거니, 법당의 서기를 이 참에 받아야겠다.’ 하고 ‘법당 문을 열라.’ 하매 상좌가 ‘대사님께서 자물쇠를 가지고 가셨습니다.’ 하거늘 봉곡이 큰 소리로 호령하며 기어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니 뜻밖에 진묵이 앉아 있고 그의 몸에서 서기가 뻗치더라.
봉곡이 잠시 당황하다가 문득 진묵이 시해로 어디론가 갔음을 알아차리고 ‘서기를 못 받을 바에는 차라리 돌아오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상좌에게 ‘어찌 시체를 방에 숨겨 두고 혹세무민하느냐! 중은 죽으면 화장을 해야 하느니라.’ 하며
마침내 마당에 나무를 쌓고 진묵의 시신을 화장하니 어린 상좌가 울면서 말리거늘 봉곡은 도리어 화를 내며 상좌를 내쳤느니라.
이 때 마침 진묵이 돌아와 공중에서 외쳐 말하기를 ‘너와 내가 아무 원수진 일이 없는데 어찌 이러느냐!’ 하니 상좌가 진묵의 소리를 듣고 통곡하거늘 봉곡이 ‘저것은 요귀(妖鬼)의 소리니라. 듣지 말고 손가락뼈 한 마디, 수염 한 올도 남김없이 잘 태워야 하느니라.’ 하며 일일이 다 태워 버리니 진묵이 다급한 음성으로 상좌에게 ‘손톱이라도 찾아 보라.’ 하는데 봉곡이 상좌를 꼼짝도 못하게 하며 ‘손톱도 까마귀가 물고 날아갔다.’ 하는지라
진묵이 소리쳐 말하기를 ‘내가 각 지방 문화의 정수를 거두어 모아 천하를 크게 문명케 하고자 하였으나 이제 봉곡의 질투로 인하여 대사(大事)를 그르치게 되었으니 어찌 한스럽지 않으리오.
나는 이제 이 땅을 떠나려니와 봉곡의 자손은 대대로 호미질을 면치 못하리라.’ 하고 동양의 도통신(道通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갔느니라.” 하시니라.
<마테오 리치(이마두) 대성사(1552~1610년)의 큰 공덕>
이마두(利瑪竇)는 세계에 많은 공덕을 끼친 사람이라. 현 해원시대에 신명계의 주벽(主壁)이 되나니 이를 아는 자는 마땅히 경홀치 말지어다. 그러나 그 공덕을 은미(隱微) 중에 끼쳤으므로 세계는 이를 알지 못하느니라.
서양 사람 이마두가 동양에 와서 천국을 건설하려고 여러 가지 계획을 내었으나 쉽게 모든 적폐(積弊)를 고쳐 이상을 실현하기 어려우므로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만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틔워 예로부터 각기 지경(地境)을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들로 하여금 거침없이 넘나들게 하고
그가 죽은 뒤에는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돌아가서 다시 천국을 건설하려 하였나니 이로부터 지하신(地下神)이 천상에 올라가 모든 기묘한 법을 받아 내려 사람에게 ‘알음귀’를 열어 주어 세상의 모든 학술과 정교한 기계를 발명케 하여 천국의 모형을 본떴나니 이것이 바로 현대의 문명이라. 서양의 문명이기(文明利器)는 천상 문명을 본받은 것이니라.
하늘의 모든 신성과 부처와 보살이 하소연하므로 그러나 이 문명은 다만 물질과 사리(事理)에만 정통하였을 뿐이요, 도리어 인류의 교만과 잔포(殘暴)를 길러 내어 천지를 흔들며 자연을 정복하려는 기세로 모든 죄악을 꺼림 없이 범행하니 신도(神道)의 권위가 떨어지고 삼계(三界)가 혼란하여 천도와 인사가 도수를 어기는지라
이마두가 원시의 모든 신성(神聖)과 불타와 보살들과 더불어 인류와 신명계의 큰 겁액(劫厄)을 구천(九天)에 있는 나에게 하소연하므로 내가 서양 대법국 천개탑에 내려와 이마두를 데리고 삼계를 둘러보며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
중 진표(眞表)가 석가모니의 당래불(當來佛) 찬탄설게(讚歎說偈)에 의거하여 당래의 소식을 깨닫고 지심기원(至心祈願)하여 오던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30년을 지내면서 최수운(崔水雲)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였더니
수운이 능히 유교의 테 밖에 벗어나 진법을 들춰내어 신도(神道)와 인문(人文)의 푯대를 지으며 대도의 참빛을 열지 못하므로
드디어 갑자(甲子 : 道紀前 7, 1864)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辛未 : 道紀 1, 1871)년에 스스로 이 세상에 내려왔나니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수운가사(水雲歌詞)에서 말하는 ‘상제’는 곧 나를 이름이니라.
// 요 임금의 아들 단추의 원한(怨恨)을 풀어야 이 세상의 모든 원한이 순차적으로 풀린다고 함.
<이 때는 해원시대>
이 때는 해원시대(解寃時代)라. 이제 앞으로 모든 참혹한 일이 생겨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신명을 조화(調和)하여 만고의 원을 끄르고
상생의 도로써 조화도장(造化道場)을 열어 만고에 없는 선경세계를 세우고자 하노라.
<인류의 원한의 뿌리, 요임금의 아들 단주>
이제 원한의 역사의 뿌리인 당요(唐堯)의 아들 단주(丹朱)가 품은 깊은 원(寃)을 끄르면
그로부터 수천 년 동안 쌓여 내려온 모든 원한의 마디와 고가 풀릴지라.
대저 당요가 그 아들 단주를 불초(不肖)하다 하여 천하를 맡기지 않고 그의 두 딸과 천하를 순(舜)에게 전하여 주니
단주의 깊은 원을 그 누가 만분의 하나라도 풀어 주리오.
마침내 순이 창오(蒼梧)에서 죽고 두 왕비는 소상강(瀟湘江)에 빠져 죽었느니라.
그러므로 단주 해원을 첫머리로 하여 천지대세를 해원의 노정으로 나아가게 하노라.
이제 사람도 이름 없는 사람이 기세(氣勢)를 얻고, 땅도 이름 없는 땅에 길운(吉運)이 돌아오느니라.
<단주해원 도수는 오선위기로부터>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회문산에 오선위기가 있나니 바둑은 당요가 창시하여 단주에게 전수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단주의 해원은 오선위기로부터 비롯되나니 천하의 대운이 이로부터 열리느니라.” 하시고
다시 말씀하시기를 “이로써 또한 조선의 시비를 푸느니라.” 하시니라.
<요순에 얽힌 역사의 진실>
세상에서 우순(虞舜)을 대효(大孝)라 일러 오나 순은 천하의 대불효니라.
그 부친 고수(高叟)의 악명이 반만년 동안이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하였으니 어찌 한스럽지 않으리오.
세상에서 요순지치(堯舜之治)를 일러 왔으나 9년 홍수는 곧 창생의 눈물로 일어났나니
요(堯)는 천하를 무력으로 쳐서 얻었고, 형벌(刑罰)은 순(舜)으로부터 나왔느니라.
<대동세계를 만들고자 한 단주의 진실 왜곡사>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堯)의 아들 단주가 불초(不肖)하였다.’는 말이 반만년이나 전해 내려오니 만고의 원한 가운데 단주의 원한이 가장 크니라.
정말로 단주가 불초하였다면 조정의 신하들이 단주를 계명(啓明)하다고 천거하였겠느냐.
만족(蠻族)과 이족(夷族)의 오랑캐 칭호를 폐하자는 주장이 어찌 말이 많고 남과 다투기를 좋아하는 것이겠느냐?
온 천하를 대동세계(大同世界)로 만들자는 주장이 곧 ‘시끄럽고 싸우기 좋아한다.’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한 성도가 상제님께 여쭈기를 “우(禹)가 단주의 허물을 들어 말하기를 ‘밤낮 쉬지 않고 강마다 배를 띄우고, 벗들과 떼를 지어 집 안에서 마시며 세상을 없애려 하였다.’ 하였습니다.” 하니
말씀하시기를 “단주가 밤낮없이 쉬지 않았다는 것은 쉬지 않고 무엇인가를 하며 부지런하였다는 것이요
강마다 배를 띄웠다는 것은 대동세계를 만들자는 것이며
벗들과 떼지어 집 안에서 마셨다 함은 사람들과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 하였다는 말이요
세상을 없애려 하였다 하는 것은 서로 주장하는 도(道)가 같지 아니하였다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만고원신 해원 공사>
상제님께서 이어 말씀하시기를 “요순시대에 단주가 세상을 다스렸다면 시골 구석구석까지 바른 다스림과 교화가 두루 미치고
요복(要服)과 황복(荒服)의 구별이 없고 오랑캐의 이름도 없어지며, 만리가 지척같이 되어 천하가 한집안이 되었을 것이니 요와 순의 도는 오히려 좁은 것이니라.
단주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깊은 한을 품어 순이 창오에서 죽고 두 왕비가 소상강에 빠져 죽는 참상이 일어났나니
이로부터 천하의 크고 작은 모든 원한이 쌓여서 마침내 큰 화를 빚어내어 세상을 진멸할 지경에 이르렀느니라.
그러므로 먼저 단주의 깊은 원한을 풀어 주어야 그 뒤로 쌓여 내려온 만고의 원한이 다 매듭 풀리듯 하느니라.
이제 단주를 자미원(紫微垣)에 위(位)케 하여 다가오는 선경세계에서 세운(世運)을 통할(統轄)하게 하느니라.” 하시니라.
// 대한민국과 세계의 정세 변화
// 한국은 주인이요, 미국과 중국은 바둑을 두고, 러시아와 일본은 훈수를 하는 세계 정세 변화의 마지막 정국은 하늘에서 단주가 그 키를 쥐고 있다고 한다.
// 신냉전의 이념 대결의 승부 결판의 증인으로 최수운이 등장하네요. 위에서 보면 최수운은 일본 명부를 맡고 있는데 일본의 명부대왕이라고 하더군요. 동양 삼국의 명부를 조선의 인물이 맡고 있네요. 신냉전 결판에 일본의 어떤 변수가 있는 건지??
// 솔직하게 글은 글인데 읽어도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지만 최대한 아는 바를 설명했네요.
<조선 국운 심판 공사>
이어 상제님께서 장근에게 명하시어 “식혜 한 동이를 빚으라.” 하시고
이 날 밤 초경에 식혜를 너러기에 담아 인경 밑에 놓으시며 말씀하시기를
“회문산(回文山)에 오선위기혈(五仙圍碁穴)이 있으니 이제 바둑의 원조인 단주의 해원 도수(解寃度數)를 이곳에 붙여 조선 국운을 돌리려 하노라.” 하시니라.
이어 말씀하시기를 “다섯 신선 중에 한 신선은 주인이라 수수방관만 할 따름이요
네 신선이 판을 대하여 서로 패를 들쳐서 따먹으려 하므로 시일만 끌고 승부가 속히 나지 않느니라.
이제 최수운을 불러 증인으로 세우고 승부를 결판 내려 하나니 이 식혜는 곧 최수운을 대접하려는 것이로다.
너희들 중에 그의 문집에 있는 글귀를 아는 자가 있느냐?” 하시니 몇 사람이 대답하기를 “기억하는 구절이 있나이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양지에 ‘걸군굿 초라니패 남사당 여사당 삼대치’라 쓰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글이 주문이라. 외울 때 웃는 자가 있으면 죽으리니 조심하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이 글에 고저청탁(高低淸濁)의 곡조가 있나니 외울 때 곡조에 맞지 아니하면 신선들이 웃으리니 곡조를 잘 맞추라.” 하시고
상제님께서 친히 곡조에 맞춰 읽으시며 모두 따라 읽게 하시니 이윽고 찬 기운이 사람들을 엄습하니라.
상제님께서 읽기를 멈추시고 말씀하시기를 “최수운이 왔으니 조용히 들어 보라.” 하시니
문득 인경 위에서 “가장이 엄숙하면 그런 빛이 왜 있으리. 이 내 수치 씻어 주면 그 아니 성덕인가.”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거늘
상제님께서 물으시기를 “이 말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한 사람이 말하기를 “수운가사에 있습니다.” 하니라.
<나는 정세를 맡았노라>
황제(黃帝)가 난(亂)을 지으므로 치우(蚩尤)가 큰 안개를 지어 이를 평정하였나니
난을 지은 사람이 있어야 다스리는 사람이 있느니라.
최수운은 동세(動世)를 맡았고 나는 정세(靖世)를 맡았나니
전명숙의 동(動)은 곧 천하의 난을 동케 하였느니라.
최수운은 내 세상이 올 것을 알렸고, 김일부는 내 세상이 오는 이치를 밝혔으며, 전명숙은 내 세상의 앞길을 열었느니라.
수운가사는 수운이 노래한 것이나, 나의 일을 노래한 것이니라.
일부가 내 일 한 가지는 하였느니라.
<조선 국운을 거두심>
그 뒤에 서울 황교에 머무르시며 천지대신문을 열고 대공사를 행하시니 성도들은 명에 따라 담배를 금하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여러 날 동안 신명들에게 칙령을 내리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조선의 국운을 거두어 잠시 일본에 맡기려 하노니 최수운이 보증을 서리라.” 하시거늘
한 성도가 여쭈기를 “지금 조선의 운을 거두시니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하늘의 정사(天政)가 동방에 있건만 수운이 죽음을 당하고 국운은 다하여 백성이 하늘에 호소하기 때문이니라.” 하시니라.
이에 그 성도가 다시 “최수운의 죽음이 어찌하여 그렇게 큰일이 되옵니까?”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선천의 모든 일이 그대로 인간 세상에 재앙을 일으키면 천하를 건지기 어려우므로 천지신명들이 구천(九天)에 있는 나에게 호소하매 내가 차마 물리치지 못하고 어찌할 수 없이 세상에 내려오면서 수운으로 하여금 내가 장차 세상에 내려옴을 알리게 하였더니 조선 조정이 그를 죽였으므로 천지의 모든 신명들이 분노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첫댓글 고맙습니다
개인적으로 道典을 읽어보았는데, 위의 부분이 많이 신기했었습니다. 하지만 현 반도 증산도는 반도조선사에 완전히 몰입되어 친일식민강단사학의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대륙의 기독교를 비롯한 많은 종교가 일제에 의해 반도로 이주하면서 많은 경제적 지원을 받고 반도이주를 함구한 것으로 보여지고 증산도 또한 그런 일제의 간교한 술책에서 자유로울수 없었을 것입니다.하지만 종교는 종교일뿐 우리가 공부하는 역사연구의 작은 가지정도로 규정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