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리들의 작은 마음들...
우리는 서양그림이라고 하면 밀레의 만종이 생각난다
저녁에 일이 끝나고 두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이
그려져있다. 그때쯤이면 마치 저멀리 교회종소리가
들리는듯하다. 그당시의 이삭줍기는 가난한이들을 위한 몫이었다고 한다
성경안을 들여다보면 이방인에대한 이야기가 집중으로 쓰여져있는데
그중의하나가 룻기이다. 전통적으로 결혼한 여자는 남편이 자녀없이 일찍 죽으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수가 있다고 한다. 이야기는 성경 룻기에나오는 이야기이다
이삭을 줍다가 만난 룻과 보아즈는 예수님의 양아버지인 요셉의혈동에 이르는
다윗왕의 조상을 낳았다고 한다.
일본이나 선진구의 골목길을 다니면서 불꺼진 가게앞에 허름한 상자안에 그날
팔고 남은 물건이 들어있다고 한다. 그날 아무소득없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남겨진 음식과 식자재라고 한다.
유럽여성으로 인도에서 가난하고 버림받은이들을 돌보는 수도회를 만든
데레사수녀님은 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동료수녀는 걱정이 있었다
‘데레사 수녀님, 내일이면 아이들에게 줄 빵이 떨어집니다. 어떻게 할까요?’라고
하시자 그냥 빙그레 웃기만 했다.
잠시 얼마쯤지내자 큰트럭이 수도원안으로 들어왔다. 그안에는 빵이 가득들어있었다.
그차에서 내린 분이 말하기를 근처에 오늘 야외행사가 있기로 했는데 날씨 때문에
취소되어서 근처에 아이들을 돌보는 수도원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들어왔다고 한다.
가난함을 아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을 도울줄 안다고 했다.
저희가 1980년대에 견진을 받을때에는 평일날 했다. 가난한 나라 한국에서 교구장을 하시는
주교님은 일년에 반은 외국에서 보낸다고 한다. 미국이나 유럽의선진국에가서 그곳본당을
통해 기부금을 모아 돌아와서 가난한 한국교회를 위해 사용된다고 한다.
한국에서 1970.80년대에 갑자기 천주교회의등록신가 급증했다. 그들중에는 가난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당시는 먹을 것을 나눠주는 것은 천주교시설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옛날에는 버려지는 식자재가 없었다고 한다. 배추를다듬고 남은 허드레잎사귀나 무잎사귀를
짚으로 만든 긴끈으로 묶어 처마 끝에 매달아서 말리면 겨울내내 부식걱정이 없었다고 한다.
요즈음은 그런사람이 거의 없지만 저희가 어릴때에는 길거리에서 밥동냥을 하는 거지들이
있었다. 그때 저는 어린마음으로 부모몰래 대문을 열어주곤 하였다고 한다.
국민학교를 다닐적에는 건들바위가 있는 골목안에 살았다. 지금은 많은 변화가 있어서
어디가 큰길이고 구분이 되지않았지만 골목안에 있는 건들바위밑에 사는 걸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커다란 깡통을 들고 다니면서 국과 밥 그리고 반찬을 한통안에 받아 가지고 가서
먹었던 것이다. 그안에서 자그마한 불을 피우고 가져온 깡통을 데우기에 그들은 그것을
먹고도 탈이 나지도 않았다고 한다.
옛날에는 성당안 복도에 쌀뒤주를 놓고 집에서 밥을 지을때마다 한숟가락씩 들어서
모아서 그것을 성당 뒤주에 붙는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 퍼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교우들이 많이 퍼가면 남아날 쌀이 있겠느냐고 걱정이었지만 다행히도
퍼가는 이들은 사람들이 오지않는 저녁에 몰래찾아와서 자신들이필요한 양만큼 퍼다
갔던 모양이다. 그래서 오히려 뒤주의 쌀은 줄어들지않고 늘어나기에 간혹 뒤주에
쌀벌레가 일어나기에 쌀이 변질이 될까 오히려 걱정이 되었다
이를 염려한 어머니들이 쌀을 파다가 백설기를 만들어서 주일 성당마당에서 팔았다.
실제 쌀로 있을때보다 더 많은 쌀을 구입할 수가 있었고 나중에 필요할때에
농협에서 구입해서 나누워주기도 하였다.
그때에는 금융대란이후인지라 장사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들은 물건을 잘 팔지
못했던 탓인지 어려움을 많이겪었다고 한다. 본당신부님은 고심 끝에 성당마당에서
이들을 위한 벼룻시장을 열었다. 그날 미사에 온 신자들이 그곳에서 물건을 직접
구입하거나 주문을 하면 집에까지 배달도 해주었다고 한다.
저는 아는 쌀집을 소개해서 장사를 해서 여러포대를 팔았다.
어려움은 어려움을 겪은사람들이 잘 알기 때문에 서로를 잘 도와준다고 한다.
성경을 보면 주님은 가난하고 아픈이들을 돕기 위해서 미천한 인간의 몸으로
이땅에 오셨다고 한다. 그래서 권력가와 부유한 이들로부터 배척을 당하셨다고 한다.
우리도 주님의 가르침을 본받아서 서로를 돕는다면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게 되는 결과도 되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지금 코로나 거리두기로 같은동네에 사는 교우라도 잘 만나기가 어려운 모습이다
겨우 주일에 한번 미사에 나와도 애기하기가 어렵고 잠시 체온을 재거나 아니면
주보를 받을때에 같이 오는 사람들이나 봉사자들과 인사나눔이 전부이다.
다들 마스크를 쓰고 눈만 내어놓기에 어떤 표정인지도 잘 알수가 없다
그래도 가만가만히 속삭이는듯한 인사말씀으로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아주 가끔~ 성당올라오면서 들리는 마트에서 바나나우유 여러개들이 한팩을 사다가
봉사자들앞에 수줍게 내놓고 얼른 성당안으로 들어가곤한다.
82년도에 서품하신 본당신부님은 어떻게하면 소모임을 재개할 수가 있을까
그리고 고해성사는 개별적으로 할수있을까 고심중에 계신다.
오로지 소모임을 통해서야만이 서로를 위로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일 것이다. 소모임은 꾸리아모임부터 그리고 고해성사는 대림판공서부터
하실것이라고 해셨다. 그러면서 한꺼번에 많이 몰려들지말기를 당부하신다.
지금 대구교구에서는 2021-2022년 천주교달력이 시작되고 본당은
새로임명된 봉사자들이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고 교구는 시노드를 통해 새로운 다짐을 해본다고 한다.
아직 코로나확진자가 폭발적인 늘어나는 불안정한 시대에 살아가면서
우리는 주님을 통한 평안이 더 요구되고 서로 도와줘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나게 된다는 것이다.
주님은 아주 미묘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소명을 부여해주십니다 아멘
오늘 하루를 정리하면서 잘 실천도 하지 못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