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편지
김홍래
손 편지를 써 본지도 받아 본지도 오래다. 어릴 적에는 손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컴퓨터와 휴대폰이 등장하면서 손 편지는 급격히 자취를 감추었다. 언제부터인가 ‘문자’ ‘카톡’ ‘이메일’ 같은 것들에 익숙해지면서 손 편지란 말이 조금 낯설게도 느껴진다. 과거에는 편지라고 하면 모두 손 편지였다. 한동안 컴퓨터로 작성하여 인쇄한 편지가 대부분이었다가 이마저도 많이 사라졌다. 요즘 우체국의 우편물도 개인의 편지보다는 카드회사나 금융기관의 각종 청구서나 홍보물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어릴 적에는 동구 밖이나 대문 앞에서 우편배달부를 기다리는 일이 많았다. 편지를 쓰는 일도 즐거웠지만 편지를 기다리는 일도 무척이나 설레고 행복한 일이었다. 전화도 귀하고 대면할 수도 없으니 편지 속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연이 살뜰하게 실렸다. 잘 쓴 편지는 멋진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것만큼 감동적이고 울림을 주는 경우도 많다. 편지는 읽고 또 읽고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에 다시 읽어도 새롭고 반갑다. 이 처럼 정성으로 쓴 우릿한 편지는 오래 오래 사람의 마음을 붙잡아 둔다. 객지에서 부모님의 편지를 받으면 고향이 그리워 눈물이 나고 밤잠을 설치곤 하였다. 여자 친구가 보낸 편지는 밤이 이슥하도록 몇 번이고 읽어서 어떤 편지는 외울 정도였다.
우리 집안은 사촌을 포함하여 13남매인데 둘째 형님이 집안에서 가장 먼저 “서울”로 가셨다. 전화도 없던 시절 형님은 가끔 “어머님 전 상서”로 시작하는 편지를 보내왔는데 행여 몸이 아프다고 하면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느라 저녁을 못 드셨다. 나는 친구들과 자주 서신을 교환하는 편이었다. 내가 대학 2년을 마치고 군 입대를 하기 위하여 친구와 함께 휴학을 했는데, 그때가 마침 농번기인 5월이어서 친구는 부모님의 일손을 도와 드린다며 ‘충남 홍성’으로 가고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서울에 머물렀다. 그 때 우린 자주 편지를 주고받으며 진실한 우정을 나누었다. 한 번은 구순하게 지내던 친구가 정성껏 쓴 편지와 함께 법정 스님의 “서있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보내 준 적이 있었다. 수필집이었는데 글이 참으로 정갈하고 담백했다. 그 책은 여러 번 읽었다. 내가 지금 수필이나 시를 쓰는 것도 그때 친구가 보내준 그 책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친구들과 자주 서신을 교환하면서 문장력도 많이 향상 되었을 것이다. 친구들이 고맙다.
내가 받은 그 많던 편지가 지금은 한통도 남아 있지 않다. 그 시절의 편지가 있으면 좋은 추억이 되고 나의 ‘역사‘의 일부도 될 텐데 안타까운 마음 가득하다. 도시에서 여러 번 이사를 다니면서 소중한 편지들이 다 소실되었다. 편지는 단순히 기별을 하는 수단이기도 했지만 꾹꾹 눌러 쓴 손 편지는 보내는 이의 정성과 진심 그리고 정서가 고스란히 배어있기 마련이다. 쓴 편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 번이고 고쳐 쓰곤 했다. 이 편지를 받으면 얼마나 기뻐할까? 언제쯤 답장을 받을 수 있을까? 이런 상상도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어머니께 편지를 쓰면서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리고, 어린 시절의 동네 친구들을 생각하고 시골 풍경을 그리며 성심껏 또박또박 썼었다. 오늘은 강직한 성품이셨지만 자식 사랑이 유별나셨던 아버지가 객지에 있는 아들을 걱정하시면서 보내 주신 편지가 아른 거려 느껍다. 편지는 어떤 글보다도 인간적이며 따뜻하고 서정적인 글이다. 손 편지가 사라지면서 우리네 정서가 더욱 메말라 가는 것은 아닌지. 오늘 날의 젊은이들은 손 편지에 대한 추억도 없고 설레며 기다리는 즐거움을 모를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오늘 책장을 정리하다가 오래 묵은 수첩에서 빛바랜 봉투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봉투를 열어보니 20년 전쯤 교직에 있을 때 담임반 학생의 아버지가 인편으로 보낸 손 편지였다. “존경하는 선생님 귀하” 란 제목이 달린 2장의 손 편지에는 늦게 결혼하고 사업에 실패하여 가정 형편이 힘들고 어려우며 자식에게 너무 미안하다는 사연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는 학자금 지원을 신청한다는 내용이었다.
“ 내일이면 남의 집 지하방으로 이사하는 날입니다. 부모로서 자식한테 비참한 모습을 보여 주기가 죽음보다 더 참담한 마음, 괴롭고 통탄한 마음, 억장이 무너집니다.” 편지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이 학생을 뚜렷이 기억한다. 당알진 면은 없었지만 키가 크고 미쁘며 수줍음이 많던 아이였다.
편지를 받고 즉시 아이를 불러 상당을 했었다. 얼마나 다급하고 어려웠으면 이런 편지를 보내셨을까? 생각하니 마음 겨웠다. 나는 아이가 학자금 지원을 최우선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었다. 이윽하지 못하고 투미한 교사는 그것으로 교사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도 결혼하고 여러 번 단칸방으로 이사를 다녔다. 결혼 후 4-5년이 지나서야 겨우 2칸 자리 전셋집에서 살 수 있었는데 너무 행복해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이 편지를 받을 무렵에는 어렵사리 작은 아파트를 장만했을 때이다. 오늘 이 편지를 다시 보니 너무나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이 든다. 교사면 많은 돈은 아니지만 매달 꼬박꼬박 세금으로 주는 봉급을 받는다. 그런 학부모들에 비하면 얼마나 풍요로운가? 얼마나 여유로운 생활인가? 그때 쌀이라도 한가마니 보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후회가 밀려온다. 지금 와서 후회 한들 소용없는 일이지만 사려 깊지 못하고 제자를 진정 사랑으로 보살피지 못한 것 같아서 부끄럽고 깊은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교직에 첫발을 내디딜 적에는 정말 교사다운 참 교사가 되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을 했는데 교직 30년 동안 아무런 베푼 것이 없는 것 같아서 헛헛하기 이를 데 없다. 오늘은 안타까운 마음을 덜어 보려고 자꾸 먼 산을 바라본다. 진초록 숲에서 불어오는 간들바람 좋은 날 그리운 제자에게 손 편지라도 한 통 써 부쳐야겠다.
*** 순 우리말
-이윽하다 = 뜻이나 생각이 깊다.
- 투미하다 = 미련하고 어리석다.(=미욱하다)
-느껍다 = 어떤 일이 사무치어 북받치다.
-당알지다= 야무지고 당차다.
-간들바람 = 부드럽고 상쾌하게 부는 바람
-미쁘다 = 믿음직 스럽다.
-구순하다 = (지내는 사이가)화목하고 다정하다
첫댓글 이윽하다 = 뜻이나 생각이 깊다.
- 투미하다 = 미련하고 어리석다.(=미욱하다)
-느껍다 = 어떤 일이 사무치어 북받치다.
-당알지다= 야무지고 당차다.
-간들바람 = 부드럽고 상쾌하게 부는 바람
-미쁘다 = 믿음직 스럽다.
-구순하다 = (지내는 사이가)화목하고 다정하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정겨운 이야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손 편지가 주는 아련한 그리움
이젠 추억이 되어버린 일들..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
감사합니다
이제 자주 보지 못하게 되어버린 손편지.
그래서 더 그립습니다.
네 저도 아쉽네요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