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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섬기는 신앙생활은 어떻게 하는가? 갈라디아 5:13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오늘 저는 부끄러운 심정으로 설교를 하겠습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는 섬김입니다. 그런데 이 설교를 하는 제가 섬김이 약합니다. 그래서 부끄러운 마음으로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섬김에 있어서 모범이 된 두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먼저는 손양원목사님입니다. 손양원목사님의 별명은 사랑의 원자탄입니다. 그만큼 강력한 사랑을 실천했다는 의미입니다. 손목사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손길을 펴셨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으로 섬기는 삶에 있어서 대표적인 것 두 가지는 나병환자 사랑과 원수 사랑입니다.
손양원목사님은 나병환자촌인 애양원에서 나병환자들을 사랑으로 섬기셨습니다. 목사님이 얼마나 큰 사랑으로 나환자들을 섬겼는지 알 수 있는 사건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박옥선이란 여자 환자가 발밑에 난 종기 때문에 다리를 절단해야 했습니다. 손목사님은 나병의 환부에는 사람의 침이 좋은 약이 된다고 들었기 때문에 악취 나는 환부의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 주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섬김입니다. 손목사님은 이런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주여 나로 하여금 애양원을 사랑하게 하여 주옵소서. 나의 부모와 형제와 처자보다 더 사랑하게 하여 주옵소서. 오 주여 내가 이들을 사랑한다 하오나 인위적 사랑, 인간적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주보다는 더 사랑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손양원목사님의 사랑의 극치는 1948년 10월 여수 순천 반란사건 때 드러났습니다. 목사님이 너무나 사랑했던 두 아들이 공산당원에 의해서 총살당했습니다. 손목사님은 그 소식을 듣고 예배당에 들어가서 밤을 새워 통곡하고 기도하고 교회를 나오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내 아들들은 죽어서 천국에 갔지만, 내 아들들을 죽인 안재선은 죽으면 지옥 갈 텐데,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손목사님의 마음에는 커다란 사랑의 폭풍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마음속에서 들리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그를 살려야 한다. 그를 용서해야 한다. 그를 사랑해야 한다.” 결국 손목사님은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목사님의 양아들이 된 안재선은 그 사랑의 원자탄에 맞아서 죄 사함과 구원의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안재선은 사랑의 원자탄을 맞고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목회와 전도의 방식과 비결은 유창한 설교도 아니었고 심오한 신학강의도 아니었습니다. 유명해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삶으로 보여주신 사랑과 섬김이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나타내 보이신 사랑과 섬김을 따라간 것입니다.
사랑으로 심긴 본을 보인 또 한 사람은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詩人)인, 바이런(Lord Byron)입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바이런의 어린 시절 학교에서, 한 힘센 선배가 자기 친구를 괴롭히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바이런은 어떻게 해서든지 친구를 돕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바이런은 태어날 때부터 한 쪽 다리가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힘으로는 친구를 도울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이런은 자기 친구를 때리고 있는 힘센 선배 앞에 용감하게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친구를 몇 대나 때릴 생각이냐고 물었습니다. 선배는 성난 목소리로 “네가 무슨 상관이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바이런은 선배를 바라보면서, “나머지 절반은 내가 대신 맞으면 안 되겠어요?”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과연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자문해 봤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되겠지만 아무래도 제 인격으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본문에 보면 그리스도인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공로 때문에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말합니다. 사랑으로 종노릇하라는 말은 종이 주인을 섬기는 것처럼 서로 섬기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오직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종이 될 필요가 없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종처럼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으로 섬기는 것만큼 강력한 전도의 방법도 없습니다. 옛날 농촌에 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부인은 교회를 잘나가는 집사님이고, 그 교회 여전도회 회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주님을 믿지 않았고 심한 핍박자였습니다. 자기 아내가 교회만 갔다 오면 때리고, 난리를 쳤습니다. 그는 노름꾼에다가 주색잡기나 하고 자녀가 다섯이었지만 가정 살림은 전혀 돌보지 않았습니다. 여집사님은 집안 살림을 꾸려나가며 아이들을 키워나가야 하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심방을 가셨는데, 남편이 그 모습을 보고 아내를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때리고, 교회도 못나갈 정도로 괴롭게 했습니다. 여집사님은 매일 맞아가면서도 불평하나 하지 않고 신앙생활하면서 열심히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 집사님이 40대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렸습니다. 그때 남편이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집안 살림을 보니 막막합니다. 장례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때 목사님께서 교회에 광고하셔서 먹고 살 수 있도록 양식도 도와주고 연탄도 도와주고 또 장례를 인도해주셨습니다. 그 사람이 자신이 과거에 했던 행동을 생각하니 너무나 부끄럽고 죄스러웠습니다. 결국 미안한 마음에 ‘이제부터 교회를 나가야겠다!’ 결심하고 예배라는 예배는 다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교인들이 “아내 죽더니 정신 차리고 하나님 믿네!”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 사람은 하나님 믿고 교회 나온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가 죽으면 지옥 가는 문제 때문에 교회 나온 것도 아닙니다. 죽은 아내와 목사님 그리고 교회의 사랑과 섬김에 감동 받아서 교회에 나온 것입니다. 사랑과 섬김만큼 강력한 전도의 방법도 없습니다.
제가 가진 목회 철학 중에 하나는 섬기는 목회입니다. 저는 교회 청소도 하지 않습니다. 교회 텃밭도 관리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섬길까요? 저는 예배로 하나님을 섬기고 기도와 말씀으로 여러분을 섬깁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이 교회의 일을 위해서는 일곱 집사를 세우고 자신들은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을 썼던 것처럼 저는 그렇게 섬기는 사역을 합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초기에는 제 아내가 직장생활을 해서 생활비를 충당했고 교회 살림에 보탬이 되었습니다. 아내가 회사에 다니며 적금 들었던 것 그리고 퇴직금까지 다 주의 일에 사용했습니다. 심지어 결혼 패물까지 다 헌금했습니다. 제 아내는 외국인 회사에 다녔습니다. 퇴직을 했지만 회사에서 다시 와달라고 부탁을 해서 재입사를 했었는데 목회 때문에 파트타임으로 일했습니다. 그때가 25년도 더 됐는데 시급이 5,812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어서 아내가 직장을 다시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때 주변의 사람들이 다 말렸습니다. “지금 개척교회를 하는데 직장을 그만두면 어떻게 먹고 살려고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하나님의 인도를 확신했기 때문에 믿음으로 퇴사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저희 부부에게 주신 말씀이 고린도전서 9:13입니다.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우리 부부에게는 이 말씀이 목회자는 목회를 통해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제 아내가 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먹이셨습니다. 물론 교회를 통해서 먹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사랑과 섬김으로 저희 부부가 사역에 집중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저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이라는 부분입니다. 목회는 제단에서 섬기는 사역입니다. 목회는 교회에서 섬기는 사역입니다. 예배로 하나님을 섬기고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도를 섬기는 사역입니다. 신앙생활은 사역도 섬기고 생활도 섬기는 것입니다.
이제 섬기는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는가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 주를 본받아 섬기라.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씁쓸한 사건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오래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새해가 다가오는데 목사님께서는 누가 새해 1월 첫 달 안내를 서면 좋을까 기도하다가 교회에서 제일 연세가 많으신 부부에게 안내를 서도록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사건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그 부부가 안내를 서는데 별로 얼굴 표정이 좋지 않아요. 목사님은 속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보다!’ 하면서 마음이 좀 불안했습니다. 예배를 다 마치고 목사님이 교우들에게 인사를 하러 예배당 뒤로 나가셨는데 난리가 났습니다. 그 부부가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이 교회는 안내 볼 사람이 없어서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을 정초부터 안내를 시킵니까?” 목사님이 들으니까 기가 막혔습니다. 목사님이 “집사님, 제 생각은 그게 아니고요. 제일 어른이신 집사님께서 첫 달 안내를 서시면 다른 제직들에게도 본이 될 것 같아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만 집사님은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우리를 안내를 시킵니까?” 하면서 분을 내시더랍니다.
사실 그런 자세는 주님을 본받는 자세가 아닙니다. 마태복음 20:28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님은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려고 오셨습니다.
신앙생활은 주님을 본받는 생활이고, 주님이 내 안에 오셔서 나를 통해서 사시는 생활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처럼 섬기는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자존심 상해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주님처럼 섬길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3:14입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직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주와 선생이 되어 이렇게 했으니 제자들도 서로 발을 씻기며 섬기는 것이 옳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종들입니다. 우리의 선생님이신 주님, 우리의 주인이신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섬김을 하셨다면 우리는 어떤 섬김도 감사하므로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본받아 섬겨야 합니다.
2. 옳은 마음으로 섬기라
그리스도인에게는 마음의 상태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3:23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주님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기를 원하십니다. 간혹 립 서비스가 좋은 분들이 있습니다. 입에 꿀을 발라놓은 것처럼 달콤하게 말을 합니다. 그런데 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지만 마음은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음에 없는 말로 상대의 기분을 좋게 하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상대의 마음이 알아질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는 상대의 입에 발린 소리가 기분 좋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분을 상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옳은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저도 50대 후반이 되고 보니 세상을 좀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음 따로 입 따로 일 때가 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외식이 늘어가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주님 앞에 죄송한 맘입니다. 그러나 맘에 있는 말만한다고 사랑은 아닙니다. 때로는 맘에 없는 말이지만 그 말이 상대에게 위로가 되고 공동체의 평화를 유지할 때도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올바른 방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입니다. 빌립보서 2:3입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상대를 섬기기는 하는데 상대를 낮게 보며 교만한 마음으로 섬겨서는 안 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겸손한 마음을 기뻐하시고 또 상대도 나의 겸손과 교만을 쉽게 눈치 채기 때문입니다. 상대를 섬기기는 하는데 교만으로 한다면 오히려 역효과입니다. 섬기는 자신에게도 유익이 되지 않고 섬김을 받는 사람에게는 상처가 됩니다.
겸손은 자기를 낮추는 마음입니다. 교만은 자기를 낮추지 않는 마음입니다. 미국 프로야구 선수 중에 가장 에러(실수)를 많이 범한 선수는 뉴욕 팀의 히크맨(Charles Hickman)이라는 선수입니다. 그는 1897년에 선수생활을 시작해서 1907년에 은퇴했습니다. 한 시즌 120게임에 출전해서 91번이나 에러를 범했습니다. 그에게는 나쁜 버릇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수비를 할 때 다리를 굽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리를 굽히지 않으니까 번번이 땅볼을 놓쳤습니다. 다리를 굽혀야 굴러오는 볼을 잘 잡는데 다리를 굽히지 않으니 평범한 땅볼도 쉽게 놓친 것입니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우리가 어떤 자세로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지 않는 사람은 많은 것을 놓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마음을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며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3.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라
이 부분에 모범을 보인 사람은 다윗입니다. 사도행전 13:36입니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다윗의 일생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긴 인생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을 특별히 사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섬기라 혹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섬기라는 말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늘 기억하기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보기 좋은 일도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입니다. 그러면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내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일이라면 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종들은 무슨 일을 할 때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습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 주인의 뜻을 따라서 일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의 종들입니다. 목회자만 주의 종이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의 종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셨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7:22-23입니다.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값 주고 산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늘 주의 종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저를 따라 해봅시다. “나는 주의 종이다” 그렇다고 목사에게 맞먹어서는 안 됩니다. ㅎㅎ
저와 아내는 얼마 전에 경기도와 하남시로부터 긴급재난구호금을 15만원씩 합계 30만원을 받았습니다. 그 돈을 받고 난 후에 하나님이 제 마음에 “네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경제적으로 손해 본 것이 없지 않느냐 그러니 그 돈은 도네이션해라”라는 음성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와 아내는 그 돈을 헌금을 해야 하나 아니면 사회의 어느 단체에 기부를 해야 하나 생각 중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 있어서 주님의 종으로서 주님의 인도를 따르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겨야 합니다.
4. 먼저 섬기라
사실 저도 이게 잘 안 됩니다. 오늘은 제가 그렇게 살기 때문에 설교하는 것이 아니고 제가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설교라고 믿기에 하는 것이니 너그럽게 사랑으로 들어주시고 제 말이라고 생각지 마시고 주님의 음성으로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7:12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구약 성경에서 말하는 뼈대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남에게 대접받고 싶고 남에게 섬김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가르치는 진리는 남에게 대접 받고 남에게 섬김을 받고 싶으면 먼저 남을 대접하고 먼저 남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김상복목사님께서 연세가 일흔에 가까운 한 부인을 만나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분은 자기 남편이 너무 싫어서 남편이 가까이만 와도 진저리가 난대요. 결혼 생활 40여 년 동안 남편이 아내를 죽도록 마음고생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아내가 얼마나 상처를 입었는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아내는 그 상처가 너무 깊어서 정신과 약을 먹어야 겨우 몇 시간 정도 잠을 잘 수가 있습니다. 남편과 같이 있는 것은 고통이고, 아들 집에 가서 잠시 지내다 오는 것이 휴식이랍니다. 일흔 살이나 되신 분이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으면 이 정도까지 됐을까요? 그 남편이 가족을 섬기는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어떤 고통을 느끼는지 모른 채 자기 중심적, 이기적 인생을 산 것입니다. 남편만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아내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내가 아들집에 다녀오니 남편이 40년 만에 처음으로 “내가 잘못했소!”라는 말을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했답니다. 그 말을 듣자 40년 동안 쌓였던 아내의 분노와 상처가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잠을 못 자던 그 부인이 김상복목사님과 만나기 전날 밤에 6시간을 잤대요. 6시간 잤다는 것이 보통사람에게 무슨 이야기 거리가 되겠습니까? 고통을 주는 남편이 없다면! 오랫동안 남편과 남처럼 지내던 아내가 오랜만에 남편 옆에서 잠을 자 주었답니다. “내가 오늘 당신을 안아 주고 싶소.” 20대 신혼부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70대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은 40년이 지나서야 아내의 생각과 고통을 살피게 된 것입니다. 남편이 먼저 손을 내밀자 아내의 상처가 눈 녹듯이 녹아내렸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먼저 용서하지 못하고 먼저 섬길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찬양입니다. 1절만 함께 불러보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6fkIomJ6Es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내가 먼저 용서 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웃음 주지 못하고/ 이렇게 머뭇 거리고 있네/ 그가 먼저 손내밀길 원했고/ 그가 먼저 용서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웃음 주길 원했네/ 나는 어찌된 사람인가/ 오 간교한 나의 입술이여/ 오 옹졸한 나의 마음이여/ 왜 나의 입은 사랑을 말하면서/ 왜 나의 맘은 화해를 말하면서/ 왜 내가 먼저 져 줄순 없는가/ 왜 내가 먼저 손해 볼순 없는가/ 오늘 나는 오늘 나는/ 주님 앞에서 몸둘봐 모르고 이렇게/ 흐느끼며 서있네/ 어찌할수 없는 이맘을 주님께 맡긴체로
먼저 섬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5. 지극히 작은 자도 섬기라
섬김의 원칙 중에 하나는 “모든 사람을 섬기라”입니다. 사람을 봐서 나보다 잘나고, 나보다 강하고, 나보다 가진 것이 많고, 나보다 많이 배웠으면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가진 것이 어떤 것이든, 그가 가진 능력이 어떠하든, 그의 배경이 어떻고, 그의 인물이 어떻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을 가려가며 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주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5:40입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5:45입니다.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주님이 재림하신 후에 있을 심판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때 심판의 기준 중에 하나가 지극히 작은 자를 섬겼느냐 섬기지 않았느냐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주님에게 한 것이고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지 않은 것이 주님에게 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무시하고 함부로 대할 사람은 없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아무리 작은 자라 할지라도 그는 천하보다 귀한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극히 작은 자도 주님 섬기듯 섬겨야 합니다.
6. 하나님의 보상만 바라고 섬기라
마태복음 6장에 보면 신앙의 덕목 중에 세 가지가 나옵니다. 구제와 기도와 금식입니다. 주님은 세 가지 신앙의 덕목에 대한 교훈을 주시면서 동일하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 둘째는 은밀하게 보시는 하나님께서 갚으신다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하기 보다는 하나님이 보시고 하나님이 보상하실 것을 바라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누가복음 14:12-14을 보겠습니다.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13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14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주님은 사람을 대접할 때 상대가 대접을 받고 나에게 갚을 수 있는 사람을 대접하지 말고 갚을 수 없는 사람을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갚을 길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나에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이 갚지 못하면 부활 시에 하나님께서 갚아주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부활 시에만 갚아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도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입니다. 갈라디아서 6:7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하나님은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하지 않고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은 하늘에서도 상을 받게 하시지만 이 세상에서도 반드시 거두게 하십니다.
영안모자라는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백성학(白聖鶴)이라는 분은 6·25 때 혼자 월남해서 거지 생활, 미군부대 하우스 보이 생활을 거쳐 모자 가게 사환으로 들어갔는데, 하루에 18시간씩 일해 열아홉 살 때 자신의 모자 가게를 차렸습니다. 이 분에게 변하지 않는 신조가 있는데 “내가 번 돈의 20%는 다시 사회에 기증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심으니 하나님은 거두게 하시는데 정말 풍성하게 거두게 하십니다. 이 분이 경영하는 회사는 1년에 모자 1억 개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의 모자회사입니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모자의 70%가 영안모자 제품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사람의 보상을 바라지 말고 하나님의 보상을 바라고 섬기는 삶을 삽시다. 하나님은 반드시 복주시고 복 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섬기는 신앙생활은 어떻게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섬겨야 할까요? 1. 주를 본받아 섬기라. 2. 옳은 마음으로 섬기라. 3.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라. 4. 먼저 섬기라. 5. 지극히 작은 자도 섬기라. 6. 하나님의 보상만 바라고 섬기라
성경을 들고 믿음의 고백을 합시다. “나는 섬기는 삶을 살겠습니다. 나는 주를 본받아 섬기겠습니다. 나는 옳은 마음으로 섬기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겠습니다. 나는 먼저 섬기겠습니다. 나는 지극히 작은 자도 섬기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보상만 바라고 섬기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