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야? 좀 더 웃어야지?”
“죄송합니다.”
“몇 번을 말해야 되니? 자, 다시한번. 원,투,쓰리..”
어렸을 적, 나는 11년동안 발레를 배워왔다. 남들보다 아름다운 춤 선과 비범한 박자감각은 일찍이 나를 신동으로 불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내가 그럴 때마다 항상 이런 내가 부족하다고 지적받았던 것은 춤에 ‘감정’을 실는 것이었다. 좀 더 웃어라, 웃기만 해서는 안된다, 이미 완벽히 숙지한 동작이라도 감정을 실는다는 목적을 위해 나는 수십번, 수백번을 다시 해내야만 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내 자신이 극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생각하고 그 감정을 표현해야야 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지시를 끝까지 이뤄낼 수 없었다. 극 중의 주인공들이 왜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는 지, 이러한 감정이 어떠한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무표정의 발레리나, 그게 바로 나였다. 감정을 배제한 채, 오로지 춤 선과 고난이도 동작의 연속으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내는 것, 그것이 나의 발레였다. 그런데 왜일까, 이런 나의 발레를 무대에서 선보일 때마다 내게 돌아왔던 것은 재미없다는 듯이 하품을 하거나 무표정한 표정을 짓고 있는 관객들과 나를 무대 위에 세운 선생님의 따끔한 지적이었다.
“내가 그런 거 하지 말라고 했어, 안했어?”
“죄송합니다.”
왜 나는 안 되는 것일까, 타인의 ‘감정’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고민과 고민을 거듭하고 아무리 다른 유명 발레리나, 발레리노들의 공연을 보아도 내게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타인의 ‘감정’이라는 것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감정’을 잃은 백조는 추락해 신동이라 불렸던 아이는 그저 평범한 발레소녀로 남게 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발레가 아니면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의 주목과 박수가 너무나도 고팠다. 그때부터 이상한 토슈즈를 신는다던가, 이상한 머리스타일을 해보던가 해서 주목을 끌어보려 시도 했었다. 그렇게 수많은 방법을 시도해보며 이번에도 아니면 정말 포기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해봤던 것이 하나 있었다.
“저, 선생님. 이 인물, 좀 자세히 설명해 주실래요?”
그 방법은 극 중 인물을 최대한 세밀하게, 또 자세히 나에게 녹여내는 것이었다. 다시 한번 관객을 휘어잡을 수 있는 공연을 생각했을 때,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것은 영화에서 ‘조커’역을 맡았던 ‘히스 레져’라는 인물이었다. 그렇다. ‘나’라는 그릇에 인물을 담아내는 것이 아닌, ‘나’ 자체가 그 인물이 되어버리는 것. 제 3자의 입장에서가 아닌, 나를 그 상황에 몰아넣음으로써 그 인물의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게 하는 것, 흔히 말하는 ‘메소드 연기’처럼, 매번 나는 인물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그 인물이 되어 무대 위에 올랐다. 다행히도,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던 것 같았다. 나를 깎아내렸던 사람들은 어느새 내 춤사위를 보고 열광했으며, 무대 위에 오르는 빈도는 점점 높아져갔다. 하지만 내가 더 많은 공연을 따낼수록, 공연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내가 돼야만 하는 인물이 많아질수록, 나는 참을 수 없는 이질감에 휩싸였다. 매번 공연이 끝난 후, 나는 한참동안 변기를 잡은 채로 헛구역질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분명 나인데, 내가 아닌 느낌, 메소드 연기라는 것은 흔히 말하는 연기의 극한이자 양날의 검이다. 충분한 경험을 쌓아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인 것이다. 하지만, 타인의 감정조차 이해 할 수 없었던 나는 지나치게 극단적이고 비정상적으로 메소드 적인 공연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공연이 이어질수록 내 자아는 희미해져갔다. 앞만 보고 달려온 내 안에는 진정한 나, ‘묘이 미나’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으며, 그때의 나는 그저 감독이 빚어내는 대로 변하는 새까만 찰흙같은, 또 속이 빈 껍데기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조금씩 주목받는 인기 발레리나로서의 생활을 시작했지만 조커로 주목받은 ‘히스 레져’가 그 인기를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한 것처럼, 나도 그 인기를 오랫동안 이어나갈 수 없었다.
공연 후에 변기 앞에서 엎드려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정체모를 이질감에 속이 메스꺼워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할 때 쯤, 결국 나는 히스 레져의 충격적인 죽음을 접했고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에 휴식을 취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휴식기에 엄마와 쇼핑을 하던 중, 나는 JYP에 캐스팅됬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딴따라에 불과한 ‘가수’ 그 중, ‘아이돌’이라는 직업이 질 떨어지고 불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어쩌면 나에게 ‘아이돌’이라는 직업은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가면을 쓰고 대중을 접하는 직업이자 대중의 주목을 한 번에 받는 직업. 타인의 관심을 얻기 위해 무슨 일이든지 하는 추악한 그 직업은 지금의 나, 옛날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가 발레를 시작하게 된 계기, 춤을 추게 된 계기, 다른 사람에게 주목받기 위한 몸부림을 이어가기 위해 한국으로 떠나게 된다.
한국에서의 1년이라는 연습생 생활, 나는 친구나 동료 한명 없이 그저 묵묵히 춤을 추고, 또 춤을 췄다. 무대 위에서 주목을 받는 것은 결국 한명, 나는 그 한 명이 되고자 하는 생각에 다른 연습생들이 말을 걸어도, 다가와도 애써 외면하며 내 춤 선을 갈고 닦고 또 갈고 닦았다. 그리고 관심을 받기 위해 몸부림쳤던 백조에게 드디어 날아오를 기회가 찾아왔다.
‘식스틴’, 걸그룹 ‘트와이스’를 위해 만들어진 오디션 프로그램, 나는 그곳에서 1년동안의 연습생 생활을 끊어내고 드디어 날개를 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처음 주어진 미션, ‘너의 스타성을 보여라.’ 나는 확신했다. 이건 나를 위해 만들어진 미션이라고. 수없이 무대 위에 올라보았고, 관객의 박수를 받은 그 천재 발레리나를 JYP라는 사람 앞에서 보여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별다른 어려움 없이 나는 맘에 드는 곡의 맘에 드는 파트를 골라 그의 눈앞에서 보여주었다. 무대 위에는 ‘묘이 미나’라는 사람 대신 환하게 웃는 여주인공만이 있을 뿐이었다. 내가 아니, 그녀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JYP의 평가도 좋았다. 이대로라면 데뷔는 물론이고 정상까지 노려볼만 하다는 근거 없는 허세가 들었다. ‘아이돌, 별거없네.’ 라는 생각을 하며 결과를 들었을 때, 처음에는 나도 내 귀를 의심했다. 당장이라도 JYP의 멱살을 잡고 왜 내가 마이너 멤버인지 이유를 말하라고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의 눈 밖에 나면 데뷔는 물론이고 1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할 것만 같은 생각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의 말을 경청하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
“그, 감정이. 미나 감정 같지가 않고, 그 표정마저도 굉장히 연습해서 나온듯한 표정 같았어. 그건 그냥...한명의 무용수 일 뿐이야.”
한명의 무용수,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했던 것이 단지 한명의 무용수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내가 바라봤던 정상이 사실은 어둡고 깊은 심해라는 사실을 나는 그때까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 자신을 ‘천재’라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한심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내가 잘못된 것일까?’ 라는 생각이. 나는 내 자신에 너무 심취해서 이었을까, 내 방식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라는 사람이 누구일까? 아니, 애초에 ‘나’라는 사람이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점이 생겨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내가 누군지, 내가 왜 ‘나’를 찾기 위해 고생해야 하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그 깊은 회의감의 끝에서 생겨나게 된 것이 지금의 ‘나’이다. 무대 위에서의 연기가 싫다면, 나는 일생동안 너희들이 원하는 ‘아이돌 미나’를 연기해주면 그만이었다. 진짜 나는 메소드 적인 연기를 반복했을 때부터 이미 없어진지 오래였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물, 대중들의 주목을 끌 수 있는 인물, 새로운 ‘묘이 미나’라는 인물이 내가 되면 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일상생활에서까지 나를 버린다는 생각에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빈 껍데기에 내용물을 채워 넣어서 일까 금방 나는 익숙해 질 수 있었다. 내가 만들어낸 지나치게 이상적인 미나는 그렇게 JYP에게 눈도장을 찍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였을까,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미 예전과는 다른, 무언가가 되어있었다. 대망의 식스틴 최종발표, 내가 그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다음으로, 마이너에서 메이저가 될 멤버는...”
‘역시 다현이가 잘하긴 잘하네.’
“다현이야.”
‘그리고 두 명.’
“저는 지금 그들을 조금 더 완벽한 그룹으로 만들어줄 두 명을 추가로 선정하려고 합니다.
‘일단 쯔위.’
“저는 쯔위양을 추가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모모’
“지금 현재 트와이스 멤버 8명의 춤과 퍼포먼스를 보강해줄, 모모를 선정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이미 마이너로 내려갈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도, 쯔위와 모모가 추가로 선정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말하지 못해서 근질근질 거렸기 때문에 이 표정을 숨기기 위해 악을 쓰면서 버티느냐고 힘들었다.
그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 ‘자아’가 없는 ‘트와이스 미나’의 이성이 결부된 세상은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첫댓글 와.... 그 식스틴보고 이렇게 글을 만든거에요? 대박 잘보고있습니다!!
그...뭔가 원인같은 것을 좀 써야 될것같기도 하고..복선도 좀 깔아놓고..하려고 식스틴을 끌어왔습니다. ㅎ
오랜만에 재밌는 팬픽 찾았군요^^ 미나리..... 왜케 불쌍한건데요 ㅠㅠ
미나리는 불쌍해야 제맛..
@여신조쯔위♥ 그렇긴 해요 ㅋㅋㅋㅋㅋ 언젠가부터 미나는 불쌍한 역으로만 쓰인다는.....
@발레하는미나리 제가 선동했습..ㅋ
@여신조쯔위♥ ㅋㅋㅋㅋㅋㅋㅋ 그 뒤를 이은 저는 망하고 있죠.....ㅋㅋ
미나리 너무 불쌍하네여...TT
묘느리는 오늘도 불쌍합니다. 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