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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의포식(暖衣飽食)
옷을 따뜻이 입고 음식을 배부르게 먹는다는 뜻으로, 의식(衣食) 걱정이 없는 편한 생활을 이르는 말이다.
暖 : 따뜻할 난(日/9)
衣 : 옷 의(衣/0)
飽 : 배부를 포(飠/5)
食 : 먹을 식(食/0)
(유의어)
포식난의(飽食暖衣)
호의호식(好衣好食)
출전 : 맹자(孟子)의 등문공(騰文公)
옷을 따뜻이 입고 음식을 배부르게 먹는다는 뜻으로, 의식 걱정이 없는 편한 생활에 부자유스러움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맹자(孟子) 등문공(騰文公) 상(上)편에 있는 이야기이다. 맹자(孟子)가 60세가 지나 등(滕)나라의 등문공(滕文公)에게 초대되어 갔을 때, 주(周)나라 처럼 정전법(井田法)을 실시하여 등(滕)나라를 이상적인 사회로 만들도록 설득하였다.
이때 묵자(墨子)의 영향을 받은 중농주의자인 허행(許行)이 송(宋)나라로 부터 등(滕)나라에 와서, 등문공(滕文公)으로부터 살 집과 전토(田土)를 받고 자기가 짠 거친 옷을 입고 자기가 경작하여 지은 양식을 먹고 사는 주의를 실천하고 있었다.
유교의 생활 방식을 버리고 허행(許行)과 같은 생활을 시작한 진상(陳相)이라는 사람이 맹자(孟子)에게, “등(滕)나라 임금도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손수 농사를 지어서 먹어야 하지 않느냐”고 하였다.
맹자(孟子)는 허행(許行)이 사용하는 농기구와 질그릇이 자기가 지은 농산물과 물물 교환한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다음, ‘인간의 생활이란 분업을 하는 것이지 원시적 자급자족이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허행(許行)도 농기구나 그릇 등을 물물 교환하여 쓰고 있지 않느냐. 우(禹)임금 같은 분은 8년동안 아홉개의 큰 강을 막아 다스리느라고 세 차례나 자기의 집 문앞을 지나면서도 못 들어갔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군왕과 선각자들이 강을 막고 농사 짓는 법을 가르쳐 주어 백성들이 따뜻한 옷을 입고 배불리 먹고 사는 것(暖衣飽食)이 아니겠습니까?"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후직(后稷:순(舜)임금 때 농사 일을 관장하던 관직)을 시켜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일을 가르치게 하였다. 이리하여 오곡이 익어 백성들이 잘 살게 되었다.
人之有道也 飽食暖衣逸居 而無敎 則近於禽獸
사람에게 도(道)가 있으니,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고 편안하게 살지라도, 가르침이 없으면, 금수에 가까워지게 된다.
聖人有憂之 使契爲司徒 敎以人倫
성인이 이것을 근심하여, 설(契)로 하여금 사도(司徒)로 삼아, 인륜으로써 가르치게 하니;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
부자 사이에는 친함이 있고, 군신 사이에는 의가 있고, 부부 사이에는 구별이 있고, 연장자와 연소자 사이에는 차례가 있고, 벗 사이에는 믿음이 있다.
여기서 난의포식(暖衣飽食)이 유래되었으며, 포식난의(飽食暖衣)라고도 한다.
맹자는 사람이 배부르게 먹고 따뜻하게 입으며 편히 생활하면서 가르침이 없으면 인간으로서의 도(道)를 잃어 방만하고 게을러져서 동물과 같아지니,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가르침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 가르침은 이른바 오륜(五倫)으로 사람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윤리인 것이다.
사림광기(事林廣記)에 포난생음욕(飽暖生淫欲)이라는 말이 있다. 즉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어 안일하면 자연히 음욕이 생긴다는 말인데, 맹자(孟子)는 이를 경계한 것 같다.
난의포식(暖衣飽食)
따뜻한 옷을 입고 배불리 밥을 먹다
좋은 옷에 배부르게 산다는 말이다. 전국시대 맹자(孟子)의 이야기다. 맹자가 60이 넘은 나이에 등문공의 초빙을 받아 등나라로 갔다. 등문공에게 주(周)나라처럼 정전법(井田法)을 실시하여 이상적인 국가를 만들도록 설득했다.
이때 묵자의 영향을 받은 중농주의자인 허행이 송나라에서 등나라로 와서 등문공으로 부터 살 집과 전토(田土)를 받고 자기가 짠 거친 옷을 입으며, 자기가 경작하여 지은 양식을 먹고 자급자족하는 주의를 실천하고 있었다.
유교 방식을 버리고 허행과 같은 생활을 시작한 진상(陳相)이란 사람이 맹자에게 “등나라 임금도 백성과 마찬가지로 손수 농사를 지어서 먹어야 되지 않느냐”고 하였다.
맹자는 사람의 생활이란 나누어서 일을 하는 것이지 원시적인 자급자족이란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허행도 농기구나 그릇 등을 물물교환 하여 쓰지 않느냐”고 깨우쳐 주면서, 우(禹)임금 같은 분은 8년 동안 아홉 개의 큰 강을 막아 다스리느라고 세 차례나 자기 집 앞을 지나면서도 못 들어갔다는 것을 예로 들었다.
‘후직(后稷)이 백성에게 농사짓는 일을 가르치고 오곡을 심어 키우게 했는데 오곡이 영글자 백성들이 잘살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도(道)가 있으니,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고 편안하게 산다고 해도 가르침이 없으면 금수에 가까워진다. 성인이 이것을 근심하여 설을 사도로 삼아 인륜으로써 가르치게 하니 이것이 바로 아버지와 자식은 친함이 있으며, 임금과 신하는 의가 있으며, 지아비와 지어미는 분별이 있으며, 어른과 아이는 차례가 있으며, 친구 간에는 믿음이 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맹자 등문공 상편에 나오는데, 삼강오륜(三綱五倫)도 여기에서 유래 되었으며, 포식난의(飽食暖衣) 일거(逸居)에서 난의포식(暖衣飽食)이 유래되었다. 본래 맹자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잘 입고 잘 먹고 사는 것만으로는 인간다운 삶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후세에 물질적으로 넉넉하게 사는 것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난의포식(暖衣飽食)은 묵자(墨子)에도 보이는데 ‘백성들이 모두 따뜻한 옷을 입고 배불리 먹으면 편안하고 근심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또한 순자(荀子) 영욕편에도 보이는데 효도하고 우애하며 성실하고 멍에를 메고 전력을 다함으로써 그 사업을 두텁게 하며 감히 게으르게 하는 것은 서민들이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며 길게 살고 오래보며 형벌을 면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도 400 여 년 전 임진왜란 때 병사들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둬을 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열 명 중에 7,8명은 돼지비계 국에 쌀밥을 양 차게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고 한다. 불과 50 여년 전만해도 춘궁기가 있었는데 다른 말로 보릿고개라고 하였다.
시대가 달라져서 지금은 난의포식(暖衣飽食)하고 있지만 그 때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들이 고생하고 절약하여 지금에 이르러 난의포식(暖衣飽食) 하게 되었다. 전 세계에서 한 세대가 배고프게 살다가 너무 잘 먹어 살이 쪄서 다이어트 하려고 노력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한다. 기성세대에 감사해야 한다.
요즘 세대도 애로사항이 많겠지만, 그래도 헐벗고 배고팠던 과거에 비하면 풍족한 세대이다. 가난했던 우리 국민이 난의포식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은 박정희 시대의 경제개발과 새마을운동이 기반이 되었다. 척박한 환경에서 경제를 일으킨 부모세대의 고생을 잊지 말아야겠다.
난의포식(暖衣飽食)
따뜻한 옷을 입고 배불리 밥을 먹는다. 좋은 옷을 입고 배불리 먹는 넉넉한 생활을 비유하는 말이다.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상편(上篇)에 나오는 말이다.
맹자가 60 세가 넘은 나이에 등문공(滕文公)의 초빙을 받아 등(滕)나라에 갔을 때 맹자는 등문공에게 주(周)나라처럼 정전법(井田法)을 실시하여 등(滕)나라를 이상적인 국가로 만들도록 설득했다. 이때 묵자(墨子)의 영향을 받은 중농주의자 허행(許行)이 등나라에 와서 문공으로부터 살집과 전토(田士)를 받고 자급자족 경제를 실천하고 있었다.
그의 제자인 진상(陳相)이 맹자의 정전법이론에 반대하면서 말하기를, "등나라의 임금의 뜻도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손수 농사를 지어서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맹자는 "인간의 생활이란 분업을 하는 것이지 원시적 자급자족이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면서 "허행에게 농기구나 그릇 등도 타인의 소유물을 서로 물물교환(物物交換)하여 쓰고 있지 않느냐"고 깨우쳐 주었다.
그리고 하나라 우(禹)임금은 8 년 동안 아홉 개의 큰 강을 막아 다스리느라고 세 차례나 자기의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못 들어갔다는 것을 예로 든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周)나라 시조였던 후직(后稷)이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일을 가르치고 오곡을 심어 키우게 했는데 오곡이 영글자 백성들이 잘살게 되었다. 사람에게는 도가 있으니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고 편안하게 산다고 해도 가르침이 없으면 금수에 가까워진다"고 했다.
성인께서는 또 이를 걱정하시어 설(契)을 사도(司徒)로 임명하시어 인륜(人倫:사람 된 도리)으로써 백성을 가르치게 하셨다. 부자간에는 친함이 있고(父子有親 부자유친) 군신간에는 의리가 있으며(君臣有義 군신유의) 부부 사이에는 구별이 있고(夫婦有別 부부유별) 장유간에는 차례가 있으며(長幼有序 장유유서), 붕우간에는 믿음(朋友有信 붕우유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 이야기 난의포식(暖衣飽食)은 포식난의일거(飽食暖衣逸居)에서 유래되었다. 맹자(孟子)가 포식난의일거를 말한 의도는 국가로부터 전토(田土)를 받아 자급자족(自給自足)되어 부(富)를 누리는 사람만 잘 입고 잘 먹고 사는 것만으로는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함이었다. 또 오늘 날에는 단지 배불리 먹고 따뜻한 옷을 입고서 근심 없이 사는 넉넉한 생활을 하는 물질적인 풍요만을 즐기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난의포식(暖衣飽食)은 다음의 전적(典籍)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묵자(墨子) 천지중(天至中)에서 백성들이 모두 따뜻한 옷을 입고 배불리 먹으면 편안하고 근심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맹자가 이러한 말을 한 궁극적인 의도는 풍요로운 생활의 긍정이 아니고 육체는 온전한 정신을 따른다는 것을 강조했다. 사람의 도리는 효도(孝道) 우애(友愛)하며 성실하고 멍에를 메고 전력을 다함으로써 경영하는 사업을 도탑게 함과 태만하지 않는 것은 모든 서민들이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고 오래 살면서 부당한 형벌을 면하기 위함이라고도 했다.
▶️ 暖(따뜻할 난, 부드러울 훤)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날 일(日; 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爰(원, 난)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음(音)을 나타내는 爰(원)은 직접이 아니고 사이에 무엇인가를 사용하여 남의 손을 끄는 일, 여기에서는 援(원), 緩(완) 따위와 함께 한가롭다는 뜻을 나타낸다. 爛(난)은 불에 데운 미지근한 물과 같이 따뜻한 것, 옛날에는 불 화(火=灬; 불꽃)部와 같이 日(날일변)이 같이 다루어졌기 때문에 이 글자도 나중에 暖(난)으로 쓰였다. 그래서 暖(난, 훤)은 ①따뜻하다 ②따뜻이 하다 ③따뜻해지다 ④따뜻한 기운 그리고 ⓐ부드럽다(훤) ⓑ유순한 모양(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따뜻할 온(溫), 더울 서(暑), 불꽃 염(炎), 더울 열(熱),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찰 냉(冷), 찰 랭(冷), 찰 한(寒), 서늘할 량(涼)이다. 용례로는 방을 덥게 함을 난방(暖房), 따뜻한 봄을 난춘(暖春), 따뜻한 겨울을 난동(暖冬), 따뜻한 느낌을 나타내는 색을 난색(暖色), 따뜻한 열을 난열(暖熱), 대기 속에서 따뜻한 공기가 움직이어 나가는 흐름을 난파(暖波), 따뜻한 나라를 난국(暖國), 따뜻한 기운을 난기(暖氣), 뜨뜻하게 만든 옷을 난의(暖衣), 따뜻한 바다를 난해(暖海), 날씨가 맑고 따뜻하며 바람이 부드러움을 난화(暖和), 따뜻한 곳을 난지(暖地), 따뜻한 바람을 난풍(暖風), 몸이나 방안을 덥게 하는 난방 기구를 난로(暖爐), 솜을 두어 만든 휘장을 난장(暖帳), 날씨가 따뜻함을 온난(溫暖), 추움과 따뜻함을 한난(寒暖), 차가움과 따뜻함을 냉난(冷暖), 봄철의 따뜻한 기운을 춘난(春暖), 화창하고 따뜻함을 화난(和暖), 날씨가 화창하고 따뜻함을 융난(融暖), 부드럽고 따뜻함을 연난(軟暖), 가볍고 따뜻함을 경난(輕暖), 옷을 따뜻이 입고 음식을 배부르게 먹는다는 뜻으로 의식 걱정이 없는 편한 생활을 난의포식(暖衣飽食), 자주 드나들어 방이 따뜻할 겨를이 없다는 뜻으로 자리나 주소를 자주 옮기거나 매우 바쁘게 돌아다님을 석불가난(席不暇暖), 물이 차가운지 따뜻한지는 그 물을 마신 자만이 안다는 뜻으로 자기 일은 남이 말하기 전에 자기 스스로 안다는 냉난자지(冷暖自知) 등에 쓰인다.
▶️ 衣(옷 의)는 ❶상형문자로 衤(의)는 동자(同字)이다. 옷을 입고 깃을 여민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옛날 상반신(上半身)에 입는 것을 衣(의), 하반신(下半身)에 입는 것을 裳(상), 옷 전체를 의상(衣裳)이라 하였다. ❷상형문자로 衣자는 '옷'이나 '입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衣자는 '윗옷'을 그린 것으로 갑골문에서는 옷깃과 양쪽 소매, 그리고 밑자락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衣자의 본래 의미 역시 '윗옷'이었다. 고대에는 상의는 衣로 하의는 裳(치마 상)으로 구분했다. 상의와 하의를 합친 '옷'을 의상(衣裳)이라고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衣자는 이를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부수로 쓰일 때는 단순히 '옷'과 관련된 의미만을 전달한다. 주의해야 할 것은 衣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衤자로 바뀌기 때문에 示=礻(보일 시)자의 부수자와 혼동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衣(의)는 책의(冊衣)의 뜻으로 ①옷 ②웃옷 ③깃털, 우모(羽毛) ④옷자락 ⑤살갗, 표피(表皮) ⑥싸는 것, 덮는 것 ⑦이끼 ⑧옷을 입다, 입히다 ⑨덮다 ⑩행하다, 실천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옷 복(服)이다. 용례로는 옷으로 몸을 싸서 가리거나 보호하기 위하여 피륙 따위로 만들어 입는 물건을 의복(衣服), 의복과 음식을 의식(衣食), 의복으로 모든 옷을 의상(衣裳), 옷 등속의 총칭을 의류(衣類), 옷과 갓으로 정장의 비유로 의관(衣冠), 옷걸이로 옷을 걸어 두도록 만든 물건을 의가(衣架), 옷을 벗음을 탈의(脫衣), 속옷을 내의(內衣), 삼베로 만든 옷을 마의(麻衣), 죽은 사람을 염습할 때에 송장에게 입히는 옷을 수의(壽衣), 저고리로 상체에 입는 옷을 상의(上衣), 옷을 입음을 착의(着衣), 비단 옷을 금의(錦衣), 속옷으로 겉옷의 안쪽에 몸에 직접 닿게 입는 옷을 츤의(襯衣), 도롱이로 짚이나 띠 따위로 엮어 허리나 어깨에 걸쳐 두르는 비옷을 사의(蓑衣), 여행에 쓰는 옷가지를 객의(客衣), 아름다운 무늬가 있는 옷감으로 지은 옷을 문의(文衣), 갑옷으로 예전에 싸움을 할 때 적의 창검이나 화살을 막기 위하여 입던 옷을 갑의(甲衣), 벼슬이 없는 선비를 포의(布衣), 책의 위아래 겉장을 책의(冊衣), 환약의 겉에 입힌 가루를 환의(丸衣), 국경을 지키는 병사를 방의(防衣), 비단옷을 입고 밤길 가기란 뜻으로 출세하고도 고향에 알리지 않음의 비유 또는 아무 보람이 없는 일을 함을 이르는 말을 의금야행(衣錦夜行), 비단옷을 입고 그 위에 안을 대지 않은 홑옷을 또 입는다는 뜻으로 군자가 미덕을 갖추고 있으나 이를 자랑하지 않음을 비유한 말을 의금경의(衣錦褧衣), 비단옷을 입고 고향에 돌아가는 영광이라는 뜻으로 입신 출세하여 고향에 돌아가는 것을 이르는 말을 의금지영(衣錦之榮), 옷걸이와 밥주머니라는 뜻으로 옷을 입고 밥을 먹을 뿐이지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을 의가반낭(衣架飯囊), 애써 법을 정함이 없이 인덕으로 백성을 교화시키고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일컫는 말을 의상지치(衣裳之治), 옷은 헤어지고, 신발은 구멍이 났다는 뜻으로 빈천한 차림을 이르는 말을 의리폐천(衣履弊穿), 비단옷 입고 고향에 돌아온다는 뜻으로 출세하여 고향에 돌아옴을 이르는 말을 금의환향(錦衣還鄕), 비단옷과 흰 쌀밥이라는 뜻으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이르는 말을 금의옥식(錦衣玉食), 옷의 띠와 같은 물이라는 뜻으로 좁은 강 해협 또는 그와 같은 강을 사이에 두고 가까이 접해 있음을 이르는 말을 일의대수(一衣帶水), 옷을 따뜻이 입고 음식을 배부르게 먹는다는 뜻으로 의식 걱정이 없는 편한 생활을 이르는 말을 난의포식(暖衣飽食), 해어진 옷과 부서진 갓이라는 뜻으로 너절하고 구차한 차림새를 이르는 말을 폐의파관(敝衣破冠), 벼슬이 없는 사람으로 군대를 따라 싸움터에 나감을 백의종군(白衣從軍), 몸에 맞게 옷을 고친다는 뜻으로 일의 처한 형편에 따라 적합하게 일을 처리하여야 함을 이르는 말을 양체재의(量體裁衣) 등에 쓰인다.
▶️ 飽(배부를 포)는 ❶형성문자로 饱(포)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밥식변(飠=食; 먹다, 음식)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부풀어 커지다의 뜻을 가지는 包(포)로 이루어졌다. 만족하게 먹다, 만족해 하다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飽자는 '배부르다'나 '속이 꽉 차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飽자는 食(밥 식)자와 包(쌀 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包자는 자궁에 있는 아이를 그린 것으로 '싸다'나 '감싸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래서 飽자는 식사로 배가 부른 상태를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飽자의 갑골문을 보면 包자가 아닌 欠(하품 흠)자가 그려져 있었다. 欠자가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니 이것은 배가 불러 트림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후에 包자가 뜻과 발음을 대신하게 되면서 지금은 飽자가 '배부르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飽(포)는 ①배부르다 ②속이 꽉 차다 ③옹골지다 ④옹골차다 ⑤(내용이)충실하다 ⑥물리다 ⑦가득 차다 ⑧만족하다 ⑨착복(着服)하다 ⑩배불리 ⑪족히 ⑫충분히,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주릴 기(飢)이다. 용례로는 배부르게 먹음을 포식(飽食), 무엇이나 그 용량에 충분히 참을 포만(飽滿), 흡족하게 누림을 포향(飽享), 싫도록 봄을 포간(飽看), 어떤 일을 싫도록 많이 겪음을 포경(飽經), 너무 많이 먹어서 몸이 상함 또는 그리하여서 생긴 병을 포상(飽傷), 썩 많이 들음이나 싫도록 들음을 포문(飽聞), 작은 틈이나 공간에 물이 가득 차 있는 일을 포수(飽水), 배고픔과 배부름을 기포(飢飽), 따뜻하게 입고 배부르게 먹는다는 뜻으로 옷과 밥이 넉넉함을 온포(溫飽), 양껏 먹어서 배가 잔뜩 부른 느낌 또는 충분히 차서 만족스런 느낌을 포만감(飽滿感), 정해진 한도까지 꽉 채워진 분량을 포화량(飽和量), 어떤 정도에 한껏 이르지 아니함을 불포화(不飽和), 배 부르게 먹고 따뜻하게 옷을 입는다는 뜻으로 의식이 넉넉하여 불편함이 없이 편하게 지냄을 이르는 말을 포식난의(飽食暖衣), 더할 수 없는 양에 이른 상태나 더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를 이르는 말을 포화상태(飽和狀態), 배 부를 때에는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그 맛을 모름을 이르는 말을 포어팽재(飽飫烹宰), 고기가 아니면 배가 부르지 않다는 뜻으로 나이가 든 노인의 쇠약해진 몸의 상태를 이르는 말을 비육불포(非肉不飽), 굶주리게 되면 오고 배가 부르게 되면 떠나 간다는 말을 기래포거(飢來飽去), 돌담이 배가 나오면 곧 무너진다는 뜻으로 아무짝에도 쓸모 없거나 해로운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석장포복(石墻飽腹), 옷을 따뜻이 입고 음식을 배부르게 먹는다는 뜻으로 의식 걱정이 없는 편한 생활을 이르는 말을 난의포식(暖衣飽食), 가난하여 술찌끼와 쌀겨조차 배부르게 먹을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조강불포(糟糠不飽) 등에 쓰인다.
▶️ 食(밥 식/먹을 식, 먹이 사, 사람 이름 이)은 ❶회의문자로 饣(식)은 동자(同字)이다. 사람(人)이 살아가기 위해 좋아하며(良) 즐겨먹는 음식물로 밥을 뜻한다. 사람에게 먹이는 것, 먹을 것, 먹게 하다는 飼(사)였는데 그 뜻에도 食(식)을 썼다. 부수로서는 그 글자가 음식물 먹는데 관계가 있음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食자는 ‘밥’이나 ‘음식’, ‘먹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食자는 음식을 담는 식기를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食자를 보면 음식을 담는 식기와 뚜껑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食자는 이렇게 음식을 담는 그릇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밥’이나 ‘음식’, ‘먹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食자가 부수로 쓰일 때도 대부분이 ‘음식’이나 먹는 동작과 관련된 뜻을 전달하게 된다. 참고로 食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모양이 바뀌어 飠자나 饣자로 표기된다. 그래서 食(식)은 ①밥 ②음식 ③제사 ④벌이 ⑤생활 ⑥생계 ⑦먹다 ⑧먹이다 ⑨현혹케하다 ⑩지우다 그리고 ⓐ먹이, 밥(사) ⓑ기르다(사) ⓒ먹이다(사) ⓓ양육하다(사) ⓔ사람의 이름(이)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음식을 청해 먹은 값으로 치르는 돈을 식대(食代), 부엌에서 쓰는 칼을 식도(食刀), 여러 가지 음식을 먹는 일을 식사(食事), 한 집안에서 같이 살면서 끼니를 함께 먹는 사람을 식구(食口), 음식점이나 식당에서 먹을 음식과 바꾸는 표를 식권(食券), 밥을 먹기 전을 식전(食前), 식사를 마친 뒤를 식후(食後), 음식을 담아 먹는 그릇을 식기(食器), 음식만을 먹는 방 또는 간단한 음식을 파는 집을 식당(食堂), 뜻밖에 놀라 겁을 먹음을 식겁(食怯), 음식에 대하여 싫어하고 좋아하는 성미를 식성(食性), 음식(飮食)을 만드는 재료를 식료(食料), 남의 집에 고용되어 부엌일을 맡아 하는 여자를 식모(食母), 음식(飮食)을 먹고 싶어하는 욕심을 식욕(食慾), 한번 입 밖으로 냈던 말을 다시 입속에 넣는다는 뜻으로 앞서 한 말을 번복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을 식언(食言), 각종 식품을 파는 가게를 식품점(食品店), 음식을 먹은 뒤에 몸이 느른하고 정신이 피곤하며 자꾸 졸음이 오는 증세를 식곤증(食困症), 식량이 떨어져 기운이 다함을 식갈역진(食竭力盡), 식객이 삼천 명이라는 뜻으로 함께 하는 사람이 대단히 많음을 식객삼천(食客三千), 나라의 녹을 받아먹음을 식국지록(食國之祿), 근심 걱정 따위로 음식 맛이 없음을 식불감미(食不甘味), 음식을 잘 차려 먹지 아니함을 식불이미(食不二味),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는 뜻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데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식이위천(食以爲天)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