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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병상련(同病相憐)
퍽! 어머낫!! 꽈광!!!
불과 수초 사이에 저런 단발음들이 들리고는 갑자기 암흑천지가 되었다. 무슨 일인지 놀라 경황없이 진료실 밖으로 나가는 순간 퍼버버벅 하는 불발탄 소리와 함께 꽝! 하는 사태의 종료를 알리는 최후의 단말마가 울렸다. 창밖을 내다보니 그 짧은 시간에 수십 명의 사람들과 차량들이 몰려 있어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이라도 되는 듯하였다. 계단을 뛰어 내려가 밖으로 나가보니 왕복 4차선의 교차로 한가운데에 전신주 하나가 발목 부분쯤에서 절단된 채, 아니 결딴 난 채 쓰러져 있고 굵은 전선들이 길바닥에 널브러져 꿈틀대며 하얀 연기가 쉭쉭대며 나오는 것이 대왕문어의 최후를 보는 것 같았다. 집게차가 집게를 내리지 않은 채 가다가 전선줄을 새총 잡아당기듯 당겨 그 지경이 된 것이었다.
몇 대의 경찰차와 여러 명의 경찰들이 도로정리와 교통정리를 하며 사고 조사를 하였다. 자신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너무나 큰 사고를 일으킨 운전자의 넋 나간 초라한 모습에 연민을 느끼며 돌아서려는데, 이런 황당한 일이 있나? 주차장에 세워진 세 대의 차중에 유독 내 차만이 파손을 당한 것이었다. 넘어진 전신주 바로 옆에 세워 둔 차들은 무사하고 전신주와는 10여 미터나 떨어진 곳에 세워 둔 내 차가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넘어지는 전신주에 걸려 있던 두껍고 무거운 고전압 전선줄이 끌려 떨어지면서 내 차-나의 애마, 베라!-의 정수리 곧 천장을 냅다 후려친 것이었다. 황망한 기습에 속절없이 당한 나의 애마 베라는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피를 흘리며 정수리의 커다란 열상을 드러내고 있었으니,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그야말로 뚜껑이 열려 버릴 수밖에 없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재난 영화의 관객이었던 내가 순식간에, 아우성치는 장면 속의 피해자들의 하나 그것도 꽤나 비중 있는 조연이 되어 버렸다. 우리네 인생은 더러는, 혹은 누군가에게는 자주, 그런 법인 것이다. 정전 외에는 눈에 띄는 다른 인명피해나 재산피해가 없는 듯 하여 침착해 하던 경찰들이 최초의 재산피해-차량 파손이라는-가 확인되자 갑자기 서두르며 긴장하는 모습들이었다. 나의 베라 상태를 확인하고는 피해 상황을 작성하고 보고하느라 사고 현장보다도 더 어수선하게 움직였다.
정전 규모가 워낙 커서 늦은 밤이나 되어야 완전 복구가 된다는 한전 담당자의 통보로 그 날 오후의 진료는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한밤중 같이 컴컴한 병원에 있어 봐야 하릴없으므로 직원은 뜻밖의 조기 퇴근이라는 선물을 받아들고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인사를 하곤 다시 붙잡히기라도 할까보아선지 평소보다 훨씬 날랜 걸음으로 나의 시야에서 훼이드 아웃(Fade-out)되었다. 나는 부상 입은 베라에 앉아 경찰과 피해 조사를 하는데 웬지 기분은 내가 피의자 조사를 받는 듯하였다. 사람의 너그러움이란 얼마나 간사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인지 어쩌면 바람 앞의 촛불이 더 오래 버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사고 운전자의 처지를 좋은 마음으로 동정하던 내가 내 이마에 피해자라는 명패가 붙자. 사람이 말야, 조심성이 있어야지. 이게 모야 괜한 사람들한테 피해보게 하고 말야. 하며 아직도 소위 멘붕 상태인 사고 운전자에게 내 차 수리 문제를 들이 밀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까지 덩달아 정신없이 있다 보니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 진짜로 어두운 저녁이 되어 버렸다. 나의 베라를 견인 앰뷸란스에 실어 수술 병원으로 보내고 나니 저만치서 요염한 표정의 쌍꺼풀 눈을 번쩍이며 일주간 나를 태우고 다닐 대리마가 나타났다. 한눈에 봐도 쭉쭉빵빵 스타일의 잘 빠진 녀석이었다. 다소 도도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녀석이 다른 사람들은 좋다 하는데 왠지 나는 썩 호감이 가질 않았다. 그 후 일주간 나는 그 녀석을 많이 거칠게 다루었다. 이 조그만 불운에 대한 화풀이를 얹어서 그렇게 했음을 부인하기는 솔직히 어렵다.
7일 만에 베라는 다소 핼쑥해진 모습과 파리한 얼굴로 퇴원하여 내게로 돌아왔다. 운전석에 앉은 나는 핸들과 베라의 뺨을 쓰다듬어주었는데, 왠지 모를 안타까움과 측은함이 느껴졌다.
사실 베라는 이번 사고 외에도 두 번의 사고도 겪었는데, 지난 번 것은 불과 8개월 여 전의 것으로 이번 사고에서 발목 골절상을 입고 쓰러진 바로 그 전신주 곁에 서 있다가 한전 의 전기 공사 중의 실수로 변압기가 공중폭발하며 떨어지면서 천장의 선루프와 전면 유리창이 박살나는 사고였다. 다시 말해 이번 사고는 “깐 이마 또 까!” 사고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전의 사고는 더욱 대형 사고로서, 2년여 전에 일어난 것이었다. 해외여행에서 돌아 온 날 부족한 잠을 무시하고 나갔다가 귀가하는 중에 평생 처음의 졸음운전,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완전한 수면 운전으로, 바로 집 앞에서 앞서 가던 차 두 대를 한 대는 폐차시키고 한 대는 중환자실로 보내는, 그러고도 내 속도가 줄지 않아 나는 중앙 분리선 보도블록을 타고 넘어 그 위에 심겨진 가로수 세 그루를 완전히 발본색원 다운 시킨 뒤 반대편 차로 인도 앞에 가서야 멈춰진 것이었다. 참으로 다행하게도 사람은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니 하느님께 천 번 감사할 일이었다. 나의 베라는 케익을 베어 먹은 것처럼 운전석 쪽 보닛이 직각으로 싹둑 눌렸고 좌측 바퀴는 터지고 휠은 버드나무 가지처럼 흉하게 휘어지는 중상을 입은 채 최후의 순간 까지 주인을 지키느라 이를 악무느라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한쪽 안구는 파열된 채로 남은 한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그 후 베라는 장기간 입원 및 수술과 안면 성형 수술까지 마친 후에야 돌아 올 수 있었다.
언젠가 뉴스에서, 한국 사람들의 차량 교체 주기가 3년이라며 우리네의 과소비를 질타하는 것을 본 일이 있었다. 그 뉴스를 보며 괜히 딴 짓을 한 것은 내가 바로 그 표준의 샘플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나는 20대 후반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20여 년을 한 회사의 차만을 거의 정확하게 3년을 넘기지 않으며 바꾸어 타오고 있다. 교체 이유는, 3년이 넘으면 중고차 시세가 너무 떨어진다는 것에서부터 차량 안전도가 뒤떨어진다는 것까지 매우 다양했지만 그 모두는 결국 단 하나, 차를 바꾸어야겠다는 욕망의 발로 그 외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베라와의 사고 전에는 무사고 운전자로서 보험도 최대 할인을 누리는 운전자였다. 그러므로 차량 교체 이유엔 사고 차라는 것은 없었을 뿐더러 만약 사고라도 났다면 나는 3년이 아니라 여섯 달 만에라도 틀림없이 새 차로 교체했을 것이었다. 더군다나 베라가 겪은 저런 정도의 큰 사고였다면 어쩌면, 재수 없는 차라고 당장에 소박을 놓았을 것이었다.
지금 현재 나는 베라를 4년째 타고 있다.
이번 ‘깐 이마 또 까’ 사고를 겪으면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발생 가능성이 상당히 낮은 사고를 연거푸 당한 차이니 많은 사람들이 재수 없는 차라고 해도 할 말이 없고 엔진 룸과 바퀴 축까지 손상을 당한 차이니 안전도에도 의문이 있을 수 있어 이번에야말로 차를 바꾸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더구나 그간의 나의 행태와 습성을 보더라도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그런데 난 이번에는 그런 생각을 전혀 하고 있지 않은 내 모습을 보고 혼자 다소 놀라워하였다. 심지어는 이번 사고 후 정수리 성형 수술까지 받고 온 베라에게, 정신 나간 놈처럼 “네가 폐차될 때 까지 너를 버리지 않겠다.”고까지 말해 주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왜 이러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유독 이 차에게 이렇게 애정을 갖는 이유가 무엇일까? 기존의 다른 차들에 비해 베라는 많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베라와 함께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녔으며 숱한 고속도로와 시골 길들에서도 다른 차들에 비해 나와 가족들을 훨씬 든든하게 지켜 주는 늠름한 준마였다. 장거리 여행에서도 언제나 편안하고 아늑하게 나를 태우고 달렸던 충직한 말이었다. 저 남쪽 끝 땅 여수와 통영과 거제와 부산에서 이른 새벽 여명조차 어스름한 고속도로에 들어 설 때면, 난 베라에게 물었다. 준비됐나? 그러면 우리 집 강아지 럭키가 산책 나가자는 말을 알아듣고 겅중겅중 뛰며 좋아서 컹컹 짖어대는 모습과 베라가 앞발을 높이 들고 갈기를 휘날리며 히히힝 네 준비됐어요, 어서요 하는 모습이 오버랩 되며 채찍 대신 악쎌을 꾸욱 눌러 주곤 하였다. 훤하게 밝아 오는 새벽 고속도로에 오고 가는 차들도 없는 임시 아우토반에서 나는 터질 듯이 쿵쾅거리는 베라의 심장을 온 몸으로 느끼며 시트에 깊숙이 앉은 채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가끔은 베라에게 묻곤 하였다. 이렇게 달리니까 좋으냐? 그러면 세차게 맞부딛는 바람 때문에 말은 못하고 대신 고개를 살짝 뒤로 돌며 윙크를 하는 베라를 바라보며 난 그의 목덜미 대신에 핸들을 부드럽게 쓸어 주곤 하였다.
3년 전에는 딸과 둘이서 제주도 여행을 했는데 목포에서 페리에 베라까지 태우고 제주에 갔었다. 며칠간 제주를 구석구석 누비며 행복한 여행을 마치고 다시 배에 올라 아름답던 밤바다를 거쳐 목포항에 도착하였다. 페리호에는 수십 대의 차량들이 출렁이는 파도에 흔들려 미끄러지거나 다른 차량과 부딪히는 사고를 막기 위해 앞뒤 바퀴에 쐐기를 채우고 체인을 감아 놓은 것이, 절도 있는 군인들의 사열대형 같기도 하고 감옥에 수감된 이들의 모습 같기도 하였다. 차를 입고할 때의 반대 순서로 한 대씩 배에서 빠져 나가느라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차량 적재실은 배의 아래층에 있고 조명 시설도 없어 해가 지자 매우 컴컴해 시동을 건 차들의 전조등과 승무원들의 후레쉬만이 주위를 밝혀주었다. 오랜 시간 뒤에 베라의 차례쯤 되었을 때 갑자기 간수가 아니 승무원이 베라에 오르려는 나를 저지하며 말하였다. “이 차 몰고 나가시면 안됩니다.” “내가 이 차 주인인데 왜 안된다는 겁니까?” 나는 뜨악한 표정으로 약간 흥분된 톤으로 말하였다. “여길 보십시오.”하며 후레쉬로 베라의 운전석 쪽 바퀴를 비추어 주었다. 허어! 바퀴에 언제 펑크가 났는지 완전히 바람이 빠진 채 풀썩 주저 앉은 것이었다. 배에서 나가는 길이 요철이 심한 구조라서 그냥 주행하면 휠이 완전히 부서진다며 그럼 자칫하면 차를 완전히 망가뜨리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으니, 기술자가 배안으로 와서 타이어 교체 후에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낭패라니! 응급 차량 수리 센터에 전화하여 상황을 알리니 수리 센터에서도 항구를 통과하여 정박된 배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에 당황해 하며 머뭇거리는 것이었다. 간신히 요청 아닌 부탁을 들어주는 형국으로 기다리라는 답을 듣고 나니 컴컴한 배 안에는 그 많던 차들도 사람들도 하나도 없고 나와 딸과 그리고 베라만 남아 있었다. 쌀쌀해진 밤 기운에 딸은 차 안에 남겨두고 싶었지만 조명 하나 없는 배의 지하 모습은 괴기한 괴물 같고, 조폭 영화에서 무자비한 폭력이 가해지던 바로 그런 곳과 비슷해서 그럴 수도 없었다. 오는 정비사를 맞기 위해 우린 베라만 남겨 두고 배에서 나와 항구 입구에서 기다려야 했다. 해피 엔딩일 줄 알았던 영화가 삼천포로 빠지며 어이 없이 흐지부지된다면 꼭 이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초조하게 기다리는 동안 선원들과 항구 직원 대부분도 사라져 버리고 칠흑같이 깜깜한 항구에는 덩치가 산(山)만한, 아가리를 한껏 벌려 자기 뒤의 밤바다보다도 더 시커먼 속을 보이는 쇠 덩어리 괴물만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자기 배 속에 있는 베라를 상기시키며 여차하면 너희도 잡아 먹겠다 하며 을러대는 것 같았다. 나는 처량함에 화룡점정을 하기 위해 길 한가운데에 쪼그려 앉아버렸다. 그 때 저 멀리서 조그만 눈깔사탕 같은 노란 불 두 개가 보이며 우리에게 다가오는데 군대 간 아들의 첫 휴가 상봉도 이보다 더 반갑진 못했을 것이다. 불행이란 녀석은 해일처럼 순식간에 우리를 덮치지만 물러날 때는 썰물과 밀물을 반복하며 한껏 희롱을 하는 법이다. 한밤중에 만난 구세주가 다 찌그러진 용달차에서 내리는 순간 그의 입에서 인사말보다 먼저 나온 술 냄새는 앞으로 있을 또 다른 불행을 예고하는 것이었음을 그 때는 알 까닭이 없었다. “차는요?” 하고 묻는 그에게 난 입 대신 손가락으로 괴물의 벌어진 아가리 쪽을 가리켰다. 우리는 차를 타고 괴물 안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멀쩡한 타이어의 차를 타고 배로 들어가는데도 심한 요동을 느낄 만큼 요철이 심하여 왜 펑크 난 차로 움직여서는 안 되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멀리서 우리를 알아 본 베라가 반가움의 꼬리를 흔들었다. 정비사는 보기와는 달리 익숙한 태도로 차에서 이것저것 공구를 챙기더니 베라 상태를 확인하며 말하였다. “완전히 죽었네.” 나는 그 말을 듣고 하마터면 “다시 살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을 뻔 했다. 불이 없는 관계로 자기 차를 방향을 바꿔 전조등으로 불을 비춘 채 타이어를 빼기 시작하였다. 술 때문인지 나온 배 때문인지 어둠 때문인지 그는 보통 이상으로 헉헉 거리며 작업을 하는데, 껌껌한 배 지하에, 찌그러진 용달차와 찌부러진 차와, 피곤과 걱정에 찌든 예쁜 소녀와, 차 앞에 구부린 채 끙끙대는 사람과 그 뒤에 간이 조명을 엉거주춤 밝혀주며 서 있는 사람 하나 라는 이 그림이 갑자기 너무나 희극적이어서 난 킥킥 웃어대었다. 사실 비극은 희극의 뒤통수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어렵사리 타이어를 빼내자 난 속으로 말하였다. “이제 됐다. 이제 집으로 가는 길만 남았구나. 어쿠야! 벌써12시가 다 돼가네. 목포에서 일산까지 400여키로 밤 고속도로니 속도 내면 3시간이면 집에 도착하겠다.” 그런 생각을 하는 데 그가 스페어 타이어를 꺼내는 순간 거센 밀물이 들이쳤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하였다. 내차는 광폭 타이어인데 그가 예비 타이어라며 내 차에서 꺼낸 것은 리어카 타이어였던 것이다. 나는 순간 내게 차를 판 사람한테 사기를 당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는 전혀 당황하는 기색 없이 그 얇아빠진 리어카 타이어를 끼우려 하는 것이었다. “아니, 잠깐만요. 근데 타이어가 왜 그래요? 그눔들이 차량 출고하며 스페어 타이어도 점검 안했나보네?” 날카로움이 섞인 내 목소리를 듣고서는 그가 힐끔 쳐다보며 말하였다. “아~,요새 나오는 차들은 스페어 타이어를 제 짝대로 넣어두지 않아요. 그야말로 임시로 쓸 예비 타이어인 셈이죠” 그가 다 됐다며 허리를 펴며 물었다. “집이 어디세요?” “일산이요.” 그는 아주 잠깐 쉼표를 주더니, 한껏 격려하는 음성으로 말하였다. “ 이 타이어는 시속 80키로 이상으로 달리면 파열됩니다. 조심해서 천천히 가세요. 끅.” 그의 안하무인의 트림을 들을 때 나에게선 그에 질세라도 하듯 헛!하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난 그날 밤 내내 영화 스피드의 장면처럼, 평소엔 거의 쳐다보지 않던 속도 계기판을 몇 초에 한 번씩 확인하며 인내력 테스트 속에 6시간여의 밤샘 운전을 하였다. 차도 별로 없는 밤 고속도로에서 시속 80Km로 조선 시대 새색시처럼 얌전하고 다소곳하게 주행하려니 옆으로 쌔에앵 하는 휘파람을 날리며 추월해대는 차들이 얄밉기도 부럽기도 하였다. 안 그래도 답답하고 짜증나는 때에 빨리 달리자며 툴툴 심술을 부려대는 베라 녀석이 괘씸하기까지 해서 네 녀석이 조심성 없이 어디선가 큰 똥을 밟아 이 지경이 된 것이 아니냐며 목덜미를 때려주기도 하였다. 그렇게... 마침내 훤하게 동이 튼 아침녘에야 집에 돌아 올 수 있었다. 우이쒸.
분명히 이런 몇몇의 특별한 사건과 추억들이 베라를 기존의 차들과 다른 감정을 갖게 하는 데 작용하기는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뭔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시원하게 가시지 않았다. 몇 번의 사고들과 장거리 운행들과 나의 난폭한, 아니 정정 해야겠다, 나의 다소 터프한 운전 습성으로 인해 차량 연식에 비해 일찍 성능이 떨어지고 있는 베라. 엔진 소리도 거칠어졌고 여기저기 잔 고장들이 마치 아기들이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칭얼대는 것인 양 나의 관심과 애정을 요구하는 것 같다. 심하게 말해 약간씩 퇴물에 가까워지는 미물에게 취하는 나의 태도와 언젠간 고철 덩어리로 전락하고야 말 사물에게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 정체가 사뭇 모호한 것이었다.
나는 이제 불혹(不惑)을 까마득한 전(前)에 지나고 이순(耳順)을 조~만큼에 바라보는 세월에 살고 있다. 커다란 축복을 한껏 받아 건강한 몸과 지성으로 이 험하고 위험한 인생 항로에서 이 한 몸 용케 잘 건사해왔다. 그러나 바위를 뚫고 산을 깎으며 지평을 들어 올리는 시간 앞에서, 내게서도 가차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건강과 지성과 외모의 평준화를 바라보며 다소는 당황스럽고 더러는 두려움을 느낀다. 백발의 머리야 차라리 간단한 것이어서 한두달에 한번 염색으로 그만이다. 가늘어지고 성글어진 머리는, 임금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뒤로 물러나는 신하처럼 그만큼 뒤로 밀려나 있고 정수리께는 허전함이 느껴진다. 체력의 저하야 오히려 전혀 문제로 생각되지 않지만 정교하고 정밀한 신체 작업에서 움직임이 둔해지고 실수가 자주 생기는 것은 참으로 속상하고 슬프다. 대화에서 언어가 꼬이거나 어휘력이 감소하는 현상은 다른 이들의 사례를 통해 충분히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준다. 이름과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나의 삶이 심플해지고 있다는 긍정적인 증거라고 자신에게 세뇌를 시키는 것으로 해결하고 있지만, 잡은 물건들을 의도치 않게 떨어뜨린 다던가 방심 여부와 관계없이 몸이나 팔이나 다리를 부딛친다던가 운전 시 사각 지대가 넓어진다던가 하는 것은 억지웃음을 지어야 할 만큼 당황스럽다. 안경도 이제는 항상 두 개를 준비하는데 고등학생 시절부터 썼던 근시 안경과 수년 전부터 쓰기 시작한 다초점 안경이 그것인데 점차 다초점 안경만을 사용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아직은 나만 알고 있다. 이렇게 나열하다보니 내가 마치 초로(初老)의 지경에까지 다다른 사람이라는 오해를 주는 것 같아 심란해진다. 세상 무슨 일에나 그렇듯이 ‘노인‘의 기준과 정의는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고 또 그것들이 다르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현재의 나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을 주장한다. 우리가 ’어르신‘의 경지에 이르고 그에 걸맞는 대접을 받으려면 생물학적으로 할아버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친구들 중에 이미 할아버지가 된 이들은 큰 자녀가 모두 딸인 경우들이다. 작금의 세태는 익히 뉴스에서도 보아 왔듯이 만혼(晩婚)이 주류이고 특히나 남자들 경우 어려운 경제 사정과 맞물려, 군대 복무로 인해 기본적으로 3년여의 시간이 더 늦어지는 현실이다. 음, 나의 큰 아이는 아주 멋지고 잘 생긴 아들이다. 너무 잘 생긴 것이 다소 걱정스럽기는 하다.
거스를 수 없고 돌이키지도 못하고 피할 방도마저 없다 하여 그냥 두 손 놓은 채, 왼 뺨 오른 뺨 치는 대로 돌려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좋다는 샴푸와 화장품도 사용하고 어느 때보다도 운동을 스케줄의 최상위에 두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나마 참으로 다행인 것은 골초였던 내가 담배를 끊은 것이다. 덩달아 술도 끊었으니 조각 미남 아들에게 큰 변수만 생기지 않는다면 내가 할아버지가 되는 데에는 앞으로도 족히 10여년은 필요할 터이고 그 때까지는 ‘30미터 40대(代)’는 유지가 가능하리라 내심 계산하고 있다. 음식도 주체하지 못하던 식탐을 달래며 과식을 피하려 하고 몸에 나쁘다는 것은 가능한 피하려 애쓰고 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이런 ‘발악’이 사실은, 내게 일어나는 변화들을 인정하고 순순히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데에 기인하는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조금씩 약해져가고 조금씩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나의 생(生)이 바로 나 그 자체임을 빠르게 깨달아가며, 젊었을 때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인생의 진리, 그 슬픈 얼굴을 바야흐로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생의 선배들이 거쳐 간 누구에게나 공평한 이 길이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전혀 겪어 보지 못했던 초유(初有)의 사건인 것이 또한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과연 “참으로 오래 된, 그러나 너무나 새로운” 여행인 것이다. 아마 어쩌면 특별한 노력이나 기술 없이도, 또는 원하거나 원하지 않아도 그리고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와 상관없이 언젠가 이 여행을 마치게 될 것이다. 아직은 여행의 초반부를 걷고 있는 내게 이 여행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필요한 것이 있기나 한 것인지조차 모른다. 그러나 외롭고 고통스럽고 힘 드는 이 여행을 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실상 가장 필요한 것은 저따위 발악이 아니라 진심 어린 격려와 군고구마같이 따스한 위로와, 함께 있어줌의 포근한 포옹이 아닐까? 모든 약해져 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憐憫)이 아닐까? 스러져 가는 것들에게 그저 짠한 마음을 품어주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보니 비로소 수수께끼가 베일을 찬찬히 벗는다. 나는 나의 애마 베라에게 약해져 가고 보잘 것 없어져 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투사(投射)하였던 것이다. 사람이나 동물도 아닌 쇠 덩어리에게 투사를 하고 감정이입(感情移入)을 했다는 사실이 어처구니없기는 하지만 , 그만큼 자신의 그런 모습을 대면하기가 어려웠던 것인가 하는 안쓰러움이 마음을 아리게 한다.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 걱정하지 마. 지금껏 정말 잘해왔어. 고맙다. 그러면서 그렇게 스러져가는 나를 안타깝고 애잔한 마음으로 보듬고 쓰다듬어 주고 꼬옥 안아주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베라를 통해 스스로에게, 저 진심 어린 격려와 군고구마같이 따스한 위로와 함께 한다는 포근한 포옹을 해주었던 것이다. 베라를 통해 나 자신에게 어느 누구보다도 더 진심어린 연민과 짠한 마음을 쏟아 부어 주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부모도 동기도 피붙이도 벗들도 줄 수 없는 최상의 완벽한 위로와 격려와 응원을 누린 것 이었다.
다음엔 베라와 단 둘이서만 여행을 다녀와야겠다. 그래서 일출의 여명이 눈부신 아름다운 어느 날 새벽에 고속도로에 오르며 베라에게 물어 봐야겠다.
“준비됐냐?”
히히힝, 투두둑, 히히힝.
“이렇게 빨리 달리니까 여전히 좋으냐?”
... ...
“조금 숨차 하는 것 같은데 속도 좀 줄이랴?”
히.히.힝
“아직은 견딜만 하다고? 알았다.”
“근데 너 이런 말 아냐?”
히히힝?
“동병상련(同病相憐)!”
히히힝??
“그래 괜찮다. 몰라도 괜찮다. 괜찮다...”
나는 그 날 아마도 액셀러레이터를 오랫동안 밟고 있을 것이다.
나지막이 되내이며.
同病相憐 . . .
(2014.3.5. 재의 수요일)
본 작품은 "국제문예" 2014년5월호 실린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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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숨은 작가가 여기 계셨군요~!
동변상련. .
애마와의 관계 참 멋집니다.
인생의 동반자.
잘 읽었습니다..
글 맛갈나게 잘 쓰시네요.
식사동 교우가 가꾸어 가는
식사동 성당 카페..
종종 좋은 글 부탁 드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같은 나이대로서 아주 공감이 갑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글을 맛깔스럽게 이어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