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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선생님 영원한 지침〉
2025년 2월 11일
오늘 2월 11일은 제2대 회장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선생님의 탄생 기념일. 올해는 125주년의 마디가 된다. 여기에서는 이케다(池田) 선생님이 도다(戶田) 선생님의 탄생 110주년 때에 엮은 「수필(隨筆) 우리의 승리(勝利)의 대도(大道)」 ‘나의 은사(恩師)·도다 선생님’<「세이쿄신문(聖敎新聞)」 2010년 2월 11일자, 12일자>와 함께, ‘2·11’에 관한 광포사(廣布史)를 게재한다.
2·11 ‘도다 조세이 선생님의 탄생일’
「수필(隨筆) 우리의 승리(勝利)의 대도(大道)」
‘나의 은사(恩師)·도다(戶田) 선생님’에서
스승에 대한 보은을 관철하는 속에 무상의 영광
민중의 행복을 위해 진력하는 인생을
1900년(明治32年) 2월 11일은 인류(人類)의 평화(平和)와 행복(幸福)을 위해 새로운 정신(精神)의 대광(大光)을 보낸 우리의 스승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선생님의 탄생일이다.
숙연심후(宿緣深厚: 숙연이 깊고 두터운)한 직제자(直弟子)인 나와 아내에게 있어서는 한해 중 가장 기쁜 날이다. 이날을 맞이할 때마다 내 가슴에는 스승과 함께 싸웠던 하루하루가 황금(黃金)의 영상(映像)이 되어 되살아난다.
어느 날, 도다 선생님께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내가 마키구치(牧口) 선생님에 관한 일을 말씀드리면 멈추는 일이 없습니다.”〈『도다 조세이 전집(戶田城聖全集)』 3〉
나도 마찬가지다. 은사에 관한 것은 몇 시간, 아니, 며칠 걸려도, 도저히 다 말할 수 없다.
희유(稀有)의 스승인 도다 선생님의 모습을 통해서 ‘광선유포(廣宣流布)의 지도자(指導者)’가 가져야 할 모습을, 재차 확인해 두고 싶다.
첫째, 도다(戶田) 선생님께서는 선사(先師) 마키구치(牧口) 선생님께 ‘보은(報恩)의 정성(誠)’을 다한 불세출(不世出)의 제자(弟子)이셨다.
‘성(誠)’ 자(字)를 분해(分解)해 보면 ‘말(言)을 이룬다(成)’가 된다. 사전(辭典)에는 ‘참된 길을 실행(實行)한다’ 등이 있으며, 실행은 성실(誠實)의 요건(要件)이다.
스승의 구상(構想)을 그리고 제자로서의 서원(誓願)을, 조금도 틀림없이(다름없이) 달성(達成)한다. 바로 선생님의 생애(生涯)는 ‘성(誠[마코토])’ 그 자체셨다.
전시(戰時) 중, 2년의 투옥(投獄)의 탄압(彈壓)을 이겨낸(승리로 넘은) 선생님께서는 지인에게 이렇게 쓰셨다.
“은사(恩師) 마키구치(牧口) 선생님을 섬기고 따라, 법화경(法華經)의 난(難)에 이어 독방(獨房)에서 수행(修行)한 것,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고생을 겪었습니다. 덕분에 몸(身)으로 ‘법화경(法華經)을 읽는다’는 경애(境涯)를 체험(體驗)하여 불전(佛典)의 심오(深奧: 깊은 곳)을 탐지해(찾아내어) 마침내 부처를 보고 법(法)을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고뇌하는 민중(民衆)을 구하고, 세계(世界)를 평화(平和)로 리드해 가는 니치렌불법(日蓮佛法)의 ‘입정안국(立正安國)’의 오의(奧義)를, 그 흉중(胸中)에 깊게 회득(會得)하고 계셨던 것이다.
도다 선생님께서는 어느 때, 숙연(肅然, 엄숙)하게 말씀하셨다.
“나는 마키구치(牧口)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했다. 사제(師弟)의 길(道)이란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또 어느 때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대절복(大折伏)을 해, 마키구치(牧口) 선생님의 원수(仇)를 갚아(쓰러트려, 베)가는 것입니다.”라고.
패전(敗戰) 후, 괴멸(壞滅) 상태에 있었던 학회(學會)의 재건(再建)을 위해, 도다(戶田) 선생님께서는 오직 홀로, 무엇을 가지고 일어서셨는가. 그것은 ‘꾸준한 개인지도(個人指導)’ ‘쾌활(快活)한 좌담회(座談會)’ ‘준엄(峻嚴)한 교학(敎學)’ 그리고 ‘자비(慈悲)와 정의(正義)의 절복(折伏)’이었다.
모두 ‘창가(創價)의 원점(原點)’으로 되돌아가, 마키구치(牧口) 초대 회장님께서 생전, 가장 소중히 하셨던 솔선(率先)의 ‘행동(行動)’으로 치고 나아가신 것이다.
민중(民衆)이야말로 위대(偉大)하다!
이는 묘법(妙法)의 암굴왕(巖窟王) 도다 선생님의 신념(信念)이었다. 이 ‘민중(民衆)’ 근본(根本)이라는 정신이야말로, 우리가 스승으로부터 영원히 배우고 계승(繼承)해야 할 두 번째 점(點)이다.
선생님의 생애는 항상 서민(庶民)과 함께 있었고 최전선(最前線)의 벗의 땀과 눈물과 함께 있었다.
“가장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가는 것이다. 이런 분들의 편(아군)이 되어 묘법(妙法)을 가르치고 끝까지 구원(救援)해 가는 것이 학회(學會)의 사명(使命)이 아닌가.”라고.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신심(信心)은 한 사람 몫, 일은 세 사람 몫”이라는 격려가 얼마나 깊이 울렸던 것인가.
“사관(仕官)을 법화경(法華經)이라고 생각하시라.”(어서전집1295·신판1719)라는 어성훈(御聖訓)을 근거로 한 주옥(珠玉)같은 구체적인 지침(指針)이었다. 고생을 모르고 유희잡담(遊戱雜談)하는 방주(坊主, 중) 등은 절대(絶對)로 할 수 없는 지도(指導)였다.
아침저녁으로,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소리에 성실하게 귀를 기울이셨다. 그 사람의 본질(本質)을 꿰뚫어 보시고 그 사람의 본질을 높이고 빛나게 해주신 선생님이셨다. ‘숙명전환(宿命轉換)’ ‘인간혁명(人間革命)’의 대불법(大佛法)에 의거하여 절대승리(絶對勝利)를 향한 용기(勇氣)와 희망(希望)을 선사하셨던 것이다.
민중(民衆)의 대지(大地)를 떠나 학회(學會)는 없다. 현실의 온갖 고뇌와 싸우는 민중 외에, 학회는 없다. 아니, 학회가 민중 그 자체다. 그러므로 학회의 승리가 민중의 승리에 통한다.
니치렌 대성인(日蓮大聖人)께서는 「제법실상초(諸法實相抄)」에 “범부(凡夫)는 체(體)의 삼신(三身)으로서 본불(本佛)인 것이며 부처는 용(用)의 삼신(三身)으로서 적불(迹佛)이니라.”(어서전집1358·신판1789)라고 나타내셨다. 진실한 부처는 범부(중생)라는 대지를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민중 위에 군림(君臨)하는 것이 아니다. 부처는 영원히 민중 속에 있고, 영원히 민중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도다 선생님께서는 ‘살아있는 부처(생불)’라든가 ‘교조(敎祖)’라고 불리는 것을, 가장 싫어하셨다. “나는 훌륭한 범부다!”라고 가가대소(呵呵大笑: 소리를 내어 크게 웃음)하셨다.
도다 선생님께서는 학생부(學生部)에게 하신 법화경강의(法華經講義)에서 말씀하셨다.
“대성인(大聖人)의 불법(佛法)은 중생(衆生)이 있기에 부처가 있다는 근본적(根本的)인 입장(立場)을 취한다. 이 생각으로 세상의 사상(事象: 사건이나 사실의 현상)을 고찰(考察)하자면, 학생(學生)이 있기에 교사(敎師)가 있는 것이다. 존귀한 학회원(學會員)이 있기 때문에 간부(幹部)가 있는 것이다.
자신은 간부다, 유명인이다 라며 으스대는(거만하게 구는) 인간은 반드시 이상해진다. 절대로 으스대서도 안 되고 거만해져서도 안 된다.”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지도(指導)다.
“학회는 영원히 민중의 편에 선다”란 도다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신 근본정신이다.
셋째, 도다 선생님께서는 누구보다도 청년을 사랑하고 청년의 육성에 마음을 쓰신 명교사이셨다.
선생님의 사업(事業)을 지탱하고 선생님을 지키기 위해 나는 학업을 단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일대일로 만반(萬般: 빠짐없이 전부)의 학문(學問)을 가르쳐 주셨다. 이것이, 영예도 드높은 ‘도다대학(戶田大學)’이다. 올해는 ‘도다대학’이 스타트한 지 60주년이다.
선생님께서는 엄하셨다. 응석 등은 허용(許容)되지 않았다.
텍스트(교재)를 열고 공부하는 것만이 강의(講義)는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사제(師弟)가 마주하면 “지금 무슨 책을 읽고 있는가.” “그 내용을 말해보게!” - 철(鐵)을 보검(寶劍)으로 충분히 단련하는 준엄함이었다.
내가 세계의 대학·학술기관으로부터 배수(拜受: 삼가 받음)한 지성(知性)의 보관(寶冠)도, 모두, 이 ‘도다대학’에서의 훈도(薰陶) 덕택(德澤, 덕분)이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하나의 수장(受章: 훈장·포장 따위를 받음)의 의식(儀式)에서 은사와 함께 참석(參席)하여 은사에게 바치는 마음으로 받아왔다.
나는, ‘도다대학’이 시작된 해(年)의 일기에 적었다.
“청년은 소심(小心)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이것으로 좋다고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1950년 5월 22일, 『젊은 날의 일기』, 『이케다 다이사쿠 전집(池田大作全集)』 제36권 수록〉
청년은 배우려는 자세(姿勢) 그 자체가 자신의 성장(成長)과 승리를 향한 양식이 된다.
어서(御書)에는 “얕은 것을 버리고 깊은 것을 따름은 장부(丈夫)의 마음이니라.”(어서전집509·신판612)라고 씌어 있다.
우리(내) 후계(後繼)의 청년이여! 그대(君)들의 성장(成長)이 창가(創價)의 승리(勝利)가 된다. 그대들의 행동(行動)이 세계의 희망(希望)을 여는 것이다.
제2대 회장 도다 선생님께서 가장 소중히 하신 ‘사제(師弟)’ ‘민중(民衆)’ ‘청년(靑年)’.
“사제(師弟)를 관철(貫徹)하라!”
“민중(民衆)을 공경(敬)하라!”
“청년(靑年)을 키워라(육성하라)!”
여기에 창가완승(創價完勝)의 영원(永遠)한 궤도(軌道)도 있다.
사제(師弟)를 버리고 민중을 우롱(愚弄)하고 청년을 가벼이 여기는 사종문(邪宗門)은 가엾은 쇠퇴(衰退)의 일로(一路)를 걷고 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홀로서는’ 정신이다. 도다 선생님께서는 제2대 회장에 취임하셨을 때 “광선유포(廣宣流布)는 내가 하겠습니다.”라고 서원(誓願)하셨다.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것이 아니다. 결연(決然)히 홀로서는 것이다. ‘자신(나)’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도다 선생님께서는 약 2만 명으로 발전한 남녀 청년부(靑年部)에게 유명한 지도를 해주셨다.
“한 사람, 단 한 사람이 일어서면 된다. 오직 홀로서는 확신(確信)을 갖고 일어서는 곳에, 일체(一切)의 일이 이루어진다(완성된다).”〈『도다 조세이 전집(戶田城聖全集)』 4〉
미국의 사상가(思想家)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은 강하게 질타(叱咤)했다.
“은혜(恩惠)를 입었으면서 자신은(스스로는) 아무런 은혜를 베풀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비열(卑劣)한 것이다.”〈‘보상(報償)’ 이리에 유키오(入江勇起男) 번역(譯), 『에머슨 선집(選集)』 2 수록, 닛폰교분샤(日本教文社)〉
이 철인(哲人)은 “가장 많은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야말로 위대(偉大)한 것이다.”(상동)라고 외쳐 마지않았다.
현재의 나는, 저 약 10년에 걸친 스승 도다 선생님의 훈련(訓練)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서거(逝去)하신 후의 반세기도 또한, “자네는 끝까지 살아라!”라고, 선생님의 수명(壽命)을 내게 주셨다는 생각으로 싸워왔다.
그러므로 나는 스승께서 키워주신 이 생명을 스승의 비원(悲願)이었던 ‘광선유포(廣宣流布)’ - 민중(民衆)의 행복승리(幸福勝利)를 위해 바치는 것이다!
사제불이(師弟不二)의 보은(報恩)의 대도(大道)를 걷는 인생은 최고로 행복하며, 무상(無上)의 영광(榮光)이다.
인간(人間)의
왕자(王者)의 마음은
신심(信心)에
무량무변(無量無邊)한
힘으로 샘솟는다
【광포사(廣布史)】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선생님은 1900년(明治33年) 2월 11일, 현재의 이시카와현(石川県) 카가시(加賀市) 시오야마치(塩屋町)에서 태어났다. 홋카이도(北海道)의 아쓰타(厚田), 유바리(夕張)에서 청운(靑雲)의 뜻(志)을 키워, 상경(上京). 19세에 인생의 스승이 되는 초대 회장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 선생님을 만나, 함께 창가교육학회(創價敎育學會, 현재의 창가학회)를 1930년(昭和5年) 11월 18일에 창립(創立)했다.
군부정부(軍部政府)에 항거(抗拒)하며 신앙(信仰)을 관철(貫徹)한 사제(師弟)는 체포(逮捕)·투옥(投獄)되어, 마키구치(牧口) 선생님은 불석신명(不惜身命)의 신심(信心)으로 끝까지 싸우다 순교(殉敎)했으며, 살아서 뇌옥(牢獄, 감옥)을 나온 도다(戶田) 선생님은 선사(先師)의 유지(遺志)를 이어 학회(學會)의 재건(再建)에 홀로 섰다.
전후(戰後)의 혼란기(混亂期)에 있어서, 도다 선생님은 항상 민중 속으로 뛰어들어, 벗이 안고 있는 고민(苦悶)에 귀를 기울였다. 회합(會合)이나 어서강의(御書講義) 때에는 질문회(質問會)를 가져,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심(信心)에 대한 확신을 일깨웠다.
그러던 중, 인생의 길을 모색(摸索)하고 있던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선생님이 도다 선생님과 만나, “이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다.”라며, 제자(弟子)로서 살아갈 것을 맹세한다. 스승의 훈도(薰陶) 그대로 실천해 은사(恩師)의 원업(願業)인 홍교(弘敎) 75만 세대(世帶)의 길을 열어갔다.
그 ‘초진(初陣)’이야말로, “은사 도다 선생님의 탄생월인 2월을 확대(擴大)의 결과(結果)로 장엄(莊嚴)하게 장식(裝飾)하자.”라며 지휘(指揮)를 잡은 ‘2월 투쟁(鬪爭)’이었다. 당시 24세의 이케다(池田) 선생님은 가마타지부(蒲田支部)의 지부간사(支部幹事)로서 한 달 만에 201세대(世帶)의 홍교확대(弘敎擴大)라는 금자탑(金字塔)을 세웠다. 1개 지부(支部)에서 월 100세대의 홍교가 한계(限界)였던 시대에 벽(壁)을 부수는 비약(飛躍)의 원점(原點)이 되었다.
이케다 선생님은 「수필(隨筆) 인간세기(人間世紀)의 빛(光)」 ‘영원(永遠)한 2월의 투쟁(鬪爭)’에 엮었다.
“사제(師弟)는 불이(不二)다. 제자(弟子)의 승리(勝利)가 스승(師匠)의 승리다. 그러므로 나는 ‘광선유포(廣宣流布)’ 즉 ‘세계평화(世界平和)’의 치열(熾烈)한 싸움에 있어서 항상 최고(最高)의 확대(擴大)와 최고의 승리를 스스로에게 부과(賦課)했다. 제자의 영광(榮光)은 스승에게 돌아가 스승의 위대(偉大)함의 증명(證明)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이 말 그대로 이케다(池田) 선생님은 돌아오는 2월 11일을 제자(弟子)의 행동(行動)과 승리(勝利)로 장식(裝飾)해 왔다.
일본의 광선유포의 견(見)고한 초석(礎)을 구축한(다진) 도다 선생님의 생애(生涯)를 담은 소설 『인간혁명(人間革命)』의 신문(新聞) 연재(連載)가 완결(完決)된 것은 1993년 2월 11일. 이날 이케다 선생님은 리우데자네이루 연방대학교 명예박사(名譽博士) 학위(學位) 수여식(授與式)에 임했다.
은사의 평화철학(平和哲學)을 계승해 가는 ‘도다기념국제평화연구소(戶田記念國際平和硏究所)’를 발족시킨 것도 1996년 2월 11일이었다.
이케다(池田) 선생님은 항상 말했다. “모든 것은 은사(恩師) 도다(戶田) 선생님께 바치는 영관(榮冠)이다.”라고.
제자의 승리로 스승의 정의(正義)를 증명(證明)한다. - 이 서원으로 쌓아온 것이, 지금 192개국·지역으로 넓혀진 창가(創價)의 역사(歷史)다.
[기사 원문] https://www.seikyoonline.com/article/86B5764DDB99F12DD6CFFAF74DE54DFC
[용어해설(用語解說)]
숙연(宿緣)
과거세(過去世)부터의 인연(因緣)·관계(關係)를 말한다.
어서(御書) 속에서는 니치렌 대성인(日蓮大聖人) 혹은 법화경(法華經)과의 과거세(過去世)부터의 깊은 관계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입정안국(立正安國)
‘정(正)을 세워 나라(國)를 평안케 한다’라고 읽는다.
정법(正法)을 확립(確立)하여 국가(사회)의 평화(平和)·번영(繁榮)을 수립하는 것.
▷ 입정안국론(立正安國論)
숙명전환(宿命轉換)
정해져 바꿀 수 없다고 생각되는 운명(運命)일지라도 올바른 불법(佛法)의 실천으로 전환(轉換)할 수 있는 것.
불교(佛敎)에서는 과거세(過去世)의 행위(行爲)가 인(因, 원인)이 되어 현재세(現在世, 현세, 금세)의 결과(結果)로 나타나는 혹은 현재세의 행위가 인이 되어 미래세(未來世)의 과(果)를 가져온다고 본다. 그리고 선인낙과(善因樂果), 악인고과(惡因苦果) 즉 과거세의 선악(善惡)이 인이 되어 현세에 고락(苦樂)의 과보(果報)를 가져온다는 생명경애(生命境涯)의 인과(因果)의 법칙(法則)을 밝힌다.
이는 불교의 역사 속에서 사람들을 위협(威脅)하고 수탈(收奪)하는 논리로 종종 운명결정론(運命決定論)적으로 사용되었지만 본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운명은 절대적인 존재나 초월적인 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에 의해 결정할 수 있다는 자기결정권(自己決定權)을 가르치는 것이며, 자신의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행동에 의해 운명을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이 숙명전환(宿命轉換)의 사상(思想)이다.
그래도 선인낙과·악인고과라는 “통상(通常)의 인과(因果)”(어서 960쪽)의 가르침은 현재의 고통의 원인을 알아도 그것을 금세(今世)에 즉시 변혁할 수 없으며, 미래세에 걸쳐 생사(生死)를 반복하면서 하나하나의 악업(惡業)의 죄를 청산(淸算)해 가는 길 이외에는 없다. 이와 같이 숙업(宿業)의 사고는 종종 희망이 없는 운명결정론에 빠지기 쉽다.
이에 반해 니치렌 대성인(日蓮大聖人)의 불법(佛法)은 법화경(法華經)에 근거하여 만인(萬人)의 내면에 불계(佛界)가 갖추어져 있어, 그것을 여는 것으로 성불(成佛)하여 숙명을 전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만인에게 불계가 있다고 설하는 법화경에 대한 신(信)·불신(不信), 호법(護法)·방법(謗法)에 의한 인과(因果)를 밝히고 법화경을 비방(誹謗)하는 것, 즉 방법이야말로 근본적인 죄업(罪業)이며 모든 악업(惡業)을 낳는 근원적인 악(惡)이라고 한다. 그리고 불신·방법이라는 근본적인 악업의 과보로서 생기는 고뇌(苦惱)의 경애(境涯)를 정법(正法)을 믿고 수지(受持)하고 넓혀가는 호법(護法)의 실천으로서 내면의 불계를 즉시 용현(涌現)시킴으로써 이 일생 동안에 전환해 갈 수 있다고 밝힌다. 그 실천의 핵심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제목(題目)이다.
어서(御書)에는 「보현경(普賢經)」의 문(文, 법화경 724쪽)을 토대로 범부(凡夫) 자신의 생명에 서리(霜)나 이슬(露)처럼 쌓인 죄장(罪障)도 남묘호렌게쿄의 제목(題目)이라는 혜일(慧日, 지혜의 태양)을 만나면 깜짝할 사이에 지워 없앨 수 있다(어서 786쪽), 라고 씌어 있다.
▷ 호법(護法) / 숙업(宿業) / 방법(謗法)
인간혁명(人間革命)
자기 자신의 생명(生命)이나 경애(境涯)를 보다 좋게 변혁(變革)해, 인간으로서 성장(成長)·향상(向上)해 가는 것. 도다(戶田) 선생님이 이념(理念)으로서 나타내었고, 이케다(池田) 선생님이 신앙(信仰)의 지표(指標)로서 전개했다. 인간혁명이란 현재의 자기 자신과 동떨어진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니고 획일적(劃一的)인 인격(人格)을 지향(指向)하는 것도 아니다. 만인(萬人)의 생명에 동등하게 내재(內在)된 지혜(智慧)와 자비(慈悲)와 용기(勇氣)가 넘치는 부처의 생명을 최대로 발휘함으로써 모든 어려움과 고뇌(苦惱)를 타고 넘어가는(헤쳐나가는) 삶의 자세다.
니치렌 대성인(日蓮大聖人)께서는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되느니라.”(어서전집 1253쪽), “대악(大惡)이 일어나면 대선(大善)이 온다.”(어서전집 1300쪽) 등으로 인생에 있어서 직면하는 어떠한 어려움도 적극적으로 맞서서 전진(前進)의 발판으로 삼아 가는 변혁의 생활방식을 설하셨다.
이케다 선생님은 소설 『인간혁명(人間革命)』에서 “한 사람의 위대한 인간혁명은 한 나라의 숙명(宿命)도 전환(轉換)하고 나아가 전 인류의 숙명전환(宿命轉換)까지도 가능케 한다.”라고 밝혔다.
제법실상(諸法實相)
모든 존재·현상의 진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말한다. ‘제법(諸法)’이란 이 현실 세계에서 여러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는 모든 현상(現像)·사물(事物)을 말한다. ‘실상(實相)’은 진실의 모습, 궁극(窮極)의 진리(眞理)를 말한다. 부처가 그 넓고 깊은 지혜로 각지(覺知)한 만물(萬物)의 진실한 모습이 ‘제법실상(諸法實相)’이다. 이 진실을 각지(覺知)하면 제법과 실상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제법은 그대로 실상의 표현이며 실상 또한 결코 제법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제경(諸經)에서의 제법실상】
제법실상은 여러 경전(經典)에서 부처의 깨달음의 진실, 법성(法性) 등의 의미로 사용되어 각각의 경전에서 밝혀지는 궁극의 진리를 가리킨다. 제행무상(諸行無常)·제법무아(諸行無我)·열반적정(涅槃寂靜)의 삼법인(三法印)이 소승(小乘)의 법인(法印, 올바른 가르침이라는 표지)인데 반해, 대승(大乘)에서는 제법실상을 일법인(一法印)으로 한다. 무엇을 제법실상으로 보느냐는 종파(宗派)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삼론종(三論宗)에서는 팔불중도(八不中道), 화엄종(華嚴宗)에서는 사종법계(四種法界), 정토교(淨土敎)에서는 미타(彌陀)의 명호(名號)가 제법실상에 해당한다고 한다.
【법화경(法華經)에서 밝히는 제법실상】
법화경(法華經)에서는 「방편품(方便品)제2」에서 밝히고 있다.(법화경 108쪽) 거기에는 제법실상을 파악(把握)하는 항목으로서 십여시(十如是)가 설해져 있다. 그러므로 십여실상(十如實相)으로 불린다. 이를 통해 부처는 물론 구계(九界)의 중생(衆生)을 모두 포함한 십계(十界) 각계가 본질적으로 평등하다는 것을 나타냈다. 이전경(爾前經)에서는 부처와 구계의 중생(범부) 사이에는 뛰어넘기 어려운 단절이 있다고 생각되었으나 법화경에서는 이 벽이 철거된 셈이다. 즉, 부처와 구계의 중생은 현실에서 각기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생명으로서 그 본질은 똑같으며 결정적인 차별은 없어, 구계의 중생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성불(成佛)이 원리적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방편품 이하 법화경적문(法華經迹門)에서는 제법실상이라는 만인(萬人)의 성불을 가능하게 하는 원리에 따라 구체적으로 이전경에서는 성불이 부정되어 온 이승(二乘)의 성불이 밝혀졌다. 또 악인성불(惡人成佛), 여인성불(女人成佛)도 설해졌다. ▷ 십여시(十如是)
【니치렌불법(日蓮佛法)에서 밝히는 제법실상】
니치렌 대성인(日蓮大聖人)께서는 천태대사 지의(天台大師智顗) 등의 주석(注釋)을 근거로 하시어 ‘제법(諸法)’이란 구체적으로는 십계(十戒)의 중생과 그 환경세계이며, ‘실상(實相)’이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명확하게 밝히셨다. 즉, 「제법실상초(諸法實相抄)」에 “하지옥(下地獄)으로부터 상불계(上佛界)까지의 십계(十界)의 의정(依正)의 당체(當體)가 모두 일법(一法)도 남김없이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상(相)”(어서 1358쪽), “실상(實相)이라고 함은 묘호렌게쿄의 이명(異名)이요, 제법(諸法)이라 함은 묘호렌게쿄를 말하는 것이니라.… 만법(萬法)의 당체의 상(相)이 묘호렌게쿄의 당체라고 하는 것을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고 하느니라.”(어서 1359쪽)라고 씌어 있어, 십계의 중생과 그들이 사는 국토의 모든 것이 묘호렌게쿄 그 자체라는 것이다. 대성인께서는 이 제법실상을 어자신(御自身)의 생명 속에 각지시키시어 만다라어본존(曼陀羅御本尊)으로 도현(圖顯)하셨다.
불석신명(不惜身命)
「법화경권지품(法華經勸持品) 제13」의 문(文). “신명을 아끼지 않고”(법화경 412쪽)라고 읽는다. 불법구도(佛法求道)를 위해 또한 법화경(法華經) 홍통(弘通)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 같은 「권지품」의 “아불애신명(我不愛身命)”(법화경 420쪽) 또한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 제16」의 “부자석신명(不自惜身命)”(법화경 490쪽)과 같은 뜻.
▷ 일심욕견불(一心欲見佛)·부자석신명(不自惜身命)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너무너무 대단하신
세이쿄 탑 들 생명 에
깊이깊이 물들여
사명 하곘습니다.
항상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노고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