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부인(水路夫人) 조의 마지막 구절인 "수로 부인은 자태와 용모가 매우 아름다워 매번 깊은 산이나 큰 호수를 지날 때마다 여러 번 신령스러운 물건(神物)에게 잡혀갔다"라는 대목은 단순한 미인 설화를 넘어, 수로부인이 지닌 독특한 신화적·종교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핵심 고리이다.
수로부인의 이 같은 신비로운 성격을 크게 네 가지 관점으로 해석한다.
지모신(地母神) 및 수신(水神)의 비유 (풍요와 다산의 여신)
고대 사회에서 수로부인은 단순한 인간 여성이 아니라 '풍요와 다산, 생명력을 관장하는 지모신(지구/땅의 여신) 또는 수신(바다/물류의 여신)'의 인격화된 존재로 해석된다.
산신이나 해룡 같은 '자연계의 강한 신격(神物)'들이 끊임없이 수로부인을 탐하여 데려갔다가 되돌려주는 행위는, 자연의 계절적 순환(봄의 풍요가 겨울 동안 땅속/바닷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현상)이나 신성한 자연의 결합(신인조합/신가간 제의)을 상징한다.
고대 제의의 '신부 제물(인신공희)' 및 무녀(巫女)적 정체성
고대 어로·해상 사회에서는 바다의 풍랑을 잠재우고 만선을 기원하기 위해 부인이나 처녀를 해신(바다 용왕)에게 바치는 인신공희(人身供犧) 전통이 존재했다. 수로부인이 바닷속 용궁으로 끌려갔다가 옷에서 신이한 향기를 풍기며 돌아오는 사건은 해신에게 바쳐진 신성한 신부(神婦)로서의 제의적 흔적이다.
수로부인은 신령스러운 존재들(산신, 해룡 등)과 인간 세상을 매개하고 소통할 수 있는 최고위 무녀(대사제)의 성격을 띤다. 수로부인이 지닌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움(美)'은 주술적·신성한 권능(Taboo 및 Holy)의 상징으로 이해된다.
신라 동해안 지역의 고유 해신(海神) 신앙의 잔재
신라 조정에서 부임하는 신하(순정공)의 아내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실제 수로부인 설화의 무대(강릉·삼척 등 동해안 일대)는 오랫동안 동해 해신 신앙이 강하게 남아 있던 지역이다.
수로부인은 동해안 해로를 지나는 수호신적인 존재로, 지방의 고유 해신 신앙이 신라 지배층의 서사 속에 흡수·통합되는 과정에서 '신물들에게 반복적으로 선택받는 여신적 인물'로 형상화된 것으로 본다.
미(美)의 절대성과 초자연적 끌림 (종교적 탐미주의)
수로부인의 극치에 달한 아름다움은 인간 세상의 범주를 넘어 초자연적 영역(신계)까지 매혹시키는 종교적 절대미(絶對美)를 상징한다.
신물들이 부인을 탐해 강탈하고, 인간들이 다시 주술(가요)로 탈환하는 일련의 과정은 인간계와 신성계가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매개로 끊임없이 교섭하고 팽팽하게 대립·순환하는 고대인들의 종교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수로부인은 단순한 신라 귀족 부인이 아니라, 풍요와 생명을 관장하는 지모신이자 수신(水神)의 신격을 지닌 인물이자, 인간 세상과 신령한 세계(산신·해룡)를 이어주는 매개자이다. 신물들에게 반복해서 납치당한다는 설정은 고대 해신 제의, 신부 제물 모티프, 그리고 계절과 자연의 순환 신화가 겹겹이 투영된 한국 신화의 유구한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