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반쯤 손바닥에 붉은 반점과 왼쪽 무릎에 닭살이 생겨 피부과에
가보려고 집을 나섰다. 아파트 지상 주차장을 지나가는데 어디서 "칼 가시오!"
"칼들 가시오!"하는 소리가 들렸다. 알고 보니 8순쯤 돼 보이는 노인이 아파트
주변을 돌면서 칼을 갈라고 외치고 있었다. 참 오래간만에 듣는 소리였다.
우리 아파트에는 매주 화요일에 화요장이 서는데 그는 입구에 자리를 잡아
칼도 갈고 미싱,우산도 고친다.
내 어릴 적에 자란 까막골에는 칼갈이 노인은 없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어려면
낫,칼,도끼 톱,자귀,호미,괭이,쟁기,쓰레 등 농기구들이 필수적으로 갖추어져 있어
야 하고 각가정마다 숫돌도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낫이나 호미들은 식구수보다도
훨씬 많은 숫자가 있어야 하고 농번기가 시작되기 전에 동네에는 성냥간(대장간)이
있어 화로에 불을 붙여 풀무로 공기를 불어넣고 낫이나 칼 호미,괭이 등 쉬붙이를 벼루었다.
벌건 불 속에 집어 넣고 쇠를 달군 후 집게로 꺼내 무쇠 받침돌(모루) 위에 올려 놓고 장골이
큰 망치(오함머)로 내리치기를 반복해 벼루었다가 물 속에 집어 넣으면 '피쉬익' 소리를 내면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급냉이끝나면 건져 내어 숫돌에 갈아 날을 세웠다.
낫이나 칼 등 쇠붙이를 오래 쓰면 날이 무디어진다. 날이 무디어진 칼이나 낫은
숫돌에 갈아도 금세 날이 무디어져 팔에 힘이들어가게 되어 쉬 피로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농번기를 피해서 동네사람들이 공동으로 성냥간에 불을 지펴
농기구들을 벼루는 것이다. 그러면 둥근 아궁이 속에 장작을 집어 넣고 불을
피우는 사람, 풍로로 바람을 불어넣는 사람, 불 속에 농기구를 넣고 달구는 사람,
집게로 꺼내는 사람, 오함마로 내리치는 사람, 숫돌에 가는 사람 등등 맡아서 하는
일들이 다르다.
한 십여년전까지만 해도 부산 부전동 도로변에 성냥간들 몇집이 이어져 영업을
해왔는데 어느새 꼬리를 감추고 없어졌다. 시골에 있을 때도 웬만한 집에는 숫돌이
있었는데 우리집에는 아부지가 6.25사변으로 인해 부모를 여위시고는 환장이 되셔서
농사에는 관심이 없었으므로 숫돌이 있을리 만무했다. 낫이나 칼이나 날이 무디어지면
숫돌에 대고 갈아야 하므로 할 수없이 이웃집에 가서 갈아야 했다. 날마다 남의 집에 가서
숫돌에 대고 낫을 갈기가 미안했다. 부엌칼도 자주 숫돌에 갈아야 날이 시퍼렇게 서서
잘 드는데 자주 갈지 못하니 어머니는 숫돌 대신에 사구나 옹기 덮개 테두리에 대고 슥슥
문질러 사용하시기도 하셨다. 그래서 고생하신 어머니를 생각해 배를 탈 때 어머니 선물로
일본에서 부억칼과 가위를 사다 드렸다.
몇년전 시골에 사는 동생이 숫돌 하나를 사 보내왔다. 요즘에는 시골 장에도 잘 없어
함양에 있는 골동품점에서 샀다고 했다. 낫이나 칼이 있어도 숫돌에 갈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숫돌에 칼을 가는 방법도 일정한 각도를 유지해서 밀고 당겨야 한다.
일정한 각도를 유지하지 못하면 제대로 갈리지 않고 또 앞날과 뒷날이 서로 일치되게끔
갈아야 하는데 어느 한쪽이 도를 넘어버리면 옷(엇)갈리게 되어 도로묵이 돼 버린다.
나는 어릴때 익혀 놓은 숫돌면허증이 있으므로 굶어 죽을 염려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