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신문기사는 1984년 2월 8일자 일간스포츠입니다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가 옛날 신문들을 훍어보며 추억을 되짚어 봤습니다
당시부터 농구를 꽤 즐겨봤었는데 당시 점보시리즈(농구대잔치)는 대회운영방식이 좀 특이했습니다
일정기간의 페넌티레이스를 걸친뒤 플레이오프를 갖는 방식이 아닌 대회를 1차대회, 2차대회, 3차대회로 나눈뒤 각차대회의 우승팀들을 가리며 각차대회의 성적으로 승점이 메겨져서 3차대회까지 살아남은 팀들중 최종 두팀을 가려서 4차대회에서 3전2선승제로 최종챔피언을 가리는 식이었습니다
아래는 점보3차시리즈의 경기들만 가지고 득점1위를 낸 기사입니다
겨우 몇게임 가지고 매차시리즈를 따로 평균득점을 낸게 좀 웃기죠?
어쨌든 당시 192㎝의 장신포워드인 한국은행의 "오동근"선수가 3차시리즈동안 게임당 35.3점으로 이충희 선수를 제쳤습니다
옛날 오동근 선수의 플레이를 본적이 꽤 됩니다만 세부적인 특징이 상세히 기억은 안납니다
당시 한국농구의 영상자료를 구할수 없는 점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근데 위의 신문자료 통계중 "수비"란 분야가 있는데 이게 제 생각에 "스틸"인거 같습니다
당시 "수비"란 분야를 어떻게 통계냈는지 아시는 분은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아래 신문은 자세히 보시면 한가지 주목할 만한 기록이 있어서 스크랩 해봤습니다
1984년 2월 10일자 일간스포츠입니다
현대와 상무의 경기가 있었는데 현대가 84:73으로 승리를 한 경기입니다
이 경기에서 이충희 선수가 3리바운드 2어시스트만을 기록했을 뿐 득점이 0(Zero)더군요
이 시절이면 이충희 선수의 전성기인데 이렇게 죽쑨 경기도 있다니 의외입니다
반면 박수교 선수는 40점 7리바운드 2어시스트 4수비로 혼자 훨훨 날았군요
반면 삼성은 한국은행을 93:70으로 이겼군요
김현준 선수는 24점 2리바운드 3어시스트
조동우: 9점 11리바운드 1어시스트 3수비로 골밑을 지켜줬네요
신동찬 선수는 8점 2리바운드 4어시스트 1수비로 게임을 리드하셨네요
박인규 선수께선 14점 2리바운드 3수비로 공헌 하셨군요
한국은행은 역시 오동근 선수가 25점 7리바운드 3수비로 최고의 활약을 보여 주셨습니다
※ 신문기사들의 경우 스캔원본을 게시할시 화면이 너무 커져 축소본을 게시했습니다
그래서 글씨가 안보이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첫댓글 조동우 선수는 국내 최초로 경기중에 덩크슛을 성공한 선수.....아닌가? ㅋㅋㅋ
최초인지는 제가 확실히 모르겠습니다만 경기중에 덩크슛을 간간히 터뜨리곤 했습니다
공식경기에선 최초였습니다.
아 그랬었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동우 선수가 한국농구사에 재미있고도 나름 의미있는 기록을 남겼네요
당시의 '수비' 스탯은 '스틸 + 블락샷'을 말했습니다.
오동근 선수는 제 고등학교 짝궁의 매형이기도 합니다. 장신 슈터에 속한 포워드인데, 리바운드와 수비가 취약점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득점이 자신이 스스로 공간을 창출해내어 던지는 미드레인지 슛이었습니다. 드리블을 치며 사이드스탭을 밟다가 던지는 점퍼라든지, 한 번 훼이크 주고 앞쪽으로 몸을 던지며 쏘는 큰 포물선의 슛들이 주특기였습니다. 손목스냅이 매우 부드러웠고, 또 슛타이밍이 굉장히 빨랐지요. 80년대 덴버 너겟츠의 득점기계, 알렉스 잉글리쉬와도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몸을 비벼대면서 터프한 수비를 하는 선수들에겐 맥을 못추는 모습도 보이곤 했습니다.
당시 리그에서 오동근 선수의 신장이나 슈팅력을 고려할때 한은같은 약체팀이 아닌 삼성이나 현대에 있었어도 충분히 20+를 득점할수 있었겠지요?!
아마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현대나 삼성이나 수비를 엄청나게 강조하던 팀들이었는데, 수비력이 약한 오동근 선수를 중용했을 리 만무합니다. 그리고 오동근 선수는 한양대 출신이었죠. 워낙에 연고대 출신들이 꽉 잡고 있던 농구판이어서, 실력 때문이 아니라 학연 때문에라도 제대로 주전으로 뛰기 힘들었을 겁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당시 자료들을 잘 읽어보면 정말 재밌는 게임들이 많았죠 한국의 자료보관이나 방송서비스 수준이 좀 더 높았더라면 저런 클래식 게임들을 우리가 지금 찾아볼수 있을텐데 그점이 너무 아쉽습니다
Magic Johnson님도 잘아시겠지만 미국얘들의 경우 옛날부터 일찌기 정말 문헌자료건 영상자료건 사무국에서 체계적으로 보관하잖아요 그러니까 후세 사람들도 귀중한 자료들을 볼수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