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원피스
버릇의 정확한 뜻은, 여러 번 거듭하는 사이에 몸에 배어 굳어 버린 성질이나 짓이다.
버릇과 습관이 같은 뜻이니 좋은 내용보다는 나쁜 쪽으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필자는 동남아인을 만나면 유심히 보는 버릇이 있다.
외국인 보기가 어려웠던 40년 전에 생길을 리 만무하고, 근래 들어 외국인 수용자가 늘어나면서 생긴 버릇이다.
동남아인 중에서도 필리핀 사람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7,107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구성된 나라의 국민이다.
타갈로그어의 표준어인 필리핀어와 함께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국민.
포르투갈 탐험가인 마젤란이 1521년 스페인의 지원을 받아 발견한 나라의 국민.
스페인의 식민통치 영향을 받아 국민의 83%가 신자인 가톨릭이 국교이고, 미국에 식민통치로 영어를 사용하는 국민.
6 ‧ 25전쟁 때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우방으로써 군대를 파견한 나라의 국민.
1986년 2월 혁명을 일으켜 마르코스 대통령과 부인 이멜다 여사를 식사 도중에 황급히 미국 망명길에 오르게 한 국민.
처가 좋으면 처갓집 말뚝보고도 절을 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필자는 아직도 필리핀과 그 국민을 사랑한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16살 소년은 해외여행이 동경의 대상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여행가로 세계의 나그네로 불린 김찬삼 교수의 “세계일주 무전여행기”를 읽을 때는 소년의 가슴은 마구 뛰었다.
고등학교 때도 세계여행기를 수록한 책은 대부분 구해서 읽었지만 시골뜨기 학생이 외국여행을 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빈농의 아들이라 책을 사보는 것조차도 어려움이 많았다.
외국여행이 어렵다고 꿈마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여행기를 읽을 때마다 나도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솟아났다.
세계여행을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하지만 우선은 말이 통해야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 영어는 열심히 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당장은 여행이 불가능해도 외국인과 사귈 수 있는 방법은 알았다.
중․고등학생을 상대로 판매한 월간 영어에 게재된 해외펜팔 광고를 보고 회비를 납부한 후 필리핀 여학생을 원한다며 신청서를 보냈다.
그리고 한 달여 만에 필리핀 소녀로부터 사진과 함께 답장이 왔다.
필자와 동갑으로 비사야제도의 네그로스섬 바콜로드시에 사는 여학생이다.
하지만 아무리 영어공부를 열심히 한들 중학생이 영어를 잘하면 얼마나 하였겠는가.
처음에는 영문편지 책자를 보고 열심히 베껴서 보냈다.
나중에는 학교 선생님한테 묻기도 하였지만 반응은 신통찮았다.
영문편지라 집배원들이 가끔 엉뚱한 집으로 배달하여 나중에 찾아오는 경우도 많았다.
펜팔이 계속될수록 영어실력이 부족하다는 걸 절실히 느꼈지만 그래도 외국소녀의 사진을 보면 흐뭇할 뿐이었다.
10년을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면서 오랫동안 펜팔을 했다.
지금도 다리가 예쁜 소녀의 사진과 편지를 무슨 보물단지처럼 보관하고 있다.
부도난 수표에 가깝지만 추억은 살아있다.
1978년 필리핀 국민가수 프레디 아길라가 제1회 메트로 마닐라 가요제에서 타갈로그어로 “아낙”을 불러 대상을 받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노래 테이프도 책꽂이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결혼과 동시에 현실에 안주하다보니 해외펜팔이 흐지부지 되어 안타까운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가끔 생각이 날 때면 사진을 꺼내본다, 떠나버린 첫사랑을 그리워하듯이.
공무원생활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으니 때때로 생각나는 게 필리핀 소녀이다.
아내한테는 “당신이 아니었으면 필리핀 아가씨와 국제결혼을 했을 것”이라고 말하면 지금이라도 당장 가란다.
마음은 간 큰 남자라서 돈만 주면 갈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몇 년 전 우리말을 잘하는 필리핀 여성을 만났다.
집에서 점심을 대접하며 사진을 보여주면서 한 번 찾을 수 있느냐고 물어보니 어렵다는 대답만 한다.
필리핀은 한국과 달라서 과거의 주소만 가지고 쉽게 찾을 수가 없다고 한다.
만날 수 없다는 대답에 맥이 풀렸지만 포기는 않는다.
교도관생활을 하면서 필리핀 사람을 직장에서 만날 줄은 몰랐다.
우리나라도 다문화 사회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지난 5월 말 현재 결혼이민자 수는 18만 2천여 명으로 한 해 한국 남자와 결혼하는 외국인여성이 2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중국, 베트남, 필리핀 순으로 결혼을 많이 하여 동남아인과의 국제결혼은 매매혼 같아 마음이 아프다.
필리핀 결혼이민자들 때문에 소녀가 더 생각난다.
소녀의 딸이 사랑보다 가난 때문에 우리나라 국민의 며느리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라도 하기 싫다.
외정문에 근무할 때 필리핀 여성 2명이 일요일에 접견을 왔다.
내가 영어에 서툴고, 필리핀 여성이 우리말에 서툴러 깊이 있는 대화를 할 수는 없었지만 헤어진 연인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떨어진 끈을 다시 붙이기 위해 필리핀 사람만 보면 말을 건넨다.
소녀의 아들이나 딸이 우리나라에 취업하여 있을지도 모르고…….
바콜로드 고향사람이 이국에서 향수를 달래며 열심히 돈을 벌어 귀국하는 날짜만 손꼽아 기다릴 수도 있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필리핀이 우리나라보다 잘 사는 나라였는데 지도자 한 사람을 잘못 만나 지금은 후진국이 되었다.
지도자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어느 국가나 조직이든지 지도자 한 사람에 의해 앞날의 운명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7년 라몬 막사이사이 대통령이 비행기 추락사고로 급서만 안 했어도 지금쯤 부강한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구속된 필리핀 사람을 보면 소녀의 가족이란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애잔하다.
나라가 잘 살면 낯설고 물선 이국에서 돈을 벌 필요 없이 조국에서 가족과 오순도순 살면서 직장을 구했을 것이다.
내일 모레면 사위, 며느리를 볼 나이에 상사병이 걸려도 단단히 걸렸다.
10대 사춘기 감정이 50대 후반까지 이어져 잊지 못하는 것은 마음의 불치병이다.
소녀를 그리워하는 불치병은 만나기 전에는 약도 없을 것 같다.
이 불치병은 필리핀 수용자를 보면 조금은 위안이 되어 치유가 될까.
만나지는 못해도 그리움의 대상이 있다는 것은 행복하다.
소녀를 만나는 날이 오면 사진 속의 빨간 원피스를 한 벌 선물하면서 아직도 소년의 사랑은 식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소녀의 옷 대신에 50대 중년의 원피스로 구입해야 할지 결정은 못 했지만 선물할 수 있는 여인이 있어 행복하다.
언제까지나 마음의 연인이었다고 귀엣말을 하면서 아내에게 소개하고 싶은 소녀, 그녀의 이름은 에반젤린으로 애칭은 반지이다.
추신 : 원고가 길어서 조금 지루하지요?
첫댓글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사랑의 향수도 남 다른가 봐 중학시절에 벌써 이국만리 소녀와 사랑의 속삭임이 있었다니~~~
추억은 아름다운 보물이라 했거늘 사춘기때의 사랑을 아직도 풋풋하게 간직하고 있는 친구는 행복한넘이 틀림 없지만
또한 간큰 넘이라 아니 할수 없구나 ..마눌 한테 쫓겨나면 이쪽으로 온나.
고등학교 다닐 때 우리반 친구가 월간영어를 팔았는데 그 친구가 사라며 건네준 책에서 공상규 친구님이 필리핀 여학생을 소개하는 사진과 글을 보게 되었지요~~중학교 2학년 때 우리반을 했던 미소년 공상규 친구님의 얼굴도 떠오르면서~~ㅎㅎ 부끄러움이 많아 하얀 얼굴이 빨개지던 공상규 친구님과 말을 한번도 한 적이 없었지만, 평소 생각했던 공상규 친구님과 달리 과감성이랄까 돌출행동이라할까 그런 점에서 충격을 받을 정도로 예상외였지요~~친구가 나온 책이라 한동안 가지고 있었는데 졸업 후 그 책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통 생각이 나지않네요~~~ㅎㅎㅎ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야 나겠지만 여태 끈 떨어져있던 인연을 구태여 다시 이어가고 싶어하는 이유도 남자라는 이유인가요~~~??? ㅎㅎㅎ 옥련씨 한테 혼나기 전에 그 마음 그대로 고이 간직만 하소서~~~ㅋㅋ
간큰 남자네~~ㅎㅎ
피천득이 일본여성을 그리며쓴 수필의 제목이 생각나지 않지만 꼭 그글을 읽은 느낌이다.
행복한 추억 오래 간직했으면 좋으련만 풍문에는 서거하셨다는 소문이니 더이상은 찿지마세요! 알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