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uillotine][2][아버지의 제자]
예소야는 결국 별 생각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 교복도 갈아입지 않은 채 피곤한 몸으로.
"으음, 음."
그녀는 굳게 닫혀있던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올린 후, 눈을 비볐다. 창 밖에선 햇빛이 새어들어와 방 안을 밝혔고,
그녀는 기지개를 켜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였다.
"으악. 지각이다!"
예소야의 핸드폰에 찍힌 시각은 정확히 10:00였다. 2시간이나 늦은 것이었다. 그녀는 허둥지둥 1층 샤워실로 내려가
머리를 대충 감은 후, 드라이어로 말릴 새도 없이 핑크색 물방울 무늬 식탁보가 씌워진 식탁 위에 있던 눅눅한 식빵 한
조각을 들고 현관 앞에 있는 암적색의 가방을 오른손에 쥐었다. 그리고 가방색과 너무도 유사한 암적색 교복단화를 대충
구겨 신은 후 학교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학교에 도착한 시각은 10시 10분. 결국 그녀는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교무
실로 끌려갔다.
"소야야, 왜 늦은 거니? 이런 애가 아니었잖니."
그녀의 담임선생님은 26살의 젊은 여자로 엄청나게 예쁜 외모때문에 남학생들에겐 예소야 못지 않은 인기를 얻고 있었지만
여자들에겐 만인의 적이었다. 심지어 같은 선생들에게까지도. 그러나 너무 철칙을 준수하는 원칙주의자의 까다로운 성격
때문에 예쁘지만 남자친구도 없었다. 담임선생님은 학교의 자랑인 소야가 지각을 한 것에 대해 화가 나 있었다. 그러나 그녀
는 최대한 성격을 참고 소야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어제 밤에 생각할 게 좀 많아서. 자고 일어나니 저도 모르게 늦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다 제 불찰입니다."
"그래, 선생님이 소야가 무슨 생각을 했는 지 까진 물어보면 실례겠지? 소야는 똑똑한 아이니까 분명히 뭔가 중요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 거야. 자, 그럼 벌로 일주일간 2층 여자화장실 청소야. 알겠지?"
담임선생님은 확실히 소야에게 무언가 중압감을 느끼고 남들에 비해 관대하게 대해주는 것을 소야는 느꼈다. 그러나 예소야는
신경쓰지 않았다. 초등학교때도 그랬고, 중학교 1,2학년때도 그래왔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녀가 잘못을 했을 때에는 남들보다
더 관대하게 대해 줬다. 그러나 사실 소야에겐 시간이 빠듯했다. NGCHC의 일도 있었고, 학생회이며, 제협과의 데이트약속까지
그녀에게 이번 한 주는 굉장히 바쁜 주였다.
"저기 선생님, 제가 이번주는 바빠서 그런데 다음주에 하면 안 될까요?"
예소야는 평소에 잘 웃지 않으면서도 일부러 억지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러나 담임선생님은 가식적이라고 생각했는지, 딱 잘라서
거절했다.
"안 돼."
그렇게 소야는 결국 방과후에 2층 여자화장실 청소를 해야 했다. 그녀는 여기저기 조금씩 녹슬은 철제 양동이에 물을 받아 화장실
바닥에 쫙 뿌렸다. '촤악─'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은 물바다가 되었다. 예소야는 교실에서 마포 대걸레를 가져와 물을 듬뿍 머금
게 한 후, 화장실 바닥에 락스를 뿌린 후 마포 대걸레로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분 쯤 지나자 바닥은 새하얗게 변해 새
화장실이 된 것 같았다. 그녀는 청소도구들을 제자리에 가져다놓은 후, 담임선생님께 검사를 맡고 NGCHC의 B57층으로 갔다.
이번엔 엘리베이터 앞에 뒤스베르크의 검은색 밴이 없었다. 결국 하는 수 없이 그녀는 걸어서 그 방문을 찾아다녔다. 무려 1시간
30분동안 헤매다가 방문을 찾았다. 그녀가 방문을 열자 안에는 MW밖에 없었다.
"여, 안녕. 소야. 방 찾는데 힘들지 않았어?"
"네. 힘들었어요. 매일 이렇게 힘들게 방을 찾아야 하나요?"
예소야는 벌써 다리에 힘이 풀려 기진맥진해했다. 소야는 암회색의 체리쉬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
"그거 말야. 엘리베이터 앞에 각자 전용 운전수단이 있을텐데. 아 맞다, 아직 네건 안만들었겠구나. 운전할 줄 아니?"
"아뇨. 전 아직 미성년자에요. 오토바이라면 같은 반 친구한테 배워본 적이 있긴 하지만 잘은 못타고……."
소야의 대답 이후 MW와 소야는 잠시 어색하게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곧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최근들어 소야는
상당히 웃음이 많아졌다. 이게 다 아버지에 관한 걸 조금씩 알아가기 때문일까?
"그러면 학교에서 끝나는 시간을 말해줘. 내가 내 전재산을 털어서 산 엔쵸 페라리 옐로로 데려와줄게."
"음,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건 너무 부담스러우니깐 B57층 엘리베이터 입구 앞에 항상 4시 반 쯤에 와주세요. 고마워요, MW."
"뭘 이런걸 다."
MW는 자신의 흰 머리를 뒤로 한 번 넘기며 멋있는 척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소야는 순간 '밥맛이야!'라고 외칠 뻔 했지만 곧,
입을 틀어막아 겨우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다.
"저, 근데 뒤스베르크와 린은 어디간거죠?"
"뒤스베르크 대장은 너의 사부를 찾으러 간다고 했고, 린 녀석은 뭐, 남자들이나 꼬시고 있겠지."
MW는 린에 대해 말하며 어깨를 으쓱하며 한숨을 쉬었다. 소야는 린의 성격에 남자를 꼬신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분명
히 도도함 빼면 시체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단 사부라는 것이 소야에겐 더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였다.
"사부라뇨? 설마 검 수련을 위해서?"
"그래. 역시 넌 머리가 좋구나. 지금은 단 하나뿐인 검사 킬러라고 하던데. 소속은 없다고 하더군.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NGCHC
에 들어오면 좋으련만."
MW가 말을 마치자 방문이 드르륵하고 열리며 두 사내가 나타났다. 하나는 우락부락하게 생긴 뒤스부르크였으며, 하나는 전통적인
일본 무사의 면복을 입은 사내였다. 그는 얼굴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흉터들이 나 있었으며, 파란색의 긴 머리를 하고 허리춤에
한 자루의 장검을 매고 있었다.
"자, 소야야. 이 분은 너희 아버지의 유일한 제자이시자, 너의 사부가 되실 사토 신지로씨다. 스물 여섯 살의 일본 최고의 킬러라
불려지고 있지."
"안녕하세요, 신지로씨. 잘 부탁드립니다."
"난 너희 아버지와의 약속때문에 널 가르치러 온 것이다. 행여나 나를 NGCHC에 가입시킬 생각따윈 하지 말아라."
신지로는 NGCHC에 들어온 것이나, 예소야를 가르치는 것 등이 마음에 안드는 듯한 이미지를 보였다. 그녀가 보기엔 그는 조용히
산에 묻혀 지내는 은둔지사의 생활을 흠모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 그럼 대련장으로 가볼까?"
MW를 제외한 셋은 B32층의 대련장으로 향했다. 소야는 대련장이라고 해서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대련장은 여러 가지 종류의
무기들과 넓은 방 하나만 있었을 뿐, 아무도 없었다.
"저기, 대련장이라면서 왜이렇게 조용한 거죠? 엄청 시끌벅적할 줄 알았는데."
"지하 30층 아래부터는 간부 전용 시설들이란다. 아직 몇 층에 어떤 시설들이 있는지 잘 모를테니, 이걸 잘 가지고 있거라."
뒤스베르크는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듯이 자신의 오른쪽 주머니에서 누렇게 색이 바래고, 구겨진 종이쪼가리 하나를 예소야의
오른손에 쥐어주었다. 소야는 찝찝한 기분을 느끼며 자신의 교복 안주머니에 깊숙히 찔러넣었다.
"그럼 난 이만 가볼테니, 7시 반까지 잘 가르쳐주길 바래."
뒤스베르크는 그렇게 둘을 대련장에 남겨놓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름이 예소야라고 했나?"
"예."
신지로는 여전히 거만한 말투로 말했다.
"후, 그래. 너가 사부의 기술 중 하나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하던데. 사실이냐?"
"예. 저는 이름조차 몰랐지만, 무한의검제라는 기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소야는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후 신지로를 올려다 보았다. 그의 눈은 날카롭게 빛났고, 그녀에게 관심
이 생기는 눈치였다.
"좋다. 그런건 일단 나중에 하고, 검을 쥐는 법부터 가르쳐주마. 저기서 아무거나 내키는 검 하나를 들고와라."
신지로의 말에 예소야는 은빛으로 빛나는 장검 하나를 들고 왔다. 신지로는 조금 전보다 더 날카로운 눈매로 소야를 바라보았다.
"너, 검을 볼 줄 아는 녀석이구나. 그러나 아무리 검이 좋다 한들, 그 검을 쥔 검사의 실력이 안 된다면 검의 능력은 절대 발휘
되지 않지. 검을 쥐는 법도 아는 것 같으니 검술을 사용할 줄 아는지 확인해 보아야겠다."
신지로는 허리춤에 매여있는 장검의 손잡이를 쥐고 달리다가 소야의 앞에 왔을 때, 바로 검을 뽑아들어 아래에서부터 올려쳤다.
그러나 소야는 재빨리 오른쪽으로 피한 뒤 은빛의 장검으로 신지로의 오른쪽 옆구리를 노렸다. 신지로는 몸을 돌려 힘들게 검집
으로 막아냈다. 상대를 얕보고 방심한 게 실수였다.
"엄청나구나. 너 검을 쥐는 순간 눈빛부터가 달라지는걸 느끼고 있느냐? 너는 완벽하게 검을 위해 최적화된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듯 싶다. 엄청나게 잠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거지. 이 원석을 제대로 다듬는다면 너희 아버지조차 뛰어넘을 수 있겠어.
그렇다면 오늘의 마지막 수련이다. 내 필살기를 막아보아라. 실전보다 더 느리게 가니 막지 못하더라도 치명상을 입진 않을 게다."
신지로는 처음의 말투와는 달리 소야에게 조금씩 호감을 가지며 그녀를 인정하는 듯한 말투로 바뀌었다.
"츠바메가에시!"
신지로는 검을 야구배트를 쥐는 것 처럼 쥐고 한 순간에 검을 아래로 내려친 후 그녀를 향해 검을 찔렀다. 그녀는 단순한 찌르기
라고 생각하고 검을 빗대어 막아냈다. 그러나 곧 양옆에서 오는 검날에 양 팔을 베이고 말았다.
"역시 아직 실전에서의 감각이 없는게 아쉽구나. 상처는 치료해주마."
신지로와 소야는 뒤스베르크가 준 종이쪼가리를 펼쳐 보았다. 의무실은 B33층. 바로 한 층 아래였다.
다행이 경미한 부상이라 연고를 바른 후 압박붕대로 상처를 보호하기만 하면 됐다.
소야는 아버지의 제자라는 사토 신지로에게 호감을 가졌다.
또다시 아버지와 관련된 것이 생겨나서, 소야는 마냥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그녀는 곧 일어날 비극적인 운명에 대해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Guillotine][2][아버지의 제자] 마침.
2007. 1. 29.
- 앙's -
이름출처
츠바메가에시 : Fate/stay night
첫댓글 다좋지만 묘사가 제일 좋아욤.. 제가 소설쓰면서 제일안되는거 중심으로 읽다보니.. 크크... ~_~ 재미있게 읽고가는군요..!! 건필하세요~
제 개인적으론 묘사부분이 상당히 취약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처님 말씀을 들으니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처님도 건필하세요.
좋은데
너무 짧은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연재언제?
밤에 연재 ㅋ
재밌네요
재미없으면 안됨 ㅋㅋ
하악하악 너무 긴장됨!. 긴장 쭉쭉
나 등장시켜주시면 안될까요
이미 등장인물 다정해놨는데 이제와서 이러시면 안되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