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신문 배달
‘미친 짓 이다.’
새벽 2시 50분,
영하 15도.
나는 신문이 가득 실려 앞머리가 묵직한 오토바이를 타고 공주의 밤거리를 질주한다.
중동사거리에서 좌회전해 무령로 진입한다.
제민천을 건너고 동시에 액셀러레이터를 푼다. 속력은 줄어듦과 동시에 일이 시작된다.
광성당동장, 초원부동산, 제세당한약방, 신현호 회계,
겨우 신문 10장을 내려놓은 것만으로도 오토바이 무게가 줄어든 느낌이다.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머릿속으로는 다음 배달지를 그려본다.
이제부터는 인도가 없는 골목길이다.
우회,
금강전자, 현대불교, 충청방송, 신용보증센터, 토종옷닭, 대진주류상사, 한국야쿠르트,
공주소방서, 한일 목욕탕, 영재학원.
빙판에 오토바이가 미끄러져 오토바이와 신문이 노상에 뒹군다.
무릎은 욱신거리고 피가 베여 나왔지만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우려한다.
그러나 신문이 실린 오토바이의 무게는 상당하다.
신문이 묶여진 고무 끈을 풀어낸다. 오토바이를 세우고 신문을 차곡차곡 정리해 싣는다.
다시 출발하기 까지 10분가량의 시간을 소요했다.
빙판이 많으니 천천히 달려야 한다고 마음먹는다.
둥지다실, 우회다. 열매다실, OK이발,
산성교를 건너지 않고 턴이다.
노상이 미끄럽다.
한쪽 다리로 넘어지지 않으려 버텨보지만 오토바이 체중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넘어진다.
오토바이는 역시나 무겁다.
언제 날씨가 추웠던가, 온몸은 화로처럼 타는 듯하다.
오늘 하루가 무척 길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직 오토바이 운전에도 익숙하지 못하다.
아직 신문 배달지를 외우지 못해 쪽지에 적혀진 배달지를 여러 번 펼쳐본다.
감초당한의원, 보광전기, 교동이용원, 공주원예농협. 웅진주민 자치 센터,
좌 회해서 옛 군청뒷길 72-1번지,
72-1번지를 찾지 못해 10여분을 골목길을 헤맨다.
금강자율방범, 향교뒷길로 골목을 빠져나온다.
오르막을 올라 공주교동초등학교, 높은 지대여서 칼바람이 더욱 차갑다.
V자형의 길을 따라 공주 여자중학교, 옆문으로 빠져나온다.
최대의 난코스다.
40도가량의 경사였고 그 각도는 완만해지기까지 그 길이가 족히 150미터는 된다.
경사면은 그늘이 져 눈조차 녹지 않았다.
모든 것은 중립, 브레이크도 소용없다.
도중에 무엇인가 튀어나오면 사고를 막을 길이 없다.
이곳은 무척 어두워서 그나마 차량의 불빛정도는 감지할 수 있다.
머리카락이 곤두설 만큼의 긴장감 속에 활주한다.
우측 교동아파트,
신문을 돌리고 아파트에서 나오자 오토바이가 쓰러져 있다.
이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오토바이 받침대를 헐겁게 해 놓은 모양이다.
시간이 너무 지체됐다. 있는 힘을 다해 오토바이를 세운다.
좌측 한진 아파트 내리막의 끝 한국청과, 길은 평탄하고 직진,
제민천을 건너 공주농협, 학표비니루, 시골밥집, 대나무식당, 계룡철물,
공주철물, 일영떡고추방앗간, 공주개별화물,
웅진로로 나와 버린다.
정면의 공주구터미널, 쉴 틈이 없다.
얼큰이 칼국수, 좌회, 금성배수장길로 들어서 풍국해장국, 중동목공소, 포장마차 순이네.
턴해서 다시 중동목공소에서 좌회 공주직업소개소, 버들장, 이오장,
다시 제민천을 건너서 황새바위 2길 72-3번지
황새바위 1길 324번지 희선이네 집이다. 공짜신문을 던진다.
제민천을 건너 웅진로의 농협하나로주유소, 공원매점, 잠시 오토바이를 멈춘다.
벌써 3시간이 지나있었다.
날씨 추운 건 둘째 치고 속이 매스껍다. 힘들다. 그러나 이미 시작된 일이다.
나는 돈이 없고 할 수 밖에 없다.
지금의 가난함이 훗날 축복이 되길 빈다.
두리외딩홀, 백제양봉, 공주식물원,
좌측으로 공산성 매표소가 있고 나는 한 블록 지나 웅진동면사무소길로 들어선다.
볼가리노래방, 장수공을 좌회 합동인쇠출판, 좌회 웅진동사무소, 턴
수통골, 강변도로로 나와 버린다.
선비촌 소이학가든 하나웨딩홀, 타이어프로,
턴이었지만 나는 좌측의 금강교 위를 마음 것 질주한다. 그리고 미친 듯 소리친다.
“달,려.”
“다알,려. 달려.”
강한 바람에 눈물이 튕기쳐 나간다.
공주가 이렇게 넓었었던가. 어떻게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인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제민천과 금강이 만나는 곳에서 느티나무길을 타고 거슬러 올라간다.
황태갈치전문점, 금성회관,
왕릉로로 접어들어 좌측으로 왕릉교를 건너 우회해서 골목으로 들어간다.
골목으로 들어가기 전,우측에 교육청, 좌측 공주중학교,
다시 빠져나와 골목길을 질주한다.
수탉 통닭, 골목길의 끝 비둘기길 540번지, 비둘기아프트 A, B동 다시 턴해서 왕릉로로 나온다.
무령왕릉까지의 가파른 언덕길을 달린다.
신문은 이제 60여장 남았을 뿐이다.
분명 오토바이는 가벼워졌으나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나는 무령왕릉 쪽을 향해 달린다. 좌측 샛길로 금성여고부터다.
금성여고 현관의 신발장에 경종현, 조충기, 양상모,
다시 무령왕릉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와 공주문예회관 충남교향악단,
무령왕릉입구의 공주관광안내소 다시 길 건너의 웅진도서관,
길은 굽이쳐 남쪽으로 흐르는 금강까지의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그 무엇도 없는 텅 빈 내리막을 달린다. 계기판 속도는 80킬로미터를 넘어 90킬로미터까지 이른다.
눈물도 콧물도 내 머릿속의 찌든 때도 모두 바람에 날려 사라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무섭다. 속도를 줄인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죽을 수도 있다.
내리막은 강변도로로 연결 되어있고 그 전에 우회해서 일직선의 넓고 평탄한 길을 줄행랑친다.
공주국립박물관, 다시 머리를 돌려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언덕길에서 금강유황온천, 무령왕릉에서 우회, 웅진동으로 들어선다.
왼쪽 오르막을 타고 공주경찰서 다시 내려와 길 건너 청솔아파트,
나는 또 한참을 달려 웅진 어린이집,
경일아파트 101동, 103동, 106동, 107동, 110동
엘리베이터 없는 아파트를 미친 듯이 뛰고 심장을 터질 듯하다.
더 아래로 달려 한산그린 아파트,
내가 알고 있는 한 이곳이 공주의 끝이고 내 신물배달의 마지막 지점이다. 끝난 것이다.
나는 유유히 왔던 길을 달린다.
공주경찰서 앞에서 우회해 무령로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는 언덕길을 탄다.
두시 반에 방문을 차고 나온 것이 먼 옛날처럼 느껴졌다.
시간은 7시 반이 넘어있었고 언덕너머에 샛별과 눈썹 같은 달이 밝아오는 하늘에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무척 어려웠고 울고도 싶었지만 오늘의 일이 무사히 끝난 것에 대해 감사했다.
비록 오토바이와 무릎과 팔꿈치와 손바닥이 깨졌지만 오늘 무사했지 않은가.
그러나 앞으로 계속해서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은 절망적이기만 하다.
어떤 사람은 추락을 원한다는 얘기를 나는 절대 동감하지 못했다.
사람은 진정으로 추락을 원할 수 없다.
손재준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대학을 가지 않은 사람들이 험난한 사회를 경험하고 다시 대학을 가기 원해 재수를 한다는 얘기가 말이다.
벌써 내 마음은 학교에 가있지 않은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러한 일을 쉽게 해내는 선태가 존경스러워졌다.
선태뿐 아니라 신문배달을 하는 모든 사람과 밤거리에서 일하는 모든 청소부들이 존경스러웠다.
이렇게 힘든 일을 일상처럼 해내는 그들이 말이다.
나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학교에 가야했고 수업시간에 졸고 또 졸아 계속해서 벌을 서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