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오피니언
[사설]‘사법농단’ 양승태 1심 무죄… 결국 검찰의 무리한 수사였나
입력 2024-01-26 23:57업데이트 2024-01-27 01:55
이른바 ‘사법 농단’ 사건으로 구속 기소됐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47개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 개입 등 재판 관여는 어느 것 하나 인정되지 않았다. 판사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인사 등에서 불이익을 줬다는 혐의도 인정되지 않았다.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시키려 했다는 혐의도 인정되지 않았다. 당시 법원행정처장을 맡은 고영한 박병대 전 대법관에게도 무죄가 선고됐다.
이 사건은 2018년 9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법원의 날 행사에 이례적으로 참석해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 등 고위 법관들 앞에서 ‘재판 거래 의혹’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문을 하면서 본격화됐다. 당시 수사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 지휘를 맡았다. 대법원장에 대해 헌정사 초유의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다. 엘리트 판사들이 검찰에 줄줄이 불려가 조사받은 뒤 기소되거나 징계에 회부됐다. 이 과정에서 사법권력의 대교체가 일어났다.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들이 줄줄이 대법관이 되고 법원행정처와 각급 법원을 장악했다.
아직은 1심 결과일 뿐이다. 법원이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 2명에 대해서는 항소심까지 유죄를 선고했기 때문에 그 상관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해서는 사법 농단 혐의가 일부 인정될 수도 있다. 그러나 검찰에 의해 기소된 14명의 전·현직 고위 법관 중 현재까지 6명이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고 2명은 항소심까지 무죄 판결을 받았다. 무엇보다 검찰이 구속까지 하며 기소한 대법원장이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은 검찰로서는 대참사가 아닐 수 없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결심 공판의 최후 진술에서 “사법부가 정치권력에 의해 이렇게 대규모로 노골적이고 끔찍한 공격을 당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최종 판결까지 봐야겠지만 정치권력이 밀어붙인 사법 농단 수사로 인해 사법부의 정치화가 심화됐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사법 농단의 빌미를 제공한 사법 관료화를 막는다며 시도된 개혁은 오히려 재판 지연 등 법원 본연의 기능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통해 사법부를 정상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추천순비추천순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