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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큐의 세계적(世界的) 원조(元祖) 「맥(貉)=맥(貊)」 [제2편]
맥(貊)[胡貉·胡貊] 아주(亞洲) 북방지대(北方地帶)의 패자(霸者) [제2편]
2023년 11월 26일
○ “제2편”에서는 오늘날의 중국(中國)에서는 : “호맥(胡貉)=호맥(胡貊)”에 대한 역사적(歷史的) 사실(事實)을 어떻게 설명(說明)하고, 기술(記述)하고 있을까? 가장 궁금한 대목이다. 가장 찾기 쉬운 방법(方法)은, “중국어 위키백과”에서의 설명(說明)이다.
2. 貉族 [출처(出處) : 維基百科,自由的百科全書]【관심부분(關心部分)만 발췌(拔萃), 번역(飜譯), 해설(解說)】
• 貉族 [維基百科,自由的百科全書] : 《貉,又作貊,也被寫為發或亳,古稱蠻貉,胡貉,夷貊,貊種,貊人,也被稱為貉族,貊族,濊貊族等,古代族群,曾活動於今中華人民共和國內蒙古,陝西省,山西省,河北省,河南省,山東省,東北以至朝鮮半島,堪察加半島等廣泛區域.: 맥(貉)은, 또 맥(貊)이라고 하는데, 발(發) 혹은 호(毫)와 음(音)이 유사하다. 고칭(古稱) 만맥(蠻貊), 호맥(胡貉), 이맥(夷貊), 맥종(貊種), 맥인(貊人)이라고 하며, 맥족(貉族). 맥족(貊族), 예맥(濊貊) 등으로 불렸는데, 고대(古代)의 종족 무리로, 활동한 곳은 중화인민공화국 내몽고(內蒙古), 섬서성(陝西省), 산서성(山西省), 하북성(河北省), 하남성(河南省), 산동성(山東省), 동북(東北)으로부터 조선반도(朝鮮半島), 감찰가반도(堪察加半島)【Kamchatka, 半島】등의 넓고 넓은 구역에 있었다. 有多個分支部落,有九貉的說法。其文字記錄起源於西周,由西周記錄顯示,其活動區域在西河之地。其文明水準接近於周人,已經出現國家組織。: 여러 지파(支派)의 부락(部落)이 있는데, 구맥(九貉)으로 설명한다. 그 문자(文字) 기록(記錄)으로는 서주(西周)에서 기원하는데, 서주(西周)의 기록(記錄)에서 나타나는 곳을 보면, 그 활동구역(活動區域)은 ‘서하(西河)’의 땅에 있으며, 그들의 문명수준(文明水準)은 가깝게 있는 주(周) 사람들에 근접해있어, 이미 국가조직(國家組織)이 출현(出現)하였다. 至春秋戰國時代,主要活動於秦國、晉國與燕國以北地區。: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에 이르러, 주요활동은 진(秦)나라, 진국(晉國)과 연(燕)나라 이북(以北) 땅이다. 중략(中略). 在傳統分類上,貉人被分類為北狄或東夷 : 전해져 내려오는 대로 분류하면, 맥인(貉人)은 북적(北狄) 혹은 동이(東夷)다.
➊ 『맥(貉)=맥(貊)』은, 〈내몽고(內蒙古), 섬서성(陝西省), 산서성(山西省), 하북성(河北省), 하남성(河南省), 산동성(山東省), 동북(東北)으로부터 조선반도(朝鮮半島), 감찰가반도(堪察加半島)【Kamchatka, 半島】등의 넓고 넓은 구역에 있었다〉라고 하였다.
➋ 『맥(貉)=맥(貊)』의 〈그 활동구역(活動區域)은 ‘서하(西河)’의 땅에 있으며, 그들의 문명수준(文明水準)은 가깝게 있는 주(周) 사람들에 근접해있어, 이미 국가조직(國家組織)이 출현(出現)하였다.〉:
당시(當時)의 ‘맥(貉)=맥(貊)’은 문명수준(文明水準)이 ‘주(周) 나라와 같았다’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서하(西河)”란 : 서(西)쪽의 하(河)란 뜻이다.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는데, 첫째는 산서지방(山西地方)이고 두 번째는 영하성(寧夏省) 서(西)쪽을 말하는 것이 된다.
대륙(大陸) 아이들은 “산서지방(山西地方)”이라고 설명(說明)하고 있다. 그러나 이게 오류(誤謬)라는 것으로 아래의 기록(記錄)으로 확인(確因)이 된다.
➌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에 이르러, 주요 활동은 진(秦)나라, 진국(晉國)과 연(燕)나라 이북(以北) 땅이다〉: 진(秦)은 서주(西周) 때를 말하는 것이니, 감숙(甘肅)과 섬서(陝西) 일부가 포함(包含)된 곳이다.
따라서 당시(當時)의 ‘호맥(胡貉)=호맥(胡貊)’은 감숙(甘肅) 북방지대(北方地帶)에서 활동(活動)했다는 것이다.
• 貉的記錄起源於西周,在《詩經》記載中,周朝與貉人間曾發生戰爭,部份貉人成為周朝的附庸。: 맥(貉)의 기록의 기원은 서주(西周)로, 시경(詩經)의 기록(記錄) 중에, 주(周)나라 조정(朝庭) 간에 거듭 문제가 있어 전쟁이 일어나, 일부 맥인(貉人)이 주나라에 부용(附庸)되었다. 중략(中略). 由墨子記載,貉居住的西河地區與燕國及代國相近 : 묵자(墨子)에 기재(記載)된 맥(貉)의 거주지는 서하지구(西河地區)와 연국(燕國)과 대국(代國)과 서로 가깝다. 중략(中略). 據《左傳》,在周武王建立周朝時,周人北方邊境為「肅慎燕亳」 : 주무왕(周武王)이 주(周) 왕조(王朝)를 건립할 시에, 주인(周人)의 북방(北方) 변경(邊境) 땅에는 「숙신(肅愼)과 연(燕)과 호(毫)가 있었다.」 【筆者 註 : 호(毫)란 곧 맥(貉)-맥(貊)이다. 연(燕) 또한 하북성(河北省)에 없었다는 고증(考證)이다.】《戰國策》記載,貉人會蓄養馬,為秦國與趙國取得馬匹的來源之一. : 전국책에 기재된 것을 보면 : 맥인(貉人)들이 양마(養馬)를 많이 길러, 진국(秦國)과 조국(趙國)이 말을 취득(取得)하러 오는 나라 중의 하나였다. 在東漢時,貊人燒烤肉類方式傳入中國,稱為貊炙,他們盛裝食物的器皿,稱貉槃。: 동한(東漢) 때에, 맥인(貊人)들의 육류(肉類)를 불에 쬐어 익히는 방식(方式)이 중국(中國)에 전해 들어와, 이를 ‘맥자(貊炙)=맥적(貊炙)’라 불렸는데, 단장하고 음식물을 담는 그릇붙이를, 맥반(貊槃)이라고 불렀다. 東北貊族的弓箭,稱為貊弓。: 休溷諸貉 : 在趙襄子時,晉國領土曾擴張到林胡之地,臨接休溷諸貉。休溷之貉的居住區域,在文獻中沒有明確記載。錢穆認為應在黃河上游,積石一帶。: 휴혼제맥(休溷諸貉) : 조양자(趙襄子)에 진국(晉國)이 확장되어 임호(林胡)의 땅에 다다랐는데, 휴혼제맥(休溷諸貉) 땅에 임해 접하였다. 휴혼(休溷)의 맥(貉)들의 거주지역(居住地域)은, 옛 문헌(文獻) 중에서는 없어졌지만, 명확(明確)하게 기재(記載)되어있다. 전목(錢穆)은, 황하(黃河) 상류(上流), 적석일대(積石一帶)라고 하였다.》【관심(關心) 있는 구절(句節)만을 발췌(拔萃)했고, 근세(近世) 학자(學者)들의 주장(主張)은 버렸음】
➍ 〈묵자(墨子)에 기재(記載)된 ‘맥(貉)’의 거주지는 서하지구(西河地區)와 연국(燕國)과 대국(代國)과 서로 가깝다〉 :
연(燕)의 땅은, 중원(中原) 대륙(大陸)의 북방지대(北方地帶)가 아니다. 오늘날의 신강(新彊)과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북방지대(北方地帶)에 있었기 때문이다. 대국(代國) : 오늘날의 산서(山西)와 섬서(陝西)의 북방지대(北方地帶)에 있었다고 하였다.
➎ 〈주무왕(周武王)이 주(周) 왕조(王朝)를 건립(建立)할 시(時)에, 주인(周人)의 북방(北方) 변경(邊境) 땅에는 「숙신(肅愼)과 연(燕)과 호(毫)가 있었다.」 【筆者 註 : 호(毫)란 곧 맥(貉)-맥(貊)이다. 연(燕) 또한 하북성(河北省)에 없었다는 고증(考證)이다.】〉
결국(結局), 서주(西周)의 북방지대(北方地帶)에 있었다는 뜻이다. 함께 숙신(肅愼)과 연(燕)과 ‘호(毫)=호맥(胡貊)’이 있었다는 뜻이다. 연(燕) 또한 하북성(河北省)에 없었다는 뜻이다.
맥적(貊炙 : 통구이)은, 바비큐(barbecue)의 세계적(世界的) 원조(元祖)
➏ 〈동한(東漢) 때에, 맥인(貊人)들의 육류(肉類)를 불에 쬐어 익히는 방식(方式)이 중국(中國)에 전해 들어와, 이를 ‘맥자(貊炙)=맥적(貊炙)’라 불렸는데, 단장하고 음식물을 담는 그릇붙이를, 맥반(貊槃)이라고 불렀다.〉
‘맥인(貉人)=맥인(貊人)’들의 음식(飮食)과 그 음식을 담는 그릇이 동한(東漢) 때에 유행(流行)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當時)의 동한(東漢) 사람들은 육류(肉類)를 통구이처럼 구워 먹을 줄을 몰랐다는 것이다. “맥(貉)=맥(貊)”보다도 미개(未開)했다는 증거(證據)다.
➨➨➨ 오늘날의 한국인(韓國人)들은 ‘맥적(貊炙)=맥자(貊炙)’를 ‘적인(狄人) 또는 적인(翟人)’들의 것으로 여기며 우리와는 전혀 관계(關係)없다고 말한다. ‘맥(貊)=맥(貉)’이 바로 융적(戎狄)이라고 했음을 모르는 것이요, ‘구이(九夷)요, 동이(東夷)’임을 모르는 한심(寒心)한 처사(處事)다.
중국(中國)의 • “維基百科,自由的百科全書”에서도 : 〈貊炙(韓語:맥적),古代燒烤肉類食用的方法,源自貉族,為今韓國烤肉的前身。: 맥적(貊炙:맥자)은, 한국어로 맥적(貊炙)이라고 한다. 고대(古代)에 육류(肉類)를 불에 쬐어(익혀) 식용하는 방법인데, 맥족(貊族)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지금 한국에서 고기를 불에 쬐어 굽는 전신(前身)이다〉라고 하였다.
• 貊炙的記載可以追溯到東漢,由外族傳至中國,將動物全體燒烤後,再用刀切片來食用,清朝王先謙認為類似於現代的燒豬。: 〈‘맥적(貊炙)=맥자(貊炙)’를 기재(記載)한 것을 쫓아가면 동한(東漢)에 다다르는데, 외족(外族)으로부터 중국(中國)으로 전래(傳來)된 것인바, 동물(動物) 전체(全體)를 불을 쬐어 익힌 뒤에, 다시 칼로 조각내어 먹는 음식으로, 청조(淸朝)의 왕선겸(王先謙)은, 현대적(現代的)인 소저【燒猪 : 돼지 통구이】와 유사(類似)하다고 하였다.〉
• 韓國崔南善在《故事通》一書中認為貊炙起源於高句麗,將肉類串燒後燒烤,是韓國烤肉的前身。: 〈한국(韓國)의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의 “고사통”의 일서(一書)에서는, ‘맥적(貊炙)=맥자(貊炙)’의 기원(起源)이 고구려(高句麗)라고 하였고, 육류(肉類)를 꼬챙이에 곶은 뒤에 불에 쬐어 익히는 것으로, 이것은 한국(韓國)에서 고기를 불에 익혀 먹는 것의 전신(前身)이다〉라고 하였다.
① 干寶《搜神記》卷7:「胡牀,貊槃,翟之器也。羌煮,貊炙,翟之食也。自太始以來,中國尚之。貴人,富室,必留其器。吉享嘉賓,皆以為先。戎翟侵中國之前兆也」: 「호상(胡牀), 맥반(貊槃), 적(翟)의 그릇이다. 강자(羌煮), 맥자(貊炙)는 적(翟)의 음식이다. 태시(泰始) 이래로 중국에서 상용하였다. 귀인(貴人), 부실(富室)에서는 필수로 보유하는 그릇이다. 이것은 융적(戎翟)이 중국(中國)을 침략하는 전조(前兆)이다」라고 하였다. 【필자(筆者) 주(注) : 간보(干寶)는 동진(東晉) 때의 사학, 문학가(文學家)로 알려져 있다】
② 沈約, 宋書〈五行志〉:「晉武帝泰始後,中國相尚用胡牀、貊盤,及為羌煮、貊炙」: 「진(晉) 무제(武帝) 태시(泰始) 후에, 중국(中國)에서는 일상적으로 호상(胡牀:의자), 맥반(貊盤)과 강자(羌煮), 맥자(貊炙) 등을 사용하였다」라고 하였다. 【필자(筆者) 주(注) : 태시(泰始) 원년(元年)은, AD 265年이다. 晉 武帝[司馬炎, 236-290 : 사마의(司馬懿)의 손자(孫子)]
③ 劉熙, 釋名〈釋飲食〉:「貊炙,全體炙之。各自以刀割,出於胡貊之為也」: 유희(劉熙) 의 석명(釋名) 석음식(釋飮食) : “맥자(貊炙)는 전체를 굽는다는 것이다. 각자(各自)가 칼로 잘라라 나눠 먹는 것인데, 호맥(胡貊)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하였다. 【필자(筆者) 주(注) : 유희(劉熙)는 동한(東漢) 사람이다. ‘釋飲食’ 第十三에 있다】 王先謙補證疏:「即今之燒豬也」 : “왕선겸(王先謙)의 보증소(補證疏)에 곧 지금의 소저【燒猪 : 돼지 통구이】이다”라고 하였다.
➨➨➨「맥(貉)은 맥(貊)이요, 호맥(胡貉)은 호맥(胡貊)」으로 “융적(戎狄)”이라고도 했고, 고구려(高駒驪)의 일파(一派)였고, 구이(九夷)였으며, 동이(東夷)였다고 말하고 있는데. 한국인(韓國人)들은 ‘지’ 조상(祖上)도 모르고 관계(關係)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인(韓國人)들의 못마땅한 처사(處事)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지” 조상(祖上)들도 모르는??? 참 답답한 얘기다.
오늘날의 한국인(韓國人)들에게 “역사(歷史)는 있는가?”
오늘날의 한국인(韓國人)들에게 “역사관(歷史觀)은 자리 잡고 있는가?”
그저 “식민사관(植民史觀)과 반도사관(半島史觀)과 친일사관(親日史觀)” 논자(論者)들인 부역매국노(附逆賣國奴)들의 사탕발림과 달콤한 미사려구(美辭麗句)에 빠져 옳고 그름조차 분별(分別), 판단(判斷)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확실(確實)한 실정(實情)이리라!
우리가 오늘날 즐겨 찾고, 즐겨 먹는 “바비큐”의 원조(元祖)는 바로 “호맥(胡貉)=호맥(胡貊)”으로 이미 수천년(數千年) 전(前)의 음식문화(飮食文化)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 “통구이[바비큐]와 그릇(槃) 문화(文化)”는 : 중국(中國)에는 동한(東漢) 초(初)에, 서진(西晉) 무제(武帝) 태시(泰始) 때에는 일반적(一般的)인 음식문화(飮食文化)로 자리를 잡았는데, 서구(西歐)의 만족(蠻族)들은 AD 1,492년 신대륙(新大陸) 발견(發見) 이후(以後)에 ‘타이노-인디언’으로부터 전래(傳來)되어 1,500년대(年代)에 알려지기 시작(始作)했다고 ‘위키백과’는 전(傳)하고 있다.
“통구이[바비큐]와 사용(使用)되는 그릇(槃)” 등에 대해서는 : “맥(貊)”이 원조(元祖)다. 이미 수천년(數千年) 전(前)부터 자리 잡은 음식문화(飮食文化)라고 했기 때문이다.
➐ 〈전목(錢穆)은, 황하(黃河) 상류(上流)와 적석일대(積石一帶)라고 하였다.〉【錢穆 (1,895年 7月30日—1,990年 8月30日),原名錢恩鑅,字賓四,是出身江蘇無錫的歷史學家、哲學家及作家等】
근대(近代)의 학자(學者)인 ‘전목(錢穆)’은, ‘호맥(胡貉)=호맥(胡貊)’의 활동(活動)했던 곳을 “황하(黃河) 상류(上流), 적석일대(積石一帶)”라고 하였는데, 이곳은 “하서회랑(河西回廊), 청해성(靑海省), 기련산맥(祁連山脈)”이 있는 곳이다.
이곳은 중국(中國)에서도 서(西)쪽 땅(地)이다. 이런 여러 종류(種類)의 기록(記錄)으로 보면 : “맥(貉)=맥(貊)=호맥(胡貉)=호맥(胡貊)”으로 대표되는 “맥(貉)=맥(貊)”은, 이미 수천년(數千年) 전(前)부터 아세아(亞細亞)의 북방지대(北方地帶)를 터전 삼아 활동(活動)했던 고대(古代) 종족(種族)이었다는 것은 확실(確實)하다.
이러한 “맥(貉)=맥(貊)=호맥(胡貉)=호맥(胡貊)” 들이 반도(半島) 땅 춘천(春川)이나 강릉(江陵) 땅에 있었다는 말은 어이없는 코미디다. 매국사학자(賣國史學者)들은 부관참시(剖棺斬屍)당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반역자(叛逆者), 배신자(背信者), 부역매국노(附逆賣國奴)”이기 때문이다.
《北貊 : 穢貊 : 高句麗與小水貊 : 梁貊 : 북맥(北貊), 예맥(穢貊), 고구려(高駒驪) 소수맥(小水貊), 양맥(梁貊)의 종류(種類)가 있다.》라고 하였다.
《貉國爭議 : 在詩經中曾提到貊國。山海經記載貊國居於漢水,被燕國消滅 : 맥국(貊國)에 대한 쟁의(爭議)【서로 자기 의견을 주장하여 다툼】: “시경(詩經) 중에 “증자(曾子)”가 맥국(貊國)에 이르렀다는 것을 제시(提示)한다. “산해경(山海經)에 기재된 맥국(貊國)이 한수(漢水)에 살았는데, 연국(燕國)에게 소멸(消滅)되었다”라고 하였는데, 清朝吳承志認為,漢水指的是東北的遼河。清朝學者認為應是指扶餘或是高麗。: 청(淸)의 오승지(吳承志)는 : 한수(漢水)는 동북(東北)쪽의 요하(遼河)이며, 청(淸) 학자(學者)들은 부여(夫餘) 혹은 고려(高麗)를 말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 맥국(貊國)에 대해서는 많은 다툼이 있다고 하였다. 특히 산해경(山海經)에서 기록(記錄)된 “맥국(貊國)”은, “한수(漢水)에서 살았는데, 연(燕)에게 소멸(消滅)되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청(淸)나라 학자(學者)들은 ‘한수(漢水)’를 ‘요하(遼河)’라고 하면서, 맥(貊)이 아니라 부여(夫餘)나 고려(高麗)를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한수(漢水)는, 당시(當時)의 “하(河)”를 지칭(指稱)하는 것이다. 이것은 요사(遼史) 지리지(地理志) 남경도(南京道) 편에도 “공손도(公孫度)가 한수(漢水)에 걸터앉아[소유하고] 흥성(興盛)하였다”라고 하였다. 어떻게 한수(漢水)가 요하(遼河)가 될 수 있겠는가?
➨➨➨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오늘날의 중국(中國)의 학자(學者)들도 『맥(貉)=맥(貊)=호맥(胡貉)=호맥(胡貊)』은, 「하(河) 상류(上流)로부터 중원(中原) 대륙(大陸)의 북방지대(北方地帶)를 종횡무진(縱橫無盡)했던 부족(部族)으로, 국가(國家)로, 서술(敍述)하고 있다」라는 것이 확인(確因)된다.
고대(古代)의 “하(河)”는 「총령(葱嶺)【곤륜산(崑崙山)=불주산(不周山)】의 동북(東北) 모퉁이에서 발원(發源)하여, 타클라마칸 사막지대(沙漠地帶)를 잠행(潛行)하여 포창해(蒲昌海)에서 용출(湧出)하여, 커다란 호수(湖水)를 만들고 돈황(燉煌), 기련산맥(祁連山脈)을 따라 흘러 대적석산(大磧石山)으로 들어간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하(河) 상류(上流)가 어디를 말하고 있는지를 유추(類推)할 수 있다”
➨ ‘동한(東漢)=후한(後漢)’ 때부터 『맥(貉)=맥(貊)=호맥(胡貉)=호맥(胡貊)』의 영향(影響)으로 인하여 획기적(劃期的)인 음식문화(飮食文化)가 발전(發展)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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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註釋 [維基百科,自由的百科全書]
•《說文解字》:「北方貉,豸種也。」段玉裁註:「赤狄乃錯居中國,狄之一種耳。許書蟲部曰南蠻,曰東南,閩越。大部曰東方夷。羊部曰西方羌。豸部曰北方貉。則此必言北狄。狄與貉皆在北」: 설문해자(說文解字) : 「북방(北方)의 맥(貉)은, 벌레(豸) 종류다」 단옥재(段玉裁)의 주(註)에서는 : 「적적(赤狄)은 중국(中國)과 섞여 사는데, 적(狄)은 한 종(種)이다. 허서(許書)의 충(蟲) 부에서 남만(南蠻), 동남(東南)에는 민월(閩越), 대(大)부에서 이르기를 동방(東方)에는 이(夷), 양(羊)부에서 서방(西方)은 강(羌), 치(豸)부에서는 북방(北方)에는 맥(貉)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필히 북적(北狄)을 말하는 것이다. 적(狄)과 맥(貉)은 모두 북(北)쪽이다.」라고 하였다.
곧 『“맥(貉)은 맥(貊)”이다. 이들은 모두 북방(北方)에 있다』라는 뜻이다. 북방(北方) 땅이 “반도(半島) 땅이냐?” 필자(筆者)가 물어보고 싶은 말이다.
•《尚書正義》卷18:「成王旣伐東夷。」尚書傳:「海東諸夷,駒麗、扶餘、馯、貊之屬」 : ➨ 「성왕(成王)이 동이(東夷)를 쳤다.」 상서전(尙書傳)에서는 : 「해동(海東)의 여러 이(夷), 구려(駒麗), 부여(扶餘), 한(馯), 맥(貊)이 속했다.」라고 하였다.
•《周禮》〈春官〉:「凡四時之大甸獵祭,表貉則為位」 鄭玄註:「貉師祭也。貉讀爲十百之百」
•《周禮》〈夏官司馬〉:「職方氏:掌天下之圖,以掌天下之地。辨其邦國、都鄙、四夷、八蠻、七閩、九貉、五戎、六狄之人民,與其財用、九穀、六畜之數要,周知其利害。」疏:「九貉,卽九夷,在東方」
•《漢書》〈禮樂志〉:「姦偽不萌,祅孽伏息,隅辟越遠,四貉咸服」
•《說文解字》〈貉〉:「北方貉,豸種也。從豸,各聲。孔子曰:『貉之言貉。貉,惡也』」 : ➨ 설문해자(說文解字) 맥(貉) : 「북방(北方) 맥(貉)으로, 다리가 없는 벌레 종류다.」 공자(公子)가 이르기를 : 「맥(貉)의 언(言)은 맥(貉)인데, 맥(貉)은, 추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論語》〈衛靈公〉:「子曰:『言忠信,行篤敬,雖蠻貊之邦,行矣。』」
•《中庸》:「是以聲名洋溢乎中國,施及蠻貊」
•《墨子》〈兼愛中〉:「蠻夷醜貉,雖有周親,不若仁人」: ➨ 묵자(墨子) 겸애(兼愛) 중(中) : 「蠻夷(만이 : 미개한 오랑캐), 醜貉(추맥: 醜한 貉)을 구제하였다. 비록 지극히 친한 자가 있더라도 어진 사람보다 못하다.」라고 하였다.
•《白虎通義》卷3:「言夷狄者,舉始終也。言蠻,舉遠也。言貉,舉惡也」:
•《詩經》〈魯頌〉〈閟宮〉:「淮夷蠻貊,及彼南夷,莫不率從」
•《周禮》〈秋官〉:「貉隸:掌役服不氏,而養獸,而教擾之。掌與獸言。其守王宮者,與其守厲禁者,如蠻隸之事」
•《詩經》〈大雅〉〈韓奕〉:「以先祖受命,因時百蠻,王錫韓侯,其追其貊,奄受北國,因以其伯」 鄭玄註:「貊也,為玁狁所逼,稍稍東遷」: ➨「以先祖受命,因時百蠻 : 조상(先祖)의 명을 받들어 여러 오랑캐를 다스리시니 王錫韓侯, 其追其貊 : 왕께서 한(韓) 제후에게, 퇴와 맥을 다스리게 하시었도다 奄受北國, 因以其伯 : 북쪽 나라를 모두 맡아서, 그곳의 제후가 되시었도다」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은 주에서 말하기를 : 「맥(貊)이다. 험윤(玁狁)에게 핍박(逼迫)당하니 점점 동(東)쪽으로 옮겼다」라고 하였다.
•《墨子》〈兼愛〉中:「古者禹治天下,西為西河漁竇,以泄渠孫皇之水;北為防原泒,注後之邸,呼池之竇,灑為底柱,鑿為龍門,➨以利燕、代、胡、貉與西河之民」 : ➨ 묵자(墨子) 겸애(兼愛) 중(中) : 「以利燕、代、胡、貉與西河之民 : 연(燕)·대(代)·호(胡)·맥(貉)은 모두 서하(西河)의 백성(百姓)이다.」라고 하였다. 이때가 우(禹)임금이 천하(天下)를 다스릴 때다. 하(夏)의 우(禹) 임금은 ‘BC 2,207’년(年)이다.
이때의 ‘맥(貉)=맥(貊)’은 서하(西河) 땅에 살던 백성(百姓)들이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동북방(東北方)과는 정반대(正反對)의 방향(方向)으로 한반도(韓半島)나 그 북방지대(北方地帶)와는 관계(關係)없다는 뜻이다.
•《管子》卷20〈小匡〉:「中救晉公,禽狄王,敗胡貉,破屠何而騎寇始服。北伐山戎,制泠支,斬孤竹,而九夷始聽,海濱諸侯,莫不來服。西征,攘白狄之地,遂至於西河。方舟投柎乘桴濟河,至於石沈。縣車束馬,踰太行與卑耳之貉,拘秦夏,西服流沙西虞而秦戎始從。故兵一出而大功十二。故東夷、西戎、南蠻、北狄、中國諸侯,莫不賓服」
•《說苑》卷13:「晉文公伐衛,入郭,坐士令食,曰:『今日必得大垣。』公子慮俛而笑之。文公曰:『奚笑?』對曰:『臣之妻歸,臣送之,反見桑者而助之。顧臣之妻則亦有送之者矣』 文公懼,還師而歸,至國,而貉人攻其地」
•《戰國策》〈秦策〉〈秦一〉:「蘇秦始將連橫,說秦惠王曰:『大王之國,西有巴、蜀、漢中之利,北有胡貉、代馬之用,南有巫山、黔中之限,東有餚、函之固』」 : ➨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 진일(秦一) : 「소진(蘇秦)이 처음으로 연횡(連橫)을 하려 할 때에, 진(秦) 혜왕(惠王)에게 설명(說明 : 유세)하기를 : 대왕(大王)의 나라는 서(西)쪽으로 파(巴), 촉(蜀), 한중(漢中)의 이로움이 있고, 북(北)쪽으로는 호맥(胡貉), 대(代)의 말(馬)이 있고, 남(南)쪽으로는 무산(巫山), 검중(黔中)으로 한계(限界)하고, 동(東)쪽으로는 효(餚). 함(函)의 견고(堅固)함이 있다」라고 하였다.
「진(秦)나라의 북(北)쪽에는 호맥(胡貉)이 있으니, 이곳에서는 많은 전마(戰馬)를 구할 수 있을 테니, 이 모두가 진(進)나라의 이로움이 아니겠느냐」하는 것이다.
•《竹書紀年》:「魏襄王十七年,邯鄲命吏大夫奴遷於九原,又命將軍、大夫、適子、戍吏皆貉服」 : ➨ 죽서기년(竹書紀年) : 「위(魏) 양왕(襄王) 17년, 한단(邯鄲) 명리(命吏) 대부노(大夫奴)가 구원(九原)으로 옮기고, 또 명(命)을 받은 장군(將軍), 대부(大夫), 적자(適者), 수리(戍吏)가 모두 맥복(貉服)을 입었다.」고 하였으며,
또 〈據《竹書紀年》,趙王曾下令趙國官吏及軍隊改穿貉服 : 조왕(趙王)의 명으로 조국(趙國)의 관리(官吏)들과 군대(軍隊)는 고친 맥복(貉服)을 입었다.〉
이런 사실(事實)들을 바탕으로 보면 : 복장문화(服裝文化), 음식문화(飮食文化), 전쟁무기(戰爭武器)등의 ‘맥(貊) 풍속(風俗)’이 중원(中原) 땅에 획기적(劃期的)인 변화(變化)를 일으켰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곧 “고구려(高駒驪)는 아세아(亞細亞)의 패자(霸者)였다”라는 말과 같다. 곧 “맥(貉)=맥(貊)”은 “고구려(高駒驪)”였기 때문이다.
•《左傳》〈昭公九年〉:「及武王克商,蒲姑,商奄,吾東土也,巴濮,楚鄧,吾南土也,肅慎,燕,亳,吾北土也,吾何邇封之有」 : ➨ 좌전(左傳), 소공(昭公) 9년에 : 「무왕(武王)이 상(商)을 이겼는데, 포고(蒲姑), 상엄(商奄)은 우리의 동(東)쪽 땅이요, 파복(巴濮), 초등(楚鄧)은 우리의 남(南)쪽 땅이요, 숙신(肅愼), 연(燕), 호(毫)는 우리의 북(北)쪽 땅이다.」하고 하였는데,
소왕(昭王)은 BC 1,052에 즉위(卽位)한 것으로 되어 있으니, 9년(年)이면 “BC 1,043”년(年)이다. 본문(本文)의 “호(毫)”는 호맥(胡貊)=맥(貉)을 말하는 것이다. 음(音)이 같아 ‘맥(貉)을 호(毫)’라고도 한다.
이때도 역시(亦是) “맥(貊)=맥(貉)”은 북방지대(北方地帶)에 있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북맥(北貊)=북맥(北貉)”이라고도 한 것이다.
➨ ‘동북방(東北方)이나 반도(半島)’니 하는 말들은 모두가 ‘후대(後代) 학자(學者)들에 의해 왜곡(歪曲)되고, 조작(造作)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漢書》卷1〈高帝紀〉:「北貉、燕人來致梟騎助漢」 : ➨ 한서(漢書) 권1의 고제기(高帝紀)에서 말하기를 : 「북맥(北貊)과 연(燕)인이 사납고 날 샌 기마(騎馬)를 보내어 한(漢)을 도왔다」라고 하였다.
•《詩經》〈大雅〉〈韓奕〉:「王錫韓侯,其追其貊,奄受北國,因以其伯」孔安國傳:「追、貊,國名」 : ➨시경(詩經), 대아(大雅), 한혁(韓奕)편에서 이르기를 : 「王錫韓侯, 其追其貊 : 왕께서 한(韓) 제후에게, 퇴와 맥을 다스리게 하시었도다 奄受北國, 因以其伯 : 북쪽 나라를 모두 맡아서, 그곳의 제후가 되시었도다」라고 하였는데,
공안국(孔安國) 전(傳)에서 말하기를 : 「퇴(追)와 맥(貊)은, 나라 이름이다」라고 하였다.
•《山海經》〈海內西經〉:「貊國在漢水東北,地近燕,滅之」 : ➨ 산해경(山海經)의 해내서경(海內西經) 편에서는 : 「맥국(貊國)은 한수(漢水) 동북(東北)쪽에 있는데, 땅이 연(燕)나라에 가까이에 있어, 소멸(消滅)되었다」라고 하였는데,
청(淸)나라 사학자(史學者)들은 : ‘한수(漢水)는 요하(遼河)다’라고 하였다는 것인데, 한수(漢水) 어떻게 “요하(遼河)”가 될 수 있겠는가! 『당시(當時)의 한수(漢水)는 “하(河)” 상류(上流)를 지칭(指稱)한 것이다』라고 본다.
•《孟子》〈告子下〉:「白圭曰:『吾欲二十而取一,何如?』 孟子曰:『子之道,貉道也。萬室之國,一人陶,則可乎?』 曰:『不可,器不足用也。』 曰:『夫貉,五穀不生,惟黍生之。無城郭、宮室、宗廟、祭祀之禮,無諸侯幣帛饔飧,無百官有司,故二十取一而足也。今居中國,去人倫,無君子,如之何其可也? 陶以寡,且不可以為國,況無君子乎?欲輕之於堯舜之道者,大貉小貉也;欲重之於堯舜之道者,大桀小桀也。』」
•《說文解字》卷10:「貔,豹屬,出貉國。從豸𣬉聲。《詩》曰:『獻其貔皮。』《周書》曰:『如虎如貔。』貔,猛獸。」 : ➨ 설문해자(說文解字) 10 : 「비(貔)는, 표범(豹)에 속하는데, 맥국(貊國)에서 나온다.」 시(詩)에서 이르기를 : 「비피(貔皮)를 헌상하였다」라고 하였다. 주서(周書)에서 이르기를 : 『호랑이는 비(貔)와 같다』 비(貔)는 맹수(猛獸)다」라고 하였다.
◆ ‘필자(筆者) 주(註)’ : 비(貔)는, 비휴(豼貅)를 말하는 것인데. 범(虎)과 비슷하다고도 하고 곰(熊)과 비슷하다고도 하는 맹수(猛獸). 비(貔)는 수컷이고, 휴(貅)는 암컷을 말한다[한자사전]. 이러한 맹수(猛獸) ‘비휴(豼貅)’가 반도(半島) 또는 그 북방지대(北方地帶)에서 나온다는 그 어떤 증거(證據)도 없다. 이는 “중국(中國)의 전설적(傳說的)인 서수(瑞獸)”라고 하였다.
貔貅 [維基百科,自由的百科全書] : 「又稱辟邪、天祿。為中國傳說的一種瑞獸 : 또 칭하기를 벽사(辟邪 : 요귀(妖鬼)를 물리치는 것), 천록(天祿)이라고도 한다. 중국(中國)의 전설적(傳說的)인 일종의 瑞獸(서수: 상서로운 동물)을 말한다」라고 하였으니,
결과적(結果的)으로 보면 : 『‘맥(貉)=맥(貊)’ 즉 고구려(高駒驪)는 중국(中國)이었다』라는 말과 같은 뜻을 내포한다. 왜냐하면 ‘비휴(豼貅)’는 오직 “맥(貉)=맥(貊)”에서만이 산출(産出)되는 맹수(猛獸)인데, 이 동물(動物)은 중국(中國)의 전설적(傳說的)인 상서(祥瑞)로움을 나타내는 동물(動物)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맥(貉)=맥(貊)”은 곧 “구려(駒驪)=고구려(高駒驪)”이기 때문이다.
필자(筆者)의 견해(見解)가 오류(誤謬)라면 생각한다면 언제든지 반론(反論)의 문(門)은 열려있다. 다만 논거(論據)는 선택(選擇)이 아닌 필수(必須)다. [필자(筆者) 주(註) / 끝]
•《說文解字》卷11:「鮮, 魚名,出貉國。從魚,羴省聲。」 : ➨ 설문해자(說文解字) 11 : 「선(鮮)은 물고기 이름인데, 맥국(貊國)에서 난다」라고 하였는데,
“선(鮮)”이라는 물고기는 어떤 종류(種類)의 물고기일까? 물고기 이름이란 것과 그 물고기가 산출(産出)되는 곳은 “맥(貊)”이라는 것, 외(外)는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없다.
•《荀子》卷1〈勸學〉:「干、越、夷、貉之子,生而同聲,長而異俗,教使之然也」
• 劉熙《釋名》〈釋飲食〉:「貊炙,全體炙之,各自以刀割。出於胡貊之為也」➨ 위의 글 ③의 설명(說明)을 참조(參照)
• 干寶《搜神記》卷7:「胡牀,貊槃,翟之器也。羌煮,貊炙,翟之食也。自太始以來,中國尚之。貴人,富室,必留其器。吉享嘉賓,皆以為先。戎翟侵中國之前兆也」➨ 위의 글 ①의 설명(說明)을 참조(參照)
• 沈約《宋書》〈五行志〉:「晉武帝泰始後,中國相尚用胡牀、貊盤,及為羌煮、貊炙」➨ 위의 글 ②의 설명(說明)을 참조
• 《史記》〈趙世家〉:「襄子齊三日,親自剖竹,有朱書曰:『趙毋卹,余霍泰山山陽侯天使也。三月丙戌,余將使女反滅知氏。女亦立我百邑,余將賜女林胡之地。至於後世,且有伉王,赤黑,龍面而鳥噣,鬢麋髭髯,大膺大胸,修下而馮,左袵界乘,奄有河宗,至於休溷諸貉,南伐晉別,北滅黑姑。』襄子再拜,受三神之令。」 ➨〈正義〉:「音陌。自河宗、休溷諸貉,乃戎狄之地也」 : ➨ 정의(正義) : 「음(音)은 맥(陌)이다. 하종(河宗), 휴혼제맥(休溷諸貉)은, 융적(戎狄)의 땅(戎狄之地)에 있다.」라고 하였는데,
휴혼제맥(休溷諸貉)은, ‘맥(貉)=맥(貊)’의 일파(一派)다. 이들은, 「休溷諸貉 : 在趙襄子時,晉國領土曾擴張到林胡之地,臨接休溷諸貉. : 휴혼제맥(休溷諸貉) : 조양자(趙襄子) 때에 있었는데, 진(晉)나라가 영토(領土)를 일찍이 확장하여 ‘임호(林胡)의 땅’에 닿았는데, 휴혼제맥(休溷諸貉)이 가까이에 임하였다. 休溷之貉的居住區域,在文獻中沒有明確記載。錢穆認為應在黃河上游,積石一帶。: 휴혼제맥(休溷諸貉)의 거주지(居住地)는, 문헌(文獻)중에 없어진 것도 있지만 명확(明確)하게 기재된 것도 있다. 전목(錢穆)은 황하(黃河) 상류(上流), 적석일대(積石一帶)라는 것을 인정하였다.」라고 하였다. ➨ 위의 글 ➐ 참조
• 清吳承志《山海經地理今釋》:「漢水,當為遼水之誤」➨ 청(淸)나라의 오승지(吳承志)는, 산해경지리금석(山海經地理今釋)에서 말하기를 : 「한수(漢水)는, 요수(遼水)의 잘못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오승지(吳承志)는. ‘AD 1,844年∼1,917年’의 근세(近世)의 인물(人物)이라는 것을 감안(勘案)하여 보면 : “서방(西方) 땅의 요수(遼水)”라면 이해(理解)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요녕성(遼寧省) “요수(遼水)”라고 한다면 이는 헛소리로 치부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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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의 중국(中國)에서 설명(說明)하고 있는 “호맥(胡貉)=호맥(胡貊)=맥(貉)=맥(貊)”에 대해서 : 여러 종류(種類)의 고전(古典)을 인용(引用)하여 설명(說明)하고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를 번역(飜譯) 해설(解說)하였다.
➨ 있는 그대를 말한다면: 오늘날의 역사해설(歷史解說)은, 「반역자(叛逆者), 배신자(背信者), 부역매국노(附逆賣國奴)들의 작품(作品)」이라고 호언장담(豪言壯談)할 수 있다.」
➤➤➤ 〈오늘의 중국(中國)에서도 “맥(貉)=맥(貊)=호맥(胡貉)=호맥(胡貊)”은, 하(河) 상류(上流)로부터 중원대륙(中原大陸)의 북방지대(北方地帶)에서 패자(霸者) 노릇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즉(卽) 복장문화(服裝文化), 음식문화(飮食文化), 전쟁무기(戰爭武器 : 貊弓)와 맥(貊)에서만이 나오는 비휴(豼貅)가 중국(中國)의 전설적(傳說的)인 서수(瑞獸)라는 것은, 곧 “중원대륙(中原大陸)의 주인공(主人公)은 맥(貊)이었다”라는 것이고, “맥(貊)은 곧 고구려(高駒驪)였으니, 중원(中原)의 패자(霸者)는 곧 고구려(高駒驪)였다”라는 것이다.
➨➨➨ 이러한 “맥(貉)=맥(貊)”이 「반도(半島) 땅, 동(東)쪽 모퉁이 새끼손가락만 한 땅에 성(城)을 쌓고 도읍(都邑)했다」라는 말은, 한민족(韓民族)을 능멸(陵蔑)하고, 비하(卑下)하며, 업신여기는 것이다. 이게 누구 탓인가? 이게 누구 때문인가?
한민족(韓民族)이, 조선민족(朝鮮民族)이 언제까지 이렇게 비웃음당하며, 능멸(陵蔑)당하며, 스스로 비하(卑下)하며, 업신여김을 당하며 살아갈 건가?
언제까지 무작정(無酌定), 막무가내(莫無可奈) 사대사상(事大思想)으로 이 나라의 안위(安危)조차 맡기며 살 건가? 자주(自主), 자립(自立)은 언제부터 시작(始作)할 건가? 이 민족(民族)과 이 나라(國家)는, “보수우파(保守右派)가 죽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라는 말이 회자(膾炙)된다는 것은 심각(深刻)한 이야기다.
무능력(無能力)하고, 무책임(無責任)하며, 지도자(指導者)로서 당면과제(當面課題)나 미래(未來)를 위한 정책(政策) 하나 제대로 수립(樹立)하지 못하고, 오직 하는 짓이라고는 국민(國民)들을 기만(欺瞞)하는 거짓말이나 하는, 검찰조직(檢察組織)을 통한 권력장악(權力掌握)에만 혈안(血眼)이 되어 있는 “정권(政權)”을 이대로 놔두어야 하는 건가?
5,200만 국민(國民)들을 : 사적(私的)인 이득(利得)을 취(取)하고자 갈라치고 분열(分裂)을 책동(策動)하는 지도자(指導者)는 최악(最惡)의 악몽(惡夢)이다. 이런 지도자(指導者)는 하루라도 빨리 제거(除去)하지 않는다면 결국(結局) 그 피해(被害)는 오로지 국민(國民)들에게 돌아간다.
‘2년’ 차(次)다. 도대체 그동안 해 놓은 일이 뭐냐?
“전(前) 정권(政權) 타령(打令)밖에 없다.”
〈이러한 정권(政權)을, 오늘의 대한민국(大韓民國) 땅에서 발을 붙일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애국애족(愛國愛族)’이며, ‘구국(救國)의 일념(一念)’으로 이런 정권(政權)은 궤멸(潰滅)시키는 것이 바로 “이 나라와 이 민족(民族)”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다〉
우리에게 제2의 국치일(國恥日)【1,910년 8월 29일】은 없다. 무작정(無酌定), 무대포, 막무가내(莫無可奈) 친일논자(親日論者)들에 대한 경계(警戒)를 늦춰서는 안 된다.
2023년 11월 26일 [글쓴이 : 문무(文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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