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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세계의 진실"
(하세가와 게이타로 著)
제4장 중국은 틀림없이 붕괴한다 (part2)
폭동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중국 정부
경기의 혼미와 실업자의 증가, 금융불안, 환경파괴 등등, 중국정부로서는 두통거리가 산적한 가운데 데모와 폭동이 빈발하고 있다.
1989년 천안문에 10만명이 모여 데모를 벌였다. 이것을 탄압한 것이 천안문 사건이다. 그 때의 데모의 주체는 학생과 지식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 만에 부서졌다.
그러나 지금 데모의 주체가 되어있는 것은 실업자나 생활 곤궁자이다. 이미 실업자 수는 1억을 돌파했다고 한다. 그 가족을 포함한 생활 곤궁자는 수억 인의 레벨일 것이다. 그들은 생활이 걸려 있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하게는 끌어내릴 수 없다. 최초는 관제 데모이더라도 일단 정부의 제어에서 벗어나면 수습하기 어려운 사태, 즉 폭동으로 발전할 우려가 있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민중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은 위험한 미디어다. “아랍의 봄”(*1)에서는 민중이 정권을 뒤집어 엎는데 인터넷이 중요한 무기가 되었는데, 2011년 7월의 고속철도 탈선 사고에서 차량을 묻은 것에 맹렬한 비판이 비등한 것이 보이도록 중국에서도 네트웍 여론이 힘을 가하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순간에 정보가 확산하기 때문에 이른 단계에서 막지 않으면 손댈 수 없게 된다. 그래도 중국에서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 수는 5억6천4백만이라 하며 게시판이나 블로그 등에 올리는 정보는 팽대하다. 그것을 체크하기 위해 “전파경찰”이란 감시조직이 있다. 여기에 종사하는 사람 수가 약 10년 전에 15만이라고 했는데 현재는 30만으로 배증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까지 하고 있어도, 2012년 일어난 1만인 이상이 모인 폭동은 중국 전체에 400건 이상이 되었다. 2013년이 되어도 그 세는 멈춰지지 않는다. 당연 그럴 것이다. “먹을 것이 없다”. “한파가 와도 난방 연료를 살 수 없다”. “살 곳이 없어졌다”. 그에 대해 정부는 아무것도 해 주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폭동을 일으켜 침탈하는 외에 수단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 경제는 끔찍이 나쁜데 나쁜 정보는 될 수 있는 대로 억제하고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중국 정부는 단단히 경계하고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일본에 대한 보도이다. 일본으로부터 투자가 없어진다면 중국 경제는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1) “아랍의 봄” : 2010년에서 2012년에 걸쳐 아랍 세계에서 일어난 반정부 운동. 튜니지아의 재스민 혁명에서 이집트, 리비아로 파급되었다.
습근평 지도부의 적은 문혁파
여기서 중국의 정치로 눈을 돌려보자. 2013년 3월에 습근평(習近平, 시진핑) 정권이 정식으로 성립했는데 2012년 11월의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7인이 결정되었을 때 실질적인 지도부가 확정된 것이다. (*1) 그것은 호금도가 강택민에게 패한 것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호금도 직계는 이극강(李克强, 리커창) 1인 뿐으로, 새로운 상무위원은 중간파를 포함하여 강택민파에 의해 점령되었기 때문이다.
강택민이 이겼다 해도, 그것이 습근평의 승리는 아니다. 습근평의 정권 기반은 위약하다. 중국에서 습근평은 라스트 엠퍼러라고 일컬어지는 모양인데 그대로이다.
솔직히 말하면 공산당 지도부가 중국의 내정을 컨트롤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북한 위기다. 북한이 핵개발과 미사일 개발을 진행하더라도 그것을 아무도 멈출 수 없다. 벼랑끝 외교라는 용어가 유포되어 북한은 흡사 미국이나 중국을 상대로 자기들의 군사력을 카드로 해서 무언가를 이끌어 내려 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실은 중국의 내정 문제이다. 중국이 약체화하여 북한을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반 습근평 세력이 북한을 장악하고 있고, 거기에 습근평은 손가락 하나 댈 수 없다는 것이다.
반 습근평 세력이란 공청단(*2), 태자당(*3)과 같은 출신에 의한 파벌과 관계가 없다. 모택동을 신봉하고 문화대혁명을 지지하는 문혁파를 말한다.
문화 대혁명의 주역인 모택동의 사후, 권력을 장악한 등소평은 개혁개방노선으로 전환했다. 이후, 개혁개방파와 문혁파가 대립하는 구도가 계속되어 왔다. 다만, 개혁개방노선으로 경제가 성장하고 그 속에 풍요하게 된 사람들은 개혁개방노선을 지지하며, 자유라고 하는 것의 일단을 아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개혁개방노선을 지지한다. 따라서 국민의 다수는 개혁개방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문혁파가 아니라 개혁개방파의 편에 있다. 문혁파는 오랜 기간 소수파였다.
그러나 작금은 상황이 변했다. 실업한 사람들이나 취직할 수 없는 대졸자 중에는 개혁개방노선의 희생이 되었다고 느끼는 자가 많다. 그 때문에 문혁파가 다시 세를 만회했던 것이다.
상징적인 사례를 하나 들어 보자. 첨각열도(尖閣列島 센가쿠열도, 釣魚島 조어도) 문제를 이유로 행해진 2012년 반일데모가 있었다. 실업자등의 불만에 대해 김빼기로서 중국정부가 이를 이용해 데모를 묵인할 뿐만 아니라 1백 위안(약 200옌)의 일당을 지불하여 참가자를 동원했다.
그러나 9월 19일을 경계로 반일 데모가 억제되었다. 왜 태도가 변하였나. 가장 큰 원인은 데모 참가자 가운데 모택동의 초상화를 들고 있는 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문혁파의 반정부 데모로 전화될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데모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키를 잡았던 것이다.
*1) 2012년 11월에 결정된 정치국상무위원 : 중국공산당 18기 중앙위원회 제11회 총회에서 선출된 정치국상무위원은 다음의 7명. 習近平, 李克强, 張德江, 兪正聲, 劉雲山, 王岐山, 張高麗.
*2) 공청단 (共靑團) : 중국공산주의 청년단은 공산당의 젊은 엘리트의 청년조직. 전 국가 주석 호금도나 현수상 이극강은 공청단 출신이다.
*3) 태자당 : 중국의 공산당 고급 간부의 자제 그룹으로서 특권과 인맥을 기반으로 영향력을 갖는다. 현재의 지도부는 습근평이 대표.
북경의 중앙정부와 인민해방군은 일체가 아니다.
문혁파는 국민 가운데 소수라고 했지만 유력한 지지층이 있다. 그것은 인민해방군이다. 간부는 모두 문혁파이다. 그들은 요컨대 선군정치를 하고 싶다. 문혁 때는 선군 정치였고 인민해방군이 나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권위가 있었다.
아무리 홍위병이 난폭하게 굴어도 인민해방군이 온다고 하면 홍위병은 순하게 되었다. 또 인민해방군에 대해서 순종하지 않는 홍위병은 사살되었다.
나는 “오주혈전(俉州血戰)이라는 책이 있다. 인구 50만 정도의 고슈라고하는 마을이 광동성에 있다. 거기서 인민해방군과 홍위병과의 사이에 전투가 있었다. 어떠한 사정으로 일어나서 어떠한 결과가 되었는가를 쓴 책인데, 그때의 전투에서 인민해방군은 홍위병을 학살했다. 매일같이 수백구의 학살된 사체가 주강(珠江)을 따라 홍콩의 해안에 밀려왔다. 그 무렵 홍콩은 영국령이고 홍콩 정청은 사체를 모아 화장했다.
문혁에서 맹위를 떨친 홍위병이라도 인민해방군 앞에서는 형편없는 것이다. 그 정도의 힘이 있던 인민해방군인데 개혁개방노선이 나아감에 따라 존재감이 박해져 갔다. 경제가 발전하여 모두가 자유롭게 된다면 군의 지위가 내려가는 것은 당연하다.
또 하나, 인민해방군의 간부가 문혁파를 지지하는 이유가 있다. 인민해방군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군대가 아니라 중국공산당의 군대이다. 그 의미하는 바는 “혁명을 위한 군대”라는 뜻이다. 그래서 모택동 사상에 근거하여 농촌으로부터 무력혁명을 확대하여 세계를 변화시킨다고 군의 간부는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개혁개방노선은 무력혁명의 부정이다. 인민해방군에서 말하면 공산당은 건국 당시와 같은 공산혁명을 위한 조직이 아닌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부르주아지가 공산당원이 될 수 있도록 규칙이 개정된 것에서도 명백하다. 본래 공산당은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병사에게 입당자격이 있었다. 요컨대 중국공산당은 권력을 갖지 않은 빈자를 위한 정당이었다. 그러던 것이 2002년 당대회에서 경영자도 당원이 될 수 있다고 규칙이 바뀌었다. 이것은 공산당을 국민정당으로 할 의도였던 것인데, 인민해방군 측에서 보면, 혁명정당임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과 같다.
게다가 호금도는 인민해방군을 당의 군대에서 나라의 군대로 하려고 했다. 앞에서도 이야기한대로 인민해방군 측은 어디까지나 공산혁명을 세계에 퍼뜨리는 공산당의 군대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국군화에 반대했다. 결국 호금도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등소평 이후, 강택민, 호금도, 습근평과 공산당의 톱이 진행하는 개혁개방 노선은 인민해방군으로서는 자기들의 존재 의의를 부정 당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중국은 개혁개방노선으로 전화하면서부터 정치와 군의 대립이 생기고 그것이 호금도 시대 이후 한층 더 심각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북경의 중앙 정부와 인민해방군은 결코 일체는 아닌 것이다.
중국 정부는 해군을 회유하기 위해서 항공모함을 만든다.
육군뿐만 아니라, 해군도 또 북경의 지도부가 컨트롤할 수 없게 되어가고 있다. 그것을 이야기하는 사례가 2013년 1월에 일어난 중국해군의 함선에 의한 화기관제 레이다 조사(照射) 사건이다.
통상의 레이다와 달리, 화기관제 레이다가 향해지는 것은 공격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국제법에서는 대항조치를 취하는 것이 허용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우발적으로 전투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지극히 위험한 행위이다. 그러한 것을 현장의 판단으로 마음대로 했던 것이다.
레이다 조사사건에서는 우선 일본이 발표했다. 곧 중국의 모든 신문이 보도했는데 일본측 담화를 인용한 보도 밖에 없었다. 당초 중국 외무부의 대변인이 기자회견에서 표명한 것은 “아무런 정보도 없다”는 것이었다. 해군의 보고가 북경에 와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후일, 일본의 날조라고 처음 말을 꺼내었다.
첨각열도 문제에서 중국은 일본에 대하여 강한 태도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해군 측으로 보면 “정부의 유약함이 문제를 꼬이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그래서 해군은 정부에 압력을 가하려 했고 화기관제 레이다를 조사하는 것과 같은 행동을 취한다. 북경의 중앙 정부는 그것을 제지할 수 없어서 무언가를 저지르는 것을 묵인하고 대외적으로 “날조다.” “책임은 일본에 있다.”고 강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 해군은 처음으로 항공모함 요녕을 배치했다. 그 밖에 4척의 항모를 건조 중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해군의 비위 맞추기이다.
항공모함은 특수한 군함으로 건조한 항모를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통상의 함선 보다 운용을 위한 준비가 현저히 많다. 무엇보다도 항공모함의 무기는 함재기이다. 그 발함(發艦)과 착함(着艦)은 파일럿의 숙련도 뿐 아니라 함재기를 갑판에 유도하는 기술을 비롯해서 고도의 기술이 요구된다. 미 해군이라 해도 나날의 훈련을 쌓고 실패나 사고를 경험하면서 항모를 전력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의 항공모함이 타국의 위협으로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또,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번 취항한 요녕은 능력의 점에서 미 핵항모 보다 열등하다. 항모의 전투력은 함재기의 능력에서 결정된다. 항속 거리, 장착하는 병기가 우수하면 우수한 만큼 함재기의 중량이 커지게 된다. 미국의 항공모함 로날드 레이건은 34 톤의 함재기를 띄운다.중국의 요녕은 24 톤의 함재기 밖에 띄울 수 없다. 이 차이는 캐터펄트에 있다. 로날드 레이건은 원자력을 사용하여 수증기를 발생시켜 이것을 탱크에 압축시켜 단숨에 방출한다. 그 힘으로써 함재기는 발진해서 2초 만에 시속 250 Km에 달한다. 한편 갑판의 선두가 휘어진 “커브 덱”의 요녕에는 캐터펄트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 차이가 결정적으로 크다.
항공모함은 건조도 운용도 거액의 코스트가 든다. 해군력 강화를 기도하면서 다른 곳에 돈을 써야 할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항공모함에 거액의 예산을 쏟는 것은 해군을 이반시키지 않기 위한 사탕이다.
중국 최강의 군대를 가진 심양군구
강택민 후의 호금도, 습근평은 공산당 군사위원회 위원장이라도 인민해방군을 전혀 통제할 수 없다.
이것이 북한 위기의 문제에서 나타나고 있다. 반습근평의 세력이 북한을 장악하고 있고, 거기에 습근평은 손가락 하나 댈 수 없다”고 일컫는 것은 공산당 간부 레벨에서의 권력 투쟁이 아니라 현재 공산당 지도부가 인민해방군의 지배하에 있는 북한을 어떻게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속말로 “세 개의 50만 톤”이라는 말이 있다. 석탄, 원유, 곡물을 각 50만 톤씩 중국이 북한에 무상으로 제공한다고 하는 원조계약이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원유 50만 톤인데 북한은 중국 경유로 원유를 공급받고 있다. 중국은 그 원유 공급을 중단했다고 하나 정말 그만두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북한에게 원유 공급원은 단동에서 신의주로 이어지는 압록강 하구에 부설된 파이프 라인 한 줄기 밖에 없다. 이 유일의 파이프 라인이 상징하는 바와 같이 중국은 북한 경제의 목덜미를 누르고 있다. 따라서 중국이 북한을 완전히 컨트롤하고 있다.
다만 대북용 밸브를 잡고 있는 것은 북경의 중앙 정부가 아니다. 북한과 1천 3백 Km의 국경을 접하고 있는 심양군구(*1)이다. 따라서 정확히는 “중국의 인민해방군 심양군구가 북한을 컨트롤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심양군구와 북한은 비즈니스에서도 연결이 있다. 북한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희유금속(rare metal, 稀有金屬, 산출량은 적지만 유용한 금속원소를 총칭하는 말로 희소금속이라고도 함)을 대량 산출하고 있는 나라로서 매장량이 많다. 2011년까지 희유금속을 판매하는 중국의 상사는 모두 상해에 있었는데 2011년에 대련으로 끌어 왔다. 대련은 심양군구가 관할하는 도시이다.
원조의 주체라고 하는 것 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심양군구는 북한에 대하여 강한 영향력을 가진다. 심양군구에서 평양까지 직선 거리면 180 Km이다. 일본으로 말하면 도쿄-시즈오카 사이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심양군구의 전력과 북한군의 전력을 비교하면 전자가 압도적이다. 심양군구가 압록강을 넘는다면 평양을 제압하기 까지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말하는 것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될는지 모른다”고 심양군구가 위협한다면 북한은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실은 인민해방군의 7개 군구 가운데 심양군구가 뛰어나게 강한 힘을 갖고 있다. 육군 전투부대의 70%가 심양군구에 집중해 있고 그것도 가장 전력이 충실한 부대가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전차, 미사일, 보병으로 구성되는 기계화 군단은 1개 군이 약 10만인데 인민해방군이 보유한 5개 군 가운데 4개 군이 심양군구에 배치되어 있다. 기계화 군단 1개 군에 국방비의 약 8%가 쓰이기 때문에 심양군구의 기계화 군단만으로도 국방비의 16%를 점하고 있다.
왜 이 정도로 심양군구가 중시되는가 하면, 가장 긴 국경선을 경비하기 때문이다. 북한과의 1천3백 Km, 러시와의 3천5백 Km, 몽골과의 1천 Km, 합하여 약 6천 Km이다. 중국이 접하는 국경의 대부분, 그것도 가장 중요한 국경선을 경비할 책임을 심양군구가 맡고 있다.
인민해방군의 엘리트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심양군구가 선군정치를 요구하여, 문혁파를 지지하고 북경의 중앙정부와 대립하고 있다.
대립이라고 해도, 심양군구가 지닌 전력은 다른 대군구에 비하여 현격하게 크기 때문에 심양군구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중앙정부는 대항할 수 없다. 단 하나 심양군구에 없는 것은 핵병기이다. 핵병기의 저장시설은 성도군구(*2)에 있다. 그를 위해 성도군구에 기계화 군단 1개 군이 배치되어 있다.
다만 심양군구와 북경은 150 Km 밖에 떨어져있지 않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움직임이 탐지되기라도 한다면, 수일 내에 북경은 제압되어 버린다. 그래서, 성도군구의 핵병기의 심양군구에 대한 억지력은 그정도로 크지 않다.
실질적으로 심양군구는 북경의 중앙정부로부터 독립해 있다고 말해도 좋다.
*) 심양군구(瀋陽軍區) : 동북부 요녕성군구, 길림성군구, 흑룡강성군구, 내몽골 자치구 동부, 여대(旅大) 경비구를 관할한다.
*2) 성도군구(成都軍區) : 사천성군구, 운남성군구, 귀주성군구, 티베트 자치구군구, 중경군구를 관할한다.
심양군구가 북한에게 핵개발을 하도록 시키고 있다.
“북한은 경제가 너무나 피폐해 있기 때문에 식품 등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핵개발이나 핵미사일 개발을 하고 있다. 자기들의 군사력을 카드로 해서 국제사회로부터 지원을 이끌어 내려 하고 있다.
이것이 북한 위기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다. 북한의 핵병기는 워싱턴에만 향해진 것이 아니라 북경에도 향해 있다. 중국정부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중국이 북한을 쳐부수지 않는 최대의 이유는 인민해방군의 심양군구에 있다. 결국 북한 위기란 북경의 중앙정부 대 심양군구라고 하는 중국 내부의 싸움인 것이다.
확실히 말해 두자. 핵병기 개발도 핵미사일 개발도 하도록 하고 있는 것은 심양군구이다. 무엇을 위해 핵병기나 핵미사일 개발을 시키는 것인가. 심양군구가 북경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킬 때, 북한의 핵병기를 북경으로 향하여 가격할 것이라고 위협하기 위해서이다. 요컨대 심양군구는 자기 대신 북한에게 핵병기 개발을 시키고 있다. 그래서 금후 북한이 핵개발을 진행하는 것은 틀림없다.
북경의 중앙정부와 심양군구와의 대립을 이야기하는 것은 2012년 4월 북한이 행한 핵미사일 발사 실험이다. 그 2주간 전에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 “미사일개발도 핵개발도 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24만 톤의 식량을 공급한다는 합의가 나왔다. 이 협정이 있은 지 2주 후에 미사일을 쏘았다고 하는 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
최대의 포인트는 심양군구가 호금도와 온가보(溫家寶, 원자바오, 전총리)의 지도부에 보복했다고 하는 것이다. 무엇에 대한 보복인가. 2012년 3월 중경시 공산당위원회 서기 부희래(簿熙來, 보시라이)가 실각한 것에 대한 보복이다.
중경시는 북경시나 상해시와 같은 직할시이며 공산당 위원회 서기는 그 톱이다. 동시에 부희래는 공산당 정치국 위원이기도 하며 2012년 11월에는 정차국 상무위원으로 들어 갈 것이 유력시 되고 있었는데, 권력투쟁에서 패한 것이다. 중국의 권력투쟁이라면, 태자당과 공청단의 파벌투쟁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으나, 부희래는 문혁파의 유력자였다. 중격시의 톱이 되자 모택동 시대 애창되던 “창홍(唱紅)이라는 혁명가의 가라오케를 매일 유포시키기도 하고 “중경타흑(重京打黑)”이라 하여 개혁개방 경제로 성공한 경영자들을 체포하여 재산을 몰수하기도 했다. 결국 부희래의 경우 개혁개방파와 문혁파의 권력투쟁이었다.
실각한 직접의 이유는 처가 저지른 영국 사업가 살해 사건이다. 그러나 실제는 개혁개방경제를 부정하는 정치자세가 트집 잡힌 것이다. 요컨대, 개혁개방파가 문혁파에 이긴 것이다.
호금도 지도부의 정치국 상무위원에 문혁파는 없다. 문혁파로서는 부희래의 상무위원 취임은 커다란 목표였다. 앞서 말 한대로 문혁파의 유력한 지지층은 인민해방군인데 그것이 부서진 것에 당연 성을 낸 것이다. 그 중에도 심양군구는 격렬했다. 심양군구 내의 대련 시장, 요녕 성장을 역임한 부희래는 “심양군구의 에이전트” 이라 일컬을 정도로 연계가 깊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그날 그날 호도하며 살 수 밖에 없다
2012년 4월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은 공중분해 하여 실험은 실패했다. 그러나 심양군구로서는 그래도 염려없다. 요컨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으로 북경의 중앙 정부가 곤란해지면 되는 것이다.
북한 위기에 대하여 국제사회는 중국도 제재에 동참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것을 정면으로 거부하면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위험이 있다. 그 결과 구미와의 무역에 지장이 된다면 그렇지 않아도 엄한 경제 상황이 더욱 악화한다. 그것은 보다 많은 폭동을 불러 체제를 붕괴시킬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북경의 중앙 정부는 국제 사회에 동조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국제사회에 동조하면 심양군구가 반기를 들 두려움이 있다. 그 때 중국은 분열의 위기에 빠진다. 국제사회에 동조하지 않고 경제를 악화시켜 국내의 폭동에 불을 붙이는가, 국제사회에 동조하여 심양군구의 반란을 부르는가. 중국정부는 그러한 딜레마를 안고 있다.
딜레마에는 또 하나가 있다. 지방과의 관계이다. 중국은 8%의 경제성장이 없으면 살아 갈 수 없는데 현상은 지극히 나쁘다. 그 중에서 중요한 것은 일본으로부터의 투자이다. 경제계뿐만 아니라 지방정부도 일본으로부터 자본이 들어오지 않으면 지탱할 수 없다. 그래서 첨각열도의 문제에서 일본으로부터의 투자가 낮아지게 된다면 가장 최초로 중앙정부에 반발하는 것은 지방정부이다.
중국의 내정은 인민해방군이 있고, 지방정부가 있고, 중앙정부가 있다. 인민해방군에 상당히 신경을 쓰지 않으면 위험하기 때문에 첨각 문제가 일어난 후, 습근평은 강경한 자세를 계속 보여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방으로부터의 압력이 굉장하다. 2013년의 인민대표대회에서도 굉장한 압력이 있었다. 이것도 무시할 수 없다. 첨각 문제로 인해 일본으로부터의 투자가 감소되면 지방이 곤궁하게 된다. 지방경제의 피폐도 또 폭동의 온상이 된다. 그렇다고 첨각 문제에서 유약하다고 비난되는 대응은 어쩔 도리가 없다. 저곳을 세우면 이곳이 서지 않는 것이다.
북한은 김정은 휘하에 제4차 핵실험을 할 것이다. 심양군구가 북경에 대하여 언제 반란을 일으킬지 모르는 상황하에서 습근평은 어떻게 하는가.
또 국내에서는 년간 수만 건의 폭동이 발생해서 그칠 기미가 없다. 빈부의 격차가 넓어지는 가운데 빈자의 입장이라면 “까불지마”라는 것이다.” 모택동 시대의 편이 아직 모두가 가난하고 평등했다. 그 편이 낫다”고 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까지는 폭동이 일어나면 공산당은 경찰이나 인민해방군을 보내어 진압해 왔다. 그러나 그 인민해방군이 공산당에게 이빨을 들이대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이 최후에 와 있다고 하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다.
그래서 인건비를 올리지 않는다고 종업원이 폭동을 일으켜서는 외국의 기업은 다른 곳으로 간다. 당연하다. 손해 보는 것을 알고서 움직이지 않을 바보가 어디 있을까. 그렇게 되면 정말로 마지막인 것이다.
이것은 중국을 볼 때에 중요한 것인데, 구조적인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 약간 손을 대건 혹은 약간 바로 세운다고 잘 될 리는 없다. 구조부터 변하지 않으면 잘 될 수 없는 것이다.
현시점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중국은 마치 그날 그날을 얼버무리고 호도하며 살아 갈 수 밖에 없다.
가까운 장래, 중국에서 내전이 일어난다
이미 “중국에서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고 얘기할 시기는 지났다. 현실로 지금 혼란이 진행하고 있다.
중국이 붕괴하는 시나리오로서 하나는 데모나 폭동이 군이 결합하는 것을 든다. 데모나 폭동에 참가하는 사람들과 인민해방군은 반개혁개방노선으로 일치하고 있다. 쌍방이 손을 잡으면 경찰로는 어떻게 해도 안 된다.
그러나 가장 확률 높은 시나리오는 내전에 의한 붕괴이다. 중국의 인민해방군은 육군이 중심이고 육군은 7개의 군구로 나뉘어져 있다. 심양군구, 북경군구(*1), 제남군구(*2), 남경군구(*3), 광주군구(*4), 성도군구, 난주군구(*5)이다. 이 7개의 대군구가 각각 일정의 독립성을 갖고 군사행정도 하고 또 국방체제를 유지하고 있는데 전술한대로 심양군구가 우뚝 솟은 존재이다.
그 심양군구가 컨트롤하고 있는 북한이 점점 비정상적으로 되었다고 하는 것은 심양군구가 북한을 이용하여 북경의 중앙 정부에 대해 반기를 드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병기 개발에 성공하여 심양군구가 그 핵병기를 장악하면 이에 필적할 군사력은 중국 국내에 없다. 그 때, 심양군구는 공산당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키는 제1호가 되고 그것이 결정적으로 인민해방군의 붕괴로 이어진다.
반란을 일으킨 심양군구는 동북 3성을 해방시킬 것이다. 동북 3성만으로도 인구가 2억이 넘기 때문에 대국이다. 충분히 살 수 있다. 동북 3성이 독립한 때, 심양군구의 독립을 본 다른 대군구의 간부가 손가락을 물고 있을까. 북경군구는 다르다 해도, 제남군구도 남경군구도 광주군구도 성도군구도 난주군구도 지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듯이 모두 일제히 독립선언 할 것이 틀림없다. 여기서 1920년대 초에 군벌이 할거한 것과 같은 상태가 부활한다.
군벌의 체질은 그대로 인민해방군에 남아 있기 때문에 그때도 그러했듯이 대군구끼리 영토 쟁탈을 시작한다. 즉 내전이다.
최종적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이 붕괴하고 중화민국연방이 된다고 필자는 추측하고 있다. 어느 대군구가 제일 강력한 발언권을 가지고 이니셔티브를 잡는가. 이것을 둘러싼 싸움도 있을 것이다. 공산당이 없어져 버리면 곤란한 것이 국내를 컨트롤하는 힘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일본의 이웃나라에서 일어나려 하고 있다. 그것도 지극히 가까운 장래에 있을 수 있다. 15년이나 20년 후의 일이 아니다.
*1) 북경군구 : 하북성군구, 북경직할시, 내몽골자치구 (1부는 제외), 산서성군구, 천진직할시를 관할한다.
*2) 제남군구 : 산동성군구, 하남성군구, 청도경비구를 관할한다.
*3) 남경군구 : 안휘성군구강소성군구, 상해직할시, 절강성군구, 강서성군구, 복건성군구를 관할한다.
*4) 광주군구 : 광동성군구, 광서티완족자치구군구, 해남성군구, 호남성군구, 호북성군구를 관할한다.
*5) 난주군구 : 감숙성군구, 청해성군구, 섬서성군구, 녕하회족자치구, 신강위구르자치구, 티베트자치구(1부)를 관할한다.
중국 내전에 일본은 어떻게 대응하는가.
중국이 자괴하는 것은 일본에 커다란 영향이 있다. 이것은 좋은 영향이 아니라 나쁜 영향이다. 현재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붕괴한다면, 세계경제에 주는 타격은 지극히 크며, 리만 쇼크와는 비교도 안 된다. 이 “차이나 쇼크”로부터 일본경제가 피할 길은 없는 것이다.
그보다 심각한 문제는 중국에 있는 일본인의 생명이 위협받는 것이다. 현재 중국에는 13만 이상의 일본인이 살고 있는데 폭동이나 내전에 의해 살해될 위험이 충분이 생각된다. 그러나 법률상 자위대가 구출에 나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동시에 구출하기 위한 장비도 없다. 이대로라면 13만의 생명은 잃어버릴 것을 각오할 수 밖에 없다. 이 문제는 속히 대응해야 한다.
중국이 내전에 빠지는 때, 일본으로서 중요한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 중국의 내전에 일본은 일체 관여하지 않을 것. 각각의 대군구가 7개의 독립국이 된다면 모두 일본에 사절을 보내서, “우리나라에 진출해 주시오. 우리나라를 도와 주시오. 이 자원은 이러이러한 조건으로 내어놓습니다.”등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히 오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 그러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
왜 그런가. 일본은 1937년-45년 사이의 중일전쟁을 잊지나 않았나 하는 문제가 있다. 그것을 되풀이 하는 바보 같은 짓을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중국의 내전에 관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이 붕괴하고 군웅할거와 같은 형태가 된 후, 연방으로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연방이 되면 민주주의 체제는 취하기 쉽다. 그렇게 되기까지 중국과의 관계를 단절해야 한다.
중화민국이 되어도 군의 힘이 상당히 강한 것은 확실하다. 그것을 조금씩 축소해 가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쟁하는데 가장 적합한 정치체제인 공산당은 그러한 노력이 불가능한 조직이다. 그러면서도 전쟁은 할 수 없다. 미국의 힘이 크고 중국이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덧붙여서, 중국의 전쟁이 내전에 머물러 있는 한, 주변국은 모두 손가락을 물고 보고만 있을 것이다. 일본이 초조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첫댓글 본 책의 저자는 일본 우파 지식인들 중 한사람으로 표현이나 내용에 있어서
사실이 과장되거나 검증이 더 필요한 부분이 있을수 있습니다.
특히 제 4장은 전문가들도 접하기 힘든 자극적이고 판단이 어려운 부분이 많으므로
그냥 흥미거리 삼아 대충 보고 넘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본 자료의 어떠한 부분이건 어떠한 형태이든 외부로의 인용과 전재를 절대 금합니다.
신중하게 잘 읽어 보앗어요..
감사합니다..
하세가와의 이론데로 중국이 망한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chao에서 질서와 발전을 만드는 나라다. , 인종, 종교, 지역, 계별, 빈부등의 갈등이 밖에서 보긴 위함스런 혼란으로 보일지 모르나, 중국이란 거대한 아메바안에서 서서히 먹혀들어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간다.. one dimensional한 일본인이 多 dimensional 한 중국을 보는듯하다. 우리나라는 이 거대한 중국 아메바에 흡수되지 않아야된다. 이 필자가 쓴 약점들때문에 중국은 결코 망하지않고 세계를 먹어들어가는 거대한 아메바가 될것이다. 중국을 경계해햐한다.
회장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본래 이책은 일본 자국민들을 위해 쓴 책으로 일본 국수적인 시각이 상당히 많이 보입니다. 제4장의 제목도 "중국은 서서히 변화할 것이다" 정도가 좋을 것 같고, 내용도 주변국에 대하여 자극적이고 비우호적으로 적혀있는게 사실입니다. 단지, 우리는 이러한 어떻게 보면 위험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일본인들이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잘 대비해야 한다는 경종의 의미로 볼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제5장은 주변국들을 폄하하는 내용이 더 많아서 이 책의 연재는 여기서 마감할까 합니다. 관심 가져주신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