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영혼은 나를 봄으로써 알고, 나를 앎으로써 사랑한다.
그리고 나를 사랑함으로써 그들의 이기적인 의지는 소멸되고 사라지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기적인 의지를 제거함으로써 내 의지를 입는다.
그러나 나는 너희 성화 외엔 그 무엇도 바라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즉시 다리 아랫길을 버리고 다리로 오르기 시작한다. 그들은 가시덤불을 통과해도, 그들의 발에(다시 말해서 그들의 애정에) 내 의지가 신겨져 있기 때문에 결코 상처를 입지 않는다.
내가 너에게 그들은 육체적으로 고통을 당할지언정 영적으로는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고 말한 까닭도 여기에 있는바, 그것은 그들의 육정적 의지 -영을 괴롭히고 아픔을 주는- 가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기적인 의지를 지니지 않은 까닭에 더이상 이런 아픔을 당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만사를 경외심을 가지고 참아 견디면서 나를 위해 고통당하는 것을 은총으로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내가 뜻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게 되는 것이다.
내가 그들의 성덕을 시험하기 위해서 마귀들의 손에 부처 고통받게 하고 심하게 유혹당하게 하더라도, 그들은 굳건히 서서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내 안에서 그들의 의지를 굳건하게 다지고, 그들 스스로를 낮추어 자신은 영적 평화를 누릴 자격이 없고 고통을 받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자신을 알고 고통 때문에 안달하지 않으며 생을 기쁘게 살아간다.
-시에나의 카타리나 ‘대화’ /바오로 딸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1347년 3월 25일 - 1380년 4월 29일, 이탈리아)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는 염색업자의 25명 자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여섯 살에 자신의 생애를 미리 보는 신비한 체험을 한 그는 결혼시키려는 부모에게 반항해 오로지 기도와 단식에 전념했다. 열여섯 되던 해 도미니코 제삼회원이 되었으며, 이때부터 그리스도·마리아·성인들에 대한 환시가 더욱 잦아졌다.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특히 나환자와 같은 절망적인 환자들을 간호했다. 1375년 피사를 방문하던 중 오상 성흔을 받았고, 아비뇽의 교황좌가 로마로 돌아오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 후 자신의 신비 체험을 기록하는 일에 전념했으며 400여 통의 서한을 남겼다. 1461년 시성되었고, 1939년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으로 지명되었으며, 1970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교회 박사로 선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