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봄'이 팔랑팔랑 날아든다
세상의 끝에서 만난 잃어버린 전설 사진·글 이수영 곤충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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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임없는 전쟁으로 인해 아프간 어딜 가나 전흔 투성이다. 산골인 이곳 바미안 또한 예외는 아니다. 무너진 건물의 벽면에 석양빛이 찬연히 빛난다. |
지금 아프가니스탄은 인류 문화의 시험대다.
인더스 문명과 그리스 문화, 불교 문화, 이슬람 문화가 어울려 중앙 아시아의 문화 보고寶庫로 평가돼 온 아프간의 문화재들이 1979년 소련 침공과 탈레반 정권, 9·11 테러에 이은 미국의 보복 공격이 겹쳐지면서 속절없이 사라져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일이다. 세계의 관심이 한 순간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발표한 한 포고문에 집중되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신은 유일하기 때문에 형상을 신앙 대상으로 삼는 것은 잘못이다. 모든 불상들은 이슬람에 대한 모독이다. 지금부터 그 불상들이 신앙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바미안’ 석굴을 비롯한 아프간 내의 모든 불상들은 제거돼야 한다!”
상식을 벗어난 충격적인 내용에 세계의 여론이 들끓었다. 이 발표 이후 유네스코는 물론 유엔 189개 회원국이 서둘러 불상 파괴 행위를 즉각 중지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으며, 이집트·터키·파키스탄 등 이슬람 국가들조차도 탈레반을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나 탈레반 정권은 이 같은 비난 여론을 비웃기라도 하듯 세계의 문화유산인 바미안 석불을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해 완전 파괴했다. 그 충격적 현장이 미국의 CNN 방송을 비롯한 세계 통신사들의 통신망을 타고 전 세계로 중계되었고, 세계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프간 중부 산골에 있는 바미안.
두 번째 아프간에 발길을 들여놓으면서 그토록 갈망해 왔고, 또 그 문제의 현장이었던 바미안 계곡을 지금 찾아가고 있다. 수도 카불에서 꼭두새벽에 출발하는 미니버스로 엉망진창의 산길을 가는 고행길 곳곳에는 부서진 장갑차들이 전흔을 말해주고 있고, 군데군데 흰색으로 지뢰 지대임을 표시해 두고 있었다. 그러나 긴장감을 느끼기보다는 오랜 숙제를 풀 수 있게 된다는 기대에 가슴 벅차 오를 뿐이다.
9시간이 걸려 겨울을 재촉하는 가랑비가 내리고 있는 바미안에 도착했다.
도시가 아닌 산골분지 마을로 사방이 황토빛 산들로 둘러 싸여 있는 곳이다. 여관이라고 할 것도 없어서 ‘MAMA NAJAF RESTAURANT’이라는 식당 겸 여관의 허름한 방에 일단 여장을 풀었다. 외국인이라고 제법 비싼 달러 요금을 받는다.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날도 춥고 벌써 어두워져 가고 있는데 어쩔 수 있으랴. 그러나 이 건물 지붕 위에 올라서니 그 고대하던 바미안 석굴 쪽의 전망이 그만이어서 그것으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밤새 가랑비가 눈으로 변해 주변 높은 산들에는 하얀 눈이 쌓이고 구름들이 걸려 있는 모습이 일품이다. 중국 실크로드 지역에 있는 화염산맥이 풍기는 기기괴괴한 멋을 이곳 산들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힌두쿠시 산자락이다. 이곳 바미안 석굴을 대표하던 2개의 대불이 있던 자리가 동쪽과 서쪽으로 또렷하게 보인다. 마음이 급해진다. 라마단 기간이어서 아침 식사를 기다릴 것도 없어 곧장 석굴 쪽으로 걸었다.
무장한 군인들이 석굴 입구에서 허가증 없이는 들어갈 수 없다며 길을 막는다. 마을 입구에 있는 사무소에 허가증을 받으러 가면서 또 허가비를 톡톡히 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했는데, 취재 왔다고 하니 별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이 엄청난 유적에 관람료가 없다는 것에 기분 좋아해야 할지….
무장 군인의 입회 하에 첫 대면한 것은 서쪽에 있는 대불의 감실龕室이었다. 고개를 뒤로 제치고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엄청난 크기인 감실의 윤곽은 아직껏 또렷하게 남아있지만, 1500년을 지켜오던 그 거대한 불상은 간데 없고 그 텅 빈 자리 밑에 무너져 내린 흙덩이들만이 어지럽게 뒹굴고 있다.
당시 뉴스를 통해 봤던 그 충격적 화면이 떠오른다. 세계 각처에서 이 불상의 파괴를 막아 보려고 그토록 노력했지만 결국 탈레반 정권은 파괴하고 말았다. “비非 이슬람 우상과 싸우겠다”는 탈레반 지도자 오마르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에 어긋난다고 판단되는 모든 것을 파괴 대상으로 삼겠다는 그 잘못된 사고가 문화 예술 파괴행위인 반달리즘vandalism의 차원을 뛰어넘은 ‘반문명적 폭거’로 이어졌다는 것에 세계가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군데군데 많은 석굴은 이곳 주민들이 문을 달아 살림집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비록 불상이나 벽화가 남아 있지 않는 텅 빈 곳이라지만 이 소중한 문화유산이 이렇게 방치되고 훼손되어 가고 있다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다.
동쪽의 대불 또한 파괴되었지만 그래도 이곳은 그 불상이 있었던 자리의 윤곽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감실 옆으로 나 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여기 저기의 석굴마다 놀랍게도 벽화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너무도 심하게 훼손되어 무슨 내용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당시의 화려한 모습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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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미안 석굴 서쪽 산 위에 올라 바라본 바미안 분지 전경. |
불교 미술사에서 이 바미안 석굴이 특별히 유명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그 거대한 크기의 불상 때문이었다. 어느 지역의 어느 불상도 필적할 수 없을 만큼 큰 크기는 일찍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바미안 분지의 북쪽을 둘러싸고 약 1.3km에 걸쳐 펼쳐져 있는 암벽에는 이처럼 1000여 개의 크고 작은 석굴이 있다. 이 중 동쪽과 서쪽에 얼마 전 파괴된 그 커다란 대불이 하나씩 감실 안에 새겨져 있었다.
동쪽의 대불은 높이가 38m, 서쪽의 대불은 55m였다. 6세기쯤 바미안을 거쳐가는 교역로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이곳에 불교가 번성하면서 이처럼 많은 석굴들이 조성되었고, 그 안에는 좀 전에 확인 할 수 있었던 것처럼 훌륭한 벽화들도 그려졌다. 간다라의 쿠샨왕조 때부터 불교도들이 즐겨 찾는 순례지였던 이곳에는 서기 400년 경에는 중국의 법현 스님이, 630년에는 현장법사가, 그리고 8세기 초 우리나라의 혜초 스님도 이곳을 다녀갔다고 전해진다.
이제 바미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경관이다.
그것을 말해주는 가장 좋은 자리가 석굴 맞은 편 남쪽의 언덕이다. 이곳에서 내려다볼 때 펼쳐지는 장대한 암벽의 동서를 장식하고 있던 두 대불은 그 경관 안에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두 대불은 이처럼 멀리서 볼 때 더 웅대하고 감동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안타까움에 가슴이 저민다. 유네스코와 아프간 새 정부에서 조만간 이 불상들을 복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옛 모습을 어느 정도까지 살릴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마을로 내려오니 중무장한 미군들 무리가 갑자기 나타나 사주 경계를 펴고 있다. 그 중에는 금발의 미녀도 한 명 끼어 있다.
인상이 좋아 보여 “지금 뭐 하는 중이냐?”고 물으니 아프간 한 정부인사의 경호를 맡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고보니 좀 전에 군용 헬기 한 대가 머리 위에서 날더니 그 편으로 고위급 간부 일행이 이곳 바미안을 방문한 모양이다. 아직도 도처에서 탈레반 무리들의 기습이 염려가 되기 때문에 이렇게 미군들이 직접 경호를 맡고 있는 것이다. 그녀에게 한 마디 더 물었다. “아프간과의 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러자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나는 잘 모른다. 직업일 뿐이다.”
날이 점차 흐려져서 눈이라도 내릴 듯하다. 겨울철에는 많은 눈이 쌓여 바깥 세상과는 내통이 쉽지가 않다고 한다. 그때의 바미안은 또 어떤 모습일까. 어수선한 시국이지만, 이곳 바미안 사람들은 오랜 세월을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별 동요 없이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쓴 박하선 님은 세계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는 오지 사진작가다. 작품집으로 <삶의 중간 보고서> <천장天葬>등이 있으며 <실크로드> 등 수 차례 작품전을 가진 바 있다. 2001년에 ‘월드 프레스 포토상’을 받았다.
2001년 10월과 2002년 10월 두 차례에 걸쳐 총 70여 일 동안 아프가니탄을 여행했으며, 오는 4월초에는 여행단을 구성해 터키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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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크라’를 입고 가는 여인네. |
Afghanistan Travel guide
비자
아프가니스탄 비자는 아프간 영사관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받을 수 있지만, 인접국인 파키스탄·이란·우즈베키스탄에서 받기가 쉽다. 이란에서는 테헤란·자헤단·마샤드에서 신청하면 다음 날 발급 받을 수 있다.
한공편
한국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바로 가는 항공편은 없고 다음 몇 가지가 있다.
①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로 가서 다시 카불로 가는 비행기편을 갈아탄다. 파키스탄 항공과 아프간 아리아나 항공이 1주일에 한 번씩 있다. 요금은 편도 300U.S.$ 정도.
② 이란의 테헤란에서 이란 마한 항공과 아프간 아리아나 항공이 1주일에 한 번씩 카불을 왕래한다. 요금은 편도 150U.S.$ 정도.
육로편
① 파키스탄의 페샤와르에서 카이버 고개를 넘어 국경을 넘는다.
② 이란의 마샤드에서 국경쪽인 타이바드로 가서 국경을 넘으면 에슬람골이고, 그곳에서 다시 차를 타고 120㎞ 가면 헤라트가 나온다.
③ 우즈베키스탄에서 국경을 넘어 북부 도시 마자르 이 샤리프로 들어간다.
④ 이란의 남부 자헤단에서 국경을 넘어 칸다하르 쪽으로 들어간다.
교통
대중교통과 도로 사정이 대단히 열악하다.
합승 택시들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칸다하르에서 카불까지 택시로 14시간 걸리고, 카불에서 마쟈르 이 샤리프까지는 8시간 걸린다. 요금은 1인당 10U.S.$ 정도. 헤라트∼카불은 1주일에 한 번 아리아나 항공편도 있고, 이따금 UN 항공편도 뜬다.
카불~바미안 새벽 5시 경에 카불에서 출발하는 미니버스가 있다. 대략 9시간 걸린다. 승차장은 사전에 알아둬야 한다. 바미안에서도 새벽에 출발하는 미니버스가 있다. 바미안에 공항 활주로가 있어 이따금 UN에서 운항하는 항공기가 뜬다.
도시~바미안 북쪽의 마자르 이 샤리프 쪽에서 바미안에 갈 때는 남쪽으로 내려오는 중간쯤에 있는 ‘도시’라는 곳에서 바미안으로 들어가는 미니버스를 탈 수 있다.
숙소.식당
UN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비싸지만 더운물 샤워도 할 수 있다. 배낭여행자들에게는 읍내에 있는 MAMA NAJAF RESTAURANT을 추천한다. 침대 하나에 5 U.S.$다. 숙소가 한두 군데 더 있지만 외국인은 거의 이용하지 않는 곳이다. 식당의 음식은 ‘배리배리’라는 넓적한 빵과 ‘케밥’이라 부르는 꼬치구이와 볶음밥과 비슷한 음식과 차가 전부다.
석굴 구경
일단 마을에 있는 관리사무소에 들려 허가증을 받아야 한다.
아직까지는 별 문제없이 무료로 즉시 허가를 내준다. 동쪽의 대불이 있었던 감실 옆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그곳을 따라 올라가면 벽화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석굴 내부를 살펴볼 수 있다. 또 서쪽 끝에 산 위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동쪽 대불이 있었던 감실 내부로 들어가 볼 수 있다.
주변 볼거리
남쪽의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일품이다.
그 언덕 위에서 동쪽으로 얼마 간 걸어가면 또 다른 석굴이 있다. ‘차크라’라고 하는데 이곳 불상도 두 대불과 함께 탈레반이 폭파해 버렸다.
주의사항
도처에 지뢰가 널려 있으니 길이 아닌 곳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