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전에서 통곡하다
꼬박 뜬눈으로 밤을 샜다.
이틀째 거의 용맹 정진하다가 억지로 정진한 거다.
용맹 정진 때는 잠깐 졸기라도 했지만,
이건 졸지도 못하니 제대로 정진한 것 같다.
증상은 어제와 별 차도가 없다.
6월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 1호실로 방을 옮기면 이번 철은 반쪽짜리 결제다.
어쨋던 해제 전에 문을 열고 나왔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상황이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내 마음은 뭐라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괴롭고 착잡하다.
아침에 주지스님이 올라와 문을 두드렸다.
두말하지 말고 지금 당장 응급실로 가자는 것이었다.
내가 하루만 더 상황을 지켜보자고 쪽지를 넣었더니
자기가 불안해서 더 이상 못 견디겠단다.
자물쇠를 열어놓고 갈 테니 뒤따라 내려오라고 하며 갔다.
공양 가지고 온 통을 밀쳐놓고 멍하니 앉아 밖을 내다봤다.
이 증상이 나타난 지 사흘 째. 사흘 동안 전혀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몸은 거의 탈진상태다.
그래. 병원에가도 다녀오자. 무슨 수가 생기겟지.
도저히 후원대중들 걱정 때문에라도 안 되겠다.
조용히 앉아 생각을 정리하고 양말을 꺼내 신었다.
한 달 만에 신어보는 양말이다.
그리고 한 철 후에나
신을 거라고 봉지에 넣어두었던 운동화도 꺼냈다.
왠지 양말과 신발이 낮설어 보인다.
방문을 조심스럽게 밀었다.
삐~걱 - 소리와 함께 드디어. 열렸다.
그렇게
나를 가두어 놓았던 문이 그렇게 쉽게 열렸다.
신발을 신고 마당에 내려섰다.
첫걸음! 다리가 떨렸다.
그대로 휘청거리다가 주저앉았다. 현기증까지 났다.
마침 혜안 스님이 마당에서
풀을 베고 있다가 얼른 와서 부축해주었다.
1호실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조금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부축을 받으며 큰절로 내려갔다.
그랬다.
내 몸 어디에 그렇게 많은 한과
뜨거운 눈물이 갇혀 있었던지 나는 정말 몰랐다.
혜안 스님 부축으로 겨우 들어선 나한전.
무문관에서 내려오는 길에 있는
첫 법당이기에 제일 먼저 참배하러 들어갔다.
그렇게 사무치게 꿈에라도 보고 싶었던
그 부처님 존상(尊像)을 뵌 순간,
그동안 온몸에 서리서리 맺혔던
한들이 한꺼번에 함성처럼 터져 일어나
부처님께
거센 항의라도 하듯이 봇물처럼 쏟어져 나왔다.
그 시작은 일배를 천천히 하고
이배를 하며 바닥에 엎드렸을 때부터였다.
처음에는 그냥 눈물이 핑 돌았다.
'부처님 못난 이 중생 몸이 아파 무문관 수행 중간에 내려왔습니다.
버틸 만큼 버텼는데 도저히 안 되겠기에 병원에 가려고 내려왔습니다'
------------------------------------------------------그러면서 엎드려 있었다.
그런데 누가 나의 울음보를,
아니 한(恨) 보따리를 슬그머니 풀어놓기라도 한 듯
훌쩍훌쩍 울음이 나더니 곧 통곡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아, 부처님. 어찌하여 저를 이렇게까지 힘들게 하나이까.
도대체 저더러 어떻게 하라고.
얼마만큼이나 더 아파하라고 이렇게 고통을 주십니까.
정말 원망스럽습니다.
지나온 삶 동안 그토록 아파하고 힘들어햇으면 됐지.
무문관에 와서까지 꼭 이렇게 해야 합니까.
제발 좀 그만 아프게 해주십시요. 제발 그만이요-----.'
한참을 꺼이꺼이 울다 보니
부처님에 대한 원망은 차츰
나 자신의 초라함과 그 무엇에 대한 분노로까지 바뀌었다.
눈물, 콧물이 완전히 범벅되어
마룻바닥이 눈물바다가 될 정도로 울부짖었다.
그렇다.정확히 울부짖었다.
그렇게 대성통곡한 기억이 별로 나지 않을 정도였다.
갑자기 온몸에 경련이 일어나며 마비 현상이 왔다.
오한이 들며 매우 떨렸다.
간신히 온힘을 모아 몸을 움직여 법당 마루에 그대로 쭉 엎드렸다.
다리가 당기고 손이 떨려 마치 신들린 사람이 된 듯했다.
혜안 스님을 불렀다.
온 힘을 다해 불렀는데도 밖에까지 들리지 않는지 기척이 없었다.
'아, 그래. 이대로 부처님 앞에서 죽어버리자.
까짓것 언제고 한 번은 가야 하는 인생.
부처님 앞에서 울다 죽으면 그만큼 행복한 열반도 없겠지'
그러기를 십여 분이나 흘렀을까.
조금씩 경련이 잦아들어니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몸을 조금씩 움직여보았다. 간신히 움직여지긴 했지만 정상이었다.
바닥을 보니 물을 부어놓은 듯 눈물로 흥건했다.
겨우 겨우 몸을 추슬러 온 힘을 다해 일어났다.
그리고 마지막 삼배는 거의 통나무 쓰러지듯 했다.
그리고 부처님께 기원했다.
'부처님. 이제 그만하실 거죠.
더 이상은 저도 견딜힘이 없어요.
오늘이 제 인생에 있어서 아픔의 정점이고 싶습니다'
그대로 꿇어앉은 채,
말없이 빙그레 웃고 있는 부처님을 올려다보았다.
내 모든 아픔, 한,
통곡들을 다 알아주시기라도 하는 듯 눈가에 눈물이 괸 듯도 했다.
'그러면 됐습니다. 부처님. 저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앞으로 수행 정진하는데 더 이상 몸만 아프지 않아도 정말 열심히 잘 살 겁니다.
약속할게요'
비틀거리며 일어나 반배까지
겨우 마치고 다시 엉금엉금 기어 문 앞까지 나왔다.
혜안 스님이 마당 아래 말없이 서 있었다.
내 모든 통곡을 다 듣고 있었으리라,
손짓을 하니 얼른 올라왔다.
휴지를 찾으니 없어서 그냥
옷소매에다가 눈물, 콧물로 범벅된 얼굴을 대충 닦았다.
무슨 말을 해야겠는데 입이 안 떨어졌다. 거의 탈진 상태였다.
혜안 스님이 후원으로 가서 물과 우유를 가져왔다.
우유룰 하나 먹고 나니 기운이 조금 나는 듯했다.
힘없이 웃으며
"스님이 수자타네요. 탈진한 내게 우유를 공양 올리고-----." 하니
혜안 스님이
" 그럼, 스님은 도통할 일만 남았네요" 하며 맑게 웃었다.
참 고마웠다.
내게 그렇게 통곡할 시간을 주고, 또 중간에 끼어들어 말리질 않아서-----.
그 삼십여 분 통곡하는 동안
나는 내 전 생애의 업장과 한. 설움. 아픔을 모두 쏟아낸 듯한 기분이었다
몸은 손가락 하나 가누기조차 힘들었어도 영혼은 날아갈 듯아 가벼워졌다.
눈물은 영혼을 맑히는 샘물이라고 늘 주장해왔는데
오늘에야 내 영혼에 끼어 있던 모든 흙먼지들을 통한의 눈물로 씻어낸 것 같다.
내 지나온 삶을 온몸으로 참회하고, 내 지나온 삶의 아픔들을 모두 털어놓고 나니
이렇게 맑은 기쁨이 그 빈 공간을 채워주는구나 싶었다.
아, 강진 백련사 나한전!
이 곳은 내가 처음으로 부처님 앞에서 대성통곡한 법당이다,
여기서 나는 내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싶었고,
다시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출발하고 싶었다.
아직도 어색한 신발을 껴 신으며 혜안스님 부축으로 나한전을 나섰다.
밖에서 다시 나한전을 올려다보니 '응진당(應眞堂' 이라고 현판이 쓰여 있었다.
' 진실로 응해주는 집' 이라, 그래.
그래서 내 모든 것 부처님께서 다 들어주셨구나 싶었다.
주지스님 차를 타고 절을 나섰다.
천천히 가는데도 멀미가 나려 했다.
도착한 곳은 '강진의료원' 강진에서는 제일 큰 병원이다.
응급실에 가니 젊은 당직 의사가 내 증상을 듣고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표정이다.
일단 입원했다가 내과 과장님이 저녁에라도 오면 그때 자세히 보자 했다.
다행이 저녁쯤 담당의사가 와서 내일 초음파, 내시경을 한번 해보자고 한다.
저녁부터 아침까지 금식이다.
6.30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