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산한 가슴 위로하는 LP바의 추억
세파에 치이다 보면 은신처가 필요해지는 법. 구석진 신촌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오래된 신세계가 나타난다. 홍대 클럽 데이 창시자 류재현 씨가 자신의 숨겨둔 보물, 'ROCK'을 공개한다.
1990년의 신촌, ROCK의 탄생
락이 ‘로크’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에는 ‘Rock’이라는 단어를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MTV와 아이팟은커녕 CD조차 없던 시절, LP판을 구하러 다니는 것은 사치스러운 취미였고, 대학생들은 이른바 ‘빽판(카피본)’을 들으며 바늘에 판이 긁히는 소리를 즐겼다. 매캐한 화염병 냄새를 잡음 섞인 LP 음악과 맥주 거품으로 씻어 내린 것이다. 엄인호가 김현식, 한영애와 함께 카페 ‘레드 제플린’에서 신촌블루스를 결성한 곳도, 김윤아가 밴드 세션과 연주를 한 곳도, 우드스탁, 스튜디오 70, 롤링 스톤스, 벨벳 언더그라운드 등 감상실이 수세했던 곳도 바로 신촌이다.
명동이나 쎄씨봉이 메이저라면 1970년대의 신촌은 얼터너티브였다. 신촌파는 오전 11시쯤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때우고 이른바 후리가리(일제 단속)를 피해 밤늦게까지 자신들의 아지트에서 술과 함께 살았다. 기차역 주변의 음악감상실 러시, 이대 앞에서 아현동으로 가는 길에 있었던 옥스, 신촌 시장에서 동교동으로 가는 길에 있었던 츄바스코 등이 당시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공간.
21세기 문화 기획자, LP바를 사모하다
클럽데이를 만든 류재현 상상공장 대표는 상상만 하던 일을 실제로 이뤄주는 사람이다. 합창단과 클래식 위주의 구청 공연 무대에 언더그라운드 뮤지션과 비보이를 올리고, 홍대에 ‘나이 없는 날’을 만들어 60세 이상 어르신들을 홍대로 끌어내는가 하면 새우젓 축제에서 강강술래에 맞춰 일렉트로닉 춤을 추게 하는 식이다.
압구정 살사데이, 사운스 퍼레이드, 하이 서울 페스티벌을 만들고 난지도에서 열린 월드 DJ페스티벌을 기획한 것도 모자라 문화기획자를 양성하는 아카데미도 무료로 진행하고 있다. 신촌 홍대 등지에서 20년 가까이 살아온 그는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자신만의 보물섬에 가는 일은 빼놓지 않는다.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을 따지면 셀 수 없죠.” 술은 전혀 못 한다는 류재현 대표가 대구포 안주를 추천한다. “정말 맛있어요. 이곳은 아무리 바빠도 꼭 오죠.”
먼지 쌓인 목소리가 주는 안정감
‘옛날 노래’라는 말이 주는 안도감은 너무 빨리 역사가 돼버린 사람들에 대한 향수다. 간암 말기에도 소주를 마셨던 ‘로컬 히피’ 김현식도 신촌파 아니었던가. 웨스턴 바와 LP 음악감상실이 결합된 락에는 전설이 된 팝송과, 가사가 주옥같았던 시절의 가요가 박제되어 있다. 1980년대를 생맥주와 록으로 달래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향수랄까. 호화로운 안주나 비싼 술은 없다. 생맥주와 대구포 한 접시면 충분하다. 그리고 음악이 있다. ‘사운드’가 아닌 ‘싸운드’로 불러야 마땅할 음악 말이다. 기계를 다루는 솜씨가 뛰어난 주인이 만들어내는 국내 최고 음질은 6m의 높은 천장을 흔든다.
1960~80년대 락 음악부터 영화음악, 클래식까지 그 다양한 변주 때문에 사람들은 술이 아니라 음악에 취한다. 단골마다 즐겨 듣는 음악이 따로 있어 음악만 들어도 ‘아, 이 사람 왔구나’ 알 수 있는 곳이다. 락에는 구하기 어려운 음반이 없다. 손님이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을 신청하자 김대중 매니저가 등 뒤에 빼곡하게 꽂힌 1만2500장의 앨범 가운데 능숙하게 한 장을 뽑아 든다. 신이 난 사람들이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 춤을 춘다. 말 한마디 없이 무뚝뚝하기만 한 주인은 소리를 줄여달라는 손님에게 말한다. "죄송합니다, 손님."
신촌 ROCK을 즐기는 몇 가지 방법
-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희귀 음반을 신청한다.
-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대구포를 주문한다.
- 음악에 몸을 맡기고, 빈말뿐인 대화는 잠시 접는다.
-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이 남긴 낙서를 읽는다.
- 강아지 대견이와 눈싸움을 한다.
ROCK에 대한 뜨거운 애정 고백
오래된 스피커지만 뿜어져 나오는 소리는 강하다."- ROCK 카페지기 bluebird
“음악만 들어도 치유되는 느낌” - ROCK 팬 김지윤
“ROCK은 영원하다. 음악도 분위기도 같이 앉은 놈들도 다 여전하다. 여름날 밤 시원한 생맥주 한잔하면서 우드스탁 시대의 인간으로 잠시 살아봄직도 하지 않은가.”-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1989년 이대에서 출발, 신촌역에서 ‘DOORS’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리 잡은 곳이 현재 위치다. 대학가인 만큼 맥주 값이 저렴한데 90년대에 유행했던 멕시칸 샐러드가 남아 있다. 마이클 잭슨이 사망한 날 종일 잭슨의 음악을 틀었다는 바에는 한 달에 두 번 무대가 세워진다. “50~60대 손님도 자주 오고 가끔 대학생들이나 70대 손님도 찾으세요.” 주인이 직접 사온 목재로 설계한 나무 바닥은 20년의 세월을 보내며 비틀어지고 낡았지만 공기 중에 날아다니는 시간을 먹고 토해낸다. 상대의 말은 잠시 들리지 않아도 좋다. 비 내리는 신촌에 내렸을 때, 사람에 지쳐 붐비는 곳이 싫을 때 지친 몸을 쉬게 하기 좋은 곳이다. 진심으로 이곳이 영원하길 빈다.
위치 |
신촌역 1번 출구 현대백화점에서 동교동 사거리 방향 버스 정류장 골목, 황태뚝배기 칼국수 옆 건물 지하 1층 |
영업시간 |
PM 6:00~AM 2:00(토요일 격주 공연 PM 10:00) |
문의 |
02-324-7867 |
첫댓글 2,3월 중에 반드시 가 볼 겁니다. ㅎㅎ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