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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뛰어라 | ||||||||||||||||||||||||||||||||||||
우리 스님 - 구미 금오종합사회복지관 진오 스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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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발가벗은 것이 아니고 마라톤 복을 입은 것입니다.” 은사스님은 안경 너머로 진오(구미금오종합사회복지관 부관장, 구미 외국인 근로자 상담지원센터장) 스님을 걱정스러운 듯이 바라본다. 세속화를 우려한 때문이실 것이다. 스님이라면 밀짚모자에 검정고무신을 신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반인들에게도 진오 스님은 ‘괴짜스님’ ‘별난 스님’으로 비추어지기 일쑤다. 그러나 스님이 발가벗고 목욕탕에 들어간다고 해서, 수영복을 입는다고 해서 스님이 아닌 것은 아니지 않는가. 승복을 벗고 있어도 스님일 수 있는 것은 수행자로서 본질을 잃지 않고 스님으로서의 행을 하면 스님인 것이다. 시대가 변하는 만큼 스님들에 대한 편견을 깨트리고 싶기도 했다. 스님이 갖고 있는 경직된 이미지와 거리감을 깨고 싶었다. 수행과 다르지 않은 마라톤 진오 스님이 마라톤을 시작한 것은 2002년 4월 주위의 권유에 의해서다. 그해 가을 경주에서 열렸던 동아마라톤대회 하프코스에 참가해 완주했고 그 이듬해부터는 한해도 빠짐없이 풀코스에 참가해 완주하면서 최근까지 개인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스님의 꿈은 서브쓰리(시간 이내 완주하는 것)이다. 내친 김에 수영, 마라톤, 사이클 3종 경기에 도전하는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해 경이적인 기록을 내기도 했다. 몇 해가 거듭되다보니 이제는 참가자 내빈 소개에 꼬박꼬박 스님의 법명이 오른다. 스님은 이 모든 스포츠가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주어진다는 의미에서 인과를 실감하게 해주고, 출가생활도 마찬가지이지만 기본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계속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인드라망처럼 엮여진 주위의 여러 여건이 성숙되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는 점에서 불교수행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스님이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저녁 2시간씩을 뛰는 이유는 달리는 동안 자신을 알아차리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는 데 더할 나위가 없기 때문이다. 스님이 계신 대둔사와 금오종합사회복지관, 보현의 집, 그리고 관계기관을 오가며 쉴 새 없이 일하다 보면 기쁨도 많지만 여러 가지 얽히고 설킨 일들과 운영상의 어려움 등 ‘왜 이 일을 내가 해야 하나’ 때로는 지쳐서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마라톤을 하다보면 그러한 생각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또 다른 힘과 에너지가 샘솟곤 한다. 또 하나 좋은 것은 마라톤을 하다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다. 종교뿐만 아니라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말문이 열리기에 자연스레 스님이 하는 일을 알리고 동참을 구할 수 있어서 좋은 일이기도 하다. 4년 전부터는 뜻있는 분들과 함께 ‘경주 남산 산길 마라톤대회’(하프코스)를 만들어 함께 뛰고 있다.
진오 스님이 복지에 새로운 눈을 뜨게 된 것은 스님 자신이 장애를 갖게 되면서부터다. 군법사로 복무하고 있던 1986년 11월 눈 오는 겨울 비행기 레이더기지에 있는 사병들에게 먹을거리를 가져다주기 위해 산길을 오르다가 차가 눈길에 미끄러져 전복되는 바람에 한쪽 눈을 잃게 되었다. 다행히 한쪽 눈이 남아있었지만 젓가락질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분명 젓가락을 들고 접시에 있는 음식을 집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젓가락 끝은 그 목표점이 아니라 다른 자리에 떨어졌다. 상당한 충격이었다. ‘아! 이렇게 살아서 뭘 하겠나’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아파 누워있는 동안 수많은 이로부터 도움의 손길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병실에 있는 환우들에게 염주를 나누어주며 부처님 말씀을 들려주니 굉장히 기뻐했다. 동병상련이라고 함께 고통스러워하던 스님이 주는 염주와 부처님 말씀인지라 더욱 공감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스님은 갑자기 그곳에서 자신이 할 일을 발견했다. ‘아! 나에게도 해야 할 일이 있구나.’ 그래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자. 고통받는 사람들의 심정도 훨씬 잘 알 것만 같았다. 한쪽 눈을 잃은 대신 귀는 더 밝아졌다. 그래 신청한 것이 1987년 ‘사랑의 전화’에서 실시하는 전화상담 교육이었다. 교육을 받고 불교계에서는 처음으로 ‘자비의 전화’를 개설했다. 그리고 불교간병인협회도 함께 만들었다. 한강 이남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복지관의 부관장 소임을 맡게 된 것도 평상시 스님의 활동을 지켜봐온 법등 스님(선산 도리사 주지, 금오종합사회복지관 관장)의 권유에 의해서다. 복지관을 운영하다보니 복지사로서의 자격증도 필요한지라 야간사회복지대학원에 다니며 복지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불교계가 타 종교에 비해 복지사업에 뛰어든 것이 다소 늦었지만 우리 불교계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분명 있습니다. 여기에서 이렇게 일하다보면 만나는 사람마다 스님들이 현장에 함께 있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장에 있어야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볼 수 있어요. 불교계에도 복지기관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데 현장에 계신 스님이 거의 없어요. 스님들에게도 2년 정도는 현장교육 의무기간을 두었으면 합니다. 마라톤도 뛰어본 사람이 훨씬 대회를 더 잘 기획하고 운영합니다. 복지도 마찬가지이지요.” 해야 할 일이 점점 많아지다 보니 금오종합사회복지관의 규모도 몇 년 사이에 훨씬 커졌다. 무슨 일이든 혼자 풀어가기에는 어려움이 많기에 얼마 전에는 ‘꿈을 이루는 사람들’이라는 비영리 단체도 만들었다. 스님을 중심으로 복지활동에 참여하고 싶은 다양한 사람들의 모임이다. 함께 보듬어야 할 외국인근로자들 최근 진오 스님이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 중의 하나가 외국인근로자 복지다. 중국, 베트남, 스리랑카, 캄보디아, 미얀마, 태국 등 아시아 불교국이 대부분인지라 더욱더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스님은 2004년 자신의 눈을 잃은 대신 받은 보상금 5,000만원을 털어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쉼터 ‘보현의 집(구미 지산동)’을 마련했다. 구미지역 외국인근로자들의 각종 사고와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고 권익을 보호해주는 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 일을 도와주다보면 무슨 일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가 확실히 보이는 법. 외국인근로자들 문제가 주로 남성들만의 문제인 줄 알았더니 여성문제 또한 심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외국인 여성근로자들의 임신에 따른 보조사업과 법률지원, 출산에 따른 물품 및 아동양육지원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또 하나 최근 몇 년 사이에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결혼이민자들에 대한 문제다. 이 땅의 농촌 총각들에게 시집온 이들의 이혼이 급증하고 있다. 오갈 데 없는 결혼이민자들의 쉼터를 마련하여 있는 동안이라도 더 이상의 부당한 인권침해가 없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복지관 근처에 쉼터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이 모두가 우리 불교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업들이다. 자비실천을 떠나서 불교의 생존이 있을 수 없다. 국적을 가릴 때도 지났다. 도 단위별 본사급 사찰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복지사업들이 이루어진다면 불국토 실현은 멀지 않을 것이다. 진오 스님은 자신이 하는 이 일이 출가자로서 꼭 해야 할 당신의 일들이기에 어디를 가나 큰 목소리로 복지참여를 이끌고 계시다. ---------------------------- 진오 스님|1963년 문경 출생.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월주 스님을 은사로 출가.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 군법사 시절 한쪽 눈 실명으로 의가사제대 후 복지사업에 새로운 눈을 뜨고 헌신 하고 계시다. 1990년 ‘자비의 전화’를 개설하였으며, 1998년부터 구미 금오종합사회복지관 부관장, 구미외국인근로자 상담지원센터장으로 다양한 복지활동을 펼치는 한편 마라톤을 방편삼아 오늘도 열심히 달리며 수행 정진하는 ‘나’가 없는 ‘진짜스님’이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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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철인' 등극!!! 대단한 체력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