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주의보(豪雨注意報)
장석민
장마철이다.
매일 비가 내리고 있다.
때론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호우주의보 발령되었다고 한다.
바람이 세차게 불기도 한다.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며 창문을 때린다.
비바람이 들이치고 있는 발코니 창을 모두 닫는다.
창문을 때리는 빗방울, 또르르 흘러내리는 빗방울
어쩌다 한두 번 창문에 빗방울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면 듣기 좋은 소리겠지만 폭우로 쏟아질 때는 소음이 된다.
자연 현상일 뿐 자연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할 수 없는 계절
후텁지근하고 끈적끈적한 느낌이 심신을 지치게 하는 계절이다.
장마철에 느끼게 되는 불쾌지수는 여름을 보내야 하는 통과의례일까?
심란한 마음을 다독여 보려고 발코니에 서서 창밖에 보이는 여름 산을 응시하는데 구름에 가려진 여름 산은 묵언수행 중이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이면 괜히 옛 생각에 잠기곤 한다.
산골에서는 비가 내려야 논에 물이 들게 되는 천수답이 많았으므로 비가 오면 논으로 나가서 일을 하시던 부모님 모습이 떠오른다.
예전엔 지금처럼 비옷이 없었고 도롱이라고 하는 것을 걸치고, 머리에는 삿갓을 썼다.
도롱이는 짚이나 억새, 띠 따위로 엮어 만든 것인데 어깨에 걸치고 끈으로 묶어 비를 맞지 않게 하는 예전의 비옷이라고 보면 된다.
아버지는 주로 논으로 나가셨고, 어머니는 밭으로 나가셨다.
산 밑에 있던 작은 논
개울물도 마를 정도로 가뭄이 들었다가 비가 오면 반가워서 논으로 바삐 걸어가시던 아버지의 모습
이렇게 폭우가 쏟아지면 물꼬를 보기 위해 또 논으로 가시던 아버지
참 부지런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몇 군데 산자락에 있던 작은 밭뙈기
바짝 마른 밭에 물기가 적셔지면 채소 모종을 옮겨 심으려고 밭으로 가시던 어머니
거센 비바람을 뚫고 농사일을 하시던 그 모습
엊그제인 듯 눈에 선한데 어느덧 세월은 참 많이 흘렀고, 내 나이가 벌써 그 때의 부모님 나이를 훌쩍 넘어섰다.
비가 많이 내리면 많은 것이 바뀐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쓰레기들을 쓸어간다.
개울 건너려고 놓아두었던 징검다리 돌도 쓸어간다.
냇가에 만들어 놓은 나무로 만든 다리도 거센 물살이 쓸어간다.
작은 빗방울 하나하나는 힘이 없을지라도 빗방울 열 개, 백 개, 천 개, 만 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모이면 계곡을 휩쓸고, 모든 것을 휩쓸고 냇가를 거세게 흘러 강으로 바다로 빠르게 흘러간다.
거센 물살이 흐르는 곳에 있는 것들을 죄다 쓸어가고 만다.
자연의 거대한 힘을 느끼게 해주고 간다.
뿌연 흙탕물이 출렁거리며 빠르게 흐르고 있는 냇물을 보면서 괜히 두려움이 생기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본다.
오후 수업이 시작되는 시간
창문이 흔들릴 정도로 세찬 비바람이 불자 선생님이 몇몇 아이들 이름을 부르고 지금 바로 집으로 가라고 한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10여 개의 작은 마을에서 오는 아이들이 모여 공부를 하는 학교였다.
학교를 중심으로 남서쪽으로 동네가 몇 군데 있고, 또 북동쪽으로 몇 군데 마을이 있었다.
전북 장수군 장안산과 팔공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흘러서 섬진강으로 가는 지류인 요천(蓼川)이라는 냇물이 흐른다.
요천을 따라 양쪽으로 마을이 있다.
학교를 중심으로 냇가 건너편 마을은 나무로 만든 다리를 놓아 사람들이 건너다녔는데 비가 많이 오면 거센 물살에 다리가 떠내려가게 된다.
그래서 비가 많이 올 것 같으면 서둘러서 아이들을 하교시킨 것이다.
다행히 나는 냇가 건너편 동네는 아니었다.
학교에서 십 리 떨어져 있는 우리 마을은 80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 앞에는 섬진강의 지류인 요천(蓼川)이 흐른다.
여름이면 멱감고 물고기 잡던 좋은 놀이터이기도 했다.
이 냇물을 건너면 큰 마을이 나온다.
우리 동네 건너편에 있는 이 마을은 300여 호나 되는 시골에서는 꽤 큰 마을이었다.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몇 집 밖에 없는 동네가 되었지만.)
그곳에 초등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그 마을과 옆 마을 두 곳에 사는 아이들이 그 학교에 다녔다.
(그 초등학교도 폐교된 지 오래 되었다.)
그런데 그 마을 앞에는 신작로도 없었고, 신작로가 없다 보니 버스도 다니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큰 마을 앞으로 신작로를 내지 않고 작은 마을들이 있는 쪽으로 신작로를 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편으로는 그 당시에는 교량 건설 기술이 없었거나 예산이 없었기 때문에 혹은 정책적으로 신작로 내기 쉬운 곳을 택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신작로는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어쨌건 그 마을 사람들은 읍내에 나갔다 올 때면 버스를 타고 오다가 우리 마을 앞에서 내려 냇물을 건너다니곤 했다.
비가 많이 오면 냇가에 있던 나무다리가 떠내려가서 신발과 바지를 벗어들고 냇물을 건너다니기도 했다.
여름에 볼 수 있는 풍경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은 그 마을 앞에도 도로가 뚫렸고 자동차도 많이 다니고 있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옛날 그 시골의 모습들 생각이 많이 난다.
홍수 때 냇가에 나가 소쿠리로 큰민물새우인 진거미를 잡던 생각도 나고 골목 도랑에서 물장난하며 놀던 기억도 떠오른다.
비 오는 날은 기분이 가라앉게 된다.
그래서 괜히 옛 생각이 나는지도 모른다.
호우주의보 발령된 날
세찬 비가 발코니 창을 때리고 있는 시간
멍하니 창밖에 보이는 산을 보고 있다.
구름이 거의 다 가리고 있는 여름 산
나무들은 시원한 비를 맞으며 여름을 즐기고 있을 테지만
사람들은 폭우 속에서도 바쁜 삶을 살고 있다.
저지대나 하천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은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면서 걱정과 불안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아주 오래전 옛날부터 “국가를 관리하려면 물 관리를 잘하라”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먹어야 하는 물, 농사를 짓기 위한 물, 무거운 물건을 배로 실어 나르기 위해서 필요한 강
물의 쓰임은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물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엄청난 재난을 당하게 된다.
비와 물에 대한 기억은 누구나 있겠지만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면 바쁜 삶 속에서도 때때로 옛 추억이 떠올라 과거로 잠깐씩 돌아가 보기도 한다.
올해 여름 장마철도 무탈하게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첫댓글 비 피해 없으시길
감사합니다.
지루한 장마철 안전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장마철에 몸조심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무더운 여름 안전하고 건강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장마철에 건강유의하십시요
감사합니다.
장마철 안전하고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옛 생각이 나는군요.
이번 비로 천수답은 생기가 돌겠어요.
開東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희 고향에는 요즘에 농사 지을 사람이 없어서
천수답과 산비탈 밭은 묵히고 있습니다.
너무나 의미있는 글 잘 읽고 갑니다. 장마철 건강하소서
감사합니다.
긴 장마철 그리고 무더운 여름 건강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지금 장마철에
딱 공감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어렴풋이 기억되는 어린 시절 고향 생각도 나고
장마에 신작로가 모두 진흙투성이라서
신발 벗어들고
맨발로 학교에 가던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르네요.
敍林 선생님!
감사합니다.
장마철, 무더운 여름 건강하게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비가 많이 오는 날,
안전을 위해 아이들을 서둘러 하교 시킨 선생님의 리더십이 귀감입니다.
윗사람의 상황 대처 능력이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데,
이런 근원적인 교훈을 모르는 위정자들이 많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장마철, 무더운 여름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