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헤드린에서 변론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임을 선포하는 설교를 전하자, 그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렸습니다. 이미 사도행전 2:37에서도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찔렸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이들은 마음에 찔려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을 할 사람들은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7:54에도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산헤드린에 있던 사람들이 마음에 찔렸지만, 그들은 회개하고 돌이키기는커녕 스데반을 향해 이를 갈았다고 기록합니다. 같은 복음을 들었어도 회개하는 자들이 있고, 오히려 이를 가는 자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렸을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지 자신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마음에 찔렸다면 돌이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스데반은 산헤드린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반응이 싸늘할 뿐만 아니라, 노기(怒氣)로 가득한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아마 곧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直感)했을 것입니다. 그 순간 성령으로 충만했던 스데반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 하나님의 우편에 예수님께서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7:55). 그리고 자기가 보고 있는 이러한 영광스러운 광경을 말하였습니다(7:56). 그러자 공회(公會)에 있던 자들은 격렬한 반응을 보입니다.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스데반에게 달려들어서(7:57), 스데반을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칩니다(7:58). 흥분한 사람들이 자기 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청년의 발 앞에 두고 스데반을 돌리 치기에 바빴습니다. 아마 그 당시 사울도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사람들이 돌로 치는 것에 대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돌에 맞아 죽어가는 스데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 하셨던 말씀을 그대로 고백합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7:59)라는 고백은 누가복음 23:46의 내용과 거의 같고,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7:60)라는 고백은 누가복음 23:34의 내용과 거의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처럼 스데반도 첫 순교를 당하면서 예수님과 같은 고백을 하며 죽임을 당하였고, 첫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스데반은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복음을 거부하고, 반대하는 자들 앞에서 굴복하지 않고 당당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주님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드렸습니다. 이러한 순교의 피가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기폭제(起爆劑)가 되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예루살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극심해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곳곳으로 흩어지면서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그런 의미에 있어서도 매우 값진 결실을 맺었습니다.
8;1에서는 이러한 스데반의 죽임당함을 보면서도 사울이 이를 마땅히 여겼다고 짧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사울은 교회를 잔멸하며 극심한 박해를 주도했다고 8:3에 기록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사울이 이 박해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빼놓지 않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순교한 스데반은 경건한 사람들이 장사를 지내고 크게 울었는데(8:2), 여기에 나오는 경건한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일 수도 있지만, 아직 예수님을 믿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진심으로 사모하는 유대인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누가는 누가복음을 기록할 때도 종종 경건한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대부분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들을 표현할 때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스데반의 순교와 함께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났고, 사도 외에는 모두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8에서 성령이 임하시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이 8:1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8:1이나 8:4에 나오는 “흩어지니라”, “흩어진”이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디에스파레산”(διεσπάρησαν), “디아스파렌테스”(διασπαρέντες)인데 이 단어들은 “흩뿌리다, 흩다”라는 의미를 가진 “디아스페이로”(διασπείρω)에서 나온 말로, 이 단어에서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디아스포라(Διασπορά)라는 단어도 나오게 됩니다. 스데반의 순교로 인해 예루살렘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으로 흩어진 사람들이 되어 가는 곳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복음이 전 세계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일어난 큰 박해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들이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 흩어진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했습니다(8:4). 생명의 복음을 가진 자들은 가는 곳마다 그 살아있는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복음을 가진 자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이 심겨졌고, 복음이 싹을 틔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이 점차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예(例) 중 하나로 빌립 집사를 들어 기록하고 있습니다(8:5~8). 빌립은 사마리아로 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했는데, 빌립은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표적(表蹟, Sign)을 행하였습니다(8:6). 귀신 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고, 중풍병자와 못 걷는 자를 낫게 하는 표적이었습니다(8:7).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빌립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르게 되었고(8:6), 그 결과 사마리아 성에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8:8).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교회를 향한 박해가 매우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복음이 더 넓은 세상에 전파되게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과 아픔이 때로는 더 놀라운 복음의 역사(役事)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복음은 살아있기에 아무리 박해를 한다고 해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꿈틀거리는 생명력이 더 활발하게 전해지게 됩니다. 우리에게 생명의 복음이 있다면, 그 복음은 우리 안에 갇혀져 있지 않습니다. 그 복음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전해져서 사람들에게 생명을 얻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복음이 바로 그러한 생명입니다. 내 안에 있는 복음도 그러한 생명이 있습니다. 이제 나가서 전해야 할 때입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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