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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무장등[不無長嶝] 1446m 경남 하동 / 전남 구례
산줄기 : 백두불무장등단맥(삼도봉)
들머리 : 토지면 내동리 피아골
위 치 경남 하동군 / 전남 구례군
높 이 1446m
# 참고 산행기[산 벗]
94년10월30일(日)晴---지리산(智異山)(6)불무장등(1)...해봉산악회(46명)
* 개요는 지리산(4) 참조
+ 칠불사(七佛寺)
창건시기:101년, 가락국 사찰.
소재지:경남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내용 출처:두산세계대백과
지리산 토끼봉의 해발고도 830m 지점에 있는 사찰로, 101년 가락국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이곳에 암자를 짓고 수행하다가 103년 8월 보름날 밤에 성불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지리산 최고의 심산유곡에 자리잡아 수많은 고승을 배출하였으나, 1800년 큰 화재가 나서 보광전, 약사전, 신선당, 벽안당, 미타전, 칠불상각, 보설루, 요사 등 10여 동의 건물이 불탔다가 복구되었다. 1948년 여수·순천사건을 거쳐 6·25전쟁 중 다시 불탄 뒤 1978년에 복구하여 지금의 칠불사가 되었다.
운공선사가 축조한 벽안당 아자방(亞字房)은 세계건축대사전에 기록되어 있을 만큼 독특한 양식으로, 서산대사가 좌선한 곳이자 1828(조선 순조 28) 대은선사가 율종을 수립한 곳으로 유명하다. 아자방은 신라 때 금관가야에서 온 구들도사 담공선사가 만든 온돌방으로, 방안 네 귀퉁이에 70cm씩 높인 곳이 좌선처이며, 가운데 십자 모양의 낮은 곳이 행경처이다. 한번 불을 지피면 49일 동안 온기가 가시지 않았다고 한며, 100명이 한꺼번에 좌선할 수 있는 방으로, 건축 이래 한 번도 보수한 적이 없다.
일곱 왕자를 성불시킨 보옥선사는 거문고의 명인이었으며, 신라 경덕왕 때는 옥보고가 입산해 50년간 30곡의 거문고곡을 지었다고 한다.
주변에 쌍계사, 청학동도인촌, 청학선원 삼성궁, 화개장터, 섬진강, 하동송림 등의 관광지가 있다.
** 칠불사(11.30)-갈림길샘터(12.15)-토끼봉(13.35)-화개재(14.00)-삼도봉(14.48)-불무 장등갈림길(16.08)-모통마을(18.05) 총 6시간25분
*** 해봉 산악회와 묘한 인연으로 지난해 남 덕유산 산행을 비롯해 지난번 雨中의 두타산 산행까지 벌써 다섯 차례의 동반산행을 하게된 샘이다.
듬직한 체구의 훈훈한 임 대장의 심려 때문인가. 번잡한 시민회관 앞, 한결같이 반갑게 맏이 해주며 오늘은 승강구 입구의 창 측 좌석에 앉으라고 한다. 의자 등받이에는 예약자의 이름이 붙어 있고, 7시55분 좌석은 모두 매워진다. 낯익은 팔성관광의 한 기사. 정각 8시에 출발한다.
동서고가도로를 거쳐 남해고속도로에 진입. 임 대장에게 '설악산 12선녀탕','함월산'그리고 지난번 '두타산'산행 시 촬영한 비디오 테이프를 건네준다. 눈이 시리도록 쾌청한 짙푸른 하늘. 평소 뿌옇던 김해평야 건너편 먼 산의 능선이 선명하게 들어 난다. 임 대장이 A팀은 삼도봉에서 불무장등으로 내려가고, B팀은 화개 재에서 점심식사하고 곧장하산 한다며 산행시간 계획을 방송한다. 고속버스는 여유 있는 산행 시간을 벌기 위해 남강 휴게소를 통과 9시30분 문산 휴게소에 정차한다.
10시8분, 하동 I/C를 빠져 나와 왼쪽으로 섬진강을 끼고 30여분 달리다 화개에서 우측의 쌍계사 쪽으로 빠진다. 벗 나무 숲을 거쳐 칠불사 안내간판 입구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꺾어 가파른 길을 오른다. 11시6분 등산로 입구에서 정차.
38명이 하차하고 칠불사를 촬영하고 싶다는 뜻을 받아드린 임 대장의 배려로 집행부의 베레모 젊은이를 딸려주며 칠불사에서의 등산로를 설명해 준다. 등산객 아닌 유산객 8명과 함께 약 5분간을 숨가쁘게 오른 버스는 비좁은 주차장에 도착한다.
가야국의 김수로왕의 일곱 아들이 이곳에 와서 수도한지 2년만에 모두 성불하여 칠불사라 하였다는 유래가 있는 사찰. 단풍이 지고 있는 왼편 산비탈의 3단 축대 위에 창건 역사와 달리 현란한 단청으로 채색되어있는데 도대체 현판이 보이지 않는다. 단지 '칠불사 아자방지'가 경남유형문화제 제144호로 스텐레스 안내 간판이 대웅전 앞뜰의 오른편에 세워져 있을 뿐이다.
왼편으로 퇴색한 亞字房건물이 앉아 있고 한번 구들에 불을 지펴놓으면 석 달 열흘간 방이 식지 않는다는 온돌방이 유명하다고 해서 창문을 통해 들여다본 실내는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다.
시간에 쫓기어 바쁘게 촬영하고 베레모와 등산길을 찾다 분명하지 않아 무전기로 임대장과 교신한다. 버섯 재배지가 보이는, 산자락에 낙엽이 덮인 희미한 등산로. 철조망을 넘어 낙엽이 푹신한 등산로를 따라 한참 올라가는데 오른편으로 색깔이 영롱한 '곤줄박이'한 마리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다니고 있다. 수시로 무전기에서 A팀과 B팀간의 교신이 들려온다.
B팀은 벌써 7,8명이 산행을 포기, 하산하겠다는 소리. 12시 6분, 조그마한 바위 위에 올라선 곳에 노란 페인트칠한 벤취 한 개가 놓여 있다.
칠불사에서 촬영에 정신이 팔려 수통에 물을 담지 못해 베레모 에게 목이 말라 물 있느냐고 물었더니 요쿠르트 3개를 내어놓는다. 잠시 갈증을 풀고, 평탄한 등산로를 이런 저런 이야기하며 걷는데 철조망이 2중 3중으로 가로막는다.
12시15분, 갈림 길 도착. B팀의 일부는 저 아래에서 되돌아 내려가고 후미의 젊은이와 두 남녀는 왼편 내리막에 있는 샘에서 물을 뜨고 있다.
B팀이긴 하지만 겨우 본대와 합류. 수통에 물을 담고 조금은 느긋한 마음으로 가파른 오르막을 오른다. 얼마 후 신기하게도 하얀 대리석이 박힌 등산로를 지나친다. 12시36분. 헬기장을 거쳐 계속 오르는데 '참샘 토끼봉4Km'이정표를 거쳐 2번째 헬기장이 나타난다.
12시50분, 오른편으로 저 멀리 천왕봉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단풍은 전혀 볼 수 없는 8부 능선을 벗어나 12,3세 소년을 거느린 가족 회원이 바위에 앉아 쉬고 있고 집행부 젊은이에게 임 대장에게 나도 A팀에 끼일 테니 교신하라고 이른다.
13시35분, 해발 1522m의 황량한 토끼봉에 오른다. '천왕봉33Km, 노고단12Km, 연하천 산장, 반야봉,칠불암 각각6Km'의 이정표가 외로이 서 있다.
잠시 촬영을 마치고 차갑고 얼얼한 싱그러운 공기를 마시며 A팀을 따라잡기 위해 바쁘게 삼도봉 쪽으로 혼자 내려간다.
인적 드문 종주 능선. 한 젊은이가 부피가 큰 배낭을 메고 올라온다. 등산로 상에 뿌리가 얼기설기 노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짓밟고 지나갔는지 빤질 빤질 윤이 나 있다. 무심한 등산객들은 나무의 아픔은 아랑곳없고 우선 걷기 편한 데로 계단처럼 딛고 오르내리기만 했을 뿐이다. 14시, 저만큼 아래 해발 1260m의 뱀사골의 화개재. A팀이 막 도착했는지 두런두런 모여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까마귀 떼가 까옥까옥 소리내며 비상, 삼도봉은 햇살을 등지고 조용히 이들을 내려 다 보고 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 배낭에서 오바트라워즈를 꺼내어 입고 준비해간 김밥으로 간단히 식사. 22명의 A팀에 끼기 위해 바쁘게 배낭을 챙겨 후미에 붙어 가파른 오르막을 오른다. 삼도봉에서 내려오는 사람은 수고하십니다! 하며 호기를 부리는데 오르는 사람은 숨이 턱에 차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도 못한다.
이미 J교수 부인은 두어 번 호흡 조절하며 어지러운 바위틈에서 쉬고, 7,8m은 됨직한 나무 한 그루가 태풍에 넘어 졌는지 뿌리가 크다란 바위에 낀 채 발랑 속살을 들어내고 애처롭게 길게 누워 있다.
14시48분, 해발 1550m의 '삼도봉'도착. 일단의 남녀가 암반을 돌며
"경상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한바퀴 돌았다. 만세!"
하며 계속 돌고 있다.
오른쪽으로 반야봉이 의젓하게 앉아 있고 멀리 서쪽으로 햇살을 등지고 노고단이 도톰하게 솟아 있다. 뒤돌아보니 천왕봉은 여전히 햇살을 안고 제 모습을 자랑하고 남쪽으로는 이제 타고 내려갈 불무장등이 양쪽으로 목통골과 피아골을 끼고 통곡봉을 추겨 올리며 섬진강으로 길게 누워 있다.
이런 풍광을 캠코더에 담는데 임 대장이 조용히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불무장등은 어느 쪽으로 내려갑니까?"
"이 쪽입니다."
"우리 뒤에 또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후밉니다."
맨 뒤라는 소리에 마음이 급해진다.
나 한사람 때문에 시간 계획에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서둘러 하산 차비를 한다. 위험하고 아기자기한 코스도 촬영하며 내려가려고 한 손에 캠코더를 받쳐들고 두어 걸음 옮기는데 그게 아니다. 바로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 도저히 한 손으로 중심을 잡으며 내려갈 것 같지 않아 뒤따라오는 임 대장에게 캠코더를 배낭에 넣어 달라고 부탁한다.
네 팔다리와 엉덩이까지 의지하며 간신히 암벽을 타고 내려간다. 곧 질펀한 산죽 군락사이를 지나 바짝 뒤 따라 오는 임 대장이 몰아 붙이는 것 같아 속보로 내려가는데 저 만큼 J교수 부부가 내려간다. 뒤의 임 대장은 선두와 교신을 하고. 지도상으로는 경상남도와 전라남도의 경계선인 완만한 이 능선. 산죽이 얼마나 밀생 하였는지 길이 잘 보이지 않아 하마터면 뿌리에 걸려 넘어 질 뻔 한다. 푹신한 발바닥의 촉감과 이어지는 산죽에
취해 줄곧 앞만 내려다보며 뛰듯이 걷는다. 왜 不無長嶝인지 임 대장도 확실히 모르는 모양이지만 문자 그대로 길게 뻗은 능선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예정 시간보다 상당히 빠르다는 이야기에 마음의 여유를 갖고 배낭의 캠코더를 내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산죽 터널은 끝이 났는가. 질펀한 낙엽만 쌓인 키 낮은 잡목 숲을 지나친다. 임 대장을 앞세우고 다시 촬영하는데 교신이 안 된다며 걱정을 한다. 봉분 두셋을 지나고 16시8분, 갈림길 도착.
선두의 집행부 젊은이와 중년 한사람과 J교수 부부. 중간 팀이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빠졌다는 것. 교신이 안되니까 젊은이를 피아골 연곡사 쪽으로 보내 잡아 보라고 한다.
이제 4,50분의 시간 여유가 생긴 셈인데 나머지 사람들은 급하게 시그날이 있는 왼쪽으로 내려간다. 장등은 이제 끝인가. 곧 경사가 심한 잡목 숲 속으로 들어선다. 주위는 지는 단풍으로 울긋불긋 마지막 정염을 불태우고 이끼 낀 바위가 외로운 등산객의 마음을 촉촉이 적셔준다. 저만큼 내려간 임 대장이 모퉁이에서 시그널을 붙여 놓을 테니까 보고 내려오라고 소리친다. 상석과 비석까지 세운 묘지가 세 번이나 나타나고 빨간 단
풍나무 한 그루가 잎새가 시드는데 그 옆에 고목이 새끼 금줄을 두르고 헐벗은 체 서 있다.
16시52분, 잡목 속의 희미한 등산로를 빠져 나오는데 사방이 확 트인다. 두어 평의 공터에 봉긋 솟은 바위 뿌리가 보이고 주위에 귤 껍질과 담배 꽁초가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왼편으로 목통마을이 내려다보이고 그 능선 위로 멀리 천왕봉이 우뚝 솟아 있다. 코발트빛 하늘을 배경으로 적당한 곡선을 그리며 달리는 능선. 지금도 많은 등산객들이 오르내리고 있겠지. 잠시 두 귀가 찡 하며 정적 속에 순간 무아경에 빠진다.
앞서 내려간 사람들은 얼마나 빨리 달아났는지 꼬리조차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내리막. 곧 농평 마을에 내려선다. 교회 종탑도 보이는 20여 호의 아담한 마을. 저 만큼 임 대장이 혼자 서 있다. 아직 연락이 없다며 왼쪽 산허리로 돌아가는데 구절초를 비롯한 온갖 야생화가 조용히 피어 있다.
해는 서산 마루에 걸렸고 임 대장이 구릉에서 교신을 시도하며 왼쪽으로 먼저 내려가라고 한다. 다시 잡목과 넝쿨. 졸졸 흐르는 개울의 바위에 파랗게 낀 이끼. 삼도봉에서 2시간20분을 내려오면서 우리 회원 외는 한사람도 보지 못할 정도로 오염되지 않는 한적한 등산코스. 그래서 온갖 생명체는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17시40분, 목통마을을 건너보며 물소리 요란한 개울에 석축으로 정성 드려 쌓은 교각에 두 사람이 나란히 건너도 될 다리가 놓여 있다. 농가에 들려 양해를 얻고 세수를 하는데 누룽이가 낯선 손님이 의심스럽다고 사정없이 짖어되며 정적을 깬다.
"여보게, 犬公, 나 양해를 얻고 씻고 있네 너무 짖지 말게!"
현대식으로 지은 마을회관 앞의 보안등이 노란 불빛을 발산하고 목통교를 건너 오전에 거쳐간 칠불사 갈림길에 도착한 건 18시5분, 6시간25분의 산행이 끝난다.
버스는 약 200m 아래 주차해 있다. 칠불사팀, B팀, 그리고 A팀등 10여명이 한가로이 앉아 있는가 하면 중년 남자 너덧 명은 얼큰히 취해 부산하게 차에 오르내리고 있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빠진 16명 이외는 모두 돌아온 모양이고 집행부 막내 젊은이가 임 대장과 교신했는데 아직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한다.
한 장년 회원이
"집행부 학생이 지금 무어가 빠지게 뛰어 가드라."
며 유쾌하게 웃으며 자칭 베테랑들이 어떻게 옆길로 빠지면서 큰소리 쳤는지
나중에 오기만 해 바라면서 또 한번 웃는다. 옆 좌석 뒤쪽에 앉은, 토끼봉 오를 때 소년의 엄마인 아주머니가 허리가 아프다고 수지침을 놓아주었더니 산행 때 개암이 있어 먹은 게 채했다고 한다. 다시 脾正方. 그리고 기미가 많이 생기고 피부가 형편없는데 좋은 방법이 없느냐는 소리에 소화기능을 정상화 시켜주면 된다며 자세한 설명을 해 주었더니 자신은 폭식을 한다고 한다.
짚차 한 대 도착, 장년 한 사람이 오른다. 16명중 한 사람인데 무전기 고장으로 남어지 사람은 피아골 주차장에 대기중이라고. 얼마 후 땀에 젖은 임 대장등 집행부 젊은이가 오르고 18시55분, 피아골로 출발 한다.
19시18분, 화개에서 내려 초원식당에서 재첩국 대접을 받고 있는데 피아골로 갔던 버스가 도착.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오르니 '설악산 12선녀탕'의 '안아 줄 낀데 아주머니'가 혼자 앉아 있다. 자기는 주변의 요란한 노랫소리를 듣고서야 잘못 내려온걸 알았다고.
버스는 출발하고 20시10분, 어두운 섬진강을 끼고 10여분을 달리다 갑자기 식당 마을 앞에 정차. 한 기사가 큰일 났다며 바쁘게 하차. 얼마 후 물통이 들락이며 엔진에 냉각수 보충하는 소동을 벌린다. 한 주당이
"우리도 냉각수 떨어 졌다. 냉각수 다오!"
또 한바탕 박장대소가 터져 나오고 J교수도 豪笑를 터뜨린다. 뒤에서 거나한 목소리가 들려 온다.
"형님! 이 가족적인 분위기가 얼마나 좋습니까."
20시55분, 하동I/C를 거쳐 남해 고속도로에 오르면서 모 장년회원이 J교수 부인을 형수라 했다가 장모라 했다가 또 한바탕 폭소가 터진다. 운전기사의 옆 좌석에 앉았던 베레모가 옆으로 픽 쓰러지고, 그 뒤 자리를 바꾼 임 대장도 제되로 몸을 가누지 못해 내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가 자리를 양보해 바꾸어 앉는다.
21시38분, 남강 휴게소 도착. 요란스러운 일단이 하차하고 난 뒤. 일일 회원 인 듯한 장년이
"해봉에는 군기가 없어!"
하며 투덜 되며 내린다. 항상 귀로의 버스 안에서 문제가 생긴다. 그 좋은 지리산 준봉, 계곡에서 싱그러운 공기를 마셔 몸과 마음을 깨끗이 정화, 날아 갈 듯한 기분을 서
너 시간을 간직 못한다. 지난번 두타산 산행 때는 眼下無人양반의 농담과 흡연 때문에, 오늘은 과음과 고성으로 나에게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해 준다.
한 기사 다시 출발하면서 워타펌프가 고장났다며 본사에 전화, 진영휴게소에 예비차량을 준비해 놓으라고 한다. 차는 가다 엔진 과열 경고음이 계속 나 몇 번 정차하며 엔진을 점검한다.
23시45분, 진영휴게소 도착. 대기하고 있는 팔성 관광버스에 오른다. 우리가 산을 찾는 건 대개 건강을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건강은 산을 오른다고 꼭 오는 건 아니다. 인간은 이해관계에 의해 좋았다 나빴다 변덕을 부리지만 산은 교만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항상 느긋하게 우리를 감사 준다. 그래서 우리는 산의 한없는 어질고 느긋함을 배워 仁者樂山이라고 했지만 이런 느긋한 심성을 가져야만 건강은 스스로 찾아 오는 것.
집단이기주의가 팽배하여 아수라장 같은 이 사회가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무원칙의 사회에 작으나마 그룹 산악회를 통하여 산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벽 없이 젊은이는 나이 든 사람으로부터 생활의 지혜를, 나이든 사람은 젊은이로부터 생활의 활력을 얻는 老少同樂하는 소중한 시간을 갖는다는데 그 뜻이 있는 게 아닐까?
짧은 시간이지만 소중한 한때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가 남에게 부담을,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해봉산악회도 귀로의 귀중한 시간을 자의에 의한 자기소개와 산행소감 발표, 직장PR, 재담, 아니면 리크레이숀 리드에 의한 앉은자리에서 간단한 노래자랑과 합창을 한다면 그날의 산행은 그 즐거움과 보람은 배가 될 것이다.
24시40분. 관광버스는 가로등이 환한 서 부산T/G를 빠져, 온갖 공해의 소굴 속으로 들어간다.
* 추기:불무장등의 유래
'韓國名山記'金長好著 p-362에 "위에서 내려다보면 이 산은 동서로 뻗는 주능선에서 크게 세 갈개 방향으로 지맥이 발달되어 있다. 그 중 큰 것이 경남과 전남.북 3개도의 분기점이 되는 삼도봉에서 남진하는 불무장등(不無長嶝)이다. 이 봉우리는 봉우리라기보다는 그 이름자대로 한 큰 덩치(경상도말로 장등이)이다. 이 덩치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를 내달으며 통꼭봉과 황장산을 솟구치며, 양겨드랑이에 피아골과 화개천을
끼고 섬진강을 저만치 하동포구 쪽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 경상남도청에 문의한 결과
1106 번 글의 답장글:RE:지리산 삼도봉에서 내려오는'불무장등'의 한자
명과 그 유래/ 글쓴이 문화관광국 관광진흥과 관광행정담당(담당전화:055-279-3336)
글쓴날 2001년 03월 07일, PM 03:03 읽은수 10
경남도정과 관광발전을 위해 남다른 관심을 가져 주신데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남상기님의 문의사항에 대하여 답변 드리겠습니다.
귀하께서 문의하신 지리산 삼도동에 위치한 "불무장등"의 높이는 1,446m이고 반야봉에서 높이 솟아 남쪽으로 탑리까지 이어진 능선을 "불무장등능선"이라 합니다. "불무장등"의 한자표기는 "不無長嶝"이나 "佛母長嶝"으로 표기하고 있으며 "不無長嶝"이라 표기한 경우는 불무장등의 산세가 대장간의 화로인 불무와 같은 형상으로 생겼다하여 생긴 지명이나 이는 지명의 유래나 뜻을 잘 알지 못하고 적은 잘못된 표기입니다.
올바른 표기는 불교에서 최고의 지혜를 뜻하는 단어인 반야(般若) 또는 불모(佛母)란 용어를 사용하는데서 유래한 것으로 불모장등은 반야봉에서 시작한 반야장등에 있는 가장 높은 산인데 반야라는 중복된 글자를 피하고 같은 의미인 불모장등(佛母長嶝)이란 표기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佛母"는 불무로도 읽어 현재의 "불무장등"이란 표기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귀하께서 제안하신 우리도내의 유명산과 지명 등의 유래가 정리되는 데로 게시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경남홈페이지를 많이 이용해 주시고 문의 사항이 있으시면 우리 경남관광정보센터(055-279-3336, 283-0101)로 연락 주시면 신속하게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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