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의 목록
박설하
눈이 내릴 것 같다
이웃의 목록에 비닐하우스를 저장한다
택배가 오지 않는 날이다
불현듯 먹고 싶은 짬뽕은 읍내에 있다
나와 읍내 사이에는
배달 불가의 방어벽이 있다
바람을 뚫고 당도한 읍내 장터
중국집 문은 닫혀 있다
눈을 찌르는 앞머리가
낭패로 치렁이는 화요일
미용실마저 쉬는 날이다
불 꺼진 싸인볼 아래
길고양이가 털 고르듯 뭉쳐진 눈발을 굴리고 있다
그러니까 아버지와 엄마가
별거 아닌 일로 다투기 좋은 날이다
치매방지책이라고 동생이 일러준다
꾹꾹 눌러 쓴 트집들이
믿고 싶은 줄거리를 지어내고 있다
친애하는 당신과 나
엄마와 아버지의 다정을
비밀 같은 눈이 날린다
가래와 삽 너머로
택배 안부가 궁금해진다
누가 나에게 요일을 배달시켰나
화요일에 걸린 시계가
여섯 시 칠십오 분을 가리키고 있다
---박설하 시집 {화요일의 목록}에서
모든 일들이 예측이 가능하고 순풍에 돛 달 듯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그날은 운수가 좋은 날이고, 그 반면에, 모든 일들이 전혀 예측할 수 없게 진행되고 될 일도 안 되는 날은 아주 운수가 사납고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박설하 시인의 [화요일의 목록]은 아주 운수가 사나운 날의 기록이며, 전대미문의 외계의 체험을 노래한 시라고 할 수가 있다.
일설에 의하면 박설하 시인은 공직에서 은퇴를 한 남편과 함께 경남 밀양에서 농사를 짓고 있으며, 따라서 “눈이 내릴 것 같다”라는 시구는 낭만적인 환상이 아니라, 어떤 일에 대한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눈이 내릴 것 같고, “이웃의 목록에 비닐하우스를 저장한다”는 것은 비닐하우스의 붕괴에 대한 염려와 함께, 그곳에 출하해야 할 영농상품(농산물)이 저장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고, “택배가 오지 않는 날이다”라는 시구가 그것을 시사해준다. 택배가 오지 않으니까 마음이 불안해지고, 마음이 불안해지니까 모든 것을 뒤섞은 짬뽕이 먹고 싶어지고, 짬뽕이 먹고 싶어지니까 “배달불가의 방어벽”을 뚫고 읍내로 나간다. 하지만, 그러나, 손수 차를 몰고 “배달불가의 방어벽”을 뚫고 나갔지만, 중국집은 문이 닫혀 있고, “미용실마저 쉬는 날”이라 “낭패로 치렁이는 화요일”을 손질할 수도 없다.
짬뽕은 모든 불행과 우연의 집합체이고, 이 짬뽕같은 날을 잠재우지 않으면 그 어떤 일도 정상적으로 처리를 할 수가 없다. “불 꺼진 싸인볼 아래/ 길고양이가 털 고르듯 뭉쳐진 눈발을 굴리고”있고, 그러니까 이처럼 운수가 사나운 날은 아버지와 엄마가 아무 것도 아닌 일도 다투게 된다. 아버지와 엄마가 아무 것도 아닌 일로 다투니까 그 싸움의 치졸함에 화가 난 남동생은 “치매방지책”이라고 비아냥 대고, 나는 꾹꾹 눌러 쓴 트집과 트집들을 잠재우며, 그 싸움의 바깥에서 “친애하는 당신과 나/ 엄마와 아버지의 다정함을” 생각해 본다. 비밀 같은 우연과 불행의 짬뽕 같은 눈이 내리고, 나는 가래와 삽으로 눈을 치우며, “택배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이때의 택배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는데, 첫 번째는 내가 보내지 못한 영농상품의 안부----농산물은 생물이니까----이고, 두 번째는 그 영농상품 대신에 누가 나에게 보낸 ‘화요일’이라는 택배이다. “누가 나에게 요일을 배달시켰나/ 화요일에 걸린 시계가/ 여섯 시 칠십오 분을 가리키고 있다”라는 시구가 바로 그것을 증명해준다.
운수가 좋은 날이 아닌, 운수가 사나운 날은 밖으로 발산하지 못한 본능이 안으로 내면화되고, 이 내면화된 본능이 그 힘을 축적하게 되면 반드시 화산처럼 폭발을 하게 된다. 박설하 시인의 화요일은 지구가 아닌 외계의 화요일이자 시간대이고, 그러니까 박설하 시인의 짜증과 분노가 분출해낸 화요일이라고 할 수가 있다. 외계의 시간대는 1시간이 100분인지, 120분인지 알 수가 없지만, 지구에서의 7시 15분이 그곳에서는 6시 75분이 되고 있는 것이다. 박설하 시인의 [화요일의 목록]은 예측불가능한 일들의 목록이고, 그 뒤죽박죽의 사건들 속에는 인간 역사의 종말과 함께 최후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 느닷없이 눈이 내리고, 왜, 택배는 오지 않는 것인가? 비닐하우스는 눈의 하중을 어떻게 견디고, 택배로 보내지 못한 농산물은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하는가? 왜, 오만가지의 잡탕인 짬뽕이 먹고 싶어지는 것이고, 왜, 중국집과 미용실까지도 문을 닫았단 말인가? 왜, 아버지와 엄마는 아무 것도 아닌 일로 다투고, 왜, 친애하는 당신과 나는 서로가 서로를 소 닭 보듯이 하고 있는가? 왜, 하필이면 따뜻한 남쪽에서 비밀 같은 눈이 내리고, 왜, 어느 누가 그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화요일을 택배로 보내왔단 말인가?
박설하 시인의 화요일은 모든 일들이 뒤죽박죽인 날이고, 불같이 짜증과 분노가 솟아난 날이며, 박설하 시인의 화요일은 그가 외계의 행성인 화성으로 진입한 날이다. 화요일은 불행이 우연의 머릿채를 붙잡고 필연의 쳇바퀴를 돌린 날이며, 그 6시 75분에 나는 그 어떤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발을 동동 구르게 되었던 날이라고 할 수가 있다.
모든 행운이 짓밟히고 오만가지의 불행의 씨앗이 뿌려진 박설하 시인의 [화요일의 목록]----. 가장 낯익고, 가장 정들었던 고향땅과 집에서, 나는 문득 외계인이 되어, 그 짜증과 분노를 어쩌지 못한다.
왜, 어느 누가 나에게 외계의 화요일을 택배로 보냈단 말인가?
최악의 궁지에 몰린 자들이 히틀러나 스탈린처럼, 내란과 혁명, 또는 이웃국가에 대한 침략으로 그 돌파구를 마련하듯이, 운수가 사나운 날이면 누구나 그 모든 가치를 전도시키고, 새로운 우주를 창조하는 혁명가가 된다고 할 수가 있다. 비극은 더 이상 비극이 아니고, 그 비극의 생산성으로 이처럼 아름답고 뛰어난 [화요일의 목록]을 창출해내게 되는 것이다.
모든 희극의 기원은 비극인 것이고, 짜증과 분노는 혁명의 힘이 되는 것이다. 새로운 혁명이란 언어의 자유와 시인의 자유가 결합된 것이며, 그 결과, 박설하 시인의 [화요일의 목록]은 새로운 우주의 그 모든 것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박설하 시집 화요일의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