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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 사는 한국인 ‘훈 할머니’
훈 할머니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던 한 한국인 사업가였다. 1996년 우연히 한국인 사업가를 만난 훈 할머니의 손녀가 그에게 할머니의 사연을 전한 것이다. 이후 50여 년 만에 한국인을 만나게 된 훈 할머니는 “바닷가인 고향에서 김치를 담근 기억이 나고, 아리랑 구절도 어렴풋이 떠오른다”며 “고향에 가보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훈 할머니의 사연은 이듬해인 1997년 6월 13일 캄보디아 신문 <프놈펜 포스트>(The Phnom Penh Post)에서 처음 보도했다. 신문은 73살 한국인 훈 할머니가 캄보디아 오지에 생존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훈 할머니가 일제강점기 때 한국에서 위안부로 끌려온 것으로 보인다고 소개했다. 이후 <에이에프피 통신>(AFP)을 통해 전 세계로 보도되면서 국내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국민의 뜨거운 관심이 이어졌다. 훈 할머니는 위안부 후원단체들과 여러 기관의 도움으로 고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55년 만에 밟은 고국 땅
1997년 8월 4일, 마침내 훈 할머니가 고국을 찾았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지 55년 만의 귀국이었다. 훈 할머니는 고국 땅을 밟자 몸을 가누지 못한 채 한 서린 울음을 터뜨렸다. 할머니는 가방 안에서 도화지 한 장을 꺼내 보였다. 도화지에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내 이름은 나미입니다. 혈육과 고향을 찾아 주세요”라는 한글이 적혀 있었다. ‘오니’라고 생각했던 이름도 귀국을 앞두고 ‘나미’라는 이름으로, 기억이 조금 더 또렷해졌다. 훈 할머니는 “나를 불쌍히 여겨 가족을 찾아주세요”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할머니는 몸이 기억하고 있던 노래 아리랑을 흥얼거리며 휠체어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갔다.
고국으로 돌아온 훈 할머니는 전국을 돌며 가족을 찾으려 애썼다. ‘위안부’ 피해자 수요 집회 등 각종 행사와 8·15 특집 위안부 돕기 모금 생방송 등 방송에도 모습을 드러내면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할머니의 가족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연락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훈 할머니는 한국에 온 지 두 달이 넘도록 가족을 찾지 못했다. 그러자 몇몇 언론들은 훈 할머니가 “조선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며 급기야 거짓말쟁이로 몰기도 했다. 훈 할머니는 가족 찾기를 포기하고 캄보디아로 되돌아가기로 한다.
그 무렵 <경남매일>은 1997년 8월 26일 치 신문에서 훈 할머니의 혈육을 찾았다고 단독 보도했다. 73일 동안의 끈질긴 취재가 낳은 결과였다.
이렇게 훈 할머니는 친여동생인 이순이 씨와 올케 조선애 씨 등 한국의 가족들을 극적으로 만났다. 대검찰청의 유전자 감식 결과 이들이 가족이라는 사실도 최종 확인됐다. 이후 훈 할머니는 이남이라는 본명과 한국 국적도 되찾을 수 있었다.
영구 귀국도 잠시…
캄보디아 시민권을 포기한 훈 할머니는 이듬해인 1998년 5월 1일 한국 국민으로 영구 귀국하기로 했다. 캄보디아의 손녀와 함께 귀국하고 한국인 ‘이남이’로 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시민모금으로 마련한 성금으로 경북 경산의 한 마을에 보금자리도 꾸렸다. 이곳에서 한국의 조카 가족, 캄보디아에서 함께 온 손녀와 살기로 했다. 한국 국적을 찾은 이남이 할머니는 생전 처음으로 투표도 하고 방송에도 출연하는 등 고국 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남이 할머니는 결국 꿈에 그리던 고국에서의 생활을 뒤로하고 캄보디아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고국으로 돌아온 지 넉 달 만의 결정이었다. 이남이 할머니는 그동안 말이 통하지 않아 외로운 나날을 보내온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남이 할머니는 “캄보디아에 남아 있는 20여명의 가족들이 그리워 출국한다”며 “날씨가 따뜻해지는 내년 봄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했다. 영구 귀국을 위해 선택했던, 캄보디아에서 낳은 딸과 손녀들과의 생이별은 이남이 할머니가 감내하기에는 힘든 일이었다.
캄보디아 귀국
캄보디아의 ‘훈 할머니’로 되돌아가 둘째 딸 집에 머물던 이남이 할머니는 2001년 2월 15일 캄보디아에서 노령과 병환으로 숨을 거뒀다. 현지에 파견된 한국대사관 직원은 “이남이 할머니는 숨지기 직전까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계속해서 했다고 캄보디아 가족들이 말했다”고 밝혔다. 대사관 직원은 또 “이남이 할머니가 한국말을 제대로 못해 한국에 살지는 못했으나 한국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이 대단했다”는 가족들의 말을 전했다.
잔인한 역사 앞에서 이남이 할머니는 자신의 뿌리와 고국의 기억도 잊은 채 살아야 했다. 16년을 살았던 고국보다도 50년을 넘게 살아온 이국 땅에서의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훈 할머니’를 탓할 수 없는 이유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