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정치가, 문학가였던 교산 허균(許筠, 1569~1618)이 자신의 시와 글을 모아 직접 정리·편찬한 개인 시문집이다. 총 26권 8책의 필사본 형태로 전해진다.
책 이름에는 허균 특유의 겸양과 재치가 담겨 있다.
성소(惺所)는 허균의 여러 호(號) 중 하나로, '깨어있는 장소'라는 뜻이다.
부부고(覆瓿藁)는 '장독대나 항아리를 덮는 데나 쓸 만한 보잘것없는 원고'라는 뜻이다. 중국 한나라의 학자 양웅이 자신의 책을 길거리에 버려 장독 덮개로 쓰일까 저어했던 고사에서 유래했다.
즉, "성소(허균)가 쓴, 항아리 덮개로나 쓸 법한 보잘것없는 글 모음"이라는 겸손한 제목이지만, 실상은 허균의 천재적인 문장과 진보적인 사상이 집대성된 명작이다.
일반적인 조선 시대 문집과 달리 시부(詩部), 부부(賦部), 문부(文部), 설부(說部)의 4부 체재로 체계적으로 분류되어 있다.
시부(詩部, 1~2권)에는 명나라 사신으로 갈 때 지은 시나 전국을 유람하며 지은 시 등 연대와 주제별로 정리한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부부(賦部, 3권)에는 초사 형식의 운문인 부(賦)와 사(辭) 등을 모은 곳으로, 누이 허난설헌을 추모하며 지은 〈훼벽사(毁璧辭)〉 등이 있다.
문부(文部, 4~21권)에는 허균의 파격적인 정치·사회 사상이 드러나는 가장 중요한 파트이다.
〈호민론(豪民論)〉: "천하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직 백성뿐이다"라며, 세상을 바꾸는 혁명적 백성('호민')의 무서움을 경고한 글.
〈유재론(遺才論)〉: 신분제와 서얼 차별에 반대하며 인재를 귀천 없이 등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글.
한문 소설/전(傳): 신분적 한계를 지닌 미천한 인물들의 삶을 조명한 〈손곡산인전〉, 〈엄처사전〉, 〈남궁선생전〉 등 5편의 한문 전이 수록됨.
〈대령산신찬 병서〉: 1603년 강릉단오제를 직접 관찰하고 김유신 산신 신앙에 대해 기록한 최고(最古)의 단오제 기록.
설부(說部, 22~26권)는 허균의 수필, 비평, 잡기 모음이다.
〈성수시화(惺叟詩話)〉: 우리나라 역대 시에 대한 독창적인 시평집.
〈도문대작(屠門大嚼)〉: 유배지에서 과거에 먹었던 전국 팔도의 풍부하고 맛있는 음식과 특산물을 추억하며 기록한 한국 최초의 음식 품평서(식객록).
학술적·역사적 가치
유교적 명분론이 지배하던 조선 중기에 도가, 불교, 무속, 서얼 차별 철폐, 민중 중심의 정치를 긍정적으로 바라본 허균의 개혁적·반체제적 시각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성소부부고》에는 강릉단오제에 관한 기록뿐만 아니라, 전통 연희, 전국 팔도 음식 문화(도문대작), 민간 설화 등이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어 조선 중기 문화사·민속학 연구에 필수적인 사료로 평가받는다.
작가가 생전에 직접 장르와 주제별로 자신의 문집을 구성하여, 후대 문신들의 문집 편찬 방식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