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토, <최후의 심판>, 1303-06년, 프레스코, 스크로베니 소성당, 파도바, 이탈리아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태동을 알리는 건축가이자 화가였던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6년경~1337)는 1305년에 베네치아 근처 파도바에 있는 스크로베니 소성당 내부에 대규모의 프레스코 연작을 제작했다. 이 소성당은 파도바의 최고의 부자들 중 한 명이었던 엔리코 스크로베니(Enrico Scrovegni)가 성모 마리아에게 거금을 봉헌하여 지어졌다. 성당 내부의 좌우 벽면에는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의 일생이 각각 여러 장면으로 나누어져 벽 전체가 장식되어 있으며, 입구 위의 벽 전체에는 <최후의 심판>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그리스도는 화면 중앙에 황금빛 만돌라(Mandola, 신성한 하늘과 빛, 그리고 영광을 의미) 안에 양팔을 벌리고 그림 왼쪽의 선택받은 자들에게 고개를 돌리고 계신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늘에 오른 열두 사도들은 근엄하게 보좌에 앉아 지상을 내려보고 있다. 예수님을 둘러싼 천사들 중 두 명은 최후의 심판을 알리는 나팔을 불고 있다. 화면 왼쪽에는 무덤에서 나와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입은 선택받은 자들이 천국에 오르기 위해 질서정연하게 기다리고 있다.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은 큰 기쁨으로 하느님과 만나게 될 것이다. 반면, 오른쪽은 선택받지 못한 자들이 공포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어둠의 공간으로 내동댕이쳐진 풍경이다. 지옥은 “개들과 마술쟁이들, 불륜을 저지르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 그리고 거짓을 좋아하여 일삼는 자들” (묵시 22, 15)이 하느님과 영원히 단절된 상태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최후의 심판> 장면의 중앙 아래에는 엔리코 스크로베니가 등장한다. 스크로베니 집안은 대대로 은행업을 해왔다. 엔리코는 아버지 리지날도 스크로베니 때부터 교회에서 금기하는 고리대금업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으며 횡포 또한 심했다고 알려졌다. 단테의 『신곡(神曲)』에서도 ‘리지날도가 지옥에 있더라.’라고 쓰여 있을 정도로 그의 죄악은 널리 드러났다. 이런 까닭으로 엔리코는 고리대금업으로 많은 부를 쌓은 아버지와 자신의 죄를 잘 알고 있었기에 지옥으로 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아버지와 자신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거액의 성당 건축비용을 헌납했다고 한다. 엔리코는 교회에 거액을 헌금해서라도 지옥행을 면하고 싶었던 심정이었던 것이다.
왼쪽의 엔리코는 무릎을 꿇고 성모 마리아에게 스크로베니 소성당을 오른쪽에 있는 성직자의 어깨에 얹어 바치고 있다. 두 천사의 보위를 받으며 서 있는 성모 마리아는 오른손을 내밀고 있고, 엔리코는 왼손을 들어 성모님의 손을 잡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은 소성당 입구를 잡고 있어, 마치 엔리코가 천국의 문 앞에 다가서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동작을 통해서, 비록 조토가 인체를 해부학적으로 정교하게 표현하고 있지 않지만, 중재자이신 성모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께 간구하는 엔리코의 심리 상태를 깊이 있게 잘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엔리코가 무릎을 꿇고 있는 길에서 한발만 더 가면 불길이 치솟는 지옥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마태 19, 24)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 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