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륙전야(上陸前夜)
에스메랄다! 당신은
인고를 배우며 억겁을 출렁이는
험한 물결의 질곡 속에서도 힘써 버텨
양각으로 조각된 영원한 이념의 상징탑
노틀담 사원의 종각 만큼이나 높은 브릿지에
젊은 깃발을 달고 야망의 불을 지펴
항구를 떠났다 되돌아 오니 여든 한 살
이제 우리는 이름없는 포구에 닻을 내린다
기인 여정의 막장을 접고
망각의 저편 우유빛 물결 속에
회한의 편린을 띄우니
전율의 몸짓으로 뿌리는 조각들이 고운 무리지고
회억과 상념의 프리즘에 반사되는 숱한 나날들이
적하목록처럼 빼곡히 굴절해 오는데
감격과 배신은 짙은 그림자로 교차하며
하선자의 흉금을 자멱질 한다
에스메랄다! 당신은 우리의 짐배가
백만 톤이 되던 날의 감회와
수천만 톤을 넘는 오늘의
벅찬 환희를 오래 기억할 수 있는가?
그리고
황천의 어둡던 밤 죽을 힘으로
로프를 당기던 콰지모도와 부두의 침묵과
뱃길마다 숨어우는 새벽별의 흐느낌을?
전체가 부분의 집합보다 큰 인생 적화법
정의가 아니면 닿기를 거부하는 낡은 선원수첩
하얗게 세월이 묻어나는 흰머리 서릿발을
전설의 실타래 처럼 풀며
되돌아 뵈는 밤바다에 은빛 융단을 깔고
이제 등굽은 항해사와 기관사는 손 저으며
내일이면 엔진을 끄고 항해를 멈춘다
이젠 마지막 단 한 번만의 출항마저 힘든
우리는 숨을 고르며 뭍으로 오른다
지난 삶을 엮어 높이 매단다
추억을 접어 높이 곱게 쌓는다.
(바다와의 인연을 접고 뭍에 오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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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마중
아름다운 유혹
등나무 모방하며
숨차게 나무둥치 포복으로
하늘을 오른다
장대비 시달림에 겨워
낙화하는 능소화를
우정있는 설복으로
가슴에 안을까
사랑의 모반자로
눈홀김 받을까봐
천년의 열정을 불태워
망각의 눈물 두고
인연이 지나간 자리
그리움이 길이 되어
솔 바람에 관솔불 켠다
바람이 일렁일 때마다
안으로만 지녀오던
영혼의 궤도를 거슬러
투명한 유리외투 걸치고
거품 후한 비누로
주름 많은 손 씻어
코로나 마스크 턱에 입고
임 마중 나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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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는 뭐 우째 쓰는 긴데?
이 할범도 가끔
詩란 걸 함 써 보려고
고이 종이 놓고 붓을 들어도
이미 남들이 다 써버려
난 쓸 詩가 없네
늘 글을 쓰긴 하지만
글 중에도 詩란 글이
따로 있다는데
이렇게 쓰는 게 詩일까
저렇게 쓰는 게 詩일까
뭐 우째 써야 詩가 될까
쓰다가 지우고
다시 써 또 지우고..
그래 맞아
이리도 잘 써지지 않고
쓰기가 어려우니
詩는 아무나 쓰는 게
아닌가 봐
그러니까
시인이 따로 있고
시인 중에서도
詩 잘 쓰는 시인은 드문게지
오늘밤도 할 일 마치고
詩가 뭔지도 모르면서도
詩를 함 써 보겠다고
몇 번을 썼다가
지우길 되풀이하지만
제목만 써 놓고 한줄도 못쓴 채
어느덧 밤은 깊고
먼동이 트려하니
오늘은 이만 접고
내일 다시 또 써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