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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지 마라.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마르 16,6)
“알렐루야!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주님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고자 온갖 수난과 모욕을 겪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 뜻을 따르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러한 주님 부활 사건은 우리 신앙의 핵심이며 우리 삶의 희망입니다. 죄와 죽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새로 태어나 새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삶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로서 부활하여 영원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실로 눈을 돌려보면, 아직도 세상은 암울합니다. 우리나라만의 사정은 아니지만, 코로나19 상황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백신이 개발되어 접종이 시작되었지만 상황은 더디기만 합니다. 확진자는 줄어들지 않고 있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서민들의 삶은 힘겹기만 합니다. 경제상황은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으며, 요양 시설에 계신 어르신들은 가족과의 만남도 어려워 외로운 시간들을 보내다 세상을 떠나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혐오와 증오 범죄가 세상에 만연하고, 권력자와 가진 자들의 비리는 서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만 더해줍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은 군부의 잔혹한 진압으로 짓밟히고 있습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군경의 총탄에 쓰러지고 희생자들이 속출하고 있지만, 국제 사회는 성명만 발표할 뿐, 어떻게 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얼마 전 제8대 교구장이셨던 이문희 바울로 대주교님을 하느님 곁으로 보내드렸습니다. 오랜 세월 우리 교구를 위해 일하셨고, 언제까지나 우리와 함께 계실 것 같았던 대주교님께서는 봄꽃들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는 주일 새벽에 지상에서의 삶을 마감하셨습니다.
이렇게 죽음은 모든 것을 우리로부터 단절시킵니다. 죽음의 힘은 너무나 큽니다. 죽음을 맞이한 사람을 우리는 세상에서 더 이상 만날 수가 없습니다. 보고 싶어도 그의 모습을 볼 수 없고, 그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죽음이 찾아오면, 내가 지금 노력하고 애쓰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의미를 잃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도 기약 없는 이별을 해야 합니다. 이렇듯 죽음은 세상 모든 것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오늘날의 상황은 죽음의 세력이 세상을 장악한 듯이 보입니다.
내 곁에 있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우리에게 크나큰 상실감을 안겨주며, 또한 그 죽음이 언제 나의 삶을 앗아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심어주기도 합니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는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았습니다. ‘부활’ 사건이 우리에게 어떻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져야 하는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하고 있고, 죽음의 문화가 판을 칩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서민들의 삶은 암울하지만, 우리는 다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마치 겨우내 얼어붙었던 대지를 뚫고 올라오는 여린 새싹들처럼, 죽은 듯이 보이던 고목의 나뭇가지에서 피어나는 어린 꽃잎들처럼 우리는 다시 생명을 얻어 살아날 것입니다. 부활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으로부터 죽으셨습니다. 당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수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죽음은 마치 승리하여, 예수님과 이 세상을 영원히 갈라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당신 뜻을 따르려 죽음까지도 마다하지 않으신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님 부활 사건은 예수님에게서 그치지 않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이가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시어 다시는 돌아가시지 않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죽음은 더 이상 그분 위에 군림하지 못합니다.”(로마 6,9)
우리 교구 공동체는 ‘복음의 기쁨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장기 사목 계획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사목교서를 통해 강조했듯이, 올해는 ‘하느님 말씀을 따라’라는 주제로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힘과 희망을 얻어 기쁘게 살아가고자 합니다. 나의 이기심과 아집, 욕망을 버리고 내 안에 심겨진 말씀의 씨앗이 제대로 싹을 틔워 꽃 피우고 열매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나는 죽고,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우리가 신앙생활 안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항상 말씀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갈 때,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이 지금 여기서부터 부활의 삶을 살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주님 부활의 기쁨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며, 모든 교우들의 가정에 주님의 사랑과 평화가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와 저희 교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성 이윤일 요한과 한국의 모든 성인과 복자들이여, 저희와 저희 교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2021년 4월 4일 주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대구대교구장 조 환 길(타대오) 대주교
삶이 바뀌어야 부활이 옵니다.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사랑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2021년에도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계속되는 코로나19로 지친 여러분들을 축복하시고 크신 평화를 내려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모두들 힘들어하는 이 시기에 맞은 2021년 사순절과 주님 부활 대축일은 여느 해 보다 우리에게 더 깊은 의미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은 우리의 주위를 둘러보면 아직도 여러 상황이 만만치 않습니다. 어둡고 긴 터널에 들어선 지 1년이란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그 끝은 보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터널 속의 이 어둠이 두렵고 익숙하지 않아 불안해하고 또 두려워합니다. 아울러 언제 이 터널을 벗어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기에 더욱 답답해합니다.
골고타 언덕에서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비참하게 돌아가셨을 때, 겁에 질려 바깥출입도 못 하고 골방에 숨어서 공포에 떨던 제자들의 심정이 이러했을까요? 사흘이라는 그 시간이 제자들에게 얼마나 긴 시간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 사흘 동안 제자들은 하늘같이 믿었던 스승님을 잃었다는 상실감과 그렇게 능력이 있으셨던 분이 허무하고 비참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절망감과 배신감, 그리고 언제 로마 군사들이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당신이 다시 살아나셨음을 보여주셨고, 부활하신 스승님을 만난 제자들은 그 모
든 것을 떨치고 일어서는 부활을 체험하였습니다. 제자들은 기쁨에 가득 차 용기를 얻고 힘차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스승이신 예수님의 부활이 바로 그들의 부활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은 단지 죽음에서 되살아난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영광 안에서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계속된 코로나19로 인해 지금 우리가 겪는 고통은 죽음과 멸망의 고통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우리의 삶의 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하나의 시련에 불과합니다. 물론 아직도 여러 상황에서 많이 어렵고 힘들지만 그 힘듦 가운데에서 우리는 새로운 것을 찾아내었고 또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살면서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한 편리함과 풍부함만 추구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삶이 이웃을 배척하고 세상과 자연환경을 파괴하였습니다.
이 세상은 혼자서만 살 수 있는 곳이 아니고, 더불어 서로 사랑하고 위하며 살아야 함을 알았습니다. 더불어 사는 대상은 사람만이 아니고 지구와 자연과 환경임도 알았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살았던 삶의 많은 부분이 생명을 살리는 부활에 역행하는 삶이었습니다. 제자들이 겪은 어둠의 사흘을 겪고 있는 우리도 이제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참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하고 회심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도 부활의 삶
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의 태도를 새롭게 할 때 이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고, 이 지상에서의 부활의 삶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체험하는 부활의 삶이 영원한 부활로 이어질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총과 평화에 힘입어 기쁘고 복된 부활의 삶을 살아가시길 기도드립니다.
“이날은 주님께서 마련하신 날입니다,
이날을 기뻐하고 우리 함께 춤을 춥시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천주교 부산교구장
손 삼 석 요셉 주교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1. 오늘은 주님 부활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을 축하드리며 부활의 기쁨과 희망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쁨의 원천을 마련해 주신 날입니다. 이 기쁨은 우리가 죄와 죽음에서 해방되어 구원을 받은 감격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죄와 악에 시달리며 고통을 받습니다. 또한 우리는 언젠가 불현듯 찾아올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아갑니다. 사람은 자기 스스로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가 결코 풀 수 없는 죄와 죽음의 문제에 대한 유일하고도 궁극적인 해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묻히신지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죽음을 영원히 없애버리셨습니다”(이사 25,8). 그리하여 예수님을 구세주 그리스도로 믿고 세례를 받으면 누구나 죄를 용서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하여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간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권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세례로 예수님과 함께 죽고 묻힌 우리도 새 생명을 얻어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628항, 로마 6,4-5 참조).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항상 기뻐하고,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며, 늘 기도하는 삶의 토대요 원천이 되었습니다(1테살 5,16-18 참조).
3. 주일은 부활하신 주님의 날입니다. 주일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주일은 매주간 돌아오는 ‘작은 부활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 다음날, 곧 주간 첫날에 부활하셨습니다(마태 28,1 참조). 초대교회 신자들은 처음부터 주님께서 부활하신 주간 첫날을 ‘주님의 날(주일)’로 지내기 위해 함께 모여 성경 말씀을 듣고 성찬례를 거행하였습니다. 교회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자녀들이 매주일 함께 모여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고 기념하며 그 의미를 되새기는 주일미사를 줄곧 거행하여 왔습니다. 이처럼 주일은 그리스도인 생활에 핵심이 되는 날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급변하는 우리사회의 여러 상황들은 신자들의 주일미사 참석에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주일의 근본적 의미가 상실되고, 단지 주말의 일부인 것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확산은 신자들의 주일미사 참석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한때는 모든 본당에서 신자들과 함께 하는 주일미사가 중단되었고, 이후에도 장기간 제한적 인원으로 미사를 거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교회는 부득이 신자들에게 (평화방송미사, 유튜브 미사 등) 비대면 방식의 대송으로 주일미사 참례의무를 대신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습니다(교회법 1245조, 한국천주교회 사목지침서 제 740조 4항 참조). 이와 같은 교회의 조치는 주일을 꼭 지켜야 한다는 신자들의 의식에 큰 혼란을 초래하였습니다.
주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계명은 하느님의 명령입니다. 주일미사 참례는 신자 각자의 선택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신자들은 누구나 주일미사에 참여할 중대한 의무가 있습니다”(교회법 1247조 참조). 주일미사 대송허용은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의 긴박한 상황 속에서 교회가 주일미사 참여의무를 대신하도록 한시적이며 예외적으로 허용한 결정이지, 신자 각자가 아무 때나 임의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주일은 그리스도인 생활에 핵심이 되는 날입니다. 주일은 그리스도인 생활 속에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일 년 52주 주일미사에 꼭 참여하는 가운데 활력 넘치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4. 주일은 사랑을 실천하는 날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사랑하여라”(요한 13,34) 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당신 목숨을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한 주님의 지극한 사랑의 기억이자 기념인 “주일의 성찬례는 우리에게 사랑의 의무를 면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갖가지 애덕과 신심, 그리고 사도직 활동에 투신하도록 촉구합니다”(주님의 날, 69항 참조). 사도시대 이후부터 주일 모임은 사실상 그리스도인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형제애의 나눔을 실천하는 시간이었습니다(주님의 날, 70항 참조).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을 공경하고자 하십니까?
그렇다면 그분께서 헐벗으셨을 때 모른 체하지 마십시오. 비단으로 장식된 성전 안에서 그분을 공경하면서, 그분께서 바깥에서 추위와 헐벗음으로 고통당하실 때는 모른 체하지 마십시오. 먼저 그분의 주린 배를 채워드리고 나서 남은 것으로 제대를 꾸미십시오”(주님의 날, 71항 참조).
우리 주변에는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마음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장기화 여파로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는 일일노동자,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찬례는 우리에게 형제애를 실천하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매주일이 고통과 가난, 그리고 외로움을 뼈저리게 느끼는 사람들에게 물질과 시간을 나눔으로써 사랑을 실천하는 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5.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부활대축일을 맞이하여 주일의 의미와 중요성을 다시금 마음에 깊이 새기며, 주일을 거룩히 지키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당부합니다.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2021년 4월 4일
예수 부활 대축일에
청주교구장 장 봉 훈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