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트럼프 포비아(phobia:배격,증오)"는 죄악이다!
(글: 김미영/VON대표)
[칼럼]
언론의 트럼프포비아는 죄악이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에 머물렀다. 당시 나는 인디애나주 노틀담 대학에서 국제인권법을 공부하고 있었다. 이 때의 경험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학교에서 4인 1채로 제공하는 기숙사 아파트에 세속화된 이슬람 국가로 대표되는 투르키예, 그리고 이슬람 신정국가 이란에서 온 박사과정 학생이 각각 한 방씩을 차지하고 있었고 또 한 방은 매일 새벽미사를 다니는 경건한 미국 카톨릭 신도인 로스쿨 학생이 쓰고 있었다.
아래층 부엌과 거실은 공유공간으로 하나의 냉장고를 쓰면서 지내야 했는데 할랄식품을 먹는 두 무슬림과 영국 옥스포드를 나온 전형적인 미국 상류층 카톨릭 신도, 그리고 유별난 한국 개신교도가 함께 지내다 보니 보이지 않게 속을 끓이고 1년 내내 벽에는 작은 그림 한 장 붙이지 못한 채 하얀벽 그대로 두고 지내야 했다.
기숙사에 가장 먼저 도착한 투르키예 생물학도는 라마단 금식중이었고, 비자문제로 가장 늦게 도착한 이란 물리학도는 이맘의 딸로서 하루에도 몇 번씩 소리를 내어 이슬람식 기도를 했다. 운동과 새벽 미사를 거르지 않는 바른 생활 미국인 로스쿨 학생은 낯선 이방인들과의 삶이 불편한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지만 집안에서 신발을 벗고 지내는 세 아시아인을 아랑곳 비오는날조차 신발을 벗지 않고 온 집안에서 발자국을 찍어댔다.
노틀담 대학에서 가장 많이 듣는 단어 중에 ‘다양성 diversity'이 있었다. 다양성의 관점에서는 이보다 진한 경험이 있을까 싶다. 다양성의 공허를 채울 길은 따로 모색되어야 한다고 이때의 경험으로 깨달았다.
함께 수학한 학생들은 아프리카 중남미 북미 서구 동구 아시아 등 전 세계 5대양6대주 출신이 골고루 있었다. 모두 학부에서 법을 전공하여 대부분 변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었다.
학생들 중에는 여럿의 동성애자들이 있었다. 나는 코스를 밟는 동안 누구든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히 여기며 친하게 지냈다. 사실인지 농담인지 케냐에서 나무밑에서 태어나 진짜 생일을 모른다고 한 친구부터 코소보에서 태어나 전쟁을 경험한 진지한 알바니아계 코소보인 친구, 차베스 정권에 몸서리치는 베네주엘라 친구, ‘우리 정부에 200불밖에 없어’ 라며 한탄한 무가베의 나라 짐바브웨 친구까지 왁자하게 떠들고 놀며 우리는 희한할 정도로 진한 우정을 나누었다.
그들은 거의 매주 주로 중남미 출신 학생들의 아파트에서 맥주파티를 열었다. 이렇게 다양한 지역 출신의 사람들이 이렇게 왁자지껄 떠들며 춤추며 가깝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보였다.
서로 작별이 가까워 모여 노래할 때 둥글게 스크럼을 짜고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을 애절하게 불렀다.
역설적으로 이 때의 경험 때문에 트럼프의 등장을 예측할 수 있었다. 트럼프가 1퍼센트의 지지도를 갖고 나왔을 때 벌써 그의 당선을 예측했고 한번 실패를 겪더라도 반드시 2기까지 마무리하게 된다고 페이스북을 통해 여러 차례 표명했다. 그리고 트럼프 재선은 한반도 현상타파 국면을 열 것이라고 거듭 말해왔다.
이런 예측은 예지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관심에서 시작된다. 나는 주말이면 혼자 차를 몰고 아미쉬나 메노나이트 기독교인들이 모여사는 마을로 드라이브 다니기를 좋아했다. 아직도 마차를 타고 다니는 아미쉬 교도들이 유독 많은 인디애나에서 전 세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이색 경험을 통해 세상을 보는 창을 하나 얻은 셈이었다.
세계 5대양 6대주에서 온 친구들이 “한 번 생각해 보시라구요. 천국이 없다고요. 그럼 지옥도 없어지니 얼마나 좋냐구요.” 라며 존 레논의 이매진을 불렀지만 그때 그들 속에서 이미 온 세상을 가르는 갈등의 씨앗을 보았던 것이다.
당시 오바마가 두번째 임기를 맞았다. 우리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법률가들이 모두 오바마 당선을 환호작약했다. 케냐출신 미국변호사 이스라엘이 내게 “모니카 너도 오바마 찬성이지? 몰몬교도 롬니는 너도 싫은 거잖아.”라고 물었다. 그는 내 속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기를 좋아했다.
그때 그 나의 동료들은 지금 트럼프 당선을 애통해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친구들은 다양성의 섬에서 즐겁게 놀았지만 사우스 밴드 도시만 벗어나면 트럼프를 절실하게 추구하는 인디애나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사진 찍기를 거부하여 운전면허증도 안 가지는 그 아미쉬 사람들까지 이번에 마을을 나와 트럼프 트럼프를 외치며 열망했다고 한다.
2018년 무렵 영국 브론테의 고향마을에 갔을 때 빌리 조엘의 피아노맨을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고 있던 레즈비언 커플이 식당에서 내게 말을 건넸다.
“한국에서 왔다고? 그럼 김정은 알겠네. 트럼프가 김정은 사랑한다잖아.” 라며 깔깔댔다. ”헤이 한국인. 우리 내일 같이 맨체스터로 놀러 갈래요?“ 라고 말했는데 나는 손사래를 쳤다.
그때 나는 트럼프가 매우 외로운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다. 트럼프가 늘그막에 왜 세상 한 가운데로 불려나와 조리돌림 당하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한국언론은 트럼프 재선이 경제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는 백인 꼰대들의 무식한 반란 정도로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다. 경제보다 더한 이유가 반드시 있다.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대개 트럼프를 지지한다. 그들은 오바마 정부가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금지시켰을 때 이를 갈았다. 이제 아이의 성전환을 막는 부모에게서는 양육권을 뺏겠다는 정부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대개 트럼프를 지지한다.
지금 미국에 격렬한 종교전쟁 또는 신념의 전쟁이 전개되고 있는 사실을 한국 언론은 모르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다.
깊은 내막에서 일어나는 이 신념의 충돌을 무조건 외면하는 한국 언론의 트럼프 접근은 이제 재앙 수준이다. 일관된 트럼프 디스는 그야말로 목불인견이다.
1776년 드디어 총을 내려놓고 만든 청교도들의 나라가 미국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트럼프 지지자들을 광인 아니면 속물 취급해 봤자 당신들은 앞으로도 오보나 써댈 것이다.
거듭 말하건대 트럼프 지지자들이 광인 아니면 속물이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치 앞이라도 볼 수 있다.
한반도의 내일을 이해하려면 그 청교도들 사이에 임한 부흥의 물결이 여기 한반도에서 만들어낸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 선교사 파견은 미국의 제3차 영적 대각성운동(Great Awakening)의 영향으로 가능했고 그 결과 우리는 처음으로 각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헌법에 새긴 나라에 살게 되었다.
다양한 사람들, 소수자, 약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길은 “천국 버리면 지옥도 없어진다” 는 식의 편의적 상상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도리어 천국에서 내려온 양도할 수 없는 천부인권을 굳게 붙잡을 때 가능하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청교도들이 피흘려 얻어낸 것이다.
우리도 역시 피흘려 얻어낸 소중한 것이다.
바로 그 불가침의 천부인권을 1948년 대한민국 건국헌법에 새긴 이승만은 존재 자체가 영적 대각성의 열매라는 사실은 부정해 보았자 부정되지 않는다.
트럼프포비아 또는 트럼프혐오에 휩싸인 전반적인 한국 언론의 현실이 한국의 현실이다. 이 깊은 어둠 속에서 나의 동료들은 각자 영적 대각성의 조짐을 느끼는 듯하다. 지난 10월 27일 서울시청 앞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이 그러했다.
각자도생하면서라도 이 한심한 세월을 잘 이겨내야 할 것같다. 험한 세상에서 다시 미국 대통령으로 일하게 된 트럼프 대통령의 성공을 빈다. 이상하게 애잔한 마음이다.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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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VON대표 페북 글(24.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