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임을 하고 나니 정장을 하지 않아도 되고 복장도 자유스러워서 좋다.
신발도 딱딱한 구두를 고집하지 않고 부드러운 운동화를 주로 신는다.
구두를 처음으로 신어 본 것은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다. ROTC로 유니폼을
착용하다보니 신발도 겨울엔 검은색 단화이고, 여름엔 하정복이나 약복에는
백색 구두를 착용했다.
구두는 단체로 영도에 있는 칠성제화점에서 맞추었는데 어찌된 셈인지 내 것은
너무 빡뻑해서 발이 아팠다. 당시엔 군에서 지급하는 군화에 발을 맞추어야 하는
시대여서 아무 말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만 앓았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폭이 넓어
새끼 발가락이 쪼그라 들었다. 옛날 중국에서 여자들 발을 크지 못하도록 베로 똘똘
싸매서 전족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오늘 12시 20분에 모처럼 오랫만에 정장차림으로 현관애 서서 신발장 안에 모셔져
있는 새 구두를 꺼냈다. 구두 칼로 뒷꿈치에 대고 신어 보았으나 발이 들어거지 않았다.
다른 새 구두를 꺼내 구두끈을 풀어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새 구두는 아들이 자기가
신어 보고 발이 편하더라면서 선물로 사다 준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예전에 신었던 낡은
구두를 신고 나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오늘 만나기로 한 약속은 이 달 말에 결혼식을 올리는 예비커플이 주례를 부탁해서
흔쾌히 수락했던 것인데 신부 부친이 내 막내 동생과 부산대 무역학과 동기로 학창시절에
우리집에도 자주 놀러 왔던 사이였다.그래도 내 딴에는 신랑 신부 될 사람들이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았는지 테스트를 할 요량으로 A4백지용지와 볼펜을 준비하고 갔었다.
약속시간인 13시에 조선비치 호텔1층 커피숍에 도착했더니 신부될 사람과 그의 아버지가
나와서 나를 영접하였다. 알고보니 신랑될 사람이 갑자기 코로나에 걸려 못나오게 됐다는
것이었다. 예비고사도 말짱 도로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