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요르카 8 - 시티투어 버스로 안익태선생 집을 보고 마요르카 역사를 회상하다!
2018년 5월 14일 소예르 Soller 와 발데모사 Valldemossa 를 다녀와 스페인광장 에서
시티투어 버스 City Tour Bus 를 타니 대성당과 항구를 지나 스페인 마을과 벨베르성
을 거쳐 Pl Gomia 정류소에 내려 택시를 타고 애국가의 자곡가 인 안익태 선생 집
Career P'eaktai AHN : Carrer de Josep Costa Ferrer 4, Palma 을 찾아 구경합니다.
골목 오른쪽 주택에 문은 닫혔지만“안익태선생 유택”이라는 동판이 보이고 우편함
에는 LEONOR AHN TALAVERA +0034 655 212 ahn.leonor@gmail.com
이라고 적혀 있기로 엣날 일을 회상하고는 애국가 저작권을 기증해준
유족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손 편지를 써서 우편함 에 넣고는 돌아서 내려옵니다.
도로로 내려와 5분쯤 시내쪽으로 걷자니 Palacio de Marvivent 가 보이니 무슨 궁전이라는
말인 것 같은데, 안으로 들어가니 정원이 잘 꾸며져 있기로 천천히 거니노라니 방금
안익태 선생 집을 방문한 감흥이 가시지 않은 탓인지 기억이 되살아나는데 애국가
작곡가와 작사자 윤치호 모두 훌륭한 분이지만 친일파 로 돌아선 이유를 생각하게 됩니다.
해방이 되고 정부수립후 국회는 “반민특위” 를 설치하니 친일 반역자들이 잡혀오는데
모두들 구차한 변명으로 일관했으나 오직 한사람 “천황폐하가 우리 조선인을 적자로
거두어주신 큰 은혜에 감읍해 뼈와 살과 혼도 철저한 일본인이 되어야 한다” 고 외친
이광수 만은 죄를 시인했는데... 그 이유를 묻자 “일본이 몇백년 갈줄 알았다” 라나요?
해방이 되자 조선인들은 태극기를 만들어 거리로 나와 독립이 되었다고 환호 했는데....
일본이 망했는데 왜 조선이 당연히 독립되어야 하는 걸까요? 사기를 당해 집을
잃고 남의 소유가 된 집에 세들어 살며 모진 핍박을 받다가 미운 집주인이 망하면
바로 내 집이 되는게 아니라.... 경매에 참가해 “낙찰” 을 받아야 내 집이 되는 것이지요?
낙찰을 받으려면 “돈” 이 있어야 합니다! 김구 선생은 일본이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대성
통곡하자 사람들은 기뻐서 우는줄 알았으나... 김구 선생은 “이제 큰일났다! 우리가
독립을 위해 한 일이 없으니 강대국들이 우릴 어찌 할꼬?” 1932년 윤봉길 의거후 임시
정부는 일본에 쫃겨 8년을 도망다니다 1940년 충칭에 지리잡은후 광복군 을 창설했지만....
내일 아침 때꺼리를 고민하는등 재정이 열악하니 일본군과 공식적인 전투 를 단 한차례도
치르지 못한지라.... 미군의 생명을 한명도 구하지 못했으니 경매에 참가할 돈 을 한푼도
모아두지 못한 것이네요? 일본을 패망시킨 미국은 1941년 12월 진주만 기습으로 시작된
태평양 전쟁 에서 "조선이 미군의 생명을 얼마나 구했느냐" 하는 기여도 를 중요시 합니다?
오히려 조선인들은 비록 강제 라고 하더래도 일본군에 쌀과 면화 를 공출하고 징용으로 철과
석탄을 캐고 군수공장에서 총과 탄약에 군수품 을 만들었으며, 조선 노동자는 남양군도
에서 활주로 를 만들었으니.... 거기서 출격한 일본군 비행기는 숱한 미군 함정을 격침
시켰고 징병으로 조선인들은 일본군에 참전해..... 전투에서 수많은 미군들을 살상 했습니다.
박정희나 백선엽 등 수많은 조선인들은 천황폐하의 황군이 되고자 자진해서 일본 육사 에
입교해 일본군 장교가 되었으며, 학도병이나 강제 징병으로 끌려간 조선인들도 미군을
죽일 의사는 없었다고 해도 전투에서 그들이 쏜 총알은 눈이 없었는데, 카이로 특파원
박민우씨는 동아일보 글로벌 이슈에 “쿠르드족, 독립의 열망과 냉혹한 현실” 을 올렸습니다.
카이로 특파원으로 부임하고 대피라미드 옆에 자리한 메나하우스 호텔 을 찾았는데 1886년
에 개관한 호텔은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로비에서 쉬고 있자니 직원이 말하기를
“한국에서 오셨죠? 호텔 정문옆 언덕 위 정원에 기념비 가 있으니 가서 꼭 확인 해 보세요.”
메나하우스 호텔 은 1943년 11월 카이로 회담의 본부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장제스 중국 총통등 3개국 정상이 여기서‘카이로 선언’ 에
합의했으니 전후 처리 문제와 함께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의 자유 독립을 처음 으로
약속했으며...... 카이로 선언의 내용은 1945년 7월 포츠담 선언 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됩니다.
한국 입장에서 카이로 선언은 그야말로 "행운" 이었으니...... 미,영,중 세 강대국은
“한국인이 노예상태에 놓여있음을 유념하며 적당한 시기 에 '적당한 절차를 거쳐'
자유롭고 독립된 나라가 될 것임을 선언하다” 고 명시했습니다, 당시 수많은
식민지 가운데 어떻게 "한국만이 거의 유일" 하게 독립을 보장 받을수 있었을까요?
일각에선 백범 김구선생과 임시정부의 외교활동 덕분이었다고 말하니 장제스 와 가까웠던
백범이 그의 힘을 빌려 미국과 영국을 설득했다는 것이니, 중국은 1932년 윤볼길의사 의
상하이 홍커우공원 의거후 임정과 긴밀히 협력해 왔으며 카이로 회담전 백범은 장제스와
만나 종전후 미국과 영국이 주장하는 신탁통치에 반대하며 독립에 대한 지지를 요청했습니다.
장제스가 진정으로 한국의 독립을 원했을까요? 시진핑은 작년 베이징회담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은 중국의 일부" 였다고 말했는데, 카이로회담 중국측 의제 초안에는
‘중국영토 회복’ 다음 '조선 독립승인’ 이 명시돼 있었으니 장제스는 카이로 선언에
한국 독립 조항을 넣은 것을 ‘유레없는 외교적 성공’ 이라고 자신의 일기장에 적었습니다.
그러나 정반대의 기록 도 있으니, 카이로회담 둘째날 루스벨트와 장제스는 비공개
만찬에서 3시간 가까이 토론했는데..... 1943년 11월 24일 미국무부 기록은
“장제스 총통은 전날 토의내용에 매우 만족한 것 같으며, 중국이 만주와 한국의
재점령을 포함한 광범위한 야심을 갖고 있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표현했습니다.
겉으로는 한국의 독립을 지지하고 있지만 장제스의 속셈은 과거 중화질서에서 종주국
지위를 회복 하는 것이라고 루스벨트는 판단했으니, 서로 다른 기록을 말하는
역사에서 진실을 찾기란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분명한건 국제정치가 냉혹
하다는 사실이니 루스벨트 특별보좌관 해리 홉킨스가 작성했던 카이로 선언
초안에는 한국의 독립을 “가능한 한 가장 이른 시기에” 결의하기로 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루스벨트 는 이를 “적절한 시기” 로 고쳤고..... 처칠과의 협의를 통해 “ 적절한
절차를 거쳐 in due course” 로 최종 수정됐으니 일본에서 해방되더라도
곧바로 자주 독립을 하용하지는 않겠는 뜻 을 분명히 한 것 인데......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이 구상했던 신탁통치안 은 광복후 한반도를 둘로 쪼개 놓습니다.
그러니까 루스벨트는 1941년 12월부터 종전 까지 조선이 일본군과 싸워 미군의 생명을 구한
적이 전혀 없고, 반면에 일본군에 군수품 을 대고 일본군으로 참전해 전투에서 미군을
죽였으니 바로 독립할 권리가 없다는데, 한국인들은 “적절한 절차를 거쳐 적절한 시기”
에 독립시킨다는 구절은 깡그리 빼버리고..... 오직 “독립” 두 글자에만 관심을 가진 것입니다.
2차대전 후에 4대국 신탁통치를 받는 나라는 오스트리아아 독일에 한국등 세 나라 인데.....
오스트리아 는 내란으로 원수지간이던 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가 서로 화의를 하고
“공동정부” 를 수립해 중립국 이 되면서 미소 양국에 절대 적대국 이 되지 않겠다고
맹서해 4대국을 철수시키는데, 김구와 김규식 등이 평양을 방문하며 추진했던 방식 입니다.
독일은 4개로 쪼개졌으며 이후 냉전시대로 들어가서는 미,영, 프 통치지역은 서독
이 되고 소련 통치지역은 동독 이 되었는데, 동독은 면적과 인구가
서독보다 훨씬 적으니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한지라..... 전쟁이나 내란 은
일어나지 않았고 훗날 소련이 무느지면서 결국은 서독이 동독을 흡수 통일 합니다.
오스트리아 방식이 아니라면 독일방식으로 신탁통치에 동의했으면.... 5년간 신탁통치후
장제스의 중국이 통치하는 평안도, 황해도와 영국이 통치하는 경상도 그리고 미국이
통치하는 경기, 충청, 전라도는 대한민국 이 되고 소련이 통치하는 함경도만 북한 이
되었을 것이니 김일성이 함경도만으로는 6.25를 일으킬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랍인들은 1차대전에 총을 들고 영국편에서 싸웠으나 대전후 이라크와 요르단은 영국 이
시리아와 레바논은 프랑스 가 차지했으며, 인도 는 1차대전에 영국군에 참전해 수십만이
죽었는데도 독립을 못하고 2차대전에 또 몇십만이 영국군 참전해 죽은 댓가로 독립 했고
베트남 은 2차대전후 10년간 싸워 프랑스군을 물리친후 미국의 침략으로 또 10년을 싸운
후에야 독립했고, 알제리 는 1954년부터 8년간 프랑스군과 싸워 150만이 죽은후 독립합니다.
그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지아에 버마 그리고 아프리카 국가 들도 오랜 독립전쟁끝에 수많은 국민
들이 죽은 다음에야 독립했지요? 반면에 한국은 동부 유럽이 소련의 손에 들어가고 중국에서
모택동의 공산당이 장개석의 국민당을 내쫒고 베트남에서 공산당 호치민이 세력을 확장하는등
동서냉전 이 시작되자 소련-중국-북한 에 대응하는 미국-일본-한국 이 되면서 독립을 하게 됩니다!
유람선과 보트며 요트들이 정박한항구에서 길을 건너 올라가서는 16번째 Av Gavriel Roca
Auditorium 정류소에서 기다려서는 시티 투어 버스 를 타고는 시가지를 구경하노라니
이윽고 오른쪽에 항구가 나타나는데...... 무수히 많은 요트의 마스트 들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부두에 수많은 요트 앞으로 카약 을 타는 사람들이 더러 보이는게 새로운데...... 바다로
나가 돛을 내리고 정박한 요트를 보자니 돛대가 어찌나 높은지 쓰러지지 않는게
신기한데, 시티 투어 버스는 19번째 정류소이자 부두인 종점 Moll Comercial 을
지나 되돌아 올라와 1번 정류소인 Antonio Maura (대성당 인포앞) 앞에 서기로 내립니다.
그러고는 앞 차에 올라 3번째 정류소인 La Rambla 에 내릴까 하다가 한 정류소 전인 2번째
Pl del Mercat 에 내리니 듣던대로 여기 분수대 주변에는 노천 바 가 많은걸 보는데....
한 정류소 구간을 걸어서 플러타너스 나무가 우거진 람블라 거리 에
도착해서는 도로변에 카페로 들어가 피자와 맥주에 와인
한잔을 시켜 먹으며...... 고단했던 오늘 하루 여행의 피로를 풉니다.
골목길을 걸어서 Hotel de Interior Ca Sa Padrina : Tereses 2, Palma de Mallorca
에 이르니 여긴 방이 4개 뿐인 민박집 수준의 아주 작은 호텔 이라.....
어제 처럼 주인은 벌써 자기 집으로 퇴근해 버리고, 대문은 잠겨 있는지라.....
비밀번호를 눌러 대문 을 열고 들어오니 책상 위에 손편지 가
놓여져 있는 것을 읽어보니 도시세를 내라는 것 같네요?
계단을 올라 3층 우리 방으로 들어가 텔레비전를 트니 오늘 낮에
우리가 방문했던 소에르 Soller 시의 축제 모습을 중계하는데....
우리가 소예르에서 1시 20분에 버스를 타고 발데모사로 떠났으니 축제는 3시에
시작한다고 들었는데, 낮의 행사 보다는 밤의 행사가 중심인듯
축제는 밤으로 전투 장면이 이어지더니....... 성을 탈환하고 축제 를 벌입니다.
마요르카 Mallorca 는 '큰 섬' 이란 의미의 라틴어 'insula maior' 에서 유래하는데
중앙부 저지를 사이에 두고 두줄의 산맥이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으니......
고대로 부터 페니키아인 과 카르타고인 의 통치가 이어지다가 이들을 정복한
로마인의 지배 를 거쳐 8∼13세기에 이슬람 세력의 지배 를 받는데
13세기에 들어 가톨릭 왕국 아라곤의 군대 가 이 섬을 공격해서 점령합니다.
아라곤 왕국의 왕 하이메 1세 (카탈루냐어로는 지우메 1세) 는 1229년 이 섬을 공격해
이슬람 교도들로 부터 마요르카를 탈환 했으니 그 때를 재현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뉴브강 북안에 살던 서고트족은 훈족의 침입을 피해 도망쳐서 이탈리아
로마를 약탈하고는 프랑스를 거쳐 스페인에 서고트왕국 을 세웠습니다.
이후 서기 711년에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지중해 바다를 건너온 이슬람 사라센인 들은
이베리아 반도에 상륙해 서고트 왕국 을 멸망시키고 프랑스 까지 침입합니다.
프랑스에서 패배한 이슬람인 들은 되돌아와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의
코르도바 에 도읍을 정하고 이베리아 반도를 다스렸는 데.....
북쪽 피레네 산간 지역에 거주하던 아스투리아스,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와 아라곤등 몇개
기독교 소국 중에서 아라곤이 성장을 거듭해서는 여기 마요르카 까지 점령 했는가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