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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나무아미타불 원문보기 글쓴이: 송온자
인광대사(印光大師)
스님은 중화민국(中華民國) 이십구년(二十九年) 약 사십여년(四十餘年) 전(前) 스님이시다
어렸을 때에 유생(儒生)들이 불교(佛敎)비방(誹謗)을 해 논 글을 보고 자기(自己)도 그것을 본 따서 불교(佛敎)를 비방(誹謗)하여 글을 써보았다 그랬더니 우연(偶然)히 눈병이 나서 앞을 볼 수 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외람(猥濫)되이 성인(聖人)의 교(敎)를 비방(誹謗)하여 아마도 그 죄(罪)로 인(因)하여 앞을 못 보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여 자신(自身)의 잘못 함을 뉘우치고 마음속으로 부처님께 참회(懺悔)를 드렸다 그랬더니 이상(異常)하게도 눈병이 곧 낫게 되어 전(前)과 같이 앞을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불법(佛法)이 절대(絶對)로 허무(虛無)한 것이 아님을 절실(切實)히 느껴서 불법(佛法)의 진리(眞理)를 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여 여러 가지 경전(經典) 구(求)하여 읽어보았다
경전(經典)을 보고는 크게 발심(發心)이 되어 이십일세(二十一歲)에 출가(出家)하셔서 종남산 연화동에 도순 장로(長老)라는 수행(修行)이 장(壯)하신 스님에게 중이 되셨다
그 후 용서거사(龍舒居士)가 써 논 정토문(淨土文)을 보고는 생사(生死)를 해탈(解脫)하여 속(速)히 불도(佛道)를 성취(成就)함에는 염불법(念佛法)에 더 지남이 없는 것임을 아시고는 그 후로 부터 항상(恒常) 염불(念佛)을 하셨다
그 후 홍라산 자복사에 가시어 정토수행(淨土修行)을 하시면서 경전(經典)을 보시고는 심오(深奧)한 진리(眞理)를 깨닫게 되셨다그 후 다시 법우사라는 절에 가시어 육년(六年) 간을 문(門)을 닫고 주야불철(晝夜不輟) 염불(念佛)을 하시어 마침내 염불삼매(念佛三昧)를 크게 증득(證得)하게 되셨다
그 후(後) 부터는 중생(衆生)들을 교화(敎化)하시길 원(願)을 세우시고는 모든 사람들에게 정토법문(淨土法門)을 해주시고는 염불(念佛)을 권(勸)하시어 많은 사람들이 발심(發心)이 되어 염불수행(念佛修行)을 하게 되었다 그와 같이 교화(敎化)하시기를 수년(數年)간을 매일(每日)같이 쉬지 않고 계속(繼續)하시어 그 스님에게 발심(發心)되어 염불수행(念佛修行)을 하는 자(者)가 무려 이십만(二十萬)명도 넘었다
그리하여 인광대사(印光大師)의 명성(名聲)은 날로 높아졌으며 그 스님을 신(信)하여 염불(念佛)하는 자(者)도 날로 늘어나고 있었다이 스님께서는 자기(自己) 이름이 세상(世上)에 알려지게 됨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 하셨으며 사람들을 대(對)하실 때에도 항상(恒常) 부끄러워하며 겸손(謙遜)하셨다 그리하여 자호(字號)를 참괴승(慙愧僧)이라고 하셨다
참괴(慙愧)승(僧)이란 부끄러운 중이란 뜻으로 지극(至極)히 겸손(謙遜)해 쓰는 말이다 그와 같이 제자(弟子)들이 많으시며 명성(名聲)이 높아지셨음에도 항상(恒常) 떨어진 헌옷만 입고 계시며 음식(飮食)도 좋은 것은 드시지 않으며 빨래 같은 것도 꼭 손수 빨아 입으시고 남을 시키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 스님에게 상좌(上座)가 되려고 수없이 많이 찾아와도 자기(自己) 권속(眷屬)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셔서 권속(眷屬)을 두지 않으셨다그리고 혹(或) 재난(災難)을 당한 자(者)들에게는 꼭 재물(財物)을 구(求)해다 주시고는 위안(慰安)을 해주셨다 그와 같이 교화(敎化)를 해나가시다가 말년(末年)에는 영암산에 가시어 절을 크게 지어서 정토종(淨土宗) 도량(道場)을 만드셔 가지고 정토종(淨土宗)을 크게 펴시어 수많은 수행자(修行者)들이 모여 염불수행(念佛修行)을 행하였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항상(恒常) 평등(平等)한 자비(慈悲)로써 부귀(富貴)빈천(貧賤) 남녀노소(男女老少)의 차별(差別)함이 없이 다 같이 친절(親切)하게 대해 주어서 스님을 따르는 자(者)가 더욱 많아졌다그리고 아무리 피곤(疲困)하고 괴로울 때에도 찾아오는 분들을 싫어하지 않고 항상(恒常) 흔연(欣然)히 맞아주셔서 손님들로 하여금 그 마음을 기쁘게 해주신다는 것이다
이 스님에게 법(法)을 배우러 찾아오는 내왕객(來往客)이 끊길 사이가 없었다 스님의 연세(年歲)가 팔십(八十)세(歲)가 되신 어느 날 전 대중(大衆)을 모이게 하시더니 하시는 말씀이 이 절 주인(主人)이 곧 가게 되었으니 새로 주인(主人)될 스님을 대중(大衆)들이 지금 선출(選出)하도록 하라고 각 대중에 분부(分付)를 하셨다
대중(大衆)들이 인광대사(印光大師)께서 추천(推薦)하시라고 하니 묘진(妙眞)스님이란 스님을 추천(推薦)하시어 대중(大衆)들이 스님의 의견(意見)을 따라 그 스님을 새 주인(主人)으로 모시기로 했다그리하여 취임(就任) 날짜를 십일(十一)후(後)로 대중(大衆)들이 정(定)하니 너무 늦어서 안되니 앞으로 당겨서 받으라고 하셨다 그때가 중화민국(中華民國)이십구년(二十九年) (서기(西紀) 1940년(年)) 10월(月) 이십팔일(二十八日) 이었다
그래서 오일(五日) 후(後)로 다시 정(定)하니 그래도 늦어서 안된다고 하시여
이일(二日) 후(後)인 십일월(十一月) 초하루 날로 취임식(就任式)날짜를 받아
그날로 새 주인(主人)을 모셨다 십일월(十一月) 사일(四日) 날이 되었다
그날은 스님께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시더니 하시는 말씀이 부처님을 친견(親見)하게 되면 결정(決定)코 왕생극락(往生極樂)하게 되는 것 이라고 말씀하시고는 높은 소리로 염불(念佛)을 하셨다 그러다가 새 주인(主人)인 묘진(妙眞)스님이 들어오니 당부(當付)하시길 너는 이 절을 잘 지키도록 하되 내가 죽은 뒤에도 계속 정토수행(淨土修行)을 도량(道場)으로 해나가야지 다른 것을 행(行)하여서는 안된다고 하셨다
그러시고는 물을 가져오라 하여 세수(洗手)를 하시고는 앉으시더니 문득 일어나시며 부처님의 왕림(枉臨)하심이로다 라고 말씀 하시고는 대중(大衆)들께 염불(念佛)하라고 하시고는 서(西)쪽을 향(向)해 단정(端正)히 앉으시어 합장(合掌)하고 염불(念佛)하시고는 열반(涅槃)에 드시더라는 것이다
그때가 사일(四日)아침 오시(五時)경 쯤이라고 한다 날이 밝아진 연후(然後)에 보니 스님께서는 웃는 낯으로 열반(涅槃)에 드시어 단정(端正)히 앉아 계시는데 살아계실 때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그 이튿날 오후 삼시(三時)에 입감을 하였는데 그때까지도 처음과 하나도 다름없이 그대로 산사람과 같았다 단정(端正)하게 앉아 계시는데 허리가 조금도 굽어지기도 않았으며 머리도 숙여지지 않고 아주 반듯하게 그대로하고 계셨다
그리하여 대중(大衆)이 공론(公論)하여 백일장(百日葬)으로 그 이듬해 이월(二月) 십오(十五)일(日) 부처님 열반(涅槃)재일(齋日)날에 장례(葬禮)를 지내기로 했다 그리하여 그 이듬해 이월(二月) 십오(十五)일(日)이 되었다
조문객(弔問客)이 만 여 명이 넘는 많은 분들이 모여 염불(念佛)을 하는데 그 염불(念佛) 소리는 마치 우뢰소리와 같이 천지(天地)를 진동(振動)하였다그리하여 상여(喪輿)를 메고 다비 처로 가는데 길가에 온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통곡(痛哭)하며 전송(轉送)을 해주는데 자기(自己)네 부모(父母)가 죽어 전송(轉送)함과 같이 슬퍼하였다
이윽고 다비소에 이르러 모든 의식(儀式)을 마치고는 화장대(火葬臺)에 불을 붙이니 백설 같은 흰 연기가 하늘 높이 솟아 올라가는데 그 연기(煙氣)가 오색(五色)이 찬란(燦爛)하게 빛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 연기(煙氣)가 흩어지지 않고 저 멀리 서(西)쪽 하늘로 길게 뻗쳐가며 아름다운 향취(香臭)가 온 산천(山川)에 가득히 풍기었다 그날은 날이 저물어서 습골(拾骨)을 하지 못하고 그 이튿날도 비가 와서 오후(午後) 늦게야 주지스님과 대중(大衆)들이 다비소에 가서 요기를 헤쳐 보니 오색(五色)이 찬란(燦爛)한 사리(舍利)가 수(數)도 없이 많이 나와 있었다
모두 거두어 보니 천여(千餘)과(顆)가 넘었다 그런데 그 형태(形態)가 여러 가지였다 어떤 것은 구슬처럼 둥근 것이며 혹(或)은 꽃송이같이 생긴 것도 있으며 혹(或)은 연꽃잎처럼 생긴 것이 있으며 유골(遺骨)은 백옥(白玉)같이 희면서 단단하기가 돌덩이와 같으며 또한 무겁기가 쇠덩이처럼 무겁더라는 것이며 서로 부딪쳐서 쇠 소리가 났다
그리고 치아(齒牙)는 하나도 빠진 것이 없이 온전히 다 있는데 삼십이(三十二)개(個)가 하나도 타지 않고 백옥(白玉)같이 희면서 찬란(燦爛)한 광채(光彩)가 나고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보통 사람의 두골은 두 쪽으로 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 스님께서는 연꽃잎처럼 생긴 골편이 다섯 편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보통(普通) 스님들 사리(舍利)는 그저 단단할 뿐이며 혹(或)은 다소(多少) 광채(光彩)가 날 정도(程度)라고 하는데 이 스님의 사리(舍利)는 부처님의 사리(舍利)처럼 오색(五色)광명(光明)이 아주 분명(分明)하게 나며 밤이면 더욱 찬란(燦爛)하고 밝게 빛을 낸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희유(稀有)하고 신기(神奇)한 일이 아닌가 이 어찌 염불공덕(念佛功德)이 아닐 것이며, 불법(佛法)에 영험(靈驗)이라 하지 않을것인가 또 한 가지 스님의 사리(舍利)에 대해서 신기(神奇)한 일이 있는데 요기에서 대중(大衆)이 사리(舍利)와 유골(遺骨)을 전부다 가리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습골(拾骨)하고 난 뒤에도 지성(至性)껏 공(功)을 드리면 사리(舍利)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조금도 거짓이 아닌 실지로 그와 같이 되는 틀림없는 사실(事實)인 것이다
당시(當時)에 인광법사(仁光法師)를 가장 돈독(敦篤)히 신(信)하며 지성(至誠)껏 받들어 온 신도(信徒) 분이 한 분 있었으니 그 분은 원덕상(元德相)이라고 하는 분인데 영암사 절에서 좀 떨어져 있는 무석이라는 곳에 살고 있는 분이였다
이월(二月) 십오(十五)일(日) 인광법사(仁光法師) 다비식에 참여하고는 자기(自己)가 다니는 그 지방(地方)절에 행사(行事)가 있어 인광법사(仁光法師) 화장(火葬) 후 사리(舍利), 습골(拾骨)함을 참견(參見) 못하고 부득이(不得已) 집으로 돌아갔는데 이일(二日)후(後)인 십칠일(十七日) 날 인편(人便)에 들으니 인광법사(仁光法師)의 유해(遺骸)에서 오색(五色) 사리(舍利)가 무수(無數)하게 나왔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는 사리(舍利)를 친견(親見) 하고자 그 즉시(卽時)로 가서 보니 과연(果然) 듣은 바와 틀림이없었다
또한 지금도 인광법사(仁光法師) 다비처에 가서 정성(精誠)을 드리면 오색(五色)사리(舍利)를 얻게 된다고 한다 그리하여 인광법사(仁光法師)의 사리(舍利)를 얻고져 다비처로 부랴부랴 달려가서 보니 십여(十餘)명의 신도(信徒)들이 사리(舍利)를 얻고저 공(功)을 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요기 안에 보니 사리(舍利)와 유골(遺骨)을 전부(全部)다 가려가고 재와 유골(遺骨) 부스러기가 약간(若干) 남아있었다
그래서 자기(自己)도 예배(禮拜)를 지성(至誠)껏 드리고는 기도(祈禱)를 드렸다 그런데 자기(自己)보다 앞에 와서 공(功)을 드리던 분들이 이상(異常)하게도 모두가 사리(舍利)를 얻게 되더라는 것이다 오직 자기(自己) 하나 만이 아직 사리(舍利)를 얻지 못하고 있였다
그리하여 정성(精誠)을 지극(至極)히 드리고 나서는 요기 안에 재를 헤치며 사리(舍利)를 찾고 있으니 참으로 이상(異常)하게도 아무것도 없던 재 속에서 사리(舍利) 일과(一顆)가 나 왔다오색(五色)이 찬란(燦爛)한 사리(舍利)가 눈이 부시게 빛을 내고 있었다 어떻게나 반가운지 급(急)히 주워서 손바닥에 놓다가 그만 놓치어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다시 찾고 있으니 옆에 있던 분이 다행(多幸)히도 찾아 주었다 그런데 또한 이상(異常)한 것은 새로 찾은 사리(舍利)를 다시 손바닥에 놓으려고 손을 펴보니 아까 잃었던 사리(舍利)가 그냥 손안에 있는 것이었으며 더욱이 이상(異常)한 것은 처음 주은 사리(舍利)는 분명(分明)히 한과(顆) 뿐이었는데 어떻게 된 셈인지 두 낱으로 불어 있었다
하도 이상(異常)하여 자기(自己) 눈에 헛것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하여 옆에 있는 다른 분들께 보이면서 물어보니 역시(亦是) 두 낱이라고 하였다참으로 알 수 없는 부사의(不思議)한 일 이였다 다시 찾은 이튿날 자기(自己)가 다니는 절로 사리(舍利)를 모시고 가서 대중(大衆)스님 들게 참배(參拜)하도록 보여드리니 그때에도 자기(自己) 집에서와 같이오색(五色)광명(光明)이 찬란(燦爛)하게 빛나니 모든 대중(大衆)들이 모두 감격(感激)하여 무수(無數)히 예배(禮拜)를 드렸다는 것이며 그 부사의(不思議)한 일들을 전부(全部) 이야기해주니 대중(大衆)들은 더욱 더 감격(感激)스럽게 생각하는 것이었으며 크게 발심(發心)이 되어 염불수행(念佛修行)에 전력(全力)을 다하였다
이상(以上)으로서 연종(蓮宗)십삼(十三)조사(祖師)에 대한 기록(記錄)을 마칠까 하노라 바라건대 무지(無智)자(者)들의 사언(詐言)망언(妄言)에 현혹(眩惑)됨이 없이 이상(以上)으로 밝힌바 모든 조사(祖師)들에 행(行)하신바 수행(修行)을 거울삼아 여실(如實)히 행(行)하여서 그 모두가 결정(決定)코 왕생극락(往生極樂)하여 줄 것을 바라며 이만 붓을 놓을까 하노라것하고 합(合)하니 의외(意外)로 삼과(三顆)의 많은 사리(舍利)를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는 사리(舍利)를 구(求)하려는 사람도 없고 한데 저 유골(遺骨) 부스러기를 그냥 두고 가면 그대로 버려지고 말 것인데 크고 작은 것이 무슨 관계(關係)가 있겠는가 저것도 모두 스님의 정혈(精血)로 생긴 것 인데 하고 생각하여 모두 가져다가 절에 다 모셔놓고 받들고 싶은 생각에서 그 자잔한 부스러기를 전부(全部)다 주워서 사리(舍利)와 함께 곽(槨)에 다가 넣어가지고 잘 싸서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일곱 시가 지나 어두워졌다
그리하여 석반(夕飯)을 먹고는 전 가족(家族)이 세수(洗手)하고 옷을 정돈(整頓)해 입고는 불을 밝힌 후 향(香)을 사루고 정중(鄭重)히 예배(禮拜)를 드리고 나서 사리함(舍利函)의 뚜껑을 여니 찬란(燦爛)한 오색(五色) 광명(光明)이 황홀(恍惚)하게 비치는데 어찌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유골(遺骨) 부스러기가 전부(全部)사리(舍利)로 변(變)하여 전부(全部) 오색(五色) 광명(光明)을 발(發)하고 있었다 참으로 부사의(不思議)한 신기(神奇)하고 이상(異常)스러운 일이였다 원덕상(元德相)은 너무나 이상(異常)한 일이어서 가족(家族)들에게 물어봐도
모두가 자기(自己)와 같이 전부(全部) 다 사리(舍利)로 보인다고 하였다
원덕상(元德相)은 너무나 감격(感激)스러워 눈물지우며 지성(至誠)껏 예배(禮拜)를 드렸다 이는 원덕상(元德相)이 그 스님을 평생(平生)토록 지극(至極)한 정성(精誠)으로 받들었던 공덕(功德)이며 사후(死後)에도 그처럼 스님을 존경(尊敬) 하고 받들고자 하는 신념(信念)으로 모두가 버리고 간 유골(遺骨) 부스러기를 정성(精誠)껏 모셔온 성의(誠意)에 응(感應)하여 인광법사(仁光法師)의 부사의(不思議)한 법력(法力)으로 사리(舍利)로 화(化)하게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이튿날 자기(自己)가 다니는 절로 사리(舍利)를 모시고 가서 대중(大衆)스님 들게 참배(參拜)하도록 보여드리니 그때에도 자기(自己) 집에서와 같이 오색(五色)광명(光明)이 찬란(燦爛)하게 빛나니 모든 대중(大衆)들이 모두 감격(感激)하여 무수(無數)히 예배(禮拜)를 드렸다는 것이며 그 부사의(不思議)한 일들을 전부(全部) 이야기해주니 대중(大衆)들은 더욱 더 감격(感激)스럽게 생각하는 것이었으며 크게 발심(發心)이 되어 염불수행(念佛修行)에 전력(全力)을 다하였다
이상(以上)으로서 연종(蓮宗)십삼(十三)조사(祖師)에 대한 기록(記錄)을 마칠까 하노라 바라건대 무지(無智)자(者)들의 사언(詐言)망언(妄言)에 현혹(眩惑)됨이 없이 이상(以上)으로 밝힌바 모든 조사(祖師)들에 행(行)하신바 수행(修行)을 거울삼아 여실(如實)히 행(行)하여서 그 모두가 결정(決定)코 왕생극락(往生極樂)하여 줄 것을 바라며 이만 붓을 놓을까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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印光 大師 嘉言錄 1
인과응보의 사실을 밝힘
글: 보적(寶積) 김지수 옮김
불경에 "보살은 원인을 두려워하고 중생은 결과를 두려워한다(菩薩畏因 衆生畏果)"는 말이 있소. 보살은 나쁜 원인을 끊어 버리기 때문에, 죄악과 업장이 사라지고 공덕이 원만히 쌓여 가서 끝내 부처가 되고야 만다오. 그런데 중생은 늘 나쁜 원인만 지으면서 나쁜 과보를 피하려고 하니, 이는 비유하자면 햇빛 아래 서서 그림자가 생기질 않길 바라는 것과 같아서 정신없이 헛수고만 하는 격이오.
흔히 뭘 모르는 어리석은 이는 조그만 착한 일을 해놓고는 큰 복을 바라기 일쑤요. 그러다가 한 번 역경이라도 만나면 곧장 "착한 일을 하는데도 재앙을 당하니 인과법칙이란 말짱 빈말이다." 라고 불평하오. 그로부터 처음 품었던 마음을 후회하고 뒷꽁무니 빼면서 도리어 불법(佛法)을 비방하기도 하는구려. 그들이 어찌 인과응보가 삼세에 걸쳐 나타나고(報通三世), 그를 돌려 뒤바꾸는 것이 마음이라는 오묘한 이치를 알겠소?
인과응보가 어떻게 삼세에 걸쳐 나타나는 줄 아오? 금생에 지은 선악의 과보로 금생에 화복(禍福)을 받는 것이 현보(現報)이고, 금생에 지은 선악의 과보로 내생에 화복을 받는 것이 생보(生報)라오. 그리고 금생에 지은 선악의 과보를 미래의 제3생이나 제4생 또 백 천 만생 뒤에야 비로소 받는 경우는 후보(後報)라고 하오. 후보는 결과가 나타나는 시기가 일정하지 않지만, 자기가 지은 업보를 받지 않는 법은 결코 없소. 예컨대 선비가 과거시험 공부를 하여 몇 년 만에 급제하고 평생 부귀공명을 누리는 것은 보통사람의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현보라 하겠소. 그러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학문을 중시하여 자손대에 이르러 크게 운이 트이는 것은 보통사람 눈으로는 알아보기 어렵고 천안으로나 알 수 있는 생보로 비유되겠소.(금생과 내생은 모두 본인을 중심으로 말하는 것이나, 생을 뛰어 넘는 윤회의 사실은 비유로 구체화하기 어려워 짐짓 조부모와 자손 사이의 세대 물림의 방편을 편의상 든 것이니, 글자에 얽매여 뜻을 해치는 일이 없길 바라오.)
그리고 후보(後報)는 우(禹)나 주(周)의 왕업이 사실은 후직(后稷)과 설(契)이 순(舜)과 은(殷)임금을 돕던 상고시대에 이미 터전을 잡았던 것이라고 비유할 수 있소. 이는 천안으로도 보기 어렵고 성문(聲聞)의 도안(道眼) 정도나 알아 볼 것이오. 그러나 무량아승지겁에 걸친 인과는 오직 오안(五眼 : 肉 天 慧 法 佛眼)을 두루 갖추신 부처님만이 훤히 내다보실 수 있소. 이는 성문의 도안에도 안 보이는데, 하물며 천안이나 육안 따위에 보이겠소?
이러한 삼세 인과응보의 이치를 안다면, 착한 일에 복이 내리고 나쁜 일에 재앙이 내린다는 성인의 말씀은 본디 조금도 틀릴 게 없소. 부귀와 빈천이나 장수와 요절, 통달과 궁핍 등의 천명(天命)은 일찍이 한쪽으로 치우친 적이 전혀 없는 게요. 바깥 경계의 연분(境緣)이 닥쳐옴은 마치 거울에 사물의 모습(像)이 나타나는 것과 같소.
지혜로운 사람은 단지 거울 밖에 선 자신의 얼굴만을 단정히 가다듬는데, 어리석은 자는 오직 거울 안에 비친 자신의 모습만을 못마땅하게 여긴다오. 역경이 들이닥칠 때 순순히 받아들여 적응하는 것(逆來順受)이 바로 낙천(樂天:하늘의 뜻과 자연의 섭리를 즐겨 받아들임)이며, 하늘을 원망하거나 남을 탓하지 않아야만 비로소 자신의 운명을 세울(立命) 수 있소.
그러면 인과응보를 마음으로 돌려 뒤바꾼다는 것은 무슨 뜻이겠소? 예컨대, 어떤 사람이 죄악을 지어 영원히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아야 할 운명인데, 나중에 크게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죄를 참회하고 큰 보리심(菩提心. 求道心)을 내어 개과천선하며 독경과 염불 수행에 열심히 정진하면서 남들을 교화시켜 함께 극락왕생을 기원한다고 합시다.
이렇게 열심히 수행하다 보면, 현생에 우선 당장 남들로부터 비웃음이나 손가락질 당하기도 하고, 더러는 뜻밖의 질병을 얻기도 하며, 또는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에 놓이는 등, 갖가지 안 좋은 일들이 생기게 되오. 그러한 재난과 시련으로 말미암아, 먼저 지었던 죄악으로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받아야 할 고통이 액땜되어 사라지고, 나아가 평범한 생사윤회를 벗어나 성현의 경지에 들 수 있는 게요.
『금강경에 이르기를,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독송하여 다른 사람들로부터 경시와 천대를 받는다면, 이 사람은 전생의 죄악으로 마땅히 삼악도에 떨어져야 할 업보가 금생에 남들의 경시와 천대로 말미암아 곧 사라지고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無上正覺)를 얻게 될 것이다" 고 설하고 있소. 이것이 바로 인과응보를 마음으로 돌려 뒤바꾼다는 뜻이오.
그리고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네가지 인연이 있다오. 첫째는 은혜를 갚는(報恩) 인연이고 , 둘째는 원한을 갚는(報怨) 인연이며, 셋째는 빚을 갚는(償債) 인연이고, 넷째는 빚을 되찾는(討債) 인연이오.
은혜를 갚는 인연이란 부모와 자식에게 전생에 큰 은혜가 있어 그 은혜를 갚기 위해 금생에 자식으로 태어나, 생전에 부모가 기뻐하도록 극진히 봉양하고 사후에는 귀신이 흠향하도록 장례와 제사를 정성껏 모시는 것이오. 나아가 국가사회에 이바지하고 백성에게 혜택을 끼쳐 청사(靑史)에 이름을 남김으로써, 천하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그 사람을 흠모하면서 그 부모까지 존경하도록 훌륭한 도덕을 닦기도 하오. 역사 속의 수많은 충신과 효자가 그러하오.
원한을 갚는 인연이란, 부모가 자식에게 전생에 원한을 사서 그걸 갚기 위해 자식으로 태어나는 것이오. 작게는 부모 마음을 거스르고, 크게는 화가 부모에게 미치게 하며, 살아생전에는 맛있고 따뜻한 봉양을 올리지 않고, 죽은 뒤에는 황천에서도 모욕을 당하게 하오. 또 더 심한 경우에는 권세나 요직에 앉은 신분으로 부정부패와 불궤(不軌)의 죄악을 저질러 가문과 친족을 파멸시키고 조상의 무덤까지 파헤치며, 천하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그 사람을 욕하면서 그 부모까지 침 뱉게 만드는데, 왕망(王莽)이나 조조(曹操), 동탁(董卓), 진괴(秦檜)등과 같은 간신역적이 그 대표적인 예라오.
빚을 갚는 인연이란, 자식이 전생에 부모에게 진 재산상의 빚을 갚으려고 태어난 경우요. 진 빚이 많으면 평생토록 뼈 빠지게 일해 받들어 모시지만. 빚이 적으면 잘 봉양하다가 더러 중간에 그만두기도 하오, 예컨대 힘들여 공부하여 부귀공명을 조금 얻는가 싶더니 그만 요절한다든지, 사업이 잘 되어 재산 좀 모으다가 죽는 수도 있소, 빚을 되찾는 인연이란, 부모가 자식에게 전생에 재산상의 빚을 진 까닭에 그 빚을 받으려고 태어난 경우요. 빚이 적으면 생활비나 학비를 들여 가르치고 혼수 장만하여 결혼시켜 이제 자립하고 사회활동 할 만하니 그만 수명이 다해 버리기도 하고, 빚이 많으면 집안 재산을 탕진하고 패가망신하기까지 한다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조금만 어려운 재난이 당하면 곧 하늘을 원망하거나 사람을 탓하기 일쑤요. 전생에 진 빚을 갚는다는 생각으로 죄업을 참회하는 마음을 내는 이는 참으로 드물기 짝이 없소.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줄을 알아야 하오. 가라지를 심고 밀을 거두고자 하고, 피를 씨 뿌리고 벼를 거둘 생각은 말아야 하오.
금생에 죄악을 지으면서도 복을 누리는 자들은 전생에 심어 놓은 착한 씨가 많기 때문인데, 만약 죄악을 짓지 않는다면 그 복이 더욱 커질 것이오. 예컨대 갑부 집안의 자식들이 술과 계집, 노름에 빠져 흥청망청하면서 돈을 흙 뿌리듯 내버리면서도 금방 굶고 얼어 죽지 않는 것은 모아 놓은 재산이 많기 때문이오. 만약 매일같이 이렇게 낭비한다면, 설령 백만장자라도 몇 년이 채 안 되어 가산을 모두 탕진하고 알거지가 될 것이오.
또 금생에 착한 일을 하면서도 재난을 당하는 이들은 전생에 지은 죄악의 업장이 너무 두텁기 때문인데, 만약 이들이 착한 일을 안 한다면 그 재앙은 더욱 커질 게 분명하오, 예컨대 중대한 악을 범한 죄인이 처형되기 전에 조그만 공을 세운다면, 그 공이 그리 크지 않아 사형을 완전히 사면할 수는 없을지라도 틀림없이 감형해 줄 것이오. 그리고 매일같이 공을 세워 점차 커지면 죄를 모두 사면 받아 석방되고, 더 나아가 관직에 임명되어 부귀까지 누릴 수 있지 않겠소?
단지 눈앞의 길흉만 쳐다보고서, 선을 행해도 재난을 당하니 선은 행할게 못 되고, 악을 지어도 복을 받으니 악을 금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면, 이는 정말로 어리석고 위험스러운 생각이오. 선악의 과보는 하루 아침 저녁에 나타나는 게 아니라, 그 유래와 과정이 점차 진행(漸進)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하오.
예컨대 석 자(三尺)나 되는 두터운 얼음이 어찌 하루 저녁 추위에 얼어붙겠소? 또한 그 얼음이 어찌 한 나절 햇볕에 금방 녹아 버리겠소? 절대로 하늘을 원망하거나 남들을 탓해서는 안 되오. 더구나 우유부단하게 머뭇거리면서 후회하거나 뒤로 물러나서는 결코 안 되오. 마땅히 유정의(愈淨意)선생의 수신(修身)이나 원료범(袁了凡) 선생의 운명개척을 본받아야 할 줄 아오.
무릇 과거에 급제하고 관직에 등용되는 것은 모두 그 조상들이 커다란 음덕을 쌓았기 때문이오. 만약 음덕이 없다면 이는 사람의 힘(예컨대 권력 배경 뇌물 청탁 등)으로 이루어 진 것이니, 반드시 나중에 큰 재앙이 뒤따르게 되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애당초 급제하지 않는 편이 훨씬 낫소.
고금의 역사를 통해 살피건대, 위대한 성현의 태어남은 모두 그 조상의 음덕으로 비롯되오. 고관대작이나 갑부도 마찬가지요, 자손들은 부귀 속에서 태어나 살면서 복을 누리고 죄업을 지을 줄만 알지, 그 조상들이 힘들여 쌓은 공덕은 잊어버리기 일쑤라오.
그러다가 조상의 공덕도 잃고 가산도 탕진한 뒤 금방 가난하고 비천해지니, 이것이 세상의 모든 부귀한 자들이 공통으로 저지르는 폐단이오.(우리 속담에 '부자가 삼대를 못 간다'는 말도 있음) 대대로 조상의 공덕을 지키며 가문이 기울어지지 않은 경우는 오직 소주(蘇州)의 범(范)씨가 고금을 통해 제일 으뜸일 것이오. 송나라 문정공(文正公:范仲淹)부터 청말에 이르기까지 8백여년 동안 가풍이 스러지지 않고 줄곧 과거 급제가 이어졌으니, 세덕서향(世德書香:대 이은 공덕으로 책 향기가 끊이지 않음)의 집안 이라고 일컬을 만하오.
장주(長州)의 팽(彭) 씨 집안은 청초(淸初) 이래 과거급제로 천하에 으뜸이었는데, 장원 급제만도 너댓 명이나 되고 형제 모두 삼정갑(三鼎甲: 甲科3人인 壯元 榜眼 深花)에 급제한 경우도 있다오. 그런데 그 집안은 대대로 불법을 받들어 행하면서, 비록 장원한 제상일지라도 매일같이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과 음질문(陰질文)을 독송하였소.(두 가지 모두 道家의 대표적인 권선징악 문장임) 정성스러운 뜻과 정직한 마음으로 국가에 충성하고 백성에게 덕택을 베푼 귀감이 바로 여기에 있었소.
멋모르고 미쳐 날뛰는 자들은 이러한 책들이 그저 세속의 범부나 아낙 사이에 읽히는 글로 여기는데, 이는 성현이 왜 성현이 되었고 사람이 어떻게 사람 노릇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소.
살아서는 걸어 다니는 고깃덩이나 움직이는 시체(走肉行尸)와 같고, 죽어서는 초목과 함께 썩어 문드러졌겠지만, 그 죄악의 업보는 소멸하기 어려우니 영원히 삼악도에 떨어져 고생할 자들이오. 한때 시끌벅적하게 스스로 박학다식하고 통달한 인물이라고 떠들다가 후대에 이름조차 들리지 않는 자가 얼마나 많소?
그리고 행여라도 우리 집안은 본디 빈한하여 널리 음덕을 쌓고 크게 좋은 일을 할 수 없다 고 핑계대지는 마소. 몸과 입과 뜻 삼업(三業)이 모두 사악하면 이보다 더 큰 죄악은 없으며, 반대로 삼업이 모두 착하면 이보다 더 큰 선행이 없다는 이치를 알아야 하오.
인과 법칙을 믿지 않고 죄와 복이 모두 일정한 응보임을 믿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안사전서(安士全書)등에서 말하는 내용들을 자상히 일러주어 인과 법칙을 믿게 하고 나아가 불법을 믿게 하며 마침내 염불수행으로 서방극락에 왕생하여 생사윤회를 벗어나게 해 주는 것보다 좋은 선행이 없소. 한 사람만 이렇게 이끌어도 그 공덕이 무한한데, 하물며 수많은 사람을 제도한다면 오죽하겠소?
그러나 자신이 흠 없이 실천궁행하여야만 비로소 남들을 감화시킬 수 있소. 자기의 배우자나 자녀가 따라서 믿고 함께 받들어 행할 때 남들도 저절로 보고 느끼는 바가 있어서 착하게 감화될 것이오. 어찌 선행을 베풀고 음덕을 쌓는 일이 재산이나 지위에 달려 있다고 하겠소?
천하의 모든 일은 다 인연이 있기 마련이오. 일이 이루어지고 어그러지는 것은 모두 그 인연이 조종하고 결정하오. 비록 겉보기에는 일을 이루거나 어그러뜨리는 사람(의 역할)이 분명히 있지만, 성패의 실제 권력은 자신이 심은 과거의 원인[前因]에 달려 있으며 지금 당장 눈앞에 나타나는 사람의 연분[現緣]에 있는 게 아니란 말이오.
이러한 이치를 안다면 자신의 운명을 알고 하늘의 뜻을 즐겨 따르면서, 하늘을 원망하거나 사람을 탓하는 일 없이 자신의 현재 처지에 편안히 만족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오. 그러면 어디에 가든지 자유자재롭지 않음이 없게 되리라.
印光 大師 嘉言錄 2
인과응보의 원리를 논함 (1)
글: 보적(寶積) 김지수 옮김
인과응보의 법칙은 불교에 입문하는 첫 걸음이자, 유교의 대학(大學)에서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誠意〕 마음을 바로 하며〔正心〕 자신을 닦고〔修身〕 집안을 거느리며〔齊家〕 나라를 다스리고〔治國〕 천하를 평정하는〔平天下〕중요한 바탕이기도 하네. 그러므로 인과법칙은 세간이나 출세간의 성인 모두가 천하를 다스리고 중생을 제도하는 중대한 권능일세.
지금 세상에서 만약 인과응보를 나라 구하고 백성 구제하는 급선무로 삼지 않는다면, 설령 그대의 지혜와 재주와 도덕이 제아무리 높고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모두 헛것에 지나지 않게 되네. 도리(道理)를 말하지 않으면 왕법(王法)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지.
옛날 성현들은 어느 누구도 전전긍긍하며 자기를 꽉 붙잡아 지니지〔操持〕않은 사람이 없었네. 그래서 그 마음이 빈공궁핍이나 부귀영달에 따라 오락가락 흔들리지 않았지. 맹자(孟子)가 말한 대로, 곤궁하면 홀로 자신을 착하게 닦고, 영달하면 천하 중생을 두루 바르게 교화한 걸세(窮則獨善其身, 達則兼善天下).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일상생활과 언행에서 부자·형제간이나 부부 사이조차도 하나하나 법대로 하지 못하는군. 조그만 지식이나 식견이 있어도 곧바로 특출한 위인이나 되는 것처럼 함부로 떠들어 대네. 권세를 얻지 못했을 때는 망령되고 맹목적인 주장을 횡설수설하여 세상을 현혹시키고 중생을 속이는가 하면, 일단 자리를 차지한 경우에는 포악하고 못된 생각을 거침없이 드러내어 나라를 망치고 백성을 해치기 일쑤이지.
이러한 병폐의 뿌리는 모두 그의 부모나 선생들이 맨 처음 가르칠 때부터 일찍이 인과응보의 도리를 제대로 일깨워주지 않은 데서 비롯되네. 가령 조금만 인과응보의 법칙을 안다고 해도, 마음을 움직이고 생각을 일으킬 때마다 저절로 조심과 두려움이 들어 감히 제멋대로 방종하지는 못할 걸세. 그러면 설사 성현이 되려고 바라지 않는다 할지라도, 깊은 연못에 임하고 얇은 살얼음을 밟듯이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없겠지.
그러기에 천부자질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더더욱 가깝고 얕은 곳으로부터 손대야 하네. 선이 조그맣다고 그냥 지나쳐 버리지 말며, 더구나 악이 조그맣다고 무심코 저질러서는 안 되네(勿以善小而不爲, 勿以惡小而爲之).
어려서부터 길들여 타고난 천성처럼 만들어야 하지. 마치 어린 나무에 버팀목을 받쳐 곧게 세워 주면 크게 자라서는 줄기를 일부러 구부러뜨리려고 해도 굽혀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가 될 걸세.
한의학에서 병을 치료할 때, 급하면 바깥 증상을 다스리고 여유가 있으면 근본원인을 다스리는 게 의술의 기본이라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목구멍에 종기가 부어올라 음식도 삼키기 어렵고 숨까지 내쉬기 어려운 지경이라고 해보세.
그러면 반드시 먼저 그 종기를 풀어 가라앉힌 다음에 병의 근원을 찾아 오장육부를 잘 조리(調理)해야 하지 않겠나? 만약 종기를 처리하지 않는다면 우선 당장 사람이 죽을 판인데, 설사 병을 뿌리채 뽑을 수 있는 훌륭한 처방과 신령스런 약초가 있다고 할지라도 어느 세월에 써볼 재간이 있겠나?
인과응보의 법칙은 바로 지금 세상의 종기를 가라앉히는 미묘한 법문일세. 그러나 인과법칙은 증상과 근원을 함께 치료하는 약이네. 낮은 근기의 초보자는 잘못을 고쳐 선행을 닦아 나갈 수 있으며, 높은 근기의 통달자는 미혹을 끊고 진리를 증득할〔斷惑證眞〕수 있는 만병통치약인 셈이지. 아래서는 어리석은 범부나 아낙으로부터 위로는 부처의 과보를 원만히 성취하기까지 한결같이 이 인과법칙의 보약을 떠날 수 없으니, 어찌 단지 바깥 증상만 치료할 뿐이겠는가?
인과응보의 법칙은 세간이나 출세간의 성현 모두가 평범을 갈고 닦아 성스러움을 정련(精煉)해낸 거대한 용광로와 같네. 만약 맨처음에 인과법칙의 궁리부터 시작하지 않는다면, 설사 선종과 교학(敎學)에 통달한 뒤라도 인과응보의 사슬에 잘못 걸려드는 수가 있지. 한번 인과응보에 잘못 걸리면, 타락은 분명한데 거기서 헤어나 올라 올 길은 참으로 막연하게 되네.
인과응보의 원리가 너무 얕고 쉽다고 무시하지 말게나. 여래가 정각을 이루는 것이나 중생이 삼악도에 떨어지는 것 모두 인과응보의 테두리를 벗어남이 결코 없으니 말일세. 범부의 마음이 비좁아 경전에서 거창한 인과응보를 설한 내용은 혹간 잘 이해하고 깨닫기 어려울지도 모르네. 그렇다면 마땅히 세간의 가깝고 쉬운 내용을 통하여서 그러한 뛰어난 법문에 들어가는 방편으로 삼아야 할 걸세. 예컨대 「문창음질문(文昌陰질文)」이나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같은 글은 익숙하게 읽고 음미하여 실행한다면 누구나 모두 선량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생사윤회를 벗어날 수 있다네. 또 「안사전서(安士全書)」도 정말로 세상을 정화하고 백성을 선도하는 중요한 책일세.
당(唐)나라 때 백거이(白居易)가 조과(鳥과)선사에게 물었네.
"어떠한 것이 부처님 법문의 대의(大意)입니까?"
조과 선사가 대답했네.
"어떠한 악도 짓지 말고, 뭇 선을 받들어 행하라(諸惡莫作, 衆善奉行)."
그러자 백거이가 놀라 물었네.
" 이 두 구절은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오?"
이에 조과 선사가 이렇게 답변했네.
"비록 세 살 먹은 어린 아이도 말하기는 쉬워도, 여든 넘은 노인도 행하기는 어렵소."
우리는 이 말이 불법을 배우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가르침인 줄 알아야 하네. 사실 이 두 구절은 삼세 모든 부처님의 가장 간략한 계율 경전(戒經)일세.
절대로 천시하거나 소홀히 하면 안 되네. 모름지기 마음을 움직이고 생각을 일으키는 곳으로부터 자세히 살펴야 하네. 만약 이러한 공부를 끝까지 확장 발전시킨다면 위로 불도를 이룰 수 있지. 하물며 그 밖의 복록이나 지혜 따위 같은 과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계율과 선행을 내보이는 것은 인간과 천상을 여는 탄탄대로요, 인과응보를 밝히는 것은 화를 피하고 복으로 나아가는 최상계책이라.
불교의 오계(五戒)를 유교의 오상(五常)으로 대비하면, 산 목숨 해치지 말자(不殺)는 인(仁)이고, 남의 물건 훔치지 말라(不盜)는 의(義)며, 사음하지 말라(不邪淫)는 예(禮)고, 거짓말을 하지 말라(不妄語)는 신(信)이며, 술을 마시지 말라(不飮酒)는 마음이 늘 맑고 뜻이 엉기되 정신이 혼미해지지 않고 이치가 드러나게 하는 것이니 곧 지(智)가 될 걸세.
오계를 모두 잘 지니면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항상 인간세상(人道)에 태어나게 되니, 이는 유교의 오상과 대체로 같네. 다만 유교에서는 오직 그 뜻만 다하고 있을 뿐인데, 불교는 그로 말미암는 과보까지 함께 밝혀 주는 것이 조금 다르지.
십선(十善)에는 죽이지 않고(不殺), 훔치지 않고(不盜), 사음하지 않는(不邪淫) 세 가지 신업(身業)과, 거짓말 않고(不妄語), 번지르르한 말(음담패설 포함) 않고(不綺語), 두 말(이간질) 않고(不兩舌), 험담(욕설) 않는(不惡口) 네 가지 구업(口業)과, 욕심 부리지 않고(不貪), 성질 부리지 않고(不瞋), 어리석음 부리지 않는(不癡) 세 가지 의업(意業)이 있네.
이는 대체로 오계와 같지만, 오계가 다분히 몸을 추스리는 것이라면 십선은 다분히 마음을 추스리는 점이 조금 다를 걸세. 십선을 모두 갖추면 틀림없이 천상세계에 생겨나게 되네.
부모에게는 자애를 말하고 자녀에게는 효성을 일깨우며 형제에게는 우애를 일러주는 따위의 각종 윤리도덕의 가르침은 모두 사람들에게 각자 분수를 지키고 도리를 다하도록 권장하여, 세간의 모습과 형편에 따라 출세간의 법을 닦도록 인도하는 것이네.
불교에서 인과응보의 원리가 터럭 끝만큼도 어그러지지 않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거나 천상에 생겨나는 것 모두 사람들이 스스로 불러들이는 과보임을 널리 밝히는 것은, 여래께서 지극한 자비심으로 중생들을 모든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나 오직 즐거움만 누리도록 인도하기 위해서지, 그래서 광장설(廣長舌)을 드러내는 수고로움도 아끼지 않으시고 중생을 위해 마음과 정성을 다해 설하신 거네.
경전에 "보살은 원인을 두려워하고 중생은 결과를 두려워한다(菩薩畏因, 衆生畏果)."고 하였네. 정말 괴로운 결과를 받고 싶지 않다면 모름지기 먼저 나쁜 원인을 끊어야 하지 않겠나? 만약 항상 착한 원인만 닦는다면 틀림없이 즐거운 과보만을 늘 받게 될 걸세.
이는 서경(書經)에서 "착한 일을 하면 상서로움이 내리고 착하지 아니한 일을 하면 재앙이 내린다(作善降祥, 作不善降殃)."고 한 말이나, 주역(周易)에서 "선행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가 남아 넘치고, 악행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재앙이 남아 넘친다(積善之家必有餘慶, 積不善之家必有餘殃)."고 한 말과 다를 게 없네.
다만 유교에서는 오직 현세와 자손의 관점에서만 언급하였는데, 불교에서는 과거·현재·미래의 삼세에 걸친 인과응보를 빠짐없이 두루 논하는 게 틀릴 뿐이지. 범부의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황당하거나 허망한 말이라고 여기며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면, 눈먼 봉사가 길잡이를 등지고 제 스스로 험한 길을 더듬어 가려는 것과 같으니, 어찌 구덩이에 빠지거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배기겠는가?
인과응보의 법칙을 제창함은 천지와 성인의 마음을 받들어 행함으로서 전 세계 인류의 도덕과 인의(仁義)의 덕성을 완성시키는 일이네. 만약 인과응보를 황당하거나 허망하여 돌아볼 가치도 없다고 여긴다면, 이는 단지 천지와 성인의 마음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자기의 정신의식도 영원히 악도에 떨어뜨리는 것이 되네.
그러면 상근기의 지혜로운 자도 뜻을 분발하고 제때 민첩하게 덕성을 닦을 수 없으며, 하근기의 어리석은 자는 거리낌 없이 죄악을 자행하여, 천지와 성인이 만물을 기르고 교화시키는 권능도 억눌려 드러나지 못하고, 우리 인간의 마음에 본지부터 갖추어진 이성도 파묻혀 나타나지 못하게 될 걸세.
그 폐단을 어찌 말로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계속-
인광(印光)대사(1861-1940)
중국 청나라 말엽에서 민국(民國) 초기에 걸쳐 정치사회가 혼란하고 불법의 쇠퇴가 극심할 당시 염불법문을 수행하여 중생교화와 불법포교에 헌신한 고승대덕으로 중국에서는 연종(蓮宗;정토종) 제 13대 조사로 추앙받는다. 모든 사람에게 한결같은 믿음과 발원으로 염불하여 극락왕생을 구하라고 권하였으며, 평생 삭발한 출가 제자는 한 명도 받지 않았고 재가신자들에게 주로 서신으로 설법하였다. 평생 동안 어떠한 절의 주지도 맡은 적이 없는 인광 대사는 후학을 가르침에 귀를 붙잡고 얼굴을 마주 대하듯 자상하고 간곡히 이르되, 경론(經論)에 바탕을 두고 가슴 속으로부터 쏟아냈는데, 그 내용은 인과법칙을 벗어나지 않았으며 알맹이 없이 빈 말은 언급하지도 않았다.
또한 모든 사람이 먼저 세상의 현명하고 착한 사람 노릇을 한 다음 부처님의 자비 가피를 받아 평범을 뛰어넘고 성현의 경지에 들어서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도록 인도하며, 사람들에게 행하지도 못할 거창한 말은 결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을 낮추어 `죽과 밥만 축내는 중(粥飯僧)', ‘항상 부끄러운 중’이라는 별호를 즐겨 쓰기도 한 스님은 입적 후 수없이 많은 사리가 나왔다.
여기 실린 가언록(嘉言錄)은 대사의 서신설법을 편집한 것으로 이 글이 세상에 발행되자 말마다 진리를 드러내고 글자마다 종지(宗旨)로 귀결되며, 위로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부합하고 아래로는 중생의 마음에 들어맞으며, 선종(禪宗)과 정토(淨土)의 오묘한 법문을 떨치면서 그 사이의 쉽고 어려움을 잘 가려내어 실로 이전 사람들이 미처 찾아내지 못한 곳을 훤히 파헤쳤다는 칭송이 자자했다.
印光 大師 嘉言錄 3
인과응보의 원리를 논함 (2)
글: 보적(寶積) 김지수 옮김
그러나 세간(유가나 도가)의 성인 말씀은 너무 간략하고 또 현세와 자손밖에 언급하지 않고 있네. 태어나기 이전(전생)이나 죽은 이후(내생)에 시작도 없이(無始) 죄와 복의 인연에 따라 육도 윤회를 반복하고 있는 인과응보는 밝히지 않는 걸세. 그래서 식견이 천박한 자는 비록 매일 같이 성인의 인과응보 말씀을 읽을지라도 여전히 인과응보의 원리를 믿지 못하고 있네.
[옮긴이 보충 해설 : 예컨대 유가의 삼세윤회관을 대표하는 일화는 이러한 것이다. 한 제자가 사람이 죽은 뒤 영혼세계가 존재하는지 묻자, 공자는 중생들에 대한 교화목적이라는 실용성을 이유로 가부간의 명확한 답변을 회피했다. "영혼이 있다고 하면 죽은 이의 효성스러운 자손들이 차마 시신을 갖다 매장하지 못하여 상례(喪禮)나 살아남은 후손들의 현실 생활에 지나치게 커다란 장애를 몰고 올 것이며, 그렇다고 영혼(사후세계)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러지 않아도 각박한 인심이 더욱 불효막심을 패역무도해져 세상이 극도로 혼란해질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때가 되고 인연이 닿으면 각자 느끼고 알게 될 것이라며, 자칫 무익하고 공허한 관념 논쟁에 빠지기 쉬운 함정을 경계하는 현세실용의 교화방편을 견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가에서 상례(喪禮)와 제례(祭禮)를 극진한 공경과 정성으로 받들어 중시하고 "제사를 지낼 때는 받는 분이 살아 계신 것처럼 하라(祭如在, 祭神如神在)"고 강조한 공자의 말 등을 찬찬히 음미해 보면 내생과 윤회에 대한 확신을 읽을 수 있다.]
여래의 큰 가르침은 우리 인간 심성의 오묘함과 삼세 인과응보의 미묘함을 뚜렷이 내보일 뿐만 아니라, 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도에서부터 미혹을 끊고 진리를 증득하여 생사윤회를 해탈하는 법문에 이르기까지 갖추지 않은 바가 없다네.
그래서 부모에게는 자애를 말하고 자녀에게는 효성을 일깨우며 형제에게는 우애를 일러주고 부부에게는 화목과 순종을 말해주며 주인은 어질고 하인은 충성하여 각자 자기의 맡은 바 직분을 다하도록 가르치시니 이는 세간의 성인 말씀과 전혀 다를 바가 없네.
그러면서도 사실 하나하나에 대해서 다시 앞의 원인과 뒤의 결과를 밝혀주시는 점은 세간의 성인이 따라올 수 없는 부분이지, 의리를 다하고 직분을 다하라는 식의 말은 단지 최상 근기의 지혜로운 자에게나 통할 뿐, 하근기의 어리석은 자에게는 먹히지 않네.
그러나 인과응보를 알면 선악과 화복이 불을 보듯 뻔하게 되니, 누가 흉함을 피하고 결함으로 나아가며 화를 면하고 복을 얻으려고 노력하지 않겠는가?
`인과(因果)' 두 글자는 세간과 출세간의 일체법을 두루 총망라하여 빠뜨림이 없네. 세간(유교)의 성인도 인과를 분명히 보여주지 않음이 없으나, 다만 세상을 경륜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에 후세에 계속 전해질 수 있는 가르침을 펼친 것뿐이라네. 그래서 오직 현세(금생)와 선후대(先後代) 부자 조손간의 인과응보에 국한하고, 태어나기 이전(전생)과 죽은 이후(내생)는 물론, 시작도 없는 아득한 과거와 끝도 없는 영원한 미래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하지 않을 걸세.
그런데 후대의 학자들은 성인의 본래 뜻을 제대로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사람이나 만물이 생겨나는 것은 단지 천지간의 기운(氣:에너지)이 우연히 결합하고 변화하여 그 형상을 드러내는 것일 따름이라고 터무니없이 쉽게 말하는 구려. 또 죽음에 이르면 만물의 형체가 썩어 문드러지면서 영혼도 또한 바람에 나부끼듯 흩어져 없어지기 때문에 원인도 없고 결과도 없다고 하는군.
이러한 단멸상(斷滅相)에 빠진 사견(邪見)이 성인의 가르침을 저버리고 자신의 영혼까지 어리석게 타락시키는 해악은 매우 심하다네.
공자가 주역(周易)의 위대하고 오묘함을 찬탄하여 그 의리(義理)를 부연 해석하면서 맨 처음 꺼낸 말이, "선을 쌓는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가 남아넘치고, 악을 쌓는 집안에는 반드시 재앙이 넘친다"는 거라네.
또 기자(箕子)는 무왕(武王)의 간청에 따라 아홉 가지 홍범(洪範: 書經의 한 편명으로 `큰 법도'라는 뜻)을 진술하면서 맨 끝에 바야흐로 오복(五福:장수·부귀·안녕·好德·善終)과 육극[六極:비명횡사(요절)·질병·우환·빈곤·포악·허약]을 함께 분명히 밝혀 선악과 화복의 위엄으로 매듭지었다네.
이 두 성인이 밝힌 경전의 내용이 만약 과거·현재·미래의 삼세를 통틀어서 함께 논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하늘이 내려준 법도나 성인이 펼친 언론(철학)이나 현명한 군왕이 시행한 정치명령은 모두 모순투성이로밖에 보이지 않을 걸세(예컨대 간사한 악당들이 부귀영화를 누리고 정의로운 충신들이 처형되며, 안회가 요절하고 도척이 장수한 사실들이 모두 그렇지).
그러나 전후 인과응보의 원리를 알게 되면 곤궁하고 통달하거나 잃고 얻음이 모두 한결같이 자기 스스로 구하고 받는 것임을 깨달아, 설령 몹시 어려운 시련과 역경을 당한다 할지라도 하늘을 원망하거나 사람을 탓하지 않을 수 있네. 단지 자기의 덕이 아직 충분히 쌓이지 못해 과보가 무르익지 않은 것을 부끄러워 할 뿐, 하늘이나 사람들의 각박한 대접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게지.
이렇듯이 하늘의 섭리(造化)를 즐거이 따르며, 자신의 운명(분수)을 알고 만족한다면 언제 어디엘 가든지 자유자재로의 소요유(逍遙遊)할 수 있다네. 불법을 유통시키는 이익과 공덕은 한량이 없네. 선천의 근기가 두터운 자는 심오한 이치를 체득하여 마음을 밝히고 본성을 보며(明心見性) 나아가 미혹을 완전히 끊고 진리(道)를 증득할(斷惑證眞) 수 있겠지.
또 선천의 근기가 다소 얕은 자라도 평이한 내용만 이해하면 죄악을 고치고 선행을 닦아 성현이 되길 희망하는 발원으로 정진할 수 있지 않겠나? 진실로 여래께서 교화를 베푸신 까닭은 비록 출세간을 위하셨다고 하나 각자의 근기와 시절인연에 따라 중생을 순순히 잘 유도하심에 있었네.
그래서 세간을 경륜하는 도에 있어서도 또한 조그마한 선(善)이라도 남김없이 모든 것을 완전히 발휘하셨지. 부모에게는 자애를, 자손에게는 효성을, 형제에게는 우애를, 부부에게는 화목을 각각 말씀하셨네. 일상생활의 모든 윤리도덕이 유교의 가르침과 전혀 다름이 없다네.
다른 점이 있다면 삼세(三世)의 인과법칙과 선악의 과보를 일일이 보이시어,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에 공경과 두려움을 간직하고 감히 분수와 법도를 벗어나지 않으며, 비록 외진 구석과 깜깜한 방안에 혼자 있더라도 늘 하늘과 부처님 앞에 나와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처신하도록 가르친 게지.
설사 탐욕과 잔인·포학으로 가득찬 최하근기의 악인이라도 비록 처음에는 전혀 신심이 없겠지만 인과응보의 사리를 오래도록 계속 듣다보면 그 마음에 원인을 두려워하고 결과를 무서워하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은연중에 저절로 조복(調伏)되고 그렇게 전처럼 아주 심하지는 않게 될 걸세.
예컨대 춘추전국시대까지만 해도 각국에서 산 사람을 죽여 제사지내거나 사랑하던 첩과 신하를 순장(殉葬)하는 풍속이 치성하여 걸핏하면 수십 또는 수백 명을 태연스럽게 생매장을 하고 그 수가 많을수록 부귀와 영화를 상징한다고 여겼네.
물론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어진 은택은 땅 위에 나뒹구는 마른 해골에까지 미쳤다지만 그 뒤로 몇 백년이 채 못 되어 살인순장의 악풍이 천하에 두루 퍼진 걸세. 비록 노자, 장자나 공자, 맹자 같은 성현이 연달아 세상에 나왔지만 그러한 퇴폐악습을 그치게 하기에는 역부족이었지.
그러다가 불법이 중국에 전래된 뒤로 생사윤회와 인과응보의 원리가 세상에 크게 밝혀지면서 지방의 제후는 물론 `짐(朕)'이라고 일컬으며 천하를 호령하는 황제조차도 감히 더 이상 순장을 계속할 엄두는 못 내었네. 설령 어쩌다 순장하는 자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수가 많을수록 영광으로 여기는 일은 결단코 없었네.
그러나 가령 생사윤회나 인과응보의 법칙이 없이 단지 정심(正心)·성의(誠意)의 학설만 가지고 충서(忠恕)의 덕목에 따라 자기 마음으로 남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려 순장을 그만두고 백성의 생명을 보호하라고 가르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내 생각에는 아마도 그렇게 권장하고 가르친 사람은 헛수고만 하고 순장의 악습은 더욱 치성했을 것 같네.
하물며 후대의 유학자들은 단지 바깥세상 다스리는 도(治道)에만 급급하고 자기 마음 다스리는 수양은 외면한 채, 불법을 비방하고 배척하면서 자기 학파를 세우고 이어 나가려고만 했으니 오죽하겠는가? 게다가 한결같이 말하기를 사람이 한 번 죽으면 모든 것이 영원히 사라지고 후세나 영혼 같은 것은 없다고들 주장했으니….
만약 여래의 생사윤회와 인과응보의 가르침이 사람 마음에 흠뻑 적셔지지 않았다면 후세의 중생들은 타고난 수명대로 살다가 평안히 죽는(善終) 사람조차 드물었을지 모를 일이네. 이것이 불법 가운데 가장 평범하고 기본 되는 법문이지만 오히려 잔인하고 포악한 살인의 풍속을 가라앉히는 특효약이 되었지.
하물며 지극히 심오하고 미묘하며 원만한 돈오의 대법문(圓頓大法)을 세속의 지혜와 범부의 감정으로 어떻게 짐작하며, 또 그 이익을 만분의 일이라도 감히 헤아릴 수 있으리? 이러한 까닭에 부처는 시방삼계의 위대한 스승이고 모든 중생의 자애로운 아버지이며, 성인 가운데 성인이며, 하늘 가운데 하늘임을 알 수 있네.
격물(格物), 치지(致知)부터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에 이르기까지 또 밝은 덕을 밝혀(明明德) 지극히 선한 경지에 다다르는 세간(유교)의 대학지도(大學之道)도 부처님의 법문을 회통(會通)하면 더욱 쉽게 절반의 힘으로 배 이상의 효험을 얻을 수 있다네.
그래서 역대로 훌륭한 군왕과 현명한 신하나 통달한 선비와 뜻있는 사람들이 수없이 계속하여 불교에 귀의하여 수행정진하면서 불법을 보호하고 유통시키는 데 적극 앞장 서 온 것이라네. 일체 모든 법이 마음을 근본으로 삼지만 오직 불법만이 궁극의 이치까지 철저히 밝혀 가르치기 때문일세.
인광(印光) 대사(1861~1940)
중국 청나라 말엽에 민국(民國) 초기에 걸쳐 정치사회가 혼란하고 불법의 쇠퇴가 극심할 당시 염불법문을 수행하여 중생교화와 불법포교에 헌신한 고승대덕으로 중국에서는 연종(蓮宗:정토종) 제 13대 조사로 추앙 받는다.
모든 사람에게 한결같은 믿음과 발원으로 염불하여 극락왕생을 구하라고 권하였으며, 평생 삭발한 출가 제자는 한 명도 받지 않았고 재가신자들에게 주로 서신으로 설법하였다. 평생 동안 어떠한 절의 주지도 맡은 적이 없는 인광 대사는 후학을 가르침에 귀를 붙잡고 얼굴을 마주 대하듯 자상하고 간곡히 이르되, 경론(經論)에 바탕을 두고 가슴 속으로부터 쏟아 냈는데 그 내용은 인과법칙을 벗어나지 않았으며, 알맹이 없이 빈 말은 언급하지도 않았다.
또한 모든 사람이 먼저 세상의 현명하고 착한 사람 노릇을 한 다음 부처님의 자비 가피를 받아 평범을 뛰어 넘고 성현의 경지에 들어서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도록 인도하며, 사람들에게 행하지도 못한 거창한 말은 결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은 낮추어 `죽과 밥만 축내는 중(粥飯僧)', `항상 부끄러운 중'이라는 별호를 즐겨 쓰기도 한 스님은 입적 후 수 없이 많은 사리가 나왔다.
여기 실린 가언록(嘉言錄)은 대사의 서신 설법을 편집한 것으로 이 글이 세상에 발행되자 말마다 진리를 드러내고 글자마다 종지(宗旨)로 귀결되며, 위로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부합하고 아래로는 중생의 마음에 들어맞으며, 선종(禪宗)과 정토(淨土)의 오묘한 법문을 떨치면서 그 사이의 쉽고 어려움을 잘 가려내어 실로 이전 사람들이 미처 찾아내지 못한 곳을 훤히 파헤쳤다는 칭송이 자자했다.
印光 大師 嘉言錄 4
운명을 바꾸는 노력이 진정한 수행
글: 보적(寶積) 김지수 옮김
『화엄경』 에 이르기를, "일체 중생이 모두 여래의 지혜와 복덕 형상을 갖추었으나 다만 망상과 집착으로 말미암아 증득할 수 없을 뿐"이라고 하였네. 그래서 지혜와 복덕의 형상은 중생과 부처가 함께 갖춘 천성의 덕(性德)인데, 중생은 망상과 집착에 싸여 있고 부처는 이를 여윈 점이 서로 판연히 다른(후천) 수행의 덕(修德)임을 알 수 있네.
수행의 덕에는 순응과 거역이 있네. 천성에 순응하여 수행하면 닦을수록 더욱 도에 가까워지고 지극한 경지에 이르러서는 확철대오하고 증득하게 되지. 반면 천성에 거역하여 수행하면 닦을수록 도로부터 멀어지고 만다네.
이러한 원리를 파악한다면, 어리석은 자도 현명해 질 수 있고 현명한 자도 어리석어질 수도 있으며, 장수할 자가 요절하는가 하면 요절할 자도 장수할 수 있게 되지. 또 부귀와 빈천이나 자손의 번성과 단절도 하나하나 모두 스스로 주인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되니, 의지할 곳 있는 자도 의지할 곳이 없어지기도 하고, 의지할 곳 없던 자도 의지할 곳이 생기게도 되네. 이는 마치 높은 산의 암벽이 발 디딜 틈도 없어 올라갈 수 없는 경우에 사람이 바위를 뚫고 깎아 내어 계단을 만들면 절벽 끝까지도 곧장 올라갈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일세.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마음에 따라 죄업을 짓기도 하고 죄업을 돌리기도 한다는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얼마나 수많은 위대한 천재와 학자들이 그 전까지 쌓은 공덕을 모두 내팽개치고 오랜 겁의 세월동안 해를 당하여 왔는지 이루 헤아릴 수 없네. 만약 덕을 닦지 않는다면, 설사 몸소 천하를 다스리는 황제나, 신하로서 최고 권세를 누리는 재상이라 할지라도 대대로 패가망신 하지 않으며 지속될 자가 있겠는가? 따라서 몸소 얻은 지위라 할지라도 모두 장래를 보장해 주는 의지할 근거는 가지지 못하네.
원료범(袁了凡)은 바로 이러한 이치를 체득하였기 때문에, 그가 누린 복덕은 모두 전생의 원인으로 결정된 게 아니었네. 전생의 원인이란 세속에서 말하는 숙명(天)이지, 하늘이 정한 운명이 인간(의 의지)을 이긴다는 말은 전생의 원인을 전환시키기 어려움을 뜻하지만, 인간이 결정한 의지가 하늘(의 숙명)을 이긴다는 말은 전전긍긍하며 수행에 정진하면 전생의 원인도 믿을 것은 못 된다는 뜻이라네.
그러므로 현세의 (좋은) 원인을 원인으로 삼아 전생의 (나쁜) 원인을 소멸시키는 것이 바로 덕을 닦는 일일세. 만약 제멋대로 망령된 짓을 일삼는다면 이와 정반대가 되겠지. 이를 깨닫는다면, 어리석은 이가 현명해지고 평범한 이가 훌륭해 지는 것이 모두 자기의 마음가짐과 복덕수행에 달려 있음을 알고, 수시로 사람들을 잘 교화해 나갈 수 있을 걸세.
운명(命)이란 무엇인가? 곧 전생에 지은 행위의 과보라네. 그러나 도의(道義)에 따라 행하여 얻는 과보만 바야흐로 운명이라고 일컫고, 그렇지 않은 것은 운명이라고 부르지 않네. 왜냐하면 그 과보를 얻음으로써 내생에 그 대가로 받아야 할 고통은 아마도 차마 보고 들을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일세. 예컨대 도적이 남의 돈과 재물을 겁탈하면 우선 잠시 부유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관청에서 일단 알았다고 하면 붙잡아 머리와 몸통을 둘로 잘라 버릴 것이 틀림없지 않은가? 그러니 어찌 잠시 쾌락을 얻는다고 모두 운명이라고 일컬을 수 있겠는가?
그러면 노력(力)이란 무엇인가? 바로 현생에 짓는 행위를 일컬음일세. 그러나 노력의 행위에도 두 가지가 있네. 하나는 오로지 변덕스러운 기교와 간사한 재주를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직 자기감정을 극복하고 예법으로 복귀하는(克己復禮) 수양이라네.
그런데 열자(列子)가 말하는 운명은 잡다하게 뒤섞여 내용이 불분명하고, 또 그가 말하는 노력도 다분히 기교와 간사에 치중하는 편이네. 그 결과 노력이 운명에 굴복하는 것에 대해 대답할 길이 없다네. 예컨대 공자가 진(陳)나라와 채(蔡)나라에서 곤욕을 치른 것이나 전항(田恒)이 군주를 시해하고 제(薺)나라를 차지한 것을 모두 다 운명이라고 말하니, 과연 그가 운명을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공자가 현명한 군주를 만나지 못해 천하를 평안하게 다스리지 못한 것은 천하 중생의 공동업장의 힘(業力)이 하도 커서 그리 되었으니 공자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안회(顔回)가 요절한 사실도 이치는 마찬가지일세. 한편 전항이 제 나라를 차지한 것은 무력으로 찬탈한 것인데 어떻게 운명이라고 한단 말인가? 비록 우선 당장은 군주로 행세하겠지만, 한 가닥 숨이 이어지지 않으면 곧장 아비지옥의 죄수로 떨어졌을 것이 아닌가? 이러한 것을 운명이라고 말한다며, 이는 사람들에게 도의를 닦지 말고 도리어 제멋대로 겁탈을 자행하도록 가르치는 셈이 될 걸세. 그래서 내가 열자는 운명을 모른다고 굳이 말하는 거네.
맹자(孟子)의 운명론을 보지 않았는가? 반드시 이치를 궁구하고 타고난 (착한)심성을 다하여 다다른 운명이라야 비로소 진짜 운명(眞命)이라는 것 아닌가? 도의에 따르지 않고 얻은 것이나 잃은 것은 모두 이른바 운명이 아니라는 것일세.
{보충해설: 일찍이 공자는 부귀는 하늘에 달렸고 생사는 운명에 달렸다고 말하면서 부귀는 모두가 원하지만 정당한 도의로 얻지 않으면 자신은 차지하지 않겠으며, 빈천은 모두가 싫어하지만 정당한 도의로 잃지 않으면 자신은 떠나지 않겠노라고 역설한 적이 있다. 맹자나 인광대사의 운명론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또 열자가 논한 노력은 대부분 기교와 변덕투성이의 간사한 재주로, 성현은 입 밖에도 내지 않은 것일세. 성현이 말한 것은 모두 자기감정을 극복하고 예의로 복귀하는(克己復禮) 수양이네. 예컨데 성현도 한 생각 놓으면 미치광이가 되고, 미치광이도 한 생각 극복하면 성현이 된다거나; 선행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가 남아넘치고 악행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재앙이 흘러넘친다거나 ; 나무가 먹줄을 받으면 바르게 다듬어지고, 군주가 충직한 간언을 따르면 성왕이 된다거나 ; 오십 년을 살아오면서 49세 때의 잘못을 알아차리고는, `허물을 줄이려고 끊임없이 노력해도 잘 안 된다.'고 겸허히 말한 것이나; 나에게 몇 년만 더 주어져 오십 세에 주역을 공부한다면 큰 허물은 없을 것 같다고 말한 것이나; 사람은 누구나 다 요순 같은 성현이 될 수 있다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바를 경계하고 조심하며, 귀에 들리지 않는 바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한다는 따위의 언론이 모두 수양의 노력을 강조하는 유가의 명언이네.
불교에서는 일체 중생이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모두 마땅히 부처가 될 것이기 때문에, 중생으로 하여금 지나간 죄업을 참회하고 과오를 고치며 선행을 닦아, 반드시 어떠한 악도 짓지 않고 뭇 선을 받들어 행하도록 가르치네. 계율로써 몸을 붙들어 예의에 어긋난 짓을 하지 않고, 선정으로 마음을 추스려 잡념망상을 일으키지 않으며, 지혜로써 미혹을 끊어 버려 본래 성품을 환히 보는 것들이 모두 유교의 극기복례(克己復禮)와 같은 수행의 노력일세.
이러한 노력에 따라 수행하면, 위로 불도(佛道)도 이룰 수 있거늘, 하물며 그보다 낮은 과보들이야 얻지 못하겠는가? 그래서 『능엄경』에 아내를 구하면 아내를 얻고 (현명하고 지혜로우며 조용하고 정조있는 아내를 구한다는 뜻이오. 그렇지 않다면 속된 아내야 어찌 굳이 보살께 구한단 말이오?) 자식을 구하면 자식을 얻으며, 장수를 구하면 장수를 얻고, 삼매를 구하면, 삼매를 얻으며, 이렇듯이 계속 나가 대열반을 구하면 대열반을 얻을 것이라고 말하였네. 대열반이란 최고 궁극의 부처님 과보인데, 이러한 것조차 가르침대로 수행하여 얻으니, 그 노력의 위대함이 어찌 한계가 있겠는가?
[보충해설: 불보살의 성호(聖號)를 염송하며 기도하는 것도 중요한 수행 노력이다.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과 『약사경(유리광불본원경)』 등에도 `구하면 얻는다'는 기도수행의 감응을 설하고 있다. 예수가 ‘구하면 얻을 것이고, 두드리면 열릴 것이며, 찾으면 찾아질 것이다.’라고 설교한 성경 말씀도 궁극에는 불교나 유교의 수행 노력과 하나로 통하는 마찬가지 원리라고 여겨진다]
원료범(袁了凡) 선생이 공(孔)선생을 만나, 자기의 전후 일들을 계산해 준 것이 하나하나 모두 딱 들어맞아 가자 마침내 운명이란 처음부터 한번 정해진다고 믿었는데, 나중에 운곡(雲谷)선사를 만나 그 가르침을 받고 전전긍긍하며 조심스럽게 수행해 나가 결과, 공 선생이 전에 계산해 준 운명이 더 이상 조금도 들어맞지 않게 되었다네. 그러나 거꾸로 원료범 선생 같은 현인도 만약 나쁜 짓을 함부로 자행 하였다면, 공 선생이 계산해 준 운명이 역시 들어맞지 않게 되었을 걸세.
이런 걸 보면, 성현들이 세상 사람들을 가르침에는 오직 수행의 노력을 중시하며, 여래께서 중생을 교화함도 또한 마찬가지임을 알 수 있지. 그래서 부처님이 설하신 대승이나 소승, 권의(權宜)나 실상(實相)의 법문들이 어느 것 하나 중생들로 하여금 허망한 미혹의 업장을 완전히 끊어내 버리고 본디 갖추어 지니고 있는 불성을 철저히 깨달아 증득하라고 가르치지 않음이 없네. 그래서 세상에 지극히 어리석고 둔한 사람들도 수행의 노력을 꾸준히 오래 지속하면 마침내 위대한 지혜와 말재주를 얻게 된다네.
열자가 모든 것을 다 운명(숙명)으로 되돌린 주장은, 사람들이 성현 되기를 희망하는 염원과 의지를 적으면서, 반대로 사람들에게 부당하게 찬탈하고 간사한 죄악을 자행하고 싶은 마음을 부추기는 이단(異端)이고 사견(邪見)인 셈이오. 하근기의 일반 중생 들이 이러한 숙명론의 폐단과 해악을 무진장 입을 것은 물론이며, 상근기의 지혜로운 사람들조차도 때맞춰 민첩하게 분발하고 수행하려는 용기와 의지를 적지 않게 상실하고, 마침내 성현의 경지에는 들어가지 못한 채 평생토록 한낱 평범한 중생에 눌러 앉고 말 것이오. 이렇듯 열자의 글은 세상에 완전히 백해무익할 따름이니, 어찌 보고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겠는가?
[보충해설: 제자백가 중에 순자(筍子)와 묵자(墨子)도 관상이나 운명의 결정론을 철저히 비판 부정하였는데, 각기 유명한 비상(非相)편과 비명(非命)편을 지어 상세한 논리를 펴고 있다.]
印光 大師 嘉言錄 5
정성(誠)과 광명(明)은 모든 종교 수행의 공통분모 (1)
글: 보적(寶積) 김지수 옮김
인간의 천성은 본디 선량한데, 바깥 사물을 대하고 속세의 인연에 얽히어 점검과 단속을 소홀히 하면 금세 각종 집착, 망상, 편견들이 일어나, 본성은 간 데 없이 매몰되고 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오.
이러한 까닭에 옛 성현들은 각각 훌륭한 가르침의 말씀을 남겨 사람들이 그를 실행하여 애초의 천성을 회복하도록 바라왔소. 그러한 말씀과 문자는 매우 많지만, 그 행실 내용은 '격물치지(格物致知)하고 명덕을 밝혀(明明德) 지극한 선에 그치는(止至善)'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요.
성현의 도는 오직 정성(誠)과 광명(明)일 뿐이오. 성인과 미치광이의 구분은 한 순간 일념에 달려 있으니, 성인도 마음을 놓아 버리고 망상을 좇아가면 곧 미치광이가 되고, 미치광이도 한 순간 생각을 극복하면 성인이 되지요. 지조와 방종, 이득과 상실의 형상은 비유하자면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아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곧 퇴보하는 것이라오. 그러므로 힘써서 자기 마음을 꽉 붙잡아야 하지, 행여 터럭끝 만큼이라도 방종하고 제멋대로 내맡겨서는 안 되오. 무릇 성(誠)이라는 한 글자는 성인과 범부가 함께 갖추고 있으며 둘로 나누어지지 않는 한결같은 진심이고, 명(明)이라는 한 글자는 보존 함양하고 분명히 성찰하는 것으로서 범부에서 성현으로 통하는 확 트인 길이지요.
그런데 범부의 경지에서는 일상생활 가운데 온갖 상황(잡념망상)이 몰려들기 때문에, 한번 조심히 살피지 않으면 도리에 어긋나는 갖가지 사사로운 감정과 생각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막 생겨나오. 이러한 잡념망상이 일단 생겨나면 인간의 본래 청정한 진심이 거기에 뒤덮여 갇히게 되고, 그 상태에서 하는 것은 모두 중용(中庸)과 정도(正道)를 잃게 된다오.
그리하여 한번 뼈를 깎는듯한 절실한 반성참회 공부로 번뇌망상을 모두 이기고 제거하며 청정하게 다 없애 버리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수록 더욱 타락하여 밑바닥을 모르게 되지요. 단지 성인 마음만 갖추었을 뿐(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어리석은 중생의 대열에 빠져 들고 말 것이니, 어찌 슬프지 않겠소?
그러나 성인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 스스로 그 명덕(明德)을 밝히는 데에 있소. 그 명덕을 밝히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사물을 올바르게 하는 격물(格物)과 분명히 살펴 아는 치지(致知)로부터 착수해야 하오. 이른바 격물치지란 무엇인가? 격(格)은 격투(格鬪 : 몽둥이로 치고 싸우다) 나 또는 한 사람이 만 명의 적을 대항하여 싸우는 것과 같으며, 물(物)은 번뇌망상으로 흔히 말하는 인간의 욕망(人慾)을 가리키오.
번뇌망상의 욕망과 싸움에 있어서는 반드시 한바탕 강인하고 결연한 겁없는 용기와 의지를 다짐하여야 비로소 실효(實效)를 얻을 수 있소. 그렇지 못하면 마음이 바깥 사물에 따라 움직이게 될 것이니, 어떻게 사물과 격투(格物)할 수 있겠소?
치(致)란 끝까지 밀어부쳐 확충함을 일컫고, 지(知)란 우리 인간이 본래부터 타고난 바 부모를 사랑하고 윗사람을 존경하는 양지(良知 : 선량한 알음알이. 良識)로서, 교육이나 학습을 통하지 않고서 처음부터 타고난 본능이오.
그러나 보통사람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성찰과 점검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사물에 따라 움직이고 마침내 부모 사랑이나 윗사람 존경과 같은 양지(良知)조차 상실하고 만다오. 하물며 이러한 양지를 끝까지 밀어부쳐 확충함으로써 만사에 두루 대응하고 자기 심성을 함양할 수 있겠소?
이러한 까닭에 성현은 사람들이 명덕(明德)을 밝혀 지극한 선에 머물도록 하기 위하여 맨처음 실행에 착수할 곳으로 먼저 '격물치지'를 거론하였으니, 그 말씀 내용과 수행은 더할 나위없이 신묘하오.
가령 사람의 욕망이라는 물건은 힘을 다해 바로잡거나 제거하지 않으면, 본래 자기 안에 갖춰져 있는 진실한 지혜도 결코 철저하게 드러나기는 어렵소. 만약 진실한 지혜(진리)를 밝게 드러내려면, 일상적인 말과 행동에 있어서 항상 깨달음과 관조(觀照)를 일으켜, 도리에 어긋나는 감정적인 생각은 잠시라도 마음에서 싹트지 않게 하고, 항상 마음이 텅 비어 환하게 밝도록 해야 하오. 마치 거울이 누대(樓臺)에 걸려 명경대(明鏡臺)가 되면 주위 경계를 있는 모습 그대로 비춰 드러내주는 것과 같소. 단지 거울 앞에 서 있는 사물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비춰줄 뿐, 그 경지에 따라서 거울이 돌진 않는 것이오. 예쁘고 미운 것은 사물로부터 말미암으니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소? 앞으로 다가올 것(미래)은 미리 계산하지 않고, 떠나간 것(과거)은 연연하지 않는 게요. 만약 혹시라도 이치에 어긋나는 감정적인 욕망의 생각이 조금이라도 싹트고 움직인다면, 마땅히 즉각 엄하게 공격하고 다스려서 송두리째 도려내야 하오.
마치 적군과 대치하여 싸우매, 적이 내 영토의 경계를 침범하지 못하게 할뿐만 아니라, 나아가 적장의 목을 베고 그 깃발을 빼앗아 나머지 적장의 목을 베고 그 깃발을 빼앗아 나머지 잔당들도 섬멸해 버리는 것과 같소. 무릇 군대를 통제하는 방법은 모름지기 엄하게 스스로 다스려서, 태만하거나 소홀하지 말며, 자기를 극복하고 예법에 복귀하며[克己復禮], 공경을 다하고 정성을 보존해야 하오.
그때 사용한 군기(軍器)와 병력(방편법문)은 모름지기 안회(顔回)의 사물(四勿 : 인을 행하는 극기복례의 구체적 방법으로, 공자가 안회에게 예의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움직이도 말라고 가르친 네가지 금지)과 증자(曾子)의 삼성(三省 : 증자가 '남을 위해 충실하지 않았는지, 벗과 교유함에 미덥지 않았는지, 스승께서 전수하신 것을 제대로 익히지 않았는지' 세 가지로 매일 자신을 반성했다는 수행방법)과 거백옥( 伯玉)이 허물이 아주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잘못을 알아차려 회개한 방법등이 필요하고, 거기다가 전전긍긍(戰戰兢兢)하면서 깊은 연못에 임하는 듯[如臨深淵] 살얼음을 밟는 듯이[如履薄氷] 근신하는 마음을 더해야 할 게요.
도리에 어긋나는 감정적인 욕망을 이토록 삼엄하게 상대하여 군대의 위엄이 멀리 떨치면, 도적의 무리가 간담이 썰렁해져 멸종에 이르는 극한 참패를 당할까 두려워하고, 그저 따뜻이 어루만져 주는 큰 은택만 바라게 될 것이오. 그로 말미암아 이런 작당들이 서로 함께 투항하여 지극한 교화에 귀순하면, 옛날 마음을 완전히 혁파해 버리고 반성참회로 새로운 덕을 닦기 시작하겠지요.
장수가 문 밖에 나가지 않고 병기(총칼)에 피를 칠하지 않으면서, 도적이나 원수를 모두 어린애처럼 감싸 안아 양민으로 감화시키면, 위에서 행동으로 보인 모범을 아랫사람들이 본받고 모든 선비들이 다 청정하고 평안해져, 창칼을 움직이지 않고도 앉아서 태평세계를 이룰 수 있소.
이렇게 한다면, 격물로부터 치지에 이르고 치지로부터 명덕을 밝힐 수 있게 되며, 나아가 정성과 광명이 일치하게 되면 범부가 곧 성인이 될 것이오. 그리고 더러 타고난 근기와 재질이 낮고 모자라 이를 실행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조열도(趙閱道)를 본받아야 할 것이오. 조열도는 낮 동안에 행한 것을 밤에 반드시 향을 사르고 하느님[上帝]께 고했는데, 하느님께 고할 수 없는 것은 감히 행하지를 않았다는 게요.
또 명(明)나라 때 원료범(袁了凡)은 어떠한 악도 짓지 않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여(諸惡莫作, 衆善奉行), 운명을 자아로부터 세우고 복을 자기로부터 구함(命自我立, 福自我求)으로써, 조물주가 혼자 권능을 독단(전횡)하지 못하도록 했소.
원료범은 공과격(功過格)을 받아 지닌(受持) 후로는, 무릇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이며 말하고 행동하는 데에 있어서 선과 악을 섬세한 것이라고 모두 다 기록함으로써, 착함이 날로 증가하고 악함이 날로 감소되길 기약하였소. 처음에는 선과 악이 서로 반반 뒤섞였으나, 오래 지속하면서 오직 선만 있고 악은 완전히 없어졌소.
복이 없는 운명도 복이 있게 전환하고, 요절할 수명도 장수하게 바꾸며, 자손이 없는 팔자도 자손이 많은 팔자로 뜯어 고칠 수 있게 되었소. 또 현생에 당장 우수한 성현의 경지에 들어가고, 그 뒤 죽어서는 높이 극락의 고향에 올라갔으며, 그 행동은 세상의 법칙이 되고 그 말은 후세의 정법이 되었소.
그 사람이 장부일진대 나도 또한 그러할지니, 어찌 스스로를 얕보고 자포자기하여 뒤로 물러날 수가 있겠소?
혹자는 이렇게 물을지 모르오.
"격물(格物)이란 천하 사물의 이치를 모두 다 궁구하고, 치지(致知)란 나의 지식을 끝까지 추론하는 것일진대, 반드시 하나 하나 밝히 알아서 완전히 통달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여 사람의 욕망을 격물의 대상으로 삼고 진실한 지혜[眞知]를 치지의 대상으로 삼고, 인간의 욕망을 다스려 극복하고 진실한 지혜를 밖으로 드러나게 함으로써 격물치지(格物致知)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에 대해 이렇게 답변하겠소.
"정성(誠)과 명덕(明德)은 모두 마음의 본체로부터 말하는 것이오. 이름은 비록 두 개지만 실체는 본래 하나요. 치지(致知)와 성의(誠意) 정심(正心)의 지(知), 의(意), 심(心) 이 세 가지는 마음(心)의 본체와 작용으로부터 함께 아울러서 말한 것인데, 실지로는 세 가지가 하나요. 격(물), 치(지), 성(의), 정(심), 명(덕)에서, 쳐서 다스리고(格) 이르게 하고(致) 정성스럽게 하고(誠) 바르게 하고(正) 밝게 하는(明) 다섯 가지는, 모두 사악한 것을 막아 정성을 보존하고, 망령을 되돌이켜서 진리에 되돌아가는 것을 말하지요. 점검하고 성찰하며 전진하는 공부에 있어서는 명(덕)이 총강령이 되고, 격(물), 치(지), 성(의), 정(심)은 개별적인 세목일 따름이오. 수신(修身), 정심(正心), 성의(誠意), 치지(致知)는 모두 다 명덕을 밝히는 방편이고 까닭(所以)이오.
인광(印光) 대사 (1861-1940)
중국 청나라 말엽에서 민국(民國) 초기에 걸쳐 정치사회가 혼란하고 불법의 쇠퇴가 극심할 당시 염불법문을 수행하여 중생교화와 불법포교에 헌신한 고승대덕으로 중국에서는 연종(蓮宗 : 정토종) 제 13대 조사로 추앙받는다. 모든 사람에게 한결같은 믿음과 발원으로 염불하여 극락왕생을 구하라고 권하였으며, 평생 삭발한 출가 제자는 한 명도 받지 않았고 재가신자들에게 주로 서신으로 설법하였다.
평생동안 어떠한 절의 주지도 맡은 적이 없는 인광 대사는 후학을 가르침에 귀를 붙잡고 얼굴을 마주 대하듯 자상하고 간곡히 이르되, 경론(經論)에 바탕을 두고 가슴 속으로부터 쏟아냈는데, 그 내용은 인과법칙을 벗어나지 않았으며 알맹이 없이 빈 말은 언급하지도 않았다.
또한 모든 사람이 먼저 세상의 현명하고 착한 사람 노릇을 한 다음 부처님의 자비 가피를 받아 평범을 뛰어넘고 성현의 경지에 들어서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도록 인도하며, 사람들에게 행하지도 못할 거창한 말은 결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을 낮추어 '죽과 밥만 축내는 중(粥飯僧)', '항상 부끄러운 중'이라는 별호를 즐겨 쓰기도 한 스님은 입적 후 수없이 많은 사리가 나왔다.
여기 실린 가언록(嘉言錄)은 대사의 서신설법을 편집한 것으로 이 글이 세상에 발행되자 말마다 진리를 드러내고 글자마다 종지(宗旨)로 귀결되며, 위로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부합하고 아래로는 중생의 마음에 들어맞으며, 선종(禪宗)과 정토(淨土)의 오묘한 법문을 떨치면서 그 사이의 쉽고 어려움을 잘 가려내어 실로 이전 사람들이 미처 찾아내지 못한 곳을 훤히 파헤쳤다는 칭송이 자자했다.
印光 大師 嘉言錄 6
정성(誠)과 광명(明)은 모든 종교 수행의 공통분모 (2)
글: 보적(寶積) 김지수 옮김
가령 자기 마음에 본래 존재하는 진실한 지혜가 무명(無明)의 물욕(物欲)에 뒤덮여 가려진다면, 뜻이 정성스럽지 못하고 마음이 바르지 못하게 되오.
이때 만약 물욕을 쳐서 없앤다면, 바로 '지혜의 바람이 업장의 구름을 깨끗이 쓸어 없애버리고, 마음의 달이 홀로 둥그렇게 하늘 가운데 낭랑하다(慧風掃蕩障雲盡 心月孤圓朗中天)'는 시의 경지가 될 것이오.
이처럼 성인은 사람들에게 광범한 것으로부터 절실한 것에 이르고, 소원한 데서부터 친밀한 데에 이르는 단계적인 순서를 보여 주셨소.
만약 천하 사물의 이치를 모두 궁구해서 내 마음이 이러한 것들을 다 지식으로 명료하게 안 다음에야 비로소 '성의'라고 할 수 있다면, 오직 많은 책을 두루 읽어 박학다식한 사람(걸어 다니는 사전)만 '성의'에 해당할 것이오. 또 만약 천하를 두루 유람한 사람이라야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여 명덕을 밝힐 수 있다면 세상을 두루 다니며 견문을 얻을 수 없는 사람들은 설령 순수하고 돈후한 천상(天上)의 자질과 인품을 타고 났다고 할지라도 그 대열에 전혀 낄 수 없게 될 것이오. 하물며 타고난 성품이 순후하지도 못한 보통 중생들이야 말할 것이 있겠소! 이러한 이치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이오?
그런데 이치를 깊이 궁구하지 않은 선비들이나 무식한 사람들은 도리와 천성(天性)을 들으면, 대부분 이를 성인의 경지로 높이 밀어 올리고 자신은 평범하고 우매하다고 자처하면서, 스스로 분발하거나 노력하려고 하지를 않고 인습(因襲)에 끌려 마지못해 따라가는 정도라오.
그렇지만 만약 이들에게 과거 현재 미래 삼세(三世)의 인과법칙을 알려주면 사람이 어떻겠소? 선하거나 악하거나 간에 자기 마음과 언행에 따라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이 그 보답을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면, 누구라도 악의 과실이 두려워 악의 인연을 끊고 선한 인연을 닦아 선한 과보를 바랄 것이오.
무릇 선악이란 크게 몸의 행동(身), 입에서 나오는 말(口), 마음 속의 생각(意) 이 세가지를 벗어나지 않소. 이미 이러한 인과를 알았다면, 스스로 몸과 입을 잘 보호하고 방어하며, 마음을 닦고 생각을 씻어낼 수 있소.
비록 캄캄한 방안이나 깊숙한 구석에 혼자 있다고 할지라도, 항상 천상 하느님(帝天)을 대면하듯이 공경하며, 감히 사악하고 비열한 마음이 싹터 죄와 허물을 저지르는 일이 없게 될 것이오.
이것이 바로 크게 깨달은 세존(世尊)께서 상중하 근기의 모든 중생에게 두루 진리를 궁구하고 뜻을 정성스럽게 하며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도록 가르치신 대도(大道)요, 정법(正法)이오.
그러나 미치광이들은 그 구속(부담)을 두려워하여 인과응보를 가상(假相)의 집착이라고 생각하며,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추하고 부끄러운 것을 방어하려고 인과응보가 아득하거나 허망하다고 말하는구려. 이러한 두 부류 사람을 제외하면 누가 자연의 인과응보 법칙을 믿고 받아들이지 않겠소?
그래서 몽동 선사[夢東禪師 : 일명 철오 선사(徹悟禪師). 청(淸)나라 건륭(乾隆: 1736-1795 재위, 가경(嘉慶:1795-1820 재위) 연간에 법문(法門)제일의 스님. 본래 선가(禪家)의 거장이었는데, 세상을 구제하려는 광대한 서원(誓願)으로 염불정토종(念佛淨土宗)을 힘써 전파함. 만년에 북경 부근 자복사(資福寺)에 은거하면서 염불(念佛) 기풍을 크게 진작시켜, 최근까지 황하 이북 제일의 염불도량이라는 법맥(法脈)을 유지함.「徹悟禪師語錄」이 전해짐.]는 일찍이, "마음과 성품을 즐겨 말하는 자는 결코 인과를 버리거나 이탈하지는 않으며, 또 거꾸로 인과법칙을 깊이 믿고 행하는 사람은 끝내는 인간의 본래 선한 심성을 크게 밝힐 것이다." 라고 설법하셨소.
이는 이치로 보나 대세로 보나 반드시 그러할 수밖에는 없소. 무릇 범부의 지위로부터 성인이나 부처의 공과(功課)를 원만히 증득(證得)하기에 이르기 까지 모두 인과응보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꼭 알아야 하오.
이러한 인과를 믿지 않는 자는 스스로 그 선한 원인과 선한 결과를 포기함으로써, 항상 악한 원인만 짓고 악의 과보를 받을 것이오. 그러면서 티끌처럼 수많은 무량겁이 다 지나도 삼악도(三惡道 : 지옥, 축생, 아귀)만을 계속 윤회할 뿐, 그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길이 없게 되오.
슬프오! 성현들의 천만 마디 말씀이 모두 사람들에게 자기 마음을 반성하고 잡념망상을 극복하도록 가르치지 않음이 없소. 성현은 우리 마음에 본래 갖추고 있는 명덕(明德)이 악의 수렁텅이에 빠져서 매몰되지 않고, 우리가 친히 그것을 받아서 쓸 수 있도록 인도할 따름이오.
다만 사람들이 인과응보의 원리를 모르는 까닭에 늘상 뜻과 감정을 제멋대로 방종하니, 설령 평생토록 글을 읽는다고 할지라도 단지 자구와 문장만 배울 뿐이라오. 이들은 성현의 위대함을 희망하고 본받을 목표가 없는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눈앞에서 일생을 허송세월하고 말 것이오. 어찌 안타깝지 않겠소?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이에 따라 심성을 함양 · 수행하도록 만들려면 모름지기 일정한 모범이 있어야 비로소 유익하게 되오. 사서오경(四書五經)과 같은 고전이 모두 그러한 모범이지만, 그러한 모범은 문자가 너무 방대하고 또한 여러 서적에 널리 흩어져 있소.
그래서 체계있게 분류 · 편집하지 않으면 법도로 삼기가 자못 어렵고, 또한 글을 많이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은 더더욱 전형적인 모범으로 받들어 행할 방법이 없소. 그러한 모범으로 삼을 만한 대표적인 글로「요범사훈(了凡四訓)」과「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이 있소.
원료범 선생이 자식을 훈계하기 위해서 지은 네 편의 「요범사훈」은 문장과 사리(事理)가 모두 유창하여 우리 마음의 눈[心眼]을 확 틔워 주오. 그래서 이 글을 읽다 보면 저절로 기뻐서 흥이 나고 마음에 법열(法悅)이 솟아 오르게 되지요. 그리하여 아주 빨리 이것을 법(法)으로 삼으려는 소망이 절로 생기나니, 이는 진실로 세상을 선하게 맑혀 주는 훌륭한 모범이오.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은 길함을 맞이하고 흉함을 피하며, 선에게 복을 주고 악에게 화를 내리는 지극한 진리를 핵심요체만 간추려 모아, 하늘을 밀쳐 올리고 땅을 움직이며 눈을 비비게 하고 마음을 놀라게 하는 문장이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이며, 선을 행하면 어떤 선한 보답을 받고 악을 행하면 어떤 악한 보답을 얻는지. 그 근원을 모두 파헤쳐 명약관화(明若觀火)하게 밝히고 있소. 무릇 어리석은 사람이 선을 행하지 않고 제멋대로 악을 저지르는 것은 대개 사리사욕의 이기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오.
그런데 지금 사리사욕으로 도리어 큰 이익을 잃고 커다란 재앙만 얻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누가 감히 선행을 실천하여 화가 소멸되고 복이 모여 들기를 바라지 않겠소?
이렇게 본다면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이 인간에게 끼치는 이익은 정말 막대하오.
그래서 옛날 대선비[大儒]들은 이 글에 따라 묵묵히 수양하는 자가 많았소. 청(淸)나라 때 장주(長洲)의 팽응지(彭凝祉)는 어려서부터 이 글을 봉행하여 마침내 진사(進士) 시험에 장원(壯元) 급제하고 전찬(殿撰 : 翰林院修撰)에 임명되는 영예를 안았소.
그는 관직이 상서(尙書 : 六曹의 장관)에 오른 뒤에도 여전히 매일 이 글을 봉독하면서 손수 붓으로 써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증정하곤 하였는데, "장원이나 재상이 되는 자는 반드시 이 글을 읽는다."는 표제를 달았다오.
그리고 이 표제를 해석해주기를, "이 글을 읽으면 곧 반드시 장원이나 재상이 된다는 말이 아니라, 장원이나 재상이 되려는 자는 결코 이 글을 읽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고 부연했소.
그가 발휘한 정신은 정말 지극히 철저했는데, 과연 인애와 지혜도 각기 그 사람의 성질에 따라서 드러나기 마련인가 보오.
이 글은 궁극에는 신선(神仙)이 되는 데 멈추오. 만약 대보리심(大菩提心 : 大道正覺을 추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를 실행한다면 충분히 평범을 초월하여 성현의 경지에 들어가(超凡入聖) 생사를 해탈하고, 3대 미혹(迷惑 : 번뇌. 첫째 邪見과 탐진치의 見思惑, 둘째 보살이 중생교화시 봉착하는 塵沙惑, 셋째 根本無明惑)을 끊어 법신(法身 : 영구불변의 진리의 몸)을 증득하며, 복과 지혜를 원만히 겸비하여 불도(佛道)를 성취 할 것이니, 하물며 구구하게 신선이 되어 인간이나 천상의 조그만 과보를 누리는 데 비하겠소?
화와 복은 오직 사람 스스로 불러들이는 것이고, 선과 악에는 각각 보답과 감응이 따른다는 인과법칙을 안다면, 누가 감히 죄악을 저질러 화를 초래하려고 들겠소? 이러한 기풍이 한번 진작되어 선행에 선의 보답이 내려 진다면, 예절과 양보가 흥성하고 총칼의 전쟁혼란이 영원히 종식되며, 백성이 안락하고 천하가 태평스러워질 것이오.
원컨대, 재력(財力)이나 지력(智力)이 있는 사람들은 더러 이러한 글들을 널리 유통시키거나 강의하여 현신설법(現身說法)함으로써, 타고난 본성을 아직 잃어버리지 않은 자들은 더욱 순수하고 천진해지며, 타고난 본성을 이미 상실한 자는 한시바삐 그 처음 천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건져주길 바라오. 그렇게 한다면, 그 공덕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소?
印光 大師 嘉言錄 7
양기의 등잔은 천추를 밝히고,
보수의 생강은 만고에 맵도다 (1)
글: 보적(寶積) 김지수 옮김
혜원(慧圓) 거사 보게.
보내온 편지는 잘 받았네. 어제 명도(明道) 법사가 나가는 길에 그대에게 160원(元)을 송금하여 자네 일을 끝마치도록 부탁했네. 그대는 비록 나를 안 지 몇 년이나 되었으면서 아직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있네. 그래서 내가 부득이 그대에게 나를 간략히 말하여야겠네.
나는 두 가지를 끊어 버린〔二絶〕 고뇌에 찬 자식일세. 그 두 가지란 집안에서는 후사(後嗣:자손)를 끊어 버렸고, 출가해서는 불법의 후사도 끊어 버린 불효를 말하네(출가 제자를 평생 하나도 받지 않았음).
또 고뇌를 말하는 것은, 내가 본디 태어난 곳은 글 공부하는 유생들이 평생 부처님 이름도 들어 보지 못하고 단지 한유·구양수·정자·주자 같은 유학자들이 불교를 배척한 학설만 알았는데, 멋모르고 사람들은 이를 지상 최고의 신조로 받들었네.
그런데 나는 그들보다 백 배 이상 미친 듯이 날뛰었지. 다행히 십 년 남짓 지나는 동안 지겹게도 많은 병치레를 겪으면서, 나중에야 바야흐로 이들 옛날 유학자들이 주장한 학설이 본받을 만한 것이 전혀 못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네(나는 한 번도 선생님에게서 배운 적이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형님이 가르쳐 주셨네).
처음 몇 년간은 형님이 장안(長安)에 계셔서 쉽게 기회를 얻을 수 없었는데, 광서(光緖) 7년(1881:21세) 형님이 집에 가 계시고 나 혼자 장안에 있는 틈을 타서(집은 장안에서 420리 떨어진 곳에 있었음) 마침내 남쪽 오대산(五臺山)에 출가하였네.
스승은 내가 분명히 모아둔 재산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출가야 받아주지만, 의복은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나에게 단지 장삼 한 벌과 신 한 켤레만 주셨네. 그러나 방에 머물며 밥 먹는 것은 돈을 내지 않아도 되었네(그곳은 매우 춥고 힘든 곳인데, 밥 짓는 일 따위는 모두 손수 하여야 했지).
그 뒤 석 달이 채 못 되어 형님이 찾아 왔는데, 꼭 집에 돌아가 먼저 어머님께 하직 인사를 올린 다음에 다시 와서 수행하면 괜찮다고 말씀하셨네. 나는 그 말이 속임수인 줄 알면서도 대의명분상 일단 되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지. 가는 길에 한 말은 모두 거짓말이었는데, 어머님께서는 뜻밖에도 출가를 특별히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으셨네.
이튿날 형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네. “누가 너에게 출가하라고 시켰냐? 너 혼자 스스로 출가한 거냐? 오늘부터는 출가할 생각일랑 아예 내 버려라. 그렇지 않으면 아주 혼내줄 거다.”
나는 단지 그를 속이는 수밖에 없었네. 그렇게 집에서 80여 일을 머무는 동안 도무지 기회를 얻지 못했네. 하루는 큰형님은 친척을 만나러 가고 둘째 형님은 밖에서 곡식을 말리는데 닭이 쪼아 먹지 못하도록 지켜야 하게 되었네. 이제 기회가 온 줄 알고 학당(學堂)에 가서 관음(觀音) 점괘를 하나 뽑아 보았는데, 그 내용도 딱 맞아 떨어졌지.
“고명(高明)한 분이 복록(福祿)의 자리에 있으니, 새장에 갇힌 새가 달아날 수 있다. 마침내 스님의 장삼을 훔쳐 돈 2백전과 함께 가지고 갈 것이다.”(그 전에 형님은 나의 장삼을 바꾸려고 했는데, 내가 만약 스님이 사람을 보내 찾으러 오면 원물로 반환해야 탈이 없으며, 그렇지 않으면 소송을 제기해 적지 않은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해서 장삼을 그대로 보관할 수 있었네.)
그렇게 도망쳐서 다시 스승 계신 곳에 도착했으나, 형님이 다시 찾아올까 두려워 그곳에 감히 머물지 못하고 하룻밤 묵은 뒤 떠나야 했네. 그때 스승께서 여비로 1원짜리 양전(洋錢)을 주셨는데, 당시 섬서(陝西) 사람들은 아직 그 돈을 본 적이 없어 상점에서도 받지 않았네. 그래서 은(銀)과 바꾼 뒤 8백 문(文)에 팔았는데, 이것이 내가 스승에게 받은 것일세.
호북(湖北) 연화사(蓮花寺)에 들어가 가장 힘든 일감을 달라고 했네.(밤낮 끊임없이 석탄을 때서 40여 명이 먹고 쓸 물을 끓이는 일이었는데, 물도 스스로 길어 와야 하고 탄재도 직접 퍼내야 했네. 아직 계를 받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절에 묵을 수 있게 해 준 것만도 이미 커다란 자비였네).
이듬해 4월 부사(副寺:절의 부책임자) 스님이 돌아가고 고두(庫頭:창고 담당, 재무) 스님이 병 나자, 주지스님은 내가 성실한 것을 보시고 창고(재무)를 돌보도록 분부하셨네. 은전(銀錢)의 회계는 주지스님이 직접 하셨지.
나는 처음 출가했을 때 “양기의 등잔은 천추를 밝히고, 보수의 생강은 만고에 맵도다”(楊 燈盞明千古, 寶壽生薑辣萬年)는 대구를 보았네.
또 사미계율(沙彌戒律)에 상주(常住:절간) 재물을 훔쳐 쓰는 과보가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몹시 두렵고 조심스러웠네. 그래서 단 음식 하나 정리하면서도 손에 가루나 맛이 묻으면 감히 혀로 핥아 먹지 않고 그냥 종이로 닦아낼 뿐이었네.
양기 등잔이란 양기 방회(方會) 선사가 석상(石霜) 원(圓) 선사 아래에서 감원(監院:지금 우리 나라 절의 원주 스님)을 할 때, 밤에 경전을 보는데 스스로 기름을 사서 쓰고 상주 기름을 몰래 쓰지 않았다는 이야기네.
보수 생강이란, 동산(洞山) 자보(自寶) 선사(寶壽는 그의 별호)가 오조(五祖) 사계(師戒) 선사 아래에서 감원을 할 때, 스승이 차가운 병(寒病)이 있어 생강과 노란 설탕을 끓여 고약(膏藥)으로 늘 먹곤 했는데, 스승을 시중드는 스님이 와서 이 두 물건을 달라고 하자, 그는 “상주의 공유물을 어찌 개인용도로 쓸 수 있소? 돈 가지고 가서 사다가 쓰시오.”라고 답하며 거절했다는 거네.
이에 사계 선사는 곧장 돈을 가지고 사오라고 시키면서, 그 제자를 몹시 기특하게 여겼네. 나중에 동산(桐山)의 주지가 사람이 필요해 사계 선사에게 아는 사람이 있으면 추천하라고 부탁하자, 사계 선사가 생강을 사도록 한 사나이면 될 거라고 답했다는 거네.
『선림보훈(禪林寶訓)』 중권에는 설봉(雪峯) 동산(東山)의 혜공(慧空) 선사가 서울에 과거 보러 가는데 필요한 마부를 빌려달라고 요청한 여재무(余才茂)에게 답장한 편지가 실려 있네. 대강의 내용은 이러하네.
“내가 비록 주지이긴 하지만 역시 한낱 빈궁한 선승에 불과하오. 이 마부는 상주에서 나온 것이고 공(空)에서 나온 것이오. 상주에서 나온 것이니 곧 상주를 훔치는 게 되고, 공에서 나온 것이니 텅 비어 하나도 없는 것이 되오. 하물며 귀하가 서울에 가서 부귀공명을 얻으려고 함에는, 필요한 물건을 삼보(三寶)에서 구하여 주는 이나 받는 이 모두 죄를 짓는 일은 없어야 될 줄 아오. 설사 다른 절에서 준다고 할지라도 사절하고 받지 않는 것이 바로 앞날의 복이 될 것이오.”
근래 속된 스님들은 금전과 재물을 교유(交遊)관계나 제자 또는 세속의 집안에 쓰는 일이 너무나 많네. 나는 한평생 교유를 맺지 않고 제자를 받지 않으며 주지를 하지 않기로 서원하였네. 광서 19년(1893년:33세) 보타산(普陀山)에 이르러 밥 먹는 한가한 중이 된 이래 30년 남짓 어떤 직책도 가져본 적이 없네. ‘인광(印光)’이라는 두 글자는 남을 위해 대신 수고하는 종이 위에 절대로 쓰지 않았네. 그래서 20여 년간 편안히 지낼 수가 있었지.
나중에 고학년(高鶴年)이 몇 편의 원고 조각을 속여 가지고 가서 「불학총보(佛學叢報)」에 실었을 때도 아직 ‘인광’이라는 이름은 쓰지 않았네. 민국3년(1914:54세) 이후에 서울여(徐蔚如)와 주맹유(周孟由)가 자기들이 나의 글을 수집하여 북경에서 『인광문초(印光文抄)』를 인쇄하겠다고 졸라 민국7년(1918:58세) 책이 나왔네.
그 후로 날마다 편지를 받고 오로지 남들을 위해 바쁘게 살아왔네. 그러다가 남의 말을 잘못 전해 듣고 나에게 귀의하겠다고 원하는 사람들도 나타나기에, 단지 그들의 믿음에 내맡겨 두었을 따름이네. 부자에게도 나는 공덕을 쌓으라고 보시를 청하지 않았고, 가난한 사람에게도 나는 특별히 구휼이나 자선을 베풀 수가 없었네.
광서 12년(1886:26세) 북경에 들어간 적이 있으나, 우리 스승에게서 역시 한 푼 받은 것도 없네. 그 뒤로는 도업(道業)에 진척이 없어 감히 서신 한 통 올리지 못하다가, 17년(1891:31세) 스승께서 입적하신 후에는 여러 사형제(師兄弟)들이 각자 제 갈 길로 흩어졌지. 그리하여 40년 동안 출가 동문과도 편지 한 구절이나 한 푼어치 물건을 서로 주고 받은 적이 없다네.
우리 집안은 광서 18년 한 고향 사람이 북경으로부터 귀향하는 길에 편지 한 통 부친 적이 있네. 그때는 아직 우체국도 없고 큰 길도 없어서 그가 직접 전달해 주지 않으면 편지를 부칠 방법이 없었지(지금은 비록 우체국이 있지만 배달해 줄 사람이 없으면 역시 부칠 수 없네). 이듬해 남쪽으로 내려와 소식이 완전히 끊겼네.
민국 13년(1924:64세)에 이르러 한 생질이 사람들 말을 듣고 산으로 나를 찾아왔네. 그때서야 비로소 후사가 이미 끊겨 집안의 다른 손자가 양자로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알았네(이 일은 나에게는 오히려 다행이네. 나중에 조상의 덕을 손상시킬 자가 없으니 말일세. 양자가 대를 이었지만, 이는 우리 부모의 친자손이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그에게도 편지를 보내지 않았네.
민국 이래로 섬서 지방의 재난이 가장 심한데, 만약 그에게 편지를 했다가 그가 남쪽으로 찾아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를 편안히 정착시킬 땅도 없고 그가 되돌아간다고 해도 수십원은 필요할 테니, 그의 왕래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손해만 될 걸세. 그래서 지난해에 합양(合陽)의 재난을 구휼할 때도 단지 현(懸) 당국에 송금하였으며 감히 우리 마을 이름까지는 언급하지 않았네(우리 마을은 현 소재지에서 40여 리 떨어져 있네). 만약 언급했다가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고 다치게 할 줄 모르네.
올봄 진달(眞達) 법사가 최근 이삼년 동안 섬서 재해만 구휼해온 주자교(朱子橋)를 통해 전해온 소식에 따르면 서너 거사와 함께 1천원을 모아 자교에게 주면서 특별히 우리 고향 동네에 나눠주라고 부탁했다네. 그러나 수백 가구에 천원이 별로 큰 도움은 되지 못했을 것일세. 그리고 이 일로 말미암아 남쪽으로 오겠다는 사람이 생겼네.
우리 집안의 생질인 한 상인이 나에게 편지를 보내 아무개가 남쪽으로 찾아와 나를 방문하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대답하는 게 좋겠느냐고 물어왔네. 그래서 내가 답신하기를 만약 그대가 보살필 수 있으면 그에게 좋은 일을 마련해 주는 것이 가장 좋고, 그렇지 않으면 왕래가 몹시 힘들고 본인에게 손해만 될 뿐 별 이익이 없을 것이라고 간곡히 말해주어 그들을 지쳐 죽게 하는 일이 없도록 잘 회답하라고 부탁했네. 이 일은 진달 법사가 한바탕 호의를 베풀면서 그 영향까지는 세심하게 배려하지 못한 때문일세. 또 나에게는 말 한마디 안하여 내가 알았을 때는 일이 다 이루어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네.
印光 大師 嘉言錄 8
양기의 등잔은 천추를 밝히고,
보수의 생강은 만고에 맵도다 (2)
글: 보적(寶積) 김지수 옮김
전에 이런 얘기를 들었네. 수십년 전 호남(湖南)의 한 갑부 노인이 생일잔치를 하는데 참석자 한 사람에게 4백전씩 나누어주겠다고 미리 알렸다네. 때는 겨울 한기였는데 시골 사람들이 수십리씩 걸어 이 돈을 타려고 수만 명이나 모였다네.
그런데 관리자가 미리 좋은 방법을 마련하지 않아 천천히 한 사람씩 나누어주다 보니 뒤에 처진 사람은 몹시 배고파 실로 온힘을 다해 앞으로 밀치고 나서다가 넘어져 깔려 죽은 사람이 2백 명이 넘고 다친 사람은 부지기수였다네.
그래서 현(縣) 당국에서 나서서 사람들에게 움직이지 못하게 명령한 뒤 사태를 수습했는데, 죽은 자에게는 1인당 24원과 관(棺) 한 구씩을 지급하고 시체를 찾아가게 했다네. 노인은 사람들이 놀라 소란스러운 모습을 보고 사태를 안 뒤 그만 한숨을 크게 쉬더니 죽어버렸네. 며칠 안 되어 중앙관료를 지내던 그의 아들도 서울에서 죽고 말았네.
그런 까닭에 무슨 일이 되었든 간에 먼저 그로 말미암을 부작용을 사전에 잘 예방하지 않으면 안 되네. 내가 어찌 우리 집안과 고향에 무심할 수 있겠는가. 다만 능력이 미치지 못하니 아예 실마리를 풀어놓지 않은 것이 유익하고 손해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일 따름이네.
영암사(靈岩寺)에는 전에 단지 열 명 남짓밖에 없었네. 모두들 요(姚) 아무개가 병들었다고 거기에 머물도록 특별히 편의를 봐 주었는데 이 일을 어찌 선례로 삼을 수 있겠는가. 그 절은 농사가 잘 된 해라도 소작료가 천원이 안 되고 작황이 나쁘면 더 줄어들며, 이밖에는 전혀 별다른 수입이 없네.
최근 3년 사이에 영암사가 정말 도를 열심히 닦는다고 평이 나서 그곳에 귀의한 신도들이 이레 염불기도를 부탁하면서 약간씩 공양을 올리는 정도네. 그래서 최근 상주인원이 이삼십 명으로 불어났지만 나는 절대로 그 곳에 요구하는 게 없네.
영암사의 여러 법사들은 부모의 신위(神位)를 염불당에 모시는 이가 많은가 보네. 덕삼(德森) 법사나 그 친구 요연(了然) 법사들은 모두 효성으로 부모의 신위를 모시는가 본데, 나는 절대로 이 일은 언급하지 않네. 만약 내가 언급했다가는 그들이 정말로 몹시 기뻐하며, 인광 스님도 그러지 않느냐고 말하면서 자기들 공치사와 사심(私心)만 챙기려 들 것이네.
하물며 평소 얼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대가 단지 편지 한 통으로 귀의해 놓고, 여기에서 종신토록 양로(養老)나 할 생각인가?
그렇다면 나에게 귀의한 어려운 사람은 모두 나에게 찾아와 양로하겠다고 나설 것일세. 내 손에서 만약 금전이나 곡식이 나올 수 있다면 이 또한 원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이러한 도력이 없네. 그러니 어떻게 그러한 대자대비를 베풀 수 있겠는가.
예전에 복건(福建)의 황혜봉(黃慧峯)이 매번 시를 지어 부쳐오면 얇은 믿음이나마 다소 있는 듯하기에 내가 여러 책을 보내주었더니 그가 귀의하겠다고 자청해왔네.
그는 나와 나이가 같았는데, 나중에는 다시 출가하겠다고 나서기에 내가 재가수행의 유익함을 적극 일러 주었네.
그가 스스로 보리심을 내어 출가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실은 그저 일 없고 조용한 곳을 찾아 자손들의 양로비를 줄이려고 꾀한 것뿐이지.
그가 하도 심한 말로 극성을 부리기에 내가 이렇게 말했네.
“나는 남의 절에 30년간 머물러 오면서 내 한 몸도 이미 많다고 느껴 왔소. 하물며 당신까지 또 와서 나에게 출가한다면 어찌 되겠소? 당신이 꼭 오겠다면 내가 하산하는 수밖에 없소. 왜냐하면 나 자신도 돌볼 겨를이 없거늘 어떻게 당신까지 돌봐줄 수 있겠소?”
그 후로 그는 편지를 뚝 끊고 말았네. 그러니 전에 큰소리친 도심(道心)은 진짜 보리심이 아니라 자손을 위해 이익을 찾은 세속 마음에 불과한 것이었지.
그런데 그대는 머리가 제법 총명하면서도 자기 마음을 미루어 남의 속마음까지 헤아려 주지 못하네. 자기한테는 어려운 줄 알면서 남에게는 쉬울 것이라고 말하는 게지. 내가 그대보다 더 고뇌가 많은 줄 모른다는 말일세. 앞으로는 그대 스스로 자기 능력을 헤아려 일하기 바라네.
만약 또 다시 나에게 대신 금전을 내달라고 요청하면 목숨을 바쳐 상환해야 할 만큼 몹시 어렵게 되네.
왜냐하면 내가 그대 한 사람밖에 모르는 것이 아니며, 또 그대 한 사람만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세. 설령 그대 한 사람뿐이라고 하더라도 몇 년 동안 사오백원씩 쓴 것도 별로 요긴한 일도 아니었고, 또 이곳에 재난구휼하랴, 저곳에 자선사업하랴, 내가 어떻게 다 감당하겠는가?
좋은 책(善書)을 인쇄하여 법보시하는 일만 해도 제멋대로 부쳐줄 수가 없네. 거기에도 본디 나름대로 규칙이 있는 것은 그대도 보았을 줄 아네.
만약 사람들이 요구한다고 모두에게 그냥 부쳐주기로 한다면, 비록 수십만 가구가 나서도 다 처리할 수 없을 걸세. 하물며 모두가 조금씩 각출하여 겨우 유지하는 형편인데 오죽하겠는가? 만약 꼭 하려는 경우 원가에 따라 배포한다면 소원을 이룰 수 있네.
그렇지 않고 사람들에게 유익하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것처럼 부쳐준다면 금방 문 닫을 수밖에 없네.
보타지(普陀志)는 전에 불법(佛法)도 모르고 부처님도 믿지 않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편집했는데, 더구나 나의 전기(傳記)까지 한 편 지어 덧붙인다기에 내가 잘못되었다고 극력 반대했네.
나중에 한두 가지 일로 말미암아 책임자가 내 의견에 따르지 않기에 나는 그 일에서 완전히 물러나 더 이상 묻지도 않았네. 그가 편집을 마쳐 다른 스님에게 부탁했다가 반년 이상 묵힌 다음 나중에사 나에게 감수(監修)해달라고 다시 요청해왔는데, 나 또한 겨를이 없어 몇 년 동안 미루어 왔네. 그래서 이 책에는 내 이름이 전혀 없네. 거기에 수록할 내 글과 이름을 모조리 빼버리고 하나도 남기지 않은 걸세.
그가 다른 사람에게 써 달라고 청탁해 인쇄를 마쳤는데, 산중에서 그 책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종이 값과 인쇄비를 합한 원가에 따라 권당 6각(角)식 셈하여 모두 3천부를 인쇄했다네. 신청한 물량 1천여 부를 빼면 단지 천여 부 남는데, 나도 사람들에게 조금 보낼 생각이네. 그대도 몇 부 가져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생각이 있다면 그 마음은 아주 좋네. 다만 얼마나 어려울 지는 잘 모르겠네.
앞으로는 자기에게 생기기를 바라지 않는 일은 남에게도 베풀지 않는다(己所不欲 勿施於人)는 마음을 늘 간직하기 바라네. 만사에 자기 마음으로 남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또 남의 마음을 미루어 내 마음을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하네.
그렇게만 한다면 그대는 앞으로 틀림없이 광명(光明)이 휘황찬란하고 인간과 신명이 모두 기뻐하는 경지에 이르게 될 걸세.
이렇게 입에 쓴 약을 정말로 그렇다고 여기고 달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네. 아무쪼록 지혜롭게 살피길 바라네.
그리고 인쇄원판은 절대로 홍화사(弘化社)에 보관하지 말게. 이 일이 일이년 안에 끝날 지 미정이고, 기금이나 일정한 수입도 없는데다가 시국도 좋지 않으며, 사람들도 서로 협조하지 않으면 그만두지 않고 어떻게 계속 유지할 수 있겠는가. 불학서국(佛學書局)은 유통망도 넓고 영업성을 띠어 오래 계속될 수 있으니 거기에 맡기면 거기나 그대에게 모두 유익할 걸세.
수신인(受信人) 해설 : 이 편지는 민국 21년(1932 : 72세) 임신(壬申) 봄에 대사께서 혜원(慧圓)에게 답장을 내리신 것인데, 대사의 도행(道行)이 굳세고 뛰어나 제자로 하여금 경탄과 오체투지의 예배를 절로 하도록 만듭니다.
편지 안에서 지시하신 각 단락이 모두 대체(大體)를 힘써 유지하면서 홀로 외눈을 갖추신 세상의 모범이 되시기에 충분합니다.
제가 능력을 헤아리지도 않고 일을 벌이거나 남을 대함에 내 마음같이 살펴보는 용서의 아량이 부족한 점에 정문일침을 찌르신 것은 더욱이 구구절절 뜸돌(藥石) 같고 보배 같은 가르치심입니다.
지금까지 9년간 은밀한 상자에 소중히 보관해 왔는데, 대사께서 서방극락정토에 왕생하신 지금도 제자가 가르치심을 제대로 힘써 실행하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잘못을 벗어나지 못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친필서신에 배인 대사의 마음을 우러르니 어찌 비통함을 금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대사의 문집 편찬에 공개발표하여 제 잘못을 드러내면서 아울러 대사께서 사람들 가르치시기에 싫어함 없이 열성껏 쏟으신 자비은혜를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합니다.
印光 大師 嘉言錄 9
지나친 음욕(淫慾)은 질병과 요절(妖折)의 화근 (1)
글: 보적(寶積) 김지수 옮김
세상에 건강 장수하고 자손이 번성하며 공명(功名)이 드날리고 길조와 복록이 넘쳐나길 바라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으며, 반대로 병들어 요절하거나 후손이 끊기고 집안이 몰락하여 불길과 흉악이 엄습하길 바라는 사람도 또한 없을 게요.
이는 온 세상의 인지상정(人之常情)인지라, 비록 삼척동자라도 모두 그러하지 않음이 없고, 설령 몹시 어리석은 바보라도 재난과 화(禍)를 기뻐하고 경사와 복을 싫어하는 법은 결단코 없소.
그런데 여색을 좋아하고 음욕을 탐내는 사람은 마음이 바라는 바와 몸이 행동하는 것이 정반대로 엇갈려, 마침내 바라지 않는 것을 모두 얻고 바라는 것은 전혀 얻지 못하게 되니, 어찌 슬프지 않겠소? 제멋대로 화류계(花柳界)와 홍등가(紅燈街)를 들락거리며 여색만 밝히는 자들은 여기서 말하고 싶지도 않소. 정상적인 부부관계라도 한번 탐내어 빠져들게 되면 반드시 요절하여 운명하기 마련이오. 또 설사 지나치게 탐하지는 않을지라도 삼가 조심할 줄 몰라 거리낌 없이 행함으로써 죽음에 이르는 자도 있으니, 정말 가엾고 불쌍하기 짝이 없소.
그래서 옛 선현이 ‘불가록〔不可錄:차마 붓으로 기록할 수 없는 내용이란 뜻으로, 불교의 기어(綺語)에 상응하는 용어임〕’을 편집하여, 색욕(色慾)의 해악, 음욕을 막고 경계하는 격언, 착한 이가 복 받고 음란한 자가 재앙을 당한 실증 사례, 계율을 지키는 방법과 시기, 음욕을 기피해야 할 때와 장소·상황 등을 두루 밝혀 두었소. 번잡스러움을 귀찮게 여기지 않고 조목조목 상세히 분류하여 보는 이마다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니, 세상을 깨우치고 백성을 구하려는 그 마음은 정말로 간절하고 진지하기 그지 없소.
여기에 내가 내용을 좀 더 보태고 이름을 ‘수강보감(壽康寶鑑:건강장수의 보감)’으로 바꾸어 널리 법보시하기 위해 뜻있는 인연을 굳이 불러 모으는 것은, 마음이 너무 애통하여 차마 가만히 있을 수 없기 때문이라오.
내게 라제동(羅濟同)이라는 한 제자가 있었는데, 사천(四川) 출신으로 나이 46세에 상해(上海)에서 선박 상업을 하였소. 그 성품이 자못 충직하고 후덕한데다가 불법(佛法)까지 깊이 믿어 관형지(關炯之) 등과 함께 정업사(淨業祉:정통염불 수행하는 재가신자 모임)를 운영하였다오. 민국 12, 3년(1923~4) 즈음에 늘상 산에 올라와 내게 귀의하고 싶어했으나 사업에 얽매여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4년(1925) 병이 몇 달간 악화되어 몹시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는데 한약과 양약 모두 전혀 효험이 없었던 모양이오. 8월 14일 약값을 계산하는데 그 액수가 너무 엄청나 깜짝 놀라며, 화가 나서 “앞으로는 설령 내가 죽더라도 다시는 약을 먹지 않겠다.”고 맹세했다오.
이에 그의 첩(妾)이 부처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 올리기를, 종신토록 채식하며 염불할 것을 발원하오니 남편의 병을 낫게 해 달라고 빈 모양이오. 그러자 그날 오후부터 병세가 호전되더니 대변으로 핏덩어리를 왕창 쏟아낸 뒤 약도 쓰지 않고 그냥 나았다오.
내가 8월 말 상해에 도착하여 태평사(太平寺)에 머물다가, 9월 초이틀 정업사에 가서 관형지와 만날 때 라제동도 한 자리에 있었소. 비록 몸이 아직 크게 건강해 보이지는 않았으나, 기색이 비할 데 없이 맑고 깨끗하게 빛나고 있었소. 나를 보더니 기뻐하며 “사부님께서 오셨으니, 산에까지 올라갈 필요 없이 상해에서 귀의해야겠습니다.”라고 말하기에, 초파일을 택해 그 첩과 함께 태평사에 와서 삼귀의와 오계를 받도록 하였소. 그리고 정설루(程雪樓)·관형지·정계초(丁桂樵)·구양석지(歐陽石芝)·여지련(余持蓮)·임심백(任心白) 등 여러 거사를 초청하여 나와 함께 식사도 하였소.
초열흘날 다시 자기집으로 초청하여 식사 대접하면서, “사부님은 저희들의 부모시고 저희들 제자는 사부님의 자녀입니다.”라고 말하길래, 내가 “(효자는) 부모가 오직 그 질병만 걱정한다네.1) 그때 질병이 비록 호전되었지만 아직 완전히 회복된 상태는 아니니, 마땅히 신중해야 할 걸세.”라고 당부했다오. 그런데 애석하게도 신중해야 할 바가 방사(房事:부부 동침)임을 분명히 말하지 않은 게 몹시 후회되오.
그달 말일께 공덕림(功德林)에서 감옥감화법회를 열 때 그도 동참했소. 대중이 흩어진 뒤 여남은 사람이 남아 밥을 먹을 때 그가 와서 회계에게 몇 마디 당부하고 가는데, 그 얼굴이 마치 죽은 사람과 같아 보였소. 나는 곧바로 그가 방사를 치른 때문인 줄 알아차리고, 그때 단지 “(효자는) 부모가 오직 그 질병만 걱정한다.”는 말만 하고 그 까닭을 말해 주지 않아 다시 위기를 초래한 것에 대해 뼈저리게 후회하였다오.
그때 바로 글을 써서 방사를 끊도록 당부하려고 했으나 거처가 번잡하여 그만 두고, 사월 초 6일 산에 돌아와 곧장 음욕의 해악을 자세히 적은 편지 한 통을 부쳤소. 그러나 이미 때가 늦어 약방문(藥方文)의 효험을 볼 사이도 없이 며칠 만에 그만 죽고 말았다오. 죽을 때 관형지가 여러 거사들을 불러 모아 함께 염불하여 회향기도 해 주었다는데, 그가 서방정토에 왕생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삼악도에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오.
무릇 몇 달간 크게 앓던 질병이 삼보의 가피력으로 약도 쓰지 않고 나은 뒤, 열흘 남짓 만에 기색이 보통사람을 훨씬 능가할 정도로 맑게 빛나더니, 신중해야 할 줄 모르고 그만 잘못하여 방사를 행해 죽고 말았소. 이는 단지 자기 생명을 해친 짓일 뿐만 아니라, 삼보의 자비로운 은혜마저 저버린 허물이 몹시 크다오.
나는 그의 부음을 듣고 마음이 매우 아팠소. 세상에 조심하거나 절제할 줄 모르고 거리낌 없이 굴다가 죽어가는 자가 수없이 많은 사실을 생각하니, 만약 나마저 이를 예방하고 보호하는 방편법문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여래께서 대자대비로 중생의 고통을 구제하는 불도(佛道)를 크게 잃을 것만 같았소. 그래서 ‘불가록(不可錄)’을 증보 발행하여 널리 유포시키면,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거리낄 줄 알게 되어 목숨까지 잘못 내버리는 일은 줄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소.
마침 한 거사가 모친의 유산 천육백 원(元)으로 좋은 책을 인쇄하여 법보시하고자 원하기에, 내가 그에게 그 돈으로 전부 『수강보감(壽康寶鑑)』을 인쇄하여 청춘 남녀를 미리 위험에서 건져주자고 권했소. 그러면 라제동 한 사람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이 책을 읽을 모든 사람들이 조심하고 절제할 줄 알 것이며, 아울러 책이 유통되고 서로가 권고해 나가면 온 세상 사람들이 함께 건강장수를 누리고 홀아비 홀어미나 고난이 날로 줄어들 것이오.
그렇게 된다면 라제동 한 사람의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건강장수를 가져다 줄 것이니, 그의 죽음이 도리어 공덕이 되겠지요. 이 공덕을 극락왕생에 회향기도하면, 반드시 사바고해를 하직하고 서방정토에 올라가 아미타불의 제자가 되고 연화세계 청정대중의 좋은 도반이 될 것이오.
맹자(孟子)도 말한 적이 있소.
“마음 수양은 적은 욕심보다 더 좋은 게 없다(養心莫善於寡欲). 그 사람됨이 욕심이 적으면, 비록 천성을 잃은 게 있을지라도 적을 것이며, 그 사람됨이 욕심이 많으면, 비록 천성을 지닌 게 있을지라도 또한 적을 것이다.”
건강할 때도 오히려 욕정을 절제해야 마땅하거늘, 하물며 큰 병을 앓고 나서 막 나은 때야 오죽하겠소? 10년 전에 한 갑부 상인의 아들이 일본에서 양의학을 공부해 시험에 일등으로 합격했다오. 전차를 탔는데, 차가 완전히 멈춰서기 전에 뛰어 내리다가 한 팔이 부러졌지 뭐요. 마침 그가 이 분야의 의사인지라 얼마 안 되어 곧 나은 모양이오. 무릇 뼈를 다친 사람은 최소한 백수십 일 동안 여색을 가까이 해서는 절대 안 되는데, 그가 팔의 골절이 나은 지 얼마 안 되어 모친의 수연(壽宴:장수 축하 잔치)에 참석하러 귀국했다가 밤에 아내와 동침한 뒤 이튿날 즉사하고 말았소. 이 아들은 자못 총명하여 의사까지 된 사람인데, 어찌하여 이러한 기본 금기사항조차 새까맣게 모르고 잠깐의 환락 때문에 지중(至重)한 생명을 잃었단 말이오? 이보다 더 애통한 일이 어디 있겠소?
재작년 한 상인이 때마침 호황을 타서 며칠 전 장사로 6, 7백 원(元)을 벌었다오. 자못 득의양양한 그는 다음날 그의 첩(妾) 집에서 처(妻) 집으로 갔는데, 그의 처가 몹시 기뻐하더라는 거요. 때는 (음력) 5월이라 날씨가 몹시 무더워, 처가 선풍기를 틀고 몸을 씻게 한 뒤 얼음물에 물을 타서 마시도록 주었다오. 단지 시원하게 열을 식힐 줄만 알았지, 동침할 때 몸을 차갑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몰랐던 게요. 그래서 세 시간도 채 못 되어 복통으로 죽고 말았다오.
이렇게 보면, 세상에 절제할 줄 모르고 거리낌 없이 굴다가 죽는 자가 몇 천만 억이나 될 지 알 수 없소. 예로부터 복록을 최고로 누리는 사람은 황제보다 더한 이가 없을 게요. 복록이 최고면 수명 역시 길어야 할 법한데, 자세히 살펴보면 십중팔구는 모두 장수하지 못했소. 이 어찌 일 많이 벌이기를 좋아하면서 게다가 절제와 금기를 지킬 줄 몰라 스스로 목숨을 재촉한 결과가 아니겠소? 또한 세상에 아주 총명한 천재들도 대부분 장수하지 못하는데, 이러한 금기를 잘 몰라 빚어지는 게 거의 틀림없으리다.
나는 늘상 말하기를, 세상사람 중에 4할은 색욕으로 죽고, 또 다른 4할은 비록 색욕을 직접 원인으로 죽지는 않지만 색욕을 탐하여 쇠약해진 몸이 다른 감염을 받아 간접으로 죽으며, 타고난 수명을 온전히 누리고 죽는 사람은 십분의 일에 불과하다고 강조하여 왔소.2) 아득히 넓은 세계에 수없이 많은 중생 가운데 십중팔구는 색욕으로 말미암아 죽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소?
이상이 바로 내가 ‘건강 장수의 보감’을 유통시키려고 하는 까닭이요. 그래서 나는 세상에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나 또는 동포를 위해 화근을 예방하고 행복을 지어주려는 분들은 모두 이 책을 인쇄·배포하여, 사람들이 절제와 금기를 깨닫고 귀중한 생명을 잃거나 망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도록 이끌어 주길 바라오.
제멋대로 화류계와 홍등가를 들락거리는 자들의 대부분은 스스로 정견(正見)을 확립하지 못하고, 제비 같은 친구나 음란 서적의 나쁜 꾐에 빠져 자신을 음욕의 바다에 내던진 채 헤어날 줄 모르고 있소. 만약 이 책을 자세히 읽어보기만 한다면, 그 이해득실을 뼈저리게 알게 될 것이요. 조상이나 부모의 명예와 치욕, 자신의 생사와 성패, 그리고 자손의 총명 여부와 흥망 등에 관한 내용들이 불을 보듯 훤하게 밝혀져 있는데, 천치바보가 아니라면 누가 직접 눈으로 보고도 마음이 뜨끔하게 놀라 절제하려 힘쓰지 않겠소?
이 책을 본 뒤로 각자 부부간의 천륜에 절도 있게 만족하면서 지나친 탐욕으로 몸을 해치는 일이 없다면, 금슬 좋게 나란히 늙어가며 건강과 장수를 누릴 것이오. 욕망이 적은 사람은 항상 자식이 많고, 또 그 자식들은 틀림없이 체질이 강건하고 마음이 선량하며 의지가 굳센 법인지라, 결코 자신을 망치는 과오가 없을 뿐만 아니라, 분명히 부모를 영광스럽게 빛내는 훌륭한 인재가 될 것이오.
이것이 바로 내가 장기간 향을 사르며 기도 축원해온 바라오. 바라건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모두 함께 같은 마음(同心)을 내어 인연따라 널리 유포시켜 준다면, 중생들에게도 몹시 다행이고 국가민족에도 매우 다행이겠소.
민국 16년(1927) 정묘(丁卯) 늦봄
항상 부끄러운 중(常漸愧僧) 석인광(釋印光)
印光 大師 嘉言錄 10
지나친 음욕(淫慾)은 질병과 요절(妖折)의 화근 (2)
글:보적(寶積) 김지수 옮김
불가록(不可錄:차마 기록할 수 없는 글) 중판 서문
여색의 화(禍)는 지극히 혹독하고 심하나니, 예로부터 지금까지 여색으로 말미암아 패가망신하거나 민심을 잃고 나라를 망친 자들을 어찌 이루 다 헤아릴 수 있으리오? 설사 이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았다고 할지라도, 강건한 육신을 손상시키고 청명한 의지를 흐릿하게 약화시키거나, 땅을 박차고 하늘을 떠받쳐 성현이 되겠다던 서원과 기개가 슬그머니 수그러져 아무런 성취도 없는 평범한 졸부로 전락한 자들은 또한 얼마나 되겠소?
하물며 천리(天理)를 거역하고 인륜을 파괴하여, 살아생전에는 사람 탈을 쓴 짐승 노릇하다가 죽은 뒤 삼악도에 타락한 자들은 또 어떻게 다 알아 볼 수 있으리오? 오호라! 여색의 화가 어찌 이다지도 지극히 혹독하고 심하단 말인고?
이러한 까닭에 옛 부터 뭇 성현께서 특별한 자비와 연민을 베푸사, 더러는 법언(法言)으로 설하시고 더러는 좋은 말로 권하시어, 착한 이에게 복을 내리고 음란한 자에게 화(禍)를 내리는 하늘(자연)의 인과 원리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알도록 간절히 바라고 힘쓰셨다오. 게다가 많은 구체적인 사안과 실례를 들어 정법(진리)의 증거로 경고하셨으니, 이는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 이 글을 보면 반드시 섬뜯 놀라고 확연히 깨달아 욕정의 거센 물살을 미리 막고 선량한 천성을 회복하리라고 기대하셨기 때문이오.
이렇게 되면 모든 동포들이 건강 장수와 부귀 복록을 누리고 빈곤 비천과 질병 요절의 화근을 영원히 벗어날 수 있겠지요. 이상이 ‘불가록(不可錄)’의 편집 연유라오.
장서증(張瑞曾) 거사가 이 책을 중판 인쇄하여 법보시하고자 나에게 서문을 써달라고 요청하기에, 욕정을 막는 요체나 간단명료하게 써보려고 하오. 미색이 눈앞에 있어 욕심이 치성하게 일어나면, 제아무리 훌륭한 법문이나 격언 또는 인과응보의 법칙이라도 모두 그 애욕의 마음을 완전히 끊어버리기는 어려운 줄 모름지기 알아야 한다오. 그러나 만약 부정관(不淨觀)을 행한다면, 한바탕 치성한 욕망의 불길도 즉각 식어 사라질 것이오.
장안(長安)의 젊은이들은 귀뚜라미를 가지고 놀기 좋아하는데, 한번은 어떤 청소년 삼형제가 달밤에 무덤 사이에서 귀뚜라미를 잡다가 문득 미색과 자태가 아주 빼어난 한 젊은 여인을 보았다오. 그래 셋이 함께 가서 그 여자를 잡으려고 했더니, 갑자기 그 여자의 얼굴이 확 변하면서 일곱 구멍에 피를 흘리고 혀를 한 자(尺) 남짓 늘어 뜨려, 세 사람이 동시에 놀라 기절해 버렸소. 이튿날 그 집안에서 그들을 찾아내었는데 겨우 한 아들밖에 살려내지 못하였다오. 그래서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는데, 살아난 아들도 심하게 앓다가 몇 달 만에 비로소 나았고, 그 집 자손들은 다시는 밤에 귀뚜라미를 잡지 못하게 금했다는 구료. 이 젊은 여인이 얼굴을 표변하지 않았을 때는 애욕이 뼛속까지 사무쳐 욕망을 따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겠지만, 얼굴이 확 바뀐 다음에는 단박에 놀라 기절해 죽고 말았으니 애욕의 마음이 이내 온 데 간 데 없고 만 것이오. 그런데 그들이 함께 쫓아갈 때도 본디 피와 혀가 없었던 것은 아닐텐데, 어찌하여 보이지 않게 감춘 모습에는 애욕의 마음을 내고 이를 흘리고 늘어뜨리자 두려운 마음이 생긴단 말이오?
이러한 이치를 깨닫는다면, 그 어떤 천하 절색미인을 본다고 할지라도 모두 일곱 구멍에 피를 흘리고 혀를 한 자 남짓 늘어뜨려 사람 목숨 노릴 귀신으로 생각하여야 하리다. 그러니 어찌 미색에 미혹되어 살아생전에는 타고난 수명을 다 누리지 못하고 죽어서는 기어이 삼악도에 오래도록 떨어지려 한단 말이오?
그래서 여래께서 탐욕이 많은 자는 부정관(不淨觀)을 행하도록 가르치신게오. 부정관을 오래오래 지속하다 보면 미혹을 끊어 버리고 진리(도)를 증득하며〔斷惑證眞〕 평범을 초월하고 성현의 경지에 이를〔超凡入聖〕 수 있나니, 어찌 사음을 범하지 않고 욕망을 억제하여 목숨을 보호하는 정도에 그치겠는가?
여자가 요염하고 애교스런 자태로 사람들에게 애욕의 마음을 일으키고 욕정을 쏟도록 유혹하는 것은, 단지 바깥의 얇은 껍질(피부) 한 장이 현란하고 윤택하게 빛나기 때문일 따름이오. 만약 그 얇은 껍질 한 켠을 벗겨낸다면, 단지 껍질 속의 물건들만 연연해 할 만한 것이 못될 뿐 아니라, 그 껍질 자체도 더 이상 애착할 만한 게 결코 못되지 않겠소?
더 나아가 그 육신을 해부해 본다면, 오직 피고름 흥건하고 뼈와 살이 뒤엉긴 채 오장 육부와 똥오줌만 낭자하게 쏟아질 것이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더러움과 코 막고도 맡기 어려운 피비린내는 앞서 젊은 여자가 표변한 얼굴 모습에 비하면, 그 두려움과 역겨움이 백천 배는 훨씬 넘겠소. 제아무리 나라와 천하를 뒤엎을 절세가인이라도 얇은 껍질로 싸고 있는 속 물건들은 그 어느 하나 이와 같지 않은 자가 있겠소? 그런데 사람들은 어찌하여 단지 그 겉모습만 보고 그 속 알맹이는 살피지 못하며, 그 알량한 아름다움에 애착하여 그 엄청난 추악함을 헤아리지 않는단 말이오? 나는 세상 사람들이 겉모습을 내버리고 속 알맹이를 살피며, 엄청난 추악함을 혐오하여 알량한 아름다움을 내버려, 모두 함께 욕망의 바다를 벗어나 깨달음의 언덕에 올라가기를 간절히 기원하오.
또 음욕이 치성하여 스스로 억제할 수 없는 때에는, 여자의 음문을 독사의 입으로 여기고 자기의 양근을 독사의 입 속에 집어넣는다는 생각을 해 보시오. 그러면 정신이 번쩍 들고 마음이 섬뜩하며 털끝과 뼛속까지 오싹 소름이 끼치면서, 끝없이 치열한 번뇌 욕정도 금방 시원히 가라앉을 것이오. 이 또한 욕정을 억누르는 간단한 방편법이라오.
‘불가록(不可錄)’ 추가 서문: 인륜을 돈독히 다지세
하늘은 가장 위대한 아버지요, 땅은 가장 위대한 어머니이니, 모든 남녀가 다 하늘과 땅의 자녀이며, 또한 나의 형제자매라오. 모두가 형제자매라면 마땅히 서로 우애하고 보호하며 도와주어 각자 제자리를 찾도록 힘써야 할 것이오. 이렇듯 하늘과 땅의 자녀들을 보호하고 도와준다면, 하늘과 땅도 반드시 그 사람을 늘 보호하고 도와주어, 그 복록과 수명이 크게 늘어나고 모든 일이 뜻대로 된다오.
그러나 혹시라도 제멋대로 날뛰며 하늘과 땅의 자녀들을 업신여기고 괴롭힌다면, 그 복록과 수명이 훨씬 줄어들고 집안 후손이 끊기며 숨 한번 멈춘 뒤 길이 삼악도에 떨어져 백천겁이 지나도록 사람 몸 다시 받지 못할 것이오. 이는 스스로 지은 화근일 뿐, 결코 하늘과 땅이 자비롭지 못한 까닭이 아니라오.
다른 것은 그만 두고라도, 사람마다 있기 마련인 아내와 딸, 누이만 보세. 남들이 행여 자기 아내나 딸, 누이를 응시만 해도 자신은 분노와 격정을 이기지 못하고 두 눈을 부릅떠 주먹다짐을 하려고 들텐데, 어찌하여 남의 아내와 딸, 누이들은 조금만 예뻐 보여도 마음에 금새 음탕한 생각을 일으키고 감히 욕보일 뜻까지 품는단 말이오?
다 같이 하늘과 땅의 자녀인 형제자매끼리 부정한 생각을 일으킨다면, 이는 하늘과 땅의 자녀를 욕보이고 형제자매를 모독하는 것이니, 그런 자가 어떻게 하늘과 땅 사이에 우뚝 서서 사람 행세를 할 수 있겠소? 하물며 부부간의 도리가 삼강오륜(三綱五倫)에 속하는 중대한 규범이 아니오?
인간이 짐승과 다른 까닭은 인륜이 있기 때문이오. 그런데 인간이 만약 인륜을 어지럽히고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행한다면, 이는 인간의 몸으로 짐승의 짓을 하는 게 되오. 몸은 비록 사람이지만 실제로는 짐승만도 못하오. 왜냐하면 짐승은 윤리를 모르지만 사람은 윤리를 알기 때문이오. 윤리를 알면서도 이를 어기고 어지럽히기에 바로 짐승보다 아래에 있는 게 되오.
그러나 사바 세속의 모든 중생은 음욕으로 말미암아 생겨나기 때문에, 그 업습(業習)이 상당히 두텁게 되쏠리는 게 사실이오. 그래서 단단히 경계하고 예방해야 하는데, 친족으로 보거나 원수로 여기거나 또는 부정관(不淨觀)으로 생각하면 아마도 사악한 염두를 사그러뜨리고 올바른 염두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오. 원수와 부정관의 방법은 이전의 서문에서 이미 밝힌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특별히 친족의 방법으로 천륜(天倫)을 돈독히 지키고 사악한 염두를 품지 않도록 권장하는 거라오.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 뭇 여자들을 보는 방법이 잘 나와 있지 않소? 늙은 여자는 어머니로 보고, 지긋한 여자는 누나로 보며, 젊은 여자는 누이동생으로 보고, 어린 여자는 딸로 보아 사악한 염두를 가라앉히고 제도 해탈의 마음을 내라는 거요.
또 『범망경(梵網經)』에는, 모든 남자는 나의 아버지이고 모든 여자는 나의 어머니이나니, 나는 전생에 대대로 이들로부터 태어났으므로 마땅히 효성심과 자비심을 내어야 한다고 적혀 있소. 이렇게 생각한다면 모든 이를 보호하고 도와주기도 정신없이 바쁠테거늘, 어느 겨를에 사악한 마음을 일으켜 욕보일 수 있단 말이오?
명(明) 나라 때 어떤 사람이 치성한 음욕을 자제할 수 없어 왕용계(王龍溪)에게 치유법을 청했다오. 그러자 용계가 이렇게 말하였소.
“가령 어떤 사람이 그대에게 ‘여기 유명한 기생이 있으니 그대가 휘장을 걷고 안으로 들어가 함께 해도 좋다’고 말하기에, 그대가 그의 말대로 방 안에 들어가 보았더니 바로 그대의 어머니나 딸 또는 누이였다면, 이때 그대의 마음속에 들끓던 한바탕 음욕이 여전하겠는가? 아니면 수그러지겠는가?”
이에 그 사람이 “사라질 것이다.”고 대답하자, 용계가 다시 말하기를, “그렇다면 음욕이 본디 텅빈〔空〕 것인데, 단지 그대가 스스로 진짜〔眞〕라고 착각하는 것 아닌가?”라고 일깨워 주었다오.
사람들이 정말로 모든 여인들을 어머니나 딸이나 누이로만 본다면, 단지 음욕과 사악한 염두가 일어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생사윤회도 단박에 벗어날 게 틀림없소.
‘불가록(不可錄)’은 진리의 가르침과 선량한 말씀, 그리고 착한 이를 복 주고 악한 자를 벌 준 실제 사안과 음욕을 피해야 할 때와 장소 등을 하나하나 상세히 밝히고 있어, 세상 사람들의 미혹을 일깨워 주려는 마음이 너무도 지성스럽고 진지하오.
유양(維揚:揚州府)의 장서증(張瑞曾) 거사가 사람들을 이롭게 도와주려는 마음이 간절하여 이 책을 인쇄 보시하고자 나에게 음욕을 절제하는 요체 좀 써달라고 부탁하기에, 내가 원수로 보고 부정관을 행하라는 요지를 적어 준 바 있었소.
그 뒤 그의 집안 형님 정훈(正勛)이 별세하자, 이 책의 법보시 공덕으로 그의 영혼의식(靈識)의 죄악업장이 소멸되고 복과 지혜가 크게 늘어나서 오탁악세(五濁惡世)의 욕계(欲界)를 벗어나 극락정토 구품연화(九品蓮華) 세계에 왕생하도록 회향기도한다고 발원하였소. 이에 장거사의 효성스럽고 우애하는 마음을 생각하여 다시 인륜을 돈독히 다지자는 뜻의 서문을 덧붙이게 되었소. 보고 듣는 이들이 잘 살펴준다면 더할 나위없이 다행이겠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