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택에 살다가 해운대 아파트로 이사를 오니 제일 편한게 도둑으로부터의 해방감이다.
고층 아파트가 되니 지상으로부터 가스관을 타고 올라온다해도 상당한 높이가 되므로
목숨을 걸어야 하고 옥상으로부터 줄을 타고 내려온다 해도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경비실에 경비가 있고 무엇보다도 곳곳에 CCTV가 설치돼 있으니 이를 피해
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1968년 부산에 처음 내려와서 초읍에 있는 고종형한테 붙어 살았다. 당시 고종형은 금성사
직원으로 공원으로 일하러 다녔고 나는 도서관에 나가 공부를 했다. 방 하나 사궐셋방을 얻어
살았는데 주인 할머니가 어디 다니러 가신다며 집을 맡겨 놓았다. 낮에는 집이 비므로 대문에
자물쇠를 채워 놓고 나갔다. 어느날 저녁 때 집으로 돌아오니 도둑이 다녀 갔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 방에서는 별로 가져갈게 없으니까 문학전집을 몇권들고 가고 주인 할머니방에서는 손녀 딸
옷가지를 몇가지 들고 갔었다고 했다. 밖에 자물쇠를 채워 놓으면 도둑에게 '이 집은 비어 있소'라고
알려주는 격이라고 했다.
우리가 영국에 잠시 나가 있을 때 영국은 선진국이고 부자 나라니까 도둑이 없는 줄로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좀도둑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라고 했다. 보험회사에서도 도둑보험을 들라고
몇번이나 권유를 받았다. 영국에도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가 달랐다. 부자 동네에는
보안 시스템이 잘 돼 있어 도둑들이 설치지 못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에서는 도둑들이
많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자동차 도둑이 별로 없는데 영국에서는 자동차 타이어에도 자물쇠를 채운다.
우리 식구가 영국에 나가 있을 동안 동생부부가 와서 어머니를 모시도록 했다. 동생부부는 낮에는
밖에 나가 일하러 다니고 있었고 어머니는 늘 집에 계셨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가 울산 외삼촌댁에
잠시 다니러 가신 사이 낮에 집이 비었다. 그 사이 도둑이 든 것이다. 우리가 살던 방은 문 열쇠로 도아로킹
을 해 놓았는데 나중에 영국에서 돌아와 보니 문 잠금장치를 빠루로 부셔 놓은 걸로 봐서 전문절도범은 아닌
것으로 보였고 2층에 세를 술집 딸애에게 주었는데 남자친구가 와 있었다고 하는데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그 친구의 소행이 아닌가 의심되었다. 동생부부는 일하고 받은 돈 뭉치를 자기들 방 구석에 검은비닐봉지에 넣어
아무렇게나 툭 던져 놓았는데 그것은 그대로 남아 있었닥 한다. 우리 방 농 위에는 샘손나이트 가방 속에
배 타고 외국에 나가 입항 할때마다 postcard를 사 모았는데 그것이 아주 무거웠다. 가방도 로크가 돼 있었으므로
바로 열리지 않아 도둑은 엄청난 금괴가 들어있는 줄로 착각하고 가져갔을 것이다. 하지만 무슨 수를 써서 가방을
여는 순간, 놀부의 박이 갈라지는 찰나와 같이 기대는 실망감으로 변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내게는 돈보다도
더 소중한 추억을 잃어버린 것 같아 보충할 길이 없다. 미안하다 도둑아! 금붙이 장만해 두지 못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