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공장을 할수가 없는 처지가 되고 보니 이제는 노후에 인생을 설계를 해야하는 순간이
내게 다가왔네요
공장을 둘째 사위에게 물려주고 괴산으로 이사를 하엿네요
공장을 물려줄쩍에 월 생활비를 얼마주기로 하고 또 만약에 운영을 잘못하여서
못하게 되면 돌려주기로 하고 계약서를 작성하고 각자 한통을 그러고서
등기 이전을 해주웟네요(이게 신의한수 였습니다)
그리고 괴산에 시골 땅 250평에 시골 집 매매를 하여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본가집옆에 부억하나 방하나 딸려지어서 친구에게 주기로 하고 집사람과 약속을 하고서
친구는 아파트를 처분을 할려고 하니 매매가 잘되지 않아서 애를 태우고 있는중
집사람이 3000만원 집을 짖는 없자에게 돈을 꾸워 주었네요
아파트가 매매가 되면 주기로하고서
그리고 2주가량 시간이 지나같어요
우선 친구는 작은 방에서 침식을 하고서
낮에는 같이 활동을 하고서 여기 저기 요양원 주간 보호센터 노인 보호 시설을 찾아 다니며
봉사활동을 할려고 분주하게 움직엿지요
그러던중에 집사람이 큰딸래미 집에 다녀와서 는 아침에 친구에게 무슨종이를 내미는데
그게 (집을 짖고 살다가 서로 마음이 맞지 않어면 지은 집을 원상) 복귀하여야 한다는
각서를 쓰가지고 친구에게 내밀어습니다 나에게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남편을 알기를
손톱밑에 때만큼도 생각지도 않은 행동에 화가 나서 그순간 집을 나오고 말았네요
귀산으로 이사를 가기 전에 서로가 상의를 해서 내린 결론인데 배신도 이런 배신이 없는거지요
그날로 몸만 나왔습니다
그날로 친구와 난 잠자리가 일정치 못하고 어떻게 하던 몸을 위탁해야 하는어려움이 봉착햇습니다
그당시에는 왜 그런 행동을 햇는지 알지 못하엿는데
차후에 지나고 보니 큰딸상의 하에 그리한것 같았네요
아무턴 우선 몸을 의탁할꽃이 없어 친구의 아파트로 들어가서 생활을 햇습니다
아직 아파트 매매가 되않아서 생활을 할수가 있엇네요
여기서 저의 젊은 시절이야기를 간단하게나마 쓰야 될꺼 같네요
저는 저기 경남 거창 시골 깡촌에서 나서 읍내 구경한 번 못해보고 초등 졸업후 14살쯤 부산으로
이사를 햇습니다
처음으로 들어간 공장 은 양은 으로 숫가락 젓가락을 만드는 공장으로 치직을 햇어요
일당은 50원 한달이면 1500원 월급 참 적지요
그시절은 모두가 꿈주리고 배고푼 시절 제가52년 생이니까
어려운 시절이엿지요
그러다가 사춘기를 맞이하고서 부산에 저의집은 갸야동 태화고무 맞은 편에 산동네
밤새도록 울어대는 당감동 기지창에서 기차의 기적소리에 한잠도 못이론적이 있엇습니다
엣말에 말은 나서 제주로 가고 사람은 나서 서울로 가라는 말이 있지요
마음이 싱숭 생숭해서 집을 뛰처나오고 말았습니다
잠이오지 않는밤 12월11일 2시50분 쓰봅니다
첫댓글 멋진 좋은 작품 감명 깊게 잘 감상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