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생:
오늘은 모르는 사람처럼 그녀 곁을 지나쳐 갔습니다. 그녀 눈에 맺힌 내 모습이 무척이나 반가왔지만. 애써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쳐야 했지요. 제가 선물한 것이 아닌것 같은 그녀의 이쁜 입술색을 보았습니다. 아마 제선물이 싫어나 봅니다.
그녀의 어머니가 제 이름을 물어봅디다. 그녀가 제 이름을 물어보길 바랬지만, 이제 그녀도 제 이름을 알았을겁니다. 하지만 아직 그녀와 난 타인사이였읍니다.
마냥 모른척 지나쳐가다가 잠시 뒤돌아 봤지요.
미끄러워 부담스럽던 그 눈길을 그녀는 참 빨리도 걸어가버렸나봅니다.
길은 그저 길만의 모습이었기에...
만화방총각:
집을 나와 정경이의 음반점을 찾아갔다. 문이 닫혀있다. 어디 갔나? 전화를 해보았다. 가게도 집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어디 갔나보지 뭐. 만화방에 돌아왔다. 이 만화방의 생활이 별로 길지가 않을 것 같다.
백수아가씨:
아이구 엄마 좀 조심하지 그랬어. 엄마를 한쪽골목으로 부축했다. 아까부터 눈길이 미끄럽더니만 결국 엄마가 넘어지셨다. 별로 심하게 넘어지지도 않았는데 많이도 아픈척 하신다.
저녁이 되어서 그게 엄마의 작전이었단걸 알 수 있었다. 우쒸 다리긁힌거하고 저녁상 차리는거하고는 무슨 상관이람. 오늘 저녁상은 엄마가 조리만 해준 국이랑 밥이랑 모조리 내가 차려야 했다. 그래도 오늘 엄마가 겨울옷한벌 기분좋게 사주셨다. 다음에 제가 돈벌면 저도 옷한벌 사드릴께요.
녀석이 내 어릴적 추억이 있던 곳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첨부터 친근한 무엇이 있었나보다.
나이도 나보다 한두살 많은줄 알았는데 동갑이었다. 이름도 알았다. 이름마저 낯설지 않았다.
밤에 자면서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이현재, 이현재...? 내 마음속 오랜시간 지워지지않고 숨쉬고 있는 이름이 떠올랐다. 유치원 앨범을 꺼냈다. 동그라미 쳐진 사진밑에 선명하게 이현재라고 쓰여있다. 어찌보면 닮은 것도 같다. 특히나 진주사람. 나하고 나이도 같다.
설마? 아니겠지. 그런 영화같은 우연이 어디있어.
하지만 이상하게 녀석이 이 사진의 주인공일수도 있다는 생각은 커져만 갔다.
자취생:
집에 와 하룻밤 묵었다. 방이 장난이 아니게 따뜻했다. 기분좋다. 더운물도 막 나온다. 그리고 내 방에는 없던 가족의 웃음이 있었다. 그래 여기가 내 집이다.
내일은 친구들도 만나야겠다.
부모님은 대학원을 가라고 하신다. 하지만 이제 나도 사회로 나가고 싶다.
만화방총각:
밤이 되어서야 정경이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많이 가라앉아 있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예전처럼 싸늘하지는 않았다. 내일은 자기가 찾아온다며 만화방위치를 알려달라고 했다. 내가 간다고 말했지만, 내일도 가게를 열기 싫다면서 자기도 한번 내가 숨쉬는 곳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라 그럼.
백수아가씨:
오전 내내 녀석이 혹시 내 첫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붕떠 있었다. 첫사랑은 그냥 마음속에 묻어야 그때의 느낌을 잃지 않는다고 하던데... 소중한 내 추억이 깨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녀석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훗
천진난만하게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쩌면...
만화방에 왠 여자가 이병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병씨가 날 아는체 하자. 그제서야 그녀가 나한테 눈인사를 보냈다. 성깔있어 보인다. 이병씨가 그녀가 바로 정경씨라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이병씨 마음에 어떤 모습의 느낌표일까? 내가 오자 그 둘은 이병씨의 방으로 들어갔다. 유심히 그녀의 입술을 보았다. 딴짓이라도 하면 금방알아챌 수 있도록
그녀 입술의 루즈선을 똑똑히 기억했다.
뜨개질이나 하자. 뜨개질을 하고 있는데 , 그녀석 목이 자꾸 생각이 난다. 목도리폭이 내가 하기엔 너무 커져 있었다. 내가 왜 이럴까?
정경씨가 나가며 또 차분한 눈인사를 보냈다. 나도 차분하게 미소를 지어보여주었다.
들어갈때와 똑 같은 입술로 그녀는 미소짓고 만화방을 나갔다. 그녀를 마중나간 이병씨의 들어올때의 모습은 기분이 좋은가보다.
자취생:
일어나니 아버진 출근을 하셨다. 엄마가 고생했다며 곰탕을 끓여 놓으셨다.
구수한게 속이 시원하다.
오늘은 하루종일 집에 있었다. 친구들은 내일 만나야겠다.
밤에 그녀 생각을 해보았다. 다시 서울가면 어떤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올까?
며칠 비운 서울처럼 한동안 낯설은 모습으로 들어올까?
만화방총각:
점심이 좀 지나서 전화도없이 그녀가 찾아왔다. 만화방찾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았을텐데...
"꽤 큰 만화방이네."
"응.."
"좋아 보인다."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혜지씨가 들어왔다. 약간 놀라는 눈치다. 그럴수도 있겠지. 자기가 앉아 있던 자리에 모르는 여자가 앉아 있으니. 소개를 해주었다. 정경인 내입을 통해서 혜지씰 알고 있었고, 혜지씬 내 공책을 통해서 그 이름을 보았을것이다.
그런 둘이었지만 가벼운 눈인사만 오고갔다. 혜지씨에게 이 자리를 넘기고 정경이와 난 방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네가 자는 방이야? 남자치고는 깨끗하다."
"하하 그래?"
"별로 재밌는게 없네."
"밖에 만화책 많이 있잖아. 하하"
한참 그러다. 어제는 왜 가게문을 안열었냐고 물어보았다.
"응. 내 남편 결혼식장에 갔었어." 무덤덤히 말하는 그녀의 대답이 썩 달갑지 않게 들렸다.
"신부가 참 예쁘더라. 훗... 이젠 그남자 완전히 정리했어." 이번 대답은 내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항상 전남편을 얘기할때 남편이란 호칭을 빼지 않던 그녀가 오늘 처음 그남자라고 말했다.
"왜? 너도 시집가고 싶어?"
"아니. 그냥 이대로 살래."
"시집가라. 그래야 그사람한테 너도 청첩장 보낼수 있잖아."
"풋. 왜 좋은 사람이라도 있어.?"
"...어... 나는 어떨까?"
"너? 호호 농담이라도 고맙다."
"씨. 농담 아닌데..."
한동안 대화가 끊어졌다. 잠시 다른 말 몇마디 하고 그녀가 작별인사를 했다.
정경이가 가벼운 눈인사를 혜지씨에게 남기고 만화방문을 나섰다.
멀리 배웅하려고 했는데, 들어가라고 한다.
요전의 집에 가라고 했던것처럼 차가운 어투였지만 얼굴엔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그럼 잘가.."
"그래 내일봐. 후후 아까 그 농담 기분은 참 좋았었어. 안녕"
그녀의 인사는 내맘에 차갑게 느껴졌으나 또한 용기를 심어주었다.
만화방아가씨:
어젯밤에 유치원 앨범을 유심히 살폈다. 뭔가 단서를 잡기위해서... 그러나 그러기에는 앨범이 너무 낡아 있었고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있었다. 녀석이 서울에 있으면 물어라도 볼텐데...
오늘 오전은 가을날 바람에 소근거리는 단풍처럼 내맘이 떨고 있다.
쉼호흡을 크게 한번 했다. 그리고 전화번호를 눌렀다. 전화기 옆에는 유치원 앨범의 주소란이 펼쳐져 있었다.
"이번호는 결번이오니 다시한번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This call number is...."
쿠.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걸까? 20년 가까이 지난 번호를 지금 눌러서 뭘 어쩌겠다고...
이사를 가도 벌써 갔겠지. 그래도 녀석은 그곳에 살고 있을것 같은 느낌이 항상 들었었는데... 괜한 짓을 했다.
유치원 앨범을 천천히 넘겨 보았다. 칠대삼 가르마에 한꼬마가 그또한 뭔가 수줍은듯 입만 웃고 있었다.
천천히 한장한장 앨범을 넘겨 보았다. 모두들 기억에 잡히지 않는 모습들이다. 그렇게 한장 한장넘기다보니 다시 주소란까지 넘겨져 버렸다. 2-**** 가만 요즘 단자리 국번 쓰는 곳이있나? 뭔가 또 설레임이 왔다.
아. 통화가 간다. 짧은 시간동안이었지만 이 통화음이 참 크고도 길게 내 귓가에울려퍼졌다.
딸깍."여보세요?" 억양이 강한 경상도 아줌마의 목소리다.
"여보세요. 혹시 거기가 현재네 집이 맞나요?"
"우리 아들인디... 누구세요?"
"예? 맞아요? 전 친군데요."
"친구? 이놈이 아침부터 당구친다고 나가버렸는데.."
"...저.. 그럼요 혹시 현재가 언제쯤 서울 올라간다 하던가요?"
"아. 서울친구구만. 아마 모래쯤 올라갈랑가? 아직 잘모르겠는데."
"저기요 혹시 현재가 **대학 기계공학과 다니는 거 맞죠?"
"맞는데. 학교친구가 아닌가봐?"
"..예.. 아니에요.."
"바쁜일이면 헨드폰번호 가르쳐줄까. 이놈이 지애비 핸드폰을 몰래 들고 나갔네."
"예? 아니에요.."
"그럼 나중에 다시하던가."
"예. 나중에 다시할게요. 안녕히계세요."
하하. 내 첫사랑은 추억이 되어 추억만으로 남을것 같은 그곳에 여전히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첫사랑은 바로 나의 옆에 우연처럼 아무것도 모른채 다가와 숨쉬고 있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사이 무수한 기억들이 지나쳐졌지만 그걸 모르시는듯 그의 어머닌태연하게 내 가슴떨림을 일상의 한부분처럼 받으셨다.
자취생:
한판 붙었다. 그건 차라리 혼신을 다한 필사의 사투였다. 녀석의
삑사리에 웃음이 나왔다. 침착하자. 공이 이쁘게 모였으나, 각이 얇다.
내리찍기를 할수 밖에 없다. 그게 성공한다면 적어도 서너개정도는 가볍게 몰아칠수 있다. 그리고 쉬운 쓰리가락으로 게임 끝. 3대0에서 4대3의
기적같은 역전을 할 수 있다. 폼을 잡았다. 녀석의 견제 동작이 들어왔다.
"아저씨! 150이 맛세 찍네예." 픽... 얼라이요? 삑사리! 녀석에게 너무 좋은 공을 주었다. 녀석이 내리 아홉개를 쳤다. 독한놈. 그리고 50도 코후비며 친다는 기본우라가 떴다. 게임 끝이었다. 두시간에 걸친 사투는 결국 나의 패배였다. 으... 삑사리가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불알과 우라는 주지말라.
그런데 난 그 두개를 동시에 주고 말았으니...나의 패배를 인정했다. 녀석이 또 전화를 한다. "내다. 내 또 이깄다. 오늘 저녁사줄테니 나와라."
"애인있는 놈은 조오~겄다!" 비꼬듯 말했다. "배아프면. 너도 만들어 임마."
친구애인과 함께 저녁을 얻어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님과 과일을
먹으며 비디오를 한판 때리고 있는데, 어머니의 눈초리가 수상쩍다. "니, 서울에서 여자 사귀제?" 어머니의 뜬금없는 질문을 받았다.
"와. 사귀모 어때서..."아버지도 거드신다. 아직 영문을 모르겠다.
"오늘 서울에서 어떤 여자한테서 전화가 왔데이. 서울에서 여기로 전화할 정도면 사귀는 여자아니겠냐?"
"자식이 날 닮아서 인기는 좋구만!"
누가 나한테 전화를 해? 서울에서 나한테 전화할 여자가 있나? 혹시 여기 친구들이 장난친거 아닌가?
지난 설날에도 한번 우리집에 (어머님. 안녕하세요. 저 현재 애인인데요.
현재 내려왔죠? 제가 미안했다고 말좀 전해주시겠어요. 새해
복많이받으세요.)라는 전화가 와가지고 낭패를 당한적이 있었다. 그때는 요 앞동네에서 찍은 여자한테 퇴짜맞고 괴로움에 몇마디 한걸 녀석들이 바로 놀려 먹은거였었다. 그때는 용이 애인의 짓이었다.
"엄마. 혹시 서울말이 어눌하지 않던가요?"
"아니. 아주 부드럽던데... 좀 떨긴 하더라." 부모님앞에서 여자친구얘기는 어쩐지 어색하다.
생각하는지, 바늘을 든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나의 어슬펐던 행동을 기억하고 있는건 아닐까? 미안하다. 나는 이제 다 잊어버렸는데...
오늘은 정경이한테 가지를 못했다. 어머니께서 오늘 저녁에 집으로 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일까? 혹시.
"혜지씨? 내일은 오전에 나와 주실 수 있으세요?" 그녀의 긍정적인 답을
받고 열쇠를 주었다.
일찍 문을 닫았다.
백수아가씨:
단골 그녀석이 내 어릴적 그리운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놈이란게 믿기지 않는다. 철모르고 녀석에게 시집간다고 했던 그때의 내
맘이 사랑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난 그때의 기억을 첫사랑의 느낌이라
생각하며 지금껏 살아왔었다. 이상하다. 그냥 어릴적 친구라 생각하고
사귀어버려?
좀 분하고 추억에 대한 느낌이 깨져서 허탈했다. 그러나 내 맘은 그가
지금껏 어떻게 살았으며, 아직 나란 존재를 기억하고, 그런 나를 만나면
어떻게 대할까?라는 생각들로 채워져 가고 있었다.
자취생:
엄마한테 내일 올라간다고 그랬다. "니. 어제 전화온 여자 때문에
일찍 올라 갈려고 그러는 거지?"
"마지막 면접시험 공부해야지요."좀 뜨끔하다.
우리 어머니께서 떡을 만드시고 계시다. 분명 내일 내가 들고갈 짐속에 저 떡이 들어있을것이다. 내가 자기자식은 자식인가 보다. 점심때 친구들을 만나보았다. 지지배들한테 혹시 어제 우리집에 전화했었냐고 물어보았다.
모두들 배째라다. 아무도 그런짓 안했다고 했다. 그전화 때문에 부모님께 낭패를 당했다고 했더니 "그래?"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아무래도 애인없는 날 놀릴려고 장난친것 같은데 단서가 없다.
오후에 집에 혼자 있는데 전화가 왔다. 받았는데 아무말 없다가 끊는다.
뭔가 느낌이 왔다. '녀석들이다.'
조금 있으니 또 왔다. "여보세요?...여보세요. 말씀하세요."
또 왔다. "여보세요? ... 용이냐? 아니면 그 놈 애인이냐?"
네번째로 왔다. 또 말이 없다. "난 네가 누군지 알고 있다... 그래~"
"예?" 전혀 생각지 못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었다. 그 대답 한마디와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
누구야? 용이 애인목소리는 아닌것 같았는데... 다른앤가?
만화방총각:
내 예상이 맞았다. 어머닌 내일 선보라고 하셨다. 내일 입을
양복을 건네 주셨다. 깨끗하게 드라이크리닝 되어 있었고. 그속에
와이셔츠또한 새것으로 깨끗해 보인다. "내일 점심때 **호텔앞에서 보자."
먹을것도 좀 챙겨주셨다. 그런데 별로 선보기가 싫다. 아침에 만화방
문열기전에 양복을 입었다. 만화방은 좀 늦게 열었다.
혜지씨는 어제 내 부탁처럼 일찍왔었다. 저번 일이 아직도 생각이 났을까?
어제준 열쇠를 바로 건네준다.
"오늘은 양복을 입으셨네요. 멋있네요." 혜지씨가 내 모습에 대해 좋은 말을 해주었다. 그러나 그 말이 별로 듣기가 좋지 않다. 난 지금 모르는 어떤 여자를 만나러 가는 길이기에...
어머니께 곧 말해야될것 같다.
백수아가씨:
만화방에 가니 이병씨가 양복을 입고 있었다. 단정하고 멋있어
보인다. 처음볼때부터 이병씨는 보통의 만화방주인아저씨들과는 조금 틀린 귀공자느낌의 무언가가 있었다. 밖을 나가는 그의 뒷모습이 당당해 보인다.
후후. 비교된다. 예전에 내 짐을 들어주고 뒤돌아선 녀석의 떨고 있었던
모습이 떠 올랐다.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감싸주고 싶은 모습이었다.
만화방에 손님이 별로 없다. 심심하다. 단골녀석이라도 있으면 라면이라도 끓여 먹는건데.. 전화나 해볼까?
내 지갑 작은 쪽지에 그녀석 집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여보세요?" 앗 녀석같았다. 깜짝놀라 전화를 끊었다. 다시 진정을 하고
한번 더 해보았다. 말씀하면 내가 누군지 알겠냐? 재밌네. 한번더
해보았다. 엥? 용이는 누구야? 겨우 세번에 화를 내네. 또 해보았다.
"너 용이지? 그래이씨. 내 애인없다. 너 잡히면 주거!"
"예?" 나도 모르게 대답이 나오고 말았다. 놀라서 전화를 끊었다. 황당한 녀석의 대답을 듣고 무심결에 말이 나오고 말았다. 앞으로 녀석한테
전화할일이 생기면 예의를 갖추어야겠다. 잘못하면 맞아 죽을것 같다.
그나저나 이녀석이 언제쯤 올라올려나?
자취생:
내일 또 서울로 올라갈려니 마음이 심난하다. 또 추억을 되짚으려
앨범들을 꺼내보았다. 즐거운 모습의 나를 보고 웃었다. 잘나온 사진들을 볼때면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음. 이만하면 미남이군!' 졸업앨범들도
넘겨보았다.
잘나오지 못했다. 웃을걸 그랬는데...
유치원앨범도 넘겨보았다. 그래 이때는 잘나갔었지. 누군지 모르겠지만
항상 손잡고 다녔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어릴때는 그 기억이 별로 떠오르지 않아 유심히 봐두지 않았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그여자아이가 누구였을까?하는 궁금증이 자꾸 생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내기억은 바래져버렸다. 국민학교도 같이 들어갔었다. 그때 나이를 한살 더먹었다고 그애가 손잡고 가자는걸 뿌리치고 도망갔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그러나 기억만 있을뿐 그녀의 모습은 생각이
안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