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밀감 택배 한 상자가 아파트 현관문 앞에 놓여져 있었다. 집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문 앞에 두고 간 모양이었다. 문을 열어 상자를 들여 놓고 주소지를 보니
수신처는 우리집 주소가 맞는데 발송인은 제주 다사모 농장으로 돼 있었다. 누군가
농장에 부탁해서 보낸 모양이라고 생각하고선 누가 보냈을까 궁금해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내용물이 어떤지 확인해 보고자 커트칼로 접착테이프를 갈라보니 박스 안에는
손글씨로 쓴 편지 한장과 함께 조생종 밀감이 한 두개는 아직 꼭지부분에 녹색빛이 채
가시지 않고 일부 남아 있었지만 그런대로 노랗게 잘 익은 것 같았다.
저녁 무렵 시골에 혼자 사는 막내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택배 받으셨느냐고 묻길래
"네가 보냈느냐?"고 했더니, 자기가 보낸 것이 아니라 친구가 보낸 것이라고 했다.
"친구가 뭣 때문에 보내느냐?"고 했더니, 자기 누님한테 밀감을 보내면서 나한테도 고맙다고
같이 보내겠다며 주소를 동생한테 물었던 것이다. 굳이 이유를 밝히자면, 얼마 전 동생과
친구 여덟명이 환갑기념으로 서울과 부산 등지에서 모여 경주로 2박3일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마지막 날에 식사를 내가 한끼 사겠다고 해서 돈을 20만원 보내 주었다. 동생은 학창시절
내가 데리고 있었는데 그때 친구들이 우리집에 놀러와서 식사도 같이 하고 술도 마셨다고 했다.
손편지를 읽어보니 극조생 노지귤이라서 저장성이 짧아 빨리 꺼내 냉장보관하라고 돼 있었다.
그렇지만 갑자기 노란 밀감이 한 박스 생겼으니 금세 부자가 된 기분이라서 오다 가다 하나씩
집어 까먹기도 하고 눈요기도 할겸 한켠에 밀쳐 놓았다. 그랬더니 얼마 안 가 한 두개씩 상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지금 다시 냉장고에 넣을 수도 없고 과일이나 생물은 한번 썩기 시작하면
감당이 불감당이다. 그래서 따로 나가 사는 아들놈 보고 와서 손자들 반쯤 가져다 주라고 했다.
지난 토요일에 와서 가져갔는데도 제법 남았다. 오고 가면서 하나씩 까먹어도 금세 껍질이 물렁
물렁해진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공기중에 있는 부패 바이러스가 껍질부터 침투하여 썩게 만드는 것이라라.
먹음직스런 과일을 상하게 만들어 당장은 먹을 수 없게 만들지만 부패 바이러스야말로 얼마나
유익한 작용을 하는가? 만일 부패 바이러스가 없다면 이 세상은 곧 바로 쓰레기로 뒤덮히고 말것이다.
그리고 여기저기 쌓이는 썩지 않는 동물의 사체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나뭇잎이 썩어 거름이 되고
나무는 영양분을 흡수하여 다시 새싹을 돋운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부모의 덕행은 자녀들
에게 밑거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