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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남 시인은 이름값에 비해 상복이 없다는 평을 듣는다. 그는 “상에 얽매이진 않았지만 예심을 좀처럼 통과하지 못하는 지점에선 내 시가 시대에 뒤떨어졌나, 안 읽히는 시인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며 “흔들림은 없었지만 조금 적적했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 |
그는 인천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나오는 섬 ‘덕적도’ 출신이다. 유년기를 유배된 듯 보내던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에야 뭍(인천)으로 나왔다. 섬 소년의 태생적 외로움은 그에게 시를 쓰게 했다. 서울예대로 진학해서 작고한 최하림 시인, 오규원 시인에게 배웠다.
“최하림 선생님은 속되지 말아야 한다, 시인이란 어디에 소속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하셨어요. 제가 속되지 않은 사람도 아니고, 순결주의자도 아니지만 최소한 스스로와 싸움해야 한다는 마음은 갖고 있어요. 그래서 패거리 짓는 듯한 느낌을 싫어해요. 아웃사이더죠.”
그러나 문학이 문화의 중심에 있었던 90년대에 그는 손꼽히는 스타 시인이었다. 첫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으로 대번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훤칠한 키와 잘생긴 외모 때문에 영화 ‘성철’의 주역으로 캐스팅되기도 했다. 마지막 촬영만 남기고 결국 엎어져 극장에 걸리진 못했지만.
“영화는 불교를 공부하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출연했던 거예요. 고교 때 스님인 급우가 있었는데, 저한테 입산을 권했어요. 그땐 절이 어떤 곳인지 잘 몰랐으니 망설였죠. 방 한 칸 차지하고 밥 먹고 책 읽을 수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입산했을 것 같아요.”
미당의 세계에 빠져든 것도 불교의 영향이 컸다. “어떤 순간 속에서 영원을 들여다보는 이미지랄까요. 윤회, 영원을 산다는 미당의 불교적 세계가 저에게 잘 와 닿았어요.”
‘조로(早老)’한 느낌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런 걸 어떡해? 늙은이 생각을 하는 걸 어떡해? 애써 젊은 척 해요?”라고 되물었다.
“빨리 늙고 싶달 정도로 ‘노경(老境)’을 바라보고 꿈꾸는 면이 있어요. 절대로 안주하고 싶은 건 아닌데, 동양 시론(詩論)이나 화론(畵論)의 영향이 그런 세계를 자꾸 바라보게 하는 것 같아요.”
늙은 척 능청을 떨든 어쩌든, 하여간 그는 타고난 시인이다.
“일상과는 달리 살짝 떠 있는 상태일 때 시가 나와요. 딱 뭐를 하고 싶은 것도 없으면서 안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설렌 상태에서 안 자고 서성서성할 때 시가 나오죠. 무당이 신을 불러오듯, 약간 투명해져야 벽 너머의 어떤 것이 선명하게 보이거든요.”
잡사에 시달릴 땐 시가 나오지 않아 며칠을 들여 ‘시인 모드’로 전환해야 한다. ‘시인 모드’가 되면 잘 될 땐 몇 편이고 한 자리에서 쏟아낸다. “저는 이른바 ‘역작’은 재미없어요. 난산이 산모든 아이에게든 좋을 리가 없잖아요. 자연스럽게 써지는 시가 좋죠.”
수상작 ‘가을 저녁의 말’도 그렇게 나왔다. 지난해 가을 양평 시골에 지어놓은 오두막집에 머물 때였다. 그가 관상용으로 키우던 토종닭들이 잘 시간이 되었는데도 자꾸 집에 들어가지 않고 꾸물거리며 ‘나 자야 돼?’라 묻는 듯했단다. 그렇게 스산한 가을 풍경을 쓰던 그는 자신도 모르게 ‘주소를 적어 접시에 담아 선반에 올려놓고’라는 구절을 적었다.
“나도 모르게 나왔고, 의미도 명확하지 않은데 지우긴 싫었어요. 수상작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들여다보니 주소지를 떼서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반영된 게 아닌가 싶네요. 대지와 밀착되어 있다는 것에 대한 갑갑함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땅과 발 붙이고 사는 것에조차 답답함을 느끼는 그는 여전히 섬에서 사는, 시 안에 스스로를 유배시키는 시인이었다.
“시인으로 23년간 살아왔다는 게 징그럽고 놀라울 뿐이에요. 그러나 시가 아니었으면 뭘 했겠어요? 저에겐 아주 중요한 어떤 것이죠.”
가을 저녁의 말
나뭇잎은 물든다 나뭇잎은 왜 떨어질까?
군불 때며 돌아보니 제 집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꾸물대는 닭들
윽박질린 달이여
달이 떠서 어느 집을 쳐부수는 것을 보았다
주소를 적어 접시에 담아 선반에 올려놓고
불을 때고 등을 지지고
배를 지지고 걸게 혼잣말하며
어둠을 지졌다
장마 때 쌓은 국방색 모래자루들
우두커니 삭고
모래는 두리번대며 흘러나온다
모래여
모래여
게으른 평화여
말벌들 잉잉대던 유리창에 낮은 자고
대신 뭇 별자리들 잉잉대는데
횃대에서 푸드덕이다 떨어지는 닭,
다시 올라갈 수 있을까?
나뭇잎은 물든다
<’창비’ 2009 겨울>
글=이경희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장석남 약력=1965년 인천 덕적도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현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젖은 눈』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서쪽에 뺨을 빛내다』 ▶산문집 『물의 정거장』 『물긷는 소리』 ▶김수영문학상(1992년), 현대문학상(1999년) 수상
미당문학상 심사평
격조 높은 서정시, 미당의 언어 감각에 제일 많이 다가갔다
미당문학상 본심에서 토론하는 심사위원들. 왼쪽부터 시인 김기택·천양희씨, 평론가 유종호·이숭원·남진우씨. [조용철 기자] | |
‘가을 저녁의 말’은 격조 높은 서정시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늦가을 산골에서 밤을 보내는 화자의 스산한 심정을 안정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거기엔 나뭇잎이 물들고 떨어지는 자연 현상에 대한 언급에서 드러나듯 시간의 불가역성에 대한 예민한 의식이 깃들어 있고 시골집에서 군불을 때고 누워 지내는 처지에 대한 묘사에서 나타나듯 일상성에 포박된 자아에 대한 회한 어린 성찰이 숨어 있다. 삶의 궁핍함에 대한 통찰이 언어의 투명성과 적절히 맞물려 있다.
또한 이 작품은 그리 길지 않은 길이에 한국 현대시의 여러 뛰어난 선례에 대한 참조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윽박질린 달이여’에서 박용래를, ‘모래여 모래여 게으른 평화여’에서 김수영을, ‘유리창에 뭇 별자리들 잉잉대는데’에서 정지용을 연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시인은 말을 부리고 다루는데 능숙한 천부적 자질을 타고난 시인 미당의 언어 감각에 제일 많이 다가간 시인이기도 하다. 심지어 조로(早老)를 가장한 어투와 발상, 능청까지 그는 미당의 어떤 부분에 근접해 있다. 이점 그의 시는 이 상의 이름에 진정 부합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심사에서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그의 시가 때로 너무 점잔 빼고 노성한 척하고 있지 않나 하는 점에 대한 경계가 있었지만 이 역시 그의 시에 대한 애정과 기대에 기초한 것이었다. 수상을 축하한다.
◆심사위원=유종호·천양희·이숭원·김기택·남진우(대표집필 남진우)
사진=조용철 기자
첫댓글 달이 떠서 어느 집을 쳐부수는 것을 보았다
--- 파격적인 글 앞에 어떤 느낌을 가져야 하는지 한참을 어수선해 함니다
인문학의 장르 중 가장 험하고 고도감이 높아 사람들이 쉽게 오를 수 없는 분야가 시 라고 생각하지요.
불을 때고 등을 지지고
배를 지지고 걸게 혼잣말하며
어둠을 지졌다
장석남 시인,함민복시인등 40대 시인들의 시가 난해한 면이 많지요.사물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과 특정한 정서를
언어로 가시화 해서 형상화 하니까요.
워쩜~ 이리 글을 맛갈나게 쓰는지....
그림은 말 없는 시이고 시는 말하는 그림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