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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용은의 PGA 챔피언십 우승 소식은 전세계 골프팬들에게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 주류 언론들도 양용은의 메이저 대회 우승 소식을
주요 긴급 뉴스로 다루고 있을 정도다.
사상 최대의 이변’(An all-time upset) 이라는 제목을 달아놓았다.
미국 언론의 이 같은 반응은 우즈가 이전까지 메이저 대회에서
4라운드를 선두로 시작한 14번의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쓸어담으며
역전 불패의 신화를 이어왔기 때문.
잘 모르는 동양 선수가 마지막 라운드에서 2타차 선두에 나선 우즈를
3타차로 꺾고 우승한 것은 한마디로 ‘경이(驚異)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양용은 (37 세)이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 (미국) 를 제치고
PGA 투어 역사상 한국 선수는 물론 동양인 선수가 메이저 대회에서 정상에 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 골프대회 미국프로골프(PGA) 투어를 제패하리라고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양용은은 힘든 생활고를 이기고 골프로 세계 정상에 우뚝 선 입지전지적인 인물이다. 이내 아버지 성화로 건설사에 들어갔지만 사고로 한쪽 무릎을 다친 뒤 2개월 병원신세를 지고 군에 입대했다. 골프에 대한 향수가 가시지 않아 1991년 제대 뒤 골프 연습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인연을 맺었고 곁눈질로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낮에는 골프장 아르바이트, 밤에는 골프를 연습했다. 조명시설도 안갖춰진 연습장에다 라이트를 끌어다 놓고 밤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골프를 연마했다. 이듬해 상금랭킹 9위에 올라 신인왕도 차지했다. 하지만 상금은 생활비에도 못 미치는 고작 1200만원에 그쳤다. 허탈감도 찾아왔지만 골프에 대한 미련으로 연습에 매달렸다. 생활고를 해결할 레슨 코치도 마다하고 연습과 대회에 참가하는 외길을 걸었다.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일본 무대에 도전장을 던졌다. 일본에서 2004년 2승 등 통산 4승을 올린 그는 다시 세계 무대 도전에 나섰다. 2006년 11월에는 유럽 프로 골프투어 HSBC 챔피언십에서 타이거 우즈를 꺾고 우승해 이름 석자를 알렸다. 상금은 5 만3천달러로 웬만한 월급쟁이수준 밖에 되지 않았다. 성적 부진으로 2008년 예선으로 밀려난 끝에 2009년에야 다시 출전자격을 획득했다. 절치부심한 양용은은 지난 3월 열린 PGA 투어 혼다클래식을 제패하며 28개월 만에 다시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재기했다. 이후 뷰익 오픈에서 5위, RBC 캐나다 오픈에서 8위를 차지하며 상승 곡선을 그었고, 이번에는 미국 4 대 메이저 대회에서 또 다시 우즈를 제치고 세계 정상에 올랐다.
아세아 인 최초로 미국 4 대 메이저 큰 대회에서 우승한 양 용은 선수가 골프 황제로 부르는 타이거 우즈를 누르고 우승 직후 환호. 미국 관중들, 놀라움과 함께 기립 박수
태극기 를 번쩍 들어 올리다
“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을 지켜보았지만 양용은처럼 정신력이 강한 선수를 본 적이 없다. 양용은은 더블보기를 하든, 트리플보기를 하든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양 용은 선수는 큰 대회일수록 침착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1972년 제주에서 태어난 양용은은 고교 졸업 후 생활비를 벌고자 골프 연습장 공 줍는 아르바이트로 골프와처음 인연을 맺었다.
아버지는 또 다시 말렸지만 양용은은 하우스용 파이프를 골프채 삼아 몰래 연습을 했다.
결실은 1996년 한국 프로 골프 프로 테스트에 합격으로 나타났다.
양용은은 2002년 SBS 최강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국내무대에 이름을 알린 뒤
2007년 PGA 투어 9개 대회에 출전했지만 공동 30위가 최고 성적이었고,
2007년 ‘2전3기’ 끝에 PGA 퀄리파잉 스쿨을 통과한 그는
포효하는 양 용은, 침통한 황제 우즈
양 용은 의 캐디 AJ 몬테시노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