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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보물
나는 사건이 있었던 그 지점에 멈춰 섰다.
시동을 끄고 당시의 일을 되새겨 봤다.
거리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나는 다시 시동을 켰다.
오토바이는 낡았고 엔진 소리는 무척 요란했다.
이정도 소리면 귀가 제대로 박혀있다면 분명 들을 수 있는 소리다.
그러나 나를 찾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나는 사건의 중요한 위치에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들과 마주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 나는 확신했다.
정말 스릴 있는 게임에 나는 초대 받지 못했다는 기분이 든다. 조금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사내는 왜 쫒기고 있었을까.
그리고 2미터의 사내가 왜 거기에 있었으며 공주시장과는 무슨 연관을 있었을까,
혹은 2미터의 사내는 공주시장 측근에서 무슨 음모라도 꾸미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다시 그 사내에 대해 생각했다.
그 사내는 목욕탕 앞에서 주춤했고 목욕탕 옆 골목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도 사내가 갔던 골목으로 들어간다.
그 길이는 불과 10여 미터였다.
밖에서 봤을 때도 분명 이곳은 막다른 골목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3미터 정도의 벽을 뛰어넘을 생각을 한 것인가.
벽을 뛰어 넘으려다 실패하고 다시 도주 하려 뛰어나오다가 넘어진 것인가.
나는 그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사내가 골목으로 뛰어 들어가고 욕설이 들린 후 그가 다시 나오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벽을 뛰어넘지 못하리라는 것은 단번에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걸렸다. 나는 벽을 살핀다. 사람의 발자국 흔적은 조금도 없었다.
그렇다면 사내는 여기서 다른 무엇을 한 것이 틀림없다.
무엇인가 숨길 수 있는 장소가 있을 까, 나는 살폈다.
틈이라고는 바닥의 창살도 된 하수구 구멍과 건물과 벽 사이 사람이 겨우 들어갈 만큼의 공간뿐이었다.
나는 라이터를 켜고 그곳을 살폈지만 쓰레기와 녹다 얼어붙은 눈과 낙엽 따위 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하는 지 우스워 보였다. 평생 해본 기억도 없는 추리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감춰진 것도 아무것도 없는데 나는 무엇인가 찾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계속 하고 싶다. 이렇게 혼자 노는 것도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다시 사내를 떠올렸다.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면 분명 작은 물건이었을 것이다.
사내가 골목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에게 커다란 짐은 없으니 말이다.
작은 물건이라면 어디에 감추겠는가.
긴박한 상황이었고 사내는 무엇인가를 감추려 하다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한 것이다.
그때 어깨들의 욕설을 들었고 다급했던 그는, 그것이 나라면.
일단은 어깨의 손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 할 것 이다.
이미 살펴본 하수구나 건물과 벽 사이는 이미 신뢰를 일은 곳이어서 그곳에 감출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무엇인가를 감추려 했다면 그곳은 단 한군데 밖에 없었다.
나는 3미터 쯤 되는 벽과 정면으로 대치했다.
과연 이 회색 장벽 뒤에 무엇인가 있을까.
사내는 건물 뒤로 무언가를 던지고 그것이 발각되지 않도록 뛰어 나왔을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이 벽 뒤는 일반 가정집이다.
대문은 닫혀있을 것이고 이 시간에 초인종을 누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낮이라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벽을 넘어야 하는가. 있지도 않은 환상 때문에.
해보자. 할 수 있어.
손해 볼 것은 없지 않은 가.
모두들 잠든 상태이고 설사 걸려 경찰서에 간다고 해도
싫은 소리 몇 번 듣고 출가조치 받을 것이 뻔하지 않은가.
나는 신문 하나를 담장 너머로 던졌다.
신문을 가지러 담을 넘었다는 핑계거리를 만들기 위해서다.
나는 오토바이를 최대한 벽에 붙이고 오토바이 위로 올라갔다.
손을 뻗어 보았고 담장까지의 거리는 40여 센티 정도 되 보였다.
이 상태에서 점프를 한다면 충분히 담장을 잡고 오를 수 있었다.
나는 뛰어올랐고 반동을 이기지 못한 오토바이는 그대로 바닥에 넘어져 굉음이 울렸다.
벽의 윗부분을 손으로 잡았고 부식된 콘크리트의 모가 손바닥을, 옷과 겨드랑이, 무릎을 할퀴었다.
나는 벽을 오르는 동안 생각했다.
중요한 물건이라면 세게는 던지지 못했을 것이다. 간신히 벽을 넘길 정도의 힘으로 던졌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왠지 모를 확신에 잠겨 있었다. 분명 무엇인가가 있다.
벽에 오른 내 앞에는 이층의 주택에 불이 모두 꺼진 채 있었다.
담 바로 아래로는 장독대가 있고 벽과 장독대 사이에는 녹지 않은 눈이 그대로 쌓여있다.
언뜻 신문이 장독대 가장자리에 있는 것이 보였고,
그 전에 가로등 빛에 비춰진 눈 위로 검은 물체가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뛰어 내렸다.
담의 높이는 생각보다 높았다. 뛰어내리는 동안 나는 현기증을 느껴야 할 정도였다.
무릎과 어깨에 어느 정도의 충격이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집어 들어 주머니에 넣는다.
그것은 손바닥만 한 검은색 복주머니였고 그 안에는 구슬만한 크기의 딱딱한 물체를 느낄 수 있다.
나도 모르게 온몸에 희열이 느껴진다. 내가 마치 괴도 루팽이라도 된 듯 말이다.
그 안의 내용물이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내 경험과 비록 내가 만들어 낸 것이긴 하지만
긴장, 위험, 과감성에 대한 하나의 성과물이 있었다는 것에 무척 만족하고 있다.
그리고 내 주머니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사내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그 무엇이지 않은가.
수많은 어깨들이 찾으려 했지만 찾지 못한 그것을, 내가 그것을 찾았다.
그 순간 나는 특별했다.
대 보물을 발견한 탐험가의 귀환처럼 나 자신이 대단한 존재라 여겨졌다.
나는 신문을 주어들고 3미터의 콘크리트 벽을 본다.
넘을 수 없을 만큼 높다.
나는 힘겹게 벽을 넘어왔지만 보물을 찾은 지금 다시 벽을 넘어 가야 할 만큼 내가 하찮아 보이지 않다.
나는 건물 옆을 지나 앞마당으로 나아갔다.
집이 내 앞을 가로 막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무례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집 앞의 담장은 높지 않았지만 나는 잠긴 대문을 열고 내 집을 나서는 것 마냥 나온다.
보물도 찾고 모든 것이 무사히 끝났다. 나는 기쁨에 차 괴성을 질러댔다.
“밤이여 영원해라. 영원해라.”
나는 기뻤다. 내가마치 하늘의 별이 된 것처럼, 내가 우주인 것처럼.
나는 자취방에 돌아왔다. 흥분되는 맘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나는 무령왕릉 주차장에서 검은 복주머니 안에 있는 것의 정체를 똑바로 확인했다.
분명히 엄진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보석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보석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다.
“가짜일까.”
보석은 손의 표피를 누를 만큼의 무게가 있다.
타원형에 수많은 삼각과 육각의 조합으로 이루어졌고 앞면과 뒷면은 똑같은 형태였다.
보석은 노란 빛으로 은은하면서도 눈부시게 빛났고 왠지 모르게 따뜻한 기분을 들게 한다.
뛰는 심장이 멈출 줄 모른다.
그런데 노란색 보석이라는 것이 맘에 걸린다.
사파이어나, 루비, 다이아몬드 등 노란색 보석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무령왕릉 주차장에서 봤을 때는
하얀 가로등 빛에 비추어 투명한 빛깔로 빛나 다이아몬드처럼 생각했는데 노란색이라.
“역시 가짜인가.”
“가짜일 거야. 진짜라면 내게 너무 과분한 행운이잖아. 불과 18살에 로또 맞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놓였고 가쁜 심장도 평정심을 찾았다.
나는 보석을 공깃돌처럼 던지며 담장을 넘어 보석을 발견하고 기뻐하던 자신을 되새기며 뿌듯해 한다.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것이다.
돌아 오늘 길 이런 생각을 했다.
이것이 진짜 다이아몬드라면 유리를 잘라보면 될 거야.
영화처럼 동그랗게 유리를 자르고 손으로 툭 치면 동그란 유리만이 떨어지고
유리창은 도넛 구멍처럼 뻥 뚫려 있겠지. 그렇게 확인하면 될 거야.
그러나 진짜일 리가 없다.
이정도 크기의 다이아몬드라면 일억은 넘을 건데 그것이 내 손에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노란색이고,
이것이 그 사내의 것이라면 그 사내도 속은 거나 착각한 것이 틀림없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나는 유리창에 동그란 원을 힘주어 그리고 있다.
유리가 베이는 건지 보석이 마모되는 건지 칠판을 손톱으로 그으는 것처럼 기분 나쁜 진동이 전해진다.
유리에 동그란 하얀 선이 생겼다.
유리와 같은 물체가 서로 힘주어 긋게 되면 접촉된 부분은 잘게 마모 되어 하얀 선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는 망치질을 하듯 주먹 아랫부분으로 원 중앙을 치며 중얼거렸다.
“오늘 일 정말 나쁘지 않았어.”
-쨍그랑.―
내 심장은 완전 깨져버렸다.
유리의 둥근 원으로 얼음처럼 차가운 바람이 폭풍이 되어 들이닥치고 있다.
유리는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박살났고 보석은 내 손에서 스르르 미끄러져 떨어졌다.
나는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내 눈의 중앙에 있는 물체에 끊임없이 의구심을 쏟아낸다.
바로 앞에는 그저 평범해 보이는 노란 빛 물체가 있다.
그저 작고 평범해 보이는 물체인데,
모든 세상 사람들은 이 물체를 원하고, 시기하고, 무관심한 척하며 사랑한다.
그들은 원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이 물체를 손에 한 번도 올려놓지 못한 채 무덤으로 들어간다.
수억 명이, 수십억명이, 그 이상이.
그렇다면 이 물체는 내 앞에 없어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
백만년 전 멸종한 공룡의 새끼가 내 앞에 있어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지 않은가.
그런데 말이다. 그 물체가 내가 손만 뻗으면 닿을 위치에 있다.
그 물체와 나 사이를 방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한다면 공기정도가 전부이리라.
나는 떨리는 손을 뻗어 보석을 손안에 살며시 넣었다.
보석은 차갑지만 내 온몸은 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나는 보석을 쥔 채 이불을 끓어 앉고 방안 구석구석을 굴러다닌다.
옆으로 구르고, 앞으로 구르고, 뒤로 구르다 보석을 다시 확인하고
구르고 또 구르고 또 확인한다.
기적은 존재 하지 않는다던 손재준 선생님을 나는 비웃는다.
보아라, 이것이 기적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는 대부분의 인류가 맛보지 못한 기적이란 환상적인 맛을 마음껏 먹고 있노라.
나는 손을 펼쳐 다시 보석을 보았다. 보고 또 보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린왕자는 눈에 보이는 것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지만, 보아라.
눈에 보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에 지배되기 마련이다.
잠에서 깨었을 때 나는 의외로 침착했다.
잠에서 깨었다 하지만 나는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시 선잠에 들긴 했지만 나는 내 의식을 놓은 적이 없다.
피곤할 만도 한데 내 몸은 마르지 않는 에너지로 충만하다.
나는 밤 새 곰곰이 생각했고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은 나는 부자이긴 하지만
내가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었다는 것을 남들이 눈치 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도 2미터의 사내를 포함한 누군가는 보석을 찾아 헤매고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보석을 숨겼던 사내를 고문해서 보석이 어디에 있는 지 알아내고
그것이 사라진 것을 안다면 보물을 가져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을 올가미로 조여들 테니 말이다.
그러기에 나는 지금의 삶의 패턴을 당분간 그대로 가지고 가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들은 나를 포함한 보물과 연관된 사람을 관찰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고
뭔가 이전과 다른 행동을 보인다면
물고기를 낚아채듯 순식간에 인적 드문 어느 산의 창고에 처넣고 온갖 고문을 할 테니 말이다.
나는 전에 했듯이 신문배달을 하고 낮에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으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낮 고등학생의 신문배달부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보물을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완력으로 내 몸 수색을 할 수 있는 것이고
내가 집을 비운 사이 집안을 뒤져 보물을 찾아 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보물을 숨긴다는 것은 상당히 불안한 일이었다.
꿈처럼 내게 보물이 손에 들어왔듯이
보물을 숨기면 꿈처럼 내 손에서 사라져 누군가에게 들어갈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냉정했다.
내가 길을 걷는다 치자. 그 길은 흙길이고 나는 언제나 그 길을 걸었다.
그런데 나는 그 딱딱한 길에서 부드러운 흙이 있는 부분을 발로 밟았다.
그래서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땅을 파볼 확률은 제로였다.
내가 그렇다면 공주의 십만 인구가 똑같이 그곳을 발로 밟았다 해도 확률은 제로이다.
지금 내 손에 있는 보물이 허상이지 않은 이상 보물은 언제고 거기 묻혀 있지 사라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때가 되면 땅을 파고 보물을 찾아 가면 그만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보물을 들여다보았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천연의 햇빛에 빛나는 보물은
가히 나를 보물 속으로 가둬 놀만큼 매혹적이었고 신비로웠다.
나는 그날 밤 보물을 숨겼다.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 나는 학교에 갔고
학교 현관 바로 옆에 있는 교목인 향나무 아래 땅을 20여 센티 파고 보물이 든 상자를 묻어 놓았다.
땅까지 닿는 향나무 가지에 땅을 파헤쳐 졌다는 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물며 향나무 아래를 보기위해 따가운 향나무를 헤치고 머리를 들이밀 사람은
학교 개교 이래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철모르는 아이들의 숨바꼭질이 아니고서는 말이다.
신문배달을 나간 나는 아무런 일 없다는 듯 태연하게 신문을 돌렸다. 역시나 아무런 일이 없다.
신문을 돌리던 도중 ‘술과 비’에 불이 켜져 있다.
불이 켜진지는 일주일여 만에 보는 것 이다.
나는 창틈으로 그 여자를 본다.
여전히 짧은 치마에 가슴이 들어날 정도의 페인 옷을 입고 있고 얼굴은 술에 취해 붉게 달아올라 있다.
그런데 나의 하복부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을 발견한다.
나는 그 여자에게 시선을 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대신 가계를 둘러보았다.
분식집에서나 볼 수 있는 허름한 테이블과 의자, 벽에 붙어 있는 낡은 소파와
레이싱 걸 사진이 들어있는 달력, 시들어가는 조잡한 화분, 돌아가지 않는 시계, 청결해 보이지 않는 정수기,
허름한 가계에 싸 보이는 여자.
“엿 같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시선을 돌려 그곳에서 나와 버린다.
그리고 한목음의 침을 뱉어버린다.
나에게는 좀 더 고상하고 품위 있는 것이어야만 한다.
신문배달을 마치고 신문사 사장님한테 가불을 했다.
30만원을 가불 했고 수억 원을 호가하는 보물을 가진 나에게 30만원은 그리 큰돈은 되지 못했다.
그냥 당연한 것이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