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 24일 북경 한국
총영사관에 진입한 탈북자 26명 서울 도착.
▲한국 총영사관에 진입했던 21명과 대사관에 진입했던 2명, 지난 13일 중국 경찰에 체포된 원모(53)씨 등 24명(남자 13명, 여자 11명)은 태국 방콕을 거쳐 대한항공 KE654편으로 오전 8시45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이들은 지난 5월 23일 최모(40)씨가 맨 먼저 한국 총영사관에 진입한 이후 한 달
여 만에 중국 정부의 제3국 추방 형식으로 한국 땅을 밟게 됐다.
이들은 다소 긴장한 표정이었으나 곧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한국에 입국한 데 대한 기쁨을 표시했다.
➡️2015년 자수성가 택시회사 대표 김광자씨, 50억원 평생 모아 ‘언지장학회’ 설립
➡️2015년 도산(島山) 안창호 선생의 맏딸 안수산 여사 별세
👉🏿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선생의 맏딸(2녀3남)인 안수산(100·미국명 수전 안 커디) 여사는 1915년 미국 LA에서 태어나 1942~1946년 미 해군에서 사격 교관과 정보장교로 근무했다. 미 역사상 최초 동양인 여성 해군 장교였다. 종전 이후 예비역 대위로 전역한 뒤에도 1951년 미 합참정보국에서 암호 시스템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전문가 300여 명을 교육했다. 1973년 도산공원 건립 소식에 처음 방한(訪韓)했으며, 1983년 도산의 유품과 자료 등을 정리해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1994년 타계한 아일랜드계 남편 프랜시스 커디와의 사이에 아들 필립과 크리스틴 등 1남1녀를 뒀다.
➡️2009년 나경우씨, 한국인 첫 'PGA 마스터'
➡️2009년 원로 성악가 오현명씨 별세
➡️2003년 배리 본즈 500홈런-500도루 달성
➡️2001년 해군, 서해 북방한계선(NLL)
을 침범한 북한 어선에 경고사격
➡️1998년 클린턴 미 대통령, 강택민 중국 국가주석과 북경에서 정상회담
➡️1989년 ‘엔카의 여왕’ 미소라 히바리 사망
👉🏿 한국계로 알려진 일본 가요계의 여왕 미소라 히바리는 생선장수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노래에 남다른 소질을 보여 9살 때 가진 첫 무대에서 천재소녀란 명성을 얻었다. 뛰어난 미모, 가창력에 매끄러운 스테이지 매너를 지닌 미소라는 1950년 ‘슬픈 휘파람’의 대히트로 예능계 여왕의 자리에 군림하며 일본 국민들로부터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 그녀가 남긴 노래는 1천4백여곡에 이르며 음반판매량만도 4천만장에 달했다. 그녀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일본의 신문들은 1면 또는 사회면 머리기사로 취급,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고 일본대중문화에 기여한 그녀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1989년 장쩌민, 중국 당총서기에 선출
👉🏿 1989년 6월 24일 중국공산당 제13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에서 덩샤오핑(등소평)에 의해 당중앙위원회 총서기로 발탁된 장쩌민(강택민)은 1955년 모스크바 유학 후 기술경제 관료로 성장하였다. 1985년 7월 상하이시장이 되어 상하이를 중국의 금융·산업중심지로 발전시켰다. 1990년 4월 국가군사위원회주석을 물려받은 데 이어 1993년 3월 국가주석까지 겸함으로써 당과 행정, 군을 총괄하게 되었다. 전형적인 기술관료로서의 장쩌민은 마오쩌둥(모택동)이나 덩샤오핑과 같은 카리스마는 갖지 못했으나, 대신 남다른 성실성과 정치력으로 인구 13억의 대국을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주의 중국 최초의 근대적인 정치지도자로서 평가받고 있다.
➡️1984년 프랑스 파리서 사학자유 요구 데모
➡️1983년 서방19개국 정치지도자, 런던서 사회주의인터내셔날에 대항하기 위한 국제민주연합(IDU) 발족
➡️1983년 `외교관 등 국제적 보호인물에 대한 범죄 및 처벌에 관한 협약` 국내 발효
➡️1981년 세계은행(IBRD), 중국에 첫 차관 제공 결정
➡️1980년 김종필, 이후락씨 모든 공직 사퇴
➡️1979년 카터 미국 대통령 방일
➡️1978년 북한, 유아의 가정양육 금지
➡️1976년 구마고속도로 기공
➡️1976년 미국의 식물 사진 작가 커닝엄 사망
👉🏿 미국을 대표하는 여류사진가, 이모젠 커닝엄(1883-1976)은 도로시아 랭, 마가렛 버크 화이트와 더불어 세계 3대 여류 사진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뛰어난 재능과 감성을 지닌 예술가로서 그녀는 7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사진 매체를 통해 구현함으로써 대중과 소통해왔다. 그녀는 1930년대 동시대를 대표하는 사진작가로 자리매김하며 1932년, 다른 사진가들과 함께 ‘f/64’ 그룹을 결성하게 된다. 이들은 카메라의 기계적인 재현능력과 사실적인 특성을 수용해 극사실적인 형태의 이미지를 추구하는 형식주의 미학을 통해 당시 미국 사진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사진 경향을 보여줬다.
➡️1976년 베트남 첫 남북통일국회 개막
➡️1976년 로물로 필리핀 외무장관, 아세안독트린 제창
➡️1973년 미국-소련 가상병기 사용금지 합의
➡️1965년 월남, 프랑스와 단교
➡️1960년 미국,일본 안보조약 발효
➡️1960년 국회, 군정법령 55호, 88호 폐기. 신문, 정당등록법안 통과
➡️1950년 제4회 월드컵 브라질에서 개막
➡️1948년 소련, 서베를린 육로 봉쇄
👉🏿 소련이 1948년 6월 24일 서독과 베를린을 잇는 육로를 봉쇄해 미국과 영국, 프랑스가 공동 관리하는 서베를린이 고립됐다. 2차대전후 독일은 미국,영국,프랑스,소련 4개국에 의해 점령되었고 특히 소련점령지역인 베를린은 공동관리하에 있었다. 이러한 동서 양진영의 공동보조도 소련과 다른 3국과의 입장차이로 균열이 시작돼 1947년 런던에서 개최된 4개국 외무장관 회의가 결렬되기도 했다. 소련은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 항공로를 제외한 모든 교통로를 봉쇄했다. 더욱이 25일에는 베를린의 3국 점령지역에 대한 식량수송을 금지했다. 6월 30일 미 국무장관 마샬은 ‘식료품과 물자 보급을 위한 공수를 단행한다’고 발표, 공수작전을 시작했다.
➡️1947년 반탁투쟁위 결성
➡️1947년 미국 아이다호주, 케네스 아놀드가 비행중 UFO를 목격했다고 보고, UFO 최초 발견
👉🏿 <1> 공식적으로 UFO가 최초로 보고된 것은 1947년 6월 24일 미국 최초의 민간 조종사 케네스 아놀드가 워싱턴주 레이니어산 부근에서 목격한 일련의 비행물체였다. 그는 다음날 가진 기자회견에서 목격한 비행체가 마치 수면 위로 튀는 듯이 나는 커피잔 받침 같았다고 표현했다. 이후 비행접시라는 신조어가 등장했고, 세계 각지에서 그와 비슷한 UFO의 목격담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2> UFO에 관해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사건은 미국의 로스웰 사건이다. 케네스 아놀드가 최초의 비행접시를 목격하기 열흘 전인 1947년 6월 14일 뉴멕시코주 로스웰시 외곽의 한 목장에서 농부가 이상한 잔해를 발견했다. 그의 신고로 출동한 보안관 역시 목장 주변의 목초지에서 금속 파편과 은박지 등의 물체를 발견했다. 보안관은 즉시 미 공군에 연락했고, 7월 8일 언론은 로스웰 지역 목장에서 비행접시를 포획했다는 뉴스를 내보냈다. 그러나 몇 시간 뒤 미 공군은 갑자기 입장을 바꾸어 로스웰 지역에 추락한 것은 비행접시가 아니라 기상관측용 기구였다고 발표했다. 어쨌든 이 사건은 공군의 신속한 대응으로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지만, 아직까지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1940년 프랑스-이탈리아 휴전협정 조인
➡️ 1933년 아우토반 건설 공사(公社) 설립
👉🏿히틀러는 정권을 장악하는 즉시 아우토반 건설에 박차를 가한다. 명칭은 ‘라이히스 아우토반(독일제국 자동차도로)’. 아우토반 건설을 담당할 공사(公社)를 설립(1933년 6월 24일)하고 3개월 뒤에는 프랑크푸르트·다름슈타트 간의 제1기 공사를 시작했다. 17년 동안 1만7000km의 도로를 까는 것이 목표였지만 2차대전 발발로 히틀러는 생전에 4000km 만 볼 수 있었다. 히틀러가 아우토반에 매달린 이유는 1차대전 때 마른 전투의 패인이 수송력 부족에 있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650만의 실업자를 구제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다. 이를테면 공황 타개를 위한 독일판 뉴딜정책이었던 셈이다.
➡️1928년 프랑스 프랑크화 5분의1로 평가절하
➡️1915년 미국, 연합국측에 대차관 제공
➡️1910년 일제, 한국 경찰권 완전박탈
➡️1905년 국고증권조례 공포
➡️1903년 국문학자 양주동 출생
➡️1901년 한국최초의 여류비행사 박경원 출생
👉🏿 박경원(朴敬元)이 조종사로서 일본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27년 1월, 3등 조종사 시험에 합격하면서였다. 이 당시의 도쿄 아사히 신문은 ‘조선출신 여성비행사 1호 탄생’이란 기사를 실어 그의 존재를 알렸다. 고국의 하늘을 날고 싶었던 박경원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1933년. 서울을 경유해 중국 창춘까지 ‘일·만(日·滿)친선, 황군 위안’을 위한 장거리 비행이 허락된 것이다. 1933년 8월 7일 오전, 박경원이 장장 2000km의 비행을 위해 청연호(靑燕號)를 몰고 고국을 향해 하네다 공항을 이륙했다. 그러나 50분 만에 그의 애기(愛機)는 하코네 중턱에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청연호의 동체는 두동강났고 박경원은 핸들을 잡은 채 숨져 있었다.
▶ 한국최초의 여류비행사는 독립운동가 권기옥으로 1925년 2월 28일에 중국 운남항공학교를 졸업했다. 박경원보다 약 2년 정도 앞선다.
➡️ 1901년 피카소 19세로 파리에서 첫 개인전
👉🏿20세기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인 피카소가 1901년 6월 24일 19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파리에서의 데뷔는 대성공이었다. 청년시절을 모국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보낸 피카소는 그 즈음 캬바레나 선술집을 강렬한 색채와 역동감 넘치는 터치로 그려냈다. 그러던 어느날 절친한 친구 카사게마스의 자살 소식으로 피카소는 큰 충격에 빠진다. 그는 이 때부터 온통 푸른색으로만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1901년부터 1904년까지 계속된 ‘청색시대’의 시작이었다. 그는 짙푸른 청색을 통해 로맨틱한 파리생활 이면의 잔인한 고통, 정신이상이 될 것 같은 현실이 준 밑바닥 삶의 근원적 외로움을 나타냈다.
➡️ 1434년 장영실(蔣英實)·김빈 등, 자격루(自擊漏) 제작
👉🏿자격루는 1434년(세종 16년) 해시계인 앙부일구보다 3개월 빨리 내 놓은 시계로, 흐린 날이나 밤에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해시계와는 달리 하루 종일 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 장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자격궁루, 수루, 자격 등의 명칭으로 언급된다. 물시계는 물의 증감을 통해 일정량이 모이면, 쇠구슬을 굴려 소리를 내게 하는 장치로, 1433년(조선 세종 15년) 장영실 등에 의해 정해진 시간에 종과 북, 징이 저절로 울리도록 한 물시계가 처음 제작되었다. 장영실은 이 공으로 관노의 신분에서 호군으로 격상되었다. 경회루 남쪽에 보루각이라는 세 칸의 집을 만들고, 설치를 하여 사용하였다.
https://youtu.be/LsMpQ_Cc25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