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아직 가난을 모른다.
물론 지금 신혼 때만큼 가난하지만,
그래도 아직 가난을 안다고 말할 만하지 않다.
그래도 매일 가난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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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껏 가난을 본 적이 없다.
물론 스쳐지나가듯 가난을 본 적이 있긴 하지만,
잠시 가난한 사람의 손을 잡거나,
잠시 가난한 집에 머물다 떠날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매일 가난한 삶에 참여한다.
왜냐하면, 내가
매일 요양보호사로 섬기는 분이
차상위층에 해당되는 어르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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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반지하보다 더 깊은 3/4 지하에도
세입자의 거주지가 있다.
참 어둡고, 환기는 거의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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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척 덥다.
조금 청소를 하고 나면,
내 몸은 온통 땀으로 젖는다.
속옷 뿐만 아니라, 겉옷까지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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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결한 공간을 위해 청소하고자 하니
청소도구조차 제대로 없다.
매우 돈을 아끼신다.
내 생각에는, 쉽게(?) 필요한 도구는
살 만할 것 같은데, 매우 아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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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의 행동 하나에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가난>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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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이미 버렸을 빗자루인데
잘 쓸리지 않는 빗자루로 제대로 쓸려니,
두 번, 세 번... 여러 번 빗질을 해야 한다.
땀이 나고,
더욱이 마스크까지 쓰고 있으니,
얼굴과 몸은 금방 흠뻑 땀에 젖는다.
'이러한 어려움이 가난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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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어르신의 몸은 잘 활동되지 않는다.
목도 많이 굳어 있고,
팔도 제대로 들지 못하신다.
가난한 삶을 겪으시면서,
어르신의 몸이 이처럼 굳어진 것 같다.
매일 어르신의 몸을 주물러 드린다.
목도 천천히 도리도리 해드리고,
팔도 내 손으로 회전도 시켜 드린다.
어르신의 몸을 만지면, 가난을 만져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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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르신이 아파하신디.
그래도 나는 좀더 천천히, 좀더 부드럽게 할 뿐,
어르신에게 매일 매일 할거라고
단호히 말씀드렸다.
오늘은 어제보다 좀더 몸이 부드러워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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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산책과 운동 후에,
인지훈련을 위한 프로그램을 할 때였다.
내 마음이 먹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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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프로그램이었다.
<나에 대한 정보를 아래 빈칸에 적어보세요>
*좋아하는 사람(친구)은?
*좋아하는 음식은?
*기억에 남는 여행지는?
*나만의 좋은 습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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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들을 묻고,
답변을 본 후에, 이야기를 이어나갈 참이었다.
그런데 어르신께서 '좋아하는 사람'이란 물음에
尹祥 源 이라고 적으신다.
尹祥 源! 며칠 전에 한자로 내 이름을 알려드렸는데,
나의 이름을 적으셨다. 어르신이 너무 고마웠다.
너무나 감사해서, 어르신을 안아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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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는 지금 신혼 때 만큼이나 가난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 신혼 때 만큼이나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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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배워간다.
가난한 사람을 보고,
가난한 삶에 잠시이지만, 매일 참여하면서,
그 속에서 가난을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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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배워서
가난한 것이 아니라, 가난할 줄 알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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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은 대한민국의 국적을 취득한 중국/조선족 출신이셔서, 한자에 능하시다. 본래 경남 바닷가가 고향이신데, 일제시대 때, 5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함께 만주로 가셨다. 우리 나라 근대역사의 고통과 시련을 몸으로 겪어내시는 삶을 사셨다)
첫댓글 가슴이 먹먹하다..
인생을 통해 가난을 배우고,
그 가난한 인생을 통해 또 다른 인생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