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던 곳, 비가 많이와서 흙탕물이 되었네요. 건너는 요르단입니다.>
"유다인들이 다시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요르단 건너편, 요한이 전에 세례를 주던 곳으로 물러 가시어 그곳에 머무르셨다."(요한 10, 39 - 40)
예수님께 돌을 던지려는 유다인들,
돌을 던진다는 것은 하느님께 죄를 지은 죄인에게 하는 행동인데, 간음하다 잡힌 이나 하느님을 모독한 죄를 지은 자에게 행하는
벌인데 예수님께 그러한을 행하는 그들은 예수님의 신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의 사고를 벗어난 것에 대해서는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하나의 모습이 아닌가?한다.
"그들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며 어둠 속을 걷고 있으니 세상의 기초들이 모두 흔들린다.
"내가 이르건데 너희는 신이며 모두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다.""(시편 82, 5 - 6)
즉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는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시어 이 세상에 보내신 내가 '나느 하느님의 아들이다.'하였다 해서,
'당신은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소.'하고 말할 수 있느냐?"(요한 10, 35 - 36)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또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삶을 통해 이 세상에
하느님의 모습을, 하느님의 뜻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사도 바오로는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분께서는 늘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에 우리를 데리고 다니시면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내가 우리를 통하여 곳곳에 퍼지게 하십니다."(2코린 2, 14)라 하시며
세상에서 우리들의 삶의 소중함을 알려주신다.
또한 우리는 매일의 성찬례를 통해 "물과 술이 하나되듯이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참여케 하소서"라는
기도를 통해 그분과 하나됨, 그분의 삶을 나를 통해 드러내는 모습을 지니기를 바라고,
그리됨을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나 우리들의 삶에 소중함을 잊고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이제 사순을 지내고 부활을 준비하는 우리들은 그 부활이 세례를 통해 세상에서 죽음을 간직하고 얻는
참 영원한 생명이고, 우리들에게 주어진 은총임을 깨닫고 예수님께서 가신 세례의 장소처럼
우리들의 세례를 기억하고 새로게 얻은 삶이 되는 장소가 되도록 나의 세례를 기억하고,
그 은총으로 부활에 참여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예수님게서는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밖혀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나'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당신의 나라로 들어올리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밖히심에 감사하며
구원의 삶, 부활의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여러 회원님들 잘 준비하시어 기쁨의 부활을 간직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첫댓글 '기쁨의 부활을 간직할 수 있도록 기도드립니다 ' "아멘" 감사합니다. 제가 이스라엘 갔을 때에는 요르단강 물줄기만 보고와서 실망 했었던 기억이나는데요 ㅋ^^
♬요르단강 저편에는 영원 생명 있네~~
주님의 사랑이 전해옵니다.
세례터....
하느님 자녀로 태어 났습니다.
영원한 생명...하느님 말씀에 잘 맞쳐서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어디에서든 우릴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