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수(傳奇叟)
김광한
내가 어렸을 때 시골 외갓집 사랑방에 가면 엽전(葉錢) 소설이란 울긋불긋한 표지의 얇은 갱지로된 책을 읽어주는 마을의 노인이 있었다. 주로 심청전이나 유충열전(劉忠烈傳), 또는 삼국지에 나오는 적벽전(赤壁戰)과 같은 이야기를 언문(諺文)으로 적은 책인데 이 책을 구성지게 읽어주면서 때로는 스스로 감동을 하기도 하고 모여있는 사람들을 웃기기도 한 사람, 이를 일컬어서 전기수(傳奇叟)라고 했다. 글자를 풀이한다면 기묘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늙은이란 말로 요약이 되는데 조선시대 시골의 장터에 가면 책을 읽어주고 그 사례로 몇푼의 돈을 받는 직업적인 읽기꾼이 있었다.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도 나온다.이들은 무성영화(無聲映畵)시대가 되자 변사(辯士)라는 이름으로 직업을 전환했다고 한다.
인도의 벵갈지역에 가면 바울이라는 가인(歌人)들이 있는데 이들은 기차에서 노래나 만담을 하고 돈을 주면 받고 안주면 안받고 그런 예인(藝人)들이 있다.지금 우리가 추앙하는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투스나 호메르스 역시 역사와 시를 읊어주는 거리의 악사이자 시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인쇄술이 발달이 되지 않았을 당시에 이들의 역할은 매우 컸을 것이다.
흑백 영화시절(우리 나이또래가 어렸을 때 본 영화)에 화면의 내용에 따라 토키 대신 사람이 온갖 감정을 석어서 읊어주는 말소리에 따라 관객들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그대는 그만큼 순수했다.요즘 같아서는 그런 영화보고 우는 사람 한명도 없다.주로 장한몽(이수일과 심순애) 검사와 여선생(살인범으로 몰린 과거의 여스승과 검사)등이 그런 무성영화인데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의 장난이런가. 그리하여 이수일은..>이렇게 운을 떼면 준비한 손수건이 위력을 발휘한다.
옛날 남산이나 장충단 공원같은데서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주는 과거의 경력이 불분명한 노인들이 있다 목소리도 좋고 감정도 풍부하다.실업자들이 많은 시절이라 자연 구경꾼이 늘어났다.나도 실업자 생활을 이골나게 할 때 매일 장충단이나 남산에 가서 이야기 잘하는 노인의 팬이 되었다.이야기가 끝나면 입성(차림새)이 변변치 못한 동업자인듯한 젊은이가 <선생님이 힘들게 이야기를 마쳤는데 목이라도 추기시라고 성의를 보이는게 우리들의 도리가 아닐까요?>하면서 돈통을 돌린다.현대식 전기수이다.
가물거리는 등잔불 아래 모여든 마을 사람들, 이들에게 심청전이나 춘향전 또는 명심보감에 나오는 이야기 등을 들려주던 전기수들은 지금 모두 없어졌지만 지식을 갈구했으나 마땅한 지식의 전달매체가 없었던 시대에 이들은 도덕적인 규범을 정해주고 충효사상을 가르쳐 주던 숨은 공로자가 아닐 수 없다.윤리와 도덕을 배우지 못하고 오직 수직적인 지식만 습득한 젊은 세대 사람들에게 전기수의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한 것같다.세상을 사는 방법을 모르고 오직 지식을 이용해서 돈벌이에만 급급한 사람들이 양산되고부터 버르장머리 없는 놈들이 늘어났고 아래 위없는 패륜적인 사회가 된 것같다.특히 권력을 가진자들,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야할 언론인들,바르게 재판해야할 법관들이 야합해서 죄없는 대통령을 법률조항에도 없는 파면 처분을 하고 감옥까지 보낸 파렴치한들은 역사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의사들이 세상 사는 방법도 모른체 환자들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법률가란 자들이 선악의 구분 없이 배운 지식을 거꾸로 역 이용해서 악인을 선인으로 만들고 선한 자를 악인으로 둔갑시키는 이른바 전관 예우를 받는 변호사들 떼거리,악의 변호자이지 억울한 사람들의 편에 선 자들이 아니다.이들에게 세상을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전기수가 반드시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