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에도 푸른 기상을 잃지 않는 초읍고개 등산로 입구의 오죽)
지난 2개월, 9월과 10월을 지켜보고 겪어보면서 가을답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주말 언저리에 전국적으로 제법 많은 양의 비가 내리더니 기온도 덩달아 푹 내려갔다. 학교에 출근하여 체육 활동을 할 때는 출근 때 겹겹이 입었던 웃옷을 한두 개 벗게 되지만 여름 때와는 달리 보온이 되는 옷을 서너 개는 껴입고 집을 나서게 된다. 이제 팔이며 다리며 어느 한 곳도 맨살로 피부를 노출하고 싶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몸은 옷으로 꽁꽁 싸더라도 마음만은 자유롭게 풀어 놓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집안일로 일요일 하루 훈련에 불참했는데 훈련 단골 회원들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한번 빠질 때마다 얼굴색이 바뀌는 성지곡의 고운 단풍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가을이 다 지나갈지 몰라 조금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마라톤대회와 개인 사정으로 성지곡에 가보지 못한 지가 3주가 넘었다. 그사이 성지곡의 풍경은 딴 곳인 듯 많이 변했을 것이다. 산책을 하거나 관광을 하면서 보는 단풍과는 달리 땀을 흘려가며 두 발로 달리면서 바라보는 단풍은 사뭇 다른 느낌이다. 전자가 죽은 냉장고에서 냉동 고기를 꺼내 구워서 먹는 맛이라면 후자는 바다에 나가 그물이나 낚시로 손수 잡은, 살아서 팔딱거리는 싱싱한 고기를 선상에서 파도에 흔들리며 날것으로 회를 떠서 먹는 기분이다.
어떤 방식으로 단풍을 감상하고 싶은가?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꼭두새벽에 잠을 걷어차고 호기롭게 아침 운동에 나섰으니 천천히 거닐면서 단풍을 완상하는 것도 좋겠지만 거친 숨을 내쉬면서 러너스 하이의 무아지경 상태에서 단풍을 구경하는 것도 한결 색다른 감흥을 줄 같다. 우리 달리미들이 즐기는 독특하고 이색적인 단풍놀이다.
전생에 무슨 운동선수였거나 열렬한 스포츠 광팬이었을 것 같은 아시아드 사직보조경기장의 여러 나무들도 단풍이 들었거나 낙엽이 졌다. 나무들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자연의 섭리인데 사람들의 눈과 마음에는 아름답게 보이기도 하고 을씨년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신록은 신록대로, 녹음은 녹음대로, 단풍은 단풍대로, 낙엽은 낙엽대로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도 하고, 여유와 그늘을 주기도 하고, 눈부신 색의 향연을 보여주기도 하고,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도 해준다. 자식들에게 무한의 사랑과 정성을 쏟는 부모들처럼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주는 나무들이 성자처럼 느껴진다. 나무들이 바로 관세음보살이다.
오늘이 입동이다. 더위를 먹고 비틀거리던 절기도 정신이 돌아왔는지 오늘 아침 부산 기온이 한자리수로 여유있게 내려갔다. 앞으로는 늦가을다움과 겨울다움을 체감할 수 있도록 천기와 절기가 일사불란하게 제대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입동답게 해가 뜰 무렵 아침 기온이 7도였는데 정오 즈음에는 19도까지 올라가 하루의 정점을 찍었다. 아이들과 오전 내내 연이어 운동장에서 체육 활동으로 티볼을 했는데 춥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가야지에서 수요 훈련을 시작하는 오후 5시 30분에도 기온은 15도를 보였다. 아침의 서늘했던 순간을 생각하면 언감생심 반팔, 반바지는 엄두도 못낼 것 같았는데 막상 운동장에 들어서니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아 긴바지 대신 반바지를 입기로 하고 상의는 긴팔옷을 입었다. 늦게 시작하여 최후까지 홀로 13바퀴를 달리며 5km를 소화하였다. 오늘 출석한 6명 회원님들(회장, 꾸니, 오궁, 달하니, 레지에로, 이종철)도 원하는 거리를 달렸다. 달리마 샘은 이번주 주말로 다가온 제주대회 훈련을 지휘하느라 바쁘셨고, 임정안 샘은 사직골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흡족해 하셨다.
식사는 7명(달리마 샘과 이종철 샘 빠짐)이 <동해>에서 김치치게를 먹었다. 임정안 샘이 식사비를 계산해 주셨다. 차를 몰고 온 오궁 샘과 나 둘만 빠지고 나머지 다섯 분이 또 2차 모임을 위해 자리를 옮겼다. 썩은 고기를 찾아 어두운 광야로 나서는 하이에나들처럼 썩은 것 같지만 썩지 않은 술(막걸리)을 찾아 골목길로 들어서는 가야지 주사파들(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빛이 불빛을 받아 더욱 형형하다. 술을 사랑하기도 하지만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는 못 사는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이다. 미국에서 귀국한 후 첫 수요훈련에 나오신 달하니 샘의 훈련 복귀를 축하하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한 뒷풀이다.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고 아쉽다. 술맛이 꿀맛이겠지만 코가 비뚤어질 만큼 과음하지 않는 절제의 용기를 잘 발휘하고 기분좋게 귀가하셨을 것이다.
오늘 마시지 못한 달달한 술은 다가오는 일요일 <사상에코마라톤대회>를 끝낸 회식 자리에서 대음할 수 있을 것 같다. 절기상으로 계절이 바뀌는 입동인 오늘도 수요훈련에 참여하면서 올 겨울도 가야지 회원들과 더불어 달리기로 땀을 흘리면서 잘 헤쳐나갈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겨울을 이기는 가장 강력한 백신은 달리기임을 믿고 잘 실천해 보자.
克寒秘方
日較差大越十度
來襲寒氣感敵軍
毛衣着服吃溫食
暖房睡眠最上策
克寒方策各人異
誰攝補藥誰運動
吾員樂走效秘方
家族知人信同參
추위를 이기는 비방
일교차가 크게
십도를 훌쩍 넘다 보니
몰아쳐 오는 추위가
적군처럼 느껴진다.
이럴 때는 털옷을 꺼내 입고
따뜻한 음식을 먹고
난방이 된 방에서 잠을 자는 것이
최상책이다.
추위를 이기는 방법과 꾀는
사람마다 달라
누구는 보약을 먹고
누구는 운동을 한다.
우리 회원들이 즐기는 달리기도
본받을 만한 비방이니
가족과 지인들이
믿고 함께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