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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號山房
近日에世人의注目을쉬지아니하도록 新聞과雜誌
等의報道는 伯林솨로튼붉敎授미-테氏가 水銀의
原子를分解하다가 그中에서極小分의銕的原子를分
하야 金을만드러본것으로爲始하야 紐育敎授쉘든
氏에까지亘한事實은 有史以來로現今까지에 만흔
天才들의解釋하고저하든問題를 理論으로부터實現
에이르게하엿다。이事實은만흔刺激으로 過去有史
中에蟄伏한 모든哲學家또는化學家들의 勞心焦思
로悲劇에陷하엿든 景狀을聯想하게한다。例하면歐
洲에尤히 中世紀에서볼수업지아니한 「鍊金術家」
(Archemistes)들이나 또우리半島에「靈砂ㅅ군」들일
것이다。
各民族들에게잇서서 그다지神通스럽고造化스럽
게엿기엇스며 또이것을成功함에는即어드면 成仙
도 巨富도 사람의願대로될수잇는것 即化學者의
神그러운 秘密과實驗과 또信仰으로나 得할수잇
는것은 歐洲에잇서서는「智砂」라하고 우리半島
에잇서서는多轉한「靈砂」라하얏다。此에對한그들의
理想은大略이와갓다。歐洲에「智砂」나우리半島에靈
砂는効能이마치印度人들에게잇는「如意珠」나相似
하여서所願을成就한다고信하얏섯다。卽惡人을善人
으로 愚痴를賢聖으로 無識을博識으로 惡知識을
善知識으로 貧을富로 終末에는 乘雲氣浮靑天하
며還老返少와 不老不死를成就할수잇다고 信하얏
섯다。以上과如한見地는우리半島나歐洲를勿論하고
醫術家의必須가되여서 藥石으로使用하야度濟蒼生
하겟다고생각하엿고 또試用까지도하얏섯다。그들
의理想이 이다지超凡的이고廣大하야賢聖에比하겟
슴에不顧하고 歐洲에鍊金術家이나 우리半島의靈ㅅ
군砂들은그들의學術的實驗이 民衆에게利益을보일
수업슬때에는「詐欺取財ㅅ군」의代名詞로變하여서
誰某를勿論하고 鍊金術家이나 靈砂ㅅ군이라는文字
를드르면 아주不美한感情即違法行動者이나 極히不
道德한사람이나 또는死刑罪後補者이나 다름업시
생각하야왓다。이와가튼事實은저歐洲에잇서서 歷
史上으로推究하야본다면 人類的精神이數千年以來
로 얼마나만흔階梯를經하야 今日에왓는가를짐작
할수잇다。最初에는黃色의光彩잇는金屬만들기를始
作하얏섯다。
이와가튼叙述은 무슨筆者가미-테敎授나쉘든敎
授들의發明을 說明하고자하는것이아니오 即近年에
와서光線學的實驗으로생긴 모든事件은自然科學上
의根本問題를 變하게맨든것을說明하고저함일새니
라。造金術은方文의도음으로 不貴의金屬을變하야
貴金屬이되게하는것이다。그래서以上과가튼方文과
要求는 决코十九世紀的化學의見識으로는解决할수
업다。例하면모든自然即無量數의化學的組織軆들은
各個로分解하여서 一定한數의物軆即化學家들의아
는元素들을 一一히分析하기에不可能하엿섯나니라
이들元素中에는金도元是다른金屬들모양으로 一分
子임에不過하니라。그래서化學은이들元素를綜合도
分解도하기에可能하니라。이可能性은今日에와서不
貴의金屬을가지고 造金할수잇게하는原則이나方式
이된것이다。長久한歲月은學術로하야곰 그의아지
못하든立脚地를 間接으로우리人類에게指示하는任
을바리지아니하엿다。例하면一面으로光線學의硏究
는그다지分解할수업든元素들을 뎨절로容易하게分
析또는分解할수잇게되얏고 他一面에서는方文의도
음으로即光線活力의도음으로 各個의原子 即綜合軆
中에서 各分子들을分解할수잇게되엿다。그럼으로
前日에不可能이던元素分解는 今日에잇서서問題도
되지아니하는同時에 各個로分解된原子의重量까지
測知하게되엿다。此에依하야得한原子重量의輕重은
貴價이나 또는廉價을指示하야주엇나니라。
恒庸으로古代歐洲에잇서서 造金하는秘方을「鍊
金術」(Archemie)이라名하엿섯다。이文字는化學史
上에서자조볼수잇다。現今考古學者들은 이것을族
及文學中에서發見하얏고 또埃及으로부터根源된것
이다。此에對한證明으로말하면 近年에發掘한투은
흐아문王墓가 가장有力하다하리라。古代埃及人들
은化工學的金屬으로以하야 職業까지形成하야잇고
또同金屬類로細工品까지만드러서 寺院에나婦女들
의粧飾品에供하엿섯다。以上職業은特別히僧侶들의
專門業이엿섯다。이와가튼例를 우리半島에잇서서
三國時代의僧侶들이 化工學的金屬을가지고 佛像
과佛具와鐘皷를만드러서 同時에그들의美術을자랑
하엿나니 例하면楡岾寺五十三佛들은 銅과가트나
實相으로보아서銅이아닌 化學的으로混合한金屬이
오 公州麻谷寺中庭에잇는塔冠은 俗稱에風磨金이
라하나 이亦是化學을利用하야 混合한金屬이니風
의磨力에라도依하야 그의光을發하는無價寶이다。
또우리半島의鐘의歷史를推究하야보면 鐘聲의好不
好는化學的의混合이 잘되고잘못된것에달이엿다한
다。그外에無數한作品即寺院마다居半이나잇다십히
하는烏銅香爐들、小鐘들、風磬들은 다貴金이나不
貴金屬等을化學的으로混雜하야서만든것이다。그다
홈에王公家에서 特別粧飾品을求하고저할時에는반
듯이僧侶의學術을假하엿든것이 當時에公然한事實
이엿다其外에佛畵에쓰고저化學으로 彩色을求하엿
든것이다。또다른等事로因하야 化工學을利用하엿
든것은世人의公知에屬하는지라 筆者의枚擧를기다
리지아니하리라한다。
古代埃及僧侶들은 數百年間을그들의作品으로僧
舍와寺院을粧飾하는同時에 그들의學術은極히秘密
中에置하야 當時民衆들에게 神的信仰이나神的秘蹟
을宣傳하엿스며 內面으로는傳之又傳하야 數千年
間을支保하엿섯다。우리半島에는此에反하야 僧侶
들은그들의學術的技術을 可能한대로民衆에게敎授
하엿고 또作品도僧舍나寺院은勿論이지만民間에도
주엇다 그러나僧侶들은 그들의作品에對하야서代
價를取치아니하얏슴으로 民間에잇는同作品의所有
者들이該作品의價値를 잘認識치못한적도업지아니
하엿섯다 또는設或報償을받는다하면 그金錢은寺院
의公財에充하엿섯다。僧侶스사로가 그들의學識을
더硏究하고저할時는 印度나蒙古나中國에留學한것
이事實이다。이들僧侶留學生들은文學ㆍ哲學ㆍ宗敎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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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ㆍ神學ㆍ美術中에는聲樂ㆍ音樂ㆍ作曲ㆍ雕刻ㆍ繪畵等이
오 工學으로는建築學、石工、銕工、冶工等이오化
學으로는金屬의混雜ㆍ彩色의製造이오 光學ㆍ醫學
藥學ㆍ地理等이엿다。尤히李朝에入하여서는 兵法
도바리지아니하엿섯다。以上을證明하기에足한것으
로말하면 理今半島中에散在한 深山窮谷中에잇는
寺院들이나 民間에서不知不識間에習慣에依하야使
用하게되는化學的物質일것이다。例하면文學ㆍ哲學
及宗敎哲學ㆍ倫理ㆍ美學ㆍ論理等에適當한著述은元
曉의華嚴經疏ㆍ涵虛의圓覺經䟽ㆍ牧牛子의修心訣ㆍ
또唯心訣等은 우리半島의著述家나 詩人들이고聲
樂ㆍ音樂의代表로할만한것은 우리僧侶들의專有物
인中國에나日本에서例를求할수업고 잇다면오즉北
印度ㆍ西藏ㆍ蒙古等地에서들을수잇는梵音 또그에
適當한樂器일것이오 作曲으로말하면 現今까지우
리音樂界에서使用하지마는 作者나音譜文書까지업
고서도잘行하는 大ㆍ中ㆍ小ㆍ靈山曲等이오 繪畵의
遺物은各寺院에散在한佛畵일것이오 雕刻은佛像들
일것이오 建築學으로는各寺院의建築이엿스며近古
에와서는 景福宮內에勤政殿가튼것이오 石工으로
는慶州佛國寺를第一指로하야 모든寺院에散在한것
이으鐵工、冶工、鑄鐵工으로는 서울鐘路普信閣鐘
으로부터半島에散在한것들이으 化學으로는寺院이
나僧舍를粧飾한彩色(李朝中葉에와서는 中國으로
부터輸入이되엿다 特別히「唐彩色」이라는文字를成
함에至하기는 大院君이景福宮役事를起할時이겟다)
이나다른金屬類이오 光學으로는水晶으로眼鏡을製
造한것이오(近世에와서는民間에一種職業으로 形
成하얏지마는 創造者는僧侶이엿섯다)天文學으로
는寺院에는鷄等家畜을 두지못함으로因하야特別히
「持殿僧侶」의專門業이되엿고 醫學ㆍ藥學ㆍ地理學
은行乞僧(日人의所謂「托鉢僧」이라는것)의副業이엿
다。藥學中에는亦是化學의關係잇는「靈砂ㅅ군」도含
入할것이다。地理學으로는新羅에慈藏ㆍ高麗道詵ㆍ
李朝에無學을算하리라한다(算者의 見識이넘어도淺
薄함으로 萬分之一도記入하지못하얏다 그래이에서
우리考古學者를要求한다)兵法으로는 龍蛇의變을
聯想하리라한다。
古代埃及僧侶들은 그들의美術을 寺院ㆍ神畵ㆍ
神器具等에粧飾하엿는것은 王墓中에잇는器具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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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잘알수잇스리라한다。이들作品은大槪紀元前二
千年을算하리라한다。그뒤로말하면 南部아라비아
에서나 東部아프리가地方으로부터 水路로輸入한
金을加工도하고 混合도하여서 實用에適當하도록
하엿든것도볼수잇다。
以上과가튼道程을經하야온 鍊金術的書籍은歐洲
에잇서서略四千部를算할수잇다。內容은架空的思索
이나 神話的術法에不過하다。이들中에文字들은極
히難解할만치記錄되엿다。이文書들은希臘의精神을
埃及文化上에다가搆立함에不過하다。그中에神秘的
方面으로말하면 新프라톤哲學派中에서 만흔硏究를
加하엿다。이들鍊金法은 希臘國에잇든埃及僧侶들
이업서짐을따라서 數를減함에至하얏고 또는國家
의主權者들의 妨碍는尤히理由를주엇다。
羅馬가成立됨을따라서 이들鍊金術家들은 實驗
을加하야 金本位를定하려하는政府를도읍고저하엿
스나 結果의不美는羅馬帝國時代에와서排斥을當하
엿섯다。그러나羅馬帝國時代의銀貨中에는 多大한
銅을混하얏슴은 此에由함일새니라。以上과가튼無
制限의銅混合은 아우레리안皇帝時代에와서 五十
錢値의銀貨가十五錢으로落價를當하얏섯다。이것을
發見한羅馬帝國政府는 아렉신드리아(羅馬의商工
業地엿슴)로始하야 紀后二百九十六年에鍊金術家
들을捕捉하고 同書籍을付火함에至하엿섯다。以上
과가튼事實은 羅馬帝國時代에잇서 埃及으로부터온
鍊金術이 過度한實驗으로由하에 衰運에둘엇든理
由를明示한다。그래서一方으로羅馬의鍊金術이衰하
자他一方으로 아라비아에서는此에對한硏究가盛行
하엿섯다。그들은만흔方式을求하든中 尤히有名하
아라비아哲學者게버는 特別히此에算하리라한다。
同哲學者는現今歐洲化學史上에서 元祖라아니할수
업는地位를占한다。이學說은一方으로는西班牙를經
하고 他一方으로는十字戰爭을乘하야 저歐洲에輸
入된것이다。此方面에對하야有名한 學者로말하면
獨逸에알버투쓰마그누쓰ㆍ英國에로거베큰、其外에
알날두쓰비란으부쓰ㆍ리아믄두쓰루루쓰等有數한哲
學者들일것이오 또는神學及基督敎哲學에重鎭이고
中古時代에光輝를獨發하던 로마다갱도숨길수업는
鍊金術家이엿섯다。
이들哲學者들이나 神學者들의理想은 即不貴의
金屬을變하여서 貴金屬이되게한다는것이다。그러
나그들의方式은 金을他金屬과混合하겟다는것보다
直接으로金을만드러보자는것이엇섯다。以上과如한
信條는 人類的精神의能力이 足히不貴의金屬으로
貴金屬을만들겟다는希臘哲學者들의생각이엿섯다。
特別히哲學의中始祖이고 萬般科學에元祖인아리쓰
토레레쓰의著인「物質의形質」에서起因된것이다。同
學說로말하면「各種元素들은直接物質이아니오 即物
質의形質이各樣으로보이는것이다」하얏다。그럼으
로그들物質은分排할수잇겟다」생각하엿다。아리쓰
토테레쓰의 생각으로말하면 火ㆍ水ㆍ空氣ㆍ地等四
種의元素가地盤이되여가지고 周圍와事情에依하야
一定한形質을保支하는것이라하얏다。그래서이들形
質도亦是四種에分하엿나니 即熱ㆍ冷ㆍ濕ㆍ乾이다
各個의元素는二種의形質을가진다。(筆者는이에서
中國哲學인陰陽說을記憶한다)例하면火는乾及熱ㆍ
水는冷及濕ㆍ空氣는濕及熱ㆍ地는乾及冷이라하얏다
그래서結局은下와如하다。
火(乾熱)+水(濕冷)=空氣(濕熱)+地(乾冷)
以上은形質이交換될때마다新物質을成하는것이다
그러나結局인즉一히되고마는것이다。例하면火ㆍ水
의都合은 空氣ㆍ地의都合과相等함에由함일새니라
以上과가튼見地는아리쓰토테레쓰로하야곰「物質
들은各各그의形質들의都合한總軆이거니」생각하게
만드럿다。그럼으로各物質의形質들을相換하면造金
할수잇갯다는信仰을주게한것이다。그런즉이에서잘
記憶할것은 古代希臘의哲學들은自然哲學이엿던것
이다。또그뒤에아라비아哲學者게버의생각이亦是아
리쓰토테레쓰의생각과相似하얏슴은 此等鍊金術界
에有力한希望을주게된것이다。以上의實驗이라는것
은金屬類들의調合이엿섯고、이들調合은水銀과硫黃
을가지고서 다른金屬들과合하기도하고分하기도하
엿다。또有時에는純全히水銀과硫黃만가지고造金하
려하엿든적도업지아니하엿든것을보면 우리半島에
「靈砂ㅅ군」들이水銀ㆍ硫黃及銅을大關節로使用하엿
든것이나相似하다。以上에對한理由는光輝잇는水銀
과黃色의硫黃을合하야서黃色이고또光輝잇는黃金을
만드러보겟다생각하얏슴에 起因되얏든것이다。이들
實驗이不成功을告할時에는 그들은생각하기를아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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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未備한點이잇겟다하얏다。이未備點은即智砂라名
한것이다。이智砂(Petra sopphiae)는神의加被로나
得할수잇는데(當時學者들의信仰)이智砂를가지면무
슨不貴의金屬을變하야서 貴金屬을 만들뿐만아니라
亦是惡人을善人으로 또는還老回少라던지 萬病通
治를할수잇다고信하얏다。그래서만일사람이 이智
砂를가지게되면 그사람은水銀이나鉛을鎔化하는時
에少許만混入하면 그全軆가成金된다고생각하엿섯
다。
以上가튼例를우리半島에서求한다면即「靈砂ㅅ군」
들일것이니 靈砂를九轉(近來에는 조흔「도간이」를
利用하야 百轉도할수잇다)만하면 萬病通治、成
仙、以惡變善ㆍ遊乎四海之外ㆍ吸風飮露로長生不死
하리라信하얏다。어찌하야서多轉한靈砂를貴하게여
기엿는구하니 一轉으로三轉까지는白色이오極히毒
하여서生命에危殆하지마는 四轉부터는毒도减하고
色은紅으로變하며또光彩가생기기를始作하는經驗에
依한듯하다。그러나六七轉부터는極히猛火를要求하
고「도간이」가잘破壞하는故로참으로 容易치못하엿
다。이것을從事하는「靈砂ㅅ군」들은 그들의學術的
實驗이民衆에게利益을주지못함으로 生計의不可能
이던지居所의不便이라던지 公衆의蔑視로因하야서
民間에서는行치못하고 寺院에서僧侶들의專業이되
얏섯다。또는「靈砂」스사로가神의加被를待하여야된
다信하얏슴으로 鷄犬의聲이나婦女의影子를避하기
에는寺院이適當함도理由가 되엿섯다。設或九轉까
지한靈砂라도効를보지못할時에는 그들은밋기를神
方에違背되여서 神의加護가不足하다信하얏다。
鍊金術의書籍中에記錄된方文과 規則을極히「변」
을만히써서 普通으로사람이理解치못할만하게되엿
다。또以上과가튼것은 當時鍊金術家들의義務엇섯
다。此와如한信條는鍊金術에從事하는 學者들로하
야금 그들의實驗에쓰는器具의名稱이나 또다른附屬
品等의名을極히神秘스러운 文字로使用함에至하얏
다。例하면「도간이」는金神의寺院이라하고 「도간니
의바닥」은混元太初의冥이라하고 「도간이의뚝겅」
에水銀의作用으로올라붓는鎔液은「復活」이라하고、
鎔化된液軆는「神水」라하고、또「도간이뚝겅에부튼
金屬을떠러내는「마치」(鐵棒)는「僧侶」라名한等은」
鍊金術家들의文書中에서볼수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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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테(十八世紀에獨逸有名한詩人)도幼時에鍊金術
家들과交際가잇섯고 또硏究하얏든것이事實이다。
例하면그의著述中特別히傑作이라할만한「파우쓰트」
第一篇에서 이러한痕跡을볼수잇다。
「내아버지는 검은(玄)長者이엿소。
………………中略………………
그는鍊金術을通한社會의分子로
일상츰츰한實驗室에서
또無窮無限한藥方文으로
다시合하고 또合하는데從事하엿소。
그것들은紅色의獅子、壯快한慶事。
柔한沐浴中에서百合과婚姻해
또 이들둘은 함끠猛火中에서
一個의兩住부터 다른것을動搖해
이우에色彩의混色이顯함에는
절문女王이 硝子안에
………………下略………………
詩中에「紅色의獅子」라함은水銀의酸化를指함이오
百合(或은白色의獅子)은鹽酸의結晶일것이다。이들
兩種의藥材가合하야溶化되면少許의鹽酸素酸䀋을得
할수잇나니 이것은詩中에서「女王」이라하얏다。이
것은勿論各自內로부터原子의合成으로因하야되는것
이니라。以上과가튼方文을가지고十八世紀에만흔天
才들은「智砂」를求할수잇다고信하얏슴으로 그들의
天才를永遠히求할수업는對象에限하야 勞力하게만
드럿다。理由로말하면不貴金屬의鎔化로因하야黃色
도成하고 또는普通으로鉛이나銅中에幾分間金의分
子가잇섯든것이 그들의게希望을주엇섯다。또는時
代마다업지못한流言客의欺妄도亦是鍊金이可能하다
고宣傳하엿든것도 此에對하야影響을주엇다。以上
과가튼結果는十三世紀의無量한混雜金屬의通用貨도
만드럿고 또一六七五年레오폴드第一世皇帝時代에
通用貨의刻字를보아도알것이라한다。그뒤에普通民
間의私有中에「智砂」가잇스리라信한中世紀의王公들
은無罪한學者들이나富豪를死刑도하고 無量한財產
을浪費도하엿섯다。
人類의智識이現代에와서는原子論의發明으로以하
야 各個의原子들마다一個의太陽系를組織하야서自
轉과公轉을行한다。原子의運行系(即太陽과가튼小
形)의中央에는 太陽系의中央에잇는太陽처럼「原
子種」이잇다。이것을中心으로하고自轉이나公轉을
하는것은「原子의電子」라한다。그래이原子들은自然
에凖하야 宛然히一個의小形인太陽系를形成하야가
지고 各「原子의電子」들은各各自己의線上에서公轉
과自轉을行한다。이原子의形이나重量이나大小는物
質을따라서다르다。例하면一個의水素原子는10―8
센터米突(百分之一米突、이것을十에分하고또十分
한것의一을다시十分하기를八次나한數이다)이直徑
을가지엇다。水素原子의重量은0―24그람(瓦)(即
千兆分之一瓦)이다。이와가튼原子는液體이면多量
이고 固體이면小量을含하나니 例하면一瓦의水나百
八瓦의銀에는10―24(即6.20.10―23)의原子들을含하
얏다。다시말하면 現今地球上에生存한 人口數의
10―1倍이다。이들數字는 現今에無機化學이아즉
그다지發達치못하얏슴으로 大略百分之一可量은明
白하리라밋는다。그럼으로이들數字는모두「大略」이
라는文字下에서알아듯는것이조타고생각한다。理由
는「光線의活力」으로 겨우煖爐의隙間으로나오는熱
氣나 天空의蒼色들을試하엿슴에不過하니라。
原子는顯微鏡의도음으로算할수잇기가 마치肉眼
으로鷄卵을數할수잇슴과가치容易하니라。原子의形
質은物質을따라서다르나 大部는水晶軆로되엿나니
大略固軆中에잇는原子 例하면砂糖가튼것ㆍ또는格子
形即欄干形의組織이니 例하면食鹽가튼것ㆍ食鹽은
「나트리움」原子와
「그를」原子(鹽素)
의合한것ㆍ그러나
그의組織은岩䀋과
海䀋을따라서다르
다。그것온下圖와
如함。
1 小晶体
2 海鹽
3 岩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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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上과如히組織된八十七
種의元素的原子들은 다시
兩種의電子로부터成立되엿
나니 即陽電子ㆍ陰電子일
것이다。그래서이들電子는即今日에잇
서서(아즉無機化學이더發明되기以前)
學術上으로보아서宇宙萬像을建築한資
料로 認證하얏다(電子는무엇으로부
터되엿느냐하는問題에對하야서는 日
後에다시時間을얻어서적고저하고 이
에는略함)이들原子를만든 電子中에
陰電子는 直徑10―13센티米突이고同
容積은水素原子에比하야 約二千分之
一이라한다陽電子는直徑10―16센치米
이다 原子가電子로부터成立된것은X
光線의助力으로調査하는것이다。原子
가電子로부터된것이라던지 單純으로
駁雜한組織의叅考에供하기爲하야下에
圖를添付한다。
上圖面中에表示된十個의元素的原子는이러하다。
(一)水素原子、(二)헤리움原子、(三)리티움原子、
(四)벨리움原子、(五)뽈原子、(六)炭素原子、(七)
窒素原子、(八)酸素原子、(九)프루올原子、(十)네온
原子、이들原子들은半分의陽電子와半分의陰電子로
成立하얏고、成立된後에作用은外面으로보아서中性
이다。水素原子는一個의陽電子와一個의陰電子로組
織되엿고、헤리움原子는各二個式의陰陽電子로成立
되여서 次第로增數하얏다。우란原子는各九十二個
의陰陽電子들로成立되엿다。陽電子가原子種을組織
하야原子中心에位置를定할때에는 陰電子들은周圍
의邊에서一定한線上으로運行한다。이들陰電子는自
轉과公轉을每秒에一兆次의速力으로原子種을周行한
다。
그래서各個의原子는一個式의太陽系를形成하야가
지고自轉과公轉을 不息하나니라。萬一原子의容積
10―8센티米突과電子의容積10―13센티米突을比較
하야보면原子의內部에얼마나한空間이잇고 또는空
間을利用하야電子가公轉、自轉을行하는가推測하리
라한다。例하면太陽의容積과우리地球의容積을比較
하야 그의比例되는空間即地球가그것을利用하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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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轉、公轉할수잇게된것과相似하니라。以上의價値
로말하면넘어커(大)서우리의肉眼으로볼수업는大陽
系나또넘어적어(微)서우리의肉眼으로볼수업는一센
티米突의十億分之一되는原子의電子나相似하니라。
以上과如한 10―24적은太陽系는 한그람(瓦)의淸
水나百八그람(瓦)의白銀中에서運行되고 또造化가
不測한動力과速力으로運行된다。筆者는이에서過去
의지나간佛敎哲人들의『一毛端에寶王刹을建立하겟
다』는快語나 또紀元前七百年을左右하야生存하엿
든佛敎哲人인 유마나만츄스리等의對話를記憶한다
(유마수트라即維摩經을叅照)。또는普通으로半島中
에流行되는詩句即法身頌도이에適當한說明이라거나
或은前世紀에잇서서二十世紀의學術上預言이라고도
하리라한다。例하면
蟭螟眼睫起皇州、玉帛諸侯次第投。天子臨軒論士
廣、太虛猶是一浮漚。
原子種으로부터太遠한距離에서運行하는電子(우
리太陽系에比하면「넾툰」가튼것)을「렌쓰」電子라
한다。이原子種을分解할때마다 物質의性이나 또
는그것이他物質로變할可能性이잇는것을알수잇다。
우리는「光線活力」의도음을가지고 原子種이스사로
分解되는것을볼수잇다。例하면「라디움」은「우란」原
子를分解하는中間에서 產出한것이오 또「라디움」
을分解할것가트면終末에는 鉛이產出되고마는것이
라。勿論「우란」原子로부터「라디움」까지되는中間에
는한無數階梯를經過하여야하는것을이저바리지마러
야한다。此를分解하는데에 要求되는光線活力은極
히强度이여야한다。初次로原子를渡電할만한基礎的
「까쓰」(瓦斯)이니 即「헤리움」原子로부터求하는것
(알과光線)第二次는電子로부터求하는것(베타光線)
第三次로는X光線일것이다。「헤리움」原子는電子모
양으로그를分解할同時에 最極度의速力으로射擊하
여야한다。「우란」原子의重量은二三八이다。그것이
光線活力、電子光線、엑쓰光線들을經하야 分解된
後에는 一面으로는二○六으로减下되는데마치鉛과
相似하고 他一面으로는「헤리움」即四、○의重量을
示하는것이된다。金은原子重量一九七이니 即中量
的原子等에屬한다。그래太量的原子로그의量을減하
야中量的原子가되도록 即金에適當하도록만들기에
는現今의光線活力은 아즉無力하다。이들太量原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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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分解로中量原子나 微量의原子를얻게하는것은宇
宙自然의妙用일것이라하리라。그는固定不變한自然
律에依하야 分解하기도調和하기도願대로하는것인
가보다생각된다。或實驗을經하야學術的(人爲的)으
로實現할수잇슬가하는생각은 現今無機化學上에서
아즉疑問中에잇는것이다。即以上問題를成功할만한
것을「에네르기」(力)이니 이에「에네르기」가光線活
力을經하야運用될것인즉「알파」光線이나「베타」光線
等에서現今보다尤히强度인力을 做出하도록하여야
되리라한다。
람사이의試驗이나 또는루터폴드가一九一九年에
公布하기를「알파光線의도음으로元素的原子를微量
原子로되게分解하기는可能하다」하엿다。그에初次
試驗은窒素를가지고 行하얏나니 即窒素上에다가
光線活力裝置로부터「알파」光線을射出하얏다。結
果는窒素中에잇는極少分의水素가分解되엿다。理由
는「알파」光線이窒素中에서「헤리움」原子를만들고저
함이니 이「헤리움」原子는 極히不規的速力을가지
엇다。그래서이「헤리음」이 그의原子種을公轉할때
에勢不得已로 窒素의原子種과衝突이되여가지고分
解되는것이니라。만흔試驗을經한루터폴드敎授는水
素를分解하다가 一定한數의他元素的原子를發見하
엿나니 例하면「뽈」、「프루올」、「나트리움」、「아
루미니움」、「燐素」이以上元素들은全部가微量原子
에屬하나니 十二부터三十一의中間들이니라。이들
多種의原子는 全部가水素內에含在하얏나니라。그
러나아즉도모를것은以上原子들以外에 또무슨다른
것이水素內에含在되얏는지?
그러면우리人類는現今에잇서서近千年以來로問題
되든「元素의移動」을近代의學術로以하야新地臺를
얻엇다할만치된것을볼수잇다。이事實은「大自然」이
人類의「大引導者」가되여가지고 光線活力으로太量
原子를分解하게하는同時에우리人類에게「헤리움」光
線即「智砂」 에比할만한것을敎授하엿다。이것을가지
고原子도分解시키고 또다른物質에다가利用하기도
한다。理由 原子를分解할同時에생기는微量原子를利
用함일새니라。然이나中量原子即金에適當한原子에
對하야서는 아즉까지는以上叙述하야은方式이送行
된다。그러치마는아직도可能한地盤에잇는中이리라
이理論이實現되면造金은되고야마는것이다。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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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理論이아즉實現되지못한今日에는 不得已太量原
子나、微量原子를中量原子로만드는代로 如何한物
軆中에서나 이中量原子即金될만한原子를차질받게
다른方途가업다。이것을求하기에可能한物軆는水銀
라디움、鉛等이다。이들三種物軆上에다가射出할光
線은速力이極히强度이여야하고 또多量이여야한다
即「알파」光線보다尤히强한것、이와가티된다假定하
면、이들分解는무엇보다容易하리라한다。以上과如
한光線을만들고저함으로는 現今우리學術界에서가
진電力보다强度되는것을가저야大略可能하리라한다
그럼으로以上과如한方式을가지고 造金하고저하
면 甚히多額을要求한다。이것을알기爲하야우리는
水素로부터「아루미니움」까지人爲的分析에要求되는
것을잘推究하야보자。水素로부터分出되는「아루미
니움」은極히微量이여서 가장精密한物理學的方式
을經하여야 겨우짐작이나할수잇는것이다。이것을
成功하기까지에要求되는것의計算은下와갓다。一立
方기로米突(千米突)의水素를가지고 人爲的分析을
經하야「아루미니움」을得出하자면 한그람(瓦)의
「라디움」을가지고서 三千年의長久한歲月을 그의
光線인「알파」光線으로「아루미니움」우에다가擲射하
여야한다。現價一瓦의「라디움」은二十六萬圓即米貨
로十三萬弗이다。그러면이巨額의利를三千年間積聚
한것은 即一立方기로米突의水素를가지고「아루미
니움」을얻게하는價格이다。
以上의利子計算은單位로부터 六十九位를要하는
巨額이된다。現今에可能한方式을가지고造金한다假
定하면 自然의造金인即鑛山으로부터金을發掘하는
것에比한다면 마티造鐵하고저하는鎔鑛鑢의技手가
鎔鑛鑢에要求되는炭素(勿論「콕쓰」形은말고純全한
炭素로만)代로 同量의金剛石으로鎔鑛爐를채우고
저함과相似하니라。
그런즉元素分解方式이아즉은넘어도 幼穉함으로
將來를向하야바라는것은 即新方式이微量原子를모
와서 太量原子를만들기에可能한時期를오게하여야
한다。此에對한可能性으로말하면 水素中에서「헤
리움」原子를얻게되는것이오 또헤리움原子스사로가
水素나電子로부터 成立된것이겟다。그런즉水素原
子나「해리움」原子中間에잇는物質은어떠한것인가를
大畧推測할수잇스리라한다。그러나이들이무엇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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因하야서 서로成立될可能性을가지엿슬가하는疑問
은解決치못하엿다。尤히아지못할것은우리의地球가
微量原子로부터轉次하야서太量原子로變하얏는지!
或은地球의成立이極度의熱的氣候나 또는極强度의
電力에못견듸어서 現今과如한不動的인固軆에까지
왓는지!이다。以上과가튼綜合的생각은아즉前途를
要求한다。그것은將來에어떤重要한것이物理學上의
硏究안에들어올논지아지못한다。例하면相對性原理
가튼方式。
現今까지學術的見識으로알기는 모든原子들은水
素로부터成立되고 또水素스사로는電子로부터成立
되엿슨즉、이와가튼假定下에서電子의重量을알기가
可能하다면 다른原子들의重量은此에準하야 倍하
야서定할것은무엇보다事實이라하겟스나 實際는此
와全然히反對되여서 原子의重量은减縮된다。例하
면一個의「헤리움」原子는四、○○이오一個의水素的
電子의重量은一、○○八이다。一個「헤리움」 은四
個의水素原子的電子로成立되엿나니 即1,008X4=
4,032가되여야할것이다。그러나實物은此에反하야
四、○○인즉其餘의殘○、○三二는水素로부터「헤
리움」原子되는中間에消失된것이다。그런즉이것으로
現代의「力의過渡道程」에依하여서「相對性原理」(인
아스타인敎敎授가發明한것이니 即三積(長ㆍ廣ㆍ高)
를가지고 物軆를算하든 어이클이드의幾何定理를
反하야 四積「長ㆍ廣ㆍ高ㆍ時」를 가지고物軆를算하
는것이다 또어찌하여서「相對性」이라 題하엿는지
이學說이現今哲學에나 各種科學에 어떤變動을주
는지 此에對하야別問題임으로 日後에다시時間을
얻어서적고저한다)가許하는데까지는「力의積」을測
量하여야한다。이에對한「에네르기」(力)는一瓦의水
素가「헤리움」으로過渡하는期限은 最小限度로라도
二十萬「와트」時를要한다。이와가튼方式을累經하여
서太量原子를가지고 微量原子를만들수잇다면 이
와가튼方文은亦是造金할수잇스리라한다。以上과가
티되는道程에서 產出되는無數한「에네르기」(力)들
을다시造金하는데에利用한다하면 終末에는人類의
勞苦가한黃金時代를做出할수잇스리라한다。
以上에對한多數한理論家들의空想은 何時를勿論
하고 모로는將來에다가慶快한黃金世界를만드지마
는實驗者들에게잇서서는 아즉도方式이妨碍를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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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此에適用할自然科學들이아즉幼穉한즉 우리는
此方面에對하야보습(犂)을끌기를쉬이지아니하여야
하리라한다。
金이라는것은何時를勿論하고 人類의가장尊貴하
게여기는粧飾物이되여왓다。그래서有史後로 世界
各處에서各民族들은 金찻기를始作하엿섯다。그래
서金의多寡는한民族이나、한나라의興亡을表示하다
시피하야왓다。그러나金의產出이人役을充足하게償
치못할時에는 鑛地發現을中止하던가 旣開한鑛의事
業을中止하는것은 歐ㆍ米ㆍ大洋洲ㆍ南아프리가洲에
잇서서 볼수잇슬만치되엿다。現今에最히發達된方
式으로는每噸鑛石에서 六瓦의金을得함에不過하엿
다。그래서年產六十萬기로瓦(千瓦)을算하엿다。
新大陸을發見한後今日까지에 全世界에서產出된
金은略二萬으로二萬五千噸可量이고 該價格은略二
百七十億圓으로 三百億圓可量인즉 即獨逸이聯合
國들에게對하야 支出할賠償金과相似하니라。此等
以外에아즉鑛石으로잇는金이라던지 未發見鑛들의
金이라든지 또는아즉方式의不精密로放棄되는鑛들
은數할수업다。또는어떠하게던지아즉도人類들이利
用할수업는것은 海水中에含在된金이라한다。平均
一噸海水에○、○二百萬瓦의金이含在되엿고 其外
에만흔곳에서는 即金의產地를貫流하는河口近處의
海水에는 四○百萬瓦까지每噸에含하엿다한다。此
에準하야世界海水中에含在된金을算한다면 略十五
로二十百萬噸可量을數하리라한다。또尤히巨大한金
의積聚로말하면海底裡에 앙금으로된개흙(泥)일것
이다。海水에서金을產出한試驗은 戰前에米國의經
營로大西洋에서行하엿고 또近年에獨逸某會社가北
海에서行하엿스나 兩者가共히積極的成功을보지못
하엿다傳한다。
世界中에서產金界의大王은英國이다。例하면一九
一五年에全世界產金은七十萬기로瓦이엿는데 英國
의所有가四十四萬기로瓦이엿고 또一九二三年世界
產金은五十三萬기로瓦인데 英國의所有가三十七萬
기로瓦이엿다。理由는英國의「아푸리가」領地即「트
란쓰발」은世界產金의半分을當한다고傳한다。또다
른곳卽「아푸리가」의「공꼬」에는鑛術의關係로多量
을產치못하고 露西亞에는產金되는대로宣傳費로支
出하노라고 鑛夫의賃金을잘주지못하여서產金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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减하고 米洲「카리폰이아」나「크로디케」에는鑛夫의
賃金이太高하야 不利함으로因하야 縮少되엿슴으
로 戰前戰後의產金의數는 上述한것과如히减少하
엿다。
世界金의所有者는 略三種으로分하리니 一은世
界工業家의手에잇고 二는通用이니一九一四年에通
用은全世界金의百分之四十이엿고 三은各國通用貨
의積立金으로되여잇나니라。
우리는以上叙述하야온 道程에依하야現代의原子
論이以上과如한地境에와서 一面으로는太量原子를
减量하얏스나 또他一面으로는微量原子를增量할수
잇다면 此等兩者는具히造金하는데에良方이오 또
此에依하야成功하리라한다。그래서實際로經濟界에
運用되기까지에至하리라한다 그러나미-테敎授나
쉘든敎授들의試驗은如何한方式에잇는지 普通發明
家들에게업지못한秘密은 今日까지公開치아니하엿
슴으로아지못하나 必是는以上兩種中의一에不過하
리라한다。
一九二四年十一月二十一日午後
쓰붉大學付屬圖書舘讀書室에서
社會的原則으로본朝鮮佛敎社會의革新
運動과그指導的原理
都鎭鎬
一、人間生活의理想과社會生活
의形態
사람의生活은 그를本能的으로보아三方面의發展
性을肯定하나니 生命的慾求로서살어갈거리를自然
物에서豊饒하게얻으려는必然的의運動이그하나라하
면 그는經濟的으로物的要素를보다더넉넉하게攝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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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 自己保存에對한自然的欲望을充足케하는生活
資料의獲得又는그에對한生產運動이라 이運動이가
장猛熱한곳에만 生產의豊餘와生活의繁榮을볼수잇
나니이運動의滿足을希念하는唯一한目的은自己充實
과自己延長의兩方面에있음을우리들은무엇보다도밝
히經驗하얏노라 좀더따지어말하자면 自己를充實
히하기爲하야서는모든文化를創造하야百花가爛熳한
봄철의世界에서長足活步로거닐기도하며 노래도하
며 누어둥글기도하야肉의萬全을享樂함과같이 靈
의快樂곳精神의滿悅을理念하는것이그하나요 自己
를보다더훌륭하게延擴하자는心願은곳生殖的冀望에
서種族的發展을보다더크게하고길게하고저함이니
時間的으로空間的으로 自己의生命을永遠無窮히擴
延하려는運動곳文明集積의運動이라 이세가지의運
動은人間生活의全的發展을槪括한것이오 그가人間
本能에서全分野를說明하게된所以는 本質的으로보
아서人間生活의全意義를그에確認케됨일세니 그가
人間生活又는人類生活의基調요理想이라 이三面運
動이完全한發達을遂하면人間生活의根本的理想을實
現함이오 基本的社會되는人間의個的生活或은團軆
的生活의最高한理想을漸次로實現하게되나니 그가
社會生活이라는方面으로轉換되여서는個的으로具有
되엇든內容그것이多方各樣의形態로서發露됨을우리
는잘짐작하노라 科學哲學經濟政治宗敎藝術等의가
진形態로써歷史的發達을이루워오며 그價値標準의
如何에딿아서人類生活의榮枯를判斷하기도하며 社
會活動의進滯를論定하기도한다 要컨대社會生活의
多樣形態는結局根本的理想을 最高의頂點까지實現
하려는努力으로 意識的表現을餘地없이하여감이니
이는人間相互의關心的關係로써能動的으로或은受動
的으로展開되여가나니라(以下全文削除)
新刋紹介
一光
이것은 佛敎專修學校校友會에서 經
營하는 季刋雜誌인데 該校에서 敎
鞭을執한여러 先生들을筆頭로하야 現
代에有數한모든 大家先生들의作品을
網羅하고 兼하야該校에在學하는學生
의試筆을嚴選케揭載된것인데매우一讀
할價値가잇스리라고
―――刋行은十月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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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大覺國師에關한硏究
內藤雋輔 述
梁建植 譯
(一)根本史料의批判 (二)傳記(가)誕生으로부터出家에이름(나)
出家得度에對한考察(다)出家以後入宋까지(라)淨源法師와의交遊
(마)入宋求法(바)歸國後의國師(三)國師의性情에對하야(四)業績
(가)諸宗章疏의刋行(나)著書에對하야(다)高麗佛敎史上의國師의
地位(라)通貨制의建言(五)國師의法弟에對하야 (附錄) 大覺國
師年譜
一、根本史料의批判
大覺國師의硏究에 對하야 그根本史料를 提供
하는것은 大覺國師文集、同外集、碑文으로는 林
存撰의仙鳳寺大覺國師碑銘、金富軾撰의靈通寺大覺
國師碑銘、朴浩撰의興王寺大覺大和尙墓誌銘의셋이
다。이제 이가튼史料에對하야 簡單한解說批判을
해보고자한다。
大覺國師의文集、外集은 다가티 지금으로부터 約
十年前海印寺에서 그版木이 發見된뒤로부터 비
롯오 세상에 알게되어 이에 國師에 關한硏究
가 족음밝히어지기에 이른것이니 가장 貴重한
材料이나 斷簡이 만흠은 可惜한바다。
(가) 文集 二十卷으로됨。金富軾의撰한碑文에 依
하면
門人集所著詩文、殘篇斷藁、存者無幾、紬次爲二
十卷、此皆卒爾落筆、非將以貽後也、故於生前、
有以其文、寫而刻之者、取其板焚之。
라 씨여잇스니 써 그內容性質을 簡略히 알수
가잇다。그런즉 國師의詩文은 그生前中에 喧傳
하야 門人中에는 開板을 企한者도잇섯스나 그
는 國師의不許한배되어 國師沒後 그門弟의손에
依하야 編纂된것이 이文集이라고 보겟고 그編
纂도 沒後 오래지아니하야 行한것으로 밋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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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內容은 國師自作의詩文、消息等을 蒐集한것인
데이제 文集을 보면 處處各卷끄테는
法性寺住持賜紫沙門慧觀書
라썻슨즉 僧慧觀이란者가 編輯에 關係가잇섯는
줄로 생각한다。그의傳記에 對하야는 알道理가
업스나 靈通寺大覺國師碑의碑陰에 쓰인門人名簿
를 보건대 重大師의部에 쓰인慧觀이잇스니 이
는 아마 가튼사람일것이다。
(나) 外集 十三卷으로됨。國師와親交가잇든支那
僧俗의消息及詩와 金富軾所撰의碑銘과 林存撰의
碑銘과를 실엇고 慧觀의奧書가잇슨즉 이것도 또
한文集과同時에 慧觀等에 依하야 編輯된것이라
고 밋겟스나 金富軾의撰文은 다홈에 뵈이는것
과가티 仁宗四年乙巳에 撰하고 林存의撰文은가
튼仁宗十年辛亥에 된것인즉 이두글은 아마慧觀
等의編輯以後에 加한것으로 생각한다。
이에 注意할것은 이文集並外集에는 現存板以
外에 다른 板本이잇는것가트니 今西(龍)氏의注
意에 依하야 調査하건대 內藤(湖南)氏藏의國
師文集의最後에 잇는從諫의書를 外集第七의두장
째되는從諫의書에 比하면 分明히 그別板임을 알
겟다。따라서 文中의日時等에 對하야는 다른碑
文拓本等을 參照할必要가잇다。
(다) 開城靈通寺大覺國師碑 朝鮮金石總覽上、三○五頁朝鮮佛敎通史下、三○五頁
外集第 十二拓本內藤氏藏 所載 撰者金富軾文宗二十八年甲寅―毅宗五年辛未은 麗
史九十八에 실린傳記에 依하건대 肅宗때에 登第
하야 睿宗 仁宗에 歷仕하얏스며 文武兩道에 達하
고 仁宗때에는 西京의內亂을 平하야 功이잇섯
고 有名한三國史記를 비롯하야 睿宗實錄、仁宗
寶錄을 編하얏고 毅宗五年에 七十七歲로써 卒
하얏다。그의所撰의國師碑銘에 依하면(外集所載)
師甞召臣先兄釋玄湛、與之游甚歡、相知之分、非
啻期牙、臣由是得以一謁、容色啐淸、若觀靑天白
日、辱賜之坐語、自晝窮夜、試問易老莊一二大義、
臣偶能言之、他日數稱之曰、湛師弟亦才子也、居
無何、師入滅。
이라고 썻다 써 國師와 그와의關係를 밝히알
수가잇다。그런즉 그는 國師의晩年에 그知遇를
받은者요 國師示寂할때는 그의二十七歲때이다。
國師의達識이 能히 그의頴才를 洞察하고 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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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國師의慈風을 울어러 不期然히 둘이 서로
融合하얏슴을 보겟다。偶然히 仁宗이 卽位하야
四年되는乙巳秋七月庚午에 國師의門人都僧統澄嚴
等이 先師의行事를가추어 알외되。
吾先師即世久矣、而碑銘未著、常懼其德業有所磨
滅而不記、惟上哀憐之、使之裒撰、以示久遠。(外
集所載金富軾撰文)
仁宗이 또한 이를 嘉納하야
於乎 師於余爲從祖、而遺功餘烈、炳然可觀、其
可蓋而不章乎。(同上)
아하야 이에 當代唯一의文豪金富軾에게 命하야
碑銘을 撰함으로써하얏다。그가 辭讓하야 命을
받지안는다하드래도 그의 國師에 對한關係가 이
미 깁고 그知遇를 받음이 또한 엷지아니함으
로 스스로
噫 士爲知已者用、假令死而可作、雖布髮而藉足、
亦所忻慕焉、况以文字、挂名於碑石之下、豈不爲
榮幸也哉。(同上)
아 말하고 國師의高弟惠素의撰한行錄十卷을 基
礎로하야 이碑文을 撰하얏다。(破閑集中二四頁)따라
서 그撰한바碑文은 가장正確하고 또詳細한것이
다。現存한碑文은 알애가 脫落한곳이잇스니 外
集所載의것과 서로 叅照하야몸을 要한다。
(라) 仁同仙鳳寺大覺國師碑 朝鮮金石總覽上、三二九頁朝鮮佛敎通史下、二九九頁
外集第十二拓本內藤氏藏 所載 右碑文의冒頭에
上御宇十年 歲在大淵獻壯月七日、詔臣存、撰海
東天台始祖大覺國師之碑銘、即具表辭以不能、而
不獲命、敢再拜稽首而言。
이라고 쓴以外에는 撰者林存의傳記도 不明한즉
詳細한것은 알수가업스나 爾雅釋天의條에 依한
즉 大淵獻이란 亥年이요 壯月이란 八月을말한것
이다。이제 國師의沒年에 갓가운王의十年에 이
해를 求한즉 仁宗밧게 다르니는업다。따라서이
碑文은 仁宗十年辛亥八月에 지은것으로 金富軾
의撰文은 華嚴의人으로의國師를 撰하고、이는天
台中興의祖로의國師를 記한것이다。
(마) 開城興王寺大覺大和尙墓誌朝鮮金石總覽上、二九三頁、朝鮮佛敎通史下
三一四頁、拓本內藤氏藏所載 이誌文의撰者朴浩에 對하야는아
모것도 알수업스나 그製作의時代는 拓本의末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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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大宋建中靖國元年大遼乾統元年十一月四日刻
이라고 써잇슨즉 바로 肅宗六年辛巳即國師의沒
年에 當하며 그러고 歿後에即時 撰한것이니 撰
文이 가장 簡하나 또한 要를 얻엇고 國師碑
文中最古한것으로 그示寂前後의日時는 가장 바
르다。
二 傳記
傳記의史料는主로金富軾所撰의碑文에依한故로引用中
아모말업는것은右碑文에依한것이다。
(가) 誕生으로부터出家에이름。
大覺國師는 高麗文宗王의第四子로 母는 仁睿
順德太后李氏라이르며 文宗九年乙未九月二十八日
에 낫다。이름은 煦、字는義天、大覺國師란謚號
다。그後國師三十二歲때 宋의哲宗이 即位하자 그
諱煦를避하야 뒤로는 이름을 부르지안코 字를
썻다。
師少超悟、讀書屬辭、精敏若宿習、兄弟皆有賢行、
而師傑然出鋒頴。
이는金富軾이 國師의幼時를 評한말이니 그聰明
을可히써 엿볼것이요 聖人의道에잇서서 性得
이요 生知라 可히 이를만하다고讃한것도 또한
까닭이업슴이아니다。
文宗이 一日諸子를 모아「孰能爲僧、作福田利
益乎」아하고 무렷다。國師는 곳 起立하야 出世
의뜻잇슴을 밝히니 마츰내 文宗은 十九年乙巳
五月十四日에 景德國師를 불러 內殿에서 剃髮
하고 師를 따라나아가 靈通寺에 잇게하니 時
年이 十一이엿다。
(나) 出家得度에對한考察
國師가 이가티 雋敏한재조를 가젓스며 또王
子의貴함으로써 그出家得度한理由가 어떤것인가함
에 關하야 이제考察할必要가 생겻다。即當時佛
敎가 宮廷에서 얼마나 尊崇을 받엇는가함에對
하야 一瞥하지아니하면 아니되겟다。
우리가 麗史를 펼처노코 文宗의條를 一覽하
면 特히 注意를 끄는것은 王이 仁王、般若、
華嚴等의道塲을 베풀고 佛事를 營하며 或은 寺
院에 行香함이 在位三十七年間 거의六十回에 미
치고 만흔해에는 一年에 八九回나 達하며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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菩薩戒를 밧기 前後五囘에 미친것이니 海東佛
敎의盛時인高麗時代이지마는 또한 다른諸王에서
만히 보지못하는배다。써 大略 文宗崇佛의熱烈
하얏슴을 알수가잇고 더욱이 九年乙未十月丙辰
即國師誕生後 얼마아니되어。
寡人繼統、不修德政、灾變屢見、庶憑法力、福利
邦家、其令有司、擇地創寺。(麗史卷七)
라 制하야 造寺의希望을말하야 門下省의反對에
도 不拘하고 翌年二月에는 興國寺의工을 德水
縣에 일으킴도 또한 國師의出家와 一脈의因緣
이 업다할수업다。다시 十二年戊戌春二月의條를
보건대
都兵馬使奏、界內鐵貢、舊充兵器、近創興王寺、
又令加賦、民不堪苦、請减鹽海安三州、丁酉戊戌
二年、軍器貢鐵、專供興王之用、以紓勞弊、從之
(麗史卷八)
라 적혀잇서 文宗이 興王寺竣成을 爲하야는 國
力을 기우림도 辭讓치아니한모양이 엿보인다。
故로 十六年壬寅八月己酉에는 興王寺에 行幸하
야 그巨構가 장차 일우려함을보고 制를 내려
大赦를 行하고 董役官吏에게는 賞을 加하야 勤
勵하야 二十一年丁未正月庚申에 이르러 竣成하
얏다。凡二千八百間、前後費한바가 十二年이니 그
規模의큼을 可히 알겟고 그所要의工費도 麗史
에는 적히지아니하얏스나 대개 莫大한額에 達
하리라고 생각한다。이와가튼큰工事는 信佛의念
이 두터운사람이아니면 到底히 不可能한일이니
그慶讃會를 擧行함에 諸方의僧侶가 群集하얏고 다
시 戒行잇는者一千人을 뽑아 會에나아가 常住
케하엿스며 戊辰에는 特히 燃燈大會를 興王寺에
設하기五晝夜이엇다 麗史에는 그때의光景을 叙
하야
勅令百司及安西都護開城府廣水楊東樹五州、江華
長湍二縣、自闕庭至寺門、結綵棚、櫛比鱗次、連
百相屬、輦路左右、又作燈山火樹、光照如晝、是
日王備鹵簿、率百官行香、施納財襯、佛事之盛、
曠古未有。
라한것으로써 그壯觀을 알수가잇다。當時는 北
方遼와의交涉도 顯宗十年己未의和親以來 極히 平
和한狀態에잇고 宋과도 또 公然은아니지마는 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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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의徃來가 頻繁히 行하고 高麗의上下 漸次平
穩하야 文物이 또한 가춰지랴고하든때니
大倉之粟、陳陳相因、家給人足、時號太平。(麗史
卷九)
이라고 일커럿슬뿐만아니라 文宗은
文宗躬勤節儉、進用賢才、愛民恤刑、崇學敬老、
名器不假於匪人
威權不移於近昵
雖戚里之親、無
功不賞、左右之
愛、有罪必罰。
(麗史卷九)
이라고 李齊賢이
賛함과가티 中興
의賢主로 일커른
배되고 그리고 崇
佛의念이 두터웟
스며 저有名한高
麗板大藏經의第一
回雕造는 妻木直
良師의說에依하면
(東洋學報第二卷第三
號) 顯宗即位의初年에發願하야 文宗即位十二年頃에
이르는 約四十七年間에 完成한것이다。써 文宗
大覺國師尊影(順天仙岩寺大覺庵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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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麗藏開板에 잇서서 紀念할王임을 알수가잇다
이와가티 君臣上下가 서로 거나리고 太平을 讃
美하고 謳歌할지음이엇는故로 이러한大伽藍도지
엇고 佛敎도 盛히 行한줄로 생각한다。그러나
이에 注意할것은 當時沙門에 몸을 託하야 避
役하는者、或은 亂暴狼藉하는者가 적지아니하얏
슴이니 文宗十年丙申九月의制에
釋迦闡敎、淸淨爲先、遠離垢陋、斷息貪欲、今有
避役之徒、託號沙門、殖貨營生、耕畜爲業、估販
爲風、進違戒律之文、退無淸淨之約、袒肩之袍、
任爲酒罌之覆、講唄之塲、割爲葱蒜之疇、通商買
賣、結客醉娛、喧雜花院、穢臭蘭盆、冠俗之冠、
服俗之服、憑托修營寺院、以備旗皷歌吹、出入閭
閻、搪揬市井、與人相鬪、以致血傷、朕庶使區分
善惡、肅擧紀綱、宜令沙汰中外寺院、其精修戒行
者、悉令安住、犯者以法論。(麗史卷七)
佛敎를 篤信하기 이와가튼文宗이 이러한制令을
發하얏다하는것은 얼마나 當時의僧侶가腐敗하얏
나하는것을 알기에有餘한것이다。佛敎가 아즉盛
치못하며 抑壓을받는時代에는 决코 이러한腐敗
墮落僧이 나올理는업다。故로 이記事는 돌오혀
佛敎가 上下의信望을 붓잡아가지고 盛히 行한
結果에 不外한것이니 佛敎流行의反證이되는것이
다。文宗의信佛은 다시더나아가 十三年己亥八月
에는
兩京及東南州府郡縣、一家有三子者、許一子年十
五、剃髮爲僧
하라하는制가 나다십히하매 마참내 그造塔創寺
의弊를 指摘하야 麗史卷九에는
是殆將比擬蕭梁、而不知欲成人之美者、歎息於斯
焉耳
라고 李齊賢으로하야금 嘆息케한쯤이다。게다가
國母仁睿太后도 또한 性이 佛敎를조와하야 나
종에는 國淸寺의建立을 發願한이다。(麗史卷八十八)
이러한狀態인故로 文宗이 王子의出家를 바란
것도 恠異치아니한일이니 一人出家에 九族上天
이라는 생각이엇는지 아닌지는 別問題로하고라
도 自己의篤信하는宗敎를爲하야 나의愛子를 出
家케하야 그弘宣에 좃게한다는것은 自然의成行
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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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가튼佛敎信仰의사이에 成長한 王子義天이
快히 父王의뜻을받아 出家한것은 무슨異常한것
이아닐뿐만아니라 그自身으로도 또한 이러한環境
의影響을 받고야 自然히 沙門修行의뜻이 아니난
다고도 말할수업슬것이다。國師出家後一七日을 지
내어 文宗은 親히 靈通寺에 行幸하얏다。이는
아마 王子出家에 對한人事와 달리로는 王子에
對한誡勵인줄로 생각한다
(다) 出家以後入宋까지
國師出家하든해 冬十月에 佛日寺의戒壇에 나
아가 受具하고 華嚴經을 배왓다。스승景德이 卒
한後로부터는 그徒와 講學을 마지아니하얏고 或
은 또 諸宗學者와 서로 講論하야 頓漸大小乘
의經律論章疏를 다探索하얏스며 다시 孔老의書
子史集錄百家의說에 미치기까지 精識지아니하는
것이업섯다。金富軾이
亦甞玩其菁華、而尋其根柢、故議論縱橫馳聘、袞
袞無津涯、雖老師宿德、自以爲不及、聲名流聞、
時謂法門有宗匠矣。
라 적은것을 보면 壯年에 이미 非凡한學僧이
엇섯듬을 알겟다 이로써 일즉이 文宗二十一年
丁未七月乙西에는 號를 祐世라 賜하고 僧統의
職을 주엇다。이것이 國師十三歲의때다
그러나 文集第十三與內侍文冠書에 依하면 참佛敎硏究는 열
六七歲頃부터 비롯된듯하다。後年의大事業인 諸
宗註疏蒐集의志願도 十九歲때부터 發하얏다 文集第十
四、代世子集敎藏發願疏이리하야 스믈세살때부터 貞元新譯華
嚴經並疏合五十卷을 講하고 그해에 마첫다한다
文集第二十、國淸寺講徹天台後言志示徒爾來入宋求法까지 百千의法門을
演說獅子吼한것이다
(라) 淨源法師와의交遊
國師는 일즉이 非凡한재조를 품ㅅ고 佛門에 들
어가 忽然 五敎에 通하야 名聲이 隆隆히 들
어낫스나 다시 깁히 敎學의完成을 期하랴하야
일즉부터 入宋의뜻을 가지고 晋水淨源法師가 慧
行으로써 學者의스승됨을 듯고 가끔 舶賈에 托
하야 文書를 徃復하야 禮를 닥근것은 金富軾
의撰文에 뵈이는바이나 이제 이를 文集及外集
에 거둔國師와 밋淨源의글에 依하야 생각하건
대文集第十、上淨源法師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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伏念某、本以人微、加之地遠、未參龍象之高會、難
聽雲雷之妙音、………是敢托千里之歸▼(舟+皇)、貢一封
之禮牘、期於遠達心所未遑、洎去年八月十五日、
都綱李元積至、得捧二月書敎一通、並手撰華嚴普
賢行願懺儀、大方廣圓覺懺儀、大佛頂首楞嚴懺儀、
原人論發微錄、還源觀疏鈔補解、盂蘭盆禮賛文、
敎義分齊章科文等八本、共盛一篋者、跪受以還、
披閱无斁………曰四十六冊、皆班橫經之徒、俾其朝
面翫、夕而思、見此言已、喜於締緣之廣矣。
라한것을 보면 이글은 分明히 入宋前凈源에게
보낸글인줄을 알겟다。이제 이글을外集第二淨源書第三에
正月十有九日、都綱李元積至、得去年九月書、辭
意勤拳、才識寅亮、………所惠華嚴孔目內章、曁
貞元新譯經疏等、凡四十六冊、元積至、曰皆班橫
經之徒、俾其朝而翫、夕而思、儻加▣勤度、通二
疏之格訓、由二玄之更資者也。
라함과 比하면 前者는 이淨源書의 答書임이 分
明하다。그리고 압헤「上源法師書」의다음에
因風而來、口授心傳、則針芥雖遠、悅高下之相投、
笙磬同音、穆宮商而切響、見此言已、企於受授之
相契矣。
라한것을文集第五、請入大宋求法表의
於去年八月、得大宋兩浙華嚴闍梨淨源法師書一道
其書云、因風而來、口授心傳、則鍼芥雖遠、悅高
下△△△ △△同音 穆宮商而切響
이라는것과 比較하면 이上表에 보이는 書一道
라는것은 前記外集第二淨源書第三를 가르친것임은 設使
其書云因風而來云云이라는말이 現行本中脫落하야
볼수가업다하더래도 이淨源書의答書인「上淨源法師書」
中에 同一한文句가 引用됨을 보면 明暸한것이
다。따라서 「請人大宋求法表」와「上淨源法師書」와는
同年의作이 아니면 아니될것이다
그리하야 前揭한「上淨源法師書」의다흠에는 淨
源의原緣奇遇에 感하야 곳 가서 禮를 말하고
십흐나 事情이잇서 中止하게되어 대단히 痛心
하얏다。孤山法師의 示範과가티 無理히 恩情을
끈코 가며는 조치마는 그러나 法을 爲하야 義
를傷할가하야
是用不敢以絶於恩、不敢以傷於義、乍寢西遊之計、
但增中輟之咨、汲汲於時行以行、忽忽於緣會而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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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써서 모처럼인招待를 今番은 應키어려우나
때를 얻어 面會하고저한다는뜻을 말하얏스며 淨
源은 이편지를 받고 다시 答書를 내여 멀리
山海를 隔하야 서로 모히지못함을 말하고 또
然而不敢以絶於恩、不敢以絶於義、此亦推心考道、
稽古前修、………近著華嚴疏鈔音義釋文、並諸文首
序、而講下諸生、嘗編淨藁、隨此附達、惟冀檢至、
………(外集第二、淨源書第四)
라함에 依하면 이「乍寢西遊之計」라는것은 父
王文宗에게 請하야 不許되어 마참내 入宋을 中
止한것으로 보것이요 그리고 前의「請入大宋求法表」
는 이「上淨源法師第二」와 同年의作인故로 이또한
文宗에 바친表임을 알겟다
그런즉 國師와 淨源과의交遊는 이미 文宗의
晩年부터 비롯하야 서로 書籍의交換을 行한것
이 分明하며 國師가 일즉이 淨源의影像을 얻
어 觀嘆을 限업시하고 또그文軸을 얻어 玩味
를 마지아니한것은(外集第二、淨源書第一)에도 보이는배다
爾來 두사람의交遊는 끄치지아니하야 國師의兄
順宗이 薨하매 當時 祥符寺에잇든淨源은 追薦
하는䟽文을 보내엿다(文集第十、上淨源法師書第四)
梵語와朝鮮語와의關係
安自山
一
余는累累히梵語와 朝鮮語와의 親近된것을公言
한일이잇섯는지라 世人은或是數萬里遠方인西域의
語가何等影響을貽할가하는疑問을懷할듯하다 그러
나史的考察又는科學的慧竇를借하야調査하는者가잇
스면 余의私見을틀리다못할지라 昔에李德懋도靑
莊舘全書卷五十七에말하되
東國多梵語、東國自三國至高麗、尊尙釋道、故
方言徃徃有梵語。梵語摩㝹舍喃、此云人、東國方言
人曰사람與舍喃相近。摩羅此云鬘、東國方言首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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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鬘即首髮。阿摩此云女、東國方言母曰어미、
北道人呼女人曰어미。普陀此云海、東國方言海
曰바다、此其聲也。
라하다 黃胤錫의頤齋集卷二十五에는
先是三國之世、佛敎先至、梵語之傳習亦多。如
人年壽多少必曰羅、此則西域呼年爲腦、腦轉而
羅也、蓋一年一臘如計年以春若秋、而僧家至今
呼壽爲臘、今華語臘不用終聲則近羅也。又如風
曰波嵐、古云勃嵐、此則西域所呼迅猛風爲毗嵐、
亦爲毗藍之轉音也。又如楊枝曰伯等兒加支、此
則西域所呼鞞鐸迦支之音也。又如野草靑花曰伊
羅兒伊、此則西域呼靑色爲伊蘭里之音也。又如
我國所謂雞冠花曰曼等羅味、此則西域所呼曼陀
羅花者也。是則梵語亦與方言幷用矣。
라하다 右兩氏의說은此에對한先覺이라 其言은다
比較的說明이얼마콤短片的으로서通俗的見解어니와
다시李義鳳의古今釋林第十一冊釋氏語錄條에보면그
考證的解說이足히比較硏究할만하다
淸 衆 書叙指南、呼僧曰淸衆。
鞞嵐婆 釋氏要覽、有風名鞞嵐婆、此風
常吹、地動不息。
尸 羅 水經注、竺刹尸羅國、漢言截頭也、
佛爲菩薩時、以頭施人故因名國。
이는即其解例라 大抵古代에잇서佛敎가크게弘布되
고모든藝術이그의影響을受하야進步된史的面影에對
照하야보면梵語의幷用한것을알기가容易한것이라
一層進하야覗하면 新羅로부터高麗에至하기까지 文
學界의牛耳를執한者는佛敎徒 即漢學을敎導한者는
만히僧侶等의口訓에잇섯고 新羅時에는國敎文書又
는書籍著述가튼것도重大한것은다僧侶의手를經하야
온듯하다 是故로梵語의幷用된것은二大淵源이잇스
니 一은佛敎의佈傳에依하야梵音이親近하야진것 一
은僧侶가文學의先導者가되야間接으로梵語를使用한
것 이것을한번考證에憑하야道破할진대 此의理解
를許諾하기容易하다
海印寺記 崔致遠 東文選六四
甞聞大一山釋氏、援金言而驚沙界云、戒如大地、生
成住持、蓋發心業之謂也、故大經曰、世及出世諸善
根、皆依最勝尸羅地、然則地名相協、天語可尋、
國號尸羅、實波羅提與法之處、山稱伽倻、同釋迦文
成道之所。云云
에依하면 新羅의國名、伽倻山等의地名은다佛經의
語로써變한것이完然하다 伽倻山의本名은未詳하나
新羅의名稱을볼진대 晉書苻堅傳에新羅를薛羅라하
얏스니 薛의古音은涉으로서 薛羅는即徐伐羅의音
인바 本名은尸羅가아니요 三國史記의言과가티徐
伐羅를新羅라한것인대 佛敎가興한后에는新의訓은
「새」라故로佛經에잇는同書인國名尸羅로換한것이分
明한것이라
優婆塞戒經 卷一
南方即是尸羅、何以故、尸羅名之爲右、若人供
養、亦得增長壽命與財。
始祖檀君의名號로보아도亦是그런듯하다 始祖의
本號가何인지今에溯考키不能하나檀字에就하야는佛
經의語로比키可하다 三國遺事에는壇字로썻스 나元
是遺事란冊은僞證贋作의說이多한次로信憑키不可하
나 모든歷史의通例는다木邊에썻고 世宗實錄卷百
五十四에는檀樹神으로婚하야生子하니名曰檀君이라
한지라
古記云、上帝桓因、有庶子、名雄、意欲下化人間、
受天三印、降太白山神檀樹下、是謂檀雄天王、令
孫女、飮藥成人身、與檀樹神婚而生男、名檀君。
이라한것을優婆塞戒經의說과比凖하면相符한것이라
同經에는써하되
東方即是檀那、何以故、始初出者………若有衆生、
能供養彼檀、則爲增長壽命與財。本經에는檀波羅密이라하엿스나珠
林傳에는檀一字
라하니 即東方은檀那라故로東方人이檀을尊崇하면
壽命도增長하고財物도可富한다한즉 東方인朝鮮人
이佛敎를崇信하는同時에佛經에語인檀을從信하기는
當然한信仰에서出한것이라 檀王이니檀樹神이니하
는名號도亦是佛語라
佛本行經
輸頭檀王、悅頭檀王。
方廣大莊嚴經 卷三
諸比丘、輸頭檀王、爲阿斯陀仙及那羅童子、施
設種種飮食上妙衣服、右遶頂禮、時阿斯陀仙、
撫那羅童子左肩、乘虛而去。
栴檀樹經
維耶梨國人、五百人入海採寶、置船步還、經歷
深山、日暮雨雪、失去徑路、啼哭呼天、有大栴
檀香樹、樹神謂窮人言、可止留此、………世人以
此檀之香、爲衣爲齋、又爲神像。百病通治。
等說과相比하면 朝鮮太古의傳說이佛說과偶合인지
모를것이나佛敎信仰時代에서出한文字는佛化한것이
라고疑心치아니할수업다
西域記
大雪山中、有蘇伐刺拏瞿怛羅國、唐言金山。
에依하면 新羅의蘇伐公이니金城이니한는것도梵語
의出處로보기可하다 또한雞林이란것도佛語로看做
할수잇스니 雞園聖地는本是佛所去處로말한바 釋
迦方志에屈屈吒阿濫摩寺가此라 風流郞을「건달」
이라하니 이는撰集百緣經第十七에보이는乾闥婆와
同語라 法苑珠林傳에引用한
智度論云、天帝釋、具依梵音、應云提婆那因釋迦
者、秦言能也提婆言天因言主合而言之、是能天主也。
因을主라한것은 即「님」과相同하니 古語에는ㄴ、ㅁ
을相通한고로「닌、님」이同語니라 其他太白山、金
剛山、五臺山、仁王山 等地名은다佛語오 珠林傳
二十九感通篇에잇는 室羅伐 刼比羅伐 等의伐이
란地名은 三國史記에地名인
比斯伐 音汁伐 及伐 伊伐
毛火 比火 加主火 斯同火
의火、伐等과同音이라 大抵梵語가朝鮮語에만親近한
것이아니라佛敎가傳播된地方에는다그影響을受하얏
나니 夢溪筆譚卷三에
楚詞招魂尾句、皆曰些、今䕫峽湖湘及南北江繚
人、凡禁呪句尾、皆稱些、此乃楚人舊俗、即梵
語薩縛訶也、三字合言之、即些一字也。
라한것은支那語에도亦是梵語의混有한證據라 宋魏
了翁의著인經外雜抄卷二
或云、反切之學、來自胡僧、因釋經而流行、不
知是否、然、亦有一驗、今西羗之人、忽劣呼爲靴、
筈陀爲科、▼(彳+乞)兜爲鉤、突欒爲團、窟籠爲孔、南蠻之
人、以不闌爲班、不乃爲擺之類、不可勝擧、深山窮
谷之中、遞相承久而不改、則反切之自來亦遠矣。
依하면支那의子母音合法은梵語文法에서來한것이라
支那學者는反切法이佛敎輸入하기前에已有라하나了
義가韻鏡三十六字母圖를作하고 幽州僧行均이十六
萬字를解하야龍龕手鏡四卷을作한後로自하야支那의
音學이成立한것이니 夢溪筆譚第十四에「音韻之學
自沈約爲四聲、及天竺梵學、入中國、其術漸密。」이
라한것이即此를謂한것이니라
三國時代에官名、人名又地名等을漢字로書하되。
音意를混用하야朝鮮固有語를記錄하고 또는鄕歌를
書함에도亦然이라 此는一種의綴音文字의端緖를作
한바로서梵文의規定을効한것이라 崔孤雲의智證王
碑文에「語襲梵音、彈舌足多羅之字」라하엿스니 이
는王이梵語를能通한것이라함이나 當時國王以下智
識階級은다梵語를襲用한일이多한듯하고 同時에㭝
文이流行하야一般社會에連布한듯하니 敎分記圓通
鈔에잇는均如傳에보이는바崔行歸說에「鄕札似梵書
連布」라하엿스니 鄕札即吏讀式의文法이行할새梵
書가티連布하다하니 當時에鄕札도廣行하고梵書도
크게流行하든것을可히推測할것이라 그처럼梵書가
弘行하고佛敎가大傳할時에在하야梵語의流行됨은不
問可知의일이라 더욱僧侶가文學의先導者가된以上
에는어찌梵語의使用이적다할가
李齊賢의櫟翁稗說
又問臣曰、我國古稱文物、侔於中華、今其學者、皆從
釋者、以習章句何耶、對曰………不幸毅宗季年、武人
變起、玉石俱焚、其脫身虎口者、遯逃窮山、蛻冠帶
而蒙伽棃、以終餘年、若神駿悟生之徒是也、其後國
家、稍復文治、雖有志學之士、無所於學、皆從此徒
而講習之、故、臣謂學者、從釋子學、其源始於此。
에依하면李氏는얼마콤慕華思想을尊키爲하야僧侶에
게受學하는淵源을淺近에付하얏스나其實은新羅時부
터傳來하는 遺風인바 僧侶가文學의 先生됨인 緣故라
高麗史閔頔傳에볼지라도
國俗、幼必從僧、習句讀、有面首者、僧俗皆奉
之、號曰仙郞、云云
從僧講學은遺來之國風으로된것을可知라 이러틋僧
侶가佛經을說法함에던지漢文을講解함에던지智識階
級의中樞가된以上엔그의使用하는梵語가크게流行될
것은定한理致오 漢文과佛經을講說할時에도印度의
名詞又事實 支那의名詞又事實이當時朝鮮에업는境
遇에는 不可不便宜上으로 原語即梵語를使用할지오
漢文에잇서도朝鮮語로說明키不及한것은自己네信仰
하는梵語로喩햇슬지라 이는只今에流行하는西洋語
를思하야도推測키可하니 今日大學에서는原語即西
洋語를多用하고 新聞雜誌上의文句를볼지라도外語
를多用하는일은우리가目數하는일이라
以上에述한바梵語가流入햇다하는것은重譯的即漢
文으로飜譯한것을襲用함에不外한듯하매 以上에證
據는다漢文的梵語로서오직名詞短語를採用함에不過
한듯하다 그러나一層進하야印度原語와朝鮮本語와
를한번比較硏究하면 오직短語에限한것이아니라語
音의大部分이彼의影響을受하야均齊되고又는文法上
變化를한것도그에由함이多한줄로觀察하니 今에余
가吐說코자하는것은此問題에在하다 이語音問題는
實相前人未發의新硏究라할터인데 或是시럽슨소리
나아닌지讀者의高評을乞할새 下囘를待하야申述코
자하노라 (未完)
禁慾ㆍ戀愛ㆍ宗敎
擔雪學人譯
本誌今年新年號에 日本禪界의大學者인 鈴木大拙師의一文
을紹介한지가 발서半年이나넘어되엿다。數日前에 그의近
業인隨筆「禪」이라는新刋册子를 멀리京都로부터보내줌을
받고、다시한번師의風丰을多少라도彷彿하기爲하야 그中의
一文을紹介하여보려고 이譯筆을든다。
이것은師自身이 그緖言에說明한바와가치佛敎的宗敎學을創
說하고、兼하야 常識잇는사람들에게 宗敎的反省을일으키
는 機會를주기爲한 一種의宗敎學的論文이다。
師는 現在大谷大學에서 宗敎學講座를担任하야 師의獨特
한禪의立塲에시 宗敎學을講議하는碩學이오、또 日本禪界에
有名하던 鎌倉圓覺寺宗演和尙의高足인 居士임을附言한다。
어느宗敎를보던지 모다禁慾生活을要求한다。放
縱主義의實行과 宗敎生活과는 絶對로一致하지안
는것이라고 當初부터 作成되여온것갓다。이것은
當然한일이라고 나도생각한다。宗敎는元來가 우
리들로하야금 有限的欲望의束縛에서 解脫시기려
고하는 努力이다。그런故로 宗敎生活의第一步는
이欲望이라는것을 禁防하거나 節制하거나 하는
데두지아니할수업다。그까닭에 佛敎나 基督敎나
印度敎나 勿論하고 적어도 發達된體型을具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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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敎에잇서서는 어느敎든지 一種의戒律을要求한
다。그程度의多少와强弱은잇슬망정 自律的或은他
律的으로 禁慾主義를實行하거나 또는實行하려고
努力하는것이普通이다。中古時代의基督敎徒들이行
한苦行이라든가 現今印度에서 아직까지도 目擊할
수잇는 諸種의奇怪한修行法가튼것은 近代的思想
을가진눈으로본다면 소름이끼칠만한일도만타。그
러나 그들의誠心과誠力에만은 敬服아니할수업다
禁慾을大體로보와서 二種에分할수잇다。하나는
그滿足이 自己의存在에만限한것이오、또하나는 自
己의存在를지나서 他人에게까지미치는것이다。그
러나이두가지中에어떤것이든지 滿足을要求하는程
度가 一定한限度를넘어가게되며 直接間接으로 社
會에害毒을끼치는것은 勿論이니、다만 하나는自
家存在上에만限한것이오 또하나는 種族上에까지
影響을미치게하는것이란말이다。例를들어말하자면
佛敎에서 肉食과 飮酒와 娶妻를 破戒行爲라고
보는데 그中에서 飮酒와 肉食은 自家의欲을充
하는데 不過하지마는 娶妻로말하면 本能은自家
의存在에서分出하엿다할지라도 結局은種族의問題
이다。自家의存在에만關한欲이면 그것을節하거나
絶한다할지라도無關하나 種族에關한本能이라는것
은 設使直接으로는個人의欲樂으로經驗된다할지라
도 結局은人類全體의 繼續問題이다。宗敎가個人
의經驗하는 直接欲樂을制禦하려다가 도리혀宗敎
의眞理를體得할存在의自體까지滅却한다는것은 넘
어도矛盾되는듯하고 꾸부러진뿔을펴려다가소를잡
는類가아닐가도생각한다。何如間欲에二種이잇는것
만은分明히알수잇다。
自己에게만關한禁慾도 同一한動機에서만 나오
는것은아니다。술을먹는것이 못쓴다는것은 腦의
作用에障碍가된다는뜻이라고할것가트면 肉食을禁
하는것은 生物을殺害하지안는다는 慈悲心에서나
온것이라고할수잇다。또는 腐爛한死屍를 食料로
한다는것은 極히不淨하다는 潔癖에서 나온것도
잇슬겻이다。또 奢侈한生活을하지안는것은 그理
由가 單純히禁慾에만잇지안는것도잇슬것이다。天
與의物品을 함부로使用하는것이 惶悚하다는생각
도잇슬것이오、또는 남들은 生活에만必要한 衣
服이나 住宅이나 飮食이나 娛樂도 얻을수업는
사람도잇거든 自己만이 必要以上의것을 取用하
는것이 참아못할일이라고하는 社會的意識에서 나
오는것도잇슬것이오、또는 自己의 思想과 精神이
全然히다른方面에集中하여 잇는故로 衣食住가튼
것에 用慮할餘暇가업서서 그런사람도잇슬것이니
이런것은 禁慾이라는消極的文字로 形容할것이아
니라 제절로簡素하게되는것이다。그러나 이러한
데라도 宗敎的意味가 아주업다고는할수업다。
이와가치 禁慾主議의內容은 여러가지가잇겟지
마는 結局은自己의存在를最少限度의要求로써 保
存하야간다는것이다。그런대 娶妻生活을禁하는것
은이定義에合當치아니할뜻하다。娶妻는自己의存在
보담도種族繼存을爲함이니 어느意味로말하면 自
己를犧牲한다는點으로보와서 禁慾主義에適合하다
고도할수잇스나 그와反對로 獨身主義가即禁慾主
義라고까지 생각들을하게된것은 무슨理由일까。
現代의佛敎僧侶들이 或술을먹거나 고기를먹더라도
女色에對해서는 絶對로禁慾을한다면 그냥그대로
훌륭한僧侶라고보지마는、아무리學問이만코 修行
이잇는 禪僧이라도 娶妻를하엿다든가 妾을두엇
다면 그다지조케 여기지안는것은웬까닭일까。男女
關係라는것은 單純히 利己的主義的欲樂으로만볼것
일까。그리고 그것이 어찌하야 禁慾하지안흐면
아니될것인가。禁慾主義의是與非는結局宗敎上獨身
主義의是與非問題가되고마는것갓다。
이와가치되면 性的生活이 무슨理由로 宗敎的
生活과맛지안는가를 알아보고십다。性的生活이아
니면 種族의繼續은不可能하고 또 宗敎的生活이
아니면 人生의眞意義를알수업다고한다。種子가絶
亡되고보면 眞意義라는것을 알려줄수도업슬것이
다。그리고보면 어떤것을세우고 어떤것은버릴것
인가。或은이矛盾되는두가지生活中어떤便에不合理
한點이잇서서 그不合理한點을곳치기爲하야 不知
不覺中에 兩極端으로가버리고말게된것인가。果然그
러타면그不合理한點은性慾便에잇는가 宗敎便에잇
는가 또는 兩便에다가치잇는가。이런問題를어떠
하게解决을하면조흘것인가。이것을細密하게硏究하
는것은 매우興味도잇슬뿐더러 더욱이人生에關한
實用的問題일것이다。
事實上으로보면 宗敎生活은 歷史上어느宗敎를
勿論하고 性慾斷絶로써 理想을삼어왓다。그리고
人格의完成은 이理想이어느程度까지 實行되엿나
하는것을가지고 判斷하여왓다。이것은 더욱이佛
敎와基敎가그런것이다。佛敎에서는 이禁戒를 俗
人의行政的制裁로써勵行한時代까지도잇섯다
爲先 動物의性的生活과 사람의그것과의差異點
을들어보자。動物의그것도여러種類가잇지마는 兩
性이分離하여잇는것은 大槪一定한時期에性的生活
을한다。그래서 그目的을達하야 受胎의現象을確
認하게되면 다시普通生活狀態로回復한다。그런대
사람들은 原始時代는알지못하거니와 文字가생겨
서 記錄이잇게된時代로부터서는 亦是現今과달을
것이업섯든것이다。사람의生活과 動物의그것과를
다르게맨든 原因은果然 어듸잇섯든가。單純히種
族保存의目的뿐이라면 生物學的으로보와草木과가
튼方法으로도 繁殖할수잇슬것이오 또는 細菌과
가치해서도 充分히 達成할수잇슬것이다。꼭 兩
性이分離되지안어도조흘것이며 또分離되엿슬지라
도 꼭사람들이하는그대로가아닐지라도 無妨할것
갓다。또는그러케되엿슬지라도食物이나 다른것들
의欲望처럼 그대지努力하지안코서라도 制限할수
잇슬것갓다。그러면 사람의性的生活은 어찌하여
서 現今과가치되여왓는가。
생각건대 性慾生活이 本來의生物學的意義에서
떠나게된까닭으로 現今의狀態와가치된것일것이다
그리고 그떠나게된데에 宗敎的生活과矛循되는點
이잇서서 兩者의爭鬪가始作된듯하다。何如間사람
은언제든지生物學的으로만볼수업고 사람은사람으
로 다르게評價하여야만될것은 性的生活의一端만
생각하여보와도 알것이라고 아니할수업다。食物
가튼것도 사람의食物은 單純한營養만爲한것이라
고는할수업다。味覺的觀賞이라는것은 다시말할것
도업지만은 이것이社交的으로도 使用되고 乃至
宗敎的意義까지도 부치게되엿다。衣服도 그와가
치 本來의用途보담도 衣服自體가 社交的이나 審
美的이다 宗敎的意義까지가지게되여왓다。貿易上
所用物로생긴貨幣까지도 守錢奴라는種類의 사람
으로말미얌아 骨董化하게되엿다。守錢奴가古代의
金貨나銀貨를 방안에다가만히느러노코보면서 조
화하는것이나 骨董品조화하는富者가 이것은 一
萬圓에삿느니 저것은五萬圓에뻬섯느니하고 古器
나書畵가튼것을보고잇는것과 何等의差別이잇스랴
茶器면茶만마섯스면 고만이련마는그以上의무엇을
要求하는까닭에 사람의生活은 實用一方面이나 生
物學專門만을가지고서는 되지안는點이잇다
다시말하자면 사람의意識이發達되여서 自己가
自己를批評도해보고 過去의記憶을새롭게하야 그
것을再生식혀보려고도하고 압압일을豫測하야 그
에達하는方法을硏究하는等여러가지巧妙한手段을쓰
게되엿다。이手段에서 조흔것낫분것 其他千般의
相對相이 次第로생긴다。그래서原始的生物學上이
나生理學上또는物理學上方面의目的이라는것은고만
젯처노와버리게되엿다。잇다금 그것이생각날제도
잇지마는 平常에는所謂本來의目的이라는것을모르
고 우리들은生活하여간다。或은이것이도리혀當然
한것일는지도모르겟다。事物을다만發生學的으로만
생각하여가지고 現在의事象의意義를决定한다는것
은 아모리하여도 正當한批評이아닌듯도십다。
그러면 사람의性的生活의意義는 어데잇는것이
정말眞正한意義라고하는가。
性的生活의人間性은 戀愛의現象에서볼수잇다。
어떤사람은말하기를 近代의所謂戀愛라는것은 中
古時代에비로소 泰西諸國民間에發生된것이라고한
다。騎士의氣風이盛히流行하든時節에婦人에게對하
야 一種의尊敬하는생각이생기게되엿스니 이尊敬
하는생각이라는것이 곳今日戀愛現象의發達點이라
고한다。그러면 日本가튼데서는 아직까지 그런
戀愛는업다고 볼수잇다。왜그러냐하면 아직까지
도 日本人사이에잇서서는 婦人에게對한尊敬心이
歐米의그것처럼 깁흔마음속으로부터나온것이아닌
것가치보인다。何如間넓은意味로말하는戀愛、그가
운대에 여러가지 不純한慾望이 包含되엿다고보와
도 조흘戀愛로말하더라도 그것은사람에게만잇고
다른下等動物에는볼수업는것갓다。그런故로 戀愛
라는속에서 性的生活의人間性을차저낼수잇다는것
이다
戀愛는神聖하다고 하는사람도잇다。神聖이라는
말의意味가 明白하지안흐면 이러니저러니 批評
할수는업지마는 만일神聖이라는말을 一身을犧牲
한다거나 自身의存在와得失을 念頭에두지아니한
다는意味로본다면 神聖한일은 이外에도만이잇슬
것이다。燈火를보고 죽을지살지몰으고뛰여드는蜂
蝶의무리도 神聖할것이오 商人들이利慾만알고서
大危險을 헤아리지안코 덤븨는것도 神聖할것이
오 學者들이 今生의利害得失이나 毀譽褒貶을 度
外視하고 硏究에만沒頭하는것도神聖、어린애가 장
난깜에 팔려서 危險한것이나 무서운것을모르는
것도 神聖하다고아니할수업다。戀愛만이至上이오
神聖한것이라고 떠받들수가업고 神聖한것은 그
外에도만이잇다。그리고 또 神聖이라는것도 時
間的關係를볼수잇다。一時的神聖도잇슬것이오 永
遠的神聖도잇슬것이오 또는 그中間쯤되는것도잇
슬것이다。戀愛라는것은 마치어린애들의 작난깜
과가치 靑年期에만限한 神聖일는지도 모르겟다
이런일도 생각하여보는것이 조흘뜻도십다。
目的性이內在거나外在거나 係關하지안는다는데
美가잇고 調和가잇고 神聖이잇고 宗敎가잇다고
할것가트면 戀愛도 그刹那에만은 神聖하다는것
을認定할수잇다。마치술醉한사람모양으로。술醉한
사람이라고 그다지함부로 말할것은아니다。그에
서도 取할만한 조흔點도잇다。酒中仙이라고 까
지하지안는가。戀愛는醉酒와가튼 性質의것인데 좀
더永續性이잇는것이라고할수잇다。그러치마는 醉
狂은結局醉狂이지 그以上은더되지못한다。더되지
못하는것이도리혀妙處일는지도모르지만 何如間고
뿐일것이다。이와反對로戀愛는發展性이잇고自己를
超越하는힘을가진것이다。이點이貴重한듯하다。왜
그러냐하면 異性을目的으로해서 覺醒된戀愛의本
體는 곳天地萬物을包容하는 사랑그것인까닭이다
만일無功用인本願愛가 宗敎을極意라고한다면 戀
愛는 그의卵子라고할수잇다。이알이까저서한마리
鯉魚가된後에 다시禹門三級에을라가서 化하야龍
이된그때에는 眞正한宗敎的體驗을 能히얻을것이
아닐가。이와가치보는것은 妥當치안흘가。
戀愛도靑年期의心理이며 宗敎意識의發生도 靑
年期에잇다。그런故로 戀愛가一變하야 宗敎가된
다고하는 어떤心理學者의說은 나로서는首肯하지
못할點도잇다。만일이말과갓다면 政治도 發明도
科學도 冒險도 이것저것이모다 戀愛心理의變化
라고할수잇슬것이다。이런것은모다 靑年期에發動
하는 心理現象인까닭이다。同時라고하는것은 因
果의本義가아니다。또發生學的說明은 그自體의精
神的意義나 價値를决定하는것이아니다。精神病者
가 創作한哲學이나 藝術에도 哲學과 藝術의意
義가잇다고 할것가트면 그作者의 生理的이나 心
理的特質이라는것이 問題가되지안흘것이다。何如
間戀愛의價値는 自體를超越할수잇는 點에잇다고
나는생각한다
다시 本題로드러가자。性的生活은 사람이나 다
른動物들이나 다가치實行하는바이지마는 動物은
生物學을 超越하지못하고서 언제까지든지 그範
圍를버서나지못한다。그러나 그대신에 煩惱도업
고 欲望도업서 어느意味로는 平和롭다고도할수
잇다。사람에게와서 性的生活은 꼿치피엿다。이
것이戀愛이다。매우美麗하다。美麗한이만치 여러
사람들이迷惑한다。그러나 게서또다시 宗敎愛라
는열매가매친다。여긔까지이르면 生物學이라는것
은 어되로숨어버리고 그림자도구경할수업다。天
國이나 極樂은 이사랑만으로 建設된다고 할수
잇다。果然그러하다하면 禁慾이나 獨身이나 捨
家나와 宗敎的生活과의 關係는何如오。이번에는
宗敎便을 中心으로하고 보와보자。
宗敎意識에는 사람의全體가 作用된다。知라든
가 愛情이라든가 意라든가를 分解해서보와가지고
그 一部分에다가만 宗敎意識을맨들수는업다。그
런故로 宗敎에도여러方面이잇다。戀愛에서淨化나
聖化나 脫化해서되는 方面은所謂無功用의本願愛
이다。이愛는心理學的으로는 無功用이지마는 盡
十方의衆生을 盡未來際까지 한사람도남기지안코
救濟한다면 單純한盲目的愛만은 되지안흘것이다
이愛에知가所用된다。十方이라든지 永刼이라든지
無邊이라는것은 無知도아니오 또 無分別도아니
다。充分히發達된哲學的分別知가아니면 생각할수
도업고 感覺할수도업고 말할수도업는것이다。宗
敎는다만 愛뿐이라고하는것은 不當하다。無限한
知가必要하다。彌陀의本願은 無知無識한老婆들에
게는믿어볼수업는것이다。彌陀의愛가 無上大智에
서 나온것과가치 이것을받어드리는 그릇도 亦
是大智가아니면 아니될것이다。이大智가업스면眞
▣한無邊愛는體得할수업다。愛를高調할때에智를이
저버리기쉽지마는 이愛가 얼마던지 無功用에서
소사나게하랴면 智가업고는아니된다。哲學者들과
가치 體系를세운知는아닐지라도 宗敎知라고 해
도無妨한知가必要하다。佛者는이것을 般若의智慧
라고불은다。이智慧가업스면 大慈大悲를體認할수
업다。그러나 어느點으로는 이러케도말할수잇다
眞正한無功用愛에接觸이된다면그가운대서 제절로
義업는것을 義라고하는 智慧가具備되여잇다고
다흠으로 宗敎에는또한意志가必要하다。意志라
는것은다른일은 모다排斥하고꼭한가지일에만 마
음을集注하는힘을일음이다。相對의世界、偶待의萬
境을排斥하고 이여러가지를一貫하는原理에마음을
두려면 아모리하여도 意志의힘이아니면 되지안는
다。彌陀가「一坐華臺未曾動」이라고하는것은 이
意志를象徵한것이다。念佛이나 徃生이나 悟道도
이意志가아니면 絶對로不可能하다。散心、慢心、
亂心으로서는 아모것도들을수도업스며 볼수도업
슬것이니 愛의大體는 이意志가統一되는때에 나
타난다고볼수도잇다。그런故로禪에잇서서도 이意
志를重하게녁인다。悟라고하는것은 知겟지마는結
局은意志가本體와一致하엿다는것이다。그래서이還
源이成就된때에眞正한無功用愛가出現된다。그래서
이愛가意識上에表現될때에 自力이아니오他力인感
想이날것이다。他力宗이成立되는것은 이主觀이잇
는까닭이다。理論上으로 彌陀의本願을 他力이라고
看做하지마는 이것은 結局은 理論에지나지못한
다。참으로 他力의意義가 成立되는것은 主觀上
에「他」라고 感覺되는데 잇지안흐면아니된다。
만일 宗敎의成立이 이와갓다고하면 宗敎的生
活과 性的生活이 相容치안는點도 自然히明白하
여진다。宗敎的生活은 生物學의原則을 떠나는곳
에서 비로소實現된다。一個의異性을爲하야 힘을
난우는것은 意志의集注가아니다。一人만보고 다
른모든것을보지안는것은 一切를包容하는智가아니
다。一人을사랑함으로 自身을버리는것은 私愛에
殉함이니 性愛는아모리하여도 宗敎愛와는衝突하
지안흘수업게생긴것이다。宗敎者가 禁慾主義를 絶
對로勵行하려고한것은 當然한理由가잇다고보지안
흘수업다。
그러면 이矛盾이 人生의實際와如何히調和될것
인가。宗敎에至上의價値가잇다고하면 種族의斷滅
이人生의目的일가 果何如오。
아모리생각하여보와도 人生의根柢에는一大矛盾
이잇다。이便을세우자면 저便이서지안는것이 眞
相이다 十五六歲頃부터迷惑하기始作하야 三十四十
까지繼續되다가 五十이나되여 知天命할때에는 이
矛循을그대로肯定한다할지라도 그때까지에는 사람
들은발서만은非宗敎的生活을하여왓다 그래서 그結
果는모다 現在身上에集聚되엿다。이矛盾을그대로
肯定할수밧게업서서 肯定하엿다고하는狀態가되엿
다。原始生活부터繼續되여온 本能이라는것에驅使
되여 性的生活을肯定하고 戀愛도맛보고 또이것
을따라서 생기는모든 苦勞와煩悶도 經驗하야有
限을버서나려고하던經營은 次次로崩壞되고말엇다
그래도무슨自由를얻으려고하는마음만은남어잇다。
理論上으로는무엇을안것갓기도하엿지만日日의行動
은 左支右吾하는狀態이다。이런生活에서받온험집
과傷處는到處에보인다。이런것을고처보려고할겨를
도업시 이대로過去를肯定하고現在를肯定하고兼하
야 將來까지도 肯定할수밧게업다。迷悟의別이업
다는것을只今와서 體得하엿다고할지라도迷의渦中
에서는七顚八倒한다。迷라는것은 結局矛盾의別名
이아닌가。
個人의宗敎的生活을 그사람自身上으로보면 矛
盾이不知中에 意識上으로肯定될때가잇다。矛盾을
矛盾인그대로두고도 아모衝突도認識하지안는生活
이倜人上에올때가잇다。그러나 宗敎라는名稱下에
잇는 宗敎的生活에는언제까지라도이矛盾의痕跡이
남어잇슬것이다。쉽게말하자면 佛敎僧侶의生活가
튼것은 이것을果然어떠케보와야 할것인가。僧侶
라는階級이업서지는것이 第一適當하다고도생각하
지마는그것은不知何歲月이다。至今까지의歷史를急
작이내버릴수도업고 그러타고내버릴時節이제절로
올것도아니다。누구든지하나가먼저버리기를 始作
하지안으면안될것이다。現今僧侶들은모다戒律의歷
史를버렷다고는할지라도 그것은意識하고서버린것
은아니다。그렁저렁 그러케되여온것이다。그것은
墮落이라는것이오、進步도、改革도、轉化도、아니다
現今의佛敎라는宗敎的生活은 人生의根柢에잇는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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盾에對하야 何等의意識的解决을나리지못하고 다
만그矛循에걸려서 委委隨隨地의狀態이다。眞宗은
親鸞이라는大偉人이轉回의機를내엿지만至今와서는
다른方面의矛盾으로惱悶하고잇다。다른宗派에서는
처음부터性的生活과宗敎的生活에는一種의暗影이늘
따라다니는듯하거든 하물며 처음부터이矛盾을斷絶
하고 宗敎的方面에 一念되겟다고 主唱한사람들
의身上에잇서서야 이矛循의脅威를 어떠케볼것인
가。
每事가不完全한今日의社會生活인故로 宗敎者라
고 稱하는人物들도 그不完全한것을그대로忍受하
고지내갈것인가。다시말하자면 宗敎者의生活은獨
身主義요禁欲이래야할것인가。이것에는 또 實際上
利益도잇다。行雲流水的으로 一身을輕輕然하게생
각할때에 언제든지이몸을放下할機會가잇다。財產
의操心도업고妻子의念慮도업다。名利와恩愛의覊絆
을脫하면 今日社會에서매우어려운일도할수잇다。
이런일을하는사람이 어느社會에던지 몃名식은잇
지안흐면 그社會는停滯되고進轉할機會를얻을수업
다。그러나이런일을社會가그어떤種類의ㅅ사람에게
만要求할權利는업다。性的生活의人間性을肯定하지
안흐면 人格을完成할수업다고도하겟지마는 그러
타고모다가이것을肯定한다면 宗敎라는形式下에서
宗敎的生活을하고잇는 사람들의將來는어찌될것인
가。
아모리하여도 이不完全한今日의社會組織下에서
여러方面에서脅威와壓迫을받지안흘수업고 이런것
들과酬應하는동안에 날은저물어지고 길은멀다。
힘이不足한者는 이矛盾今에서浮沈하다가말것이오
그中에眞箇의人物이잇스면 自己의갈길을明白히看
取하야가지고 步步確實하게目的地에 到達할것인
가。그리고보면 現狀을肯定하는 同時에또이것을
否定할줄도 忘却하여서는안된다고 할것인가。
禁慾主義라고 하는것이 생긴것부터가발서깁흔
人生의矛循을意議한것이다。그리고 人生이繼續되
는때까지는이矛循은絶滅되지안흘것이다。우리들은
누구든지이矛循속에서生死할것이다。다만 어떤사
람은 이矛盾을그대로肯定하고 그안에서 解脫이
나救濟의宗敎的體驗을얻을것이다。또哲學者들은止
揚이라는것을說明한다。그러나 宗敎者는 그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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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를아니하고 否定에서肯定으로直接轉移한다。그
사이에 아모槪念도끼우지안는다。正이니反이니 合
이니하는階段을밟지안는다。辯證的巧妙한것에는도
모지 系關업시한번에正과反을고만한테뭉처버린다
어긔에宗敎者의生命이躍動한다。
禁欲、戀愛、宗敎―――생각하자면매우성가시기도
하고矛盾에서버서날수업는듯도십흐다。그러나 또
다른方面으로보면 色卽是空、한주먹꺼리도되지안
는다고할수도잇다。
―――戊辰七夕夜―――
佛敎小觀
李 時華
大海에橫行自在로 헤엄처노닐되、오히려목말음
에 우는 大魚의愚痴를 나는 슯허하노라
無邊大空을呼吸하되、오히려 숨막힘에 헐떡이
는 衆生의 긔막힘을 나는 슯허하노라
헛ㅅ되다! 헛ㅅ되다! 헛ㅅ되다! 人生行路를찻노
라彷徨하엿스되、오히려 그것을 얻지못하고 熱惱
에울며、空華에貪着하엿든愚痴를 또다시 슯허하
노라、슯허하노라
아아-이길이-내가지금 발을드듸고 서잇는
이「길」이야말로 외처불으며 몸부림하야 불으던
「世界」인것을 일즉어찌 깨닷지 못하엿던가?
이生함이업고、死함이업고、멈을음이업고、움직
임이업고、물러감이업고、나아감이업고、병듦이업
고、變함이업고、끗업는平等絶對眞如의 永遠히 永
遠히 이러한「길」이러한「世界」그것이 내것임
을 일즉 깨닷지못함을 슯허하노라 슯허하노라
이無限의마음은 空虛일뿐이다
無際涯의宇宙는 空虛일뿐이다
이마음이宇宙인가? 宇宙가이마음인가? 그태도
마음의生命은永刼이다。宇宙의生命은永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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宇宙의空虛에는「雲精」으로찻다
마음의空虛에는「佛性」으로찻다
虛空의「雲精」이 한번 氣勢를 뽑을때 天地를
휘덥는黑雲이끌어올으고 暴雨霹靂이高喊을 질은
다
마음의「佛性」이 한번天來(?)의 인스푸레이
순을 感溢할때、無限奧妙한法理의閃光으로써 衰
殘한宇宙의億千萬象을 축이어준다。
그러나宇宙는空虛다。空虛이니 어찌「雲精」인
들 멈을은다하랴?
마음은空虛다。空虛이니 어찌「佛性」인들멈을
은다하랴?
오즉 宇宙의空虛、그것뿐이오。마음의空虛、그
것뿐이다。無明과眞如에는 다른境界가。업다。空
虛와佛性에도境界線이업다
모든覊絆에서 絶對로解脫한 마음의空虛는宇宙
의그것과一致한다。그것은即「佛」이다。同時에「佛」
은神이아니다。魂魄、精靈가튼것도 毋論아니다。
「即佛即心」이란말은 이러한覺悟에서 나온것이
나 아닐는지?
그러면佛國土를 어대서 차질가? 그것은 말할
것도업시 이世界그대로가 이宇宙그대로가 即佛
國土이고 말것이다
틔ㅅ글만치도 마음의 얼킴이업고 마음그대로
가 宇宙의空虛에純化된心眼으로 世界를 볼때 어
찌 그것이 佛國土가아니며、一切萬有가 어찌「他
人視」로 빈추일것인가。오즉一切가「내것」으로
빈추일것이다。더쉬웁게 말하자면 生物無生物을
莫論하고 앗ㅅ김업시는 그것을對할수업는것이다
山에올라 櫛比한都市의家屋을굽어보아도 그것
이 그립고 사랑스럽다。悠悠히 흘으고 흘으는
大河에臨하면、細波의속삭이는 그보드라운가슴에
덤썩안기고십흔情이 아니날수업스며、路傍의떨기
雜草인들 그것을無慘히 밟아 업시하기에는넘어
도 가엽지안흐랴
그럼으로究竟에는自我가、이世界 저宇宙와融合
一致하고마는것이니、어찌釋尊의입설로서「天上天
下唯我獨尊。三界是我有、衆生皆我子」란歎辭가 아
니흘럿슬가보냐。따라、모든差別性은消滅하고마는
것이다。宇宙는오즉一體이니 「自我」와 宇宙와도差
別이억다。宇宙一切萬有即是我―――我即是宇宙一切
萬有。………아아! 釋尊의「天上天下唯我獨尊」이
란 얼마나深刻하고眞實ㅅ된 絶對의自我表現인가
「不二」는 곳眞理다
釋尊의눈에는天堂과地獄이 한가지淨土로、煩惱
와菩提가 한가지佛種으로、生死가 한가지涅槃으
로 빈추엿다。이러한釋尊의게所謂善惡、貴賤의差
別이 업섯슴은毋論이다。究竟의無差別平等主義와
絶對의 一視同仁은 오즉 그에게서만 볼수잇는
것이다。
釋尊은 마츰내生佛이다。다시말하면 그는 살
아잇서서 곳眞理가되고말앗다
그러나、釋尊이惡을 是認함은毋論아니다。어진
아비는 惡子와善子를 다가치愛護하는것이아닌가
究極의大慈悲에는善惡이平等視되는법이다。사람의
顚倒된思想을 바로잡아노키만하면 千萬겹纒縛의
묵은탈을훨훨버서바리기만하면、善惡은스스로消滅
되고마는것이다。그것이곳眞我요 眞理요、成佛이
오、佛國土일것이다。
宇宙에는 生死가업다。따라 自我에도 生死가
업다。오즉 永刼의獨尊일따름이다
모든生物도 그러하거니와 사람은「肉軆」란有
限의 껍질을 쓰고나왓다。그껍질을 持支하던血
管이 한번停止만하면 사람은 永刼의無我로 도라
간다。아아! 그것을果然死라고할가? 그것을果然死
라고할가? 아니다、그것은不生不死의眞我로合致되
고마는것이다。肉體的感覺、情緖的思惟와執着―
이모든것을純全히脫殼한 그것을死라고보아야올흘
가? 無我成佛을體得함에는 生死의境界線이업다。
그럼으로生도生이아니오 死도死가아니다。구태여
말하자면生死一致―即無我―即成佛이라고나할는지
아모러나生死를超越한神秘의境地에만 眞實絶對의
自我의存在를볼수잇는것이다。아아!나는그 奧妙
한 늣김을 그대로表現할靈腕이업슴을 슯허할뿐
이다
나는 오즉 菩提樹下의釋尊의압헤展開한 그의理
想佛國土를 바라본다。四十八願으로柱礎를노코、
五百願으로 얽어올라간 無限한美와眞과莊嚴의恍
惚한 그國土는 三界十方의無邊▣抱擁하고도 남
음이만타
아아! 그의和容에 번득이는法悅의微笑의閃光에
는 苦海의暴風이 숨ㅅ결을죽이고、火宅의熱惱가
스르르 사라진다。萬有는深妙한法流에축으며、三
界는無量한光明을反映해준다
風雪空山에五十星霜을彷徨하던나는 오즉 人生
의歸趨를밝히어주신、無邊한佛海에헤엄처노닐게되
니、그法悅을모든同胞와난우고십다。
(구름놉히맑은아츰에)
病者心理와宗敎(前續)
李智英
金子某 三十五歲 肺結核
金子는新潟縣出生으로倫理上大罪人이엿섯다 우
리로서는像想키도어려운大罪를犯하엿다 十九歲時
에隣家少婦와情을通하야 此所謂盲目的自由戀愛로
去婦約束까지하엿스나 生父의猛烈한反對로到㡳히
成婚될希望이없엇다 金子는痴情에其父만없이하면
目的을達할수있으리라 생각하고 其父의醉眠時를
엿보와短刀로 一氣에刺殺한大逆이엿섯다 法廷에
서게되야未成年者라고一級을減하야 死刑은아니되
고無期徒刑에處하게되엿다 當時北海道金川路集治
監에서服役케되엿는대 刑囚에對한敎誨師가基督敎
牧師이엿슴으로 在監刑囚의一般은좃턴지굿던저基
督信者가아나될수없이되얏다 金子도勿論信者의一
人이아니될수없엇다 次次信仰心이나기始作하자殺
父大罪의至惡함을께닷게된 金子는一心으로基督을
信하야 大罪의報를免하려고하엿다 苦境에呻吟한
지十五年에減刑되야 無事히出獄케되얏다 出獄當
時에救世軍의救濟를받게됨애 더욱主에對한信仰이
두터워젓스나 얼마되지안어서무서운 結核菌의襲
擊을當하게되야 行路病人으로東京市養育院에入院
治療케되얏다 當時養育院에는東本願寺派僧侶가患
者의게敎誨하고있엇슴으로 金子도勿論佛敎의敎誨
를아니들을수없게되얏다 當時敎誨師田原 吉藤兩
氏는眞宗僧侶임으로 彌陁의功德을力說하고 特別
이金子로말하면 殺父한大罪人인만콤一層더注意하
야 佛陁의無邊廣大한功德과父母에對한子된道理며
父母恩重經가튼것을만이說敎하고 大罪를作한者의
歸依할곳까지 熱心에熱心을더하야 至惡無道한金
子로하여곰精神的이라도救하여주고저하얏다。
金子의病은날로더하여갓다 間斷없는기침과함께
▼(口+客)痰에는鮮血이물들기始作하얏다 刻一刻死의脅迫
을받는 金子는死后依歸處를 더욱생각지안을수없
게되얏다 肉體的苦痛보다 오히려 精神的苦痛이
더甚하여졌다 佛陁의因果法를 回想하고現在自身
의苦痛을對照하야볼때에 過然今生作業來生受報가
아니라 現世作罪即世即受의感을늣기게되엿다 마
음一段을넘어서現世는已徃이어니와死后受報가如何
히클가하는恐怖心은如干深刻함이아니엿다 前例에
든朴君의恐怖는死后疑問이엿섯고 金子의恐怖는一
層深入하야 死后에는반듯이 殺父한大罪로地獄苦
를받을것은必然으로 覺悟한恐怖임으로 程度의差
異가如干큰것이아니다 이恐怖心을如何히免할가?
저果報를如何히免할가? 이恐怖心저果報를免할方道
는오직微侮信仰에잇는줄은아나 果然金子의가슴에
는두가지岐道가그려잇섯다即大罪를免해주리는基督
? 佛陁?
金子의先祖들은모다 佛敎信者이엿다 그血肉을
받을만큼佛陁에對한傳統的信念이潜在하엿든것이다
그르나 基督敎에對한先入知見도輕視할수없엇다 敎
誨의回數가늘어갈사록金子의煩悶은더하여가고病勢
의進行이速하여갈사록 未來에對한恐怖心도 正比
되여갓다 死에接近하는金子의胷裏에는말할수없는
波動과疑問이뒤끌엇다 萬一救出되지못한다면「코
리쓰트」의말한바未來靈魂은永遠不滅하는火中에呻
吟하지안흐면 안될것이고 또佛陁의說한바六道流
轉地獄苦를 받지안흐면 안될것이고 如何間形言
할수없는苦悶을가지게되엿다 基督이果然大罪를救
해줄수잇슬가? 佛陀가果然果報를免해줄수잇슬가?
牧師의敎誨가올흔가? 僧侶의說敎가眞實인가死에接
近하는彼의苦悶이야 第三者로推想키도 어려올만
치過大하엿다 市田醫師가宿直하든밤 十二時頃에
金子는病苦의死后의恐怖心이 絶頂에達하야 極度
의苦悶을보게되엿다 市田氏는넘어나 可憐히생각
하야 金子의病床을訪問하고病狀을물엇다 金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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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분呼吸에 다흠과가치哀訴하엿다
저는今夜나或은 來日새벽안으로 죽으리라 생
각됨니다 제가萬一罪만짓지안엇스면 死에臨하야
이같이煩悶되지안을줄압니다 그르나先生님도아시
는바와같이저는實父를刺殺한놈이외다 다른犯罪와
比較할수도없는凶惡한犯罪者업니다 이大罪의報復
으로이같이毒病에결여서죽게되는줄압니다 이大罪
를免하고저 集治監에있을때에도牧師의說하는대로
「크리쓰트」를信仰하엿슴니다 그르나다시 肺病
으로 先生님의 苦勞를기치게되자田原敎誨師吉藤
先生으로붙어 懇懇이阿彌陁如來의功德을說敎하야
주시와一時는「크리쓰트」를버리고 彌陁如來님께
歸依코저하엿슴니다그르나「크리쓰트」가救主인지
彌陁如來가救主인지 死后靈魂을依託할塲所에對하
야 一個月前불어大端이煩悶하고있옴니다 未安하
기짝이없음니다마는 今夜中으로田原敎誨師나 吉藤
先生두분中에 누구나 한분請하야 주시와 眞實
한說敎를듯고 죽고저함니다 某條록한分이라도病
床까지오시게하야 주셔셔 安心就死를얻게하야주
소서
市田氏도 金子의就死刹那의煩悶에 同情하야 即
時書簡으로 深夜임도不拘하고 吉隱先生의自宅에
까지傳하엿다 三十分后에吉藤氏가와서 金子의病
床에就하야 彌陁의廣大無邊한功德과 慈悲를說하
야주엇다 때는草木도잠자는丑時 塲所는凄慘한重
病患者室 吉藤先生의說敎는 마치死刑因에說하는
敎誨처럼 悲絶한語調로立會한他人까지肝膓이끈어
지는것갓햇다한다 吉藤氏의一言一句說敎함과함께
金子의死는刻一刻迫來하엿다 嗚呼! 可憐그는凜烈
하고 悲絶한敎誨가 끗나자무서운 苦悶을버서나
最后一息을끈엇다한다
金子가過然死后徃生을 얻엇는지 六道에流轉하고
잇는지는勿論筆者의알배가아니나病者의心理가死에
對한恐怖의一端을엿볼수잇는例이기때문에든것이다
以上적은바 二例만보드래도 病者의心理란健强人
으로 豫想키도어려울만치 必然的으로 靈的聖門
을「도크」하게됨을證明할수있다 누구나 하번病
床에눕게되면 무삼理由로病들게되엿나? 를먼첨생
각케되는것이다
醫學上으로病의原因을 內因、外因二種으로分한 다
外因으로말하면病菌(Bokutrien)外傷、體外毒
、(Extoxin)같은것이니 누구나衛生觀念만充分하
면인으程度까지防禦할수잇는것이다 內因으로말하
면 此所謂個性(Tndwidium)에따라서 타고난體
質인만큼人力으로改造하기는좀어려운것이다 素因
(Dspo-sion)같은것은 그의現著한例이다 다시말
하면病이란內로體質上弱點이잇고 그우에外因이加
하면비로소羅病케되는것이다 例를들면 무서운結核
菌(Tuberkel Bacillen)같은것이 健强한사람의口腔
에시는終日發見할수있음에도不拘하고 肺病들지안
코健强케生活하는例를보드래도알수있는것이다 醫
學을베우는筆者로이內因에對하야 적지안흔疑問과
興味를가지게된차 처음「로벨트、코호」(Ropelt
koch)가恠菌(코레라菌)(CholeraVibrio)을印度에서
發見하고이것이무서운 恠疾病의原體라고 發表함에
當時「코흐」氏의先生인「페텐코펠」(Pettenkofer)氏
는絶對反對說를主張하야 自己의自信을確證하기爲
하야 가장毒力이强한純培養안「코레라」菌을마섯스
나 幾分下瀉에그치고 恠疾에걸리지안코견듸엿다
는史說은이內因과 信念에對하야 大黑柱가되여있
다그외弟子中에도같은菌을마섯스나 罹病死亡함에
不拘하고「페텐코펠」氏만은그대로견듼것이內因이얼
마나적엇스며 加하야信念이얼마나 强하야슴을알
게되는 同時에精神作用이疾病에對하야 如干큰影響
을주지안는것을알수잇다 醫學的常識이잇는 다시말
하면 科學萬能을배우는者로도 이內因에對하야는
相當한疑問을갓게하거든 况且醫學的常識이없는者
로서一次病席에눕게되면 運命感이肉體的苦痛과함
께正比例로擡頭케되는것도 無理가아닌줄안다 처
음에는무삼罪로하는歎息을發하게되고 다홈病의▣
歸(Prognosc)에對한即治不治을생각케된다 病勢
가增惡듸면 반듯이死后를推想하게되는▣▣▣여
개서비로소 宗敎的色彩가나타나게되고 ▣▣▣▣
敎에說한生死觀같은哲理에近接케된다 이것▣▣夫
와哲人과 다른點이라고 볼수잇다 哲人으로▣▣
면 病들기前에 生死問題를생각하고 그를▣▣▣
야 哲人도되고 救主도되는것이 아닌가생각한다
釋尊께서도이點에著眼하야 出家動機를얻은것이아
닌가 凡夫인만콤 平常時에는醉生夢死格으로▣
欲에浮沈하야 ▣念이었지마는 病苦에處한▣▣▣
비로소 이問題를생각하게되고 이곳에서 비로소
靈的向方을 찻게되는것이다 即 다시말하면 人
間의 極虛極弱함을 돌아보고 다른偉大한 依支處
를찻게되는것이다 人間의果然虛無함을깨닷게되고
如何히하면 現苦를免할가? 어째면 死后에나 安
逸케할가? 이것이病者의避치못할二大難題가되는것
이다
死에臨하야 泰然自若하는 그네야 말로聖者일
것이다 死后ㅅ걱정이없음을 證明하는것이기때문이
다 日本軍隊가强하다함은 死에怯이적은 까닭이
며 死에怯하지안는 心理는愛國心보다도 其實은
佛敎思想에서 胚胎된것인줄안다 即다시말하면모
다 佛이되고神이된다는傳統的信念의所使이기때문
이다 그름으로 子與孫이 죽드래도 靈前에跪坐
하야 至誠禮禱하는父祖를보게된다 年晩한老人들이
信仰心을두텁게갓게되는것도 死門이갓가워오는까
닭이다 病者로말하면 언으意味로보와 老人과같은
心理로볼수있다 따라서老人도病者로볼수잇다 佛敎
布敎堂에는老人들만모인다고 排擊을받으나 理由없
는모임은아닌줄안다 人間의最后所願! 死后魂靈을
安導하려고一心精進하는 老人네들을볼때에한▣皮
肉的으로 觀察함은 大誤料인줄안다 人間生活의
가진苦痛風波를다격고 還元하는道塲에아무怯없이
安心하고 死에就하고저하는 純情을생각하넌 얼
마나안타가운心理일가! 設使死后는空이라고 假定
할지라도 安然就死그것만이라도 宗敎家의一大使命
이아니라 할수없다 死를생각하는病者의心理도 그
와少分도다를것없다 如何間病者心理란 宗敎에接
近하야옴을 넉넉히 證明할수있다 그리고心理作
用이얼마나 疾病治療에多大한影響을주게되는가도
終日目擊하는筆者는醫業이란반드시 宗敎家의天職
임을切實이늣겻다 손에醫藥을들고 口로法句을외워
서 患者로하야곰 肉體的苦痛을낫게하야 주는同
時精神的慰安을주게되면 얼마다治療上効果가클것
을推測하게된다 假使惡性病魔로死의轉歸를取하는
患者의게라도 死에臨한安定만을준다할지라도 如
干必要한問題가 아닌 줄안다 病을곧치고자醫學을배
운다는것보다도 金錢을빼앗기爲하야 醫學을배운
다는現代社會일사록 人間愛、德誼心이 豐富한宗敎
家인醫師가必要함을 더욱늣기엿다 藥師如來、觀世 音菩薩이단이나야된다는말이다
오늘도 筆者가 見學다니는 市主廣宅病院에서「先生
님人間은 死后무엇이됨닛가?」하는重病患者의質
問을받엇다 病者의心理! 人間의極弱함을體驗하
고 偉大한歸依對象을찻는心理! 宗敎! 더구나 佛
陁의敎門을渴望하야 마지안는病者心理의一端을썻
거니와 此題에關聯된精神療法의効能을 다홈期會
보와紹介하고저 爲先粗糙하나마 學究의一片으로
이만끈친다 (終)
(二九五五年八月十二日 於江戶)
宗敎와藝術
法雨樓主人
一
人類學者의硏究한結果에 依할것가트면 宗敎를
갓지아니한民族은 現在에우리가 아는範圍內에잇
는民族으로서는 볼수가업다고한다。일즉히 未開
人은 宗敎를갓지아니한者가만타고한旅行者도잇스
나 그것슨 旅行者自身이가진것과가튼宗敎가업다
는말에지나지아니한말이요 決코未開人이라도 宗
敎가업는것은아니다。아모리無信仰한者라할지라도
그사람의精神을 解剖하야볼것가트면 어떠한形式
의信仰이든지 잇는것이事實이다。信仰이라함은 다
못聖經을외오고 讃美歌를부르고 祈禱를드리고아
멘을찻는것이아니다。이와가튼形式을가춘것은 宗
敎의意識이 具軆化된以後의일이다
또다시人類學者의報告에依하면 어떠한野蠻民族
이라도 藝術을갓지아니한民族은업다고한다。設便
詩한句 노래한曲調를모르며 그림한장 彫刻하나
를맨들지못하드래도 情的感覺性을가진 사람으로
서는 藝術의意識이업지못하리라고斷言한다。어떤
사람은말하기를 원숭이도 해를처어다보고 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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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다람쥐도 두발을돌고 東天을向하고 싹싹
비러올리는現象이 잇스닛가 動物의게도 宗敎가
잇다하며 또는고기도 물흐르는소리에 춤을추고
나븨도 꼿을보고희롱하며 매암이도 나무닙밋헤
서 노래를부르며 게는달을보고짓는 現象이잇스
닛가 動物의게도 藝術이잇다고하는者가잇다。그
러나이것은 우리가觀察하는 主觀的觀念이 그러
케 생각히는것이다 動物의게도 宗敎가잇고 藝
術이잇는지업는지 알수업스나 적어도六官의感覺
을가진 사람으로서는 未開人과文明人을 勿論하
고 宗敎와藝術이잇슬것이다
平素에無宗敎 無信仰을 부르짓는사람이라도 危
期急迫한 死地에이르게되면 아이고하누님을 부
르며 人間味가 한푼어치도업시 쌀쌀하기가짝이
업는 哲學者道德學者라도 妓生노래와長皷소리에
귀를기울리게됨을 볼것가트면 宗敎와藝術이엄는
者는업다고생각한다。人生을支配하는 學問으로볼
것가트면 政治、道德、法律、哲學、科學等의여러
가지가잇스나 宗敎와藝術처럼 人生을支配하고 人
生을憧憬케하는것은업다고생각한다
二
그러면 宗敎와藝術의起原은 어떠한것인가 原
始民族의宗敎觀念을 批判하야볼것가트면 그들은
人間以外의威力을가진者 또는超人間的의行爲를가
진者의게 屈從하고祈禱하얏다。말하자면 캄캄한
世上에 光明을주는 日月가튼것과 恐怖와威脅을
주는 電霆、風雨、虎豹、毒蛇가튼것과 其外河川
樹木等自然物의게 崇拜하얏다。따라서그들은 이
모든自然現象가운대에 고마운것은 고맙다고 讃
美하고 무서운것은 무섭다고 畏敬하야 노래하
며 아못조록 危害를주지마러달라고 哀願하얏다
이러한㾗迹을 볼것가트면 宗敎와藝術은 起原을
가치할뿐만아니라 無限한密接의關係를 가젓다고
볼수잇다。人間이自然과 瞬間이라도 여일수업는
關係를갓고 自然을崇拜하고 自然을讃美한달것가
트면 宗敎와藝術은 그만치關係가깁고 因緣이크
다。그럼으로나는 宗敎와藝術의關係에對하야 述
하고저한다。그러나그關係를말할때에 宗敎와藝術
의本質을 말하지아니할수가업나니 宗敎와藝術의
통합뷰어
本質이무엇인가 此亦學者의말을드를것가트면 끗
치업시 여러말이만흘것이나 나의率直한直觀에依
하면 人間苦悶의反映으로 다시人間을 安慰하는
者라고하겟다。
우리人生은確實히 苦悶을갓고잇다。늙은사람이
나 젊은사람이나 어린아희나 男子이거나 女子
이거나 누구를 勿論하고 알수업는 어떤不平不
滿의苦悶을가지고잇다。懊惱를가지고잇다。生의衝
動 本能의衝動 盲目的意志 無明의덩어리가 恒
常무엇을 求하야마지아니한다。얻으려고애를쓰고
잇다。그러나求하랴하야도 求해지지를아니하고 얻
으려하야도 얻어지지를아니하닛가 더욱이苦悶을
늣기게될뿐이다。그런데 그反面에는 智慧의싹과
覺의靈性이 恒常어떠한 束縛으로부터버서나랴하
고 形相업시얼킨쇠줄을 끈으려고한다。換言하면
自由天地로나아가랴고한다。하나束縛은 그대로남
고 쇠줄은 依然히걸녀잇다
三
이런까닭으로 人生은幸福을 빌려하고 自由를
求하려하며 苦生을 넉두리하려하고 懊惱를 속
살거리려한다。그래서 幸福을求하고 加被를바래
고 自由를求하는곧에는 宗敎가發生케되고 苦悶
을넉두리하고 懊惱를속살거리며 幸福과加護를 讃
美하는곧에는 藝術이生起케되엿다。그럼으로原始
民族은 宗敎와藝術을同一視한자취가만타。希臘의
古詩를보든지 伯來의古歌를보든지 印度의古神話
를보면 모다神을讃美한 宗敎的의詩엿스며 노래
엿스며 說話엿다。또는宗敎的儀式에關한祭祀文이
나 表白文이나 呪文가튼것도 即詩形이며 歌形
이만타。이것이原始의境域을지나서 漸次文明의閫
域에 드러오게되야 建築과彫刻과繪畵와音樂等의
具軆的藝術이 發達케되면서부터는 더욱히宗敎를
爲하야 發達케되엿다。何故이뇨하면 建築을보드
래도 神殿 佛閣이 가장莊嚴하게 技巧를다하야
發達케되고 彫刻과繪畵를 말하드래도 神像과佛
像이 가장纎細하게發達케되엿스며 文學과音樂으
로말하드래도 聖典文學과宗敎音樂이 가장敬虔하
게發達되엿다。舞踊을보드래도 亦是宗敎의祭典執
行의儀式으로조차서 發達된것이만타。그럼으로東
통합뷰어
西古今의美術史를 閱讀하며 彫刻 繪畵 建築 音
樂 舞踊 文學을 硏究하야볼것가트면 西洋에잇
서서는 基督敎를 中心으로하야 여러가지藝術이
發達되엿나니 宮殿式의大建築과 其他神殿 敎會
堂의建物과 修道院의建築이 一般建築의影響을준
것이라든지 古代男女神像의彫刻과 基督의傳記를
中心으로한聖畵라든지 미레의晩鏡가튼繪畵가가장
一般사람의情緖를끌게되며 數百種의讃美歌와天路
歷程가튼 小說文學과 딴데-의神曲가튼作品과
유고의哀史가튼小說이 後世에까지 赫赫한이름을
傳하며 一般사람의心琴을 울리게하는것은 宗敎
를土臺로한까닭이다。東洋에잇서서는 佛敎를中心
으로하야 모든藝術이發達되얏나니 印度에잇서서
古代美術의光明을傳하는 佛陀伽倻의古塔과 十數
年前에發掘된 阿蘭陀寺院의建築物이든지 大藏經
一切經가운데傳하는 佛所行讃 聖薄伽梵歌와 가
튼노래와 諸佛菩薩의甚深한功德을 讃嘆한 無量
數의伽陀即歌頌 詩句라든지 本生譚의쟈타가 說
話 其他比喩說話等의小說文學이 發達되엿스며 支
那에잇서서는 隋唐美術의全盛을告하는 代表的의
美術이 擧皆寺院建築과 佛像彫刻으로써技巧를다
하게되엿다
四
雲岡의石窟도그러하고 龍門의石窟도그러하다。
그뿐만아니라 其他古代寺院의雄偉한建築과 幢塔
과 刹竿의建築이모다그러하며 小說로말하드래도
西遊記 西廂記가튼것이 모다佛敎의色彩를띄고 描
寫케되엿스며 古祖師의禪定三昧로부터 나온禪歌
禪頌과 魚山作法의舞踊과 其外詩人墨客들이 吟
詠한 詩歌가 皆是佛敎를土臺로하고 創作되엿다
또는朝鮮에잇서서보드래도 美術史上에有價値한作
品을보라며는 佛敎를등지고 볼수가업나니 慶州
의石窟이든지 芬皇寺의石塔이든지 佛國寺의石塔이
든지 浮石寺의建築가튼것과 其他瓦石破片이라도
伽藍建築의遺物이 赫赫한光彩를노케된다。其外小
說로보드래도 九雲夢이라든지 玉樓夢가튼것과 靈
山會上의歌曲이든지 無㝵舞가튼것은다-佛敎를中
心으로하야 作出된것이며 檀園金弘道先生이 力作
한水原龍珠寺大雄殿의後佛幀畵를보드래도 弘道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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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全生涯의作品을通하야 가장價値가잇다고傳함
은 敬虔한宗敎의不可思議한威力을 假借한까닭이
다또는日本의美術界를볼것가트면 더구나佛敎를除
外하고는하나도 볼것이업나니 奈良의法隆寺建築
이라든지 其他東大寺 金剛峯寺 四天王寺와가튼
建築과 法隆寺에在한曇徵의壁書라든지 毘盧遮那
三身像과 阿彌陀、藥師如來、觀世音菩薩의塑像과
其外四天王의塑像及彫刻가튼것은 日本美術史上에
第一位를占한다고한다 그리고今昔物語、源氏物語
平家物語等의小說이든지 萬葉古歌、古今和歌等의詩
歌도 佛敎思想이만타。그럼으로 建築 彫刻 繪
畵 音樂 舞踊 文學가튼것을 部分的藝術이라할
것가트면 宗敎는 綜合的藝術이라하겟다。佛敎이
나 基督敎이나 儒敎이나어느敎를勿論하고 그形
式을表現함에는 藝術의形式을 가자하지아니한것
이업다。여러사람이 한곳에모히자닛가 建築物을
要하게되고 서로서로 佛功德을讃歎하며 神德을
노래하자닛가 音樂을要하게되고 經典을編輯하야
昔日靈山의佛法時代의現狀을傳하고 이야기하며 神
明時代에 天使가놀돈것을 說話하자닛가 文學을
要하게되며 그時代에잇든 佛陀의面影과 神祇의
幻影을 머무르게하자닛가 彫刻과繪畵가必要케되
며 佛前과 神前에 聖恩을感激하야 歡喜踊躍하
자닛가 舞踊을要求케된것이다。그런까닭으로 宗
敎와藝術은 須臾도不可分의關係를 가지고잇슬뿐
더러宗敎는藝術의形式을버러야 비로소表現케되며
藝術은 宗敎를도운然後라야 생명을傳하며 香氣
를 노케된다。그러나 後世에와서는 藝術家가생
각하기를 藝術이 宗敎를도읍는것은 마치宗敎의
奴隷나되며 侮辱이나當하는것가치역이고 宗敎를
排斥하고 自由奔放을 조와하야 彫刻家와畵家는
裸軆의모델이아니면 肉感的의무엇이업다고。冷笑
하며 詩人과小說家는 紅燈佳樓에 情愛가흘러▣
는 淫談猥話가아니면生命이▣▣줄로역인다。그리
하야 現代藝術界는 確實히無政府狀態라고할수밧
게업다。어떤사람은 政治倫理化를부르짓거니와 나
는藝術倫理化 藝術宗敎化를 부르짓고십다
五
宗敎와藝術이 얼마나密接한關係를 가젓는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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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問題는 以上에大略述한것과갓거니와 宗敎와藝術
이얼마나人生의게必要하며 慰安을주는가하는間題
에對하야 論하랴한다。人生의本軆를물리볼것가트
면 어떠한平和스러운 동산에서 끗업시질기고놀
다가 放逐을當하야 쫓기여나온것갓다。仁慈한慈
母의품을떠나서 孤獨한迷兒로서 不祥無家兒로서
彷徨의거름을나선것갓다。基督敎의人生出現說話든
지 佛敎의窮子比喩가튼것은 이러한裏面을속살거
린것갓다。우리가誕生이란 極苦를當하고 出胎하
야 七十年間이나 八十年間의生을누리게됨에 그
동안은 確實이迷子의生涯이다。窮子의生活이며 孤
兒의一生이다。父母가계시여도 孤獨하고 妻子가
잇서도 孤獨하고 親戚과知友가잇서도 孤獨하다
누구나 靜夜開窓에고요히안저서 생각할것가트면
눈물이날만치 寂寞하고 가슴이터질만치쓸쓸하다
더구나失敗가繼續하는者라든지 病苦貧苦에呻吟하
는者는 常人以上의孤獨과悲哀를 늣기게되리라。
그런故로이가운데서 主觀的主人을찻고 改悔를 求
하게되며 信仰을갓게되는것이다。그래서 釋迦와
가트신 宗敎的天才聖者의軆驗으로부터나온 金口
所說을듯게된다든지 基督과가튼 聖者의敎訓을 들
을것가트면 天來의福音과가치 無限한安慰를 얻
게되며 鐘소리가울리는 淸閑한寺院을 볼것가트
면 外形만보아도 極樂을 간것가트며 피아노ㅅ소
리가흘으는 敎會堂을 볼것가트면 것모양만보아
도 天國을 온것처럼 安慰가되는것이다。또한藝
術이 人生의게安慰를 주는것▣ 宗敎보다도 더
욱히現著하다 우리가旅行을할때에 다리가떠러지
는것처럼 압흐고 몸이주리를 틀린것처럼 압흔
때라도 奇麗한山川風光을 븐다든지 어떤名畵인
그림을 본다든지 聲樂이나器樂의音樂을 들을때
는 忘我沒我의境에이르며 알수업는幻想을그리여
내게된다。나는都會에서 만이잇섯슴으로 노래冊
파는사람들이街路上에서 流行雜歌를合唱하며 바
이올잉을타는것을 보앗거니와그노래하는사람압헤
는 여러勞働者가 담을싸고 질거히듯고잇다。그
勞働者가운데는 失職한사람도잇고 굶은사람도잇
고 저녁ㅅ거리가업서서 근심하는사람도 잇슬것
이다。그러나그들은 다-이저버리고 一心을드려
서 노래ㅅ소리만듯고잇다。旋律이자즐수록 더욱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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快感을늣기고잇다。나는생각하얏다。이들의게 만
일이것까지업섯드면 어찌할가하고 何如間藝術처
럼 人生의게藥을 부치주는것은업다고생각한다
六
孔子가튼聖人도 禮業을부로지젓스며 老子가튼
聖人도 樂을讃美하얏다。스피노자가튼哲人이 一
生을 眼鏡유리를 갈고안젓든것도 藝術의精進이
라고 볼수밧게업다。우리가恒常經驗하거니와 音
樂大會나 舞踊大會에出席하야 듯고보는동안에는
無上한快感을 늣기게되며 享樂을 누리게되는것
을 생각하드래도 藝術은 人生의게須臾도 업지
못할者라고밋는다。活動寫眞舘이나 演劇塲에는 돈
을주어가먼서도 門이터지게드러가고 敎會堂이나
寺院布敎堂가튼곳은 그저오라고하야도 아니가는
것을보면 宗敎의信者보다 藝術의信者가 더만흔
것을 짐작하겟다。그러나 藝術은 人生을陶醉시
킴이 빠르니만콤 悲哀를주게한다。藝術이情에訴
하는感傷的이며 哀傷的이니만콤 人生의게寂寞을
늣기게한다。藝術은 人生의愛慕的은되나。渴求的
은되지못한다。暫時間安慰는되나 永遠의安慰는되
지못한다。勿論人生보다 藝術이長遠하나 宗敎처
럼 永遠치는못하다。藝術이 사람의가슴에 을
피여준달것가트면 宗敎는 사람의가슴에 열매를
매저주는것이다。그럼으로 永遠한生命을傳하는 藝
術은 宗敎를背景하지아니하면아니된다。宗敎와藝
術이 다-가치 人生의게安慰를 주는것이나 藝
術은 花葉이되고 宗敎는 果根이되리라고생각한
다。宗敎와藝術이 密接한關係를가젓다함은 一은
花葉이되고 一은果根이되리만콤 關係가크고 因
緣이깁다。될수잇스면學的으로 史的으로考察하야
쓰고저하엿스나 墨鷺兄이平易簡單을 主張하라는
再三의注意가잇슴으로 머리에떠오르는대로感想을
述하게되고마랏다
凡住持에位過其任者는鮮克有終하나니 盖福
德이淺薄하고 量度가狹隘하고 聞見이鄙陋하
며 又不能從善務義하야 以自廣이라 而致然
也ㅣ니라 (靈源淸和尙語)
投稿歡迎 佛敎决疑
第三十五囘問答 八萬大藏經은무엇무엇임닛가?
問者 江陵郡 新里面 注文津 金 樂煥
先生님 저는 佛敎의 一分子信徒로서 늘 한가지 解結치 못하는 疑團은 世所謂 佛敎經典은 八萬大藏經이라하오니 무슨 經, 무슨 經을 合해서
八萬임니가? 이뿐 아니라 某人의게들은즉 八億四千萬卷이라고도하니 蔽一言하고 両說中에 어느 것이 맛슴닛가?
先生님께 옵서 透明하신慧眼으로 佛敎經典의摠目錄을作成하야 佛敎徒의座右之友가되게하여주시옵소서
退耕 相老 解答
八萬大藏經말임닛가? 八萬이라고만할뿐아니라
八萬四千이라고해야맛는것인데 但只八萬이라고하
는것은 從略하야擧大數로하는말이지오 그런데 八
萬四千이라는것은 꼭違拂업는正確한數字가아니라
印度法式에무엇이던지 數만흔것을말하자면 반듯
이八萬四千이라고함니다 그래서 煩惱가만태서八
萬四千塵勞、敎門이만태서八萬四千敎門 須彌山이
놉대서八萬四千由旬 刼初에는사람이오래사랏대서
八萬四千歲 그러케乃至 八萬四千塔 八萬四千病
八萬四千光明 八萬四千相好 八萬四千細行 어쨋든
지數爻만흔것은 모조리八萬四千이라고함니다 마치
朝鮮慶尙道方言에「五萬」이라는것과갓슴니다 全身
이압흐면「五萬데가압흐다」여러곳에쓰는것을「五萬
군데쓴다」모로는것이업스면「五萬가지를다안다」고
함니다 그러치마는그「五萬」이라는것이 꼭定確한五
萬이아님니다 八萬四千이라는것도 그려케斟酌하시
면좃슴니다 그러나 大藏經이쇠배몃卷되지안는것
을 空然히八萬大藏이라는것은아니지요 八萬이라
는數字와 꼭맛지안는다는말이지 만키는썩만슴니다
만일八萬卷이라거나 八億四千萬卷이라거나 冊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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數가그러케된다면 그것은잘못된말임니다 卷數로
말하면 八億四千萬卷은새로지 八萬四千卷도아님
니다 그러나 만키는만흐닛가 摠目錄을귀미자면
적어도本雜誌보다三倍나될것이니 그것은할수업슴
니다마는 叅考로보시기爲하야 歷代로내려오면서
꾸며노흔目錄일홈이나紹介하리다 그것도꽤여러番
이지요마는 그冊이업서진것은 모다除外하고 오
즉現今까지冊子가傳해오는것만을 손곱아혜여도한
二十餘가지됨니다
一、出三藏錄 十五卷 齊、僧祐、撰
二、衆經目錄 七卷 隋、法經等、撰
三、歷代三寶記 十五卷 隋、費長房、撰
四、衆經目錄 二卷 隋、翻經沙門學士等、撰
五、大唐內典錄 十卷 唐、道宣、撰
六、古今譯經圖記 四卷 唐、靖遇、撰
七、大唐敬愛寺一切經目錄 五卷 唐、靜泰、撰
八、續內典錄 一卷 唐、道宣、撰
九、刋定衆經目錄 十五卷 大周、明佺等、撰
十、開元釋敎目錄 二十卷 唐、智昇、撰
十一、開元釋敎目錄略出 四卷 唐、智昇、撰
十二、續古今釋經圖記 一卷 唐、智昇、撰
十三、貞元續開元釋敎錄 三卷 唐、圓照、撰
十四、貞元新定釋敎目錄 三十卷 唐、圓照、撰
十五、續貞元釋敎錄 一卷 後唐、恒安、撰
十六、至元勘同法寶摠錄 十卷 元、慶吉祥等、撰
十七、大藏聖敎法寶標目 十卷 元、王古、撰
十八、大普寧寺大藏目錄 四卷
十九、大明三藏聖敎目錄 四卷
二十、大明重刋三藏聖敎目錄 一卷
二十一、大淸重刻龍藏彙記 一卷
二十二、高麗國大藏目錄 三卷 (海印寺)
이럿슴니다 그런즉 이中에서다른것은 다고만두
고라도 高麗國大藏目錄한秩이나가저야 八萬大藏
經이무엇무엇이라는것을 짐작이나할것이아님닛가
그런데 그것을列記하여달라고요 그것은참말할수
업슴니다 갓갑하시거던 藏經全帙을購入하든지 그
러치아니하면 高麗國大藏目錄만이라도 求해보시
지요
至今海印寺에잇는藏經板은 統計一千五百十二部
六千七百九十一卷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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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敎决疑第三三囘問書를닑고
特히楡岾寺東國經院에
金海隱
東西의交通이便利해지고知識의交換이贍富해짐을
따라 古來의短所를補充하고長處를勉勵하며新入의
短所를捨斥하고長處를取擇하며 前人의未發處에懷
疑하고硏究하야 새로운發明과發見을汲汲함에잇슴
은誰許를不問하고悉知、悉行하는바님니다。따라그
合理的發明과典據的發見이多有함에反하야 不合理
的인發明과無典據的인發見이 또한만케되얏슴으로
걸핏하면甲論、乙駁이惹起하야 그正邪를决하고是
非를辨함에말미암아 學海波瀾의狂動이적지아니함
도또한掩치못할事實님니다。하나知識界의向上을爲
하는이러한思索辨徵이多有하기는日祝不已할一件님
니다。한데이는곳眞理그것을中心으로하고誤謬그것
을對象으로하야 오즉그實證을經으로하고理論을緯
로한然後에그正理를顯하고邪解를斥함에止하면 足
할다름님니다。함에도不拘하고佛敎第四十九號佛敎
决疑第三三囘의問書를案하야본즉 貴院의目標는即
正理그것을찻고誤謬그것을발움에잇슴이아니라 오
즉自家의發見을誇張하고 他家의見解를杜抑하는浮
跳傲慢의逆意的質問에置重한듯함니다。만일 貴院
의本意가그正理를顯하고誤謬를訂함에만잇섯다하면
반드시 그語源을窮覈하고語條를愼順하얏슬줄로思
料함니다。하나 貴院의問書內容은即以上에言함과如
한浮跳傲慢의逆意中으로부터 由出한만콤杜撰不敬
을是事하얏슬뿐不是라大經字偈에關한邪解亂見이滋
甚하얏슴은 이곳『毒蛇▼(赦/虫)手에不得不斬이오毒樹生庭
에不得不伐이라』하는 그境地에至하얏슴으로 이에
問書의每條를列擧하야下와如히辨駁하는所以임니다
問書에云『이제畧本華嚴經의字數가十兆九萬五千
四十八字라한것이 懸談八卷과會玄記四十卷에서는
그出處를보지못하갯고 오즉默庵古老의華嚴品目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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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만字數를指定하얏슨즉 此老의以前에도相傳해오
든바인지알수업스나 浮虗誕妄하기가 極히滋甚함
니다』하얏스니 此는眞實로噴飯一笑를忍禁치못할一
事임니다。貴院은所謂東國經院이란美名下에人我山
이毘盧峰을凌駕함에서 躐等的循行과縮序的數墨에
心醉하야 오즉高等科의一部인 懸談ㆍ會玄記만을嫻
習하고 그以下의各科는唾棄不顧함인지는알수업스
나 그러나所謂高等科를盡涉한諸賢의地位로 오히
려緇門中卷中、隨州大洪山守邃禪師(宋徽宗時人으
로洞山九世의法孫이라)禮華嚴經文과支那僧徒의朝
暮常誦하는禪門佛事全部中에載在한同文을讀破치못
하얏슴이 一大羞耻가아닐가함니다。加之高等科中、
華嚴經을中心으로하는 貴院에서華嚴禮文을未誦이
라함보다不知라함은 넘어나面目이업는一事가아닐
가함니다。
又『如此한誕妄이疇昔우리半島의一叢林、一個人의
舌端에서做出되야全邦에流播하야雷同一律로習以成
俗하얏스니現今諸方에多數有志의經敎를尋繹하는者
가적지아니할터이니 이러한虗誕之說에어찌嗟歎치
아니하릿가?』하얏슴은即全鮮僧侶의祖先을敢責하
고現衆을濫誡함이니 此는곳祖庭에對한不敬이며現
衆에對한不恭이라아니치못하갯슴니다。한즉緇門中
卷도오히려讀破치못한諸君의資格으로 我東佛界의
大華嚴宗主로서敎理에그造詣가該深하고 典據에그
注意가專純한默庵禪師에對하야『疇昔우리半島의一
叢林、一個人의舌端에서做出되야 全邦에流播하얏
다』라로써敢責하고『雷同一律로習以成俗이라』로써
全鮮僧侶의祖先을敢責하고『現今諸方云云으로부터
어찌嗟歎치아니하릿가?』라로써現衆을濫誡하얏슴
은容赦치못할唐突님니다。
又『뿐만아니라此를因하야 溯計한다하면上本ㆍ中
本ㆍ下本에 모다疑心을이르케서―로부터乃至―適足
히大法에興謗되야 苦果種子를招得하게되얏슴니다』
云云하얏스나吾人의思想으로는古來로誦傳하야오든
十兆九萬의鐵則에安心하야朝夕으로誦念하는本分衲
僧의苦果를憂慮하야주는것보다 차라리循行、數墨을
是事하고眞理硏鑽을泛忽히하는諸君의來果를憂慮하
야둠이是可할듯함니다。한데諸君의懷疑深斥하는十
兆九萬五千四十八字는即下本華嚴의梵本입이無疑함
니다。何故오하면所謂三本華嚴의原本은言할것도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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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모다梵本임을云謂함이니最初支法領이于闐國의
南、遮拘槃國山中에서下本華嚴十萬偈中、前分三萬
六千偈를要畧奉還할時에法領이 그殘餘部의全取치
못함을千秋의遺恨으로思料하야 그梵字全部만을誦
還한者이거나若不然이엿스면 唐中宗의使가于闐國
에徃하야梵本四萬五千偈를求還할時의如是事임을推
斷함과共히守邃禪師禮文中의字數는 반드시爾時의
誦傳인流行古則에準한者임을 肯定하야두며默庵禪
師의品目中에도今經을的指함과 如히記入하얏슴도
또한古則에만典據한梵漢不關의無心事로思料하야둠
니다。同時에 貴院에서도現行科本即各時代의綜合
完成인唐譯八十華嚴(東晉安帝義熙十四年에覺賢三
藏의譯出인六十華嚴에는入法界品中、摩耶夫人으로
부터後、彌勒菩薩의前에至한中間即天主光等의十善
知識과彌勒의後로부터 普賢의前에至한中間即文殊
伸手摩頂等兩處의脫文이有케되얏슴으로 二百六十
三年만에 日照三藏의譯出과賢首大師의校合으로써
此를補入하고其後十六年만에喜學三藏이譯出한八十
華嚴에도오히려日照의譯文이脫無함으로賢首大師가
更히新舊의兩經을勘合하야此를補入하섯고 又流通
分이缺如케되얏슴으로 一百二年을經한後般若三藏
의譯出인四十華嚴에淸凉國師의詳定으로普賢의十大
願을明한最後의一卷即本經의流通分이補充되얏슬새
라)中에서十兆九萬字數를苟苟推算함에勞力을不惜
하얏슴은此所謂緣木求魚의愚幻에不過함을評論하야
둠니다。
又偈頌으로말할지라도東晉安帝時에盧山慧遠法師
의弟子法領이遮拘槃國山中에서 三萬六千偈를將來
하얏슴이梵本이엿슴은 勿論이건과唐中宗證聖元年
에使를于闐國에派하야 九千偈를加한四萬五千偈를
將來하얏슴도 또한梵本이엿스니此는即貞元釋敎錄
에일은바『梵本이六夾十萬偈가잇스니八十華嚴으로
第二夾을終하고 四十華嚴으로第三夾(一萬六千七
百偈)이終하얏다』함에照應하야明瞭함니다。同時에
新譯華嚴經七處九會頌釋章一卷中云『此經八十卷、
四萬五千偈』라함과又云「問曰偈者長行頌合、爲簡長
行、荅曰初從如是我聞、終至此懷疑念、數之爲偈、
問曰數幾字以爲一偈耶、荅三十二字、以爲一偈、但
梵本字、其數减少、漢地譯字、其數增多、是故、梵
本四萬一千九百八十頌餘十字、唐本四萬五千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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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에도不拘하고次에更히『今云梵本經者、非支法領
得三萬六千偈梵本、唯依實叉難陀得四萬五千偈梵本
經也』라함은 비록自語相違는된듯하나 그러나此亦
一證으로引用하야둠니다。
한데 貴院의問書에對한退耕先生의詳荅이已有하
섯슴에도不拘하고吾人이更히 貴院에向하야如斯한
質責에一荅을兼重한 不文의筆鋒을敢下케된目標는
前에言함과如히諸君이或時不合理的發明과無典據的
發見으로써 그氣燄이萬丈하고足趾가自躍하야 貴
院의外에學堂이無하고諸君의外에學者가無한쥴로의
思想이徹底함과同時에輕跳浮動을恣行하는非意그것
을破斥함에在할뿐이요 佛敎를爲하고學界를爲하야
의合理的發明과典據的發見은日로增하고 月로加하
야大光明을放하야주고 大貢獻을呈하야줌에對하야
는誠忠으로써 叉勸不已하는바임니다。한즉諸君은
오즉過去를悔하고未來를誡하며 井天의微見을頓捨
하고 蝸角의乍悅을頓收하며 學理의硏鑽에精勵하
고 人格의向上에戮力하야 幾傾의佛厦에一杖을助하
고 枯渴의慧海에一滴을加하야주기를 甚深히希望함
니다。
獨語瑣屑
赤彈子譯
○「時는金이라」는겄은拜金宗의標語로서 매우現
實味가豊富한말이다 時間을黃金으로換算하는곳에
現代의打算生活의採算法이잇고物質生活이잇다。
그러나팔고싶을때라도 사려는者가없으면 당각
에困難을격거야된다 失職問題에直面하야서는「時
는金이라」는標語도 何等의効果를내이기어려우니
거게서問題는轉換이된다。
말하리「時는夢」이라고 올타그러타時間이라는겄
이꿈일지도모른다 칸트는말하기를「時間이란主觀의
直覺的形式」이라나 무어라고學者샌님의냄새를피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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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 要컨대「때는꿈이다」라고하는편이 얼는알기
쉬워조타고하노라
아니깐조킨하지만 거게는生活問題라는現實問題
가따라오니困難하다 거게서「때는죽엄」이라고한다
이러케되여오매問題는아조내백여야된다 죽엄이냐
삶이냐라는 두가지에한개公案이다 자아 이公案
一則의透過란果然어떠하뇨
「生을判斷하고 死를判斷함은佛家의一大事因緣이
라 生死의中에붙어있으며 生死업다」고하는데까
지와서絶後復活底消息에다아처서 이번에는「時는生
命」으로되여온다 이러케되면問題는다되었다 物心
一如 生死不二의眞諦에通徹하여진다
○鈍根漢이되는修養이不足하다 이겄이現代人의
通弊일다 넘어나 조고마한怜悧漢이되려고만한다
才子만되려고한다 이겄이只今사람의病이다
손과발과머리의사람은있으되 腹心의사람은업다
物質이납븐것은아니다 정말物質의眞相을보는人間
을創造하여내지못하는겄이現代敎育의一大缺陷이다
넘어過히일이만흐다 이것은좀생각할問題일다 일
을좀簡易하게할수업겟는가 그方法이어떠할가 簡
中에깊은겄이있을것이다 易中에거룩한겄이있을겄
이다
가지는겄에觀念을集中한겄이 대개는잘못된겄이
다 只今불어서는 버리는法方을하나마련하여가지
아니하려는가 古人은가지는것보다도 버리는世界
에서새로운生活態를보아온듯하다 釋尊이그러하고
基督이그러하고 李忠武公이그러하고 朴厭觸도그
러하엿다 眞正한意味에있어서 버리는겄에따러서
만정말의가지는世界가나오지아니할가 가지는겄에
囚殺되어버리면 手足을통이꼼작할수도업다 物質
때문에靈이밋자리로깔리어가기始作하면 靈은物的
重荷를견듸지못하야 드대로죽어바리고마는法이다
버리는곳에는 새로은世界가展開된다 버림이라
는겄은사는겄이오 퍼저가는겄일다 自己自身의生
命이있는곳에만 버리는힘이보람을내인다 거게에
서만光明의誕生이잇다
○庭院의雜草가아조茂盛하게나서잇다 그雜草를
짓문대바리는겄이 웬일인지 罪가되는것같이늣기
어진다 雜草는雜草로서 一種의美를가지고잇다 무
어나意義를가지고있으리로다 그겄을저조차고짓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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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매어바리는것이人間일가 人間은그들에對한一種
의惡魔일다 그러타人間은제가살기爲하야 무었이
나犧牲으로한다 밥을먹기爲해서는野菜나 나락을
犧牲한다 洋食을차리는데는牛肉과鷄卵을犧牲으로
한다
하로라고할지라도 무슨物건이든죽여가지고 그
피와살을搾取하지아니하면自身이살어가지못한다
이러케생각하여보면 미서운一日이다 깃븐食卓
이몸소름끼치인恐怖의修羅塲일다 우리들은食卓에
나아갈제마다 그들의게懺悔치아니하면아니된다 食
前의感謝는食前의懺悔가아니면아니된다
感謝가懺悔로變하는곳에 그懺悔中에서眞正한感
謝가새암솟듯뀰어오른다 懴悔의生活로살아가는데
一品과一食을입에디뇌이는道가잇다
오오그럿타 우리의生活은刹那刹那가懴悔가아니
면아니된다 事業이무었이든 成功이어데잇든 失
敗에失敗를깨달으며 懴悔에懴悔를軆驗하야 거게
에承許된一日을味到하는겄이아닐가
眞實로透徹한사람의一生은 다懴悔의生活일다 우
리들의罪를容赦하라 거게에 사람으로서넉넉히살어
가는길이잇다
○「運命、自由、靈魂、物質、이러한 空虛한말의
어느겄에나信賴치아니하면아니된다 거게에비로소
休息이잇느니라」
이겄은佛文豪 루놀맨의「時는夢」이라는겄으로主
人公늬코가吐한한句節이다 루놀맨은 人間性의一
種神秘的盲動에依하야 우리人生이支配되어간다고
보앗다
올치單純한말로만보면 이러한말은 아조空虛한
말을羅列하여노흔겄에不過하다 現下의宗敎家 더
구나佛敎家의 사람들도亦是나 空虛한말의幷列이
나幷發에 忙殺되어잇는량반들이아니랴
말의幷列幷發로는人生은救濟되지아니한다 緣論
때문의緣論 說敎때문의說敎는 그는單으로虛言의
亂用에不過하다
그러나말은單純한말만에不過할것이냐 말은을타
참으로살어잇는말은 그가그대로軆驗의湧出이오 生
命의漲溢이다 軆驗의動하는곳 生命의타오르는곳
거게에眞正한말이있을겄이다
나는생각하노라 現今의時는 眞語가업는時代라
고 粉粧으로써속임수하는말은만히잇다 어쨋으면
眞實한말을얻어들을수있을가 우리의生活로하여금
말의具軆化식히고십허라 誠이아니면物이업다는것
으로生活化하여가기를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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關北水害慘報를보고普仁和尙을囘憶하노라
晩悟生
本題를씨기前에普仁和尙(現水鐘寺住持)의略歷
부터記載코저한다 和尙의姓은李氏요號는保寧이니
漢城士族後裔로서年甫十二에廣州郡奉恩寺로出家하
엿다 幼時로부터慧竇가明敏하고公心이豐富한까닭
에限三個星霜을受學하고는十六歲때부터衆望에依하
야寺中公務을執行하게되엿다爾來數十年間을從事하
는동안에和尙의喫苦㗖辛도限量이업섯지마는그를따
라該本末寺에서는永遠히잇지못할功績을만히싸앗든
것이다 그例의大槪를들것가트면三段으로分類할수
잇스니
一、奉恩寺와普仁和尙
和尙이該寺判事로就職할때는即明進學校가元興寺
에創立되엿든時代이다 前記學校를補助한다는美名
下에曾前任員으로부터寺有土地(秋收二百二十石內
外)契券全部를典執하고金三千圓을借入하야이리저
리消耗는하엿스나三年을두고利子一錢을返償치못함
에該寺存亡이一髮의危에處하엿다和尙은恒常此를근
심하더니마츰首席에就任하자淳明妃의小祥齋가該寺
에내리엿든것이다 和尙은此期를不可失이라하야 奉
命하여나온夫人濃門仙과及申尙宮을交涉하야寺의危
急顚末을 嚴妃에게禀陳케한結果 우에서는侍臣李
泰億을命하야 寺債全部를淸帳하여주심에幾熄이든
一抹殘燈이일로부터다시大明하엿다 其後當局으로
土地整理할時를際하야 該寺附近에國有寺有未分인
荒蕪地가만히잇는것을 和尙은測量者金敎性을帶同
하고 豫히寺有로實測하야 此를土地調査局에提出
함에拓殖會社가相對者되야 三年間爭訟을繼續하얏
스나 寺刹이畢竟勝利를得하고 山下細民으로此를
起墾케한結果 寺收入이二百餘石에不過이든것이倍
以上五百餘石에達케하고또山林幾町步까지寺有로編
入케하엿슨즉 該寺所有로서는寸地尺土와一草一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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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和尙의手澤아님이업다한다 그-얼마나한惠澤인
가!
二、水鐘寺와普仁和尙
和尙은功成身退로奉恩寺의巨細事務는後繼者에게
委任하고 다시覺皇寺로드러와서 事務를보게되엿
다當寺는初創未幾이라 凡百이不完하지마는和尙은
亦是三四年間을熱性活動하다가公選에依하야 그만
水鐘寺住持로赴任하엿다
原來水鐘寺는楊廣楊平之同에介在하야 眼界가宏
濶하고風景이絶勝한祈禱處이다 最初李朝 世廟朝
께서五臺山月精寺에親臨하사患候를平復하시고 漢
城으로回駕하시는途次에 南北江合流處(現楊州高
浪浦附近)에이르러船隻을모와臨時駐蹕하시고밤을
經過하시것다 午夜는되야어데로서淸澈한鐘聲이歷
歷히들리심에殿下께서는 此를異常히생각하시고 翌
朝에至하야四圍의山川을搜探할적에吉祥의彩雲이北
便高峰을에워싸고잇다 그곧을向해올라간즉羅漢몃
분이巖間藤蘿裡에坐定하여계심을發見하엿다 世廟
朝는此가宿緣의所使라하야 그곧에寺院을建築할제
八道監司에게傳敎하사各其該道役丁으로八層石臺를
쌋케하시며 當時現狀에徵하야山은雲吉이라寺는水
鐘이라賜額하시고또全山周回三十里와數十結의佛享
土地를賜牌하여주시고遺命으로써平時着御하시든金
冠玉帶를寺의靑龍嶝石塔에藏置케하신重地이다 前
隆熙年中에至하야森林法이實施되고各其所有를測定
하게되니 該寺前住持는測量費도經濟할뿐더러누가
山을가저가지안흘것을確信하고所有의如何는等閒에
부치엿다 是로以하야四山全局은그만三分五裂로墓
主各人의所有가되엿든것이다 和尙은此際에住持로
赴任하야山坂回復으로惟一한目的을삼아各其墓主를
對手로하고十有二年의긴歲月과萬有千圓의訟費를드
려畢竟勝利를得한結果大正十三年十一月十八日付로
山林九百町一段一畝水鐘寺의所有라裁决되야當局으
로서官報에까지揭載하엿다
저-漢江沿岸은某處를勿問하고水路便利를利用하
야죄-다童濯이되엿스나오즉雲吉山뿐은欝蒼한森林
이빈틈업시드러섯슴에그곧을지내는사람은異口同音
으로此를指點하여曰저山은現住持李普仁氏의汗血인
結晶이다 嘖嘖稱道를아니하는者ㅣ업다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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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한偉功인가
三、七○八人과普仁和尙
去乙丑六月을當하야비가얼마나만히왓든지京城附
近에 東으로淸凉里와 南으로龍山停車塲까지浸水
되야 家屋이倒壞하고 人畜이失魂됨에漢城各社會
는到處에救護所를設立하고被害人民의게住宅、衣服
飮食等을그程度를따라救濟하기에눈코를뜨지못하든
同時이며 더욱이漢江은刻刻으로增水되야上流로부
터사람이올라안진家屋이며 其他動產이形形色色으
로떠나려옴에그-悲絶慘絶한光景은참아볼수업는그
때이다 그리자奉恩寺附近江邊으로羅列하여잇는新
川、蚕室、浮里島三洞人民은洪水가增加되기로니설
마우리洞里까지야올라오갯느냐믿엇든지注意를아니
하엿든것이다 어늬날은밥중은되야 洪水가그-셋
洞里를둘러싸기始作하니瞥眼間물소리가야단이다村
民들은자다가깜작놀라일어남에마당부억할것업시黃
潦水가갓득이드러오니그만精神을차리지못하여서屋
上으로或은樹上으로죄-다올라갓든것이다 날이훤
하게밝으면서집이빙빙돌고나무도한짝으로씨러지니
그만사람살리라는我救聲이天地가뒤눕는다 그때마
츰普仁和尙이水鐘寺監院權恩湖를帶同하고江邊어느
집에宿泊하다가意外에이光景을目覩하고는時刻을遲
滯할수업다하야두사람이一時에奉恩寺로다름박질을
하엿섯다 가다가中路에巡査부터차자가서爲先떠나
려오는動產건지기에만專力하는柁工等을曉諭하야船
隻부터整頓케하라하고 寺中으로드러가서監務로잇
는姜性仁氏를交涉하야數百圓의金錢을醵出케하고柁
工各人에게懸賞으로奬勵하엿다뜻밧게賞金을본柁工
들은그만生命을내여노코三洞全人口七百八人을죄다
救濟하야奉恩寺中에서 一週日以上을保護하게하엿
다和尙은다시생각하기를生命救濟는佛子의義務이나
此를世界에褒揚할만한事業이라하고그만京城으로드
러와서鐘路에잇는醫師朴○○氏를紹介하야有志各人
을食道園으로招待하야某氏不壞碑의發起會를組織하
고中外人士의詩文書畵를만히받아그目的을達케하고
前後費用數百餘圓도和尙이自擔하엿다한다 그-얼
마나한慈航인가呀-忘我爲人도和尙에서볼수잇고爲
法犧牲도和尙에서볼수잇다 머릿군을모라野獵이方
張됨에發蹤指示者도업지안코追殺獸兎者도잇지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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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가지를兼行한者는누구인가? 隣家가方燒되야火
燄이漲天할제豫히曲突徙薪하라指揮者도따로잇고現
時鎭火에努力하야焦頭爛額者도多數이지마는 亦是
두가지을兼行한者는누구인가? 知者에限하야 李普
仁和尙이라서슴지안코答할것이다 和尙의略歷은이
에긋치고일로부터本問題에들고저한다 記者가客夏
白羊佛專에서敎鞭을잡고잇든中 九月七日頃은該寺
全班의榧子運役이 三日繼續된다함을利用하야 佛
報代金을徵收하리라하고海南大興本山을단여오기爲
하야長城四街里驛에서汽車를搭乘하고 木浦方面으
로 進行하는途中에 어떠한彼岸一人이新聞一枚를
購讀하다가그대로버려두고 그만下車하엿다 하도
심심은해서 그新聞을집어보니 即大每第一七九六
號의朝鮮版이다第一面劈頭에「避難民五千五百死者
約六百名」그리고「咸南이尤甚」이라하엿다 두어
줄을못다보아서嗚呼蒼天이여此何人斯를몰란결에몃
번이나부르지젓다 우리사람에잇서天災地變이업다
할지라도사라갈길이茫然한데雪上에加霜으로嶠南에
는旱魃 關北에는洪水어째면이와가치慘酷한가 모
다同業中別業으로 自作을自受하는것이지마는人類
愛에잇서그를어찌참아보랴 터문이도업는善後策을
생각하다가無心中에 普仁和尙은왜-그곳에업섯든
가그곳에는普仁和尙이왜-업섯든가 어째면保護安
寧을普天同仁할까? 두세번늣기엿다 (끗)
가을의偶感
扁舟
『구을느는이몸이 어느곧에서어떤感想으로 來
年가을은 마지할것인고!』하고昨年이맘때 가을
의感想을쓰든나는 今年가을인 이때가 언제나와
질가하고 때 멀게생각이되는同時에 그래도그때
가오면이야………하고 그윽히바라는무엇이잇섯다
때가 넘어도쉽게 흘러가는것이 刹那刹那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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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지아니할수가업는것이지마는 果然歲月은 그
러케도쉽게흘러서 어느새 또 가을은 닥처왓다
매암이노래끈어진숩사이에서 數업는 버레들의
合奏소리가 선드러진 바람을거처 사람들의 皷
膜을울릴때 맑게개인하날가으로 기럭이날르는昨
年에도 再昨年에도왓든가을은如前히차저왓다
덥다덥다하면서도 그래도 녀름에는 헐버서도
못먹어도 窓업서도 살아갈수가 잇섯지마는 날은
차차서늘해가는데 남편의버리는시원치안코 좀더지
나서 으들으들추운겨을날이되면 어린것들하고어
떠케나지나노하고 입속으로중얼거리며 해여진새
헌겁조각들을 개켜노코 뚜덕어리는 貧婦의무릅
팍에도 따사한볏이빈치는 溫和한가을은 한결가
치닥처왓다
그러나 當然히와야할 나의무엇은오지안코 울
어도울어도눈물이남을끗업는눈물을가저올뿐이엿다
거칠것업는 한몸이니 아무데가도 지날수가잇
고 튼튼한젊은몸이니 더워도 추워도 別걱정이
야잇슬것이업지마는 어지가을에는해마다 寂寂
하고설어웟섯다
갓득이나가을만되면 그저寂寂하기만하든이가슴
에는뜻하지안흔 기리기리말나보지못할눈물주머니
가 이가을에는안기워젓다
房안에서나 니불속에서나 잠간고개를숙일때나
슬쩍外面할때나 新聞이나 冊으로얼골을가릴때나
남의視線이내게서떠나는 瞬間이나 어떤期會에서
라도 눈물은빠르게흐르고잇다
남에게이야기할수는업고 뉘게하소연할수도업고
親한이에게알릴수도업고 누구를怨望할수도업고 어
떠케變通할道理도업고 그저울어야할눈물 울지안
흘수업는눈물 이런눈물을 이가을은내게 善物로가
저왓다
남달은 運命을타고난나는 一生에그리깃븐때라
고는別로當해보지못한것이事實이다 따라서 自然
히내게는눈물이흔해진것도免치는못할일일것이지마
는 그러타고 노상울어야할일이잇섯든것도아니다
그야하루이틀울어지는悲哀도 업지는안엇겟고 한
달이나두달 눈물을흘리지안을수업는悲劇을격지안
은것도아니엿다 남과가치幸福스럽게태여나지못한
내게 오히려當然한일이엿다
그러나이가을에흘니는이런눈물은나로도意外이다
殘酷한이運命에또다시눈물은새로워질뿐이다
이눈물은 내生前에는언제라도흐르고잇을것이다
성할때이거나 病든때이거나 不平할때이거나 安
穩할때이거나 幸福스러울때이거나 不幸할때이거
나 富貴할때이거나 貧賤할때이거나 똑가치자아
낼눈물이다
웃움웃는눈에도 눈물이어리고 微笑가흐르는 입
가장자리에도 설음이샐것이오 平和한듯한 가죽
밋헤도悲哀가숨어잇슬것이다
나는이눈물로一生에 울고 웃고 찡그리고 하
는장본이될것이다 그리하야이눈물은 永遠히떼여버
릴수업는 寃讎인同時에 一平生떠나지안흘동무이다
사람들아! 이눈물의 理由도까닭도뭇지마러라 그
저언제나 흘러서마르고 마른자리에 새눈물이흘
리서 다시저즐뿐이로라
그러나 눈물은 눈물이고 나는나이다 울면서
도나의生活을爲하야는 내가勞力할것이오 눈물나
는 내눈으로 나볼것을 볼것이오 눈물은맨들지
언정내가슴은 내생각을하고잇슬것이다
永遠한눈물 가저다가준 이가을은 오래지안어서
다시흘러가고말것이지마는 내눈물은 來年가을에
는 더새롭고 내설음은 來後年가을에는 더깁흘
터이다
얇퍽한니불속에서 단잠을자는 장안사람들은 숨
소리조차고요하것마는 홀로깨인 귀뚜람이는어듸
선지 소리놉혀 가을노래를 和答하고잇다
九月十一日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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電話(光)一四七九番
振替京城七六六○番
佛敎彙報(附錄)
朝鮮佛敎聖讃會發起
去九月十八日(陰八月五日)午後五時에 覺
皇敎堂에서는朴厭觸祭式法要을 마치고會集
한有志一同이年中行事로이와가튼 紀念祭式
을擧行하는것이조타고决議하고 朝鮮佛敎聖
讚會를組織하야朴厭觸聖者뿐만야니라 元曉
祖師 義湘祖師 大覺國師 懶翁王師 普照國
師 太古禪師 淸虛禪師 松雲大師等其他여
러古聖者에對하야 或은祭式도行하고 或은
紀念講演도行하야 聖德을讚仰하는同時에
널리社會에宣傳하기로하고 志願者로發起人
을組織한바氏名은左와如하더라.
朝鮮佛敎聖讃
https://www.youtube.com/watch?v=xLVU9wDzd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