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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는 길 열왕기상 18:30-40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진짜 싸움꾼은 상대의 숫자 때문에 싸움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싸움은 특히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싸움은 전면에 나선 사람보다 배후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는 850:1의 싸움이 나옵니다.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을 혼자 상대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사건은 이스라엘의 아합왕 시절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아합은 오므리의 아들이며 북이스라엘의 7대 왕으로서 22년간 치리했던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하였습니다. 그는 이세벨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우상숭배가 가득한 나라로 만들었어요. 아합과 이세벨은 여호와의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을 잡아 죽였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여호와 신앙이 무너졌습니다.
본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니 하나님께서 그 땅에 저주를 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3년 6개월간 비가 그치게 하셨습니다. 가뭄이 심해지니 물이 부족하고 물이 부족하니 왕도 물을 찾아 나설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나타나셨습니다. 1절에 보니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엘리야가 아합을 찾아갔습니다.
엘리야는 국가의 재정으로 월급을 주고 있던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아세라의 선지자 400명을 갈멜 산으로 모았습니다. 엘리야는 그 자리에서 능력대결을 제안했습니다. 송아지 둘을 준비하게 했습니다. 한 마리는 바알과 아세라를 위하여 또 한 마리는 여호와를 위하여 준비하고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고 기도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불로 응답하는 신이 진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먼저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이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아침부터 낮까지 제단 주위에서 뛰며 바알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들은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자신들의 몸을 상하게 하며 미친 듯이 떠들었지만 아무런 응답도 없었습니다.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했습니다. “큰 소리로 부르라. 그가 묵상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잠깐 외출 중인 것 같다. 혹시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하는 것 아니냐”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엘리야가 이스라엘의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했습니다. 엘리야는 열두 돌을 취하고 그 돌로 제단을 쌓고 제단을 돌아가며 도랑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무를 준비하여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12통의 물을 부었습니다.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습니다. 준비가 끝나자 선지자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기도에 불로 응답하셨습니다. 하늘에서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았습니다.
이때는 여호와의 자리에 바알과 아세라가 앉아서 경배를 받았으며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진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온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39절을 보십시오. 모든 백성이 갈멜산에 임재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는 엎드려서 말했습니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지금까지 그들은 악한 지도자 아합과 이세벨에게 속아서 바알과 아세라가 하나님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서 그들은 여호와가 진짜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 되었습니다. 오늘 설교는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졌던 이스라엘에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 되었는가를 나누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 되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엘리야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하늘에서 불을 내려서 제물을 불사르는 일은 사람이 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오늘 설교의 초점은 하나님이 불을 내려주신 부분이 아닙니다. 엘리야가 어떻게 했느냐에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그 이유는 엘리야가 하나님의 영광의 회복을 위하여 어떻게 했느냐는 이 시대에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의 회복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라.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이스라엘 가운데 회복시키신 것은 엘리야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살았기 때문입니다. 열왕기상 17장을 보면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 수 년 동안 비가 오지 않을 것을 말했습니다. 엘리야가 아합왕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엘리야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열왕기상 17:2이하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가 있던 곳을 떠나 그릿 시냇가에 숨으라고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여호와의 인도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거기서 까마귀들을 통해서 엘리야에게 떡과 고기를 공급하셨습니다. 열왕기상 17:8 이하에 보면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고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사르밧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마지막 남은 가루로 떡을 만들어 아들을 먹이고 죽으려던 과부를 통해서 음식을 공급 받았습니다. 엘리야를 대접한 사르밧 과부의 집에는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거기서 많은 날을 보낸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했고 엘리야는 또 하나님의 인도에 순종해서 아합 왕을 만났던 것입니다.
여호와는 목자시고 신자는 양입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목자는 양을 인도하고 양은 목자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양은 눈이 어둡습니다. 그래서 목자의 음성을 듣고 목자를 따라갑니다. 우리도 눈이 어둡습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모릅니다. 아니 한 시간 후의 일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목자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목자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고 그렇게 살 때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10년 후, 20년 후에 내가 어떤 존재가 될 것이고 내가 어떤 자리에 앉을 것인가를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한 걸음씩 목자이신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킴 윅스라는 시각 장애인 성악가가 있었습니다. 6.25 때 두 눈을 잃고 고아원에서 자랐는데, 주한 미군의 도움으로 유학을 가서 공부하여 훌륭한 성악가가 되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고 빌리그레함 목사님의 집회에 함께 다니며 찬양과 간증을 했습니다. 그는 그때마다 이런 간증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저는 소경입니다. 저를 인도해 주는 사람이 제게 100m 앞에, 50m 앞에 무언가가 있다고 알려 주지 않습니다. 바로 앞에 계단이 있으니 발을 올리라고, 바로 앞에 물이 있으니 건너뛰라고만 말해 줍니다. 저는 그것을 믿고 그대로 따라 오늘까지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한 달 뒤, 10년 뒤, 20년 뒤의 일을 알 수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먼 미래의 일을 몰라도 됩니다. 우리가 순간순간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있는 곳이 학교든, 가정이든, 직장이든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2. 하나님께 예배하라.
30-31절을 보면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자기에게로 가까이 오게 한 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는 일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12 지파의 수효를 따라서 열두 돌을 취하여 여호와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제단을 수축하는 이 행위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예배의 회복입니다. 구약적인 의미의 제단은 제사를 의미하고 신약적인 의미는 예배를 의미합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영광의 회복을 위하여 무너진 제단을 수축한 것처럼 이 시대의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예배를 회복할 때 대한민국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입니다.
지금 온 세계는 펜더믹(pandemic) 현상으로 예배가 무너진 상태입니다. 그리고 성도들 개인적으로도 예배가 무너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배에 관심이 없습니다. 코로나사태를 핑계대고 있지만 사실은 원래 예배에 관심이 없었고 원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김상수목사님은 예배를 싱크홀로 설명을 하셨는데 적절한 설명입니다. 요즘 도심지역에서 씽크홀이 자주 발생합니다. 길을 가는데 갑자기 길이 푹 꺼지고 큰 구멍 속으로 빠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우리나라는 싱크홀이 작은 편인데, 외국에는 엄청나게 큰 싱크홀들이 집과 사람들을 통째로 삼킨다고 합니다. 무슨 말인가하면 성도에게 있어서 예배가 무너지는 것은 하나님 나 사이에 씽크홀이 생긴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과 나 사이에 예배의 단이 견고하면, 그것은 반석 위에 서있는 것 같습니다. 예배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예배가 뭡니까? 하나님께 경배하는 의식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 드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예배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마지막 시대에는 예배를 폐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서 정치인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주장하면서 예배드리는 기독교인들을 공격했습니다. 자신들은 지키지 않으면서 만만한 교회만 공격을 했습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면 강력한 권세를 가지고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다니엘 8:11을 보겠습니다. “또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를 대적하며 그에게 매일 드리는 제사를 없애 버렸고 그의 성소를 헐었으며” 다니엘이 마지막 때에 되어질 일을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이 내용은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가 출현해서 하나님을 대적할 것이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할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마지막 시대에는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10:25입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마지막 시대에 대한 예언입니다. 여기서 모임은 교회의 공적인 모임 즉 예배를 말합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예배를 폐하는 이유는 많습니다. 하지만 핵심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부족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불타오른다면 그 어떤 것도 핑계가 될 수 없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배를 사모합니다. 연애를 해보셨습니까? 사랑에 깊이 빠질수록 연인을 만나는 횟수는 많아집니다. 그 어떤 것도 연인과의 만남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사랑도 그런 것입니다. 첫 사랑에 빠진 성도는 예배에 힘을 씁니다. 모든 것의 우선순위를 예배에 둡니다. 예배시간을 기다립니다. 예배드리는 것이 행복합니다.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고 하나님을 향한 첫사랑이 식어집니다. 그때 일어나는 현상 중에 하나가 우선순위의 변화입니다. 이때 눈에 띄게 나타나는 현상은 예배를 등한시 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소홀히 합니다. 예배에 빠지는 횟수가 늘어갑니다. 예배를 드려도 감격이 없습니다. 형식적인 예배자가 됩니다.
예배가 중요한 이유를 두 가지만 말한다면 ➀하나님께서는 예배를 통해서 경배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음 받았기 때문에 예배는 사람에게 중대한 사명입니다. ➁예배는 하나님과 만나는 공식적인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에서 만남은 중요합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만남이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에 그 시간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과의 만남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예배가 되기 위해서 준비하라고 권면하고 싶습니다. 토요일에는 잠도 푹 주무시고, 몸과 마음과 헌금도 준비하세요. 그리고 주일 예배 전에는 기도로 하나님과 만남을 준비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래 전에 미국 LA 한인교회 한 장로님께서 당시에 방송되던 ‘한명회(韓明會)’라는 사극 드라마를 너무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장로님이 드라마 비디오를 구입해서 밤새 시청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이 토요일 밤이었고, 다음날 주일아침 예배 시간에 이 분이 대표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장로님이 잠을 자지 못해서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대표기도 첫마디를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지난 한 주간도 지켜주셔서 성은이 망극 하옵나이다!” 장로님 때문에 예배시간은 웃음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시대입니다. 우리는 시기를 분별하고 하나님의 영광의 회복을 위하여 예배에 힘을 써야 합니다. 저는 우리의 영육간의 준비된 예배로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나타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3. 하나님께 헌신하라.
33-35절을 보면 엘리야는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붓는 일을 세 번이나 하게 하였습니다. 총 12통의 물을 부었습니다.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헌신을 뜻합니다.
그 당시가 어떤 때입니까?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극심한 가뭄으로 왕도 물을 찾아다닐 때였습니다. 5절을 보면 물이 없어서 짐승들이 다 죽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러한 때에 12통의 물을 부었다는 것은 헌신의 메시지를 주는 것입니다.
성경에 물을 부은 다른 사건이 있습니다. 사무엘하 23:16입니다.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불레셋 군대가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을 점령하고 있을 때 다윗이 고향의 우물물을 그리워했습니다. 다윗이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세 명의 용사가 목숨을 걸고 적진으로 들어가서 베들레헴 우물물을 길어 와서 다윗에게 바쳤습니다. 물을 받은 다윗은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 물은 그냥 물이 아니라 세 용사의 피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드렸습니다. 세 용사가 목숨 걸고 구해온 물을 자신이 마실 수 없어서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물을 부었다는 것은 헌신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임재와 그리스도인의 헌신으로 세워집니다. 하나님의 영광도 하늘에서 불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우리들의 헌신으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위하여 두 가지 헌신을 해야 합니다.
➀시간의 헌신입니다.
우리의 모든 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우리의 시간 사용에 대해서 하나님과 결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시간의 헌신 중에 중요한 것은 주일성수입니다. 그리스도인은 1주일 중에 하루를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로 구별해야 합니다. 민수기 15장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생활을 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 앞으로 끌어왔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그를 가두었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영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 그 사람은 안식일에 나무를 했다는 죄 때문에 돌에 맞아서 죽었습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철저한 주일 성수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시대에는 주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돌로 쳐 죽이게 하시지 않습니다만 우리는 그만큼 주일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시간의 헌신에서 또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공부를 해야 하고, 직장인들은 직장생활을 해야 합니다. 가정주부는 가사를 돌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24시간 내내 기도하고 성경보고 또 교회 일을 하고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만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상의 일들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행한다면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하나님께 시간의 헌신하는 것입니다.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시간을 사용한다면 그것이 시간의 헌신입니다.
➁물질의 헌신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에게 헌신이라는 말은 합당치 않은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당연히 주님의 뜻대로 모든 것을 사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물질의 헌신이 우리의 신앙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마태복음 6:21입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면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십일조도 못하는데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믿을 수 없습니다. 십일조는 형편이 되면 하고 형편이 어려우면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는 금액이 적으면 하고 많으면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고 있는 신자의 의무입니다. 우리는 십일조를 통해서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라고 신앙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집을 팔았더니 세금이 나왔습니다. 저는 당연히 세금을 내야합니다. 마찬가지로 당연히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십일조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짜 물질의 헌신은 모든 물질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활이 있기 때문에 모든 물질을 헌금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받는 월급을 다 헌금한다면 밥은 어떻게 먹고 옷은 어떻게 입습니까? 자녀교육은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진정한 물질의 헌신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헌금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헌신에는 상이 따르는 것이 세상이치입니다. 음식점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단골손님이 와서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그 손님이 주인을 향하여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리 좀 와 보세요!” 주인이 놀라서 가 보았습니다. 손님은 국속에 빠져 있는 피리를 가리키면서 말했습니다. “파리 좀 봐요.” 그 때 종업원이 달려오더니 순식간에 파리를 집어 먹고는 “까만 콩이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손님은 순간적으로 당황하였습니다. 판단을 잘못 한 것인지 몰라서 머뭇거리며 말했습니다. “내가 잘못 보았나?” 그리고 손님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밥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나가면서 말했습니다. “죄송해요.” 손님이 가고 난 후에 주인이 파리를 먹은 종업원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우리 식당을 떠나지 말아라. 그리고 이번 달부터 봉급을 50만원 올린다. 단골손님을 떨어지지 않게 한 공로다.”
세상에서도 공로가 있으면 상을 줍니다. 하나님은 어떠하실까요? 당연히 상을 주시죠. 신명기 28:1-14을 보면 하나님을 잘 섬기던 자들에게 주시는 다양한 복을 말씀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 자들에게 상을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제 아내의 장점이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할 때 몸을 아끼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제가 너무 과하다고 절제를 시킬 때도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몸을 아끼지 맙시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씀 한 구절 소개하겠습니다. 사무엘하 5:10입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하나님은 하루아침에 벼락 축복도 주실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점점 강성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3년 반의 긴 가뭄 중에도 하나님께 물을 부어드렸던 엘리야의 헌신처럼 하나님께 헌신된 삶을 사셔서 점점 강성해지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시간과 우리가 가진 물질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용한다면 우리는 엘리야가 3년 6개월의 가뭄 중에 물을 하나님께 부어드린 것처럼 헌신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본문의 사건은 여호와께서 진짜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거짓 신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전지전능하셔서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도 아까지 않으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을 모으고 영적 대결을 할 때 하나님은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주셨습니다. 그 광경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라고 외쳤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바알과 아세라 숭배로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영광의 회복을 위하여 우리에게 세 가지 권면을 합니다. 1.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라. 2. 하나님께 예배하라. 3. 하나님께 헌신하라.
성경을 들고 믿음의 고백을 하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음 받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인도에 순종하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예배하겠습니다. 나는 예배에 우선순위를 두겠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시간의 헌신을 하겠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물질의 헌신을 하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