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끝 무렵, 고불총림 백양사 주지 스님이 새로 부임했다. 신임 주지 스님은 벽상학원 세지중학교 이사장이자 백양실버타운 이사장 원일스님이다. 원일스님은 12월21일 취임법회를 가졌다. 동안거에 들어간 총림은 수행대중들의 용맹정진으로 열기가 뜨거웠다. 원일스님은 격식을 따지는 주지 진산식보다 간단한 취임식으로 신임 주지 인사를 대신했다. 이날은 고불총림 포살이 있는 날이었다. 산중의 대중 스님이 큰 절에 모였고, 각 사암 스님과 불자들도 함께 했다. 원일스님은 취임사를 통해 ‘대중화합과 원융살림으로 고불총림의 위상을 세우겠다’고 다짐했다. 스님의 주지 취임법문과 법회를 마치고 불자들과 나눈 차담을 요약, 정리했다. |
나라 안팎이 온통 사건으로 얼룩진 한 해가 저물고 또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됩니다. 해가 바뀌는 지금은 만물이 숨을 죽이는 겨울입니다. 드물게 이번 겨울은 시작부터 매우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혹독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시련과 역경의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휴식과 준비의 시기이기도 합니다. 얼어붙은 땅도 때가 되면 분명 봄이 오고 녹은 땅에 푸른 싹이 나기 마련입니다. 오히려 추운 겨울을 이겨낸 매화가 더 진한 향을 뿜어내듯 시련의 시기를 잘 극복하고 준비한다면 결코 힘든 시간만은 아닐 것입니다. 차근차근 준비한다면 새해는 올해보다 더 나은 해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삼동설한에도 용맹정진하는 총림의 수좌 스님들과 부처님의 교리를 전해주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말사 주지 스님, 그리고 생활 속에 부처님 제자로서 부끄럼 없이 신행활동을 하고 있는 불자들이 있기에 불교의 내일은 희망차다고 하겠습니다.
제가 부여받은 주지 소임은 결코 명예의 자리가 아니라 일하는 자리입니다. 방장 스님의 뜻을 받들어 수행하는 대중들이 공부 잘 할 수 있게 불편함이 없도록 하고, 외호하는 것입니다. 옛말에 ‘벼룩 세말은 몰고 가도 중 셋이 함께 가기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수행자들의 개성이 강하다는 뜻입니다.
대중이 모여 사는 총림은 더욱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열쇠는 ‘화합’입니다. 요즘처럼 물질만능주의 세상에서 재정이 열악한 고불총림의 살림살이를 살찌게 하는 것은 오직 화합하고 수행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대중이 모여 사는 총림은 어려움이 더 많습니다
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열쇠는 바로 ‘화합’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여섯 가지 가르침이 있습니다.
부처님 재세 시에 제자들이 다투는 일이 있었습니다. 부처님이 하루는 여러 비구들을 모이게 한 다음 여섯 가지 화합하는 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기억하고 사랑하고 존중해야 할 여섯 가지 화합하는 법이 있다. 이 법에 의지하여 화합하고 다투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첫째 같은 계율을 같이 지키라. 둘째 의견을 같이 맞추라. 셋째 받은 공양을 똑같이 수용하라. 넷째 한 장소에 같이 모여 살아라. 다섯째 항상 서로 자비롭게 말하라. 여섯째 남의 뜻을 존중하라.”<사분율> 여러 대중이 모여 사는 총림뿐 아니라 불자들도 꼭 실천해야할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돌이켜보면 지난해에도 우리 주변은 유난히 어렵고 힘든 일들이 많았던 한해였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수많은 사건 사고는 일일이 들춰내지 않아도 국민 모두의 가슴에 커다란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불제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놓치지 말고 되새겨 더욱 더 수행정진과 가없는 자비행을 펼쳐야 하겠습니다.
고불총림 백양사는 한국불교사에서 올곧고 매우 뚜렷한 족적을 이어가고 있는 대가람입니다. 특히 근세 큰 스승이신 만암 대종사는 백양사에 우리나라 총림 가운데 가장 먼저 고불총림을 설립하셨습니다. 전국 25개 교구본사 가운데 총림의 이름을 가진다는 것은 선(禪) 교(敎) 율(律)에 있어서 역사적, 내용적으로 그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할 것입니다. 만암 큰스님의 가르침은 지금도 생생히 남아 오늘을 사는 우리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만암스님이 백양사에 주석하던 시절은 참으로 궁핍했던 시기였습니다. 그중에서도 혹독한 가난과 배고픔은 이 땅에 사는 백성들의 고통이었습니다. 당시는 수리시설이나 영농기술이 형편없어 가뭄이나 홍수가 나면 농사를 망치기 마련이고 힘없고 돈 없는 농민들만 죽어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만암스님은 흉년이 들면 대중 스님들의 밥을 죽으로 쑤어 양식을 아꼈고, 곡식을 절 아랫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도 흉년이 들어 수많은 주민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만암스님이 원주 스님에게 이르기를 마을사람들을 불러 쌍계루 앞에 보를 쌓도록 했습니다.
같은 계율을 같이 지키라
의견을 같이 맞추라
받은 공양을 똑같이 수용하라
한 장소에 같이 모여 살아라
항상 서로 자비롭게 말하라
남의 뜻을 존중하라
쌍계루는 지금도 그러하지만 당시 조선 8경 중 하나로 불릴 만큼 나라에서 으뜸가는 명승지였습니다. 양쪽 계곡에서 흘러오는 물이 만나는 곳에 세워진 쌍계루에서 바라보는 백암산 애기단풍은 그야말로 절경 중의 절경입니다. 그냥 두어도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물이 맑고, 수량도 많아 경관으로 일품이건만 일부러 보를 막으라니 대중들은 모두 어리둥절했습니다.
큰스님의 말씀이니 원주 스님은 마을 사람들을 불러 돌을 쌓아 보를 만들어 물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보를 쌓은 불사에는 단서가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을 많이 부르면 부를수록 좋은데 꼭 한 집에 한사람만 부르고, 빠지는 집이 없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절에 큰 일이 있으면 마을 사람들도 운력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운력이 아니라 품삯으로 곡식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만암스님이 개천에 보를 쌓도록 한 것은 굶주리는 절 아랫마을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누어주기 위해서였던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그냥 주면 주민들의 자존심이 상하니 개천에 보를 쌓는 일을 시키고 그 대가로 곡식을 나눠주었던 것입니다.
이후에도 백양사는 흉년이 들면 쌍계루 앞 보를 허물었다가 마을사람들을 불러 다시 쌓기를 몇 차례 했습니다. 모두들 살림살이가 어렵다고 합니다. 세계경제가 위축되고 서민들의 삶이 팍팍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만암스님처럼 어려울 때일수록 가진 것을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불자들의 살림살이입니다.
새해는 을미년 양띠해입니다. 십이지 가운데 여덟 번째 동물인 양(羊)은 성격이 순박하고 부드러워 양띠 해에는 며느리가 딸을 낳아도 구박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이처럼 평화를 상징하는 양은 성격이 온화하여 좀처럼 싸우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새해에는 양처럼 착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효도하고 부처님 말씀을 가까이 하는 불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무리를 지어 살면서도 동료 간에 자리다툼이나 암컷을 독차지하려는 욕심도 갖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양은 효(孝)의 동물로 통합니다. 젖을 먹을 때 어린양은 무릎을 구부리고 어미젖을 먹습니다. 그리고 힘없는 늙은 양에게도 젖을 먹이는 효성스런 동물이기도 합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하루는 양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양을 잡으려 하자 뿔과 꼬리가 떨어져나가 깜짝 놀라 깼습니다. 마음이 뒤숭숭한 이성계는 무학 대사에게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무학 대사는 왕이 될 길몽이라며 해몽을 해주었습니다.
한자로 양(羊)에서 뿔과 꼬리를 떼고 나면 왕(王)자만 남게 됩니다. 그러니 임금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후 이성계는 정말 왕이 되었고, 지금도 양 꿈은 길몽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고불총림 백양사란 이름도 하얀 양을 제도한 데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조선 선조 때 환양 선사가 백암산 영천암에서 <법화경>을 설하였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듣고자 수많은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습니다. 법회가 한창이던 어느 날 흰 양이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들었고, 법회가 끝난 날 밤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났습니다.
양이 말하길 ‘저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축생의 몸을 받았는데 이제 스님의 설법을 듣고 업장 소멸하여 다시 천국으로 환생하여 가게 되었다’며 절을 하고 물러났습니다. 이튿날 절 아래를 살펴보니 흰 양이 죽어 있어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 이후 절 이름을 백양사라고 고쳐 불렀다고 합니다.
또 이런 설화도 내려오고 있습니다.
백암산 약사암에서 정진하던 팔원스님은 늘 <법화경>을 독경했습니다. 어느 날 흰 양 한 마리가 나타나 독경소리에 취한 듯 내내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독경이 끝나면 조용히 사라지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날이 지날수록 스님의 독경을 듣는 양의 숫자가 하나 둘 늘어가더니 흰 양 100마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백양사라는 이름을 붙였고 팔원스님은 양을 불러들였다 해서 환양 선사라고 불렸습니다.
을미년 새해에는 양처럼 착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효도하고, 부처님 말씀을 가까이 하는 불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 원일스님은 …
1978년 백양사에서 벽상스님을 은사로 입산하여 1985년 해인사 해인강원을 졸업하고 1994년 중앙승가대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해인사, 봉암사 등 선원에서 정진했으며, 15대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했다. 현재 학교법인 벽상학원 세지중학교 이사장, 백양실버타운 이사장을 맡고 있다.
첫댓글 백양사...깊은뜻이...
나무관세음보살_(())_